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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비싼 값에 사다

– 곽재식 –

1.

1949년 12월에는 “성벽을 뚫고”라는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구질구질한 회사에 연습 삼아 입사 시험을 치렀다가, 합격자 발표일이 가까워 올 수록 괜히 점차 그래도 합격하기를 바라게 되는 마음이 들 때 보면 어울릴 만한 영화였다. 나도 오늘 저녁에는 그 영화나 보러 갈까 생각 했다. 그렇지만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 그런 때일 수록 막상 합격자 발표일이 되면 한심하게도 불합격 통지를 받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차피 그 영화가 정말로 입사 시험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극장 대신 나는 대동산업 건물에 찾아 왔다. 역시 입사시험을 치르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 반대라고 할 수는 있었다. 한참 만에 부사장 대신 나온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사람을 한 번에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 보실 수 있죠?”

 그 직원은 목소리가 좋은 편인 여자였다. 테가 가는 안경을 쓰고 있어서 전등의 노랑 빛이 안경의 은색에 반사 되어 섞였다. 직원은 옛날 취향의 벨벳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솔기의 선이 그리는 곡선은 매우 현대적으로 보였다. 무슨 수를 썼는지, 옷에 구김과 주름이 조금도 보이지 않아서, 그 옷 안에 사람의 살갗이 아니라 다리미로 만든 양철 인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직원은 나에게 재차 물었다.

 “탐정이라고 하셨잖아요. 한번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 보는 걸 남들 보다는 잘 하는 편이죠?”

 “한눈에 사람 성품을 알아 보는 재주가 있다면, 중매 서는 일을 하지 탐정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내 대답을 듣더니, 직원은 웃었다. 웃을 때 드러나는 이는 새로 산 다리미처럼 반짝거렸다.

 “32명을 차례 대로 보실 거에요. 보시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상, 중, 하. 세 가지로 해 주시면 되고요. 저희 회사가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으로 그 사람을 채용할 지 말 지 결정을 할 때, 그 평가 결과를 참고할 거에요. 한 사람 이상은 ‘상’을 주셔야 되고요.”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앉아 있을 의자와 탁자를 보았다. 급하게 빈 방으로 들고 온 낡은 의자였다. 작년에 철수한 일본군 비품을 집어 온 것인지 왼쪽 구석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일본 글씨가 남아 있었다. 이북에서는 아직까지도 서울로 전기를 보내주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유한 회사의 건물에도 켜져 있는 전등 숫자는 적었다. 사무실의 절반이 밤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입사 시험 보다는 범죄자를 취조하는 데 더 적합해 보였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까? 왜 저에게 이런 일을 맡기신 겁니까?”

 “저희 회사 사람이 아닌 사람이 내리는 객관적인 외부 평가가 필요해서 맡기는 거에요.”

 “제가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까?”

 “무슨 평가든, 내려 주셔야, 수고비를 드릴 거에요.”

 어두운 방안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직원의 모습 뿐이었다. 직원은 다시 밝게 웃었다. 오늘 하루에만 팔백번 쯤 지어 본 웃음이었다.

 직원은 나에게 표찰 하나를 던져 주고 바로 걸어 나갔다. 수고비 이야기만 하면 더 이상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표찰에는 “특별 입사 평가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필체가 좋은 글씨여서 대단히 거창해 보였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 직원이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직원이 더 이상 나를 쳐다 보지 않은 것은 효율적인 행동이었다. 걸어 나간 빈 자리에는 희미한 향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새어 들어 오는 차가운 밤바람이 한 번 부는 것이 느껴지고 그 향은 곧 사라졌다.

 잠시 후, 내 앞으로 첫번째 수험자가 나타났다. 서른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름을 말하십시오.”

 “이름 말이오?”

 수험자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수험자의 얼굴은 듬성듬성 줄무늬가 엇갈린 듯이 무늬를 이루며 탄 자국이 있었다. 지푸라기로 얼굴을 덮고 해변에서 태운다면 생길만한 모양이었다. 억지로 비누칠을 한 냄새가 퀴퀴한 냄새에 섞여 풍겼다. 옷차림은 그럭저럭 주워 입힌 괜찮은 양복이었지만, 트고 갈라진 입술은 구걸해서 얻은 음식 이외의 것은 먹어 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탐정이랍시고 해야 하는 일이 이 사람이 걸인인지 눈치채는 것 정도라면, 세상에 탐정 보다 해 먹기 쉬운 일은 국회의원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성명을 대시오.”

 “그것이 이름이, 도요… 도요야마….”

 수험자는 두 번이나 물었지만 자기 이름도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수험자는 아직도 광복이 되었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 지 못해서,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을 기억해 내서 대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누런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그 종이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이 씌여 있었다. 내가 수험자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은 어차피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이름은 대답하지 않아도 좋소. 내 다음 질문에 대답하시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오?”

 수험자는 음식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빛이 바뀌었다. 수험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릴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개어 놓은 돗자리에 접어 놓는 금이 있듯이, 그의 얼굴은 접어 놓은 금대로 접기만 하면 그대로 손쉽게 우는 얼굴이 되는 것 처럼 보였다.

 “국밥 한 그릇만 주십시오, 선생님. 이틀 동안 말린 고구마 반쪽 밖에 못 먹었습니다. 선생님.”

 그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굴러 나왔다. 이 수험자는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정신을 갖고 있지 못했다. 나는 평가표에 “하”를 선택해 표시하고, 이 수험자를 내 보냈다. 수험자는 어디든 붙잡고 울며 국밥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뭐든 입안에 들어 올 때까지 그저 매달렸다. 제 앞에 어린애가 있건 돌장승이 있건 아무에게나 달라 붙어 그저 먹을 것을 줄 때까지 칭얼거릴 줄 밖에 몰랐다. 수험자는 끌려갈 때까지 애원했다.

 다음 수험자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마흔쯤 되는 남자였고, 걸인이었고, 두 마디 이상 말을 나누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세번째로 나온 남자부터는 좋아하는 음식에 빈대떡이라고 대답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글자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회사에서 나눠 준 옷인 것 같았다. 네번째로 나온 늙은 남자는 계속 히죽히죽 웃었다. 나는 조금도 그를 웃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대답 하나를 마칠 때 마다 웃었다. 웃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키득거렸다. 좋아하는 음식은 사탕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하는데 힘겨워 했다. 사탕이라는 말을 생각하자 웃음을 참지 못해 견딜 수 없어 했다. 간신히 사탕이라고 발음하자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가 방을 나갈 때, 나는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많이 웃는 것을 들어 본 것은 무척 오래간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번째 수험자로는 처음으로 여자가 들어 왔다. 스물 다섯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들어 오면서 수험자의 눈은 내 등 뒤를 보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여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카락은 태양에 바싹 구운 것 같아 보였다. 수험자가 입고 있는 옷은 나를 맞이 했던 직원이 입고 있던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 걷는 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구두를 신은 발이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이름을 말하십시오.”

