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순이의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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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웠다.
홍대입구 역 앞에서 고양이 탈에 고양이 옷을 입고 카페 홍보를 하는 남자 생각이 났다. 여기 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세상에 그만큼 신세 편해 보이는 알바가 없었는데. 때가 꼬질꼬질 묻은 고양이 코스튬에 멍청해 보이는 고양이 탈을 쓰고 손만 흔들고 있어도 지나가는 여자애들이 다들 좋아하는 걸. 가끔은 프리허그하며 덥석 끌어안기도 하고. 얼마나 좋아. 그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여기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탈만 뒤집어 쓴 것 뿐인데도 덥죠, 땀 차죠, 갑갑하죠. 탈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좁고 어두워서 마치 관에 들어와 누운 것 같았다. 정말로 관 속에 누워 본 적은 없지만.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햇볕의 열기, 내 땀냄새가 푹푹 썩어 무슨 걸레 쉰 듯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두툼한 재질의 커다랗고 무거운 탈. 학교에서 배웠던 복사열과 온실효과가 얼마나 크나큰 재앙인지를, 나는 이 탈을 쓰고서야 절절히 깨달았다. 바람 들어오는 데라고는 무릎 아래 뿐이었다.
“야야야, 너, 너, 너.”
화장실 문을 두드리듯, 나보다 고작 두 살 많은 소대장이 내 탈바가지 뒤통수를 똑, 똑, 똑, 똑,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어디 포순이가 치마를 걷어올리고 있어, 칠칠치 못하게.”
그렇다. 나는 왜 여자들이 한여름에 원피스를 입는지 십분 이해했다. 왜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는지는 백분 이해했다. 그런 건 우리같은 남자들 좋으라고 입는 게 아니었다. 젠장. 이 더위에, 이런 치마라고 입지 않으면 못 견디니까 입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그놈의 치마를 걷어올릴 자유도 없었다. 남색 스커트 아래 남우세스러운 검정 레깅스, 그런데다 커다란 탈바가지에 가슴에 뽕까지 넣은, 나는 의경이었다. 어린이의 친구, 민중의 지팡이, 무슨 행사만 있으면 불려가서 포순이 탈을 쓰는 의경.
“이거 하루 이틀 해? 네가 벌써 수경이야 수경. 1년 반이나 했으면 좀 잘 해."
"그게 말입니다, 김 주임님.”
포순이 탈을 벗고, 땀내와 썩은내가 밴 머리도 감고 겸사겸사 샤워까지 한 다음에야, 나는 정색을 하고 말할 수 있었다.
“아까는 정말 너무 더웠지 말입니다.”
“빠져서는......”
“김 주임님도 아침부터 덥다고 하셨지 말입니다.”
“아, 그래. 덥긴 덥지. 근데 요새 초딩들이 어디 보통 초딩들이냐?”
“어, 그게......”
“그렇지 않아도 포순이 아이스케키, 포순이 똥침, 그런거 하고 도망가는 애새끼들이지. 그치?”
“예. 그렇지 말입니다.”
“그래, 공권력에 아이스케키를 하는 겁대가리 없는 애들이라 이거야. 뭐, 그건 괜찮아. 어차피 포돌이 포순이 인형 탈이야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있는 거니까. 그런데 말이지.”
그렇다고 포순이가 성희롱의 대상이 되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말입니다.
“그 포순이가 덥다고 치마 헤 벌리고 앉아있거나, 덥다고 타이즈를 벗어버리고 그 다리털 숭숭 그 상태로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봐라. 이건 경찰의 위신 문제지. 안 그러냐?”
그리고 경찰의 위신 이전에 복무자의 인권 문제가 걸려있지 말입니다. 나는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따지고 보면 스물 넷에 벌써 주임이고 소대장님이라고 해도, 나보다는 겨우 두 살 많을 뿐이었다. 경찰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 그런 엘리트가 이런 데서 의경들 데리고 있는 것이 낭비인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게 또 이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대체복무 비슷한 거라니 어쩔 수 없지.
