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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비행접시의 지니

2018.09.01 00:0009.01

비행접시의 지니

곽재식

미영은 양식을 향해 투덜거렸다.

“김양식 이사는 허구헌날 우리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목적 따지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정말 목적이랑 하나도 상관 없잖아.”

“야, 사장님 진짜 너무하시네요. 어떻게 또 그렇다고 하나도 상관이 없습니까? 아무리 사장님께서 사장님이시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아요?”

“너무하기는 김양식 이사가 너무하지. 사장이 하는 역할이 있고 일이 있는데, 우리 대화가 이렇게 돌아 가는 건 김양식 이사가 정말 너무한 거지.”

결국 미영은 “하여튼 그건 그거니까,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고 우주선 안의 수면실로 확 들어 가 버렸다.

양식은 너무나 흥분한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서 미영에게 더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 수면실 문을 두드릴까 생각도 했다. 마지막 순간 잠깐 참고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 멈췄더니 힘이 쭉 빠졌다. 양식은 자리에 주저 앉았다. 우주선 안의 모습이 유난히 조용하게 보였다. 별별 멀리 떨어진 은하계를 같이 돌아 다니며 온갖 일을 겪었던 우주선의 모습이 유난히 차갑게 보였다.

양식은 우주선에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주선은 타이탄의 우주 기지에 착륙해 있었으므로, 양식은 그대로 타이탄 시내로 갔다. 북적거리는 도시인 타이탄 시가지에는 여러 행성에서 온 갖가지 사람들이 많았고, 이상한 흥정을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꺼내는 길가의 잡상인들도 많았다. 절대적으로 합법적이고 신체에는 아무 해도 없지만 한 잔 마시면 우주를 통째로 해장국에 말아서 마시는 느낌이 난다는 솜브레로 은하계의 외계 염소에서 짜낸 젖을 마셔 보라는 이야기나, 감마선 가속 맛사지 기능이 손끝에 달린 고무장갑이 있는데 이걸 끼고 설거지를 하면 접시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그때그때 우주공간으로 순간이동을 시켜 주므로 아주 잘 씻어진다는 이야기 등등을 인사치레처럼 들을 수 있었다.

그 모두를 헤치고 지나간 양식은 타이탄의 맛집 행성으로 갔다. 12년 전부터 타이탄은 이 천체 전체를 거대한 먹자 골목으로 바꾸어 뒤덮자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원래 이 계획에 따르면 타이탄의 북반구는 치즈 등갈비 가게들로 모조리 채우도록 되어 있었고, 남반구는 대만식 디저트 가게들로 모조리 채우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 많은 식당들을 대상으로 TV 버라이어티쇼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가게들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망해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안드로메다 은하계의 어느 행성에서 대륙을 모두 치킨 가게로 채우고 바다를 통째로 맥주로 채운다는 계획이 먼저 현실로 이루는 바람에 버라이어티쇼 출연자들도 그 행성과 먼저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타이탄의 맛집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데 되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망한 가게들 사이에 어떻게든 살아 남은 다양한 이상한 음식점들이 자리를 잡았다. 살아 남은 음식점들이 있는 거대한 지역을 당국에서는 “맛집 행성”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찾아 오는 사람들마다, 이곳은 토성이라는 행성에 딸린 위성인데 왜 맛집 행성이라고 부르느냐, 맛집 위성이면 몰라도 맛집 행성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어쨌거나 공식 호칭이 “맛집 행성”이었다. 장점 아닌 장점도 있었다. 맛집 행성에 처음 와서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은 뭔가 어색한 분위기에 말이라도 해 보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 날씨가-”하는 말로 시작하는 대화 대신에 “여기가 ‘맛집 행성’이라는데 사실 ‘행성’이 아니라 ‘위성’아닌가?” “허허허, 정말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야, 부장님, 진짜 예리하십니다.” “예리하기는 내가 무슨 한예리도 하니고.” “으하하 한예리-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웃음꽃이 이곳저곳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양식은 토성 지역에서 가장 거대한 맛집 구역이라고 하는 그 맛집 행성을 한참 헤매고 다녔다. 공룡 고기와 똑같은 맛을 내는 고기를 구워서 판다는 불고기집이나 목성에서 키운 물고기를 우주선으로 배달해 와서 바로 잡아서 파는 활어회 집을 전전해 보았지만, 어디건 오늘 딱 먹고 싶다 할만한 음식을 파는 곳은 없었다.

