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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20주년 기념 단편  ------    

새벽의 도시 미르가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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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빛과 어둠이 휘저은 달걀처럼 뒤섞인 새벽녘, 광활한 사막 저편의 어슴푸레한 지평선 끝, 오직 공기만이 칼날처럼 차갑고 예리한 그때, 하늘과 땅의 경계에 그 도시가 있다.

새벽의 도시를 봤다는 사람은 있어도 직접 방문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목격담은 새벽 기도 때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주장과 똑같이 허언 취급받았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도시는 황금으로 벽을 쌓고 대리석 기둥을 세웠으며 온갖 보석 장식을 달아서 경이로우며 아름답다고 전해진다. 분명 그 도시에는 가난도 괴로움도 슬픔도 없을 거라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여유로우며 외모 또한 사는 장소에 걸맞게 아름다울 거라 말한다.

그러나 새벽의 도시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 태양의 빛과 경쟁하려는 듯이 찬란한 빛을 내뿜던 도시는 태양이 검은 하늘을 잿빛에서 노란색으로 물들였다가 곧바로 푸른색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는 순간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마치 도시가 태양을 두려워하는 듯이, 아니면 오직 세상에는 태양의 황금빛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듯이. 그 때문인지 새벽의 도시는 먼 지역 다른 이들에게서 황금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고, 도시 안의 모든 사물은 황금으로 이루어졌다는 풍문도 있다. 사냥꾼과 모험가들이 황금을 캐러 지평선 너머로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거나 도적과 괴물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새벽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멀리에서 본 인상비평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목격담 속에 존재하는 도시는 주먹보다 작은 크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눈이 마주치면 종적을 감추는 다람쥐처럼, 새벽의 도시는 말 그대로 새벽이라는 짧은 순간만 인간의 눈에 머물기를 허용한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에 가슴이 뛰는 사람은 모험가의 자질이 있으리라. 피 안에 흐르는 것은 식물이 아니라 동물의 마음이다. 거북이가 아니라 토끼의 마음이다. 네발짐승이 아니라 새의 마음이다.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라 온 세상을 한눈에 보고 싶어 하는 사람만이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렇게 사라진 모험가 중에 내 아버지 잔다르닉이 있다.

아버지는 새벽의 도시를 찾으러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내 나이는 다섯인가 여섯 살 때였다. 잔다르닉은 유명한 모험가였다. 내가 사는 룬타나르 왕국 수도 왕궁 앞 광장에 동상이 세워진 전설의 용사 카이골츠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룬타나르 건국영웅이며 온 세상에 무수한 모험담을 남긴 인물.

3천 년을 살았다는 사악한 괴물 슈랍-샤울마오스를 죽였고, 높은 탑 위에 있는 코가 길고 팔이 네 개인 골룽자 종족의 나라를 방문하여 분쟁을 해결했으며, 하르푼 사막 밑에 가라앉은 미궁을 탐사하여 고대 왕국의 보물을 찾아냈고, 세상에서 가장 큰 폭포의 수원(水源)을 지배하여 세계의 운명을 바꾸려는 마법사 티모진-요토툰을 쓰러뜨렸다고 전해진다. 카이골츠는 전설의 섬나라 융귀마트리를 찾으러 바다 저편으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고, 이런 모호한 최후가 그를 더욱 신성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내 아버지 잔다르닉은 많은 모험에 참가해 카이골츠에게 힘을 보태준 또 하나의 용사였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카이골츠의 여러 동료 중 한 명, 밤색 머리카락의 애꾸눈 도적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이름 또한 기록이나 음유시인의 노래마다 조금씩 달랐다. 아버지가 굳이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표로 한 사람만을 전설의 영웅으로 만들어 떠받들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이겠지.

내가 열 살을 넘을 무렵, 어머니는 비로소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비록 건너 건너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가 홀로 사막 한복판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누구도 그를 봤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어머니의 슬픔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기에 너무 어렸던 탓일까, 아니면 내게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던 노력이 성공한 걸까. 목수인 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식사를 마친 뒤 곤히 잠들었다. 어린아이였던 나와 비슷한 시간에 잠들었고, 내가 일어날 때면 이미 어머니가 일을 나간 후라 집 안은 늘 고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머니보다 이웃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다 쉬는 날에 어머니는 부모로서의 책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요리를 만들어주실 때 그랬다. 일라시아 강에서 잡은 물고기 뱃속에 감자, 삶은 달걀, 양파, 곡물 등을 채워 넣고 향신료를 뿌리며 구운 요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 음식을 좋아하기에 자신과 사귀게 되었다고, 즉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은 어부의 아내가 된 것 같다고. 아버지는 삶의 대부분을 집과 고향에서 떨어져 지냈고, 얼굴마저 가물거릴 때쯤 돌아오곤 했으니까. 오직 나를 뱃속에 품었다가 세상에 풀어놓은 기간 동안만 곁에 머무르며 자신을 지켜주었으니, 두 사람의 부부생활은 그때가 전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힘들고 바쁜 생활을 반복하는 삶. 어머니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실의와 그리움을 그렇게 일상에 몰두하며 잊어버리려 애쓴 것 같다.