소대장은 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작은아버지도 전부 다 경찰인, 소위 경찰가족의 장남이었다. 소대장의 아버지는 소대장의 고향에서 지구대장을 하고 계신데, 젊어서 순경으로 들어와서는 같이 순찰 조였던 선배의 막내 여동생과 오며가며 눈이 맞아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경찰이나 공무원들 중에는 이렇게 직장동료가 사돈이 되는, 족내혼같은 관계가 꽤 많다는 말도 들었다. 소대장은 친가 외가 합쳐서 가장 공부를 잘 한 아이였고,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친척들의 아낌없는 격려 속에 경찰대에 진학하여 졸업하자마자 평생 경찰로 일했던 작은아버지와 같은 계급장을 달았다고 했다. 사촌들도 전문대를 졸업하고 바로 경찰이 되었거나, 심지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찰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서, 현재 친가 외가를 합쳐서만 경찰이 여덟 명,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행정직까지 아홉 명이나 된다고.
나는 그렇게 앞날이 딱 정해지는 것은 답답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즘들어 불확실한 미래에 공포를 느끼는 것 보다는 어쩌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주어진 틀 안에 꽉 짜여진, 예상대로 앞날들이 하나하나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듯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인생. 심지어는 결혼조차도 마치 족내혼처럼 경찰이나 공무원 중에서 상대를 만나 아이는 둘쯤 낳고 살아가는, 아주 보통의 인생. 그건 지루할지는 몰라도 안전해보이는 것만은 틀림없다. 정작 당사자들은, 공무원 연금이 줄어드네, 공무원도 이제는 철밥통이 아니네, 점점 불안해지는 미래를 걱정하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그 정도는 한없이 얌전하지.
제대가 반 년도 안 남아서 그런지, 그게 아니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야말로 갑작스레 터졌다는 IMF와, 그에 따라 한참 흔들거렸던 우리 집 살림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그 안정감이 숨막히도록 부러웠다. 어차피 밖에 나가봐야 취직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냥 지금부터 경찰이나 말단 공무원 공채 준비를 해서 시험을 봐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 만큼. 둘째아들 명문대 간 것 하나가 그렇게 자랑스러우신 우리 어머니가 들으셨다가는 등짝에 불이 날 이야기였다. 공무원을 지망한다면 차라리 고시를 본다면 모를까, 키가 좀 작아서 그렇지 이만하면 잘 생겼어,학벌도 괜찮아. 어디로 봐도 딱히 꿀릴 것 없는, 우리 동네 공인 엄친아인 내가 고작 그 안정감에 목을 매고 몸 굴리고 위험한 경찰이 되는 것을 좋아하실 리 없었다.
엄마 말고도, 우리 집에는 내가 경찰이 된다고 하면 내 얼굴도 안 볼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형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맨날 촛불집회 따라다니다 못해, 멀쩡히 취직까지 한 지금도 주말에는 밀양이며 용산이며 광화문이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우리 형.
“자고로 캡싸이신은 떡볶이에나 뿌리는 거지. 그래, 사람이 무슨 떡볶이냐. 어?”
휴가 나갈 때 마다 형은 나를 발로 툭툭 차며, 시비를 걸어댔다. 아마도 형의 눈에 나는, 군생활 좀 하자고 인간의 양심을 팔아치우고 민주주의적인 평화 시위를 가로막는 인간 쓰레기 비슷한 것으로 비치는 모양이지. 그렇지 않아도 난 태어나지도 않았던 87년에, 그러니까 형도 겨우 엄마 젖이나 떼었을까 싶은 딱 그 시대에, 시위에 나선 직장인 형과 가로막던 전경 동생이 시위 현장에서 딱 만나고 그랬다는데 우리 형제가 그 꼴이 날 거라고 같잖은 술주정도 해대던 인간이니, 아마 내가 경찰이 되겠다고 한다면, 형은 날 반쯤 죽일 지도 모르겠다.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경찰 시험이나 봐야겠다고 한다면, 아마 연을 끊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남의 속도 모르고.
