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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유예의 끝

2018.09.01 00:0009.01

유예의 끝

해망재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 아이가 마침내 산도를 빠져나가던 그 감각을, 경윤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전에 있었던 고통도, 그 직후에 의사에 간호사에 남편까지 모두가 아이에게 집중하여 혼자 분만대 위에 버려진 듯한 느낌도, 그 순간의 기억으로 모두 상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랫도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흐르는 채, 가슴을 풀어헤치고 갑자기 아기가 안겨졌다. 피와 태지를 대충 닦아내었을 뿐인 아이는 가냘프게 울었다. 그래, 엄마야. 경윤은 웃었다.

모성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발명된 감각이었다. 경윤이 책을 읽고 대학에서 배워서 알기로는 그랬다. 노동력이 늘 부족하던 시대, 전쟁으로 수도 없이 죽어나가고, 피임이라는 게 없어서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던 시대에는 모성같은 것을 굳이 따질 것도 없었다. 왜, 카테리나 스포르자였나. 자기 아이가 눈 앞에서 살해당해도 “아이같은 것은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다!”며 일갈했다고 하지 않았나. 로코코 시대의 귀부인들은 자기 아이를 제 손으로 키우지 않았다. 유모에게 맡겼을 뿐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여자들은 공장에 나가 일을 하며 제 아이를 탁아소에 맡겼다. 정말로 모성이라는 게 자연적인 본능이라면 그랬을 리 없다.

“웃기지 마.”

경윤은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웃으며 말했다.

“그런 책 쓴 사람은 자기가 아이를 안 낳아봤든가, 뭔가 애정결핍이 있는 걸 거야.”

“와, 많이 변했네.”

남편은 신기하다는 듯 경윤과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당신 지난 달 까지만 해도, 내가 모성애 운운 한다고 무식한 사람 취급을 했으면서.”

“그건 그 때고.”

“내로남불이세요, 아이고.”

남편이 다가와 경윤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이제야 철이 든 어린애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그게 전혀 거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이를 품에 안은 만족감과 행복감이 너무나 커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리원의 복도에서 마주친 여자들은, 모두가 경윤처럼 만족스러운 것 같진 않았다. 잔뜩 쇠약해진 여자, 제 아이를 들여다보면서도 제대로 웃음짓지 못하는 여자도 있었다. 문득 경윤은,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에 걸리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대체 왜? 이렇게 완벽한 감정을 앞에 두고도?


“요즘은 이게 최신 유행이에요, 어머님.”

조리원에서 만난 영업사원은, 아기가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을 3D 홀로그램으로 만드는 서비스를 소개했다. 분만 전에 미리 간호사에게 신청하면 고화질의 소스를 미리 녹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준다는 설명을 들으며, 경윤은 분통이 터졌다. 그녀는 마지막 달에 자궁경관무력으로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느라, 이런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 아기의 손바닥 발바닥과 통통하고 귀여운 엉덩이의 형태를 석고 조형으로 떠 주는 기본 서비스만 겨우 신청했을 뿐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보존하고 싶은 게 당연한 건데. 통탄할 일이었다. 병원에 누워 있느라 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니.

“다들 하는 거예요? 우리 애만 못 하는 건 아니죠?”

“그렇진 않고요. 여기 조리원에 지금 계신 산모님들 중에 한 1/3 정도가 신청하셨어요. 왜, 손바닥 발바닥이랑 앨범은 다들 하잖아요. 요즘은 거의 다들 한 명만 낳으시고, 또 우리 애는 특별하다, 그런 게 있으니까.”

“애 아빠는 이런 것도 좀 알아보고 그러지...... 그거 말고는 뭐 다른 건 없나요?”

경윤은 영업사원이 들고 온 자료들을 뒤적거리다, 맨 아래, 영어로 된 브로셔를 집어들었다. 영업사원이 미소지었다.

“그건 아직 정식으로 마케팅에 나선 건 아니에요. 저희 회사에서 최근에 개발한 기술인데.”

