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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감겨진 눈 아래에

2015.10.31 23:2710.31

“누워서 침뱉기 같아서 이런 말 하기 그런데, 한국 여자애들은 근성이 없어.”

그 말을 들은 것은, 그랑제꼴 준비반의 첫 학기가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기 싫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려 드는 애들이 허다하다니까. 한국에서는 그런 애들을 된장녀라고 부르지.”

“자국 음식을 폄하하다니, 너희 엄마의 김치는 영국요리 레벨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크리스틴이 비꼬며 웃었다. 나는 그 농담이 그다지 우습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유학와서는 자기 나라 여자들의 험담이나 하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크리스틴.”

그는 나를, 거기 모여있는 프랑스 아이들 중 유일한 동북아시아 계이자, 유일하게 부모님이 한국인 출신인 나를 보고 희미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일찌감치 들어앉아 살림이나 하려고 하고, 남자에게 빌붙어 살려고나 하지. 그게 뭐하는 거냐고요. 인생, 다른 남자에게 편하게 얹혀 가겠다는 거 아냐.”

“오, 그건 거기 정책이 문제인 것 같은데.”

“여자가 군대 가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나? 이스라엘도 여자들이 군대 가잖아.”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포 2세라고 해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돌아와서 자진 입대라도 할 텐데. 세실은 왜 자진 입대를 하지 않아? 그 전에, 한국말을 할 줄 알긴 하는 거야?”

“내가 한국말을 하든 말든 그건 네 알 바가 아닌데?”

나는 불쾌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대꾸했다. 

“그리고 난,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서 여기의 교육을 받고 여기의 복지정책을 누리며 살았어. 내 국적도 내가 애국심을 느낄 대상도 프랑스지, 한국이 아냐.”

“아, 어련하시겠어.”

그 한국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원래 단물만 빨아먹는 게 한국 여자들 특징이잖아. 너도 다르지 않겠지.”

모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 날은, 리세에서의 친구였던 비르지니가 도서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을 나와 크리스틴에게 소개해 주겠다고 한 날이었다. 그 남자는 비르지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비르지니의 친구 중에 그랑제꼴 준비반에 있는 한국인 2세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만나보고 싶다고 조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일로, 비르지니는 그 남자에게 단단히 실망했다. 그녀는 그 남자와 더는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나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데이트를 거절했다고, 비르지니에게 말도 안 되는 욕설을 퍼붓고 갔다는 것을 보면. 

그런 황당한 일을 겪고도 비르지니는 내게 그런 매너없는 자식을 소개하려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나는, 내 부모님이 한국 출신일 뿐 나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데도, 그 남자애 때문에 비르지니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그 남자애, 진짜 앞뒤가 안 맞더라고.”

“응, 뭐가?”

“군대 안 가려고 결혼한다고 한국여자들 욕을 그렇게 했잖아. 심지어는 상관없는 너까지 싸잡아서.”

“그랬지. 왜.”

“걔네 여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부터 했대.”

헛웃음이 나왔다. 
 
 
 
 
 
 
 
2015년, 한국은 점점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었다. 

불행히도 여당이 내놓는 그 정책들 중 제정신인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여자아이는 초경을 시작하면 국가에 등록할 것, 여자애들이 공부를 많이 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공부를 덜 시키도록 노력할 것, 이민가기도 어렵도록 학제를 괴상하게 바꿀 것. 19세기의 인간들은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피가 머리에 몰려서 아기를 낳기 힘들어진다는 헛소리를 했다는데, 21세기의 한국 정치가들은 19세기 인간들만도 못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헛소리들이, 노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노인들 중 상당수는 여당이 하는 말이라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는 순진한 촌로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노인들도 자신들의 노후 연금을 대 줄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빠른 발전을 이루었던 나라였다. 왕조시대의 마지막에 태어나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었고, 젊은이는 노인을 공경해야 하며 특히 며느리는 시집간 집안의 사람이 되어 시댁의 가족들 중 가장 미천한 사람이 되어 그 가족을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그 노인들은, 공부를 많이 한 젊은 여자들이 예전처럼 납작 엎드려 시댁을 공경하지도 않고, 그런 시집살이를 하기 싫다고 결혼을 거부하기까지 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정책을 지지했다. 여당과 지배층의 큰 기득권에 묻어가며, 그저 자신들의 작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다행히도 나의 부모님은 그 정신나간 정책들이 장차 어떤 식으로 악화될지를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많이 받은 분들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분들은 한국에서 괜찮은 직장을 갖고 계셨지만,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두 분은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확신하셨다. 어머니의 배가 불러오고, 두 분이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는 사이, 정치가들은 더 희한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이 출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해외에 장기간 여행하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정책이었다. 

그 정신나간 정책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그분들은 이민 준비를 포기했다. 그분들은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안락함과 재산들을 포기하고, 임신한 몸으로 한국을 떠났다. 명목상은 태교여행이었지만, 여기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은 망명을 신청했다. 불행히도 부모님이 프랑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은 챠우세스쿠를 되살려 낸 듯한 정신나간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여자는 대학원에 갈 수도, 외국에 유학을 갈 수도 없었다.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면 그 일가는 무서운 벌금을 내야 했다. 여자를 그저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가축으로만 보는 듯한 그 정책들 덕분에, 부모님의 망명은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나는 여기서 태어났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20세기 말에 아버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가, 21세기에 다시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도 또 다른 부시가 대권을 노렸던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도 한 가문에서 무려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그리고 한국의 인구는, 그 가문에서 배출한 세 번째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약 10년 전부터 증가세를 띠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 교육과 출국을 허락하는 대신 병역을 지우게 되면서부터였다. 

“미친 짓이지.”

앰네스티 직원인 마리가 통계를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먼저 권리가 주어지고, 그 다음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자에게 의무가 주어지는 건데.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니, 천부인권이라는 말은 어디다 갖다 버린 거야.”

“흠, 한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찾을 수 있을 걸요? 모든 것을 쓰레기봉투에 분리수거해서 버리는데, 쓰레기 봉투마다 바코드가 달려 있잖아요?”

“그런 짓을 할 시간에 놀고 먹고 잠이라도 푹 자게 좀 두지. 자기들, 야근수당 없이 한 주에 70시간씩 일할 수 있어?”

“미쳤어요?”

“여긴 그래. 무슨 19세기도 아니고. 물론 어느 나라나, 개혁과 개방이 있으면 반드시 보수반동이 뒤따라오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보수반동이 심한 나라도 드물 거야. 마치 아랍권에서 원리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히잡 뒤집어 쓴 것 같잖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외국에 유학하기 위해, 한국 여자들은 20대 초반에 2년간 병역의 의무를 지거나, 아이를 낳아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여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몇몇, 아주 선택받은, 그리고 굉장히 남자의 문법에 익숙한 일부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나온 그녀들도, 히잡을 쉽사리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슬람권의 여자들, 혹은 역사책 속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노처녀 가정교사들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방의 의무와 출산의 의무와 여자로서의 온갖 의무들을 강조했으며, 그런 것에 대해 지적하는 서구세계의 여자들을 타락했다고 비난하기 바빴다. 

그건 굉장히 놀랍고도 쓸쓸한 일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들었다. 분명 21세기 초반의 한국에서는 수많은 여성 스타들이 아시아를 주름잡았고, 많은 여자들이 사회에 진출해 있었다고. 어머니 역시 학교 선생님이었고, 어머니의 친구들도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은, 가사노동은 물론 육아와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까지 모두 여자에게 몰려 있는, 현대와 전근대가 괴상하게 맞물려 있던 사회였다고 하셨지만.

한국의 여자들은 모두, 그 손톱만큼의 현대조차 모두 버리고 수돗물도 안 나오는 전근대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여긴 명예 남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라는 걸까? 세실,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나는 애매하게 대답하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그랑제꼴 준비반에서 죽을 동 살 동 공부만 하다가, 막상 그랑제꼴에 들어온 뒤에 본 것은 기묘한 나태였다. 물론 공부의 양 자체는 눈물겹도록 많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인생이 반짝거리지도, 잘 풀려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우울증이 밀려왔다. 말하자면 번아웃이었다. 죽자사자 공부해서 고급학교에 들어간 수레바퀴 밑의 주인공이 결국 도망치는 것 같은. 

다행히도 나는 죽지도, 학교를 그만두지도 않았다. 대신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앰네스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리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앰네스티에서는 전세계의 병역 문제에 대해 두루 조사하고 있었다. 인권의식이 낮은 국가에서 의무복무가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일은 많았다. 특히 한국에서는 20여년 전 병역 문제로 망명을 신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이래, 꾸준히 1년에 한두 명 씩은 병역문제로 프랑스에 망명해 오곤 했다. 마리는 망명의 근거로 받아들여질 만큼 심각한 각국의 병역문제와 관련된 인권침해 사례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세실을 도와 그 사례들을 파일로 정리해서 항목별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여자들의 진술 자료는...... 하나도 없네요?”

그동안 병역 문제로 프랑스에 망명해 온 젊은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병역을 마치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면 여자는 나라 밖으로 나올 수 조차 없었으니까. 

사실 확인은 더 해 봐야 할 일이었지만, 한국에는 젊은 남자들에게서 거액의 돈을 받고 유럽 여러 나라로 망명하는 일을 서류 작업부터 돕는 브로커도 암암리에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도망쳐야 할 만큼 군 복무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어떨까. 

“한국의 모든 성인 남녀는 20대 초반, 2년간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되어 있다면, 이건 엄청난 숫자예요. 그런데 그 절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물론 이상하지.”

원래 가부장적이고 여자의 지위가 낮았던 국가에서, 임신과 병역이 한 카테고리로 묶인 상황에서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에 대해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자료가 전혀 없었다. 마리는 혼란스러워하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세실, 그렇게 치면 애초에 저 규모의 군대를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어. 그동안에야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몇 년 전에 통일도 되었는데 군대의 규모를 줄이기는커녕 더 늘리고만 있지.”

“중국 때문일까요?”

나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36년동안 식민지 시대를 겪기도 했던 한국의 역사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뭐,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렇겠지?”

마리가 쓴웃음을 짓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천 개의 위성이 날아다니고, 지구 반대편의 군사 동향을 거의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대륙과 연결된 북쪽 국경을 따라, 위성궤도에서도 선명히 보일 만한 거대한 장벽을 세워 놓았다. 나머지 삼면은 바다였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한국은 통일되기 전에는 중간에 북한이 있어서 대륙과 철도로 이어지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는 섬이나 다름없는 면을 보일 때도 많았다고 하셨는데. 통일이 되고 나서도 그 나라는 스스로 섬으로 남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마치 그 섬 안에, 가두어 둘 것이 있다는 듯이. 

“우리도 그 장벽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는 몰라. 인권 조사단을 파견해 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어. 세실, 그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가장의 허가 없이는 엑스트라넷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어? 국가에 의해 검열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가장에 의해 검열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공교육 과정에서 자유나 평등이나 인권같은 개념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아뇨, 몰랐어요.”

“그런 나라에서 여자들과 제대로 인터뷰를 하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앰네스티가 뭔지는 고사하고 천부인권이 뭔지부터 설명해아 하니까. 믿어져? 그 나라가 30년 전만 해도 뭐든 검색하고 무슨 일이든 인터넷으로 할 수 있었던 나라였다는 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내게 부모님이 등 돌리고 도망친 나라, 그래서 내게는 묘한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아내는 나라였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었고, 부모님의 가치관에 100% 동의하지 않는 별개의 주체였다. 그러니 한 번쯤은, 부모님이 등진 그 고국에 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대놓고 반대했다. 특히 한국에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다녀왔던 에바는 따로 나와 점심 약속을 잡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굳이 거기 가 볼 필요는 없어. 사실을 말하자면 위험한 곳이거든.”

“외국인이라도 히잡을 쓰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끌려가거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그건 아니지.”

“대체 어떤 곳인데 그렇게 다들 반대만 하시는 거예요. 제게는 제 부모님의 고향이라서, 거기 딱히 애착은 없지만 자기 뿌리랄까. 그런 게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래, 오죽하면 너희 부모님께서 망명을 하셨겠니.”

에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선택은 네 몫이고, 이건 네 인생이지만...... 좋아, 나도 제대로 들여다봤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 관점에서 거긴 나라 전체가 20세기 박물관 같은 데야. 냉전시대 이전, 우리로 치면 68 이전같지. 재미없고, 경직되어 있고, 다들 타인과 국가의 눈치를 보고 말조심을 하고. 아, 흥미로운 일도 있긴 있었어.”

“어떤 일인데요?”

“깜둥이라는 말을 들었거든.”

에바가 빙긋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을 보며, 나는 조금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아직 수습 직원이었던 장 뱅상과 함께 한국에 도착했는데, 공항에서부터 깜둥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 모두가 내가 아니라 장 뱅상을 존중했고, 나는 거기 딸려 온 비서나 식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세상에.”

“그게 2033년에 겪은 일이라면 믿겠니, 세실?”

듣기만 해도 참담하고 참혹하고 비참했다. 나의 부모님이 왜 그 땅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다고, 그래서 국가와 연장자의 말에 따르는 것이고, 계급 같은 것은 없다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들은 철저히 계급주의적이지. 그리고 피부색의 명도 역시도 계급을 나누는 잣대 중 하나고. 인종차별도 심하지만 여성차별도 심각하고.”

