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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서하

2023.08.01 08:4508.01

 

서하 (西河)

 


하생(河生)은 고조선 초에 서하(西河)라고 하는 강물 가에 살던 한 가난한 사람이다. 이때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넘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물가에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는 땅이 물에 잠겨 집이 떠내려 가고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러므로 장군과 대부들은 고을마다 사람과 재물을 모아 물길 주위로 큰 둑을 쌓는 공사를 많이 벌이도록 했다. 이런 일을 “물을 다스린다”고 불렀다. 그리고 둑을 잘 쌓은 곳은 그 덕분에 여름철 물난리를 막을 수 있게 되어 사람들이 안심하였다.

그런데 하생이 살던 고을에서 한 해는 비가 아주 많이 왔다. 그래서 물이 넘쳐 쌓아 놓았던 둑이 무너졌다. 둑이 무너진 일은 처음이었으므로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왜 둑이 무너진 것인가? 어떻게 해야 또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

그 곳의 많은 사람들이 높이 우러러 보던 사람으로 수자(水者)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수자가 말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대대로 철이 바뀔 때마다 강물에 공손히 제사를 지내며 강물의 신을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때문에 항상 나쁜 일이 있을 때에 강물을 향해 빌면 그것을 해결해 주고, 병이 들었을 때에도 강물을 향해 제사를 지내면 그 영험으로 병이 낫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강물의 신이 나타나 둑을 고쳐 쌓을 때에는 반드시 사람 하나를 제물로 바쳐서 둑을 쌓는 흙 속에 같이 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물로 사람을 바치지 않으면 다음 해에는 또 물이 크게 불어나 둑이 무너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말이 매우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땅을 많이 가진 부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저마다 재물을 조금씩 걷어 노비 한 명을 사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그 노비를 둑을 다시 쌓을 때 강물의 신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비록 노비 한 명의 값이 비싸기는 하나 또 큰 물난리가 나서 집이 떠내려 가고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나누어 재물을 내면 그렇게 많이 내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말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있던 하생이 헤아려 보니 그렇게 재물을 걷는다고 하면 꽤 많은 액수를 내야 할 것 같았다. 가난한 하생의 처지에는 대단히 많은 양이었다. 하생은 난처했다.

한참 근심에 잠겨 있다가 하생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비라고 해도 사람의 목숨입니다. 어찌 한 사람이 꿈을 꾼 일만 믿고 사람의 목숨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힘써 둑을 쌓고 튼튼히 다지면 다음 해에는 둑이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노비의 값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니 어찌 그 재물을 함부로 써 없애겠습니까?”

마지막 말을 듣고 사람들은 저마다 재물을 아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하생의 말을 믿기로 하였다.

그러자 수자가 외쳤다.

“이렇게 뻔히 이야기를 했는데도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강물의 신은 크게 노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까?”

그리고 날과 달이 흘러 다시 여름이 찾아 왔다. 이번에도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불었다. 결국 강물이 넘쳤고 둑이 터지고 말았다. 둑이 터진 곳으로 물이 흘러 여러 집이 떠내려 갔다. 또한 집안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집도 생겼다.

이번에는 더 큰 목소리로 수자가 말했다.

“이것 보십시오. 한 사람의 노비 목숨만 작년에 잘 바쳤으면 그것으로 강물의 신이 마음을 달래도록 할 수 있어 아무도 해를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비 한 명을 아끼려다가 망한 집이 도대체 몇 곳이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도대체 몇 명입니까? 이번에 무너진 둑을 바로 세울 때에는 반드시 사람을 그 흙더미 속에 같이 묻어서 강물의 신에게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생이 말했다.

“강물의 신이 있어 홍수를 일으킨다는 말도 처음 들어 보거니와, 강물의 신이 갑자기 사람 목숨을 제물로 바란다는 말도 처음 들어 보오. 그리고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보통 제사를 지낸다면 상에 차린 음식을 밤에 몰래 신이 찾아 와 그 기운을 빨아 들이는 것이 보통 귀신이 하는 일 아니오? 어찌 강물의 신은 산 사람을 흙더미 속에 묻어야 그것을 자신에게 바친 것으로 친단 말이오? 모든 것이 엉뚱한 이야기일 뿐이오. 어느 밤에 혼자 꾼 꿈 속에서 본 허황된 모습이 어떻게 옳은 일이라고 믿을 수 있단 말이오?”