 내 말을 듣고 수험자는 나를 쳐다 보았다. 그제서야 수험자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겁을 먹은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이 어제 본 사진 속 순박한 남자의 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조금도 닮지는 않은 사람들이었다. 표정도 전혀 달랐다. 어제 사진 속의 남자는 부유한 사람처럼 흐뭇하게 웃고 있었고, 오늘 밤 보는 이 수험자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눈의 모양도 비슷하지 않았다. 여자의 눈은 달달 떨며 깜빡거리는 큰 눈이었고, 사진 속 남자는 둥근 얼굴에 어울리는 편안한 눈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방안에서 희미한 반사광을 내는 것만은 비슷해 보였다.

 수험자의 입술이 뭐라고 말할 것처럼 움직였다. 열리지는 않아 머뭇거렸지만 곧 소리를 낼 것 같았다. 그 입술은 떨렸다. 나는 그 수험자가 어떤 목소리로 이름을 말할 지 궁금해서 그 입술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수험자의 입술이 열리자, 개 짖는 소리가 나왔다. 수험자는 몸을 웅크리며 뒤로 물러 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개 짖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드렸다. 무슨 지독한 일을 보고 이렇게 되었는 지는 알 길이 없지만, 수험자는 제 정신을 잃은 사람이었다. 내가 한 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자, 수험자가 내는 개 짖는 소리는 멈추었다. 그렇지만, 무서워 하고 있는 그 눈빛이 바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뭡니까?”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수험자는 그에 맞서서 성을 내며 나를 쳐다 보고 다시 개짖는 소리를 냈다. 그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곧 눈물이 흐르며 울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더 맹렬히 짖는 소리를 냈다. 그런 소리를 힘을 다해 내고 있으면 뭘 막아낼 수 있다고 믿기라도 하는 듯 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회사에서 나를 고용했는지 다시 궁리해 보았다.

 회사 사무실에서 일할 사람을 뽑을 거라면서, 왜 나에게 걸인들과 알콜중독자들과 미치광이들과 겁을 먹고 업드려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계속 보게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똑똑한 척 하던 사람은 공산주의에 솔깃해서 이북으로 빠져 나가고, 돈 있는 사람은 일본이나 미국으로 빠져 나가는 세상이라고 유언비어가 돌았지만, 그래도 약삭빠른 사람이 살기에는 아직 서울은 즐거운 곳이었다. 맨정신으로 걸어 들어와서 뭘 먹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까닭이 없었다.

 나는 어제 나를 여기에 보낸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모습과 그녀가 나에게 보여 준 사진과 사진 속의 그 남자를 다시 기억해 냈다.

 남자의 웃는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도 생각이 났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2.

어제 아침 그녀의 연락을 받고 나는 태평호텔로 갔다. 큰 호텔은 아니었지만, 둥근 지붕 꼭대기마다 금속 장식이 요란하게 달려 있는 건물이었다. 미드웨이 해전 이전까지만 해도, 저녁 파티가 벌어지면, 그 노는 냄새라도 맡기 위해 옷을 차려 입은 남녀들이 오후부터 기웃거리는 곳이었다. 나도 아편쟁이를 쫓아서 이 곳에 온 일이 두 번인가 있었다.

 지금은 예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커다란 창문은 그대로 였는데, 안에 켜진 불빛은 예전보다 훨씬 어두웠다. 붉은 제복을 입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깨끗한 옷을 입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얼굴 색은 피곤해 보였고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아침이 밝아 오면서 몇 안 되는 켜진 전등도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건물 안은 더욱 어두워 졌다.

 투숙객을 맞이하는 남자에게 가서 사장이 불러서 왔다고 말하자, 그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처음 맞이하는 찾아 온 투숙객인가 싶어 반가운 얼굴을 보인 것이 괜히 아깝게 행동한 것이었다고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 행색을 살폈는데, 그러자 이 따위 꼴의 인간이 자기네 호텔 투숙객으로 어울릴 리가 있었겠냐며 스스로의 안목을 자책하는 것 같았다.

 그가 내 몰골을 멸시하는 것을 마칠 때 쯤, 나이가 스물이 될까말까한 호리호리한 남자 직원 하나가 내 앞으로 찾아 왔다.

 “사장님은 꼭대기 층에 계십니다. 엘리베이터로 가시지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목소리는 맑고 듣기 좋았다. 옷은 색이 선명하고 깨끗했고, 얼굴은 더 희고 깨끗했다.

 그를 따라서 들어간 방은 호텔의 맨 가운데 최고층에 있는 가장 훌륭한 방이었다. “몇 년에 누가 만든”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 어울릴만한 가구들이 구석 마다 모셔져 있었다. 열기가 가득하게 난방이 되고 있어서, 바깥 날씨는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고, 언덕 아래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 때문에 창문은 더 커 보여서, 온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직원이 말했다. 나는 그냥 그렇게 말하고 바로 어디로 가서 그 사장이라는 사람을 데려올 줄 알았는데, 직원은 굳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기 싫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는 없었다. 미국 달러로 수고비를 주겠다는 손님이었다. 불법인 일을 하라는 것이나, 몸을 상하는 일이 아니라면 뭐든 시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기다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몸을 상하는 일이라고 해도 2주 안에 치료될 수 있는 정도로 두들겨 맞는 것이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원은 방 안쪽으로 걸어 들어 갔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술이 덜 깬 것 같기도 했다. 직원이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여자를 얼르는 소리도 들렸다. 여자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여자가 입고 싶은 옷을 고르고, 직원이 그 옷을 가져다 주는 발 소리가 들렸고, 막상 옷을 보더니 마음이 바뀌어 싫다고 하는 말도 들렸다. 여자는 머리를 빗겨 달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사장이 어떤 사람일 지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내 앞에 다시 그 직원이 걸어 나왔다.

 “기다리느라 지루하셨지요?”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이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냥 그렇게 말할 뿐만 아니라 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제서야, 직원은 나를 안쪽 방으로 안내 했다.

 그곳은 더욱 큰 유리창이 있는 곳이었다. 어두운 건물 안에 지금 막 밀어 닥치기 시작한 아침 햇살이 사방에서 들어 오고 있었다.