“고마워요, 에바. 역시 가 봐야 겠어요.”

“괜찮겠니?”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의 고향이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미련이랄까, 사춘기 때 막연한 환상 같은 게 있었거든요. 만약에 여기서 내가 성공하지 못하고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뭐 그런 생각요.”

“음, 그런 생각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지.”

“가서 제 눈으로 보고, 미련을 싹 떨치고 오는 게 낫겠어요.”

“그래, 알았어.”

에바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게 좋은 경험이 되길 빌어, 세실.”

“감사합니다.”

“출발이 언제지?”

“이달 30일요.”

“얼마나 머무를 거지?”

“3주.”

“좋아, 그럼 먼저 거길 다녀온 경험자로서 제안할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네가 묵을 숙소의 연락처를 내게 남겨놓고 가면 어떨까.”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가서 지내는 동안 마리나 에바에게 메시지 자주 보낼게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그래, 그러면 좋겠다. 부모님께는 말씀 안 드렸지?”

“그냥 여행 가는 것 뿐인걸요.”

“그래, 알았어.”

나는 에바에게 내가 묵을 곳의 연락처와 내 여행 계획을 전송했다. 에바는 바로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 

그후 몇 번이나 나는, 그날의 점심식사를 떠올렸다. 

그때 에바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랬다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앰네스티의 조사단이 한국에 들어가 몇 개월동안 애써보았지만, 한국인 여자들은 자신들의 병역 경험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아니, 낯선 외국인을 보면 일단 도망치기부터 했다고 들었다. 남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여자들의 고통에 대해 조사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여자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줄 몰랐고, 군 생활 이야기를 할 때 여자들 이야기는 쏙 빼놓곤 했다. 마치 군대라는 조직이 남자만으로 이루어 진 것처럼. 

사회적 위상이 낮고, 자기 자신을 위해 주장할 힘을 빼앗겼으며, 신체적으로도 약자인 이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한 나라 전체가 공모하듯 입을 다무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비르지니에게 치근거리던 한국인 유학생에게라도 좀 더 물어볼 것을 그랬다. 

그런 놈이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줄 것 같진 않았지만. 

그 한국인 유학생이 나오는 기분나쁜 꿈을 꾸며 나는 한국행 에어프랑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비행기는 두 시간 45분만에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고, 제 11차 헌법개정에 따른 긴급조치 13호의 지엄함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밟자마자, 나는 공항경찰대에 붙잡혔다. 
 
 
 
 
 
 

공항경찰대는 나를 헌병들에게 인계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나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나는 구형 산부인과 진찰용 의자가 놓여 있는 작은 진찰실 같은 곳으로 끌려갔다. 나는 군인들에게 붙잡혀 강제로 키와 체중과 가슴둘레와 엉덩이 둘레를 재야 했다. 마치 가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의했지만, 그들은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영어로 말해도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것 같았다. 

한국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어로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제 발로 걸어들어와 주면 고맙지.”

군인들이 강제로 내 옷을 벗겼다. 나는 강간당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나를 구형 산부인과 진찰용 의자에 앉혔다. 나는 발버둥을 쳤다. 발목이 남자들의 억센 손아귀에 짓눌렸다. 아까 서류를 확인하던, 군의관인 듯 한 남자가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젖꼭지의 색깔을 확인하더니 마지막으로 내 국부를 들여다보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3급.”

“오, 좀 놀았나본데?”

군인들이 낄낄거렸다. 수치스러웠다. 누구라도 낯선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강제로 알몸이 된 채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는 그대로 얇은 가운 한 장만 입혀진 채, 끌려갔다. 내 여권과 내 짐은 돌려받지 못했다. 나는 그나마 내 말을 알아들을 성 싶은 군의관에게 내 여권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군의관은 딱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그의 군복 깃처럼 딱딱하고 어색한 영어로 대꾸했다. 

“When you complete your military service.”

밀리터리 서비스라니.

기막힌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좁은 취조실 같은 곳에서 겨우, 바벨 인터프린터 헤드셋을 쓴 병무청 공무원과 마주앉게 되었다. 그는 안됐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세실 강 씨 맞죠? 당신 아버지 성함은 강영호, 어머니 성함은 김지현. 검진 결과 현역병으로 입영하게 되었어요. 평균적으로 입대하는 나이 보다는 조금 늦었네요. 힘들텐데.”

“검진이라니, 아까 내가 당했던 그 성폭력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성폭력이라뇨.”

“설명도 없이 끌고가서 신체 사이즈를 재고, 옷을 벗기고, 성적인 부위를 만지고 손가락을 넣었으니 당연히 성폭력이죠.”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예요. 한국말은 할 줄 아나요?”

“난 프랑스인이고, 한국에는 관광하러 온 것 뿐이에요. 지금 당신들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대사관에 연락해 주세요.”

“그럴 수 없어요.”

“그럴 수 없다니?”

“그리고 오해 같은 것도 없어요. 여기 한국에서는 아버지가 한국인이면 자식도 당연히 한국인이니, 당신 역시 한국인이고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하죠.”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지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니, 우리 부모님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고요.”

“망명자였죠. 맞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망명자의 자녀들이 가끔, 당신처럼, 한국에 관광하러 오더라고요.”

“지금 그걸 알면서도......”

“제발로 돌아왔는데, 붙잡아 군대에 보내지 못할 이유는 뭐가 있나요.”

“이건 인권 문제예요.”

“똑똑한 아가씨군요. 여기서는 여자가 똑똑하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난 국제 앰네스티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일이 바깥 세상에 알려지면......”

“세실, 내 말 잘 들어요. 아마 나는 당신이 한국 땅에서 만날 수 있는, 당신에게 가장 호의적인 한국 사람일 거라는 데 내 지갑에 든 돈 전부를 걸 수도 있는데, 당신이 앰네스티에서 일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요. 그랬다간 영영 이 나라 밖으로 못 나가는 경우도 생길 테니까.”

“지금 그게 무슨......”

“당신은 병역을 완료하기 전 까지는 국경 밖으로 한 발도 못 나가요. 여기서 완료라는 것은, 2년 안에 한국 국적의 아이를 임신해서 그 아이를 낳거나, 그게 아니면 복무 기간을 100% 채우는 것 뿐이죠. 의병 제대나 의가사 제대나 불명예 제대를 할 경우, 당신은 병역을 완료한 게 아니고, 엑스트라넷도 사용할 수 없으며, 나라 밖으로 절대 못 나갈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모든 일을 국제사회에 보고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한 여자라는 게 알려지면, 당신은 불명예 제대를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기율대에 끌려가 영영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명색이 문명국가에서......”

“하나 더, 당신 부모님은 망명자였죠.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거니와, 들어오더라도 체포될 겁니다.”

“대체 무슨 죄로요!”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해당해요. 인적자원을 밖으로 빼돌렸으니까.”

인적자원이라는 말이 송곳처럼 날아와 목울대에 박히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잃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 부모님이 한국까지 날아오시진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뭐,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에는 우리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습니다.”

병무청 공무원은 쓸쓸한 표정으로 일어나며 말했다. 

“특히 당신 부모님처럼, 자식을 위해 외국으로 망명까지 하신 분이라면. 자식이 살아서 무사히 돌아오는 쪽을 원하실 테니까요.”

머릿속에, 통계 자료에서 보았던 데이터가 떠올랐다. 그 말도 안 되게 높았던, 군내 의문사 비율에 대한 부분이. 

그는 헤드셋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고, 나를 두고, 나갔다. 묵직한 철문이 밖에서 잠겼다. 나는 기가 막혀서 웃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국말을 못 한다고? 이거 못 써먹겠구만.”

“학교는 어디 나왔대? 유명한 데면 또 시끄러워 질 수가 있어서 말이야.”

“무슨 폴리테크닉이라고 써있던데?”

“아, 폴리텍 대학. 그게 외국에도 분교가 있었나?”

사흘 뒤, 나는 낡은 승합차 뒷좌석에 짐짝처럼 실린 채, 끌려갔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한국인, 혹은 피부색이 보편적인 한국인보다 어두운 외국인이란, 이곳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만만한 존재였다. 작은 헤드셋 하나만 내게 쥐어주면 될 일인데도, 그들은 내게 손짓 발짓으로 오라 가라 명령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영어 단어 한두 마디로 지시했다. 정말 복잡한 이야기를 할 때만 그들은 마치 시혜를 베풀 듯, 바벨 인터프린터가 달린 마이크로 말을 했다. 

내 말을 그들에게 통역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어차피 허락된 대답도 “예”, 하나 뿐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겪게 될 것인지, 이 이상한 나라에서 군대에 간 여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 그들이 나누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지만 딱히 별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있어 나 같은 사람은 워낙 흔한 것이라, 별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신고식’은?”

“외국 살다 온 년들이 그게 있겠냐.”

“음, 그럼 생략하겠구만. 쯧.”

대신 병무청 사무실의 복도에 붙은 포스터들이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내가 그 포스터를 읽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모든 여자는 20대 초반, 2년간 병역의 의무를 진다. 남자는 이 의무를 30세까지 연기할 수 있지만, 여자는 늦어도 24세까지는 병역을 마쳐야 한다. 만약 만 20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면 이 의무에서 유예되지만, 23세까지는 임신 및 출산을 해야만 면제된다. 

훈련소에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바로 부대로 보내는 것을 보면 말이 좋아 병역이지, 실제로 군사 훈련을 받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왜, 병역의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사무실 구석에 놓인 “애국부인회”의 홍보 팸플릿도 읽었다. 입영한 여자가 임신을 하면, 확인된 시점에서 병영을 떠나 애국부인회의 자상한 손길 하에 태교를 하고, 출산 후 몸조리까지 한 뒤 무사히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내문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병영이라면, 그렇게 쉽사리 임신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마 무슨, 챠우세스쿠의 이상향을 구현해 놓은 것 같은 병영은 아닐 테고. 

속으로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인천에 도착했던 날 당했던 산부인과 검사들이, 그리고 십여 년 전부터 급상승한 한국의 출생률이 떠올랐다. 

그 모든 징조들이 가리키는 것을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도 전에, 승합차는 내가 군생활을 하게 될 함경남도 북청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이곳은, 거대한 개발도상국형 산업도시였다. 사자 탈을 쓰고 춤을 추는 탈놀이가 유명했던 곳이라고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런 곳에 군부대가 왜 필요한지도. 

에바는 내 걱정을 할까. 연락도 하지 못했고, 예약한 숙소에도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쯤은 알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나를 구해 줄 방법도 있을까. 생각하는데, 뚱뚱한 중대장이 들어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 이제라도 병역을 마치기 위해 고국에 돌아왔다니 환영한다.”

중대장은 통역기를 거쳐서도 투박하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거친 억양으로 귀찮은 듯 인사를 하고,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 잠시 후, 2 소대장이 나를 데리고 소대로 향했다. 그는 내게 담배를 권했다가,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같은 내무반에 김재경이라는 여자가 있어.”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그 여자는 사상범이고, 원칙대로 말하자면 당신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해야겠지만.”

“제게 도움을 줄 거라는 뜻인가요.”

“어차피 당신은 제대할 때 까지 여기서 못 나가고, 김재경은 서른이 한참 넘을 때 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할 거야. 여긴 3등급들이 오는 데니까.”

“3등급?”

“집안 환경이 무척 안좋거나 학벌이 안좋거나 처녀가 아니거나 나이가 많거나...... 그게 아니면 국가를 전복할 만큼 위험하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소위 아는 척 하는 여자거나.”

“즉 여기선 똑똑한 여자는 3등급이 되는 거군요.”

“그래. 당신이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해 알고 있나?”

“군사훈련도 없이 배치를 받았는데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이 영어로 묻더라도, 말은 아끼는 게 좋아. 내가 자네에게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그저, 자네가 여기서 2년동안 미치지 않고 무사히 복무를 하거나, 그게 아니면 하루빨리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뿐이야.”

“잠깐, 학벌이 좋으면 등급이 올라가나요?”

“자네 학벌은 C등급, 산업기술학교 레벨로 되어 있는데.”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설령 착오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 그런 것을 논하는 건 자네에게 유리하지 않아. 그리고 자네는 학벌이 아무리 좋아도 3등급이야. 과체중인데다, 결정적으로 처녀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거대한 매음굴이었다. 
 
 
 
 
 
 
 
 
첫날, 나는 그 매음굴에서 세 명의 손님에게 차례로 강간을 당했다. 그중 두 명은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애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콘돔도 쓰지 않고 사정하려 하는 것에 경악했고,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달려온 헌병에게 두들겨 맞고, 묶였다. 동거했던 남자친구와도 콘돔 없이는 섹스하지 않았는데! 체구는 작지만 거칠고 뻣뻣하며 좀비처럼 무표정한 얼굴의 낯선 남자들은 전희도 무엇도 없이 손발이 묶인 내 몸 위에 올라가 대충 집어넣고 잠시 헉헉거리다 사정했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 그저 욕구 해소를 위한 구멍 한 개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반쯤 열린 문 너머로, 나를 강간한 남자가 갈매기같은 계급장을 단 남자에게 화대를 지불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돈은, 이곳의 여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아닌 것 같았다. 이따위 것이 병역의 의무라면, 설마 국고에 들어가는 걸까? 이건 무시무시한 착취이자 횡령이었다. 세상에, 내가 미치지 않고 여길 나갈 수만 있다면!