결국 양식은 토성의 고리에서 자라는 미생물을 효모 대신 이용해서 맥주를 발효시켰다는 곳에 갔다. 꽤 북적거리는 맥주집이었는데, 가게 이름은 “새턴링 비어링”이었다. 맥주집은 건물 1층에 있었고, 장사도 잘 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양식이 가게 문을 열었을 때 마침 갑자기 우르르 안에서 한 무더기의 직장인들이 몰려 나왔다. 양식은 그들과 몸이 부딛혔는데, 그 중 한 명이 술이 단단히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했다. 가게 입구 옆으로는 지하 하수도, 상수도, 그리고 공기를 공급하고 빼주는 하기도, 상기도 지역으로 빠지는 구멍이 있었다. 양식은 넘어지려는 그 취한 사람을 구해주려고 팔을 뻗었다가 양식의 발에 걸린 다른 사람 때문에 같이 자빠졌다. 그래서 결국 양식만 아래로 혼자 떨어졌다.

타이탄 맛집 행성의 모든 공기 공급과 대기 순환을 담당하는 지하시설은 제법 깊이 있었다. 떨어지는 높이가 상당해서 양식은 순간 “인생이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아주 잠깐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비슷한 방식으로 바닥에 떨어진 온갖 쓰레기가 바닥에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양식은 푹신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 그래도 팔과 다리가 결코 접혀서는 안될 각도로 접히는 힘을 받아서 아프기는 아팠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주위에 온갖 썩은 것들이 있어 보였다. 맛집 행성의 가게들이 망할 때 갖다 버린 치즈 등갈비에 양념 바르는 붓부터 시작해서 남은 재고로 버려진 대만식 디저트들이 오래 전에 썩어 버린 자국도 있었다. 도무지 무엇인지, 심지어 지구 동물인지 외계 동물인지도 알기 어려운 작은 동물의 말라 붙은 뼈도 보였다.

양식은 잠깐 서글픔을 한탄하는 소리를 질렀다. 위의 맥주집 앞에서는 몰려 나온 직장인들이 자기들끼리 “야 괜찮아?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조 대리 괜찮아? 어휴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안 괜찮아. 안 괜찮다고요? 안이 괜찮으면 밖이 문제인가? 으하하” 이런 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은 그대로 떠나가는 것 같았다. 양식은 누군가에게 꺼내달라고 말하려고 전화를 꺼냈다. 그런데 떨어질 때 전화가 부서져 있어서 작동이 되지 않았다. 양식은 다시 한탄하는 소리를 냈다.

무슨 수가 없을까 싶어 양식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이럴 때 쓰레기 중에 요긴한 물건을 발견해서 밧줄처럼 위로 던져서 탈출 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마땅히 위로 올라 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양식은 이리저리 쓰레기를 헤집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했다.

그런데, 그 중에 쇠로 만들어진 무슨 그릇 비슷한 것이 보였다. 냄비 비슷하기도 했는데 납작하고 평평해 보이기도 하면서 좀 길쭉해 보이기도 했다. 공들여 만든 무슨 기계나 장비 같은 느낌도 났다. 당장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뭔가 보기 힘든 물건처럼 보였다. 호기심도 생겼다. 양식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집어 들고 가만히 살펴 보니, 거기에는 글자를 표시할 수 있는 화면이 있었다.

“밀어서 잠금 해제”

화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양식은 그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 보았다. 그런데 인식이 잘 안되는지 밀어서 잠금해제 아이콘이 약간 밀리는 듯 하다가 안 밀렸다. 양식은 몇 번 그렇게 해 보다가 잘 안되어서, 손가락의 땀을 닦고 해 보기도 했고, 다른 손 손가락으로 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약간 잘 될 듯 하다가 하다가 안 되었다. 양식은 마침내 손바닥 전체를 대고 아무렇게나 막 문질러 보았다. 몇 번 그렇게 노력한 끝에 잠금이 해제 되었다.

