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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륜 오래된 사람

2003.11.28 21:3611.28

  형이 사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수능이 끝나자마자 나는 할아버지한테 갔다. 어차피 집은 근처니까. 합격 발표가 나고 매일 놀러다니던 도중에 집에 들어오니 작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오셨어요?”

  작은 할아버지는 언제나 말쑥하고 양복을 입고 다니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장에서 뽑아낸 옷을 바로 입고나온 것 같아서 싫지만 그래도 좋은 분이시다. 한번은 투덜거렸더니 당신은 수제만 입으신다고 꿀밤먹었다. 그리고 못보던 여자가 있었다. 할아버지 앞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강수정, 내 손자야.”

  조금 낡아 편해보이는 스웨터, 스웨터보다는 훨씬 더, 할아버지만큼이나 오래된 여자였다.

  “아, 그래. 이름이?”

  나는 고개를 까닥거리고 대답했다.

  “김병욱이요.”

  좀더 공손하게 인사하라고 작은 할아버지가 눈을 부라리셨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연지도 왔어요.”
  “오냐, 사돈처녀, 오랜만에 보네.”
  “예, 안녕하셨어요?”

  이모가 활달하게 웃으면서 엄마와 같이 들어오다가 그 여자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수정씨.”
  “오랜만이네요.”
  “아예, 안녕하세요.”

  식구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이모, 고모, 외삼촌,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 당숙 - , 내 사촌이랑 육촌들. 설날같았다. 하지만 설날같이 시끄럽진 않았다. 아버지는 심란해보였다. 작은 할아버지는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것처럼 웃으셨다. 이모는 여전해보였지만 불안하면 자꾸 화장고치는 거 다 안다. 사람이 꽉 찬 거실에 떠도는 불안하고 초조한 분위기. 평소와 같은 건 외할아버지와 작은엄마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기 집 안방처럼 편해보이는 그 여자.
  친구놈들이 밤에 나오라고 했지만 나갈 수 없었다.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열시쯤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10분쯤 뒤 그 여자가 방에 들어갔다. 고모가 입술을 떨며 말했다.

  “오빠, 난 안들어갈래요.”

  큰아버지가 알았다면서 일어섰다.

  “너희도 여기 있어라.”

  아버지 말씀이셨다.

  “난 갈래요.”

  이 와중에서도 2층에서 책을 보고있던 형은 내려오긴 했지만 잘됐다는 듯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난 들어가고 싶었다.

  “작은아빠, 나도요.”

  병연이가 구겨진 치마를 펴면서 일어났다. 우리중 더 이상은 없었다. 내가 허리를 쿡 찔렀다.

  “넌 맨날 나만 따라하냐?”
  “무섭다고 도망가는 게 누군지 보자.”

  병연이가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큰엄마에게 꼬집혔다.

  “또 싸워?”

  방안은 담배연기로 가득차 있었다. 엄마가 이마를 찌푸리면서 전자방향제 리필을 갈아끼웠다. 나도 담배가 고파졌다. 기다리다가 슬슬 지루해지려고 할 때쯤, 누가 숨막히는 목소리를 냈다.

  “아버지!”

  큰아빠인지 아버지인지 모르겠다. 작은아빠인지도. 목소리를 구분하기가 어렵도록 다들 똑같은 목소리시다. 여전히 할아버지는 단정하게 앉아계셨지만 내가 보고 생각했던 건,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건 얼굴이었다. 얼굴이 사라졌다. 몸의 어디라도 마찬가지지만 얼굴은 맞으면 부풀어오른다. 뼈가 부러지면 살이 붓는다. 할아버지의 눈이 금세 살덩이에 묻혀 사라졌다. 나는 병연이의 눈을 가렸다. 손바닥이 젖었다. 새롭게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할아버지는 일어섰다. 아버지가 주춤주춤 무릎걸음을 걸었다.

  여자가 새 담배를 입에 물고 할아버지 앞에 섰다. 내가 눈을 깜박거리는 그 짧은 순간에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워계셨다. 몇 해전 외할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거기 있었다. 금방이라도 깨실 것 같은데 외삼촌이 곡을 하셨다. 그런데 저 이부자리에는 낯선 사람이 누워있다. 얼굴은 똑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 나는 혹여 늙은 할아버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착각도 완전한 착각. 아예 다른 사람이 누워있다.

