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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이웃집 신화

2006.02.24 22:4702.24

  처음 세를 얻었을 때는 그저 집이 생각보다 넓고 깨끗하다는 것이 좋았다. 큰 도로가 인접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꽤 조용한 동네였다. 다만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주차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애를 좀 먹게 생긴 게 흠이었다. 그래도 그는 워낙 그 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오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선뜻 계약을 해 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집에 들어와서 한 열흘쯤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옛날 건물이라 그런지 2층에서 밤에 세탁기 돌리는 소리 같은 생활 소음들이 거의 전혀 여과되지 않고 들려왔다. 세탁기가 웅웅웅 하면서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섬유 유연제를 넣으라는 신호음까지 다 들렸다. 아니 사실은, 그 소리를 듣고 2층 남자가 세탁기 뚜껑을 연 다음에 섬유 유연제를 넣는 소리까지도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옆 건물과는 또 얼마나 딱 붙어 있었던지 햇빛이 잘 안 드는 것은 물론이고, 눈이 내린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창문을 열어 바로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잘하면 두 집의 벽 사이를 아무런 도구 없이 기어올라서 3층 창문을 깨고 침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큰 문제는 한 달쯤 지난 뒤의 어느 날 밤부터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들려오면 그는 꼼짝없이 이불을 머리 위까지 푹 덮어써야만 했다. 그래도 그 소리는 이불을 뚫고 아련히 들려 왔다. 아니 그 소리는 다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밤의 적막한 공기를 타고 점점 더 선명해져 갔다. 잠을 청해 보려고 억지로 다른 생각거리들을 꺼내 보아도 곧 온 신경이 다 그 소리에만 집중이 되는 것이었다. 베개까지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누워도 그 소리는 들려왔다. 베개를 뚫고 귀를 막고 있는 그의 두 손을 지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여자의 신음소리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규칙적인 패턴으로 한참이나 반복되다가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다른 패턴을 만들어서 또 한참을 반복되곤 하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눈에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마치 누군가가 여자를 죽도록 고문하고 있기라도 한 듯한 소리가 들렸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도록 급박한 소리였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소리에도 주기가 있고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진짜 저러다 저 여자 죽는 게 아닌가 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서 듣고 있노라면 이따금 웃음소리인지 아닌지 분명히 구별할 수 없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곤 했다. 거기까지 듣고 나면 그날 잠은 다 잔 것이다.
  물론 서른 두 살의 총각이었던 그는 처음에는 그 소리를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처음 그 소리가 들려올 무렵에 그는 소리가 들려오는 천장을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꼴깍꼴깍 침을 삼키곤 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에는 내심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석 달째 거의 사흘에 한 번 꼴로 밤 12시에서 새벽 2시경까지 들려오는 그 오묘한 소리를 듣다 보니 이제는 그 소리가 재미있게만 들리지 않게 되고 말았다. 아니 짜증이 났다. 그것도 모자라서 결국은 그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동네 사람들은 다 뭐하는 걸까? 저 소리는 옆집에서는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이 동네에서 저 천장만이 유난히 얇아서 방음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누군가 하나 싫은 소리를 할 법도 한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 소리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쩌면 윗집 사람은 자기들이 내는 소리가 밖에서도 다 들린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그 집의 방음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TV 소리를 일부러 크게 해 놓고 생활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만하면 들렸을 법도 한데도 2층에서 나는 소리는 끊이지를 않았다. 그는 언젠가 그 뻔뻔한 인간의 낯짝을 한번 봐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층집 주인을 꼭 한 번 만나봐야 할 이유는 또 있었다. TV 케이블을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케이블 기사 말이 케이블을 연결하려면 건물 옥상에서 선을 따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은 건물 바깥쪽이 아니라 2층집 안에 나 있었다. 그는 위층 남자를 찾아가서 언제 한번 평일 낮에 집에 있을 때가 없겠느냐고 물었다. 케이블 기사가 자기 근무시간 이후에는 절대 못 오겠다고 버티고 섰기 때문이었다. 위층 남자는 직장 때문에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언제 하루 열쇠를 내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지만 싸늘한 거절의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케이블 연결은 근 두 달이나 미뤄지고 말았다. 그는 친구들이 케이블 TV에서 봤다는 무슨 미국 드라마 시리즈 같은 것들을 침 튀기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2층에 대한 내면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 중계방송을 케이블에서 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거의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에 그는 위층 남자가 절그럭거리며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뛰쳐나가서 그를 불렀다. 어떻게든 케이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밥도 한 번 같이 먹어본 적 없는 이웃인 주제에 열쇠를 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바로 그 야밤의 신음소리에 관한 항의였던 것이다.
