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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

곽재식

1.

미영과 양식의 우주선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제887 골프장 건설 지역으로 접근했다.

“사장님,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여기가 솜브레로 은하계인데, 지금 은하수의 목성까지 가려면 거리가 얼마에요. 서둘러야죠.”

미영은 컴퓨터의 자동 조종 기능을 켜 놓은 상태로 화면에 나오는 수치를 보다가, 재빨리 키보드에 뭐라고 입력했다. 그런 행동을 몇 번 하다가 문득 무슨 춤을 추는 것처럼 갑자기 길게 발을 뻗어 발가락으로 조종간을 당기기도 했다. 그러면 컴퓨터가 움직이던 우주선은 갑자기 들어온 입력 때문에 마치 놀라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우주선은 강속구처럼 행성 표면으로 떨어지면서도 불타거나 박살나지 않고 제 꼴을 유지하고 있었다.

양식은 우주선의 안전벨트를 꼭 붙잡았다.

“어, 이건 너무 심하네요. 심하네, 심하네!”

양식은 우주선의 급한 움직임 때문에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미영은 온몸을 움직여 우주선 내몰기를 계속했다.

“그 말 들으니까 일본 시마네 현에 가서 우동 먹고 싶네.”

미영의 말을 듣고, 양식은 왜 전 우주의 사장들은 직원에게 저런 식의 농담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 그 원인을 고민하게 되었다. 잠시 후, 그 고민에 대한 대략적인 답조차 얻기 전에 우주선은 행성 바닥에 착륙했다.

“얼른 하나 데려 가자고요.”

“뭘 데려 가는데요?”

양식이 묻자, 미영은 손가락으로 우주선 화면에 보이는 바깥 풍경 중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거.”

그곳에는 연두색 빛깔의 털로 덮힌 오뚝이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복슬복슬하고 동글동글 했는데, 우주선이 도착한 것을 보자 신기한 것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듯 이곳으로 통통거리며 뛰어 왔다.

“저거 그때 마금희랑 싸울 때 봤던 그 외계인 아니에요?”

“외계인은 아니고 그냥 외계 동물이죠. 마금희가 그때 심사 위원회에 넘겨서 지능 적성 심사 받았는데 저 동물은 지적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 판정 났잖아요. 기억나죠? 그러니까 외계인이라고 하면 안 되죠. 그냥 외계 동물.”

미영은 우주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외계 동물을 향해 말을 했다.

“얘야 이리와. 이 우주선 신기하지? 언니가 우주선 태워주고 멀리 멀리 구경시켜 줄게.”

호기심 많은 그 외계 동물은 정말로 우주선 쪽으로 통통 뛰어 왔다.

“말씀하신 게 어릴 때 어머니 아버지께서 나쁜 사람들이 하는 대사라고 한 거하고 비슷하게 들리는데요.”

“이상한 농담 따먹기 하지 말고, 엔진이나 한번 봐봐요. 다시 돌릴 수 있어요?”

“아니오. 사장님. 아까 착륙할 때 우주선을 아주 내던지듯이 날려서 엔진이 녹기 직전인데요. 엔진이 녹아 내려서 아주 쇳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습니다.”

“김 이사. 김 이사는 다 좋은데 왜 이렇게 징징거리면서 우는 소리를 잘 해?”

“‘엔진이 녹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리 내면서 우는 동물도 있나요?”

“뭐 그런 거 아니야? 개는 멍멍, 참새는 짹짹, 고양이는 야용, 김양식은 엔진 녹아, 엔진 녹아.”

미영은 우주선 옆으로 가더니 엔진 노출 부위에 다가갔다. 그리더니 엔진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었다. 곧이어 입으로 엔진 쪽을 후후 불기 시작했다.

“컴퓨터, 엔진 재가동.”

“엔진을 재가동 합니다-”

“어, 사장님, 지금 진짜 엔진 다시 켜면 안돼요.”

“괜찮아요. 내가 지금 불어서 식히고 있잖아요.”

양식은 당황하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에 외계 동물은 정말로 우주선 안으로 뛰어 들어 왔다.

“이거 정말 우주선에 태우는 거에요? 이거 사람 옆에 있어도 괜찮아요?”

“물지는 않는 것 같잖아요.”

“이상한 우주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잖아요.”

“김 이사, 자꾸 말시키지마. 나 지금 엔진 입으로 불어서 식히고 있잖아요.”

그러는 사이에 우주선은 다시 행성 표면에서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사장님. 정말로 지금 다시 태양계로 돌아 가는 겁니까?”

“그럼 어딜가요? 그게 이번에 우리 일인데. 아, 자꾸 말시키지 말라니까.”

그때 컴퓨터에서 소리가 들렸다.

“자동으로 귀환지 목표를 설정합니다. 목적지는 은하수, 태양계, 목성 구역, 칼리스토 위성의 칼리스토 법정입니다-”

양식이 말했다.

“법정이요? 또 누가 소송거는 일에 끼는 거에요? 설마 또 마금희 변호사랑 붙어요? 마금희는 안 된다니까요. 우주 최강의 변호사한테 엮여서 남아 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왜 이런 일을 하는데요? 이거는 우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목표랑도 아무 상관 없잖아요.”

그러나 미영은 엔진을 불어서 식히느라 바쁜 지, 바쁜 척을 하는 것인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주선이 초공간 도약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미영은 엔진을 입 바람으로 식히고 있다가, 몸이 소립자 단위로 산산히 분해되기 직전에 다시 우주선 안쪽으로 몸을 굴려 들어 왔다.

“야, 아슬아슬했어. 하이 파이브!”

“아니오. 사장님, 우리 진짜 진지하게 이번 일 해야 되는 지 어떤 지 우리 회사가 앞으로 나갈 길은 어떤 지 이야기 좀 해 봅시다.”

우주선에 탄 연두색 외계 동물은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거운 놀이처럼 보이는 지, 제자리에서 신나게 콩콩거리며 뛰었다.

2.

미영과 양식의 우주선이 목성의 위성 칼리스토에 도착하자, 보호 협회 회장이 반갑게 두 사람과 한 외계 동물을 맞이 했다.

“제 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오셨네요. 워낙에 빠른 분들이라는 소문은 제가 들었는데, 그래도 솜브레로 은하계에서 여기까지 오시는데 이것 밖에 안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얼음 같은 거 없나요. 제가 입술에 얼음을 좀 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입술이 좀 익은 것 같습니다.”

“숯불구이 같은 거 급하게 드신 겁니까?”

보호 협회 회장은 그렇게 물었지만, 미영도 양식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숯불구이라는 말의 어감이 좋은 지, 연두색 외계 동물은 다시 한 번 통통 뛰었다. 보호 협회 회장은 일행을 이동 차량으로 안내했다. 외계 동물을 태우고 갈 수 있는 차량이었다.