  “희철씨, 화장 잊지 마.”

  그 여자가 정적을 깨뜨리고 나갔다. 아직 담배는 반도 타지 않았다. 큰엄마가 곡을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여자를 쫓아갔다.

  “왜 따라와?”

  대문을 닫고 그 여자가 말을 걸었다. 나는 여자의 걸음을 쫓아가면서 말했다.

  “가르쳐줘요.”
  “뭘?”
  “아까 그거.”

  턱턱 걷던 여자가 딱 멈췄다. 여자치고는 큰 키. 나와 눈이 마주쳤으니까.

  “너네집은 재미있어.”
  “네?”

  여자가 피식거렸다.

  “너네 집 같은 집은 본 적이 없어. 나쁘지 않아.”

  전혀 엉뚱한 소리만.

  “조만간 볼 걸. 그 때까지 잘 생각해봐.”

  정말로 겨울이 가기 전에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번엔 눈을 안 감았는데도 어라 나 감았었나 하고 생각했다. 잠깐 딴생각하는 동안 그 여잔 벌써 나갔다. 걸음도 빠르다. 그새 대문밖에서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불렀다.

  “강수정!”

  그 여자는 멈춰서 나를 기다렸다.

  “생각해봤어. 가르쳐줘.”

  지겨워하는 표정으로 그 여자는 대꾸했다.

  “왜?”
  “나도 그렇게 되니까.”

  놀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강수정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도모르게 시선을 피했었던 것을 깨달았다.

  “지금 가르쳐달라는 건 아냐. 졸업하면 바로 군대갈 거니까 그 때 가르쳐줘.”

  제대하기 전에 또다시 장례를 치렀다. 원래 한 번의 장례는 또다른 장례를 부른다고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연이어 이은 세번의 장례로 이제 집안에 오래된 사람은 없었다.  제대하고, 강수정을 찾아갔다. 돌아가신 당신이 그러했듯이 강수정은 여전히 똑같은 얼굴이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기다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강수정은 모자를 쓰고 나왔다. 터미널로 가서 한 시간 정도 국도를 탔다. 내려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내려서 오솔길을 걸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너네 집은 재미있어.”
  “응?”
  “그건 피로 유전되는 게 아니라고 해.”

  나는 한번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강수정은 설명했다.

  “오래된 사람은 한 집에 하나도 많아. 너네처럼 몇 명씩이나 되는 집은 여지껏 보적이 없어. 단 한번도.”
  “나도 본 적은 없어.”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젊은 경험은 너네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지.”

  강수정은 깔깔 웃으면서 가볍게 산을 탔다. 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에 풀이 많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듯 희미한 길이었다. 강수정은 능숙하게 길을 찾았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문짝이 두 개 나타났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강수정은 몸으로 문짝을 밀고 들어갔다.

  “나야, 나와.”

  나는 덩달아 담배를 물고 둘러보았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TV에서 시골이 나올 때면 흔히 나오는 집이었다. 돌로 쌓은 기초 위에 지은 집. 일자형이고, 마당과 평상이 있고, 기둥이 있는 마루가 있고, 창호지 바른 여닫이 문이 두개에 컴컴하고 깊어보이는 부엌. 처마 밑에는 장작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지금도 이런 집이 있었나? 누가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집이었다.

  “나오라니까.”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나는 깜짝 놀랐다.

  “누굴 데려 온 거야?”

  쇳소리가 섞인, 녹이 잔뜩 슨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운철이 손자야. 말했었지?”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도 오래되었다. 부엌에서 불쑥 머리가 솟아올랐다. 하마터면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당연히 죽는 거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되면 죽을 거라고. 할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셨으니까. 하지만 그건 강수정 때문이었던 걸까. 난 강수정이 할아버지 모습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희철이가 끝이 아니냐? 희한한 혈통이군. 역시 저주받은 거야.”

  클클 거슬리는 목소리로 고깃덩이가 웃어댔다. 눈이 묻혀버렸는데 입은 있나 했더니 검은 구멍이 뻐끔뻐끔 움직였다.

  “당신 꼴보다 나은 것 같은데?”

  나는 수돗가에 담배를 집어던졌다. 수도도 아니다. 펌프였다. 이 집, 전기는 들어오는 걸까?