 그녀는 방 한 가운데에 있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어떤 모습 보다도 두 배 이상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오른편을 보고 햇빛에 눈을 부셔 하는 표정을 짓자, 짙은 속눈썹의 까만 색깔이 흰 빛 속에서 물결처럼 움직였다. 그녀가 표정을 찡그렸을 때는, 햇빛이라도 죄송스러워하며 물러나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색을 본 직원이 재빨리 걸어 가 창문에 차양을 쳤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 너무 어둡게 하지마. 아침에는 햇빛이 들어야 아침이지.”

 그리고 그녀는 컵에 따라 놓은 과일즙 짠 것을 마셨다. 그녀가 앉아 있는 탁자에는 아침 거리가 이것저것 차려져 있었는데, 한 가지를 조금 맛 본 숟가락을 그 앞에 그냥 던져 놓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시던 것을 마셨다. 잠깐 멈추어 창문 바깥을 보거나, “오늘 바깥 날씨는 얼마나 춥지?”하고 묻기도 했다. 대답을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컵을 기울여 과일즙을 마셨다. 다 마실 때까지 그녀는 나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름을 짤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들깨처럼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빈 컵을 내려 놓고 나를 보았다. 나는 아까 본 그녀의 속눈썹을 이제 둘 다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죽은 사람 조사도 하나요?”

 그녀가 직접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지금까지 듣던 그녀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들린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죽었습니까?”

 내가 다시 묻자, 그녀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나를 쳐다 보았다. 얼마간 조용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우선 내가 그녀가 물은 말에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를 어떻게 조사한다는 것인지 알아야 제가 할 수 있는 지, 못 하는 일인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탐정이기는 하지만, 다른 탐정들처럼 정치 단체들끼리 싸움이 났을 때 권총을 들고 가서 들러리를 서 주는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녀는 빈 컵을 들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러자 멀찍이 서 있던 그 남자 직원은 빨리 움직여 과일즙을 짠 것을 다시 한 컵 더 가져왔다.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다시 말이 없었다. 컵이 조금만 더 컸다면 컵을 기울여 마시는 손동작을 도와줄 하인도 있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잠깐 방안을 둘러 보았다.

 벽에 걸린 사진이 보였다. 사진의 오른쪽에는 그녀가 웃고 있었고, 사진의 왼쪽에는 한 젊은 남자가 같이 웃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와 같은 나이거나 한 두 살 더 많아 보였지만, 웃는 얼굴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의 웃음은 잘 만든 조각상 같았고, 지금 보다 몇 년은 더 어릴 때라서 젊은 사람이 장난을 치는 것 같은 심술 궂은 기색이 천사 같은 얼굴에 깃들어 있었다. 때문에 더 생동감 있게 보였다. 다시 남자의 얼굴을 보니, 온통 행복한 일로 세상이 가득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줄도 모르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녀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진 속의 그녀가 몇 년 더 지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제 남편이 지난 달에 죽었거든요. 경찰에서는 갑자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주취사했다고 하는데 너무 이상해서요. 그걸 다시 알아 봐 주세요.”

 그녀가 말할 때 멈칫거림은 조금도 없었다.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말할 때와 목소리의 차이는 없었다.

 “남편께서 술을 많이 드시는 편이셨습니까?”

 “아뇨. 전혀 안 마시거든요. 그 사람 술 마시는 건 두 번 밖에 못 봤어요. 나 처음 본 날이 처음이었고, 나랑 결혼한 날 내가 마셔보라고 했더니 억지로 마셨던 거랑, 그게 다예요. 원래 술을 못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면 돌아가신 날에는 왜 술을 드신 겁니까?”

 그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남편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와 직원은 나에게 남편이 술을 마시고 죽어 있었다던 방을 보여 주었다. 그 남자는 병째로 술을 마시다 병을 든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했고, 눈으로 보기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고 했다. 호텔의 이 방은 직원들이 철저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남편을 해치러 왔다 간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달리 남자가 죽을만한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술을 마시다가 저 혼자 죽은 것일 뿐이라고 경찰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평생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과음을 했다가 그만 몸이 견뎌내지 못한 거라는 이야기였다.

 “남편께서 술을 드실만한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까?”

 “그게 이상하거든요. 누가 억지로 먹이든지 한 거 아닐까?”

 “아무도 들어 온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그건 아닐 겁니다.”

 “그래도 혼자 술 마시다 죽을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면 남편을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나, 남편과 다툰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녀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찍은 사진을 한 번 보았다. 그녀의 옆에 서서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대답했다.

 “아무도 그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을 거요. 그 사람과 싸운 사람도 나 밖에 없었지. 그렇지만 내가 걔를 죽인 건 정말 아니니까.”

 그녀의 말은 농담 같이 들리기는 했지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 호텔 사업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원한을 진 사람은 없었습니까?”

 “아니오. 4년쯤 전에 일본사람 회사에서 웃 돈 주고 산 곳이고. 그때부터 이 호텔에서 살았죠.”

 남자는 수원에 있는 넓은 땅을 물려 받은 부유한 사람으로 대학에서 식물학을 배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 대학 친구들과 평양에 놀러 갔을 때, 한 댄스 클럽에서 그녀를 만났고 여섯달 뒤에 결혼했다. 그녀는 농사 일에 잠깐씩이라도 신경을 쓰는 것을 지겹게 여겼고, 그에 비해 이 호텔에서 열리는 사교행사에 가는 것은 빠지는 일이 없었다.

 “전쟁이 길어지니까 쌀농사는 지어 봤자 일본군이 헐값에 가둬 간다는 말이 많았거든.”

 그녀는 남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하며 땅을 정리하자고 말했고, 남자는 땅을 팔고 호텔을 산 뒤에, 그녀와 함께 호텔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와 남자가 같이 찍은 사진이 바로 호텔을 사서 이사 들어 온 직후에 찍은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정말 왜 죽었는 지 조사해 보세요. 아는 의사가 있다면 무덤에서 시체를 다시 파서 검사를 해 본다든가 해도 되고요. 경찰을 다시 만나 본다든가. 뭐든 해 보세요. 경비는 드는 대로 드릴테니까.”

 그녀는 말을 마치고 다시 직원을 불러 들였다. 다른 옷으로 갈아 입기 위해 도와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어디에 다니셨는지, 운전 기사가 기록해 놓은 일지 같은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넌 아니?”

 그녀는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1층에 가서 운전 기사 일지를 보관하고 있는 사무실을 찾는 방법을 말해 주었다.

 옷을 갈아 입으려는 그녀와 직원은 나를 내쫓으려는 눈치였다. 나는 방을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하나를 더 물었다.