“야야, 윤 수경.”
“부르셨지 말입니다.”
소대장이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빗어넘기며 나를 돌아보았다.
“너 요즘 좀 빠진 것 같지 않냐? 말년에는 떨어지는 가랑잎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렇잖지 말입니다.”
“하기사, 네 체격이 저 포순이 옷에 딱 맞아서 계속 시킨 거긴 해도, 제대 반 년도 안 남은 애가, 며칠 있다가 분대장도 달 거면서 아직까지 포순이 쓰고 있기도 그렇지. 포순이 탈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한테 넘기든가.”
“안됩니다.”
소대장이 낄낄 웃었다. 뭔가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농담하듯,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포순이 옷을 새로 만들어주실 거라면 모를까, 맞지도 않는데 대원을 구겨넣는 건 인권침해지 말입니다.”
“인권침해같은 소리 하네. 포돌이 포순이 쓰는 것도 너희들 업무의 일종이거든?”
“저야 옷이라도 맞으니 이걸 하지만, 지금 신임들 다 저보다 허리 사이즈 크지 말입니다.”
“애들이 빠져서. 좀 더 돌려야 살이 빠질 텐데. 그리고 너, 너 지하 체력단련실에서 본 적이 없더라? 아니냐?”
“맞습니다.”
“너 이제 수경도 달았겠다 상경 때처럼 밤낮 부려먹지도 않는데, 가서 웨이트도 하고 좀 그래. 그래야 나가서 여자도 꼬시고 그러지.”
“저 인현공대 다녔지 말입니다.”
“아.”
“학교에서 본 여자보다 여기 계신 여경님들이 더 많지 말입니다.”
“......음.”
“그리고 보시다시피 172밖에 안되어서 여기 괜히 갑빠 키우면 스타일이 안 나지 말입니다.”
“어, 그래. 파이팅.”
나는 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목빼고 기다리던 제대가 코 앞인데, 여길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밥이 맛있어진 것도 아니고, 잠자리가 편안해진 것도 아니고, 사지방에 인터넷 PC가 뭐 새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수경이 되었다고 해서 출동 나가는 걸 덜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포순이 탈을 쓰고 경찰서에 견학 온 어린이 여러분 앞에서 손을 흔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그렇게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닌데도, 포순이 탈을 다른 녀석에게 넘겨주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로.
포순이 탈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은 좁고 어두웠다. 군 생활이 어두운 통로같은 것이라면, 포순이 탈은 그 중에서도 특히 그렇겠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거나 공부를 안 한다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편안하고,동시에 나쁜 일이었다. 나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부채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지시에 따르고, 대오를 짜고 사람들을 막았다. 혹은 분대 애들과 함께 야광조끼를 입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더 이상 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신문을 찾지 않게 되었다. 겉멋으로라도 읽던 사회과학 서적들은 휴가 나와서 방구석에 쌓여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어쩌면 대학에 갈 때 까지 죽어라 공부한 것으로, 평생 해야 할 공부는 거의 다 한 것일지도 몰랐다. 여기 이 곳에 있다보면,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결국에 세상 더 힘들게 사는 모습만 수태 보게 된다. 똑똑한 사람이 적당히 약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틀에 맞추어서 살면 된다. 네모 반듯반듯한 틀. 나는 그 좁고 어두운 틀 안에 웅크리고 싶었다.