  밤마다 괴로워서 잠을 못 자겠다는 말을 듣더니 위층 남자는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나올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낯짝이 있다면 그런 일을 쉽게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껏이지 그는 위층 남자가 오히려 너무 정색을 하고 나오는 꼴이 못마땅했다.
  “아니 그러면 지난 주말에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그 소리는 뭔데요?”
  그가 그렇게 묻자 위층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띠면서 대답했다.
  “그때쯤에는 아마 미국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을 건데요.”
  두 사람의 담판은 일단 그렇게 마무리 지어졌고, 케이블 건은 결국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고민에 잠겼다. 미국에 가 있었다니, 그럼 그 소리는 뭐란 말인가.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여전히 사흘에 한 번쯤, 길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젊은 여자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예민해진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어느 날은 격렬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신음소리가 한바탕 지나간 뒤에 심란하게도 여자의 울음소리가 약 30분 동안을 서럽게 울려댔다. 귀신인가? 급기야 그는 그렇게도 생각을 해 보았던 것이다.
  귀신인가 하고 생각해 본 것은 위층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래층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사실은 위층 남자 자신도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소리는 반년 전 아내의 두 번째 기일에 처음 그의 귀에 들려 왔다. 처음에는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여자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있자니 어쩐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는 거의 이상적인 여자였다. 절세미인이었다거나, 돈을 대단히 많이 벌어 왔다거나, 성격이 아주 좋아서 모든 것을 다 받아 주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맛없는 된장국을 끓여 주었을지언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제대로 된 밥상을 내 놓곤 했던 그녀였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고 싸움이 붙어서 이런 여자하고는 도저히 1년도 못 버티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을지언정, 1년이 지난 뒤에는 일단 받아주고 나서 나중에 조용히 이야기하는 애교를 몸에 익혔던 그녀였다. 말하자면 같이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진가를 발휘하는 좋은 아내였다.
  그런 그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내내 그녀가 위독한 상태라는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달려가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을 때,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작별인사도 없이 먼 길을 떠나버린 그녀를 보면서 그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내가 살아 있었을 때 남들처럼 부부생활의 즐거움 한 번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 그는 거의 완벽해 보이는 남자였다. 일단 그는 의사였고, 바쁘기는 했어도 바쁘지 않은 시간은 전부 그녀에게 쏟아줄 수 있는 자상함이 있었다. 생각보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아서 좋았고, 예술적인 감각이 빼어나서 좋았으며, 언뜻언뜻 보이는 숨넘어갈 정도로 잘 생긴 그의 외모도 좋았다. 결혼 전까지는 함부로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은 진실한 구석까지 있었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얼마나 완벽했는지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야 그의 유일한 결점을 알게 될 정도였다. 그것은 그가 의외로 성생활에 장애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아내의 눈에 비친 실망의 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껏 쌓아 온 그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그가 그렇게 말하면 아내도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말해 주곤 했다. 그렇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일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 완전한 합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기쁨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서서히 피어올라서 온 세상을 다 채울 수 있는 은은한 향을 뿜어내는 그런 행복이었다.
  “여자들은 남자들만큼 그런 데 목숨 걸지 않아. 그거 못한다고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바보 같은 남자들이나 하는 짓이야. 여자 두들겨 패고 나서 강간하듯이 자기 욕망만 채워 놓고는 남자답게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당신이 훨씬 좋아. 나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해.”