“어떤 건데요?”

최근에 개발한 기술이라니. 경윤은 브로셔를 펼쳐들며 영업사원을 쳐다보았다.

“타투 아시죠? 어머님 몸에 작은 타투를 하는 거예요. 손등이나 팔이나. 이걸로 우리 아가의 모든 것을 모니터링 하실 수 있는 기술이에요.”

“모니터링이라면...... 열이 나거나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걸 바로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럼요. 어머님께 생체잉크로 타투를 해서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거죠. 그러면 아기의 상황도 바로 파악하실 수 있고.”

“그런 게 가능해요?”

“그럼요. 왜, 요즘 패치 같은 식으로 몸에 붙여서 당수치나 체온이나 그런 것 바로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있잖아요. 영국 총리도 당뇨가 있어서, 팔에다가 혈당 패치를 붙이고 다니더라고요. 그런 것에다가 블루투스 기술이랑 생체 잉크 기술을 결합한 거죠. 아기가 옆에 없어도 아기의 상태라든가 행동을 알 수 있게요.”

일리가 있었다.

“그럼 아기에게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SF처럼 머리에 칩 같은 걸 넣거나......”

“설마요. 주사 한 방이면 됩니다.”

“주사로 그런 게 된다고요?”

“나노머신을 쓰거든요. 태어나서 3주 안에 이 주사를 놓으면, 나노머신이 신체 각 부위로 전달되고, 개인차가 있지만 3일에서 5일 뒤 부터 자료 수집을 시작할 거예요. 어릴 때 시작하지 않으면 자료 수집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고, 일단 나노머신에 수명이 있으니까 일정 기간마다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하지만, 어머님 혹시 당뇨 주사 어떻게 놓는지 아세요?”

“당뇨는 아니지만...... 시험관 할 때 배주사는 놓아 본 적 있어요.”

“예, 바로 그거예요. 그렇게 1년에 한 번씩만 주사를 놓아 주면 되는 일이에요. 잘 모르시겠으면 주사의뢰서도 같이 만들어 드리니까, 가까운 소아과에 부탁해서 맞으셔도 되고요.”

영업사원은 다른 자료들을 좀 더 꺼내 보이며 미소지었다.

“아기들이 아프거나 열 나거나, 이제 자라면서 수시로 울 거예요. 그때마다 체온계 찾고 병원 안고 뛰어가고, 너무 힘들죠. 지금 미국 쪽 FDA 승인 받고 나면 우리도 본격 마케팅에 나설 건데요. 앞으로는 아이가 뭘 하는지 움직임도 감지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해 주세요.”

“예?”

“비싸도 좋으니까 해 주세요.”

경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한 거지. 주사 한 방으로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데, 그게 타투든 뭐든 엄마가 되어서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너도 진짜 극성이다, 극성.”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질투 반, 호기심 반으로 깔깔거렸다.

“지금이니까 저리 극성이지, 조금만 더 지나 봐라. 처음에는 유기농 아니면 우리 애 입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이 굴었는데, 돌만 지나도 땅바닥에 떨어졌던 거 아니면 다 주워먹고 다녀. 못 말린다니까.”

“근데 애한테는 해롭지 않대? 나노머신 같은 거.”

“괜찮대. 왜, 요즘은 나노머신 같은 걸로 수술도 하고 그런다잖아. 같은 원리라고 하던걸.”

경윤은 소매를 걷어 보였다. 손목 안쪽에, 몇 가지 숫자들과 아이콘들이 타투로 새겨넣은 듯 떠올라 있었다.

“이게 체온이야. 이건 배고픈 정도고. 이건 쉬 하면 알람 뜨는 거. 맨 밑에 있는 건 혈압이랑 심장박동.”

“야, 그건 좀 이상하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엄마가 바로 뛰어가야지. 그럴 일이 있으면 절대 안 되겠지만.”

“근데 신기하긴 하다.”