문득 이상한 노래가 매우 흥겨운 곡조로 흘러 나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리고 그 냄비 같은 것 한쪽 끝에서 구멍이 생기듯이 뭔가가 열리면서 작은 출입구 모양이 생겼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냄비는 약간 주전자 비슷한 느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출입구 모양에서 이상한 빛과 물체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물체는 형체가 알아 보기 쉬운 모양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양식은 이 모든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동안 매우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해 흘러나오는 노래가 너무 흥겨워서 반사적으로 노래 가사 사이에 “빠빠라빠라빠라”하고 장단 맞추는 소리를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이라고 합니다!”

그 형체는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형체는 흡사 흘러간 시절의 가수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다. 놀란 양식은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꿈쩍거렸다. 양식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지니요? 램프의 지니, 소원을 들어 주는 지니, 그런 건가요?”

“아니오. 저는 지니가 아니라, ‘진’이라고 합니다. ‘진’이요. 진.”

“지니가 아니고 진이라고요?”

“최대한 친근한 모습으로 최초의 접촉을 하려고 했는데 괜찮으셨어요? 저를 구해 주신 선생님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진 중에서도 친숙한 남진 느낌으로 모습을 갖추었죠.”

진이 말했다. 배경 음악으로 나오고 있던 노래는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가사로 넘어 가고 있었다. 양식은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뭘 해야 할 지 몰라 멍하니 그 광경을 보면서 쓰레기 더미 위에 퍼질러져 앉아 있었다.

진은 양식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인터넷 화면 같은 것을 켜고 무슨 인터넷에 올라온 소설 같은 것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 같았다. 진은 소설의 앞부분을 읽다가, “웃기려는 소설도 좋지만 이런 말장난 농담만 계속 나오면 좀 너무 지긋지긋하지.”라면서 투덜거렸는데, 그 말투는 어찌보면 스스로 반성하는 듯 하기도 했고, 보고 있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비판의 한 마디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진은 양식을 달래 주기 위해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연도 소개했다.

“방금 문질러 주신 것은 저희 종족이 타고 다니는 우주선인데요. 우주선에 시공 초월 엔진이 있는데 그거 OS 업데이트가 있다고 해서 업데이트를 잘못했더니, 우주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올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가끔 이럴 때가 있어요. 한참 갇혀 지냈네요. 그래서 바깥에서 밀어서 잠금해제를 해 주셔야 저희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게 요즘엔 업데이트 할 때마다 이래요. 예전에 9세기 쯤에 지구에 있는 바그다드라는 데 갔을 때에도 한 번 이랬던 것 같고.”

그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양식은 우주 쓰레기가 썩으면서 발생하는 유독한 기체 때문에 자신의 뇌가 다치고 있고 그것 때문에 환각을 보는 것은 아닌가 의심도 몇 번 했다. 그런데 아닌 것 같았다.

“저희 종족 풍습이 도움을 받았으면 다시 갚아 주는 거거든요. 보통 선생님 같은 종족을 만났을 때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리는 방식으로 합니다. 소원은 뭘 들어 드리면 좋을까요?”

진이 다시 말했다. 양식은 놀라움이 가라 앉는 동안 묵묵히 노래가 끝나는 것을 듣고 있었다.

“한 평생 살고 싶어- 한 평생 살고 싶어-”

얼마 후, 양식은 진에게 소원을 말했다.

“저랑 저희 사장님이랑 바꿔주세요. 몸을 바꿔주세요. 제가 사장님 처지가 되어서 제 처지가 되면 얼마나 맺히는 게 많은 지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저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목표대로-”

“어렵지 않지요.”

진은 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끊고 대답했다.

잠시 후, 양식은 자신이 우주선 수면실의 미영이 누워자는 자리에서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중력 상태에서 몸이 떠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있기는 했지만, 쓰레기 더미 위에서 외계인 같이 생긴 것이 틀어 주는 “님과 함께”를 들으며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안락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니, 자신은 미영의 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리 속이 아프다기보다는 두개골이 아주 강하게 압박되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해괴하게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누르는 것처럼 아팠다.

“아, 진 선생님, 이거 왜이래요? 머리가 엄청 아파요. 아팔욜. 널물널물 알팔욜.”

진이 대답했다.

