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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 행성

곽재식

1.

미영과 양식의 우주선이 바람개비 은하계에서 막 빠져 나오려고 할 때, 우주선에 조난 신호가 들어 왔다.

“별로 안 머네. 우리 저기 가서 구조해 주고 가자.”

미영이 말했다. 그러나 양식은 바로 반대했다..

“우리가 어떻게 직접 구조해요. 거기가 다리 열 개 달린 오백미터짜리 우주 괴물 사는데면 어쩌려고요?”

“그래도 같은 은하계까지 왔는데 인도주의적으로 그냥 지나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사장님, 재빨리 제일 가까운 사람 사는 행성 근처까지 가서, 우리가 이런 우주 조난 신호를 잡았다고 이야기를 통신으로 전해 주는 게 제일 안전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포상금을 못 받잖아.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조난 신호 잡았을 때 우리가 직접 구조해서 대피 센터까지 옮겨 주면 포상금이 제법 세요. 그거면 우리 회사 직원들 일년치 월급은 될 걸.”

“우주 괴물이 아니라도, 딱 갔더니 반물질 폭탄 200발 싣고 있는 우주전함이 막 터질랑 말랑 하고 있는 거면 어쩔건데요? 무슨 일이 있을 지 어떻게 알아요. 너무 위험하잖아요.”

“김양식 이사, 너무 그러지마. 구조 포상금 제도가 있는 이유가 뭐야? 우주는 너무 넓은데 소방서를 그 넓은 우주에 다 촘촘히 세울 수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민간 우주선들이 오다 가다 하다가 스스로 구조해 주면 포상을 두둑히 해 줘서 서로 구조해 주는 활동을 장려하는 거잖아. 제도가 그렇게 돼 있고, 사회에서 그렇게 장려하는 일인데, 우리도 적극 호응해야지.”

“무슨 또 우리가 그렇게 사회 생각하는 회사입니까? 그러면 그때 부동산 투기 하지 말라고 다들 그랬는데 괜히 G581E 행성에 사무실 산다고 돈 때려 박았다가 확 다 말아 먹은 건 뭔데요?”

“한 이사는 뭘 그걸 또 끄집어내? 한 이사도 그때 집값 오를 것 같다고 했잖아?”

“오를 것 같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하지 말자고 했죠. 우리가 회사를 세운 진짜 목표도 아니었고. 지금 구조 신호 따라 가서 구조한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회사를 세운 목표랑 딱 맞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사회적으로 장려하지 않는 일은 안 하고, 반대로 장려하는 일, 그러니까 구조신호 따라 가서 구조해 주고 포상금 받는 일은 하겠다는 거야.”

두 사람의 논쟁이 길어 지자, 구경하고 있던 비서와 경리 부장은 한 숨 낮잠을 자고 오기로 했는데, 한 잠 자고 오니, 둘은 구조 신호를 따라 가기는 가되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이면 양식의 판단에 따라 즉시 도망치기로 하는 것으로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비서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는 동안 우주선은 엔진 가동 방식을 변경하고 구조 신호가 나오는 방향으로 궤도를 바꾸었다.

2.

구조신호가 나오는 행성 근처까지 갔을 때, 비서가 컴퓨터로 간단한 분석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온도가 무척 낮기는 한데, 우주복이 못 견딜 정도는 아니고요. 대기 중에 특별히 독성 가스도 없고. 화산도 지진도 없네요. 시공 구조가 왜곡된 것도 약간 있기는 한데, 우리 우주선은 추진 장치가 신형이라서 이 정도는 문제 없고. 시공 구조 왜곡 때문에 방사선이 좀 많이 비치는 편인 건 좀 주의해야 겠네요. 만약에 우주복 차림으로 나가시면 하루 내에는 돌아 오셔야 합니다.”

“하루가 뭐야. 두 시간 내로는 돌아 와야죠.”

양식은 그렇게 말하고 미영을 보았다. 미영은 거기에 답하지 않고 비서에게 다른 말을 물어 보았다.

“지표면 재질은 뭐예요?”

“대체로 실리콘인데 금속 불순물이 좀 있고요. 큰 산도 없고 계곡도 없이 거의 평평한 모양이네요.”

“실리콘 화합물에 금속 들어 있는 거면 지구에 있는 돌덩이랑 거의 비슷한 거 아냐? 여기 좋은 덴가 보네.”