 “갑자기 술을 드셨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괴로우면 술을 찾을 때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경찰 이야기가 많이 엉뚱한 것은 아닌데, 굳이 한 번 더 조사해 보시려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걘 괴로워할 줄도 모르는 애에요. 분명히 뭔가 있을 거라고요. 나랑 같이 살던 남자가 죽었는데, 내가 그냥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거든.”

 그녀는 가까이 다가온 직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남편을 죽인 애가 있는데, 걔가 날 두고, 별 수 있겠어, 멍청하게 경찰 말만 듣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견디기 어려워.”

 그리고 그녀가 대화를 끝내고 고개를 돌리자, 나는 그 고개짓에 튕겨 1층으로 떨어졌다.

 나는 1층에서 직원이 알려 준대로, 운전 기사의 장부를 찾아 보았다. 남자가 죽은 날, 남자가 찾아 간 곳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곳이 바로 대동산업의 공장이었다.

3.

대동산업에 가 보기 위해, 나는 그곳의 정문을 통과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문지기에게 찾아 가서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문지기에게, 술 먹고 죽은 부자를 조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면서 싸구려 탐정 사무소 명함을 보여 준다면, 아마 문지기는 청소부를 불러서 담배꽁초를 치울 때 나도 같이 쓸어 담아 버리라고 지시할 것이다.

 호텔의 언덕길을 다 내려올 때 쯤, 이름 하나가 생각이 났다. 양천종이란 자가 몇 년 전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다고 일본 경찰에 붙잡혔을 때, 내가 그는 가짜 술을 비싼 술과 바꿔치기 하는 사기꾼에 불과할 뿐 독립운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뺨을 두 대 맞은 것 말고는 사소한 고문 한 번 당하지 않고 형무소로 건너 갈 수 있었다. 뺨 두 대 맞는 일이야, 그 시절에는 뺨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심할 만하면 겪는 일이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돈이 안 드는 일이라면 나를 도와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정오가 되기 전에 나는 양천종의 사무실에 가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양키 시장에서 빠져 나오는 골목에 있었다. 불법으로 지었거나 불법으로 철거되거나 할 것이 뻔한 판자로 지은 집이었는데,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2층에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이 그의 사무실이 있었다. “양 탐정 사무소”라고 간판에 씌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사흘 전쯤에 덧붙여 쓴 듯 보이는 글씨로 “DETECTIVE AGENCY”라고 영어로도 적혀 있었다.

 “이게 얼마만 입니까? 이제 이렇게 같은 바닥에서 일하게 됐는데 얼굴도 좀 자주 보고, 가끔 입 궁금할 때 대포도 한 잔 같이 하고 그러자니까요.”

 양천종은 나에게 밝게 인사해 주었다. 그는 보통 키였는데 지난 번에 보았을 때 보다 어쩐지 더 작아 보였다. 어깨가 두껍고 목이 굵은 편이라서 본래 키 보다 더 작아 보이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키가 줄어 들었나 싶기도 했다. 그는 일본군이 버리고 도망친 창고에서 흘러 나온 장교 군복을 고쳐서 만든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꽤 솜씨가 좋은 업자가 고친 옷인지 자세히 살펴 보지 않으면 알아 보지 못할 정도로 말끔해 보였다.

 양천종이 인사치레로 던지는 농담들을 다 받아 주는 피곤한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하하” 웃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내고, 양천종은 혹시 돈 빌려 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이면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 달아 나겠다는 선언을 얼굴에 띄운 채로 말 없이 눈웃음만 지었다. 이제 내가 무엇인가를 부탁한다는 말을 꺼낼 차례였다.

 “자네, 대동산업이랑 엮인 일 뭐 알고 있는 게 있는가?”

 내 말을 듣자 양천종은 반가워 했다. 마음껏 잘난 척 떠들 수 있는 주제인 듯 싶었다.

 “그 놈들이 술 만드는 공장 돌리는 놈들이거든요.”

 “양조장, 그런거 말인가?”

 “그런데 얘네들이 이번에 법 새로 생기면서 일본 사람들이 남겨 두고 간 맥주 공장 차지하겠다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들이 선심 쓰듯이 일본인이 남겨 둔 공장을 적합한 한국인에게 나눠 준다고 하니까, 그 ‘적합한 한국인’으로 보이겠다고 애를 쓰고 아양을 떠는 거죠.”

 적산 불하 제도 이야기였다. 해방이 되고 일본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서, 주인이 없어진 일본 사람의 공장이나 건물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정부에서는 심사를 거쳐서 그 일본 사람 공장을 운영하기에 가장 적합한 한국 사람을 찾아, 공장을 넘겨 주고 있었다. 미군이 들어 왔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는데, 며칠 후에 국회에서 새로 법이 통과되고 나면 더 많은 공장이 새 주인을 찾게 될 거라고 하고 있었다.

 “새 법이 통과되면 대동산업에게 유달리 유리해 지는 일이 있는가?”

 “유리하고 불리하고 할 게 있습니까? 국회의원들이야 해방 전까지 서당 훈장이나 하던 영감님들이고, 해방 되고 나서는 동네 애들 몰고 다니며 영어로 웰컴, 웰컴, 할 줄 밖에 모르던 양반들인데요, 뭘. 법 만들고 폐지하고 하는 것도 이제 갓 돌 지난 정부에서 투닥투닥 애들 소꿉장난하듯이 하는 일이죠, 뭘.”

 “대동산업이 일본군 술 공장을 넘겨 받기에 적합해 보일 만한 자격은 있나?”

 “적합한 지 안 적합한 지 공무원들이 알게 뭡니까? 일본 애들 밑에서 사람 머릿 수 세는 일만 하던 사람들이 나사못 하나 만드는 일이나 알겠습니까? 그냥 친한 사람한테 넘기는 거죠, 뭘.”

 양천종은 밝게 웃었다. 그는 말을 하고 끝에 “뭘”이라는 말만 붙이면 농담처럼 들린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 했다. 그리고 양천종은 이야기 한 가지를 들려 주었다.

 “그래서 저도 한 건 했죠. 그 건 때문에 대동산업 놈들이 저라면 아주 공산당이 김일성이 떠받들 듯이 합니다.”

 과장일 게 뻔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대동산업이 맥주 공장 하나를 넘겨 받을 업체로 지정 받기 위해 공무원 하나에게 뇌물을 주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큰 돈을 현금으로 밤중에 들고 가야 했기 때문에 양천종이 돈 지킬 사람으로 고용되어 따라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원한 진 사람이 그 사이에 신고를 했는지, 막 돈을 넘기려는데 경찰인지 검찰인지가 들이 닥쳤고, 그 자리에 온 부사장과 공무원도 붙잡힐 뻔 했다고 한다.