보호 협회 회장이 다시 말했다.

“덕분에 재판에서 선 보일 동물과 외계인들은 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또 무슨 급한 일이 생길지 몰라서요. 이번 재판에 변론 교환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목성 구역 안에 계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최소한 태양계 안이라도요. 갑자기 급히 뭔가를 가져와야 하면 저희가 부탁 드릴 곳이 사장님이랑 이사님 밖에 없습니다.”

“예-”

미영은 그렇게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양식은 어느 협회 회원이 갖다 준 얼음을 미영의 입 앞에 갑자기 들이 밀었다. 그것을 보고 미영은 입술에 얼음을 갖다 대려고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 틈을 타서 양식이 대신 이야기했다.

“저희도 계속 일이 있으니까요. 일단 사장님하고 한번 계획 좀 살펴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데려오신 외계인을 법정까지 좀 잘 데려와 주시고요. 저는 잠깐 변호사님들 좀 다시 뵙고 오겠습니다.”

보호 협회 회장은 떠나 갔다. 회장이 떠나가자마자 양식이 미영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 우리 보고 목성 근처에 머물러 달라고 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한데요?”

“아니, 뭐 급한 필요한 일 있으면 아무나 우주선 갖고 있는 업자한테 부르면 되지. 하필 우리밖에 안된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처럼 좋은 우주선으로 엄청 빨리 날아 다니는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잖아요.”

“흔하지는 않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없지는 않겠죠. 우리가 무슨 동물 데려오는 전문 업자도 아닌데. 왜 우리한테 부탁을 하는 걸까요?”

양식은 법정으로 가는 동안 그것을 고민했다. 그러나, 잠시 후 창 바깥으로 어느 우아한 은색 우주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보고 그 답을 깨달았다.

“마금희 때문이구나.”

혼잣말을 하는 양식을 미영이 돌아 보았다. 미영의 눈에도 막 착륙하려는 은색 우주선이 보였다. 마금희의 우주선이었다.

양식은 미영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아무도 마금희 반대편에 안 엮이려고 다들 도망 가서, 우리 밖에 안 남아서 그러는거죠? 그렇죠?”

“설마 그렇겠어요? 이 우주에 우주선 하나 밑천 삼아서 별의 별 일을 다 하는 날건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마금희라고 뭐 그렇게 무서워 하겠어요?”

미영은 양식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양식이 말했다.

“우리도 따지고 보면 우주선 하나 밑천 삼아서 별의 별 일 다하면서 살잖아요.”

“그렇긴 하지.”

“날건달 처럼요.”

“그런가?”

“그런데 저는 마금희가 무서운데요.”

미영은 양식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았다. 미영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요. 그러면 이렇게 하죠. 일단 변론 교환 기간이 끝날 때 까지 목성에 있기는 있자고요.”

“아니 그러면 안 되죠. 그러다가 진짜 마금희한테 밉보인다니까요. 마금희가 우리 망하게 하기로 결심하면 무슨 짓을 할 지 어떻게 압니까? 지금 마금희가 우리 얼굴 보기 전에 얼른 안드로메다 은하계 같은데로 멀리멀리 가자고요.”

“들어봐. 들어봐. 좀 끝까지 들어봐. 우리가 목성에서 머물기는 머무는데, 만약에 저 보호 협회 사람들이 우리한테 이상한 새로운 일을 맡기면, 그건 내가 수락하기 전에 꼭 김 이사하고 상의해서 할게요. 그러면 어때요? 괜찮잖아요?”

그러나 양식은 얼른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양식은 마금희의 적으로 지목당한 후 패가망신한 사람이 은하수에 얼마나 많은 지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듯한 동작을 했으나, 표정은 전혀 그 내용을 듣고 있지 않았다.

양식은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서 물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가 마금희가 도사리고 있는 법정까지 온 겁니까?”

“지난 번에 마금희가 심사 신청해서 저 외계 동물이 지적 생명체가 아니고 그냥 일반 동물로 판정이 났잖아요? 그래서 건설이나 개발 때문에 저 동물이 해가 되면 내쫓거나 사냥할 수 있게 됐거든요.”

“그냥 짐승이니까 사냥해도 된다는 건가요? 그러니까 골프장이랑 리조트 건설 사업 때문에 저 동물이 방해가 되면 사냥해서 없애도 된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그래서 그 행성 개발한다고 저 동물을 한 4천 마리 정도 사냥해서 없앨 예정이에요. 저 동물이 원래 20만 마리 이상 살고 있어서, 특별히 생태계에는 문제가 안 된다고 하니까.”

“저걸 4천 마리를 죽인다고요?”

양식은 금속과 세라믹으로 뒤덥힌 칼리스토 도시 풍경을 신기해 하며 둘러 보고 있는 털 복실복실한 외계 동물을 쳐다 보았다.

“그래서 보호 협회 사람들이 다시 소송을 건 거죠. 그런데 어디서 소송을 붙는 것이 그나마 마금희에게 이길 가망이 있는 지 여기저기 따져 봤다고 하는데. 너무 늦게 판결 받으면 어차피 저 동물들은 그 사이에 다 사냥 당할 테니까, 시간도 살펴 봤고. 그래서 은하수 안에 있는 온갖 항성계에 있는 법정이란 법정은 다 따져 봤더니, 소송 거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 곳 중에, 지금 여기 칼리스토 법정에서 소송을 걸어야만 그나마 승산이 있다는 거에요. 시간은 당장 지금 오늘 급하게 해야 하고.”

“왜 칼리스토 법정에서는 승산이 있다는 거죠? 어차피 마금희를 당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할텐데.”

“나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르는데요.”

미영과 양식의 대화는 길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칼리스토 법정에 도착했다.

법정에 도착하니, 보호 협회 사람들이 미리 와 있었다. 미영과 양식은 마금희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 사이에 파고 들었다.

그리고 대기실에 외계 동물을 데려다 놓고 나서는데, 사람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사장님, 이사님!”

둘을 부른 사람은 비서였다. 미영은 비서를 보고 놀랐다.

“공항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왜 여기에 와 있어요?”

“예? 아까 제가 마금희라는 분 비서님께 연락을 받았는데, 그 분이 사장님이랑 이사님이랑 이쪽으로 오실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왕 여기까지 오신 거 재판도 구경하라고 하시면서, 방청석도 제일 보기 좋은 자리로 미리 잡아 놓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마금희 한테서 그런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입니까?”

양식은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도대체 마금희는 우리가 여기 온 걸 어떻게 안 거야? 벌써부터 우리한테도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항상 우리를 추적하고 있는 건가?”

“김 이사. 그럴리가 있나. 마금희 같이 바쁜 사람이 뭐하러 할 일 없이 우리 같은 조그만한 회사를 좇아 다니겠어요?”