손목에 새겨진 배고픔 수치가 잠시 후 점멸하다가 변화했다. 아기는 아직 울지도 않았지만, 경윤은 바로 아이를 안고 젖을 물렸다.

“어릴 때 처음 주입을 하면 일종의 회로가 생성된다는 거야. 한번 생성되면 한동안 중단했다가 다시 할 수도 있고, 업그레이드도 된대. 그러면 애가 어디 있는지, 위치추적도 되고.”

“그거 좋네, 위치추적. 폰에 그런 거 깔아주면 애들이 얼마나 머리를 쓰는지.”

“근데 그거 본인은 알까? 본인한테는 티 안 나는 거지?”

“뭐, 그래도 알긴 알겠지.”

경윤은 웃으며 대답했다.

“있잖아, 너희도 혹시 둘째 낳거나 하면 꼭 해줘. 이만한 게 없더라.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했을 때 있잖아. 아니면 애가 갑자기 사고가 나거나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그러면 여기, 목 뒤에 생체잉크 캡슐이 들어가 있거든. 거기에 엄마 전화번호가 떠오르게 되어 있어. 정말 타투 새긴 것처럼.”

“나중에 지워져?”

“지우는 건 돈이 좀 든다고 하는데...... 그게 문제야? 애를 잃어버리는 것 보다야 낫지.”

“하긴, 그렇다. 요즘 유괴범에, 변태에......”

“목걸이니 팔찌니, 그런 것 해 줘 봤자 요새 애기들 얼마나 영악하고 극성스러운데. 유치원 다니는 애들이 그거 이렇게 해서 풀고 있더라. 답답하다고.”

“세상에.”

“하긴, 우리 딸 어릴 때만 해도, 애기들이 스마트폰 들이대면 울다가 울음 딱 그치고 안 우는 척 했잖아. 사진 찍힌다고.”

“아, 맞다. 그랬지. 돌도 안 된 애들이 진짜 뭘 안다고.”

한참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경윤은 무척 뿌듯했다. 자신이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간다는 것이 기분좋았고,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준 것 같아 기뻤다.

물론 귀찮은 일들도 있었다.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무례하고 불쾌한 영감님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다.

“아니, 애 엄마가 문신이나 하고 말이야, 문신은.”

아니, 남이사 문신을 하든 혓바닥에 피어싱을 하든 무슨 상관이람. 정작 체격 좋고 금목걸이 같은 것 건 아저씨가 팔에 용문신 하고 다니는 것에는 찍소리도 못 할 거면서. 세상에는 정말 시간 많고 남에게 시비걸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생체잉크와 나노머신을 연동한 육아 도우미 서비스가 언론 보도를 타면서 시비를 거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임신했거나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자들이 생체잉크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아프진 않은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확실히 이런 건 여자들이 빠르다니까.”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젊은 임산부와 함께 나와 있던 젊은 할머니가 나노머신에 대해 물어보던 날, 경윤은 남편에게 문득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팔뚝을 한번 쳐다보고, 무심하게 돌아누우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런 거 증권사에서도 쓸 수 있으면 완전 대박인데.”

“당신은 하여간.”

애 생각은 안 나고 돈 생각만 나지. 경윤이 중얼거리자 남편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근데 이거 언제까지 할 거야? 유치원 갈 때 까지?”

“어이구, 한 달에 정수기 유지비만큼 밖에 안 나가네요. 요새같이 험한 세상에, 애한테 그 정도 투자 하는 게 어때서.”

“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

남편이 문득 머리를 긁적였다.

“애 오줌 싸고 똥 싸고 하는 것 까지 다 표시가 되는데, 나이 들어서도 그런 걸 들여다 볼 수는 없잖아.”

“에이, 그래도 이런 거 있으면 기저귀 떼고 할 때 얼마나 편하겠어? 혜민이네는 기저귀 떼는 걸로 아주 전쟁이더라. 벗겨놓으면 금방 뗀다더니, 아무데나 싸고 다녀서 하루종일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대.”