여기 끌려 온 여자들은 미치지 않기 위해 몰래 술을 마셨다. 순순히 이 일을 해내지 못하는 여자들에게는 약물이 투여되기도 했다. 혹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상황에 순응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운이 좋으면 단골을 잡아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21세기도 중반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처녀성에 대한 유구한 신화가 살아있는 이 나라에서, 징병검사 때 까지 처녀성을 지키지 못한 여자에 대한 취급은 가혹했다. 물론 그 기준은 오직, 처녀막의 유무에 달렸다고 했다. 웃기지도 않아서는. 수백년 전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앵무새 피를 팔뚝에 뚝뚝 떨어뜨리지 그랬나. 

3급으로 병역을 마친 여자들은 제대를 한들 결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병적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이라, 3급 출신은 온전한 직업을 갖기도 어려웠다. 아니, 한국에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씨가 말랐으니, 결혼 외의 진로라는 것이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결국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뚝을 박는, 소위 공창에 들어와 몸을 파는 것 뿐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주 드물게, 이곳에서 단골과 결혼하는 운 좋은 여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여자들이 병역을 피해 결혼을 하는 거구나.”

나는 그 처녀성에 대한 집착에 대해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물론 남자였지. 병역을 피해 결혼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그래, 그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갈 정도의 배경이 있는 남자라면, 물론 자기 누나나 여동생은 병역을 피해 일찌감치 결혼을 했을 것이고, 자기도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는 갓 고등학교 졸업한, 열 아홉 살 짜리 처녀와 결혼하려고 하겠지. 안 봐도 뻔한 일이야.”

재경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만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불완전하나마 간단한 프랑스어 인사가 가능한 유일한 여자였다. 

“그렇게 처녀에 환장을 했으면서, 여자들을 징집해다가 공창에 집어넣는단 말야?”

“아, 모든 여자가 이런 데 끌려 오는 건 아냐. 여긴 너나 나 같은 3급들이 들어오는 데지.”

“그럼 다른 여자들은?”

“학벌 좋은 중산층 이상 여자애들은 선별한 우수한 정자로 수정하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 질 쪽의 순결은 언젠가 결혼할 남편을 위해 남겨둔다는 의미랄까.”

“어떤 놈이 만든 규칙인지 몰라도 그 놈이 변태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네.”

“한국의 정치가들은 대체로 변태들이지. 여튼 정자도 난자도 품질들이 좋다보니 애들이 똑똑해. 그래서 이 애들은 제대 후 자기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경우가 많아. 어지간한 조건과 학벌인 여자애들은 ‘신고식’을 통해 자기 짝을 지정받아. 여자에게는 선택권은 없지만, 수가 적다 보니 거부권은 있지. 하지만 그 거부권도 실질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어. 얘들은 군복무하는 남자애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고, 복무 중에 임신을 하면 결혼할 권리가 생겨.”

“임신을 못 하면?”

“1년 동안 임신이 안 된 여자는 버려도 돼. 적어도 여기선.”

재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언니도 그런 여자였지. 그렇게 버림받은 여자들은 3급과 별다를 게 없는 취급을 받아. 다른 남자의 선택을 받는다면 모를까...... 선택을 받더라도, 좋은 취급은 못 받지.”

“너무하네.”

“언니는 결국 죽었어. 자살을 했어. 여자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처녀가 아니라도 결혼할 수 있다면, 언니는 그렇게 죽었을까?”

재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내 부모님은 내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나는, 반쯤은 객기를 부리듯 여기 왔고,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매음굴이나 다름 없는 이곳에 갇혀 도망치지 못한 채,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칼로리가 제한된 식사를 한다. 체중관리에 실패하면 혹독한 벌을 받는다. 매일 오전에는 대통령과 집권당의 사상이 담긴 영상물을 시청하고, 오후에는 오전에 본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는, 프로파간다 용 로맨스 드라마를 시청한다. 저녁을 먹기 전, 혈액검사를 하고 호르몬제를 맞는다. 임신을 돕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저녁 여섯 시 부터 새벽 두 시까지, 평균 대여섯 명의 남자, 우리의 경우에는 여기 북청공단의 노동자들과 강제로 섹스를 해야 한다. 이건 몸을 판다고 말하기도, 강간을 당한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결혼이 거의 불가능한 이 지역 노동자들의 성욕을 해소하고, 동시에 아이를 낳아 인구를 재생산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국가의 가축이었다. 아니, 여기를 찾아오는 그 남자들 역시도 국가의 가축이었을 것이다. 

재경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절망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났을 무렵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여자는 대학원에 갈 수도, 외국에 유학을 갈 수도 없게 되어버렸지.”

“응.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임신했을 때 도망쳤고.”

“현명하셨네.”

재경은 내 옆에 누워 소근거렸다. 내무반에는 다른 여자들도 많았고, 그들 대부분은 내게 동정적이었지만, 몇몇은 적개심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 대부분과 무난하게 지냈고, 재경과는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재경은 스물 아홉 살이었다. 그녀는 서른 다섯 살까지 여기 갇혀있어야 한다고 했다. 징집을 피해 도망치고, 숨어서 페미니즘에 대한 전단을 만들다가 붙잡힌 죄였다. 남자였다면 감옥에 들어갔겠지만, 여자인 재경에게는 아직 쓸모가 있으니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기도 안 찰 이야기였다. 그 기회라는 것이, 장장 10년동안 병영을 빙자한 매음굴에 갇혀 온갖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이라니. 

“내가 열 살쯤 되었을 때, 정말로 학제가 변경되었어. 그리고 열 살이 넘은 여자애들은 초경 여부를 국가에 등록하고 관리해야 했지. 그거 아니? 그걸 두고 국가에서 여자애들의 건강을 신경 써 주는 거라고 언론에서 거의 세뇌하듯이 떠들어 댄 것을. 사실은, 그냥 걸어다니는 자궁으로 취급한 건데 말이야. 공창제가 생겼고, 성노동자들이 계약직 공무원 취급을 받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야. 대신 그녀들은, 아이를 낳아야 했지. 아이를 낳으면 성과급을 받았다고 해.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여자들을 이렇게 징집해다가 아이를 낳게 하기 시작했지. 그게 내가 중학교 가던 해의 일이야.”

“재경, 난 어머니께 한국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한때는 여자들이 전세계를 주름잡는 스타가 되기도 하고, 여자 국회의원에 여자 대통령도 있었다면서.”

“그랬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거야. 난 이해할 수가 없어. 난......”

“서둘러 쌓은 것은 빨리 무너지는 법이고......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났거든. 세상은 21세기 하고도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니까. 그들의 취향에 맞는 세상으로 돌아왔고, 아이들에게 그들의 취향에 맞는 것만 가르치려 들지. 세실, 난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너무 수가 적고, 이 제도 또한 기득권에게는 딱히 나쁠 게 없는 일인데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모두 국가에 빼앗겼지. 품에 안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한 번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조차 없었어.”

“아이가 있었어?”

“응.”

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아이인지도 모르지만, 낳았지. 쌍둥이였어. 사실은 안 낳을 방법이 없었어. 임신을 하면 애국부인회에게 잡혀가거든.”

“애국부인회?”

“아주 골 때리는 아줌마들이지. 태교를 한다는데 태교에 악영향만 줄 것 같고, 산후조리를 한다는데 돌아가서 쑴풍쑴풍 애 더 잘 낳으라고 고사를 지내는데, 이건 사람이 아니라 어디 젖소들을 키우는 것 같아서.”

“저런.”

“두 번 다시 거기 끌려가느니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은 보고 싶어. 우리 애들...... 딸 쌍둥이였는데.”

“그 아이들은......”

재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누워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아니, 사실은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울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팔에 내 팔꿈치를 슬쩍 기댄 채, 잠을 청했다. 

문득 나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고 3주가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바나 마리는, 내 걱정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구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부모님께는 연락이 갔을까. 얼마나 속상하실까. 구하러 갈 수도 없는 곳에서, 내가 이런 꼴이 되어버려서. 속에서부터 딸꾹질같은 울음이 올라왔다. 재경은 나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이, 내 손을 꽉 마주잡았다. 

마치 살아남으라는 것처럼.

살아서 견뎌서, 언젠가는 보란 듯이 돌아가라는 것처럼. 

 
 
 
 
 
 
 

같은 내무실에서 지내던,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입덧을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맛없고 부실한 짬밥을 게워내며 하루종일 울었다. 울다가, 급식소의 음식냄새에 다시 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래도 잘 된거지.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

“나가봤자 뻔하지 않겠어?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 파는 것 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애국부인회에서 그녀를 데려간다는 말을 들었다. 

분홍색 바탕에, 뒤쪽으로 활짝 핀 손바닥만한 무궁화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는, 어디로 보아도 싼티난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미니버스가 도착하고, 그 안에서 푸른 색 깡통치마에 허리까지 오는 붉은 저고리를 입은 중년 여자들이 줄줄이 내렸다. 

“사명을 다하여 국가의 동량이 될 새 생명을 잉태한 당신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며......”

그녀들은 소위 ‘어머니에 대한 찬가’라며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부끄러워지는 한심한 문장들을 괴상한 어조로 읽어내려갔다. 임신한 여자는 훌쩍거렸다. 찬가를 다 읽자, 소위 애국 부인들께서는 임신한 여자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고, 그대로 버스에 태웠다. 재경과는 달리, 그녀는 이제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떠난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이를 낳겠지.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야.”

재경은 그날따라 술에 잔뜩 취해서, 내게 말했다. 

“여긴 그냥 아기 공장이야, 공장.”

“여기서 나가면 아기를 데리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었어?”

“2급은 아이 아버지와 결혼을 해야 자기 아이를 키울 수 있고, 3급은 자기 아이를 못 키워. 결혼을 해서 나가지 않는 한. 그 애들은 국가의 아이들이지.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빠는 당연히 모르고.”

“그럼 그 많은 애들을, 대체 누가 키운다는 거야!”

“애국부인회에서.”

재경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젊은 여자와 배운 여자들을 제일 싫어하는 분들이지. 여튼 거기서 키우고, 특히 3급이 낳은 아이들에게는 당시의 대통령 성을 물려주게 되어 있어. 웃기지 않아? 대통령이 무슨 나라의 주인이야? 왕이라도 되냐고!”

“김재경.”

뒤쪽에서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영어 할 줄 안다고 그러지 마라. 쟤들은 몰라도 우린 네 말 알아듣는다.”

“예에, 예에.”

“또 기율대에 가는 건 너도 싫을 텐데.”

“아, 물론이죠.”

재경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한숨을 쉬고, 내 품에 어깨를 기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율대?”

“응, 기율대. 가면 아주 사람이 미치기 직전까지 괴롭히는 곳이야. 사실 그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고 싶어하거든.”

재경은 내 품에서 깔깔 웃었다. 

“이미 한번 헤까닥 미친 년이니까, 한번 더 미치면 양순해 질 줄 아는 모양이야.”

나는 재경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끝이 파삭파삭 갈라지기 시작하는, 긴 머리카락이었다. 

“나라라는 게 굴러가려면, 높으신 분들 만으로는 부족하잖아? 높으신 분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잖아?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 돈을 벌어오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분뇨를 퍼내고......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끌려가서 그런 일을 하게 되지. 공부도 많이 시킬 필요 없다고, 딱 열세 살 때 까지만 가르치고는 바로 산업의 역군이 되십니다...... 아, 명목상으로는 실업학교에 진학했다고 표시하지만, 실업학교는 개뿔......”

“왜...... 힘든 일일수록 충분한 보상을 하면 되잖아.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은 기계를 쓰면 되잖아. 대체 19세기도 아니고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일꾼으로 쓰기 위해 사람을 낳는다고?”

“그래.”

재경은 고개만 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충분한 보상을 하거나, 인구가 줄어들었으면 줄어든 대로 기계를 쓰면 되긴 하지. 그런데 그런건, 높으신 분들이 싫어하거든. 일단 돈이 많이 들잖니.”

여기 북청공단은, 그렇게 태어나 공장의 부품으로 살아갈 것을 명령받은 사내아이들이 일하는 곳이었다. 16년 전 여성징집으로 낳은 첫 세대의 아이들과, 그 직전 공창에서 성과급을 주어 가며 낳은 아이들은 열네 살이 되자마자 여기 끌려와 일하고 있었다. 

배움은 짧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듣는 프로파간다 영상 같은 것을 어릴 때부터 강제로 시청한 덕분에 국가를 맹신하고, 인권 같은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고, 한 사람 먹고 살기도 빠듯한 최저임금으로 한 주에 70시간씩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젊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어린, 열넷, 열다섯, 열여섯 하는 사내애들이, 다시 군부대에 와서 여자를 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또다시, 애국부인회로 끌려가고, 언젠가 이런 공단으로 다시 끌려오고. 

“언니가 어릴 때 보던 책들을 읽은 적이 있어.” 

재경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이를 악물었다. 

“이 나라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켜서, 그 교육의 힘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이끌어낸다고. 아니, 그 말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아냐. 문자 그대로, 이 나라 국민은 그냥 자원이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그 뜻이었어. 그리고 지금 자원이 부족하니까, 새끼 치라는 거지. 여자들을 계속계속, 어떤 식으로든 임신시켜서!”