부자는 하생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자의 땅이 물에 많이 잠겨 재물을 잃은 양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부자는 화가 나 있었다.

“지난 번에 그대의 말을 듣고 수자의 말을 따르지 않았는데, 금년에 벌어진 일을 보시오. 이렇게 큰 난리가 벌어지지 않았소? 또 그대의 말만 듣고 수자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가 둑이 다시 무너진다면 그때 입는 해는 어찌하겠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어찌 흙더미 속에 사람을 파 묻는 것으로 넘치는 강물을 막겠소?”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학식이 풍부한 학자가 말했다.

“아마도 제물을 바쳐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둑을 쌓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본래 둑이 없을 때에는 여름철 강물이 많아질 때마다 들판을 물로 휩쓸어 많은 곡식과 짐승들을 강물에 휩쓸어 갔습니다. 강물의 신은 그런 것을 받아 들이면서 좋아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우리가 둑을 쌓았으니 강물의 신은 더 이상 들판을 휩쓸 수 없어 차지할 수 있는 곡식과 짐승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화를 낼 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강물의 신은 둑을 무너 뜨려서라도 자기 몫을 찾으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강물의 신에게 사람 하나를 바친다면 그것으로 강물의 신은 욕심을 가라앉히고 더 이상 해를 입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생은 그 말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둑이 없을 때 난리가 나면 다들 강물을 원망하기만 했을 뿐, 그것이 강물의 신이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소. 다만 저 수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괜히 강물의 신에게 오래 전부터 제사를 지내 왔을 뿐이오. 또한 설령 강물의 신이 이 모든 일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그가 사람 목숨 하나로 만족한다는 것은 또 어찌 믿는단 말이오? 그저 한 사람의 헛된 꿈을 믿고 사람 목숨을 빼앗는단 말이오? 만약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혼자서 사람을 구해 묻도록 하시오.”

이날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 많은 말을 나누며 다투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람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꺼림칙했던지라, 결국 그 해에도 수자의 말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음 해 여름에도 물이 불어나 둑이 무너졌다. 그러면서 또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잃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자가 사람들 앞에 나와 춤을 추며 울부짖었다.

“보시오! 내가 먼저 나서서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작은 값으로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을 왜 이와 같이 내버려 두다가 이토록 큰 해를 입는단 말입니까? 벌써 여러 번 맞아 떨어진 일인데, 도대체 몇 번이나 내 말을 믿지 않다가 많은 사람이 큰 해를 입고 나서야 내 말을 믿을 것입니까? 이런 큰 물난리를 막을 방법이 있다고 내가 여러 번 이미 말했는데, 왜 그 말을 따르지 않고 고작 사람 하나 값을 아끼려다가 이 큰 해를 입는단 말입니까?”

수자는 그리고 나서 하생을 무섭게 노려 보았다. 하생이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강물의 신이 이 모든 일을 했다고 볼 수는 없소. 강물의 신이 우리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소. 그저 그대가 꿈에서 한 번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것 뿐인데, 어찌 그것으로 믿겠소?”

그러자 부자가 나서서 하생에게 따졌다.

“이미 그대의 말만 믿고 수자의 말을 믿지 않다가 세 번이나 둑이 무너져 큰 피해를 입었소. 수자의 말이 꼭 맞아 든 것이 벌써 세 번이나 되지 않았소? 세 번이나 이렇게 꼭 같이 맞아 든다는 것은 분명 수자의 말이 믿을 만 하다는 뜻이 아니겠소?”
“옳소! 옳소!”

마을 사람들 중에 몇몇은 자신도 둑이 무너지고 홍수가 나던 때에 꿈 속에서 강물의 신이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하생이 대답했다.

“그것은 수자가 강물의 신을 들먹이며 겁을 주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그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져 비슷한 꿈을 꾼 사람들이 생긴 것 뿐이오.”