“그러면 도대체 우리한테 관심을 갖는 건데요?”

“뭔가 눈에 뜨였겠지요. 그 우주 동물한테 권리를 주는 재판을 하는데 우주 동물을 데려 오는 게 중요한 일이니까, 누가 우주 동물 데려오는 지 지켜 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우리한테 복수하려고요?”

비서가 대화 중에 끼어 들었다.

“그쪽 비서님 목소리는 무슨 복수한다거나 그런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던데요. 엄청 친절하고요. 또 목소리도 되게 멋있으시고요.”

양식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말 없이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영은 양식의 얼굴을 좀 살폈다. 비서는 데려온 외계 동물을 지켜 보며, 그 멋진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러는 동안 잠시 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이 있었다.

그러다 미영이 말했다.

“그러면 할 일도 없는데 재판 구경이나 할까?”

“재판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는 시내에 나가서 오래간만에 무중력 볼링이나 한 게임 치겠습니다.”

양식이 돌아 서려는데 비서가 양식에게 다시 말했다.

“마금희 변호사님 쪽에서 잡아주신 방청석이 4dEX석인데요?”

그 말을 듣자 양식 대신에 미영이 대답했다.

“4dEX석이라고? 그러면 꼭 재판 구경해야겠네.”

“4dEX석이 뭔데요? 무슨 21세기 극장에서 관객들 돈 후려 먹을 때 쓰는 핑계 같이 들리는데요.”

“4dEX석이 뭐냐면, 진짜 우주에서 제일 편안한 의자에요. 거기 앉으면 진짜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잠이 솔솔 바로 와요. 그리고 어깨쪽이랑 허리쪽에는 인공지능 맛사지 기능도 있고. 간식으로 한우 안심 스테이크 같은 것도 나오고.”

“재판 구경하는데 중간에 한우 안심 스테이크가 왜 나오는데요?”

“그러니까 4dEX석이지. 냄새 흡착 나노 트랩이 있어서 그거 먹어도 옆자리에서는 냄새도 안 난데요. 진짜 신기할 것 같지 않아?”

결국 세 사람은 법정 안으로 들어 가서 4dEX석에 앉게 되었다. 가 보니, 그곳에는 이미 경리부장이 와서 삭힌 홍어회를 삼겹살과 함께 먹고 있었다.

“사장님, 이사님 오셨어요? 무료로 나오는 음식 중에 홍어회도 있더라고요.”

양식은 경리부장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양식은 자리에 장치된 컴퓨터를 켜서 메뉴를 살펴 보았다. 양식은 이 법정이나 재판에 대한 배경 설명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 보다는 다양한 맛사지 장치 사용법이나 간식에 대한 설명이 훨씬 찾기 쉬운 곳에 이곳저곳에 씌여 있었다.

“도대체 이상하단 말아지. 왜 이런 딱 봐도 이상한데까지 굳이굳이 와서 재판을 하는 건지. 어차피 솜브레로 은하계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그쪽 은하계에 있는 법정에서 재판을 하면 가깝고, 쉽고, 훨씬 좋을텐데요.”

양식이 메뉴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미영이 말했다.

“어, 이제 나는 이유 알 것 같아요.”

양식이 물었다.

“뭔데요?”

미영은 바로 대답이 없었다. 양식은 그래서 미영을 쳐다 보았는데, 미영은 앞쪽을 보고 있었다. 미영이 앞쪽을 보니 판사가 자리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양식이 소리쳤다.

“판사가 로봇이에요?”

미영이 양식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큰 소리로 말했잖아요.”

아닌게 아니라 로봇 판사가 잠시 미영과 양식 방향을 쳐다 보았다. 로봇 판사는 저녁 9시 경의 카니발 댄서처럼 활기찬 몸짓으로 입장했지만, 그 활기찬 태도와 모습은 너무나 로봇스러워 보였다.

미영의 목소리를 듣고, 보호 협회장도 미영과 양식이 있는 쪽을 쳐다 보았다. 보호 협회장은 자신의 변호사 두 사람과 함께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 왔다.

“안녕하세요. 이쪽이 저희 변호사이신 이규도 변호사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이규도입니다.”

이규도는 재빠른 동작으로 명함을 꺼내서 건네는 모양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이규도에 대한 정보가 미영과 양식의 전화기와 컴퓨터에도 전송되었다. 이규도는 미영과 양식이 묻지 않았는데도 길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금희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저희가 지금 이렇게 도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린다는 거죠. 사실 법정의 판사들도 다들 마금희는 알고 있어서, 요즘에는 왜인지 마금희가 나오기만 하면 무심코 판사들도 마금희 쪽으로 왜인지 심리적으로 기울어진다고 하거든요. 소문이기는 합니다만, 만에 하나 재판에 패배하면 마금희가 온갖 소송이란 소송은 다 걸어서 판사도 망해버리게 만들거라는 이야기도 돌고요. 그러니까, 마금희랑 공정하게 싸울 수 있는 법정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장님께서도 정말 절망적이셨고.”

“그때 제가 이규도 변호사님을 만났죠. 이규도 변호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사람 판사는 편견에 기울어지고, 마금희라면 왜인지 그 쪽으로 쏠리고, 마금희라면 겁내고 그래서 공정한 판단을 못내리겠지만, 로봇 판사는 공정하게 할 거라는거죠. 그래서 저희가 로봇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법정이 우주에 몇 군데나 있는지, 거기에 우리가 소송을 걸 수 있는데가 있는지 정말 열심히 뒤지고 다녔습니다. 저 외계인이 그냥 사냥 당하도록 둘 수는 없잖습니까?”

이규도 옆에 서 있던 로봇이 한 걸음 앞으로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로봇 변호사 KW82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봇 변호사의 목소리가 맛집 소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니 이게 정말 전부 1만9천원?”하는 나래이션을 하는 성우 목소리였다. 양식이 약간 당황하는데, 미영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KW820이 설명했다.

“제가 열심히 우주 각지의 재판 예약 정보망을 검색해 보니까, 저희가 오늘 날짜에 재판이 열리는 칼리스토 법정에서 소송을 걸면 로봇 판사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를 겨우 겨우 찾아냈습니다. 시간이 급박해서 저도 지금 방금 여기 도착했고요. 시간이 없다 보니까 외계인 한 분 증인으로 모셔 오는 것은 사장님께 부탁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음악이 나왔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댄서 두 사람이 판사들 앞에 나타났다. 춤을 추며 댄서들이 노래했다.

“이제 재판이 시작되네! 모두 앉아줄래! 우리 법정 판사 소개! 로봇 판사 DRD426이래!”

그것을 보자 다들 자리로 돌아가 앉기 시작했다. 보호 협회 회장이 말했다.