“사람이 부족하면, 이민자를 받으면 되잖아! 문호를 꽁꽁 닫아놓고서......”

“너, 못 들어봤구나? 여기 굉장히 민족주의도 강하고, 인종차별도 심한 거.”

아니, 들었어. 

인권조사관에게 깜둥이 소리를 했다는 말도 들었고. 

하지만 나는 재경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어꺠를 감싼 팔을 당겨, 그녀의 이마에 입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사람을 온 사방에서 미치게 만드는 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꽉 붙잡고 있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라도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자원이 되고, 여자가 여자가 아니라 아기공장이 되어버린 이 곳에서는.

 
 
 
 
 
 
 
 
결국 그날 소리를 지른 일로, 재경은 기율대에 끌려갔다. 


“걱정할 것 없다. 늘 있던 일이고.”

“언제쯤 나옵니까.”

“이번 건은 1주쯤. 그리고 내가 보고한 게 아니다. 여긴 어디에나 눈이 많아.”

소대장은 서류를 덮어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제 1세계에서 온 너는, 이 모든 게 이해가 안 가겠지. 하지만 문화에는 상대주의라는 게 있다. 이건 이 나라의 문화고, 네가 멋대로 네 잣대로 생각할 일이 아니야.”

“몇 년이나 이랬다고 이게 문화라는 겁니까.”

“한국에는 한국의 방식이 있어.”

“저는 한국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어요. 고려시대? 조선시대? 어느 시대에 대체 국가에서 여자들을 이렇게 가둬놓았습니까. 아, 식민지 시대의 점령자들을 본받기라도 하시는 건가요? 생각해보니 일본이 태평양 전쟁 때 아시아 여자들에게 했던 짓과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이는데요. 그런 거예요?”

“입 다무는 게 좋겠다, 세실.”

소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라고 좋아서 여자들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만, 이건 옳고 그름을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국가의 판단이고 국가의 명령이야.”


“다른 나라들이, 복지를 강화하고, 임금을 올리고, 인간의 힘으로 하기 힘든 일들을 자동화할 때, 이 나라는 이런 최악의 길을 택한 것 뿐이죠. 대체,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지금 네가 여기서 한 발언들만으로도, 너는 기율대에 한 달 넘게 갇혀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넌 여기가 지옥이고 바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율대에 가서 두 시간만 있으면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난 너를 기율대에 보내지 않을 거다.”

“왜요, 보내시지.”

“너를 찾는 외국인들이 있더군.”

소대장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상부에서 네 위치를 파악해 두라고 했다.”

“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글쎄.”

“그게 아니라면, 이곳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저를 의문사 시키실 계획이시라는 건가요.”

“......”

“의문사 시키실 거라면 방법은 제가 골랐으면 좋겠는데요. 이왕이면 좀 덜 아픈 쪽으로.”

“세실, 넌 믿지 않겠지만, 난 네가 살아서 여길 나가길 바란다.”

“어째서죠?”

“난 국가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일찍 결혼을 하겠다는 여동생을 강제로 군에 보냈다. 그 애는 학벌도 좋았고, 오빠가 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집안 조건도 나쁘지 않아서 1등급으로 분류되었어. 좋아하던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1등급인 아이들 중에 특히 예쁜 아이들은, 달리 차출이 되지.”

소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 애는 여당 의원의 시중을 드는 일에 차출당했다. 뭐, 남들은 부러워하더군. 덕분에 내 출세길도 열린 게 아니냐고.”

“시중을 드는 일이라는 건, 정확히......”

“내 입으로, 내 동생이 어떤 일을 했는지까지 말해야 하나?”

소대장은 불쾌한 듯 눈을 감았다. 

“그 애가 남편에게 총애를 받는 것을 보고, 질투한 의원 부인이 그 애의 얼굴에 산을 부었다. 그 애는 영영 앞을 못 보게 되었지. 적어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는데, 똑똑하고 예쁜 여자애였으니까 그 애의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이유로 다시 끌려갔어. 아이를 셋이나 낳고 또 빼앗긴 뒤에 미쳐서 죽었다.”

“빼앗겨요?”

“1등급이 우수한 정자를 사용하여 낳은 아이니까, 단순 노무직 노동자로 키워지진 않겠지만.”

소대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무반으로 돌아왔고, 고참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었다. 재경이 없으니, 나는 그저 한국말도 못하는 멍청한 신참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녀는 한참 내게 다 알아듣기도 힘들지만 욕설임에 분명한 말들을 쏟아내고는, 발로 밀어내며 어디 안보이는 데 가서 짱박혀 있으라고 했다. 나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재경을 생각했다. 

여기도 지옥인데, 대체 어떤 일을 당하는 것이길래.

미치도록 재경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앞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찾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은, 에바나 마리가 나를 위해 움직여 줬다는 뜻이다. 어쩌면 앰네스티가.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걸까. 

혹시, 재경도 함께 데려갈 방법은 없는 걸까. 

역시 어렵겠지.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그 20년동안 진작 누구라도 도망쳐서 여기의 현실을 알렸겠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여기서 도망칠 수 없는 족쇄를 피부 아래, 발목뼈 어딘가에 단단히 조여 고정시켜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일 테니까. 만약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억류해 놓은 이 상황 자체가 불법적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한국 국적자도 아니고, 내 부모님은 진작에 망명했으며, 적어도 우리 부모님이 망명하실 때는 망명자의 아이도 입국하면 한국인으로 취급하는 이 괴상한 법률이 없었던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법률을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보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긴 것일지 모른다. 

사흘이 지났다. 나는 왜, 누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한 주가 지났다. 나는 재경의 일은 거의 잊고, 하루종일, 거의 미친 듯이, 에바나 마리, 혹은 다른 누구라도 좋으니,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얼씬거리지 않을까 목을 빼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두 주가 지났다. 어느정도 마음은 가라앉았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재경이 돌아온 뒤에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재경을 만나고 싶었다. 이 곳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했다. 더 들어서, 살아서, 여기를 나가서, 이곳의 참상을, 이곳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리고 16일 째, 한 주에 한번 씩 하는 아침 첫 소변 검사에서, 임신 양성 반응이 나왔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웃을 수도 없었다. 여기서 나가게 된 것 만은 분명했지만, 어느 쪽일까. 애국부인회가 나를 끌고가는 게 먼저일까, 그게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이 지옥에서 구해주는 것이 먼저일까. 사람들의 발 소리,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구형 엔진이 달린 자동차 소리,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조차 아찔하도록 오싹했다. 임신 양성 반응이 나왔으므로 저녁 시간의 노동에서는 열외가 되었다. 대신 보건실에서 채혈을 했다. 군의관은 임신을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내가 살면서 읽고 듣고 간접적으로 들었던 모든,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 중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소대장은 나를 불러, 맛없는 짬밥 대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스테이크 한 조각과 필라프가 담긴 도시락을 내 주었다. 

“어쨌든 여길 나가게 된 것은 확실해진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고, 그 촌스러운 아줌마들에게 잡혀가고 싶지도 않아요.”

“운이 좋다면, 애국부인들께서 오시기 전에 풀려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그거나 먹어.”

“이건 뭐예요.”

“입덧 하면 어릴 때 먹던 게 생각나지 않나? 외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이런 게 당기겠지.”

“한국에도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네요.”

“군부대에서 차로 조금만 나가도, 얼마든지 있어.”

“나라 수준이 2차대전 이전이라서 그런 건 없을 줄 알았죠.”

“넌 외국인이고, 네가 여기서 본 게 전부가 아니야, 세실.”

“그래요. 그리고 그 외국인을 여기다 가둬놓고, 장장 석달동안 하루 평균 다섯 명씩에게 윤간을 당하게 한 게 이 나라가 한 일이고요. 아니, 외국인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에게도 이러면 안 되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네 생각은 위험해. 그리고 넌, 사실은 한국말을 할 줄 알지. 그렇지?”

“......”

“몇 번 보고 눈치는 챘다. 한국말로 뭔가 지시할 때 네가 무심결에 움직였거든. 사실 나로서는, 너같이 위험한 생각을 가진 여자가 여기서 뭔가 입을 여는 게 더 골치가 아파. 하루빨리 내보내는 게 낫지.”

“당신 여동생을 죽인 것도 결국은 이 나라라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소대장님.”

“나라가 내 여동생을 버렸다고 해서 내가 이 나라를 버릴 수는 없으니까.”

“굉장하네요.“

“그걸 다 먹고 나면, 조금 더 굉장한 이야기를 해 주지.”

소대장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내 앞에 놓인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내가 필라프의 쌀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것을 보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첫째, 내일 그 프랑스 여자들이 여기 올 거다. 앰네스티의 조사관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넌 지금 이 시각부터 다른 대원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된다. 네 소지품이며 여권이며, 모두 여기 꺼내 놓았다. 내일 그 여자들이 오면 돌려주지.”

“세상에......!”

“널 데려갈 거야. 대사관은 물론 전세계에서 정부를 압박한 모양이다. 귀찮게 되었지. 너같은 애는 그냥 입국 심사 때 걸러서 돌려보내든가, 적어도 끌고 오진 말았어야 하는 건데.”

“애초에 여자를 징집해다 이런 일에 쓴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좀 하시면 참 좋을텐데요, 소대장님은.”

“말했을 텐데, 이건 여기 문화일 뿐이라고. 그리고 둘째.”

소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김재경이 죽었다. 기율대에서 사고가 있었어.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재경이 죽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밤새 넋이 나가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나는 장교 세 명에게 둘러싸인 채 군용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소대장은 만나지 못했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여튼 자기 여동생이 그렇게 죽고도 태연히 나라에 충성할 만큼 무딘 사람이니 알아서 잘 살겠지. 

문득 눈물이 흘렀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창 밖을, 한 번도 제대로 걸어다녀보지 못한 바깥 세상을, 민낯의 대한민국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꾸며놓은 인형의 집 같은 나라를. 

그 안에, 사람은 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나라를. 

나는 마리와 장 뱅상의 도움을 받아 이 지옥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부모님 댁에서 1년이 넘도록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숨어 지냈다. 한국에 갔다가 그대로 정부에 의해 납치당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프랑스는 물론, 여러 나라의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의 질문에 답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 질문에 대답할 힘도, 용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를 지우고, 죽은 재경을 애도하고, 몇 번인가 자살 기도를 하며, 나는 내가 자궁이자 공공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써야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죽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의 일을, 그 지옥의 참상들을. 더 잊기 전에 한 줄 한 줄 적어나가야 했다. 한국을 떠날 때 분명 그 일에 대해 발설해선 안된다는 각서 같은 것에 지장을 찍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위력에 의한 계약은 불법이고, 그들이 이제와서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쫓아와서 죽일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나는 설령 죽더라도 인간으로 죽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거라는 데 내 손가락을 걸 수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봐도 그렇기 유능할 것 같진 않았다. 

에바가 가끔 찾아와, 내 원고들을 읽어보고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위로하다 가곤 했다. 내 정신과 의사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내 정신상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 글 속에서 내가 겪은 일들을, 재경이 말해준 이야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려 애쓰며 적어갔다. 내가 글을 쓰고, 그 이야기들을 알릴 수 있다면, 재경이 기뻐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글 속에서 우리들은 시녀 이야기의 시녀들이었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자궁들이었으며, 국가를 위한 아기공장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인간이지 못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정리해서, 그때 그 학생 납치사건에 관심을 가져 주는 언론사에 보냈다. 글은 두세 번의 윤문과 교정, 그리고 최종 확인작업을 거쳐 기사화되었고, 출간 계약도 되었다. 기사를 본 사람들은 나의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재경에 대해서도 물어봐 주었다. 

“기자회견, 괜찮겠어?”

“예.”

나는 머리를 길렀다. 그때의 재경처럼,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말끔하게 옷을 입고, 복학도 했다. 책도 나왔다. 내 수기에, 앰네스티에서 그동안 한국의 징병제에 대해 모아들인 자료가 함께 붙은 책이었다. 수익금은 전액, 여성인권운동에 기부하기로 했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전세계에서 모여든 기자들이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질문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 차분히 대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한국 조동일보의 한민국 기자입니다.”

한국인이었다. 

재경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 그는 일어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 당황하여 손짓했다.

“예, 이 수기에 대해 한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세요.”

“당신은 돈으로 병역을 회피하고 도망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잠깐. 전 애초에 프랑스인이고.”

“한국에서는 한국 법률을 따르는 거죠. 그래서 당신은, 의무를 회피하고 도망친 사람이죠. 그렇죠?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요구하다니, 너무 뻔뻔한 게 아닙니까.”

“......”

“당신같은 사람 때문에, 한국 여자들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국가의 결정입니다. 옳고 그름을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하물며 외국에서 이런 식으로 비꼴 만한 일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나의 소대장이었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들은 아마도, 악인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독하게 성실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순종적인 이들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제대로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들은 속이 비어 있다고. 한때, 잠시나마 소대장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넘어, 나는 빙긋이 웃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한국에서 오셔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여긴 프랑스 혁명 이후로 천부인권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나라입니다. 기자님 빼고 다른 분은 다 아는 이야기에 대해 제가 굳이 설명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인터넷 검열 없는 여기 오신 김에 천부인권사상에 대해 좀 검색이라도 해 보시면 어떨까요.”