아버지와의 재회를 포기한 이후부터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나를 여행과 모험의 세계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려 애썼다. 내 취미는 아이들과 함께 목검을 휘두르며 노는 모험 놀이였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일하다 틈틈이 나를 붙잡고 집으로 들어가 요리와 재봉을 가르치며 재미있지 않으냐고 부추겼다. 하기 싫은 가사노동을 억지로 시키면서 결혼하면 얼마나 좋은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은 늘 저 하늘 저편을 향해 있었다. 구름 너머, 산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거기엔 어떤 나라가 있고 어떤 사람이 살고 있으며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고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일찍이 잔다르닉이 펼쳤던 그런 모험을 나도 떠나보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 든 반항심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내 몸속에 흐르는 피는 아버지 쪽이 더 많이 차지하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등을 보며 여행과 모험의 세계를 동경했다. 목말을 태워준 어머니의 목을 양발로 끌어안고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향해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늘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가슴이 두근대는 새롭고 희망찬 세상을 향해 떠나는데, 나는 왜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건지. 이 작은 몸이 원망스러웠다. 어서 자라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와 나란히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

어머니는 나무를 잘라 가구를 만들거나 수선하는 목공 일을 했는데 솜씨가 좋아 주문이 늘어났고, 혼자 시작한 일이 규모가 커지자 조수 세 명을 거느린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직업조차 내게 뒤를 잇게 하려는 마음이 없었는지 공방 안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막았다.

그래도 모험을 향한 내 꿈은 막지 못했다. 어머니가 정교한 솜씨로 나무를 자르고 풀을 엮어 소꿉놀이 도구를 만들어주었지만, 나는 공방 주위에서 나뭇조각을 주워 어설픈 솜씨로 칼을 만들고, 기사가 되어 상상 속의 괴물과 싸워 보물을 얻고 영웅이 되는 상상을 하며 놀았다. 어머니가 만든 바구니는 방패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나 불행히도 어머니는 병에 걸려 쓰러졌다. 톱밥과 먼지가 많은 작업환경 때문일까, 배우자를 잃은 뒤 늘 자기 전까지 취하도록 마셨던 술 때문일까. 원인은 분명치 않았지만 어머니의 몸에서 떠나가는 생명의 징후는 의술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영혼은 이미 아버지를 잃은 순간부터 몸을 떠나고 있었으니, 텅 빈 껍데기가 된 육체가 이 세상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슬픔을 잊기 위해 작업과 술에 의지했던 어머니. 넓은 공방 안에는 주인을 잃은 작업대와 만들다 만 책장이나 침대 같은 가구들, 그리고 취미로 만든 목재 조각품이 즐비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에만 집중하는 순간이 좋다고 말했던 어머니. 당시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지만 지금은 안다. 왜 주문받지도 않은 일까지 하면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는지.

어머니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병상에서도 내게 절대 마을을 떠나지 말고 일찍 결혼을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웃집 아이 나르닝을 은근히 내 배우자감으로 염두에 두신 것 같았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주는 착한 아이지만 같이 놀기엔 둔하고 모험에 관심이 없는 따분한 녀석이다.

어머니는 나르닝과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는 유언을 남겼다. 나는 손을 꼭 잡아주며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를 마친 직후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났다.

공방은 어머니의 조수들에게 넘겼고, 집과 가재도구는 팔아서 여행자금을 마련했다. 귀찮은 절차 따윈 필요 없었다. 나는 공방에서 함께 일하던 어머니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마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여러분이 이 공방을 소유하여 계속 사업을 이어가시라고. 순박한 그들은 놀라며 만류했지만 내가 거듭 주장하자 진심임을 이해했고, 그들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잘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가게의 이름 역시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지금까지 부르던 〈힐메이다의 공방〉으로 변함없이 유지하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났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이다. 어른이 되는, 세상을 향해 떠나는 첫걸음. 내게 헌신한 어머니의 사랑은 깊고 내가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삶, 그가 살고 싶어 했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을 것이다. 내 두 발은 어머니가 묻힌 땅을 단단히 딛고 있되 두 눈은 아버지가 떠난 하늘 저편을 향해 있었기에.

 

(전문은 20주년 기념호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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