“이제 재판이 시작되나 보네요. 행운 좀 빌어주세요.”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비서는 벌써 거대한 붉은 색 용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 상태였다. 여의주 부분은 체리였다.

“원고와 피고는 확인 사항을 먼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로봇 판사 DRD426은 재판에 필효한 형식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은 좀 길어졌는데, 양식이 보기에 그 긴 시간 동안 로봇 판사의 재판 진행은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사장님, 이게 제대로 될까요?”

“김 이사, 4dEX 자리에는 음파간섭 기능이 있단 말이죠. 그거 켜 놓고 이야기하면 나한테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들한테 안 들리고 안 시끄러워요.”

양식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컴퓨터를 뒤져서 소리가 주변으로 안 들리게 하는 기능을 실행시켰다. 중간 중간에 자꾸 “화성식 탕수육 출시!” “수성 화로 구이를 지금 맛보세요!” 같은 팝업 창이 계속 나와서 좀 오래 걸리긴 했다.

“사장님, 정말로 저 사람들이 마금희를 이길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없는 느낌은 아니지 않아요?”

“어떤 점에서요?”

“로봇 판사가 왜 인기가 있었냐면, 돈 없는 사람 한테는 판사들이 무겁게 벌을 주는데, 비슷한 죄를 지은 돈 있는 사람 한테는 이상하게 판사들이 갑자기 가볍게 벌을 주는 게 너무 나쁘다고 사람들이 욕을 많이 했거든요. 이랬다저랬다 공정하지가 않다는 거죠.”

“그런데 로봇 판사는 정말 공정하다는 거에요?”

“로봇 판사 2.0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역대 재판에서 제출된 자료랑 변론한 내용이랑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 지, 그런 자료를 어마어마하게 분석해서 거기에서 그걸 컴퓨터에게 인식시켰거든요. 그래서 그걸로 모델을 만들어서, 그 모델에 따라서 로봇 판사는 판결을 내려요. 그러니까 과거에는 분명히 비슷한 죄에 대해서 무겁게 벌을 내렸다면, 아무리 돈 있는 사람이 재판을 받는다고 해도 갑자기 가벼운 벌을 내리지 않는 다는 거에요. 갑자기 일관성 없는 이상한 판결이 안 나오고요. 항상 일관성이 있게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얼마 후, 보호 협회에서는 증인으로 외계 동물을 증인석에 나오게 했다. 외계 동물은 복슬복슬한 털을 하늘거리면서 뒤뚱거리고 있었다. 외계 동물이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것을 보고, 미영은 결국 나서서 외계 동물이 증인석에 가도록 도와 주었다.

“언니가 이거 씌워 줄게.”

미영은 회장에게 건내어 받은 조선시대 풍의 갓을 외계 동물 앞에 보여 주었다. 사람들과 접촉한 후, 외계 동물은 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습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예상한대로, 외계 동물을 미영에게 다가 갔고, 갓을 썼다. 그러는 동안 증인석에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양식은 왜 또 미영이 마금희 보는데 저렇게 나서나 싶어 겁을 먹었는데, 그래도 분위기를 둘러 보니, 적어도 방청객들은 대체로 외계 동물을 본 첫인상에서 호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때 마금희가 나서서 말했다.

“재판장님, 저 외계 동물은 현재 시점에서 분명히 지적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 심사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저 외계 동물은 외계인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증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재판에서 저 외계 동물을 다루려면 증인이 아닌 증거물로서 처리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금희는 외계 동물을 증인석에서 내려오게 만드려고 하고 있었다. 이규도가 말했다.

“재판 분위기를 우리 쪽으로 움직이려면, 증인석에 저 외계인이 계속 있는 게 좋은데, 마금희도 그걸 아나 봐요. 일단 끌어내리려고 하네요.”

“그럼 어쩌죠?”

회장이 묻자, KW820이 대신 대답했다.

“이런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증인이 증거물을 들고 보여 주는 형식으로 증인석에 앉아 있을 수는 있으니까, 일단 회장님께서 증인으로 증인석에 나가시는 거죠. 그리고 저 외계인은 회장님이 들고 있는 증거물이 되었든 아니면 정말로 같이 배석한 증인이 되었든, 둘 중에 뭘로 처리되던 간에 같이 나가시는 방식으로 하시면 어떨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회장은 앞으로 나아가 외계 동물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곧이어 본격적으로 증인에 대한 질문이 시작 되었다. 외계 동물은 사람의 말을 거의 알아 듣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회장은 외계 동물이 내는 소리와 몸짓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었고, KW820의 번역기는 사람의 말을 그것으로 어느 정도 바꿔서 보여줄 수 있었다.

“저거, 좀 귀엽네요.”

구경하던 비서는 점잖은 변호사다운 정장을 입고 있던 KW820 로봇이 털뭉치 같은 외계 동물의 뒤뚱거리는 몸짓을 온 몸으로 따라 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귀여운 것은 사람마다 감상이 다를 수 있겠으나, 미영, 양식, 경리부장 모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대상이라면 상대가 일정한 의식과 인격과 비슷한 것을 갖고 있을 거라는 느낌도 줄 수 있을만 했다.

“현재 저희의 예상 승리 확률은 58퍼센트입니다.”

KW820이 이규도와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은 그 내용을 미영과 양식 일행에게 공유해 주었다. 양식이 물었다.

“그 확률이 믿을 만 한 거에요?”

“제 컴퓨터 속에도 지금 저 DRD426 판사 로봇에 들어 있는 것 하고 똑같은 자료가 입력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저 판사 로봇이 재판에 사용하는 프로그램하고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추측해서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도 설치 되어 있고요. 그래서 제가 로봇 판사 입장에서 지금까지 자료만으로 재판 결과를 계산해 보면, 58퍼센트 확률로 저희가 소송에서 이긴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KW820이 대답했다. 회장이 물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가 이길까요?”

이규도가 대답했다.

“DRD426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좀 다르긴 다르니까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일이 벌어져서 확률이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 마금희가 뭔가 결심을 한 듯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서 길게 말을 하겠다고 했다.

양식이 주위를 둘러 보니 다들 뭔가 조마조마해 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심지어 약간 기대하는 느낌 같은 것도 사람들 사이를 감도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그 전설적인 마금희의 솜씨를 구경하게 되겠구나”하는 느낌이지 싶었다. 실제로 방청석 뒤 편에는 카론의 로스쿨에서 온 학생들이 비열한 수법으로 재판 이기기의 거성이 보여 주는 솜씨를 보고 배우겠다고 와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동경과 공포가 함께 빛나고 있었다.