하생은 말을 이어 갔다.

“또한 제대로 따져 보면 수자가 이런 일을 미리 말한 것은 세 번이 아니라 두 번이오. 게다가 세 번이 아니라 열 번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 이치를 따질 수 없는 일을 꿈만 갖고 믿을 수는 없는 것이오. 혹 어떠할 때에는 물이 많아 둑이 무너지기도 하고 혹 다를 때에는 둑이 무너지지도 않기도 하는 것이오. 천 년 만 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삼년 정도 잇다라 뚝이 무너지는 일도 가끔은 벌어지는 것이오. 어쩌다가 수자의 이상한 말이 세 번이 맞았다고 해서 어찌 왜 그리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허망한 꿈 따위를 믿을 수 있겠소?”

그러나 그 말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특히 사람들 중에는 수자의 말만 따랐다면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고, 이 모든 것은 하생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하생을 크게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이미 세 번이나 명확히 수자의 말이 맞아서 증거가 너무나 명확한데, 어찌 저 사람은 그게 또 틀렸다고 고집하기만 하는가?”
“저 사람의 말을 믿다가 둑이 무너져 큰 해를 입었으니, 저 사람 때문에 재물을 잃고 목숨을 잃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저 놈은 사악한 말로 사람의 재물을 빼앗은 도둑이고, 사람의 목숨을 해친 죄인이다, 벌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 놈 때문에 우리가 해를 입은 것이다! 저런 놈을 벌해야 다시는 해를 입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하생의 죄로 둑이 무너진 것이니 그를 벌하라고 외쳤다. 그때 어떤 사람 한 명이 속삭이듯이 말하기로,

“저 놈을 둑 속에다가 묻어 버리자.”

라고 말했는데, 그러자 단숨에 그 말이 퍼져 나가 수 십, 수 백 사람들이 하생의 목숨을 강물의 신에게 바치자고 소리지르게 되었다. 그 소리를 지르며 날뛰고 노래를 부르기까지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대단히 많아졌으니 마치 온 세상이 하생의 목숨을 바치자고 소리 지르며 우는 것 같았다.

마침내 하생은 갑옷 입은 병사들에게 끌려 가서 무너진 둑 사이에 무릎 꿇려졌다. 그리고 그 속에 묻혀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하생은 마지막까지도 소리치기를,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불어나 둑이 무너지고, 비가 적게 오면 둑이 안 무너지는 것이지, 그게 강물의 신과 무슨 관련이 있으며 둑에 사람을 묻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욕하는 소리에 그 말 소리는 모두 묻혔다.

이윽고 다시 해가 바뀌고 또 여름이 찾아 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가 아주 많이 와서 강물이 많아졌다. 그래서 둑이 무너졌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온갖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니, 그 말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강물의 신을 싫어 하던 사람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강물의 신이 더욱 화를 낸 것이다.”
“강물의 신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 일을 두 번 건너 뛰었으니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을 바쳐야 하는 것인데 숫자를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는 가운데 사람 목숨을 바쳤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예절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강물의 신이 제물을 받지 않은 것이다.”

여러 사람의 주장이 어지러운 가운데 어떤 말을 따라야 할 지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부자는 제물로 바칠 노비 한 사람을 사 왔지만, 어떻게 바칠 지 정하지 못해 날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만 한 해가 또 지나고 말았다.

“이제 강물의 신이 가장 큰 벌을 내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려워 했다. 그러나 정작 그 해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강물이 넘치지도 않았고 둑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강물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과 둑이 무너지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 근처의 한 장군이 이곳에서 하생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군은 그 죄를 밝히려 하였다. 사람들은 깊이 고민한 끝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구한 노비의 목숨을 빼앗은 뒤, 장군에게는,

“노비가 강물의 신을 깊이 믿고 있어서 하생을 미워하여 그의 목숨을 빼앗았고, 그것을 알게 되어 병사들이 노비를 처벌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둑을 볼 때마다 쉬쉬하기로 했다고 한다.

 


- 2023년, 서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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