“뭐가 좋은 데입니까. 너무 평평하기만 한 게 뭔가 사막 같고. 좀 불길하구만요.”

곧 우주선이 착륙했다. 양식은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치고는 그래도 앞장서서 바깥으로 나갔다.

“사장님, 두 시간 되면 어떻게 할 지 우리 둘이 회의 한 번 하고요. 네 시간 되면 일단 돌아가는 걸 기본으로 합시다. 그리고 열두시간 지나면 무조건 돌아 가는 겁니다. 돌아 가는 데 열두시간 걸린다고 치고요.”

“대신에 투덜투덜 안 하고 김 이사가 완전 협조하면.”

“투덜투덜까지 안 하는 건 너무 심하죠.”

“나만 김 이사 말 대로 해야 되는 건 협상이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투덜투덜은 하지만, 완전 협조하겠습니다. 일단 네 시간까지는.”

“좋고.”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을 보며 혹시 이상한 물체는 없는 지 살펴 보고 있었다. 다행히 다리 열 개 달린 우주 괴물도 없었고, 폭탄을 싣고 있는 추락한 우주 전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양식이 뭐라고 쓸 데 없는 말을 막 한 마디 더 하려는 참에,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형체가 확 하고 튀어 나왔다.

“엄마야!”

미영은 그렇게 소리치며 주춤했다. 그 형체는 사람 키 정도의 크기에 허옇게 빛나는 덩어리였는데, 모양도 꼭 사람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다만 차림새는 1960년대 한국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바깥 행성에서 오신 것 같네요. 저희 행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희 행성은 아직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아서 활발하게 다른 행성과 교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두 분이 다른 행성에서 오신 분이라는 것은 알겠네요.”

그 빛 덩어리는 모든 전파 대역 주파수로 발사되는 음성신호로 그런 소리를 보냈다. 신호 방식은 구식 AM 라디오 방식이었지만, 우주복에 내장된 컴퓨터가 충분히 음성으로 변환할 수 있었고, 변환해 보니,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김 이사, 이 분 생긴 모양을 보세요. 꼭 옛날 영화에 나오는 김혜정 배우 비슷하게 생겼잖아.”

“다른 은하계에 있는 이 먼 행성에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하고 비슷한 게 있는 거죠? 그리고 말을 어떻게 알아요? 같은 사람끼리도 다른 나라 말 배우려면 몇 년씩 고생해야 하는데.”

“저희가 신호 처리, 기호 인식 기술은 좀 발달해 있습니다. 지구에서 오신 분이 얼마 전에도 오셨기에 저희가 많이 배워뒀죠.”

그 대답을 듣자 미영은 바로 조난신호를 보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그 분과 이야기를 해 보셨어요? 그 분, 지금 어디계십니까? 그 분이 지금 집으로 가셔야 하는데 우주선이 고장나서 헤매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안내는 해 드릴 수 있는데. 잠깐만요. 저도 상부에 보고 좀 하고 괜찮은 지 확인 좀 해 보고요. 공공기관 조직이라는 게 좀 그렇지 않습니까.”

농담인지 모를 그 말을 남기고 그것은 사라졌는데, 걷거나 날아서 멀리 가 버린 것이 아니라 연기처럼 점차 흐릿해지더니 좀 떨어진 곳에 갑자기 나타나는가 하면, 마치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모양으로 멀리 가 버렸다.

“여기 좀 이상한데요. 이거 우리 정신을 흐트리는 이상한 환상 공격 아닌가요?”

“뭘, 친절하구만. 누가 뭐하러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귀찮게 환상 공격까지 하겠어. 아직 네 시간 되려면 멀었잖아요. 일단 아까 그 외계인이 다시 올때까지 좀 돌아 보자.”

“어디로요? 사방 다 똑같이 생겼는데요.”

“이렇게 하면 어때. 김이사는 이쪽으로 가고, 나는 반대쪽으로 가면서 뭐가 있는 지 살펴 보는 거야. 뭐 수상한 거 있으면 바로 도망치고. 계속 연락은 하고.”

양식은 투덜거렸지만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미영은 아까 나타난 형체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걸었고, 양식은 그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미영이 한 사십분 정도 그 단조로운 풍경을 겨우 견디면서 한참 걸어 나갔을 때, 앞쪽에서 또 바람처럼 불어 오는 무슨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곧 미영 바로 앞까지 다가 왔다.