얼마 전, 경찰서에는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 인사이동 때 여성청소년과로 들어온 김 순경은 수시로 우리 행정실에 올라오곤 했다. 올해 스물 두 살로, 전문대를 졸업하고 바로 경찰 시험에 합격해서, 반 년동안 파출소에서 근무하다가 이번에 들어왔다고 했다. 경찰이라고 다들 경찰복만 입는 것은 아니라서, 수사하러 다니는 형사님들은 대개 사복들을 입고 다녔다. 보통은 그 사복 입는 센스라는 게 밖에서 보기에는 영 촌스러워서 자세히 보면 티가 나겠다 싶기도 했지만, 김 순경은 달랐다. 날씬하고 스타일도 좋은 편이라서 뭘 입어도 어울릴 성 싶었지만, 한창 유행하는 옷차림을 자기 나름대로 멋스럽게 차려 입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학교 다닐 때에도 옷 잘 입는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았다. 절전운동을 한답시고 냉방이라고 나오는 게 늘 나오다 마는 수준이라, 한창 나이의 사내놈들이 잔뜩 모여있는 이 곳은 늘 그 기계과 강의실처럼 썩은 내에 가까운 땀냄새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녀가 나타날 때 만은 달랐다. 그녀에게서 희미하게 풍기는 비누 냄새인지 화장품 냄새인지, 향긋하고 상쾌한 냄새가 이 악취들을 한순간이나마 잊게 해 주었으니까.
“야, 이 자식들. 김 순경에게 눈독 들이는 새끼 내가 다 죽여버린다.”
소대장은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소대장이 김 순경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분대장이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분대장은 그래도 이런 일은 수경이 총대 메고 해야 하는 거라더니, 소대장에게 김 순경에 대해 질문하는 영광을 갓 수경을 단 내게 떠넘겼다. 개새끼. 나는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요즘 들어 유난히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대장 앞에 섰다.
“두 분 사귀시지 말입니까?”
“음?”
“김 순경님 말입니다.”
소대장은 날 미친 놈 보듯 올려다보았다.
“여동생하고 사귀는 놈이 어디있냐, 새꺄.”
“여동생분이시지 말입니까?”
“어어, 저게 우리 집안 아홉 번째 경찰이다. 여자 직업으로 나쁘지 않지, 경찰.”
“아, 저희는...... 소대장님 요즘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서......”
“아, 그거.”
소대장은 중얼거렸다.
“......쟤랑 다리 놓아 달라고 집적거리는 새끼들이 많아서 그러지, 왜.”
“아......”
“네놈들도 눈독 들이면 너 죽고 나 죽고 하는 거다, 알았냐?”
“예...... 알겠지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포돌이 포순이라는 캐릭터를 제일 잘 써 먹는 데는 역시 어린이들이 오는 행사였고, 이 여성청소년과라는 곳은 바로 그런 어린이 행사들을 시도 때도 없이 주최하거나 혹은 참석하는 곳이었다. 나는 수시로 무시로 불려다녔고, 그때마다 김 순경과 마주쳤다. 이쯤 되면 별 관심이 없었어도 사람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들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하물며 기본 호감도가 있는 상태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아이들이 앞에 세 줄로 줄을 지어 서고, 맨 뒤에 경찰들과 포돌이 포순이가 서서 손을 흔들며 기념 사진을 찍을 때 마다, 김 순경은 내 바로 옆 자리에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향긋한 샴푸 냄새가 퀴퀴한 포순이 탈 안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나는 포순이 탈을 쓰고, 손에도 커다란 장갑을 낀 채, 그녀와 손을 잡거나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나는 탈을 벗은 채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고, 그녀에게 나는 그저 포순이일 뿐이었다. 내용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9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더웠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 때도 되었는데, 날씨는 마치 바이메탈이 고장난 전기밥솥처럼 여전히 점점 더 더워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도 어린이 행사에서 포순이 탈을 뒤집어 쓰고 손을 흔들었고, 초등학교 2학년생들에게 아이스케키는 물론 엉덩이를 만지는 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몇몇은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탈바가지를 쓴 내게 기어오르며 포순이 탈을 벗어보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속에 남자 들었대!”
“남자가 여자 옷을 입어?”