“누워서 침뱉기 같아서 이런 말 하기 그런데, 한국 여자애들은 근성이 없어.”

그 말을 들은 것은, 그랑제꼴 준비반의 첫 학기가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기 싫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려 드는 애들이 허다하다니까. 한국에서는 그런 애들을 된장녀라고 부르지.”

“자국 음식을 폄하하다니, 너희 엄마의 김치는 영국요리 레벨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크리스틴이 비꼬며 웃었다. 나는 그 농담이 그다지 우습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유학와서는 자기 나라 여자들의 험담이나 하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크리스틴.”

그는 나를, 거기 모여있는 프랑스 아이들 중 유일한 동북아시아 계이자, 유일하게 부모님이 한국인 출신인 나를 보고 희미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일찌감치 들어앉아 살림이나 하려고 하고, 남자에게 빌붙어 살려고나 하지. 그게 뭐하는 거냐고요. 인생, 다른 남자에게 편하게 얹혀 가겠다는 거 아냐.”

“오, 그건 거기 정책이 문제인 것 같은데.”

“여자가 군대 가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나? 이스라엘도 여자들이 군대 가잖아.”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포 2세라고 해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돌아와서 자진 입대라도 할 텐데. 세실은 왜 자진 입대를 하지 않아? 그 전에, 한국말을 할 줄 알긴 하는 거야?”

“내가 한국말을 하든 말든 그건 네 알 바가 아닌데?”

나는 불쾌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대꾸했다. 

“그리고 난,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서 여기의 교육을 받고 여기의 복지정책을 누리며 살았어. 내 국적도 내가 애국심을 느낄 대상도 프랑스지, 한국이 아냐.”

“아, 어련하시겠어.”

그 한국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원래 단물만 빨아먹는 게 한국 여자들 특징이잖아. 너도 다르지 않겠지.”

모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 날은, 리세에서의 친구였던 비르지니가 도서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을 나와 크리스틴에게 소개해 주겠다고 한 날이었다. 그 남자는 비르지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비르지니의 친구 중에 그랑제꼴 준비반에 있는 한국인 2세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만나보고 싶다고 조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일로, 비르지니는 그 남자에게 단단히 실망했다. 그녀는 그 남자와 더는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나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데이트를 거절했다고, 비르지니에게 말도 안 되는 욕설을 퍼붓고 갔다는 것을 보면. 

그런 황당한 일을 겪고도 비르지니는 내게 그런 매너없는 자식을 소개하려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나는, 내 부모님이 한국 출신일 뿐 나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데도, 그 남자애 때문에 비르지니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그 남자애, 진짜 앞뒤가 안 맞더라고.”

“응, 뭐가?”

“군대 안 가려고 결혼한다고 한국여자들 욕을 그렇게 했잖아. 심지어는 상관없는 너까지 싸잡아서.”

“그랬지. 왜.”

“걔네 여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부터 했대.”

헛웃음이 나왔다. 
 
 
 
 
 
 
 
2015년, 한국은 점점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었다. 

불행히도 여당이 내놓는 그 정책들 중 제정신인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여자아이는 초경을 시작하면 국가에 등록할 것, 여자애들이 공부를 많이 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공부를 덜 시키도록 노력할 것, 이민가기도 어렵도록 학제를 괴상하게 바꿀 것. 19세기의 인간들은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피가 머리에 몰려서 아기를 낳기 힘들어진다는 헛소리를 했다는데, 21세기의 한국 정치가들은 19세기 인간들만도 못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헛소리들이, 노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노인들 중 상당수는 여당이 하는 말이라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는 순진한 촌로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노인들도 자신들의 노후 연금을 대 줄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빠른 발전을 이루었던 나라였다. 왕조시대의 마지막에 태어나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었고, 젊은이는 노인을 공경해야 하며 특히 며느리는 시집간 집안의 사람이 되어 시댁의 가족들 중 가장 미천한 사람이 되어 그 가족을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그 노인들은, 공부를 많이 한 젊은 여자들이 예전처럼 납작 엎드려 시댁을 공경하지도 않고, 그런 시집살이를 하기 싫다고 결혼을 거부하기까지 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정책을 지지했다. 여당과 지배층의 큰 기득권에 묻어가며, 그저 자신들의 작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다행히도 나의 부모님은 그 정신나간 정책들이 장차 어떤 식으로 악화될지를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많이 받은 분들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분들은 한국에서 괜찮은 직장을 갖고 계셨지만,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두 분은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확신하셨다. 어머니의 배가 불러오고, 두 분이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는 사이, 정치가들은 더 희한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이 출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해외에 장기간 여행하는 것을 규제하겠다는 정책이었다. 

그 정신나간 정책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그분들은 이민 준비를 포기했다. 그분들은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안락함과 재산들을 포기하고, 임신한 몸으로 한국을 떠났다. 명목상은 태교여행이었지만, 여기 도착하자마자 부모님은 망명을 신청했다. 불행히도 부모님이 프랑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은 챠우세스쿠를 되살려 낸 듯한 정신나간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여자는 대학원에 갈 수도, 외국에 유학을 갈 수도 없었다.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면 그 일가는 무서운 벌금을 내야 했다. 여자를 그저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가축으로만 보는 듯한 그 정책들 덕분에, 부모님의 망명은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나는 여기서 태어났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20세기 말에 아버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가, 21세기에 다시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도 또 다른 부시가 대권을 노렸던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도 한 가문에서 무려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그리고 한국의 인구는, 그 가문에서 배출한 세 번째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약 10년 전부터 증가세를 띠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 교육과 출국을 허락하는 대신 병역을 지우게 되면서부터였다. 

“미친 짓이지.”

앰네스티 직원인 마리가 통계를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먼저 권리가 주어지고, 그 다음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자에게 의무가 주어지는 건데.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니, 천부인권이라는 말은 어디다 갖다 버린 거야.”

“흠, 한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찾을 수 있을 걸요? 모든 것을 쓰레기봉투에 분리수거해서 버리는데, 쓰레기 봉투마다 바코드가 달려 있잖아요?”

“그런 짓을 할 시간에 놀고 먹고 잠이라도 푹 자게 좀 두지. 자기들, 야근수당 없이 한 주에 70시간씩 일할 수 있어?”

“미쳤어요?”

“여긴 그래. 무슨 19세기도 아니고. 물론 어느 나라나, 개혁과 개방이 있으면 반드시 보수반동이 뒤따라오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보수반동이 심한 나라도 드물 거야. 마치 아랍권에서 원리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히잡 뒤집어 쓴 것 같잖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외국에 유학하기 위해, 한국 여자들은 20대 초반에 2년간 병역의 의무를 지거나, 아이를 낳아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여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몇몇, 아주 선택받은, 그리고 굉장히 남자의 문법에 익숙한 일부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나온 그녀들도, 히잡을 쉽사리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슬람권의 여자들, 혹은 역사책 속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노처녀 가정교사들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방의 의무와 출산의 의무와 여자로서의 온갖 의무들을 강조했으며, 그런 것에 대해 지적하는 서구세계의 여자들을 타락했다고 비난하기 바빴다. 

그건 굉장히 놀랍고도 쓸쓸한 일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들었다. 분명 21세기 초반의 한국에서는 수많은 여성 스타들이 아시아를 주름잡았고, 많은 여자들이 사회에 진출해 있었다고. 어머니 역시 학교 선생님이었고, 어머니의 친구들도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은, 가사노동은 물론 육아와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까지 모두 여자에게 몰려 있는, 현대와 전근대가 괴상하게 맞물려 있던 사회였다고 하셨지만.

한국의 여자들은 모두, 그 손톱만큼의 현대조차 모두 버리고 수돗물도 안 나오는 전근대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여긴 명예 남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라는 걸까? 세실,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나는 애매하게 대답하며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그랑제꼴 준비반에서 죽을 동 살 동 공부만 하다가, 막상 그랑제꼴에 들어온 뒤에 본 것은 기묘한 나태였다. 물론 공부의 양 자체는 눈물겹도록 많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인생이 반짝거리지도, 잘 풀려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우울증이 밀려왔다. 말하자면 번아웃이었다. 죽자사자 공부해서 고급학교에 들어간 수레바퀴 밑의 주인공이 결국 도망치는 것 같은. 

다행히도 나는 죽지도, 학교를 그만두지도 않았다. 대신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앰네스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리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앰네스티에서는 전세계의 병역 문제에 대해 두루 조사하고 있었다. 인권의식이 낮은 국가에서 의무복무가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일은 많았다. 특히 한국에서는 20여년 전 병역 문제로 망명을 신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이래, 꾸준히 1년에 한두 명 씩은 병역문제로 프랑스에 망명해 오곤 했다. 마리는 망명의 근거로 받아들여질 만큼 심각한 각국의 병역문제와 관련된 인권침해 사례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세실을 도와 그 사례들을 파일로 정리해서 항목별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여자들의 진술 자료는...... 하나도 없네요?”

그동안 병역 문제로 프랑스에 망명해 온 젊은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병역을 마치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면 여자는 나라 밖으로 나올 수 조차 없었으니까. 

사실 확인은 더 해 봐야 할 일이었지만, 한국에는 젊은 남자들에게서 거액의 돈을 받고 유럽 여러 나라로 망명하는 일을 서류 작업부터 돕는 브로커도 암암리에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도망쳐야 할 만큼 군 복무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어떨까. 

“한국의 모든 성인 남녀는 20대 초반, 2년간 병역의 의무를 지게 되어 있다면, 이건 엄청난 숫자예요. 그런데 그 절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물론 이상하지.”

원래 가부장적이고 여자의 지위가 낮았던 국가에서, 임신과 병역이 한 카테고리로 묶인 상황에서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에 대해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자료가 전혀 없었다. 마리는 혼란스러워하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세실, 그렇게 치면 애초에 저 규모의 군대를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어. 그동안에야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몇 년 전에 통일도 되었는데 군대의 규모를 줄이기는커녕 더 늘리고만 있지.”

“중국 때문일까요?”

나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36년동안 식민지 시대를 겪기도 했던 한국의 역사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뭐,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렇겠지?”

마리가 쓴웃음을 짓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천 개의 위성이 날아다니고, 지구 반대편의 군사 동향을 거의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대륙과 연결된 북쪽 국경을 따라, 위성궤도에서도 선명히 보일 만한 거대한 장벽을 세워 놓았다. 나머지 삼면은 바다였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한국은 통일되기 전에는 중간에 북한이 있어서 대륙과 철도로 이어지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는 섬이나 다름없는 면을 보일 때도 많았다고 하셨는데. 통일이 되고 나서도 그 나라는 스스로 섬으로 남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마치 그 섬 안에, 가두어 둘 것이 있다는 듯이. 

“우리도 그 장벽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는 몰라. 인권 조사단을 파견해 보았지만, 별 소득은 없었어. 세실, 그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가장의 허가 없이는 엑스트라넷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어? 국가에 의해 검열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가장에 의해 검열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공교육 과정에서 자유나 평등이나 인권같은 개념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아뇨, 몰랐어요.”

“그런 나라에서 여자들과 제대로 인터뷰를 하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앰네스티가 뭔지는 고사하고 천부인권이 뭔지부터 설명해아 하니까. 믿어져? 그 나라가 30년 전만 해도 뭐든 검색하고 무슨 일이든 인터넷으로 할 수 있었던 나라였다는 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내게 부모님이 등 돌리고 도망친 나라, 그래서 내게는 묘한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아내는 나라였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었고, 부모님의 가치관에 100% 동의하지 않는 별개의 주체였다. 그러니 한 번쯤은, 부모님이 등진 그 고국에 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대놓고 반대했다. 특히 한국에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다녀왔던 에바는 따로 나와 점심 약속을 잡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굳이 거기 가 볼 필요는 없어. 사실을 말하자면 위험한 곳이거든.”

“외국인이라도 히잡을 쓰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끌려가거나,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그건 아니지.”

“대체 어떤 곳인데 그렇게 다들 반대만 하시는 거예요. 제게는 제 부모님의 고향이라서, 거기 딱히 애착은 없지만 자기 뿌리랄까. 그런 게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래, 오죽하면 너희 부모님께서 망명을 하셨겠니.”

에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선택은 네 몫이고, 이건 네 인생이지만...... 좋아, 나도 제대로 들여다봤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 관점에서 거긴 나라 전체가 20세기 박물관 같은 데야. 냉전시대 이전, 우리로 치면 68 이전같지. 재미없고, 경직되어 있고, 다들 타인과 국가의 눈치를 보고 말조심을 하고. 아, 흥미로운 일도 있긴 있었어.”

“어떤 일인데요?”

“깜둥이라는 말을 들었거든.”

에바가 빙긋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을 보며, 나는 조금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아직 수습 직원이었던 장 뱅상과 함께 한국에 도착했는데, 공항에서부터 깜둥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 모두가 내가 아니라 장 뱅상을 존중했고, 나는 거기 딸려 온 비서나 식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세상에.”

“그게 2033년에 겪은 일이라면 믿겠니, 세실?”

듣기만 해도 참담하고 참혹하고 비참했다. 나의 부모님이 왜 그 땅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다고, 그래서 국가와 연장자의 말에 따르는 것이고, 계급 같은 것은 없다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들은 철저히 계급주의적이지. 그리고 피부색의 명도 역시도 계급을 나누는 잣대 중 하나고. 인종차별도 심하지만 여성차별도 심각하고.”