  아내는 혹시나 상처받고 있을지 모를 그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가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아주 짧은 바지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저녁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슬슬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그래서 그는 학회니 세미나니 굳이 자기가 가지 않아도 될 데를 찾아서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단지 그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주 나빠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부터 언제까지 확실히 집에 돌아오지 않도록 보장된 출장 일정은 아내에게 애인이 생길 기회를 제공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내가 죽은 후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으면 좀처럼 잠이 들 수가 없었던 그는, 아내의 기일에 죽은 아내와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고 조용히 누워 있다가 갑자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당장 죽어버릴 것처럼 질러대는 그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자니 그는 아무래도 그 목소리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신음소리 중간 중간에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분명히 아내의 웃음소리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살아서는 온순하기만 했던 아내의 귀신이 저렇게 기일에 나타나서 그의 가장 아픈 부분을 후벼 판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그날 밤 내내 들려오는 그 소리를 끝까지 들으면서 누워 있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렀는지 모른다. 얼마나 가슴이 저려왔는지 모른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로 그는 다시는 그 소리를 대면할 용기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예전처럼 이어폰을 꽂고, 그런 일은 다 잊어버리고 잠을 청했다. 그 일은 정말로 다 잊혀졌다. 아내의 귀신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상상이 아닌가! 그 소리는 그냥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였을 것이다. 여자의 신음소리만 듣고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던 그는 아래층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혔다. 아직도 집을 떠나지 않고 그를 조롱하기 위해 밤마다 격렬한 신음소리와 웃음을 흘리고 있는 아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아래층에서도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다시 이어폰을 빼고 그 소리를 들어볼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아서 몇 달을 그냥 모른 척 넘어갔던 그였다. 그는 직접 그 소리를 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밤이 깊어지자 그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질 때쯤 그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 문제의 소리를 들었다. 미세한 한숨 소리 비슷하게 시작된 그 소리는, 점점 간격이 좁아지면서 간간이 여자의 성대를 울리는 고음의 신음소리까지 섞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수치심 때문이었다.
  소리는 비슷한 템포를 꽤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것은 그냥 들어서는 누군가가 숨을 크게 쉬면서 자고 있는 소리인지 다른 일을 하면서 내는 소리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일상적인 소리에 가까웠다. 단순한 호흡에 가까운 무성음들 중간에 간간이 섞이는 신음소리만이 그 규칙적이고 완만한 템포의 음악을 일상 잡음으로부터 분리시켜주는 단서가 되고 있었다. 서서히 성대를 울리는 소리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그의 눈에도 그 소리가 나고 있는 현장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소리의 주인은 느릿하면서도 정성스러운 손길이 팔이며 등, 목을 서서히 오르내릴 때마다 다리를 비틀고 발끝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자신의 몸속에 잠재된 격렬한 파도를 애써 잠재우고 있었다. 그 파도를 잠재워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심한 요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모든 노력이 아무런 의미 없는 몸짓으로 돌아가고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치리라는 사실쯤은 소리의 주인이나, 소리의 주인의 육체를 탐닉하고 있는 자나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 여자의 신음소리를 연주하고 있는 손의 주인은 그처럼 있으나마나한 선을 지키느라 온 몸의 요동을 거부하고 있는 소리의 주인을 관대하게 내버려 두고 있었다. 결코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일 없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 선이 치워지고 나자 확실히 그 소리에는 성대를 울리고 나온 음들이 점점 더 많이 섞여 갔다. 평범한 숨소리마저도 모두 다 유성음으로 바뀌고 나자 템포는 점점 더 빨라졌다. 어떤 고음이 열 번 정도 똑같은 간격으로 울리고 나면 또 약간은 다른 소리가 열 번 정도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소리의 주인을 어루만지는 손은 그 열 번 정도를 주기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 같았다. 그 주기가 여덟 번, 다섯 번, 세 번으로 짧아지면서 소리의 간격도 점점 더 짧아졌다.
  그 단선적인 주기만으로도 충분히 쾌락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그 소리의 날카로움이 무르익어가자 새로운 변화가 생겨났다. 이때까지의 규칙이 깨어진 것 같은 불규칙한 패턴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불규칙한 소리들 속에서 질서를 추출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두 개의 단순한 패턴이 섞였을 때 나타나는 불규칙이었다. 그것은 곧 여자의 몸을 탐닉하는 손이 두 개가 된 것을 의미했다. 두 개의 패턴이 겹치는 곳에서 신음소리는 두 배 이상으로 높이 올라갔고, 너무 짧은 간격으로 겹치는 곳에서는 생략이 일어나기도 했다. 호흡이 멈추는 것 같은 그 생략된 부분이야말로 여자의 몸에 새겨지는 쾌락의 내밀한 신비를 제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말 그대로 숨이 막히는 경험인 것이다.