“응, 그거 트랜스..... 변태라는데.”
“목소리 들어보면 알잖아. 말해봐, 포순아. 말해봐.”
마음같아서는 탈바가지 따위 휙 벗어던지고 어린 나이에 싹수 노랗게도 여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엉덩이를 주물거리면서 트랜스젠더 아니냐고 묻는 애새끼들을 반쯤 패 죽여놓고 싶었지만, 의경 주제에 무고한 시민 레벨도 아닌 견학온 어린애들을 두들겨 팼다가는 바로 신문에 날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데, 그런 거 하나 제대로 걸렸다가는 인터넷 신문에 바로 속보로 뜨고, 카카오스토리며 페이스북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간 뒤 네티즌 수사대에게 신상을 탈탈 털리겠지. 아아. 아들이 엄친아 레벨이라고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는 동네에서 낯을 드실 수 없을 거고, 아마도 형은 날 사람 취급도 안 할 게 틀림없었다. 이런 젠장.
마침내 아이들이 경찰서 밖으로 다 빠져나갔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탈을 쓴 채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김 순경이었다.
“고생했어요.”
그녀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종류별로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이 포순이 탈이라도 벗어야 할 것 같았다. 벗을 수 없었다. 이 탈을 벗어버렸다가는 한여름 땡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주저앉고 말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이 이게 뭐야?”
결국 분대장이 내 손에서 아이스크림 봉지를 빼앗아다가 냉동실에 넣었지만, 이미 늦었던 모양이다. 소대장은 녹았다 얼어붙어 이상한 꼴이 된 스크류바를 입에 문 채로 행정실을 휘 둘러보았다.
“누가 사다 넣어놓았어?”
“그거, 김 순경님이 사다주셨지 말입니다.”
“음?”
“아까 윤재민 수경님 수고했다고 사주셨지 말입니다.”
“어, 그래?”
소대장은 내 이름이 떨어지자마자 다가와 등짝을 철썩 소리가 나게 한 대 쳤다.
“어우, 이 새끼. 어우.”
“그건 제가 아니라 포순이에게 사 주신 거지 말입니다.”
“포순이? 네가 포순이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포순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 말고, 알맹이 말고 말입니다.”
답답했다.
김 순경은 자주 이쪽 행정실에 놀러왔으니까, 소대원 서넛의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관심을 보여 준 바로 그때, 적어도 탈을 벗고 그게 나라고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왕자를 앞에 두고도 말 못하는 인어공주가 된 기분으로 책상에 머리를 처박았다. 소대장이 투덜거렸다.
“넌 키가 작아서 안 돼.”
“예?”
“넌 그나마 제대하면 경찰 아니니까 그건 괜찮은데, 키가 너무 작아.”
“김 주임님보다 요만큼 작지 말입니다.”
“그 요만큼이 크지, 임마. 내 동생 키가 165야. 힐 신으면 너보다 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원래 여자들이, 남자보다 슬림하기도 하고 해서 힐 신어서 170쯤 되어 보이면 175쯤 되는 남자랑 비슷해 보여. 그래서 안 돼. 떽.”
“뭐가 또 안 되지 말입니까. 제가 키가 크면 김 순경님과 사귀게라도 해 주실 거지 말입니까.”
“어허.”
소대장은 일어나려는 내 어깨를 두 손으로 꾹 누르며 낄낄거렸다.
“미쳤냐,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그게 이 바닥의 소개팅 풍속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경찰대 출신의 경위들과 일찍 승진하여 서른 전에 경사가 된 이들은 잊을 만 하면 한 명씩 우리 행정실에 나타났다. 먹을 것이나 더러는 담배를 사들고서. 이야기하는 레파토리도 똑같았다. 같이 술이나 하자. 하는 김에 김 순경도 같이 오라고 하자. 서로서로 친해지면 좋지 뭐. 소대장은 먹을 것과 담배는 열심히 챙겼지만, 정작 술 약속은 안 잡고 버티기 일쑤였다. 경장이나 순경들은 아무래도 계급 차가 있어서인지, 이쪽을 공략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무려면 어때. 나는 반쯤 씁쓸한 기분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아니면 그녀에게 고백도 못 하고 게임 오버인 모양인데.