  “너는 이 꼴을 피해갈 것 같으냐?”

  헤에, 눈이 없는 줄 알았는데 뭔가 번뜩이긴 하는군.

  “열받으니까 들어줄만한 목소리인걸. 계속 깔아달라구, 영 듣기 괴로우니까.”

  드디어 그가 부엌에서 발을 내디뎠다. 부엌이 무척 낮은가 보다. 올라선 그는 나보다 머리하나가 컸다. 강수정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서면서 말했다.

  “성질 죽여. 도발한다고 넘어가냐?”

  그는 코웃음치고 마루로 올라갔다. 강수정은 그가 나온 부엌으로 들어가 그릇을 갖고 왔다. 뭔가 힐끗 봤더니 수박화채였다.

  “이제 그만 죽어.”
  “싫다.”
  “넌 죽었어.”
  “아냐.”

  고깃덩이 목소리는 지극히 차가운 반면 강수정은 편안하게 말했다. 화채그릇을 비워가면서.

  “이성이 남아있을 때 죽어.”
  “싫다. 난 살아있어.”
  “내가 살아있을 때 결심하는 게 좋아.”

  강수정은 냉정했고 그는 침묵했다.


  나는 물어봤다.

  “우리 할아버지도 계속 살아계실 수 있던 거야?”
  “설마.”

  강수정은 픽 웃으며 아까부터 망설이던 일을 했다.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아주머니가 내릴 때까지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논과 밭이 줄짓고 낮고 부드러운 능선이 흐르는 창밖에 슬쩍 담배를 내밀어 재를 흩날렸다.

  “저건 우리의 최후야.”

  진저리난다는 얼굴이었다. 올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 강수정은 신경질을 잔뜩 부리고 싶은 걸 참는 듯했다. 연기를 즐기면서 그런 얼굴을 조금씩 풀며 강수정이 말을 이었다.

  “저건 죽은 거야. 육체는 계속해서 붕괴되어 가지. 그 상태에선 본능도 뭣도 없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선망 뿐이야.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어.”

  바람때문에 연기와 재가 같이 날렸다. 저 앞에서 기사 아저씨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라니. 짜증난다는 말투로 내뱉은 ‘우리’는, 듣기 싫었다.

  “쟤가 역겨웠어?”
  “저런 걸 보고서도 할 마음이 드냐고 데려온 거 아냐?”

  마음이 비틀린다. 이 여자 정말 비뚤어졌다. 나는 시니컬하게 되물었지만 강수정은 칼끝을 유연하게 받아넘겼다.

  “뭐 그런 것도 있고, 역겹지 않았어?”

  끝까지 대답을 들어야겠다고 나를 또렷이 쳐다보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외면한 채 대답했다.

  “그래.”
  “내리자.“

  강수정은 담배를 툭 쳐서 불을 꺼뜨리고 내렸다.

  “여기서 한 시간 기다리면 버스가 올 거야.”

  강수정은 싱긋 웃었다. 한없이 심술궂게,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난 저 집에 갈 거야.”

  손가락이 논을 앞에 두고 낮게 내려온 산자락을 타고앉은 파란 지붕의 집을 가리켰다.

  “생각해보고 오든지 버스타고 가.”

  나는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망설이는 건 너잖아.”

  너는 그렇게 심술궂은데 내가 이딴 말 한 두마디 한다고, 뒤늦게 생각했다. 여지껏 단단하게 감정과 생각을 감추던 웃음이. 냉담한 것보다는 웃는 걸 깨뜨리기가 더욱 힘들다. 웃음은 쉽사리 깨뜨려지지 않는다. 상처받은 얼굴. 무방비하게 상처를 드러내놓는 얼굴. 강수정은 곧 휙 돌아서서 논두렁으로 발을 내딛었다. 짧은 시간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주보았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런 말 해서는 안된다고 새각했는데 해버렸다. 하지만 사과해서도 안될 것 같았는데.

  나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 무엇을 본다 해도 배울 작정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건…… 참기 힘들었다.

  내가 천천히 걷는 동안 벌써 강수정은 그 집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마당에서 소녀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장례를 치르는 걸까. 나를 보고 소녀가 생긋 웃었다. 아, 나 대체 강수정을 어떻게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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