“원래 계셨던 장소에서 좀 걸어 오셨네요.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 심심하셨나 봅니다. 제가 금방 돌아 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안내해 드리라는 허가를 받았고요. 제가 정식으로 안내할 직원을 다시 보내드릴테니까, 아까 여러분이 타고 오신 그 기계가 있는 곳에 다시 돌아 가서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예, 그러겠습니다. 당장 다시 돌아 갈게요.”

미영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그 형체가 무슨 유령처럼 느껴져서 아무래도 꺼림칙해 보였다. 빨리 피하고 싶은 생각에 미영은 바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그것은 미영에게 헤어지기 전에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흔들었더니 미영의 손자국이 그 형체의 손에 뚜렷이 남았다. 미영은 어째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영은 그 형체가 다시 떠나가자마자 우주선 앞으로 뛰어 갔다.

우주선 앞에 가 보니, 양식도 막 돌아온 모습이었다.

“김 이사는 왜 돌아 왔어? 귀찮아서 멀리 안 간거야?”

“그게 아니라, 우리가 아까 만났던 그 외계인 같은 걸 또 만났는데, 그게 돌아 가서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정식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그 외계인을 김 이사가 만났다고? 나도 만났는데.”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군데 있을 수가 있어요?”

“사람이 아니고 외계인이잖아.”

“외계인이라도 그렇죠. 여기 외계인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쌍둥이인가?”

“쌍둥이가 아니라 한 명, 본인인 느낌이었잖아.”

“그러면 본체가 아니고 무슨 홀로그램 같은 영상을 동시에 두 군데에 띄운걸까요?”

“모르지. 김 이사는 그 외계인이 악수하자고 안 했어요?”

“저 하고는 뺨에 서로 뽀뽀를 하는 걸로 인사를 하자고 하던데요.”

“그래서 했어?”

“얼떨결에.”

두 사람은 그 형체의 정체에 대해서 좀 더 토론을 나누었다. 좀 그러고 있는데, 양쪽에서 아까 본 그 형체 둘이 동시에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진짜, 하나가 동시에 두 군데에 있을 수가 있네.”

그 형체는 정말 똑같이 생겼는데, 둘 다 손에는 손자국이 있고 뺨에는 우주복 헬멧의 입술 부분 자국이 있었다. 두 형체는 다가 오면서 말을 걸었다.

“일단 제가 거기까지 가서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건지 연락을 할 거고요. 그러면 좀 있다 다시 안내해 주실 분이 오실 겁니다.”

두 형체는 미영과 양식 바로 앞까지 오더니, 한 덩어리로 합쳐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밝은 빛을 뿜으면서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무엇인가 먼데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번쩍거리면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면서 다가왔고, 곧 다시 눈앞에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튀어나온 형체는 1960년대 한국영화 속 윤정희 배우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만 그 모습은 초점이 맞지 않는 것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어서 주위로 몇 십 센티미터 정도 안개처럼 흐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저희 행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머나먼 다른 은하계에서 오신 손님이여-”

“안녕하세요.”

미영은 엉겁결에 인사했다. 외계인이 대답했다.

“아, 좀 어색한가요. 지구인 옛날 영화나 소설에서 보니 이런 식으로 인사 많이 하던데요. 좀 신비로운 느낌나게.”

“아, 예. 막상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조금 낯서네요.”

“그러면 자연스러운 지구인 인사는 어떤겁니까?”

“보통 저희가 회사에서 사람 만나면, ‘어휴, 추운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춥죠? 처음 뵈겠습니다.’ 이 비슷하게 인사하죠. ‘저희 회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머나먼 곳에서 오신 거래처 담당 과장님이여-’ 누가 이런 식으로 인사한다고 하면 되게 이상할 거 같습니다.”

다행히 그 외계인은 친근하고 명랑한 성격이어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같이 걷기에 나쁜 상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날씨 이야기나 요즘 유행 이야기 같은 것을 했는데, 아무래도 전혀 다른 은하계에서 온 것들끼리 걷고 있다 보니 그런 화제로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외계인쪽이 뿌옇게 흐려져 있는 모습이다 보니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서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쳐다 보지도 못하고 대화도 자꾸 끊기니 아무래도 미영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미영은 좀 민감한 이야기라도 해 보기로 했다.