 “그때 제가 그 놈들 도망가라고 대신 막아서서 순사한테 맞아 줬죠. 그래서 그때 은혜로 대동산업 그 놈들이 저를 각별히 대접해 주는 겁니다.”

 대신 붙잡힌 양천종은 감옥살이도 며칠 했다. 내가 대동산업과 양천종이 친하다는 소문을 들은 것도 그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양천종은 그 뒤의 일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대동산업에서는 어디서 알아 왔는지 공산당 활동을 하는 사람 이름 몇 개를 양천종에게 알려 줬고, 그 덕에 양천종은 그 이름을 승진 빨리 하고 싶어 하는 검사에게 들려 주고는 대신 금방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그의 이 사무실도 그 후에 대동산업에서 받은 돈으로 낸 것이라고 했다.

 “태평호텔이나 거기 사장하고 대동산업이 엮여 있는 일은 없나?”

 나는 이어서 물었다. 양천종은 잠깐 생각을 해 보면서, ‘태평호텔, 태평호텔’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그는 말이 빠른 편이었기 때문에 중얼거리는 속도도 노래 가사처럼 빠르게 들렸다.

 “거기 하고는 아무 일 없을 걸요. 태평호텔 사장이라는 그 양반은, 누가 잘 때 자기 허파를 잘라 가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 나서 ‘내가 담배를 많이 태워서 벌을 받는구나’ 그럴 양반이라고 했는데요, 뭘. 원한 진 일은 없었을 겁니다. 사실 담배도 안 피우는 양반이었고요. 옛날부터 사기꾼들이야 많이 들러 붙었지만, 사람이 좋아 불쌍해 보여서 그런지 큰 사기 친 사람은 없었다고 그러고.”

 그날 양천종이 한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정말로 웃을만한 이야기였다. 사람 좋아 보인다고 사기꾼들이 불쌍해서 사기를 안 친다니. 호랑이가 고기를 뜯어 먹기 전에 스테이크의 구운 정도를 따져 보고 먹는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양천종은 또 살짝 내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태평호텔 사장 부인이 어떤 남자를 끌어 들였네, 바람이 났네, 뭐 그런 이야기야 좀 있기는 했는데. 그것도 그냥 헛소문이었던 것 같고요. 부인이 그래도 사장을 사랑하기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부잣집 마나님에게 이상한 소문이야 없으면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설령 그랬다고 해도 그것도 별 일은 없었을 거에요. 여자 후리고 다니는 놈들 사이에서는, 태평호텔 사장은 지푸라기 대신에 지폐조각으로 채운 허수아비라고 했으니까요, 뭘.”

 나는 대동산업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더 물어 보았다. 하지만 양천종은 잡다한 소문을 몇 가지 더 알았을 뿐,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더 알아 볼 것이 있다고 말하자, 양천종은 소개장 하나를 보여 주었다.

 “그 놈들이 자기들이랑 친한 탐정들 한테 이걸 하나씩 돌렸거든요. 쉬운 일거리 하나 줄테니까 오늘까지 와서 한 건 하고 돈 받아 가라고요. 이거 들고 가면 대동산업 건물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소개장을 받아 들었다. 한자를 많이 섞어서 쓴 내용으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란스러운 말이 없고 그냥 돈 준다는 이야기와 돈 벌고 싶으면 와라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어서 오히려 믿을 만 해 보였다.

 “자네가 가서 돈을 벌어야 할 일을 내가 대신 가서야 되겠나?”

 “아니오. 저는 오늘 저녁에는 다른 데 더 큰 건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이 정도야 제가 해드려야죠, 뭘.”

 그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다른 큰 건이 뭐냐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대답해 줄테니 얼른 물어 봐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느끼고, 일부러 뭔지 물어 보지 않기로 했다. 들어 봐야, 지저분한 일일 것임이 분명했다. 이미 별로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사무실에 와 있는 마당이었다. 그의 도움이 요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감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 양천종은 농담 몇 마디를 하면서 나를 내 보내려는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의 사진 몇 장을 보여 주면서 비서를 뽑으려는데 누가 가장 좋아 보이냐고 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나는 적당히 의미 없는 말로 대답해 주었다.

 그런 만큼 소개장을 받을 뒤로 쓸 데 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다만, 내가 대동산업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양천종이 해준 충고는 기억에 남았다.

 “혹시 거기서 소주 마실 기회가 생기면, 소주는 드시지 마십시오.”

 “왜 그런가?”

 “그 놈들 해방 되고 나서 급하게 일본 사람 공장 계속 넘겨 받고는 있는데, 공장 돌릴 기술 있는 사람이 없는 판이거든요. 그래도 다른 건 괜찮은 편인데 소주 만드는 데는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술에 독극물이 섞여 나와서, 그거 마시면 죽는다고 해서 팔았다가 다시 다 거둬 들이기도 했다고 하거든요. 아직도 소주를 똑바로 못 만들고 있는데, 혹시 시험용으로 만든 거 줄 지도 몰라요. 줘도 마시면 안 됩니다.”

 양천종은 그 뒤에 또 농담을 덧붙였다.

 “요즘에 술 잘못 만든 거 사 먹고 사람 죽었다는 이야기 많잖아요. 그런 거 조금만 잘못 마셔도 눈 멀어서 장님 된다고 합니다. 봐도 못 본 척 하는 게 좋은 세상이니까 장님이 더 살기 편한 세상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래도 진짜 장님이 그런 말 들으면 안 좋아 하죠, 뭘.”

 그의 사무실에서 내려올 때 계단이 삐그덕거리는 소리도 꼭 그의 웃는 소리처럼 들렸다. 계단이 그와 나를 보고 웃는 소리 같기도 했다.

4.

이렇게 해서 나는 대동산업의 사무실에 오게 되었고, 이곳 직원의 지시를 받아 정신 나간 사람들만 줄줄이 나오는 꿈 같은 입사 시험의 면접관이 되었다. 도대체 이런 입사 시험이 무엇 때문인지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여섯 번째 수험자를 보았을 때였다.

 여섯번째 수험자는 처음으로 똑바로 걸을 수 있고 이름을 한 번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청년이었고, 어제도 그 전에도 입어 본 적이 있는 양복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조금도 주눅 드는 것 없이 나를 똑바로 쳐다 볼 수 있었고, 영어와 일본말도 세 네 단어 쯤은 중얼거릴 줄 알 것처럼 보였다. 값비싼 옷과 어울리게 정리한 머리 모양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요란한 머리카락에는 주변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수험자는 즉시 대답했다.