“고마워요, 에바. 역시 가 봐야 겠어요.”

“괜찮겠니?”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의 고향이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미련이랄까, 사춘기 때 막연한 환상 같은 게 있었거든요. 만약에 여기서 내가 성공하지 못하고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뭐 그런 생각요.”

“음, 그런 생각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지.”

“가서 제 눈으로 보고, 미련을 싹 떨치고 오는 게 낫겠어요.”

“그래, 알았어.”

에바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게 좋은 경험이 되길 빌어, 세실.”

“감사합니다.”

“출발이 언제지?”

“이달 30일요.”

“얼마나 머무를 거지?”

“3주.”

“좋아, 그럼 먼저 거길 다녀온 경험자로서 제안할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네가 묵을 숙소의 연락처를 내게 남겨놓고 가면 어떨까.”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가서 지내는 동안 마리나 에바에게 메시지 자주 보낼게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그래, 그러면 좋겠다. 부모님께는 말씀 안 드렸지?”

“그냥 여행 가는 것 뿐인걸요.”

“그래, 알았어.”

나는 에바에게 내가 묵을 곳의 연락처와 내 여행 계획을 전송했다. 에바는 바로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한 번 꼭 끌어안았다. 

그후 몇 번이나 나는, 그날의 점심식사를 떠올렸다. 

그때 에바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랬다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앰네스티의 조사단이 한국에 들어가 몇 개월동안 애써보았지만, 한국인 여자들은 자신들의 병역 경험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아니, 낯선 외국인을 보면 일단 도망치기부터 했다고 들었다. 남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여자들의 고통에 대해 조사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여자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줄 몰랐고, 군 생활 이야기를 할 때 여자들 이야기는 쏙 빼놓곤 했다. 마치 군대라는 조직이 남자만으로 이루어 진 것처럼. 

사회적 위상이 낮고, 자기 자신을 위해 주장할 힘을 빼앗겼으며, 신체적으로도 약자인 이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한 나라 전체가 공모하듯 입을 다무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비르지니에게 치근거리던 한국인 유학생에게라도 좀 더 물어볼 것을 그랬다. 

그런 놈이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줄 것 같진 않았지만. 

그 한국인 유학생이 나오는 기분나쁜 꿈을 꾸며 나는 한국행 에어프랑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비행기는 두 시간 45분만에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고, 제 11차 헌법개정에 따른 긴급조치 13호의 지엄함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밟자마자, 나는 공항경찰대에 붙잡혔다. 
 
 
 
 
 
 

공항경찰대는 나를 헌병들에게 인계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나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나는 구형 산부인과 진찰용 의자가 놓여 있는 작은 진찰실 같은 곳으로 끌려갔다. 나는 군인들에게 붙잡혀 강제로 키와 체중과 가슴둘레와 엉덩이 둘레를 재야 했다. 마치 가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의했지만, 그들은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영어로 말해도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것 같았다. 

한국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어로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제 발로 걸어들어와 주면 고맙지.”

군인들이 강제로 내 옷을 벗겼다. 나는 강간당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나를 구형 산부인과 진찰용 의자에 앉혔다. 나는 발버둥을 쳤다. 발목이 남자들의 억센 손아귀에 짓눌렸다. 아까 서류를 확인하던, 군의관인 듯 한 남자가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젖꼭지의 색깔을 확인하더니 마지막으로 내 국부를 들여다보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3급.”

“오, 좀 놀았나본데?”

군인들이 낄낄거렸다. 수치스러웠다. 누구라도 낯선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강제로 알몸이 된 채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는 그대로 얇은 가운 한 장만 입혀진 채, 끌려갔다. 내 여권과 내 짐은 돌려받지 못했다. 나는 그나마 내 말을 알아들을 성 싶은 군의관에게 내 여권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군의관은 딱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그의 군복 깃처럼 딱딱하고 어색한 영어로 대꾸했다. 

“When you complete your military service.”

밀리터리 서비스라니.

기막힌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좁은 취조실 같은 곳에서 겨우, 바벨 인터프린터 헤드셋을 쓴 병무청 공무원과 마주앉게 되었다. 그는 안됐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세실 강 씨 맞죠? 당신 아버지 성함은 강영호, 어머니 성함은 김지현. 검진 결과 현역병으로 입영하게 되었어요. 평균적으로 입대하는 나이 보다는 조금 늦었네요. 힘들텐데.”

“검진이라니, 아까 내가 당했던 그 성폭력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성폭력이라뇨.”

“설명도 없이 끌고가서 신체 사이즈를 재고, 옷을 벗기고, 성적인 부위를 만지고 손가락을 넣었으니 당연히 성폭력이죠.”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예요. 한국말은 할 줄 아나요?”

“난 프랑스인이고, 한국에는 관광하러 온 것 뿐이에요. 지금 당신들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대사관에 연락해 주세요.”

“그럴 수 없어요.”

“그럴 수 없다니?”

“그리고 오해 같은 것도 없어요. 여기 한국에서는 아버지가 한국인이면 자식도 당연히 한국인이니, 당신 역시 한국인이고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하죠.”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지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니, 우리 부모님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고요.”

“망명자였죠. 맞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망명자의 자녀들이 가끔, 당신처럼, 한국에 관광하러 오더라고요.”

“지금 그걸 알면서도......”

“제발로 돌아왔는데, 붙잡아 군대에 보내지 못할 이유는 뭐가 있나요.”

“이건 인권 문제예요.”

“똑똑한 아가씨군요. 여기서는 여자가 똑똑하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난 국제 앰네스티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일이 바깥 세상에 알려지면......”

“세실, 내 말 잘 들어요. 아마 나는 당신이 한국 땅에서 만날 수 있는, 당신에게 가장 호의적인 한국 사람일 거라는 데 내 지갑에 든 돈 전부를 걸 수도 있는데, 당신이 앰네스티에서 일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요. 그랬다간 영영 이 나라 밖으로 못 나가는 경우도 생길 테니까.”

“지금 그게 무슨......”

“당신은 병역을 완료하기 전 까지는 국경 밖으로 한 발도 못 나가요. 여기서 완료라는 것은, 2년 안에 한국 국적의 아이를 임신해서 그 아이를 낳거나, 그게 아니면 복무 기간을 100% 채우는 것 뿐이죠. 의병 제대나 의가사 제대나 불명예 제대를 할 경우, 당신은 병역을 완료한 게 아니고, 엑스트라넷도 사용할 수 없으며, 나라 밖으로 절대 못 나갈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모든 일을 국제사회에 보고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한 여자라는 게 알려지면, 당신은 불명예 제대를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기율대에 끌려가 영영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명색이 문명국가에서......”

“하나 더, 당신 부모님은 망명자였죠.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거니와, 들어오더라도 체포될 겁니다.”

“대체 무슨 죄로요!”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해당해요. 인적자원을 밖으로 빼돌렸으니까.”

인적자원이라는 말이 송곳처럼 날아와 목울대에 박히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잃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 부모님이 한국까지 날아오시진 않을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뭐,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에는 우리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습니다.”

병무청 공무원은 쓸쓸한 표정으로 일어나며 말했다. 

“특히 당신 부모님처럼, 자식을 위해 외국으로 망명까지 하신 분이라면. 자식이 살아서 무사히 돌아오는 쪽을 원하실 테니까요.”

머릿속에, 통계 자료에서 보았던 데이터가 떠올랐다. 그 말도 안 되게 높았던, 군내 의문사 비율에 대한 부분이. 

그는 헤드셋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고, 나를 두고, 나갔다. 묵직한 철문이 밖에서 잠겼다. 나는 기가 막혀서 웃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국말을 못 한다고? 이거 못 써먹겠구만.”

“학교는 어디 나왔대? 유명한 데면 또 시끄러워 질 수가 있어서 말이야.”

“무슨 폴리테크닉이라고 써있던데?”

“아, 폴리텍 대학. 그게 외국에도 분교가 있었나?”

사흘 뒤, 나는 낡은 승합차 뒷좌석에 짐짝처럼 실린 채, 끌려갔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한국인, 혹은 피부색이 보편적인 한국인보다 어두운 외국인이란, 이곳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만만한 존재였다. 작은 헤드셋 하나만 내게 쥐어주면 될 일인데도, 그들은 내게 손짓 발짓으로 오라 가라 명령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영어 단어 한두 마디로 지시했다. 정말 복잡한 이야기를 할 때만 그들은 마치 시혜를 베풀 듯, 바벨 인터프린터가 달린 마이크로 말을 했다. 

내 말을 그들에게 통역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어차피 허락된 대답도 “예”, 하나 뿐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겪게 될 것인지, 이 이상한 나라에서 군대에 간 여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 그들이 나누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지만 딱히 별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있어 나 같은 사람은 워낙 흔한 것이라, 별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신고식’은?”

“외국 살다 온 년들이 그게 있겠냐.”

“음, 그럼 생략하겠구만. 쯧.”

대신 병무청 사무실의 복도에 붙은 포스터들이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내가 그 포스터를 읽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모든 여자는 20대 초반, 2년간 병역의 의무를 진다. 남자는 이 의무를 30세까지 연기할 수 있지만, 여자는 늦어도 24세까지는 병역을 마쳐야 한다. 만약 만 20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면 이 의무에서 유예되지만, 23세까지는 임신 및 출산을 해야만 면제된다. 

훈련소에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바로 부대로 보내는 것을 보면 말이 좋아 병역이지, 실제로 군사 훈련을 받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왜, 병역의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사무실 구석에 놓인 “애국부인회”의 홍보 팸플릿도 읽었다. 입영한 여자가 임신을 하면, 확인된 시점에서 병영을 떠나 애국부인회의 자상한 손길 하에 태교를 하고, 출산 후 몸조리까지 한 뒤 무사히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내문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병영이라면, 그렇게 쉽사리 임신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마 무슨, 챠우세스쿠의 이상향을 구현해 놓은 것 같은 병영은 아닐 테고. 

속으로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인천에 도착했던 날 당했던 산부인과 검사들이, 그리고 십여 년 전부터 급상승한 한국의 출생률이 떠올랐다. 

그 모든 징조들이 가리키는 것을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도 전에, 승합차는 내가 군생활을 하게 될 함경남도 북청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이곳은, 거대한 개발도상국형 산업도시였다. 사자 탈을 쓰고 춤을 추는 탈놀이가 유명했던 곳이라고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런 곳에 군부대가 왜 필요한지도. 

에바는 내 걱정을 할까. 연락도 하지 못했고, 예약한 숙소에도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쯤은 알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나를 구해 줄 방법도 있을까. 생각하는데, 뚱뚱한 중대장이 들어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 이제라도 병역을 마치기 위해 고국에 돌아왔다니 환영한다.”

중대장은 통역기를 거쳐서도 투박하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거친 억양으로 귀찮은 듯 인사를 하고,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 잠시 후, 2 소대장이 나를 데리고 소대로 향했다. 그는 내게 담배를 권했다가,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같은 내무반에 김재경이라는 여자가 있어.”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그 여자는 사상범이고, 원칙대로 말하자면 당신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해야겠지만.”

“제게 도움을 줄 거라는 뜻인가요.”

“어차피 당신은 제대할 때 까지 여기서 못 나가고, 김재경은 서른이 한참 넘을 때 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할 거야. 여긴 3등급들이 오는 데니까.”

“3등급?”

“집안 환경이 무척 안좋거나 학벌이 안좋거나 처녀가 아니거나 나이가 많거나...... 그게 아니면 국가를 전복할 만큼 위험하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소위 아는 척 하는 여자거나.”

“즉 여기선 똑똑한 여자는 3등급이 되는 거군요.”

“그래. 당신이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해 알고 있나?”

“군사훈련도 없이 배치를 받았는데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이 영어로 묻더라도, 말은 아끼는 게 좋아. 내가 자네에게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그저, 자네가 여기서 2년동안 미치지 않고 무사히 복무를 하거나, 그게 아니면 하루빨리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뿐이야.”

“잠깐, 학벌이 좋으면 등급이 올라가나요?”

“자네 학벌은 C등급, 산업기술학교 레벨로 되어 있는데.”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설령 착오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 그런 것을 논하는 건 자네에게 유리하지 않아. 그리고 자네는 학벌이 아무리 좋아도 3등급이야. 과체중인데다, 결정적으로 처녀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거대한 매음굴이었다. 
 
 
 
 
 
 
 
 
첫날, 나는 그 매음굴에서 세 명의 손님에게 차례로 강간을 당했다. 그중 두 명은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애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콘돔도 쓰지 않고 사정하려 하는 것에 경악했고,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달려온 헌병에게 두들겨 맞고, 묶였다. 동거했던 남자친구와도 콘돔 없이는 섹스하지 않았는데! 체구는 작지만 거칠고 뻣뻣하며 좀비처럼 무표정한 얼굴의 낯선 남자들은 전희도 무엇도 없이 손발이 묶인 내 몸 위에 올라가 대충 집어넣고 잠시 헉헉거리다 사정했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 그저 욕구 해소를 위한 구멍 한 개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반쯤 열린 문 너머로, 나를 강간한 남자가 갈매기같은 계급장을 단 남자에게 화대를 지불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돈은, 이곳의 여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아닌 것 같았다. 이따위 것이 병역의 의무라면, 설마 국고에 들어가는 걸까? 이건 무시무시한 착취이자 횡령이었다. 세상에, 내가 미치지 않고 여길 나갈 수만 있다면!