마금희가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탄 우주선이 외계 행성에 착륙을 하면, 착륙하는 과정에서 거기에 깔리고 밟혀서 외계 행성의 세균이나 미생물들이 수백 만마리가 그대로 죽습니다. 보통 평균 몇 마리나 죽는 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사람이 걸어다닐 때 마다 또 막대한 양이 죽지요.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모두 죄이고 위험한 일이라고 해서, 날아다니지도 않고 걸어다니지도 않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온갖 범죄라는 범죄에 대해서는 다 연구해 보았지만 그런 것을 죄라고 하는 것은 들었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보호해야 할 생물, 권리를 보장해 줘야할 생물과 그렇지 않은 생물의 경계를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물론 함부로 생명을 파괴해서는 안 되니까 그 경계는 어느 정도 넉넉하고 혹시 우리가 실수로 잘못 판단할 여지까지 감안해서, 어지간하면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쪽으로 설정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넉넉하게 감안하는 원칙을 제창한 사람 이름은 제가 지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다들 아무 소리도 안 내고 있었다. KW820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만 화면에 보였다. “우리가 승리할 확률이 감소했습니다.”

마금희가 이어서 말했다.

“그 기준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 갑자기 충치균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충치균에게 애정을 느끼고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해도, 제 마음대로 충치균은 좋은 생물이니까 보호하고 함부로 없애지 말자고 주장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않습니까? 더 좋은 예시가 지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충치균을 예시로 들었는데 다른 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보호해야 하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 사이의 경계는 합의에 따라 체계화된 기준에 의해 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저 동물에 대해서 바로 그런 모든 고려 사항을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서 만든 기준으로 심사를 했습니다. 정확한 심사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KW820은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승리할 확률이 또 감소했습니다.” 마금희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심사 결과, 저 동물은 문제 해결 지능, 자의식, 감정 교류, 다른 지적 생명체와의 공감에서 모두 기준을 미달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미달 했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문제 해결 지능은 지적 생명체로 인정 받기 위한 기준인 65점에서 2점 미달했고, 자의식은 기준인 50점에서 1점 미달했고, 감정 교류는 기준인 70점에서 2점 미달했습니다. 다른 지적 생명체와의 공감에서는 얼마나 미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네 가지 분야에서 기준 미달이라는 것은 지구의 동물과 비교하자면 들쥐 정도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 불가피한 개발을 위해서 저 동물의 일부를 사냥하는 것이 갑자기 방해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식의 마구잡이 방해가 정의로웠다는 사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완전히 다 멸종시키자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마금희가 말을 마치자, KW820은 다시 계산한 확률을 알려 주었다.

“우리가 승리할 확률은 27%입니다.”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뭐요? 72%요?”

이규도가 다급하게 되물었다.

“우리가 승리할 확률은 27% 입니다.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도대체 왜요? 마금희가 나쁘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저 정도 이야기를 한다고 우리가 예상못한 것도 아니잖아요.”

양식은 왜 갑자기 회장 쪽이 갑자기 불리해졌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미영이 그 대답을 깨달았다.

“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

그 말을 KW820이 전해주자, 이규도의 탄식이 이어졌다.

“어뷰징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양식과 회장은 같은 질문을 각각 미영과 이규도에게 했다.

“어뷰징이 뭔데요?”

미영이 양식에게 설명했다.

“아까 로봇 판사는 일관성 있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예전에 나온 다른 많은 판결들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다가 거기서 규칙성과 원칙을 찾아내서 거기에 맞춰서 자기가 내려야할 판결을 계산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야 엉뚱하게 너무 어긋나는 판결이 안 나올테니까요.”

“예. 그랬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높은 자리에 있고 거물이라고 해서 자기가 받아야 될 처벌을 다 안 받고 재판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 사실 과거에 많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보통 그런 사람들이 재판 중에 무슨 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었냐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양식이 설명 중간에 대답했다. 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한 일 잡아 뗄 때 흔히 쓰는 말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거든요. ‘안 했다’고 해버리면 나중에 정말 잘못한 일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까지 나오고 나면 거짓말한게 돼버리니까, 나중에 증거가 나와서 부인할 수 없을 때에 거짓말 한 것은 아니라고 둘러대기 위해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고 말 하는 거죠. 했다고 말은 하기 싫지만 안 했다고는 말하면 거짓말일 수도 있으니까 했는 지 안 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고 대답한단 말이죠.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 정말 많았다고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굉장히 유리한 판결을 받았죠.”

“그래서 로봇 판사가 그런 규칙성을 인식해 버렸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로봇 판사의 프로그램이 예전 재판과 판결과의 일관성 있는 관계를 따져 봤을 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는 대답을 많이 한 사람들은 유독 유리한 판결을 받았다는 규칙성을 찾아낸 거겠죠. 그래서 그게 지금 프로그램의 학습된 내용으로 아예 들어 가 있는 거에요. 그러다보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하여간 말 하는 도중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말만 많이 쓰면 그 사람 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버리는 경향이 생긴거죠. 프로그램 입장에서 단순하게 보면 그것만큼 예로부터 내려온 다른 판결과 일관성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마금희가 말 끝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는 거고.”

“그러다 보면, 다른 자료는 대충 제출하고 다른 말은 대충해도, 그 말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도 ‘재판에서 이기는 경향이 있는 말을 한 사람’으로 로봇 판사가 계산해서 재판에서 이길 거라고요.”

양식은 미영에게 어뷰징 수법을 한 번 듣고 났더니, 이제는 마금희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마금희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이미 길고 복잡한 심사를 거쳐서 답이 나온 문제를 가지고 다시 이렇게 소송을 걸어서 방해하는 것은 정말 정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저희는 자기 전에 이런 악몽 같은 일을 잊고 싶어서 이런 노래를 부를 때도 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 자신에게 되뇌이네. 기억이 나지 않아. 잊고 싶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기억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KW820이 이의를 제기해서 마금희의 노래를 중단시킬 때까지 마금희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멜로디가 제법 괜찮고 마금희의 노래 솜씨도 썩 좋아서, 방청객 중에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금희는 자리로 돌아 가서 자신과 함께 온 자기의 로봇 변호사에게 뭐라고 물었다. 마금희 쪽도 로봇 판사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설치한 로봇을 데려온 것 같았다. 마금희의 로봇 변호사는 로봇 판사 입장에서 지금 재판에서 승리할 확률을 계산했고, 마금희에게 들려 주었을 것이다. 마금희는 그 숫자가 기분을 좋게 만들 정도였는지, 밝은 웃음을 띄었다.

“우리 어떡하죠? 이거 큰일 났네요.”

이규도가 말했다. 회장은 ‘내가 해야할 말을 나의 변호사인 당신이 하면 어쩌냐’는 표정을 짓고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규도는 속절 없이 계속 떨어지는 승리 확률 숫자를 읊으며, “뭐 25%? 이제는 22%야? 왜 이렇게 빨리 떨어지죠. 너무 낮은데요.” 라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회장은 힘이 빠져서 점차 생각조차 할 기력도, 의욕도 잃은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러는 중에, KW820이 말했다.