 “대동산업의 맥주입니다. 저는 맥주를 많이 마시면 배가 부르기 때문에 맥주보다는 소주를 더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대동산업 맥주는 목이 마를 때 마시면 특히 시원해서 지금처럼 목이 마를 때에는 가장 좋아합니다.”

 한 마디도 더듬거리지 않았다. 나도 그의 말을 알아 듣는데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다. 그는 가장 빨리 시험을 마치고 일어 서서 나갈 수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나가자, 그의 뒤를 이어서 또 다른 걸인이 자기 차례가 맞는지 아닌지 헷갈려 하며 기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이 입사 시험이 무슨 장난인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알아 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 섰다. 그리고 나를 여기에 앉혔던 직원을 찾아가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하고 싶습니다.”

 직원은 쉬고 말고 할 것이 뭐 있는 지 의아해 했다. 다시 계속해서 줄지어 미치광이들이 입사 시험을 보겠다고 걸어 들어 올 것이다. 달리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직원은 쉬긴 왜 쉬냐고 되묻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한 번 더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직원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일찍 퇴근하지 못하는 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작은 동작에도 원망이 담겨 있었다. 내가 방문을 걸어 나가니,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걸인들 중에는 갑자기 나에게 허리를 깊게 굽히며 인사를 반복하는 자가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어두웠기 때문에 발밑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층 중앙 복도까지 가니, 달빛에 비쳐 여러 다른 사무실의 위치를 표시한 안내판이 보였다. 나는 폐기물 처리반을 찾았다. 애초에 가장 먼저 찾아 갔어야 했던 곳이었다.

 폐기물 처리반 직원들은 밤 늦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오히려 밤이 되자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대부분 불이 꺼져 있는 캄캄한 건물 안에서, 끝트머리에 있는 폐기물 처리반 사무실은 등대처럼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가 기초 자료로 참고해야 겠습니다. 폐기물 처분 가격표를 보여 주십시오.”

 나는 폐기물 처리반의 직원에게 말했다. 그리고 받아 들고 있던 “특별 입사 평가관”이라고 적힌 표찰을 보여 주었다. 폐기물 처리반의 직원은 그 표찰을 나에게 주었던 직원과 쌍둥이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직원이 표찰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쓰레기를 얼마에 파는 지 아셔서 뭐 하시려고 그러세요?”

 어차피 쓰레기를 사러 오는 고물상들에게 얼마든지 보여 주고 있는 가격표였다. 귀중하게 감추어 두고 안 보여 줄 이유는 없는 서류였다. 직원은 가격표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표에 적힌 값을 하나 하나 읽어 보았다. 공장에서 버리는 톱밥, 고철, 다 쓴 종이의 가격이 적혀 있었다. 겨울철이 되어 땔감으로 쓸 수 있게 되었으니 톱밥의 가격이 아주 약간 높아 보일 뿐, 나머지는 대체로 쓰레기에 어울릴 만한 값이었다. 고철을 녹여 망치를 만드는 업자나, 글자가 가득 적힌 종이를 사서 종이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싼 값에 깊은 밤에도 사러 올 만해 보였다.

 “이건 왜 값이 이렇게 비싼 겁니까?”

 그러다가 나는 그 가격 중에서 폐기하는 술 값이 특히 높은 것을 찾아냈다. 직원이 대답했다.

 “비싼 값을 주고라도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값이 높아지는 거죠.”

 직원은 정해진 대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버리는 술의 가격은 과하게 높았다. 그 액수는 버리는 쓰레기의 값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장에 나와 팔리는 제대로 된 술의 값 보다도 더 높았다. 상등품 술의 값 보다 쓰레기 술이 더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누군가 웃돈을 주고 쓰레기를 사 가고 있었다.

 나는 직원이 기록하고 있던 장부도 잠깐 훔쳐 보았다. 역시 술값을 받은 것에 대해서만 따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내 생각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답을 맞혔다고 기뻐하지는 못했다. 아직 다른 문제까지 풀어야만 끝나는 시험이었다.

 다시 수험자를 만나는 방으로 돌아 가 보니, 나를 기다리던 직원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그 순간에 잘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이제 다시 시험을 계속 하시죠?”

 직원이 말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적산 불하에 대해서 간단하게라도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오늘 시험을 치르는 목적은 그것 때문인 것 같으니 알아야겠습니다.”

 직원이 대답했다.

 “저희에게 물어보실 일은 없어요. 다음 수험자, 그 다음 수험자를 차례대로 보고 평가만 해 주시면 돼요. 그게 끝이에요.”

 나는 직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보기 싫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날 때 마다 그 앞에 디밀어 주고 싶은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얼굴 앞에서라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할 때라고 생각 했다.

 “이게 뭘 위해서 하는 일인지 저는 알려 주시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당신네 회사는 일본 사람이 남기고 간 공장 하나를 또 따내기 위해서 공무원 하나를 구슬리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직접 뇌물을 현금으로 건네 주다가 한 번 들통난 적이 있으니까 다른 방법을 써서 뇌물을 주는 방법을 궁리했을 겁니다.”

 직원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공무원의 자식 하나를 당신네 직원으로 뽑은 다음에 그 자식을 높은 자리에 앉혀 놓고 월급을 터무니 없이 높게 주는 방법으로 공무원에게 간접적으로 뇌물을 건넨다는 방법을 생각해 냈을 겁니다. 혹시라도 덜미에 잡히지 않기 위해, 회사 바깥 사람에게 부탁해서 객관적으로 입사 시험을 치렀다는 기록을 남기려고 해낸 것 아닙니까? 그래 놓고, 주정뱅이에 걸인들 사이에 그 공무원의 자식을 섞어서 시험을 보게 하면, 누가 와서 시험을 주관하게 하더라도 분명히 그 공무원 자식이 1등 점수를 받을 겁니다.”

 그러자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그렇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죠? 수고비를 받고 해달라는 일을 해 주면 그만 아닌가요?”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상관은 없습니다. 당신네들이 뇌물을 주는 공무원이 얼떨결에 면장이 된 날건달이건 아니면 프란체스카 여사건 내가 알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만일 내가 심심해서라도 이 사실을 바깥에 말하고 다닌다면 좋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도 상관 없는 일이죠. 우리 회사가 무슨 불법을 저지른 거는 아니잖아요. 처벌 받을 사람도 아무도 없고 손해 볼 일도 아무 것도 없을걸요.”