“난 경찰하고 결혼 안 할 거다.”
지하 식당에서 소대가 회식을 하던 날, 평소답지 않게 거나하게 술을 마신 소대장이 중얼거렸다. 나는 소대장을 부축하다가 되물었다.
“공무원 부부 좋지 않습니까. 요즘은 중소기업 사장 부부 같은 거랍니다.”
“개뿔. 수능 보자 마자 군대 말뚝 박은 거나 다름 없는데, 집구석에 들어가서도 경찰만 보고 살라고?”
“경찰 가족인 거 자랑스러워 하시는 줄 알았지 말입니다.”
“자랑이야 아버지가 자랑스럽겠지.”
“......안 자랑스러우시지 말입니까.”
“야야, 내가 딱 초등학교에 갔는데 IMF였어.”
“......”
“안정된 게 짱이라 이거지. 대학교 학비도 공짜고.”
“......”
“나라고 고민 없이 사는 게 아냐. 시발.”
“그래도......”
“야야, 스물 넷에 자기 남은 인생이 다 결정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게 좋아 보이냐?”
“그렇지만 말입니다......”
주임님은 경찰대 출신이고, 그 나이에 벌써 간부고, 앞으로 계속 승진해서 못 해도 경찰서장, 잘 하면 그보다 더 위로도 올라가실 수 있는 분이지 말입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얼마나 사치스런 고민인지 아시는지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가슴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우리 형이 쫓아다니는, 집이 철거당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억울하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되지 않고, 평생 안정적인 직장과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그런데다 우리 소대장에게는 앞길 창창하게 뻗어 있는 영전의 날들까지. 어디로 보아도 부럽기만 한 일들을 두고, 그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진 적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야야, 시발. 생각해 봐. 온 집안 식구들이,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내가 경찰대 갈 거라고 믿잖아. 시발. 그거 나왔는데, 신부 되는 거랑 똑같아.신학교 갔다가 신부 못 된 사람은 뭐에다 쓰냐? 그거 배운 것 갖고 어디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똑바로 좀 서 보십쇼, 주임님.”
“너넨 여기서 제대라도 할 수 있지.”
소대장은 내 어깨를 짚으며 몸을 가누려 애썼다.
“야야.”
“예, 김 주임님.”
“내가 지금, 내 동생에게 어떻게 작업해 보려는 사람들 중에서 네가 그나마 좀 낫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아냐?”
“경찰 아닌 거...... 말입니까?”
“경찰, 뭐 그거 나쁘지 않지. 안정적이고. 근데 말이야. 너, 이 안에 있으면 사람이 자꾸 좁아지는 것 알겠냐.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들이 다 경찰이고, 집에 가서도 경찰가족이라고 일가친척이 죄 다 경찰이고, 친구들도, 고등학교 친구들은 지금 군대 가 있거나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고, 대학 친구들은 다 경찰인거야. 바깥에 세상이 저렇게 넓은데, 이 경찰서 담장 밖으로 한 걸음도 못 나가는 것 같은 그거 아냐? 음?”
나는 그것이, 이경 때 처음 여기 발령받아 와서 느꼈던 그 막막함과 어쩌면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높은 담벼락도 없이, 그저 정문 초소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익숙한 세상인데도, 허락 없이는, 혼자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그런 감정. 아니, 소대장의 발목을 붙잡아, 이 담장 안에 뿌리를 박을 때 까지 묻어놓은 것 같은 그런 감정은, 그때 우리가 으레 느끼는 그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일테다. 우리는 2년이지만, 그에게는 40년이니까. 그가 살아왔던 세월의 두 배나 되는 시간을, 그는 제복을 입은 채 살아야 할 테니까. 그것이 선택 가능한 영역이고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대학마저 이쪽으로 진학한 그에게 선택의 여지라는 것이 그렇게 클 수 없다는 것도.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경찰 아닌 인생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그의, 족쇄일지도 모르겠다. 코끼리의 발목을 감은 얇은 새끼줄같은, 그런 빈약하지만 효과적인 마음의 족쇄.