“현재 가능한 대응 방안은 우리도 어뷰징을 거는 것입니다.”

“어뷰징이요? 변호사님도 어뷰징 걸 줄 아세요?”

“저에게 어뷰징 소프트웨어는 설치 되어 있지 않습니다.”

회장은 잠깐 기대했다가 더 실망했다. 이규도가 물었다.

“그냥 우리도 아무렇게나 무조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란 말만 많이 해 볼까요?”

“이미 상대쪽에서 같은 전술을 써서 우선 발화 표현자 값1 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따라하면 역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회장이 묻자, 이규도는 “지금부터 따라하기만 해서는 어쨌거나 마금희를 꺾을 수는 없다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회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뷰징 소프트웨어를 지금 빨리 어디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해 보면 어때요?”

“DRD426 로봇 판사에게 적용 가능한 수준의 어뷰징 프로그램은 단순 검색으로 발견하여 다운로드하기는 어렵습니다.”

“큰일났네.”

“그런데.”

KW820의 말이 잠시 멈추었다. 회장과 이규도는 말을 멈춘 채 KW820의 답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36광년 떨어진 물고기자리54번 별 항성계에 ‘쇼크 로봇’이라는 어뷰징 전문 변호사 로봇이 있는 것으로 파악 되었습니다. 항성간 통신으로 통화를 하면 송신과 수신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대화를 하려면 차라리 쇼크 로봇을 직접 여기에 데려 오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기 전에 물고기자리54번별에서 쇼크 로봇을 여기 태양계까지 데려 오려면 대단히 빠른 우주선으로 움직여도 아슬아슬합니다.”

그 설명을 듣자, 회장과 이규도는 동시에 미영과 양식을 바라 보았다.

그렇게 해서 미영과 양식은 쇼크 로봇을 데리러 가기 위해 급히 법정을 빠져 나와 우주선을 타게 되었다.

약속대로 미영은 양식을 설득해야 했고, 양식은 마금희와 싸우는 일을 마금희 눈 앞에서 대놓고 돕는 것은 하지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양식을 설득하는 미영의 솜씨는 정교했다. 미영은 양식의 마음 속 굽이굽이 직장 생활 동안 맺히고 꼬인 것을 장단 맞춰 어루만지듯이 말하며 그를 설득했고, 적당한 시점마다 이렇게 긴급한 일을 맡기며 협회 회장이 얼마나 많은 보수를 제안했는지도 이야기 했다.

미영과 양식은 결국 물고기자리54번 항성계의 어느 유람 우주선을 타고 있던 쇼크 로봇을 찾아 내서, 태양계 목성의 칼리스토 법정까지 데려 오는데 성공했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가운데에 재핀이 진행되던 법정과, 그 동안 최대 출력으로 초공간도약을 한계까지 거듭하며 요란하게 은하계를 헤집고 다닌 미영의 우주선이 같은 시간, 같은 사건에 얽혀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영과 양식은 급히 움직여야 했지만.

재판은 말미로 접어 들고 있었다. KW820과 이규도는 도착한 쇼크 로봇에게 재판에 관한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한 자료를 모두 전송해 주었다. 둘은 쇼크 로봇에게 매달렸다.

“어쩌면 좋습니까? 이 상황에서 우리도 어뷰징으로 반격할 방법이 있을까요?”

미영과 양식이 쇼크 로봇을 처음 물고기자리54번 항성계에서 발견했을 때만 해도, 이 로봇의 모습은 해적선장의 애완 원숭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해괴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단장을 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 서니, 쇼크 로봇의 모습은 경지가 높은 학자를 연상케 하는 고아한 점이 있어 보였다.

쇼크 로봇은 4분 정도 고용량 분석을 하는 것처럼 말 없이 계산만 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변호사들에게 말했다.

“연가”

그 말을 듣고 이규도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가’라는 말을 많이 쓰게. 그러면 반격할 수 있을 걸세.”

양식이 미영에게 물었다.

“연가가 뭔데요?”

“나도 몰라요.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연가라고 하지 않나? 그 왜, 옛날 뉴질랜드 노래도 연가라고 있잖아요. ‘비바람이 치는 바다, 파도 잔잔해져 오면’”

미영은 노래를 흥얼거렸지만, 그 노래 가사를 끝까지 따라가 봐도 쇼크 로봇이 해 준 충고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마침, 보호 협회 회장 쪽에서 변론 자료를 송출할 차례가 되었다. KW820이 앞으로 나아 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적 생명체 심사 방법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 불완전한 방법입니다. 제가 연가를 내고 도서관에 가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물론 초창기의 단순히 전통적인 지능지수만 평가하던 방식에서 발전해서, 자의식, 감정 교류 등등의 다각적인 분야를 검사하는 형태로 어느 정도 발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런 심사가 비록 다각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어쨌든 그 모든 기준들이 태양계의 지구에서 탄생한 사람의 습성에 맞춰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춰서 외계 동물의 감정 교류나 자의식을 심사해 본다고 한들, 결국 사람과 비슷한 기준의 감정, 자의식인 것만 표현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연가 동안 내린 결론이고, 많은 전문가들도 이런 의견을 표출한 적이 있습니다.”

KW820은 말을 하면서 도중에 계속 그때그때 승리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큰 변동은 없었지만 그래도 좀 확률이 올라 가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얼마전 발견된 행성인 하백민주왕국의 강물 속에는 하백인이라는 외계인이 살고 있습니다. 저도 연가를 낼 수 있다면 하백민주왕국에 가서 하백인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이 외계인은 지금 우리에게도 문제 해결 지능 점수를 아주 높게 얻어서 널리 수준 높은 외계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종족입니다. 그런데 하백인들은 지구의 자라 등껍질을 보게 되면,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심지어 그 모양에 대한 성스러운 감정에 가까운 것을 느끼는 듯 합니다. 연가를 내고 지구에 찾아 와서 자라를 보며 하염 없이 시간을 보내는 하백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백인들이 아름다움이나 감동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사람과 아주 다른 것입니다. 즉 하백인들의 감정 체계는 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하백인이 부르는 연가와 사람이 노래하는 연가는 그 정서가 전혀 다릅니다.”

KW820은 증인석 쪽에 있는 외계 동물을 향해 걸어 갔다. 외계 동물은 KW820을 반가워 하는 듯이 그 쪽으로 조금 다가섰다.

“그렇다면, 만약 오늘 증인으로 나온 외계인이 인간 기준으로는 감정 교류가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하백인들의 기준으로는 감정 교류가 아주아주 뛰어난 종족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형태일 뿐이지, 증인이 사실은 누구 보다도 깊은 지적,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이런 사실은 누구라도 연가를 내고 쉬면서 조용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KW820이 보낸 계산 결과가 미영의 자리에 달려 있는 화면에 표시되었다. “재판 승리 확률 50%”. 어느새 제법 확률이 높아진 상태였다.