  점점 빨라지는 그 두 개의 패턴이 한참이나 반복된 뒤에 약간의 정적이 흐르는 듯하다가 다시 초기의 느린 템포로 단 하나의 패턴이 이어지는 지점이 시작되는 순간에, 소리는 이때까지 들려 왔던 어떤 음들보다도 더 애절하고 강렬한 단 한 개의 음을 뱉어 냈다. 아마도 두 사람의 몸이 이어지는 순간의 소리이리라.
  침대 위에 꼿꼿이 앉아서 거기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대목에서 그는 늘 실패하곤 했던 것이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아내의 침실로 걸어갔다.
  “당신 너무 하는군. 그래. 결혼생활 내내 각방을 써야 했지. 당신도 나쁘지 않다고 했잖아. 연애하던 때처럼 잠들기 전에 서로 문 앞에 바래다주는 게 재미있다고 했잖아. 이제 와서 나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다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는 당신한테 최선을 다 했다고. 그래. 그거 하나만큼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어. 내 힘으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내 잘못이 아니잖아.”
  그는 몇 달째 닫혀 있는 아내의 침실 문 앞에 서서 낮은 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있는 아내의 영혼이 가련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남겨진 자신의 처지가 더 서글펐다.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소리는 점점 더 격해져 갔다.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절들이 떠올랐다. 큰 싸움 한 번 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그들이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아내의 영혼이라면 아무리 끔찍한 모습을 한 귀신이 되어서 나타나더라도 꼭 품에 안아 주리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 바람처럼 드디어 두 사람의 영혼이 재회를 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만남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내의 조소를 정면으로 마주하리라 마음먹고 그는 문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오래 망설이지 않고 손잡이를 옆으로 틀었다. 문을 확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이 머물다 간 냉기는커녕, 생전에 아내에게서 느꼈던 것처럼 훈훈하고 밝은 기운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서서히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소리가 나지 않게 창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젠장, 뭐야 이거. 옆집이잖아.”
  다음날 아침에 집을 나서다가 1층 남자와 2층 남자는 문 앞에서 마주쳤다. 1층 남자가 전날 밤의 그 소리를 들었는지 2층 남자의 얼굴을 멸시가 가득 섞인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2층 남자는 억울하지만 길게 항변할 마음은 없다는 얼굴로 옆집 2층을 무성의하게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1층 남자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위층 남자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평소보다 한층 더 초췌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유심히 봐 준 다음 고개를 휙 돌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갔다. 마치 같은 길을 나란히 걷기도 싫다는 듯한 태도였다.
  2층 남자도 그와 같이 걷기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자리에 한동안 멈춰 서서 1층 남자가 멀리멀리 가 버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옆집 2층 남자가 조용히 대문을 열고 나와서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는 휘휘 가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꽤 오래 저 집에 살고 있는 옆집 남자는 예전에 알고 있던 얼굴에 비하면 완전히 반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걸음걸이도 어쩐지 힘이 없어 보였다.
  ‘너무 무리하는군. 짐승도 아니고. 쯧쯧 사람이 그런 짓거리 때문에 귀신의 탈을 쓰는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속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성욕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는 이제 예전의 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남들과는 달랐다. 비록 성적인 결합은 잘 하지 못했지만, 그뿐이었다. 다른 모든 것에서 두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더 완전한 합일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확신이 그를 더 자신감 있게 만들었다. 아내는 그에게 충실했다. 비록 하찮은 육체의 욕망을 위해서 잠시 외도를 했지만, 그것은 잠깐의 외출에 지나지 않았다. 아내는 항상 그의 영혼이 만들어 놓은 안식처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확신했다.
  그러나 사실 그 확신은 확신할 수 있을만한 게 못 됐다. 그의 아내는 사실 바람을 피우는 동안 삼십 평생에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짜릿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영원히 남는 고차원의 행복이 아닌 순간의 말초적인 쾌락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 몇몇 순간에, 정말로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남의 집 침대에서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돌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속에서 자기 옷도 아니고 남편의 옷도 아닌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녀도 물론 이게 뭐하는 짓일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그래도 그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사실 그 남자는 그다지 볼만한 게 없었다. 남자로서의 매력도 한 눈에 찾기가 어려웠다. 외모도 그렇게 잘난 편이 아니었고, 남들보다 좋은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집은 항상 지저분했고, 집에 놀러 가도 손님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살림을 해 주고 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성격도 역시 자상함이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겉만 어른인 남자일 뿐이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런 남자에게 끌리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남편과의 잠자리 문제 때문이었을까? 그런 문제는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 그 일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말로만 남편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준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녀는 성생활이 인생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사소한 일로 흠집을 낼 필요는 없었다. 남편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옆집 2층에 사는 그 남자에게 끌렸던 것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 때문이었다. 그는 세수도 안 한 지저분한 꼴을 하고 그녀가 챙겨주는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 사실 여자가 많아요. 지금 만나는 사람은 세 명이 더 있어요.”