“선생님 뇌와 선생님 사장님 뇌를 교체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머리가 조금 더 크지 않습니까. 그래서 억지로 우겨 넣은 형태다 보니, 머리가 많이 아픈 겁니다.”

“알, 글랠돌 널물 알플댈욜. 글릴골 말일 왤일럴켈 일살할겔 날왈욜?”

그러고 보니, 미영의 머리통에 억지로 들어간 양식의 뇌 때문에 머리에 울룩불룩 원래와 다르게 튀어 나온 부분이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양식은 아파서 몸을 움직였는데, 그렇게 몸을 뒤척여 보니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했다.

“아무래도 선생님 뇌와 선생님 사장님 뇌가 생긴 모양이 다르다 보니까 뇌에서 몸 곳곳으로 연결되는 신경의 굵기나 형태도 좀 차이가 있거든요. 억지로 연결된 형태다 보니 약간 뇌와 몸 사이에 연결이 잘 안 되는 그런 거죠. 이게 가능한 한 최대로 자연스럽게 연결한 겁니다. 뇌는 바꿔서 넣었지만 그러면서도 저희가 면역 반응도 최대한 안 일어나면서도 다른 감염은 안 일어나게 조절해 놨고. 김양식 선생님이랑 이미영 선생님이랑 혈액형도 다른데 그것도 문제가 안 일어나게 항원 항체 반응 조절 나노 로봇을 심어서 해결 했죠.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지 않습니까? 규격이 다른 선생님 뇌를 선생님 사장님 뇌에 연결해 놓으면 이 정도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죠.”

“얼떨켈 일겔 쵤설일엘욜?”

“소형차 앞 부분이랑 대형차 뒷 부분이랑 잘라서 붙여 놓으면 뭔가 이상할 수 밖에 없을거잖아요. 그래도 저희는 이론상 연결할 수 있는 건 다 연결해서 그렇게 연결한 차가 굴러 가게는 해 드린거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운전석 부분이 대형차처럼 넓어지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건 최선을 넘어 서는 한계죠. 그러면 그건 소형차 앞부분이 아닌게 되니까.”

양식은 너무 아파서 이후로는 대화를 잘 하지 못했다.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하루 하루 날이 바뀔 때마다 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서 연인과 애틋한 사랑을 하고, 뭐 그런 영화 비슷한 것을 양식은 상상하고 있었는데 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긴 바뀌지만 부작용이 없으려면 항상 머리 크기가 같은 사람으로만 바뀔 수 있다니.

양식의 말하는 방법이 계속 그대로라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진은 양식이 말한대로 그대로 한번씩 반복해 말하면서 확인 해야 했다.

“뇌를 서로 바꾸는 것은 진정으로 몸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왜, 영화 같은 데 보면 어머니 몸과 딸 몸이 바뀌어서 어머니가 자기 경륜을 이용해서 딸 대신 학교 생활을 잘 하고, 남학생 몸과 여학생 몸이 바뀌어서 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거 있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하나도 안 아픈 방식은 없나? 몸이 하드웨어라면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만 서로 바꾸는 그런 방식으로 바꿔 줄 수는 없냐? 그런 말씀이십니까?”

양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은 한 번 더 되물었다.

“그게 두 번째 소원이십니까?”

“옐! 옐! 빨릴욜.”

곧 진은 양식의 두번째 소원을 들어 주었다.

잠시 후 수면실의 미영 침대 위에 누워 있던 그는 자기 앞에 있다고 생각했던 진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은 또 어디로 간 거야?”

그는 서둘러 우주선에서 나왔다. 우주선 앞 거리에는 로봇들이 사람을 수레에 태우고 가고자 하는 곳까지 수레를 끌어서 데려다 주는 영업을 하느라 오가고 있었다. 그는 그 로봇력거꾼 중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로봇을 찾아 새턴링 비어링 맥주집 앞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타이탄의 기상 조절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는지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로봇이 말했다.

“사장님, 그런데 거기는 맛집 행성 한 가운데인뎁쇼. 지금 시간에는 너무 교통이 혼잡하고 술 취한 사람이 많아서 너무 가기 힘이 듭니다요.”

“어쩔 수 없어요. 빨리 가주세요.”

로봇은 괴로워하더니 수레를 끌며 투덜거렸다.