“우리의 지적 생명체 심사라는 것은, 사실 지적 생명체 심사가 아니라 그냥 인간과 닮은 정도 심사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증인석에 있는 외계인을 개와 고양이와 교류하게 했을 경우, 사람이 개와 고양이와 교류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강도의 복합 정서 교류가 관찰됩니다. 예를 들어, 개가 사람을 만나면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어 하고, 얼른 바깥에 나가서 산책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보여 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이 외계인이 개와 만나게 되면 개는 주인과 자신의 관계를 민주 사회의 윤리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즉, 개나 고양이의 입장에서 이 외계인은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지적인 생명체 역할을 합니다. 저희 실험으로는 돌고래 역시 사람보다도 이 외계인과 더 깊게 감정을 교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에게 연가를 일주일만 내게 해 주시면 이런 사례를 몇 십 가지는 더 찾아 드릴 수 있습니다.”

KW820은 말 하는 중에 재판 승리 확률이 52%까지 높아진 것을 계산할 수 있었다. 지켜 보던 협회 회장과 이규도는 숫자가 높아지는 것을 보며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KW820은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그런데, 이런 생명체를 우리가 사람 기준으로 최근에 급히 만든 심사 방식으로 겨우 과목 마다, 1점, 2점, 점수가 모자라다고 해서, 들쥐 같은 동물로 평가하고 마구 사냥한다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 합니다. 법적으로 그 일을 못 막는다면 연가를 내고 그곳에 가서 다른 방법으로라도 막아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KW820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 오려다 말고, 갑자기 멈춰 서더니 뒤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비록 뜻은 없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연가, 연가, 연가, 연가, 연가, 연가.”

말을 마치고 계산하니 재판 승리 확률은 54%가 되어 있었다.

회장과 이규도는 감격하며 쇼크 로봇에게 물었다.

“어떻게 연가라는 말을 계속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재판 승리 확률을 높일 수가 있는 겁니까? 정말 신기하네요.”

“그렇지만 여기까지라네. 이 말로 확률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고, 거기에 도달한 것 같네.”

이규도는 쇼크 로봇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면서 정중하게 물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도대체 이게 무슨 원리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휴가라든가 연차라는 말을 쓰지 연가라는 말을 잘 쓰지 않지. 연가라는 말은 보통 공무원들이나 공무원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공기업에서 쓰는 말이라네.”

“그것이 재판과 무슨 관계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재판 기록을 보면, 개인이 국가 기관이나 공공 기관과 소송을 하게 되면 개인은 대부분 공공 기관에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네. 법령이나 규정에 대한 해석 능력 자체를 갖고 있는 거대한 조직인 공공기관과 다투면서 개인이 자기가 법적으로 더 정당하다고 밝히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네. 그러므로 정부 공공기관의 적이 되면 그냥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도 있었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런 유형으로 진행되는 재판이 많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한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네.”

이규도는 그제서야 알겠는지, “아”하는 소리를 냈다. 쇼크 로봇은 설명을 마쳤다.

“즉 연가라는 말을 쓰는 쪽은 관공서나 공공기관 쪽 사람인 경우가 많다네. 그리고 그런 유형에서는 관공서나 공공기관 쪽이 어찌 되었건 재판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지.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명히 로봇 판사는 거기에서 규칙성을 발견했을 것이라네. 즉 연가라는 말을 쓰기만 하면 일단 그 사람이 이기는 편이라는 식으로 판단하도록 학습 했을 걸세.

이 방법이 통할만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재판을 나는 ‘어뷰징 분류 갑-1’로 분류하고 있는데, 지금 이 재판도 거기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지.”

설명을 듣고 더 흥분한 협회 회장이 쇼크 로봇과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이길 수 있나요?”

쇼크 로봇이 대답했다.

“이 수법으로 올릴 수 있는 승리 확률은 지금까지가 최선이네. 공무원이 항상 공공기관 자체와 동일한 것도 아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기관이 재판에서 강하다는 경향이 무너질 때도 있기 때문이네. 그래서 승리 확률을 이 방법으로 더 높일 수는 없네.”

이규도가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재판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마금희가 새로운 사람을 갑자기 어디 멀리서 데려올 만한 시간도 없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작은 차이라고 할 지라도 우리가 마금희를 이길 겁니다.”

쇼크 로봇의 이야기를 구경하던 미영과 양식은 마금희 쪽을 쳐다 보았다. 마금희는 자기편 변호사 로봇이 계산한 승리 확률을 듣더니 얼굴이 바뀌었다. 상쾌하던 웃음은 사라지고 대신에 아무것도 없는 표정이 자리 잡았다.

아닌게 아니라 마금희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남은 시간은 없었고, 몇 가지 단어를 계속해서 말해서 다른 어뷰징을 거는 것도 이제는 그 효과의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그렇게 되니, 지고 있는 마금희 쪽보다는 오히려 이기고 있는 이규도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듯 싶었다. 이규도는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강한 변호사이며 아무도 이길 수 없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마금희를 지금 오늘 자신이 이기게 된다는 꿈에 빠지고 있었다. “마금희를 무찌른 변호사”라는 명성을 갖게 되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될 지 모르며, 그렇게해서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이면 이규도는 자신이 꼭 갖고 싶은 행성에서 아늑한 대륙 하나를 정원으로 가꾸겠다는 미래까지 잠깐 사이에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금희는 그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금희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 나더니 방청석 쪽을 둘러 보았다. 마금희의 눈에 로스쿨 학생들 몇몇이 보였다. 마금희는 그 학생들의 얼굴을 잘 훑어 보고 그 중에 두 사람을 골랐다. 그리고 마금희는 자리에 앉았다.

“가까이에서 제가 말하는 것을 좀 봐 주실래요?”

마금희는 두 로스쿨 학생들에게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도 마금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두 학생은 마금희를 선배로 여기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마금희는 몇 가지 인연으로 자신과 두 학생이 선후배 관계가 된다는 메시지도 같이 보냈다. 두 학생은 마금희의 전설이 오늘 끝나는 것인가 싶어 떨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재판은 반드시 이긴다는 마금희의 기적 같은 솜씨가 마지막에 또 펼쳐지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있기도 했다.

마금희는 다시 일어 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판사나 증인석 쪽을 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마금희는 방청석을 향해, 자신이 가까이 오라고 지목한 두 학생을 보면서 말을 했다.

뭔가 싶었지만, 그것을 보고 이미 쇼크 로봇은 경고 신호를 보냈다. 미영은 “이거 분위기 심상찮은데”라고 중얼거렸다.