  그녀는 피식 웃어주고는, 참 뻔뻔스럽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 말이 사실인 것도 같았다. 이따금 선물로 받은 것 같은 못 보던 옷이 걸려 있다거나, 집안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거나, 냉장고에 밑반찬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남자를 독점하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질투심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많은 여자들이 도대체 왜 이런 남자에게 끌리는지가 궁금했다. 더구나 그의 애인 리스트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멤버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더 그랬다. 물론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아무튼 그 남자와의 섹스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던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평소에는 책임감도 없고 대책 없이 게으르기만 하던 그는 섹스에 대해서만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성실했다. 침대 위에서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아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서서히 분위기가 에로틱하게 변하면서 그가 그녀를 가볍게 어루만지고 옷을 벗기고 어쩌고 한 뒤에 침대 위에 몸을 누이기까지의 과정만 해도 대략 한 시간이나 걸릴 정도였다. 그 한 시간 동안 그는 열심히 그녀의 어깨와 팔과 등과 무릎을 쓰다듬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꽉 끌어안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고 안마를 하듯 몸 곳곳의 잘 안 닿는 근육들을 풀어주기도 하는 그런 동작들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적절히 배합해서 해 주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여자는 자신이 진짜로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말았다.
  그 후의 느낌은, 사실 말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느낌이었다.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흥분이 너무 고조된 나머지, 이대로 계속 가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다. 그러면 그녀는 그만두고 싶은 생각마저도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만 두겠다는 말이나 몸짓을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편에서는 무슨 큰 일이 벌어지든 계속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느낌이란 조리 있는 말로는 할 수 없고 그저 죽을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말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말로 표현했던 유일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표현하는 단어나 문법은 인간의 언어에는 충분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 말을 한 뒤였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그는 뭔가 달라졌다. 우선 놀랍게도 셋이나 되는 다른 애인들을 정리한 것 같은 눈치였다. 그리고 그녀와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물론 그런 변화는 다소 불편한 것임이 분명했다. 벽과 벽 사이의 간격이 1미터도 안 되는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와 바람이 난 유부녀로서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부담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집중하면서부터 옆집 남자는 잠자리에서도 더 성실하고 자상한 사람으로 변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만질 때의 손길이 보여주는 패턴도 더 다양해졌다. 단지 수많은 여자를 다루면서 얻은 기술의 차원을 넘어 그는 창의적인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와 섹스를 하는 동안 그녀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아니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번은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녀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었다. 아니 도저히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자기 집이 바로 옆집인 불륜 상태의 여자에게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상태에서 호흡 조절 같은 의식적인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흡이 모자랄수록 몸은 더 애절하게 달아올랐다. 그럴수록 몸은 정신을 더 쉽게 마비시켰다. 그런 상태에서 절정에 이르면, 온 몸은 오직 단 한 곳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 상태로 마지막 남은 인간 세상 윤리의 끝자락인 신음소리 문제로 고민한다. 이 끈을 놓을 것인가 계속 잡고 있을 것인가. 그 긴장 상태가 그녀를 훨씬 더 깊은 쾌락의 나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쾌락이 이성을 누르는 순간에 그녀는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뭐가 보여요?”
  그렇게 급박한 순간에 그 남자가 그렇게 물으면 그녀는 정신없이 대답하곤 했다.
  “구름. 구름이.”