“저는 말입니다.”
“어.”
“제대하는 게 무서웠지 말입니다.”
“미친 새끼.”
“말뚝을 박을까 뭐 그런 생각도 했지 말입니다.”
“......너 의병 제대나 해라, 미친 놈아. 말뚝을 왜 박아.”
“김 순경님 보고...... 정말 말뚝 박고 여기 남으면 어떻게 잘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좀 했지 말입니다.”
“너 순경 시험 보고 경찰학교 들어가서 구르고 나오면 딴 놈이 채 갔을 거다.”
“......그러게 말입니다.”
“너 다음 달에 분대장 아니냐?”
“그렇지 말입니다.”
“그놈의 포순이 슬슬 그만두고 전역 준비나 해, 미친 새끼.”
“전, 포순이 탈을 벗는 것도 무서웠지 말입니다.”
나는 중얼거렸다. 나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더 큰 소대장이, 짐짓 턱을 든 채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씨구.”
“바깥 세상에 뭐가 있을지, 무서웠지 말입니다.”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캡싸이신은 떡볶이에나 뿌리는 거지. 사람들에게 뿌리는 게 아냐. 약하고, 다치고, 그렇게밖에는 세상에 무언가 이야기할 기회를 박탈당한. 그런 사람들에게 그러는 게 아냐. 우리가 정의의 편이고 상대가 악의 편인 게 아니라, 우리 역시 규칙에 의해 움직이지만 상대 역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 것이 두려웠다. 포순이 탈만 해도 그랬다. 그때, 김 순경이 내게 아이스크림 봉지를 건네 주었을 때, 그 탈을 벗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만 해도 좋았을 거다. 그랬으면 김 순경은, 행사 때 마다 따라다니던 그 포순이가 나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그렇게 무서워서 잘도 경찰은 하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했다. 당장 다음 번 행사 끝나고서라도, 그때 아이스크림 잘 먹었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제대가 얼마 안 남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여기서 빡빡 밀고 제복 입고 있으니 꾀죄죄해 보일 뿐 이래봬도 내가 저평가 우량주라고 어떻게 설명이라도 해 봐야지. 그리고 생각을 해야겠다. 이 곳을 나가서 복학할 때 까지 뭘 해야 할 지를. 어떻게 취직을 하고, 무엇을 먹고 살 지를, 무엇을 바라볼지를,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를. 갑갑하고 좁았지만, 언젠가는 이 문을 열고 나가야만 한다. 그게 무엇이 되더라도. 소대장에게는 고작 손바닥 한 뼘 어치밖에 안 될 그 기회가, 적어도 내게는 다른 소대원들만큼은 주어져 있으니까.
“제대하고 번듯하게 하고 와서 김 순경님 찾아가면, 안 죽이실 겁니까?”
“너 누나도 여동생도 없지?”
“형만 하나 있지 말입니다.”
“네가 뭘 하든 난 반 죽여놓고 시작할 거다.”
“경찰이 선량한 민간인에게 그러시면 안 되지 말입니다.”
“내 동생을 노리고 오는 놈이 어디가 선량해. 일단, 너 하는 것 보고. 다 죽일지 반만 죽일지는 그때 가서 보자. 그러니까.”
소대장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쓸쓸하게 웃었다.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 이 안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저 안전하고 순탄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건 가짜야.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 진짜를 봐. 그래도 이 일을 하고 싶으면, 말뚝 박는 건 그때 가서 생각해,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