 상관 없다는 그 말과 달리 직원은 내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야당 의원나 신문기자나 떠드는 입이 많은 곳에 그 이야기가 들어 가면 귀찮아 지기는 할 겁니다. 그리고 회사야 결국 별 손해가 없겠지만, 몇 푼 값어치도 없는 탐정 하나 쓰는 일을 하다가 그런 시끄러운 일을 일으켰다고 하면, 선생님이 좋은 경력으로 평가 받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 일을 굳이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다른 일 때문에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내가 궁금한 일이 분명히 적산 불하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산 불하에 대해서 내 주변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당신들입니다. 나는 내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로 당신네 회사를 돕는 만큼, 당신네 회사에서도 나를 도와 주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 갔다. 그리고 종이 뭉치 하나를 서랍에서 꺼냈다. 내 앞에 돌아 온 직원은 그것을 나를 향해 던져 주었다.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무슨. 탐정이랍시고 돈 받고 얻어 맞는 일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 직원들 한테 다 돌린 서류니까 당신이 봐도 안 될 것 없을 것 같아서 이건 보여 드리는 거에요.”

 직원은 그리고 바로 방에서 나갔다. 온 힘을 다해 나를 모독하고 싶어 보였다. 하지만, 그 직원이 떠난 자리에는 이번에도 좋은 향기는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직원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 수험자에게 들어 오라고 말했다. 분명히 몇 번 씻고 온 것일 텐데도 아직도 온 몸에서 먼지가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남자였다.

 “좋아하는 음식을 모두 다 말해 보십시오. 길고 자세하게 말할 수록 좋습니다.”

 내가 말하자, 수험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찹쌀떡이 맛이 있고 좋습니다. 겨울에는. 그리고, 엿도 좋아 합니다. 호박엿도 좋아 하고, 가래엿도 좋아 합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좋아합니다. 여름에는 엿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찹쌀떡은 가루를 많이 묻히지 않은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안에 든 것이 달콤할 수록 좋아 합니다. 그리고….”

 수험자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음악 삼아 그 대답을 들으면서, 직원이 건네 준 서류를 읽어 보았다. 12월 19일 국회에서 적산 불하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 그때부터는 법과 제도에 따라 일본인 소유였던 땅과 공장들이 체계적으로 처분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전에 더욱더 밀접하게 관련 공무원들과 친분을 쌓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문서는 시작 되었다.

5.

깊은 밤 시간이었다. 하지만 태평호텔의 사장은 당장 들을 수 있다면 보고를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인적 드문 거리를 지나는 차를 겨우 구해서 태평호텔로 갔다. 한강에는 밤 낚시를 하느라 불을 켜고 다니는 고깃배들이 추락한 별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호텔로 올라 가는 언덕길 입구에 도착하니, 멀리 호텔이 벌써 눈에 뜨였다. 전기가 부족한 서울 시내는 온통 캄캄했기 때문에, 혼자 전등을 환히 밝히고 파티를 하고 있는 호텔은 마치 허공을 떠다니는 성처럼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고요한 밤에 자동차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올라 가는 동안, 마치 자동차가 날아서 구름 위의 건물로 올라 가는 듯 했다. 구름에 가까워질 수록, 춤을 추는 남녀들이 웃는 소리와 구슬프게 우는 것 같은 트럼펫 소리가 뒤섞여 들려 와서, 차를 붙잡아 끌어 올리는 것 같았다.

 호텔에 도착하자 나를 맞이한 직원은 우선 나를 볼 룸으로 안내했다. 호텔 안의 전기를 모두 끌어 모아서 환하게 밝혀 두고 있었다. 인형놀이처럼 예쁜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가득 모여 그 밝은 불빛 속에서 즐거워 하고 있었다. 어느 여학교를 다니고 있을 듯 보이는 학생이 그 중에서도 쳐다 보기 어려울 만큼 현란한 옷을 입고 탁자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그 주위를 근사한 남자 예닐곱 모여 들어 그 학생을 기쁘게 하기 위해 서로 겨루고 있었다. 그 중에는 오늘 저녁에 있었던 공장의 주인이나, 내가 면접을 봤던 듬직한 청년이 끼어 있을 것처럼도 보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사장님께서는 방으로 올라 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침에 나를 안내해 주었던 직원이 내 앞으로 찾아 왔다. 그는 전등 빛 아래에서 더 잘 생겨 보였다. 그는 그 곳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중절모와 코트 차림의 나를 다른 사람들로 부터 숨겨 주듯이 하면서 내가 문을 빠져 나가게 도와 주었다.

 전기를 내려 보내 준 그녀의 방은 어두웠다. 희미한 번진 빛에 보이는 가구들은 여전히 호사스러워 보였지만 아침에 봤을 때와는 달라 보였다. 멸망을 맞이한 후에 찾아 간 대한제국 황후의 궁전 같아 보였다. 그녀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 가자, 직원은 나만 남겨 두고 방에서 떠나갔다.

 그녀는 가장 아늑한 곳에 자리한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눈동자와 입술은 어두운 속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술이 많이 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더 피곤해 보일 정도의 취기는 돌아 보였다. 향긋한 술냄새가 내가 서 있는 곳까지 풍겨 왔다.

 “오늘까지 조사한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녀는 나를 보는 대신에 벽에 걸린 사진을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무덤에서 남편 시체를 파내 와야 하나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남편께서 돌아가신 이유는 어제 아침에 처음 이야기를 듣고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경찰 사람들 중에서도 한 명은 그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럼, 내 남편이 왜 죽었어요?”

 나는 그녀가 보고 있는 쪽을 바라 보았다. 남편이 그녀와 같이 찍은 사진은 방 안이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옆에 서서 행복에 빠져 있는 남자의 그 희고 둥근 얼굴은 다시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무리 신나게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루 정도는 술에 취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남편께서 술을 많이 드셨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께서 병을 통째로 들고 술을 드셨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이상한 이야기였습니다. 부인이나, 돌아가신 남편 분께서는 아무리 목이 마르더라도 누가 깨끗이 씻은 잔에 물을 따라서 조각보를 올려 놓은 탁자 위에 대령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을 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봉투에서 꺼냈다. 오늘 일을 간단히 정리한 보고서였다.

 “그래서 저는 남편께서 일부러 마신 술의 종류와 상표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모양으로 술을 드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남편께서는 보험 사기를 저지르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녀가 물었다.