  그렇게 아름답던 그녀는, 황홀하게 짜릿한 나날들 한가운데에 있는 어느 날 오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가 떠난 후에 옆집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느꼈던 것 못지않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물론 남편이 아니었던 그에게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조차 한참 뒤에나 전해질 수 있었다. 다른 여자를 모두 정리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한동안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외로움에 잠겨 있어야 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거기까지 진행시켜둔 일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자 거의 좌절하다시피 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는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하며, 다시 일어날 용기를 상실한 채로 술에 절어서 살아야 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그녀와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열정을 알아보고는 흠칫 놀랐다. 바로 옆집에 그런 여자가 있었는데도 못 보고 지나친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녀의 진가를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여자였다. 평범하고 보수적인 의사의 아내였던 그녀는 한 번 육체와 영혼의 빗장을 열기 시작하자 누구보다도 더 넓게 날개를 뻗었다. 구속 많은 인간의 육체 속에 갇혀 있는 날개가 펴지자마자 그녀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날아올랐다. 그는 그녀 하나만을 따라잡는 것조차 힘겹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생활 전부와 온 신경을 그녀에게 쏟아 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높이 날아오르면 날아오를수록 그는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희열로 온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집착이자 아쉬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허벅지가 굵어져 바지가 불편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야말로 비육지탄(?肉之嘆)을 느꼈다. 사실 그에게는 실의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위에서는 무슨 결과가 있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급기야 그는 그의 책상 위에 거의 3년 동안이나 펼쳐져 있었던 <기타고빈다>를 덮고 말았다. 8개월쯤 전에 은경 씨를 만나서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기타고빈다>는 ‘목동의 노래’라는 뜻이에요.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 여덟 번째 현신인데요, 이 크리슈나와 어느 목동의 아내인 라다의 사랑 이야기거든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가장 완전한 사랑의 원형인 것처럼 이해되어 왔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이 이야기는 신이자 인간인 크리슈나와 라다라는 인간의 만남과 기다림과 질투와 합일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말하자면 열심히 섹스 하다가 해탈하는 이야기랄까.”
  그가 거의 1년 만에 다시 펼쳐 놓은 <기타고빈다>에 대해서 그렇게 말해 주었을 때에도 은경 씨는 그의 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다른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의 왼손이 그녀의 속옷 틈으로 파고 들어가 한 손 가득 오른쪽 가슴을 쥐고서는 부드럽게 요동치기 시작한지가 벌써 15분쯤 지난 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에 대한 설명은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이야기 계속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지식은 다 언어를 통해서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그녀의 몸에 직접 의미를 새기는 일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은경 씨는 죽은 옆집 여자만큼이나 아름다운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여자를 이렇게 쉽게 다시 발견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만 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도 놀라웠다. 영혼에서 육체로, 육체에서 영혼으로 각각 엇갈려가며 채워져 있는 빗장들을 서서히 풀어가면서 그는 그녀에게 잠재되어 있는 놀라운 열정을 보게 되었다. 그녀 역시 그를 만나자 곧 자신의 열정에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벌써 몇 달째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집에서 육체와 영혼의 궁극을 바라며 서로를 탐닉했다.
  그녀는 가슴을 파고드는 그의 손길에 전신에 짜릿한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과 몸에 서로 엇갈려 채워져 있는 빗장 같은 것은 알지 못했지만 남자의 손이 속옷을 파고들 때면 남녀유별의 금기를 넘는 하나의 경계선이 무너짐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심한 거부감과 갈망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손은 성급하게 선이나 점을 자극하지 않고 손바닥 전체를 써서 넓은 면으로 그녀의 가슴을 포근하게 감쌌다. 두 번째 빗장에서 그녀의 몸은 자신의 가슴을 통해 결국에는 영혼까지도 부드럽게 에워싸는 그의 손길이 더없이 만족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좀 더 좁고 예민한 곳에 자극이 모아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묘한 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그 빗장을 함부로 푸는 법이 없었다. 짜릿한 전류가 빗장을 충분히 헐겁게 만들도록 충분히 내버려 둔 다음에야 그는 좀 더 예민한 곳을 자극하기 위해 손가락을 썼다. 빗장이 벗겨지는 순간 그녀는 마치 악기가 된 것처럼 그의 손끝이 보여주는 섬세한 동작에 소리로 화답했다. 그 소리는 그녀 자신과, 그녀의 몸에 손을 놓고 있는 자와, 차갑게 식은 벽과, 한적한 골목의 고즈넉함을 뚫고 타인의 영혼과 육체의 빗장까지도 한 꺼풀씩 벗겨냈다.