남편은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얼마나 편리한지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기저귀를 뗄 때, 혹은 아이와 함께 외출했을 때,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쓰거나 말도 없이 갑자기 실례를 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알 수 있는 건 정말 획기적으로 편리한 일이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경윤은 거실 바닥에 애가 똥칠을 해놓는 꼴을 보지 않고도 기저귀를 뗄 수 있어서 기뻤다. 그것만으로도 유지비 값을 몇 배는 뽑고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발전은 아이의 성장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에는 아이의 데이터를 전송받는 것 뿐이 아니라 보호자 쪽에서 아이에게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쌍방향 전송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이 중에는 아이에게 강제로 낮잠을 재울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늘 흥분상태로 뛰어다니는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이제 경윤의 팔에 심어질 때만 해도 생경한 기술이었던 생체잉크는, 어디로 갑자기 뛰어나갈지 모르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폭탄같은 시기의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는 거의 필수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에는, 그 기능이 확장되어 교실에 얌전히 앉아 있게 만드는 기능과, 억지로 잠을 깨우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주중 수업 시간에 아이가 졸고 있으면 경윤의 팔에는 경고 메시지가 뜨곤 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기능이 ADHD 아이들의 진단을 늦추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반겼다. 예전같으면 수업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마치 엄마의 통제를 받는 듯 얌전해지며 능률도 올랐다.

“그래서 엄마, 선생님들이 그러는 거야. 지금 우리 학년이랑 우리 아래 학년까지는 애들이 그렇게 시끄러운데, 지금 들어오는 동생들은 얌전해서 좋대.”

경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경윤이 어릴 때 다들 입학 전에 유치원에 다니고, 한글은 물론 알파벳까지는 떼고 들어왔듯이, 경윤이 대학에 갈 무렵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촌동생은 한글은 물론 영어 그림책까지 술술 읽었고, 그 애의 동생은 중국어 인사도 할 줄 알았듯이, 요즘 초등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다들 어린이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시술을 받는다는 것 같았다.

이 기술로 인해 아이들 사이에서도 세대차이라는 게 벌어질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들은 벌써부터, 대학 입시 때 재수같은 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경윤은 자신이 있었다. 대학 입시는 기본적으로 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치르는 것이다. 일찍부터 엄마의 통제를 받으며 공부에 집중해 온 아이의 성과는 꽤 훌륭한 것이어서, 경윤은 남모를 자부심과 흐뭇함을 느끼며 아이의 장래에 대해 벌써부터 이런저런 큰 그림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또 동네마다 다르다는 거야. 우리동네만 해도 지금 1, 2학년 동생들은 다들 나노머신 주사를 맞고 있는데, 저기 서구에는 안 그런 애들도 많대. 그래서 수업 분위기가 되게 안 좋다는 거 있지.”

“비싸니까.”

“비싸?”

“그래, 지금이야 많이 싸 졌지만, 너 처음 맞힐 때만 해도 꽤 거금 들여서 했어. 아빠는 처음에는 유난 떤다고 그랬지만, 엄마가 해주길 잘 했지?”

“근데 엄마. 그러면 좀 불공평한 거 아냐?”

아이가 물었다. 경윤은 잠시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때 소파에 앉아서 TV 채널을 돌리던 남편이 대신 대답했다.

“불공평은 무슨. 원래 돈 없으면 학원도 못 가고 대학도 못 가는 거지.”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너도 강남이나 목동 사는 애들만큼 좋은 학교 좋은 학원 다니는 거 아니잖아. 마찬가지지. 아빠 엄마가 돈 들이고 노력했는데, 없는 집 애들이랑 똑같이 취급받으면 좋겠어?”

남편은 혀를 찼다. 남편은 언젠가부터, 아이의 장래를 위해 목동으로 이사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종종 했다. 경윤이 생각하기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지만, 당장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서 속이 상했다. 하나뿐인 우리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경쟁해야 할 상대가 많아질수록, 계속 더 위에 있는 것들이 보였다.