“괴상하게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세 시간 만에 로봇력거는 새턴링 비어링 맥주집 앞에 도착했다. 로봇에게 좀 붙잡아 달라고 한 후, 로봇의 늘어나는 팔을 붙잡고 그는 비어링 맥주집 옆 구덩이에 이어져 있는 지하 상기관, 하기관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갔다.

쓰레기 더미가 있는 곳에 가 보니, 자신이라고 느껴지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쓰레기 더미 위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따졌다.

“어딜 갑자기 가 버리신거에요?”

“여기까지 오셨네요.”

진이 대답했다.

쓰레기 더미 위의 양식 몸을 보며, 미영 몸에 든 양식이라고 여기고 있는 의식이 생각했다. 이제, 두고 봐라. 내가 드디어 우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꿈꾸었던 그 목표, 그것을 위한 진정한 사업을 펼치리라. 그리고 사장님, 당신은-

하고 생각을 하는데, 사장에 대한 격렬한 반감이나 작은 회사의 직원으로 겪는 애환 등등이 이상하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의 방향을 크게 바꾼다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멋진 경영을 해 보이겠다는 등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것이 이상해서 진에게 따졌다.

진이 대답했다.

“말씀하신대로 뇌에 저장된 정보만 옮기다 보니까 이게 최선이었어요. 이미영 선생님께서는 좌뇌 상부가 발달해 있고, 전두엽이 발달해 있거든요. 그에 비해 김양식 선생님께서는 우뇌 하부가 발달해 있고, 측두엽이 발달해 있어요. 그런 차이 때문에 김양식 선생님 뇌에 들어 있던 정보를 이미영 선생님께 드대로 집어 넣다 보면 용량이 모자라서 제대로 안 들어 가고 빠지는 부분이 있고요. 반대로 좀 남아 돌아서 빈 공간이 이상해지는 부분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까, 원래 생각이 그대로 똑같이 입력되지는 않는 거죠.”

“이건 너무 이상한데요. 제가 김양식이라는 느낌이 좀 희미해진 것 같은데.”

“스마트폰 기종 바꿀 때에도 원래 있던 자료를 그대로 똑같이 옮기는게 힘들어서 전화번호나 연락처 잘 못 찾을 때도 있는데, 사람 뇌가 똑같이 만들어진 기성품도 아니고 각자 서로 다르게 수십년씩 발달해서 자라난 건데 그게 어떻게 그렇게 똑 떨어지게 정보를 옮길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 뇌에 있던 내용을 다른 사람 뇌에 쑤셔 넣으려면 뇌의 차이로 잘 안 들어 갈 수 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좀 이건 심한데요. ‘내가 김양식이다!’ ‘내가 김양식이다!’ 좀 어색한데.”

“그게 당연하죠. 선생님이 김양식이 아니고, 여기 누워서 주무시는 분이 김양식이잖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쪽으로 와 있었던거고요.”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래도 제가 김양식 같기는 한데요.”

“아니죠. 선생님은 원래 이미영 선생님 뇌에서 안에 들어 있던 정보만 김양식처럼 좀 바뀐거에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지문을 보건, 유전자 검사를 하건, 다 김양식이 아니라 이미영으로 나옵니다. 하다 못해 선생님께서 자식을 낳아도 이미영 선생님을 닮겠죠. 김양식 선생님을 닮지는 않겠죠. 그에 비해서 여기 쓰레기 위에 누워서 자고 계신 분은 지문으로 보건, 유전자 검사로 보건 김양식이 맞지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뇌 속에 들어 있는 내용 상으로 제가 김양식 내용 아닌가요? 애초에 그게 제 목적이었잖아요.”

“선생님 목적이 아니라, 여기 누워 계신 분 목적이었죠. 몸 전체가 예전하고 그대로 똑같잖아요. 안에 든 정보만 바꿔달라고 해서, 그냥 뇌세포가 이쪽으로 서로 연결 되어 있다가 지금 슬쩍 돌아서서 저쪽으로 연결 되어 있는 걸로 연결 상태만 좀 바꾼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그게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뇌 구조의 차이 때문에 애초에 그나마 완벽하게 다 연결 상태가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 그래도 제가 기억이 있잖아요. 저는 김양식이라는 사람으로서의 기억과 추억과 성격과 뭐 그런 게 있는 것 같은데요.”