  몸에 어설프게 걸쳐져 있던 의식의 허울들을 벗겨내기 위해서 그녀가 두 팔을 들어 그가 옷을 벗겨내는 것을 허락할 때, 그러면서도 바지는 그대로 입고 있는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절반의 불안한 자유와 나머지 절반의 오래된 안도감을 느낄 때 다른 하나의 빗장이 벗겨져 나갔다.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그때쯤이면 온 동네 사람이 다 신경을 모으게 만드는 그녀의 숨소리가 단선적인 패턴을 만들어 내며 이웃집 벽을 뚫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둘 다 서있는 채로 그가 그녀의 바지를 벗기고 나서 속옷 위로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자 그녀는 얇은 면에 불과하나마 그의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해 주는 장벽이 아직도 가로놓여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시원한 공기가 여과 없이 감각 세포에 직접 와 닿는 상쾌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 사이에서 허리를 비틀었다.
  여자가 내는 신비한 파장의 소리에 공명한 1층 남자가 빗자루 막대기로 천정을 두드리고 있을 때, 여자는 침대에 눕혀졌다. 남자의 손길이 마치 섬세한 곡을 연주하듯, 수백억 년이 넘도록 계속 연주되었을 것이 분명한 섹스라는 제목의 흔하고 흔한 곡을 자신만의 천재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고 변주해서 내어 놓자 그녀의 신음소리와 소리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 사이에 가로 걸린 빗장이 풀려 나갔다. 그러자 소리는 한층 더 신묘한 소리를 내며 무한한 공간을 향해 퍼져 나갔다. 비록 그 소리는 하늘까지 가서 닿지 못했지만, 그 소리와 1층에서 울리는 빗자루 막대기의 타악에 공명한 2층 남자가 씩씩거리며 바닥을 발로 쿵쿵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길이 때로는 선선한 바람처럼, 때로는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는 사이 드디어 그녀의 육체적 죽음과 정신의 고양 사이에 놓인 첫 번째 빗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그의 온 신경이 모인 육체의 끝자락이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죽을 것 같아! 죽어도 좋아’
  생명의 정의조차 스스로 흔들어 놓는 이런 외침이 온 몸의 전율을 타고 미세하게 떨리는 다리를 지나, 저절로 벌렸다 오므려지기를 반복하는 발끝에까지 이르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몸의 리듬이 덜그럭거리며 부딪쳤다. 점점 빨라지는 신음소리의 리듬이 한참이나 이어진 끝에 마침내 그 빗장이 벗겨지는 순간, 그녀는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구름이……?”
  그는 그 소리를 듣고는 그녀가 구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은경 씨가 구름에 닿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었다. 그녀는 훨씬 더 높이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몇 달에 걸친 재기 노력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모든 일을 완수하는 순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 싸우기를 포기한 1층 남자와 2층 남자는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그날따라 유난히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여자의 성대를 거쳐 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저 사람들, 저러다 진짜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곧 죽어버릴 것 같은 그 소리에 리듬이 있고 패턴이 있는 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무슨 동작이 반복되고 있는 것인지가 뻔히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문처럼 들렸지만 고문이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일곱 번째 빗장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언어로는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묘사할 수가 없었다. 일곱 번째 빗장이 풀리는 순간 여자는 자신의 존재와 남자의 존재 사이에 놓여 있는 육체라는 것이 실체인가 허상인가 하는 화두에 이르렀다. 몸의 쾌락이 극에 달하자 존재는 육체의 무상(無常)함을 깨달으며 일곱 번째의 빗장을 풀었다.
  한 번도 입 밖에 내 본 적 없는 황홀한 소리를 짐승처럼 잇따라 내지르는 동안 여자는 자신의 존재와 그의 존재 사이의 구별이 진리인가 허상인가 하는 벽에 도달했다. 여기에 이르자 드디어 몸의 쾌락이 두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합일의 경지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졌다. 오직 잡념을 제거한 두 개의 순수한 정신만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교합으로부터 오는 극한의 쾌락만이 살아남아서 여덟 번째 빗장을 풀었다.