여기 끌려 온 여자들은 미치지 않기 위해 몰래 술을 마셨다. 순순히 이 일을 해내지 못하는 여자들에게는 약물이 투여되기도 했다. 혹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상황에 순응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운이 좋으면 단골을 잡아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21세기도 중반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처녀성에 대한 유구한 신화가 살아있는 이 나라에서, 징병검사 때 까지 처녀성을 지키지 못한 여자에 대한 취급은 가혹했다. 물론 그 기준은 오직, 처녀막의 유무에 달렸다고 했다. 웃기지도 않아서는. 수백년 전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앵무새 피를 팔뚝에 뚝뚝 떨어뜨리지 그랬나. 

3급으로 병역을 마친 여자들은 제대를 한들 결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병적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이라, 3급 출신은 온전한 직업을 갖기도 어려웠다. 아니, 한국에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씨가 말랐으니, 결혼 외의 진로라는 것이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결국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뚝을 박는, 소위 공창에 들어와 몸을 파는 것 뿐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주 드물게, 이곳에서 단골과 결혼하는 운 좋은 여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여자들이 병역을 피해 결혼을 하는 거구나.”

나는 그 처녀성에 대한 집착에 대해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물론 남자였지. 병역을 피해 결혼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그래, 그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갈 정도의 배경이 있는 남자라면, 물론 자기 누나나 여동생은 병역을 피해 일찌감치 결혼을 했을 것이고, 자기도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는 갓 고등학교 졸업한, 열 아홉 살 짜리 처녀와 결혼하려고 하겠지. 안 봐도 뻔한 일이야.”

재경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내가 한국에서 만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불완전하나마 간단한 프랑스어 인사가 가능한 유일한 여자였다. 

“그렇게 처녀에 환장을 했으면서, 여자들을 징집해다가 공창에 집어넣는단 말야?”

“아, 모든 여자가 이런 데 끌려 오는 건 아냐. 여긴 너나 나 같은 3급들이 들어오는 데지.”

“그럼 다른 여자들은?”

“학벌 좋은 중산층 이상 여자애들은 선별한 우수한 정자로 수정하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아. 질 쪽의 순결은 언젠가 결혼할 남편을 위해 남겨둔다는 의미랄까.”

“어떤 놈이 만든 규칙인지 몰라도 그 놈이 변태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네.”

“한국의 정치가들은 대체로 변태들이지. 여튼 정자도 난자도 품질들이 좋다보니 애들이 똑똑해. 그래서 이 애들은 제대 후 자기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경우가 많아. 어지간한 조건과 학벌인 여자애들은 ‘신고식’을 통해 자기 짝을 지정받아. 여자에게는 선택권은 없지만, 수가 적다 보니 거부권은 있지. 하지만 그 거부권도 실질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어. 얘들은 군복무하는 남자애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고, 복무 중에 임신을 하면 결혼할 권리가 생겨.”

“임신을 못 하면?”

“1년 동안 임신이 안 된 여자는 버려도 돼. 적어도 여기선.”

재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언니도 그런 여자였지. 그렇게 버림받은 여자들은 3급과 별다를 게 없는 취급을 받아. 다른 남자의 선택을 받는다면 모를까...... 선택을 받더라도, 좋은 취급은 못 받지.”

“너무하네.”

“언니는 결국 죽었어. 자살을 했어. 여자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처녀가 아니라도 결혼할 수 있다면, 언니는 그렇게 죽었을까?”

재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내 부모님은 내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나는, 반쯤은 객기를 부리듯 여기 왔고,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매음굴이나 다름 없는 이곳에 갇혀 도망치지 못한 채,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칼로리가 제한된 식사를 한다. 체중관리에 실패하면 혹독한 벌을 받는다. 매일 오전에는 대통령과 집권당의 사상이 담긴 영상물을 시청하고, 오후에는 오전에 본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는, 프로파간다 용 로맨스 드라마를 시청한다. 저녁을 먹기 전, 혈액검사를 하고 호르몬제를 맞는다. 임신을 돕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저녁 여섯 시 부터 새벽 두 시까지, 평균 대여섯 명의 남자, 우리의 경우에는 여기 북청공단의 노동자들과 강제로 섹스를 해야 한다. 이건 몸을 판다고 말하기도, 강간을 당한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결혼이 거의 불가능한 이 지역 노동자들의 성욕을 해소하고, 동시에 아이를 낳아 인구를 재생산하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국가의 가축이었다. 아니, 여기를 찾아오는 그 남자들 역시도 국가의 가축이었을 것이다. 

재경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절망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났을 무렵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여자는 대학원에 갈 수도, 외국에 유학을 갈 수도 없게 되어버렸지.”

“응.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임신했을 때 도망쳤고.”

“현명하셨네.”

재경은 내 옆에 누워 소근거렸다. 내무반에는 다른 여자들도 많았고, 그들 대부분은 내게 동정적이었지만, 몇몇은 적개심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 대부분과 무난하게 지냈고, 재경과는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재경은 스물 아홉 살이었다. 그녀는 서른 다섯 살까지 여기 갇혀있어야 한다고 했다. 징집을 피해 도망치고, 숨어서 페미니즘에 대한 전단을 만들다가 붙잡힌 죄였다. 남자였다면 감옥에 들어갔겠지만, 여자인 재경에게는 아직 쓸모가 있으니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기도 안 찰 이야기였다. 그 기회라는 것이, 장장 10년동안 병영을 빙자한 매음굴에 갇혀 온갖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이라니. 

“내가 열 살쯤 되었을 때, 정말로 학제가 변경되었어. 그리고 열 살이 넘은 여자애들은 초경 여부를 국가에 등록하고 관리해야 했지. 그거 아니? 그걸 두고 국가에서 여자애들의 건강을 신경 써 주는 거라고 언론에서 거의 세뇌하듯이 떠들어 댄 것을. 사실은, 그냥 걸어다니는 자궁으로 취급한 건데 말이야. 공창제가 생겼고, 성노동자들이 계약직 공무원 취급을 받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야. 대신 그녀들은, 아이를 낳아야 했지. 아이를 낳으면 성과급을 받았다고 해.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여자들을 이렇게 징집해다가 아이를 낳게 하기 시작했지. 그게 내가 중학교 가던 해의 일이야.”

“재경, 난 어머니께 한국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한때는 여자들이 전세계를 주름잡는 스타가 되기도 하고, 여자 국회의원에 여자 대통령도 있었다면서.”

“그랬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거야. 난 이해할 수가 없어. 난......”

“서둘러 쌓은 것은 빨리 무너지는 법이고......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났거든. 세상은 21세기 하고도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니까. 그들의 취향에 맞는 세상으로 돌아왔고, 아이들에게 그들의 취향에 맞는 것만 가르치려 들지. 세실, 난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너무 수가 적고, 이 제도 또한 기득권에게는 딱히 나쁠 게 없는 일인데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모두 국가에 빼앗겼지. 품에 안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한 번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조차 없었어.”

“아이가 있었어?”

“응.”

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아이인지도 모르지만, 낳았지. 쌍둥이였어. 사실은 안 낳을 방법이 없었어. 임신을 하면 애국부인회에게 잡혀가거든.”

“애국부인회?”

“아주 골 때리는 아줌마들이지. 태교를 한다는데 태교에 악영향만 줄 것 같고, 산후조리를 한다는데 돌아가서 쑴풍쑴풍 애 더 잘 낳으라고 고사를 지내는데, 이건 사람이 아니라 어디 젖소들을 키우는 것 같아서.”

“저런.”

“두 번 다시 거기 끌려가느니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은 보고 싶어. 우리 애들...... 딸 쌍둥이였는데.”

“그 아이들은......”

재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누워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아니, 사실은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울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팔에 내 팔꿈치를 슬쩍 기댄 채, 잠을 청했다. 

문득 나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고 3주가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바나 마리는, 내 걱정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구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부모님께는 연락이 갔을까. 얼마나 속상하실까. 구하러 갈 수도 없는 곳에서, 내가 이런 꼴이 되어버려서. 속에서부터 딸꾹질같은 울음이 올라왔다. 재경은 나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이, 내 손을 꽉 마주잡았다. 

마치 살아남으라는 것처럼.

살아서 견뎌서, 언젠가는 보란 듯이 돌아가라는 것처럼. 

 
 
 
 
 
 
 

같은 내무실에서 지내던,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입덧을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맛없고 부실한 짬밥을 게워내며 하루종일 울었다. 울다가, 급식소의 음식냄새에 다시 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래도 잘 된거지.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

“나가봤자 뻔하지 않겠어?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 파는 것 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애국부인회에서 그녀를 데려간다는 말을 들었다. 

분홍색 바탕에, 뒤쪽으로 활짝 핀 손바닥만한 무궁화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는, 어디로 보아도 싼티난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미니버스가 도착하고, 그 안에서 푸른 색 깡통치마에 허리까지 오는 붉은 저고리를 입은 중년 여자들이 줄줄이 내렸다. 

“사명을 다하여 국가의 동량이 될 새 생명을 잉태한 당신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며......”

그녀들은 소위 ‘어머니에 대한 찬가’라며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부끄러워지는 한심한 문장들을 괴상한 어조로 읽어내려갔다. 임신한 여자는 훌쩍거렸다. 찬가를 다 읽자, 소위 애국 부인들께서는 임신한 여자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고, 그대로 버스에 태웠다. 재경과는 달리, 그녀는 이제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떠난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이를 낳겠지.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야.”

재경은 그날따라 술에 잔뜩 취해서, 내게 말했다. 

“여긴 그냥 아기 공장이야, 공장.”

“여기서 나가면 아기를 데리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었어?”

“2급은 아이 아버지와 결혼을 해야 자기 아이를 키울 수 있고, 3급은 자기 아이를 못 키워. 결혼을 해서 나가지 않는 한. 그 애들은 국가의 아이들이지.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빠는 당연히 모르고.”

“그럼 그 많은 애들을, 대체 누가 키운다는 거야!”

“애국부인회에서.”

재경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젊은 여자와 배운 여자들을 제일 싫어하는 분들이지. 여튼 거기서 키우고, 특히 3급이 낳은 아이들에게는 당시의 대통령 성을 물려주게 되어 있어. 웃기지 않아? 대통령이 무슨 나라의 주인이야? 왕이라도 되냐고!”

“김재경.”

뒤쪽에서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영어 할 줄 안다고 그러지 마라. 쟤들은 몰라도 우린 네 말 알아듣는다.”

“예에, 예에.”

“또 기율대에 가는 건 너도 싫을 텐데.”

“아, 물론이죠.”

재경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한숨을 쉬고, 내 품에 어깨를 기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율대?”

“응, 기율대. 가면 아주 사람이 미치기 직전까지 괴롭히는 곳이야. 사실 그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고 싶어하거든.”

재경은 내 품에서 깔깔 웃었다. 

“이미 한번 헤까닥 미친 년이니까, 한번 더 미치면 양순해 질 줄 아는 모양이야.”

나는 재경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끝이 파삭파삭 갈라지기 시작하는, 긴 머리카락이었다. 

“나라라는 게 굴러가려면, 높으신 분들 만으로는 부족하잖아? 높으신 분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잖아?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 돈을 벌어오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분뇨를 퍼내고......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끌려가서 그런 일을 하게 되지. 공부도 많이 시킬 필요 없다고, 딱 열세 살 때 까지만 가르치고는 바로 산업의 역군이 되십니다...... 아, 명목상으로는 실업학교에 진학했다고 표시하지만, 실업학교는 개뿔......”

“왜...... 힘든 일일수록 충분한 보상을 하면 되잖아.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은 기계를 쓰면 되잖아. 대체 19세기도 아니고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일꾼으로 쓰기 위해 사람을 낳는다고?”

“그래.”

재경은 고개만 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충분한 보상을 하거나, 인구가 줄어들었으면 줄어든 대로 기계를 쓰면 되긴 하지. 그런데 그런건, 높으신 분들이 싫어하거든. 일단 돈이 많이 들잖니.”

여기 북청공단은, 그렇게 태어나 공장의 부품으로 살아갈 것을 명령받은 사내아이들이 일하는 곳이었다. 16년 전 여성징집으로 낳은 첫 세대의 아이들과, 그 직전 공창에서 성과급을 주어 가며 낳은 아이들은 열네 살이 되자마자 여기 끌려와 일하고 있었다. 

배움은 짧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듣는 프로파간다 영상 같은 것을 어릴 때부터 강제로 시청한 덕분에 국가를 맹신하고, 인권 같은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고, 한 사람 먹고 살기도 빠듯한 최저임금으로 한 주에 70시간씩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젊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어린, 열넷, 열다섯, 열여섯 하는 사내애들이, 다시 군부대에 와서 여자를 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또다시, 애국부인회로 끌려가고, 언젠가 이런 공단으로 다시 끌려오고. 

“언니가 어릴 때 보던 책들을 읽은 적이 있어.” 

재경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이를 악물었다. 

“이 나라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켜서, 그 교육의 힘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이끌어낸다고. 아니, 그 말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아냐. 문자 그대로, 이 나라 국민은 그냥 자원이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그 뜻이었어. 그리고 지금 자원이 부족하니까, 새끼 치라는 거지. 여자들을 계속계속, 어떤 식으로든 임신시켜서!”