진이는 생긋 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그렇지는 않아요. 이미영 사장님은 항상 회사에 돈 떨어지는 거 걱정, 회사 망할 걱정을 하시고 살아 오셨기 때문에 돈 계산 하는 부분의 뇌가 좀 부어 있어요. 그게 이미영 사장님 뇌에 남긴 아주 강한 기억의 영향이지요. 그게 이미영 사장님의 기억이고 성격이지요. 김양식 이사님은 그런 게 없어요. 지금 선생님은 회사 망할 걱정하고, 우주선 관리국에서 감사 나오면 어떡하나, 그런 거 걱정 되고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까 그 비슷한 느낌이 들긴드네요.”

“그렇다니까요. 이미영 사장님 뇌의 특징이에요. 뇌의 모양과 구조 자체가 그런 느낌이 드는 방향으로 변화가 됐어요. 그리고 머릿속에 호르몬이 계속 이미영 사장님의 체질 대로 나오고 있어서, 감정이나 성격도 거기에 맞춰질 거고요. 그리고 사람 뱃속에 유산균이나 대장균 같은 세균이 많이 사는데 그것도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잖아요. 지금 몸이 이미영 사장님인 이상 그런 것 때문에 성격이 받는 영향도 다 이미영 사장님 성격대로 나올 거고. 무슨 옛날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무슨 일 때문에 생긴 물질이 뇌 속에 남아서 돌아 다니는 것도 다 이미영 사장님 추억 때문에 생긴 물질이 돌아 다니는거죠. 저는 선생님은 이미영 사장님이시고, 저는 여기 쓰레기 위에 누워 계신 분이 김양식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지금 이 상태는 도대체 뭔대요?”

“모르죠. 하여튼 이렇게 해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냥 소원을 빈 것 때문에, 이미영 선생님이 뇌 속에 들어 있는 신경 상태가 좀 변해서 자신이 김양식 선생님인 것 같은 느낌도 자꾸 갖게 되는 정신 질환 같은 데에 걸린 것, 비슷한 모양이라고 보셔도 되고.”

그때 쓰레기 위에 누워서 자던 그가 잠을 깼다.

그는 거기가 어딘지 궁금해 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났는 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희미하게 이미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그 몸이 말을 했다. 상대방으로서는 어찌됐건 그 말을 할 때의 말투와 눈빛은 분명히 사장 같은 분위기가 위엄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번째 소원은 제가 빌 수 있는 것 맞죠? 원래대로 되돌려 주세요.”

마지막 소원을 들어 준 진은 다시 그 넙적한 등잔 만한 우주선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그것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또 마주칠 지 모르는 먼 우주를 향해 밤하늘 속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 2018년, 우면산에서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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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열쇠 18.08.31 12:54 댓글

    앗 이번에는 일 하러 가는 내용이 아니어서 새로웠습니다 몸 바꾸는 이야기가 미영과 양식한테는 이런 식으로 적용될 줄이야! ㅋㅋ만으로 댓글 세 줄 채우고 싶을 만큼 재밌게 읽었습니다

  • 나무열쇠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08.31 17:44 댓글

    감사합니다. 고백하자면 중반부터 내용을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 발단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만만하고 쉽게 가는 미영과 양식으로 들어간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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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너울 18.08.31 18:20 댓글

    생각해보면 미영 양식 시리즈에 막 '행성 하나를 통째로 뒤덮은 정원', 'HDD 만들려고 세운 인공별', '은하계 하나를 통째로 사들인 부자' 뭐 이런 소재들이 엄청 나오는데, 스케일 되게 크네용.

  • 심너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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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곽재식 18.09.02 11:45 댓글

    옛날 SF에서 쓸게 없으면 흔히 나오던 게 big dumb object인데 너무 남용되어 bdo라고 부를 정도지 않겠습니까? 미영과 양식 시리즈는 좀 쉽게 가는 시리즈인 만큼 여차하면 부담없이 bdo 이야기도 갖다 붙이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 곽재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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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너울 18.09.02 12:15 댓글

    아하,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예요. sf사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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