 “고의로 술을 많이 마시고 죽는다면 자살로 처리될 텐데요. 그러면 생명 보험을 들었더라도 보험금을 못 받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래서, 남편께서는 굳이 대동산업에서 쓰레기로 버리는 소주를 구해서 마신 것입니다. 대동산업에서 잘못 만들어 유통된 소주가 손에 들어 왔고 그걸 마시는 바람에 죽었다면 사고로 인정될 것이고, 그러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화를 내는 말투로 말하려고 한 것 같았지만, 술 취한 것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직접 생각해내신 것은 아닐 겁니다. 아마 여기 저기서 협잡꾼과 뇌물꾼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그런 수가 있다고 전해 들으셨을 겁니다.”

 그녀는 남편과 협잡꾼이라는 말을 잇지 못해 놀라고 있었다. 다음 말도 잘 알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천천히 말했다.

 “저는 대동산업에서 못 쓰는 유독성 물질이 섞인 소주가 나왔다고 했을 때, 그 술을 모두 버려야 하니까 대동산업이 큰 손해를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조사해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수로 마시면 죽는 술이 된 그 소주를 비싼 값에 사려는 사람은 서울에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걸 마시고 죽으면 보험 사기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겁니다. 오히려 대동산업은 마시면 죽는 쓰레기 술을 더 비싸게 팔 수 있었습니다. 해방되면서 일본 사람들이 갑자기 다 나가는 바람에 보험 회사에서 일 잘 아는 사람이 없어 졌고, 그래서 보험 사기를 치기 쉽게 되었다고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 값은 너무 싸고 현금은 너무 부족한 도시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아니라고, 내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왜 보험 사기. 그런 걸 걔가 왜 했겠어요? 갑자기 그렇게 따로 돈이 필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나는 들고 있던 보고서의 다른 장을 넘겼다.

 “제가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산 불하 제도를 살펴 보다가, 그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서류에 적혀 있는 날짜들을 다시 한 번 확인 했다.

 “해방이 된 후에, 일본 사람들의 재산은 모두 정부에 몰수 되었습니다. 이 호텔은 과거에 일본인 재산이기는 했지만, 일본인으로부터 이 호텔을 사들인 남편께서는 한국인이셨으니 이 호텔이 정부에 몰수될 리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서류에 적혀 있던 날짜를 읽었다.

 “그런데, 그러니까 작년에 새로 들어선 대한민국 정부에서 표기하는대로 해서, 단기(檀紀) 4278년 8월 15일에 남편께서는 이 호텔을 일본인으로부터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서기로 1945년 8월 15일에 남편께서는 전재산을 판 돈을 이 호텔과 맞바꾸신 것입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제국이 패망한 날입니다. 그 날 모든 일본인 재산은 정부에 몰수된 것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께서 이 호텔을 일본 사람에게 사들일 때 이미 이 호텔은 정부에 몰수되어 있었고, 일본인에게 돈을 주고 호텔을 산 것은 무효가 된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움직였다. 헤드라이트를 킨 자동차가 멀리서 지나가는 바람에 그녀의 허연 얼굴과 빨간 입술이 갑자기 환하게 나타났다가 깜깜한 속으로 없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엉뚱한 날짜에 계약을 하는 바람에 전재산을 날린 남편께서는 그 동안 어떻게든 호텔을 지키려고 잡다한 거간꾼들을 만나 돈을 건네 주면서 버티려고 했을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남편과 부인께서 호텔 주인으로 행세 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는 19일에 국회에서 적산 불하 법률이 통과 되면, 더 이상은 그렇게 얼렁뚱땅 호텔에 머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녀는 물었다.

 “얼마짜리 때문에 걔가 죽은 거에요?”

 “남편분과 부인께는 죄송스럽지만, 보험금을 받으실 수는 없습니다. 술을 파는 대동산업에서 보험회사와 친분관계가 있기 때문에, 버리는 술을 일부러 사간 사람의 명단을 보험회사로 보내 주고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이 다 빠져 나가는 바람에 보험회사에 얼뜨기만 남아 있다는 것은 헛소문입니다. 보험회사에서는 명단을 확인해서 일부러 마시면 죽는 술을 사가는 사람이 청구하는 보험금은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걔는 그 동안 맨날 기분 좋고 신나는 일만 있는 줄 아는 것 같았는데.”

 나에게 묻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남자의 사진을 보았다.

 “남편께서 행복했던 것은 부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나는 나에게 오늘 기분 좋고 신나는 일이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수험자를 평가할 때, 여섯번째로 나온 멀쩡한 청년에게 ‘중’을 주고, 다섯 번째로 나와서 울고 있던 젊은 여자에게 ‘상’을 주었던 것을 돌이켜 보았다. 그렇지만 별로 기쁜 일은 아니었다. 내가 평가한 것은 찢어 버리고 새 사람을 불러서 다시 시험을 치르게 하면 그만이었다. 거기 양반들은 자기네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신 점수를 매겨줄 한량들은 얼마든지 더 불러들일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남편께서는 부인께서 행복하게 지내시려면 얼마쯤의 재산이 필요한 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남편께서 돌아 가시면, 부인께서 한동안 기분 나빠 하시며 탐정이든 뭐든 고용해서 죽은 것을 조사하려고 하실 것도 예상하셨습니다. 남편께서는 아마 그렇게만 하면, 잘못 만든 술을 마시고 사고로 죽어서 보험금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남편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둡기 때문인지 사진 속의 행복한 남자는 잠깐 살아 움직이며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그런 거지? 왜 이런 거야.”

 그녀는 누구에게 하는 지 모를 말을 했다.

 “아마 남편께서는 부인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셨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셨던 것 아닌가 합니다.”

 나는 보고서가 든 봉투를 내려 놓고 돌아 섰다. 걸어 나오고 있으니, 흐느끼는 음악 소리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 오는 것 같았다.

– 2015년, 역삼동에서
(* 잡지 “미스테리아” 3호에 게재된 소설입니다.)

댓글 4
  • No Profile
    신나라 16.11.01 21:38 댓글

    혹시 "남선 탐정 사무소"의 맞은편에 사무실이 있는 탐정이 "백주 대낮 투명화 사건"의 이듬해에 겪은 일입니까? 통찰력이 '맥주 사나이'의 조부쯤 돼 보이기도 합니다.

  • 신나라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11.01 23:02 댓글

    잘 보셨습니다. 같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이 시리즈의 신작이 이번에 나온 잡지 "미스테리아" 9호에 실려 있습니다. 그 제목은 "수배범이 영화에 나오다" 입니다.

  • No Profile
    百工 16.11.11 23:26 댓글

    잘 보았습니다. 

    해방 후 어지러운 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남편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 百工님께
    No Profile
    곽재식 16.11.12 20:58 댓글

    감사합니다. 꼭 역사나 정치적 사건은 아니더라도 이 시리즈에서는 당시 시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줄만한 배경이나 소재를 많이 살려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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