“사람이 부족하면, 이민자를 받으면 되잖아! 문호를 꽁꽁 닫아놓고서......”

“너, 못 들어봤구나? 여기 굉장히 민족주의도 강하고, 인종차별도 심한 거.”

아니, 들었어. 

인권조사관에게 깜둥이 소리를 했다는 말도 들었고. 

하지만 나는 재경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어꺠를 감싼 팔을 당겨, 그녀의 이마에 입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사람을 온 사방에서 미치게 만드는 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꽉 붙잡고 있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라도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자원이 되고, 여자가 여자가 아니라 아기공장이 되어버린 이 곳에서는.

 
 
 
 
 
 
 
 
결국 그날 소리를 지른 일로, 재경은 기율대에 끌려갔다. 


“걱정할 것 없다. 늘 있던 일이고.”

“언제쯤 나옵니까.”

“이번 건은 1주쯤. 그리고 내가 보고한 게 아니다. 여긴 어디에나 눈이 많아.”

소대장은 서류를 덮어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제 1세계에서 온 너는, 이 모든 게 이해가 안 가겠지. 하지만 문화에는 상대주의라는 게 있다. 이건 이 나라의 문화고, 네가 멋대로 네 잣대로 생각할 일이 아니야.”

“몇 년이나 이랬다고 이게 문화라는 겁니까.”

“한국에는 한국의 방식이 있어.”

“저는 한국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어요. 고려시대? 조선시대? 어느 시대에 대체 국가에서 여자들을 이렇게 가둬놓았습니까. 아, 식민지 시대의 점령자들을 본받기라도 하시는 건가요? 생각해보니 일본이 태평양 전쟁 때 아시아 여자들에게 했던 짓과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이는데요. 그런 거예요?”

“입 다무는 게 좋겠다, 세실.”

소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라고 좋아서 여자들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만, 이건 옳고 그름을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국가의 판단이고 국가의 명령이야.”


“다른 나라들이, 복지를 강화하고, 임금을 올리고, 인간의 힘으로 하기 힘든 일들을 자동화할 때, 이 나라는 이런 최악의 길을 택한 것 뿐이죠. 대체,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지금 네가 여기서 한 발언들만으로도, 너는 기율대에 한 달 넘게 갇혀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넌 여기가 지옥이고 바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율대에 가서 두 시간만 있으면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난 너를 기율대에 보내지 않을 거다.”

“왜요, 보내시지.”

“너를 찾는 외국인들이 있더군.”

소대장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상부에서 네 위치를 파악해 두라고 했다.”

“제가,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글쎄.”

“그게 아니라면, 이곳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저를 의문사 시키실 계획이시라는 건가요.”

“......”

“의문사 시키실 거라면 방법은 제가 골랐으면 좋겠는데요. 이왕이면 좀 덜 아픈 쪽으로.”

“세실, 넌 믿지 않겠지만, 난 네가 살아서 여길 나가길 바란다.”

“어째서죠?”

“난 국가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일찍 결혼을 하겠다는 여동생을 강제로 군에 보냈다. 그 애는 학벌도 좋았고, 오빠가 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집안 조건도 나쁘지 않아서 1등급으로 분류되었어. 좋아하던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1등급인 아이들 중에 특히 예쁜 아이들은, 달리 차출이 되지.”

소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 애는 여당 의원의 시중을 드는 일에 차출당했다. 뭐, 남들은 부러워하더군. 덕분에 내 출세길도 열린 게 아니냐고.”

“시중을 드는 일이라는 건, 정확히......”

“내 입으로, 내 동생이 어떤 일을 했는지까지 말해야 하나?”

소대장은 불쾌한 듯 눈을 감았다. 

“그 애가 남편에게 총애를 받는 것을 보고, 질투한 의원 부인이 그 애의 얼굴에 산을 부었다. 그 애는 영영 앞을 못 보게 되었지. 적어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는데, 똑똑하고 예쁜 여자애였으니까 그 애의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이유로 다시 끌려갔어. 아이를 셋이나 낳고 또 빼앗긴 뒤에 미쳐서 죽었다.”

“빼앗겨요?”

“1등급이 우수한 정자를 사용하여 낳은 아이니까, 단순 노무직 노동자로 키워지진 않겠지만.”

소대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무반으로 돌아왔고, 고참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었다. 재경이 없으니, 나는 그저 한국말도 못하는 멍청한 신참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녀는 한참 내게 다 알아듣기도 힘들지만 욕설임에 분명한 말들을 쏟아내고는, 발로 밀어내며 어디 안보이는 데 가서 짱박혀 있으라고 했다. 나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재경을 생각했다. 

여기도 지옥인데, 대체 어떤 일을 당하는 것이길래.

미치도록 재경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앞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찾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은, 에바나 마리가 나를 위해 움직여 줬다는 뜻이다. 어쩌면 앰네스티가.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걸까. 

혹시, 재경도 함께 데려갈 방법은 없는 걸까. 

역시 어렵겠지.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그 20년동안 진작 누구라도 도망쳐서 여기의 현실을 알렸겠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여기서 도망칠 수 없는 족쇄를 피부 아래, 발목뼈 어딘가에 단단히 조여 고정시켜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일 테니까. 만약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억류해 놓은 이 상황 자체가 불법적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한국 국적자도 아니고, 내 부모님은 진작에 망명했으며, 적어도 우리 부모님이 망명하실 때는 망명자의 아이도 입국하면 한국인으로 취급하는 이 괴상한 법률이 없었던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법률을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보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긴 것일지 모른다. 

사흘이 지났다. 나는 왜, 누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한 주가 지났다. 나는 재경의 일은 거의 잊고, 하루종일, 거의 미친 듯이, 에바나 마리, 혹은 다른 누구라도 좋으니,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얼씬거리지 않을까 목을 빼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두 주가 지났다. 어느정도 마음은 가라앉았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재경이 돌아온 뒤에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재경을 만나고 싶었다. 이 곳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했다. 더 들어서, 살아서, 여기를 나가서, 이곳의 참상을, 이곳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리고 16일 째, 한 주에 한번 씩 하는 아침 첫 소변 검사에서, 임신 양성 반응이 나왔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웃을 수도 없었다. 여기서 나가게 된 것 만은 분명했지만, 어느 쪽일까. 애국부인회가 나를 끌고가는 게 먼저일까, 그게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이 지옥에서 구해주는 것이 먼저일까. 사람들의 발 소리,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구형 엔진이 달린 자동차 소리,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조차 아찔하도록 오싹했다. 임신 양성 반응이 나왔으므로 저녁 시간의 노동에서는 열외가 되었다. 대신 보건실에서 채혈을 했다. 군의관은 임신을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내가 살면서 읽고 듣고 간접적으로 들었던 모든,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 중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소대장은 나를 불러, 맛없는 짬밥 대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스테이크 한 조각과 필라프가 담긴 도시락을 내 주었다. 

“어쨌든 여길 나가게 된 것은 확실해진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고, 그 촌스러운 아줌마들에게 잡혀가고 싶지도 않아요.”

“운이 좋다면, 애국부인들께서 오시기 전에 풀려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그거나 먹어.”

“이건 뭐예요.”

“입덧 하면 어릴 때 먹던 게 생각나지 않나? 외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이런 게 당기겠지.”

“한국에도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네요.”

“군부대에서 차로 조금만 나가도, 얼마든지 있어.”

“나라 수준이 2차대전 이전이라서 그런 건 없을 줄 알았죠.”

“넌 외국인이고, 네가 여기서 본 게 전부가 아니야, 세실.”

“그래요. 그리고 그 외국인을 여기다 가둬놓고, 장장 석달동안 하루 평균 다섯 명씩에게 윤간을 당하게 한 게 이 나라가 한 일이고요. 아니, 외국인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에게도 이러면 안 되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네 생각은 위험해. 그리고 넌, 사실은 한국말을 할 줄 알지. 그렇지?”

“......”

“몇 번 보고 눈치는 챘다. 한국말로 뭔가 지시할 때 네가 무심결에 움직였거든. 사실 나로서는, 너같이 위험한 생각을 가진 여자가 여기서 뭔가 입을 여는 게 더 골치가 아파. 하루빨리 내보내는 게 낫지.”

“당신 여동생을 죽인 것도 결국은 이 나라라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소대장님.”

“나라가 내 여동생을 버렸다고 해서 내가 이 나라를 버릴 수는 없으니까.”

“굉장하네요.“

“그걸 다 먹고 나면, 조금 더 굉장한 이야기를 해 주지.”

소대장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내 앞에 놓인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내가 필라프의 쌀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것을 보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첫째, 내일 그 프랑스 여자들이 여기 올 거다. 앰네스티의 조사관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넌 지금 이 시각부터 다른 대원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된다. 네 소지품이며 여권이며, 모두 여기 꺼내 놓았다. 내일 그 여자들이 오면 돌려주지.”

“세상에......!”

“널 데려갈 거야. 대사관은 물론 전세계에서 정부를 압박한 모양이다. 귀찮게 되었지. 너같은 애는 그냥 입국 심사 때 걸러서 돌려보내든가, 적어도 끌고 오진 말았어야 하는 건데.”

“애초에 여자를 징집해다 이런 일에 쓴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좀 하시면 참 좋을텐데요, 소대장님은.”

“말했을 텐데, 이건 여기 문화일 뿐이라고. 그리고 둘째.”

소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김재경이 죽었다. 기율대에서 사고가 있었어.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재경이 죽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밤새 넋이 나가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나는 장교 세 명에게 둘러싸인 채 군용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소대장은 만나지 못했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여튼 자기 여동생이 그렇게 죽고도 태연히 나라에 충성할 만큼 무딘 사람이니 알아서 잘 살겠지. 

문득 눈물이 흘렀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창 밖을, 한 번도 제대로 걸어다녀보지 못한 바깥 세상을, 민낯의 대한민국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꾸며놓은 인형의 집 같은 나라를. 

그 안에, 사람은 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나라를. 

나는 마리와 장 뱅상의 도움을 받아 이 지옥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부모님 댁에서 1년이 넘도록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숨어 지냈다. 한국에 갔다가 그대로 정부에 의해 납치당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프랑스는 물론, 여러 나라의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의 질문에 답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 질문에 대답할 힘도, 용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를 지우고, 죽은 재경을 애도하고, 몇 번인가 자살 기도를 하며, 나는 내가 자궁이자 공공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써야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죽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의 일을, 그 지옥의 참상들을. 더 잊기 전에 한 줄 한 줄 적어나가야 했다. 한국을 떠날 때 분명 그 일에 대해 발설해선 안된다는 각서 같은 것에 지장을 찍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차피 위력에 의한 계약은 불법이고, 그들이 이제와서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쫓아와서 죽일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나는 설령 죽더라도 인간으로 죽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거라는 데 내 손가락을 걸 수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봐도 그렇기 유능할 것 같진 않았다. 

에바가 가끔 찾아와, 내 원고들을 읽어보고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위로하다 가곤 했다. 내 정신과 의사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내 정신상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 글 속에서 내가 겪은 일들을, 재경이 말해준 이야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려 애쓰며 적어갔다. 내가 글을 쓰고, 그 이야기들을 알릴 수 있다면, 재경이 기뻐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글 속에서 우리들은 시녀 이야기의 시녀들이었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자궁들이었으며, 국가를 위한 아기공장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인간이지 못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정리해서, 그때 그 학생 납치사건에 관심을 가져 주는 언론사에 보냈다. 글은 두세 번의 윤문과 교정, 그리고 최종 확인작업을 거쳐 기사화되었고, 출간 계약도 되었다. 기사를 본 사람들은 나의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재경에 대해서도 물어봐 주었다. 

“기자회견, 괜찮겠어?”

“예.”

나는 머리를 길렀다. 그때의 재경처럼,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말끔하게 옷을 입고, 복학도 했다. 책도 나왔다. 내 수기에, 앰네스티에서 그동안 한국의 징병제에 대해 모아들인 자료가 함께 붙은 책이었다. 수익금은 전액, 여성인권운동에 기부하기로 했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전세계에서 모여든 기자들이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질문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 차분히 대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한국 조동일보의 한민국 기자입니다.”

한국인이었다. 

재경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 그는 일어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 당황하여 손짓했다.

“예, 이 수기에 대해 한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세요.”

“당신은 돈으로 병역을 회피하고 도망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잠깐. 전 애초에 프랑스인이고.”

“한국에서는 한국 법률을 따르는 거죠. 그래서 당신은, 의무를 회피하고 도망친 사람이죠. 그렇죠?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요구하다니, 너무 뻔뻔한 게 아닙니까.”

“......”

“당신같은 사람 때문에, 한국 여자들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국가의 결정입니다. 옳고 그름을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하물며 외국에서 이런 식으로 비꼴 만한 일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나의 소대장이었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들은 아마도, 악인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독하게 성실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순종적인 이들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제대로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들은 속이 비어 있다고. 한때, 잠시나마 소대장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넘어, 나는 빙긋이 웃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한국에서 오셔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여긴 프랑스 혁명 이후로 천부인권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나라입니다. 기자님 빼고 다른 분은 다 아는 이야기에 대해 제가 굳이 설명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인터넷 검열 없는 여기 오신 김에 천부인권사상에 대해 좀 검색이라도 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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