“애가 하는 말에 무슨 정색을 그렇게 하고 그래.”

“제 아빠가 고생하는 건 알아야지.”

“고생을 아빠만 하나. 그리고, 애가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은 거지.”

말하면서도, 경윤도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 아이와 같은 학년인 모든 아이들에게, 이제와서 나라에서 나노머신 시술을 해 주겠다고 나서기라도 한다면 무척 화가 날 것 같다고.

다행히도 세 살이 넘어가는 아이들에게는 주사를 놓아도 회로의 생성 효율이 떨어졌고, 시기를 놓치면 시술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대세가 되고 있었다. 설령 더 나이가 든 아이들에게도 시술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복지까지 따라오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내 아이는 추월당하지 않을 것이고.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일껏 키워놓은 내 아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을까. 맹모삼천지교 이야기를 떠올리며 경윤은 마음이 답답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노머신과 생체잉크가 주고받는 정보들은 대단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들이다. 물을 마시고, 열이 오르거나 내리고, 화장실에 오가고, 호르몬의 수치가 변화하고, 성징이 일어나고, 생리를 하고,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것까지. 한 아이의 모든 성장기록과 사생활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경윤이 아는 한, 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들었다. 애초에 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아이와 그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 사이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 다른 서버에서 동시에 모순된 지시가 발생할 경우 아이가 혼란에 빠질 수 있고, 보안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나노머신 클라이언트가 엄마와 아빠 양쪽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경윤은 불행히도, 이와 같은 보안 시스템이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경윤 본인은, 이 일에 대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았지만.

퇴근 후 마트에 가다가, 학원에 있을 시각인데 수면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일으키던 경윤은, 그만 과속하던 시외버스에 들이받히고 말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늘 아이에게 말하던 대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좌우를 한 번씩만 살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행한 사고였다.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아.”

외할머니가 오열했다. 친할머니도, 아빠도,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는 입관 전, 죽은 경윤의 팔에 문신처럼 남은 생체잉크의 흔적들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경윤의 몸 밖으로 빠져나와, 의사의 손에 탯줄이 잘린 것은 17년 전의 일이었는데. 경윤과 아이는 그 후로도 계속, 바로 엊그제까지, 블루투스와 나노머신과 생체잉크로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깨워 줄 사람도, 공부하라고 일으킬 사람도, 밤 늦게 음악을 듣는다고 억지로 스위치를 꺼 버리듯 잠자게 만들 사람도 없다는 것이 낯이 설었다. 아이는 죽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평소같으면 이렇게 울고 있을 때, 감정이 격앙되어 있을 때, 제 엄마가 통제하는 대로 호르몬이 나와 감정을 가라앉혔을 것이다. 차라리 잠을 자고 일어나 잊어버리게 해 주었을 것이다.

한참을 울던 아이는 문득, 제 엄마의 팔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위에는, 마치 MMORPG 게임의 스테이터스 창처럼 아이와 관련된 온갖 수치들이, 그리고 수면과 집중을 통제하기 위한 단축키가 펼쳐져 있었다. 경윤이 마지막으로 들여다보았던 것은, 게임 속의 캐릭터처럼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던 아이의 모든 스테이터스였다. 경윤은 아이의 계정주였고, 이제 다시는 로그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아바타 같은 아이 하나를 남겨놓은 채로.

문득 아이가 제 아빠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빠, 이건 공평하지 않아.”

그리고 아이는, 태어나 나노머신 시술을 받은 이후로 젖은 기저귀에도, 배고픔에도, 낯선 배앓이에도 시달리기 전에 언제나 엄마가 먼저 알고 조치해 준 쾌적한 세상 속에서 살아오느라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 없던 아이는,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소리를 내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죽은 경윤을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채였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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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열쇠 18.09.12 11:43 댓글

    이 소재를 한국 사회에 맞추어 생각하니, 정말 이런 미래가 그려지는 거 같아 현실적이면서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네요 제목도 결말이랑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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