마금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우주는 넓고 지적 생명체는 많습니다. 어디에 있을 지도 모르는 그 많은 지적 생명체의 모든 기준을 다 정해서 그 모든 도덕 기준을 따져서 우리의 기준과 규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어디에 있는 지 알지도 못하는 외계인 기준을 고려해서 어떻게 전혀 새로운 감정 교류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자의식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가 나온 하백인들은 자라 등껍질을 보고 감동했다고 했는데, 설령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지구의 자라들을 갑자기 존경하거나 자라를 사원 같은 데 모셔 놓고 떠받들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아는 한계 내에서 기준을 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다가 양식이 미영에게 “이번에는 이상한 말 반복하는 건 없는데요?”라고 물었다. 미영은 “그렇네”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마금희의 말은 이어졌다.

“그렇다고 보면, 알 수도 없고 무엇이 될 지도 모르는 막연한 이유로 수많은 사람과 로봇들이 땀을 흘린 커다란 개발 사업을 중지해서 많은 사람과 로봇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 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최대한 잘 만든 심사 기준에 의해서 나온 그 결과를 따라서, 저 동물을 지적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비록 안타깝게 1,2점 차이로 지적 생명체로 인정을 못 받게 되었다고 하지만, 기준 점수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해서 이미 상당히 낮춰져 있는 점수였는데, 그 점수조차 넘기지 못한 것입니다.”

여전히 특별히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규도는 그때까지도 상기되어 있었다. 우주 제일의 마금희라고 하지만, 특이한 말로 새롭게 놀라운 어뷰징을 걸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자신의 승리가 굳어지는 것이다. 이규도의 머릿 속에 “이제 드디어 자신이 마금희를 이기는 건가”하는 생각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다만 쇼크 로봇의 모습만이 어쩐지 지나치게 잠잠해 보였다. KW820이 계산 결과를 이야기했다.

“우리가 승리할 확률은 31%입니다.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이규도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중심을 잃을 정도였다.

“아니, 왜요? 왜? 아무 어뷰징도 안 걸린 것 같은데. 왜요?”

쇼크 로봇은 자리에서 일어 나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규도에게 설명했다.

“전관예우 어뷰징에 걸렸다네. 과거 재판 중에는 검사나 판사 출신인 선배가 변호사로 재판에 참여하면 후배인 상대방 검사나 판사가 어느 정도 그 편을 들어 주는 성향이 있었다고 하네. 공식적으로는 결코 없던 일이라고들 하지만, 많은 재판 결과를 살펴 보다 보면 가끔 특이한 사례로는 나타난다네. 마금희는 바로 그렇게 선후배 관계를 이용해서 재판에 이기는 것과 비슷한 태도를 연출해 보인 것이네.”

쇼크 로봇은 조용히 법정 바깥으로 나갔다. 이규도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금희가 누구를 새로 데려온다거나 이상한 특이한 말투를 쓴다거나 한 게 없잖아요.”

KW820이 대답했다.

“누구를 새로 데려오지는 않았지만, 마금희를 선배 법조인으로 우러러 보고 있는 후배 두 사람을 방청석에서 찾아 냈지요. 그리고 그 후배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선배의 말투, 표정, 태도, 호흡을 판사 로봇에게 보여준 겁니다. 그게 바로 선배 판사 출신 변호사가 후배 판사 앞에서 말하는 태도와 똑같이 보였을 거라고요. 바로 그런 태도를 판사 로봇이 보면, 판사 로봇은 그 태도를 보여준 변호사를 이기는 변호사로 인식을 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게 판사 로봇이 예전 판결을 분석해서 찾아낸 일관성 있는 규칙성이니까요.”

재판의 결과는 다른 날짜에 발표될 것이었지만, 다들 그것으로 재판은 이미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보호 협회 회장은 또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저 외계 동물을 보호하겠다고 외쳤다.

“나 여기서 안 무너져요! 다시 돌아 올 거야, 다시!”

그런 말을 부르짖으며 소리를 지르고 날뛰다가 끌려 가기도 했다. 그 소동이 재미난 지 외계 동물은 책상과 의자 사이를 대단히 높은 점프로 통통 뛰어 다녔다.

마금희가 있는 곳에서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양식은 얼른 떠나자고 졸랐지만, 미영은 4dEX 의자의 사용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양식은 옆을 지나가는 마금희와 눈길이 정확히 일치하게 마주쳤다.

양식은 마금희의 눈동자를 보자 마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되었다. 처음에는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양식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저런 말을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마 변호사님, 또 여기서 이렇게 뵙네요. 이렇게 말씀까지 길게 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왜 자꾸 이렇게 뵙게 되는 지 모르겠어요. 잘 아시겠습니다만, 저희가 마 변호사님 하시는 일에는 정말 조금도, 전혀, 아무런 반감도 없고, 사실 마 변호사님 좀 대단하시다고 생각도 하고 있거든요. 그냥 저희가 사업을 하다 보니까, 이상하게 반대쪽 편에서 주문을 자꾸 받게 되어서 이렇게 되는 것 뿐이네요. 정말, 저희가 마금희 변호사님께 뭐 어떻게 생각을 갖고 있고 이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짜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양식은 잠깐 고개를 돌리고 두려움을 표출하다가 다시 마금희를 쳐다 보았다.

“저희 좀 용서해 주시면 안 되나요? 사업하다 보니까 이렇게 어긋나게 된 것은 제가 개인적으로는 정말 깊이 사죄 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사죄를 하면 좋을까요.”

양식은 마금희가 무릎 꿇고 두 손으로 빌라고 한다거나, 죄송하다고 쓴 푯말을 들고 자기 뒤에서 삼보일배를 하면서 따라 오라거나 할 것 같다고 상상했다. 혹은 마금희가 자신에게 더 심한 일을 시킬 지도 모르며, 그렇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시키는 대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금희는 양식을 향해 손등을 내밀었다.

“이 손등에 전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분께 바치는 것과 같은 태도로 입을 맞추기.”

양식은 그리고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마금희의 손등에 가장 공손하고도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금희는 웃어 보였는데, 그 웃음은 시리우스 별의 한 가운데에서도 녹지 않을 만큼 차가워 보였다.

음식을 넉넉히 먹은 미영이 돌아 올 때까지도 양식은 멍하니 있었다. 외계 동물이 뛰어 들어 온몸의 털에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 하자 그제서야 양식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 2018년, 남대문에서

댓글 3
  • No Profile
    무한상상 18.07.17 22:46 댓글

    법정물이 관심이 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엔딩 직전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제가 부족한 탓인지 결말과 의도를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무한상상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07.18 05:51 댓글

    미영과 양식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연작으로 되어 있어서 결말은 그에 대한 연결고리로 넣은 것입니다. 이 한편만 보신다면 재판 끝나는 대목까지만 보시면 됩니다.

  • No Profile
    b9 18.08.31 07:29 댓글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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