  그녀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의 영혼은 그 울부짖음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가 있었다. 아홉 번째 빗장이 열리는 순간에 이미 거의 하나가 되다시피 한 두 사람의 영혼은 ‘나’의 무상함을 깨달았다. 열 번째 빗장이 열릴 때, 이미 사라져버린 ‘나’는 창조의 신 브라흐만과 파괴의 신 시바와 그 사이에서 우주를 유지하는 비슈누 신의 구별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신격과 인격을 한 몸에 갖춘 거룩한 비슈누의 여덟 번째 현신 크리슈나와 목동의 아내 라다 사이의 구별조차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마침내 열한 번째 빗장을 사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1층 남자는 정말로 숨이 넘어가거나 누구 한 사람이 영원한 파멸의 나락에 빠질 것만 같은, 난생 처음 듣는 그 격렬한 울부짖음에 놀라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해탈에 이른 두 사람은 어느 틈인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의 깨달음의 결과물인 그 무의미함이야말로 진정으로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 남자는 경찰이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얼핏 눈을 뜨고는 여자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올라갔다 왔어요?”
  여자는 제대로 설명을 해 내지 못했지만 남자는 거기가 어디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구름의 높이를 훨씬 지나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다음 빛들이 무한히 빨려드는 우주의 어느 허무 근처에까지 올라갔다 온 모양이었다.
  “뭘 봤어요?”
  “우주선. 많아.”
  그러자 남자는 여자에게 그 우주선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대충 손가락으로라도 그려 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세 가지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그는 밀려오는 피로 때문인지 스르르 눈을 감으며 이런 생각에 잠겼다.
  ‘역시 13함대만 있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12함대가 벌써 합류한 것만도 놀라운데 7함대가 어느새 거기까지 이동해 있었다니, 침공이 임박한 거야. 그런 대규모의 기습을 막아낼 시간이 있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금만 더 늦었어도 적의 공격에 대비해 함대를 재배치할 마지막 기회마저도 잃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꼈다.
  ‘당장 보고해야겠군. 좀 쉬고 싶었는데.’
  그는 어느새 곤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어깨를 돌려서 등이 자기 쪽을 향하도록 옆으로 돌려 눕혀 놓았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이번에는 다른 데로 보내 줄게요.”
  “정말? 어떻게 가는데?”
  그는 본부가 있는 곳의 좌표와 그곳으로 향하는 항로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힘없이 늘어진 그녀의 팔다리를 안간힘을 다해 움직여 가며 다음 여행을 위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mirror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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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새 06.02.28 14:33 댓글 수정 삭제
    뭐랄까, 탐지용으로는 효율이 좀 떨어지는 방식이라는 느낌이... *웃음* 아무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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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6.02.28 16:38 댓글 수정 삭제
    효율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전.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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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훈이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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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6.03.10 14:16 댓글 수정 삭제
    들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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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chnahi 06.03.12 08:39 댓글 수정 삭제
    기본 에티켓도 없는 독자라니... 여기 초딩도 들어오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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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12.12 22:27 댓글 수정 삭제
    이제야 봤습니다. 아니, 대체 왜 다 보고 이것만 안 본 거지. ... 아무튼, ... 괜찮은 방법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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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7.01.11 00:08 댓글 수정 삭제
    아, 보셨군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법일지도 몰라요. 지금 이 시간에도 우주 어딘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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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7.03.19 15:29 댓글 수정 삭제
    장르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읽기 어렵다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의도로 쓴 글입니다. 뱀파이어 앤솔 준비로 그런 이야기나 그런 글들이 한창 나올 때 쓴 건데요, 뱀파이어 소재 글들을 집중적으로 읽게되다 보니 뭔가 뱀파이어 장르를 만드는 규칙들이 보이더군요. 그것들을 잡아내면 글의 나머지 부분은 수월하게 휙휙 읽게 되는데요, 그런 규칙들을 다섯 가지쯤 가져다가 쓴 글입니다. 클리셰가 있다구요? 클리셰를 가지고 썼습니다. 이 글의 구조를 이루는 핵심 공법이 바로 클리셰들입니다. 아래에도 좀 썼지만, 판타지는 무엇일까, SF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답만 하는 글들을 좀 쓰다가 거기에서 발견한 것들을 써먹는 글을 쓴 건데요, 역시 뭔가 공을 들였으면 나중에는 그 열매를 따먹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거울 사이트를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안 나왔을 글이랍니다.
  • No Profile
    볼티 08.03.11 11:54 댓글 수정 삭제
    연속으로 교신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군요. 교신기나 교신자나.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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