“저희 몸은 단백질이라는 길다란 탄소 화합물이 엮여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좀 무겁고 약하고 걸어다니는 속도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습니다. 혹시 실례 안 되시면, 이 행성 분들은 어떤 물질로 몸이 되어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이 행성 예절은 전혀 몰라서, 이런 거 여쭤 보면 너무 무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양식은 그 순간 갑자기 외계인이 격분하면서 “우리의 구성 성분을 물어 보다니, 너희는 우리 사회와 역사를 모독했다. 지옥으로 사라지거라, 다른 은하계의 악마여!”라고 소리치면서 레이저 광선 두 발을 심장에 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그러나 외계인은 계속 밝은 태도였다. 그제야, 몸의 구성 성분을 묻는 공손한 질문은 안드로메다 안전 연합에서 발표한 ‘외계인 최초 접촉 긴급 지침’에 들어 가 있는 질문이라는 것이 기억 났다. 지침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많은 외계인들이 모두 이 질문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따라서 적어도 확률적으로는 이 우주 내에서는 어디건 이 질문 정도는 해 볼만하다고 했다.

외계인이 대답했다.

“그건 저희 행성 표면이 어떤 물질로 돼 있느냐와 관련 있는데요. 지구는 표면이 주로 흙이랑 물로 되어 있다면서요? 그런데 저희 행성도 지구 흙 성분 중 하나인 실리콘 화합물로 돼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반도체 재질이에요. 그래서 저희 행성은 전체가 커다랗게 연결된 반도체 격자라고 할 수 있고요. 거기에 여기저기 끝없이 전기가 통했다 말았다 하는 상태로 돼 있어요. 그래서 자연적으로 행성 전체가 아주 커다란 한 덩어리의... 그 지구인 말로 뭐더라... 아, 컴퓨터로 돼 있어요.”

양식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이 행성이 통째로 컴퓨터라고요? 그러면 행성 전차가 커다란 생각하는 두뇌 같겠네요. 지능도 엄청 발달해 있고. 그런 지능으로 보면 저희 지구에서 온 사람들 생각은 아무리 심오한 사상도 유치한 장난처럼 보일 정도일 거고! 뭐 그런가요? 죄송합니다만, 그 엄청난 지능으로 그럼 제가 정말 고민하고 있지만 답은 모르는 문제의 답을 명쾌하게 알려 주시면 안돼나요?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주가 끝날 때 인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제가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까요?”

마지막 질문에 미영은, “김 이사,”라고 말하면서 뭐라고 지적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외계인이 먼저 답을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렇게 발전 돼 있지가 못해요. 처음 저희 행성에 지능이라고 할만한 활동이 나타난 게 겨우 천 년 정도 밖에 안 되고요. 그리고 전체가 연결된 컴퓨터 형식이기는 한데, 그 안에서 신호가 이리저리 덩어리져서 작은 단위로만 활동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빛 모양으로 보이잖아요. 이 정도 덩어리 단위로만 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해요. 같이 연결된 컴퓨터 위에 있다고 다 생각까지 연결된 형태는 아니고요. 이건 여러분께 친숙하라고 이렇게 모양을 바꾼거고요. 보통 제 모습은 이렇죠.”

외계인은 모습을 바꾸었다 그 모습은 바닥에서 위쪽으로 뿜어져 올라오는 빛 덩어리와 비슷했다.

“그리고 저희가 이렇게 걸어간다는 행동을 하면, 거기에 맞춰서 계속해서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의 다른 영역에서 저희 신호가 처리 되는데, 그게 저희 행성에서 이동을 하는거죠. 지구 컴퓨터로 치면 메모리의 한 주소에 있던 자료를 다른 주소에 있는 자료로 옮겨 넣는 게, 여기서는 행성에서 움직이면서 걸어 다니고 뛰어 다니는 느낌인거에요.”

미영과 양식은 금방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즈음 멀리 좀 큰 사각형 상자 같은 것이 하나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건물 같이 생긴 것이었다.

“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여러분이 찾으시는 분을 데려 오겠습니다.”

두 사람은 안내에 따라 건물 안에 들어 갔다. 건물 중앙에는 의자 같이 튀어 나온 것이 있었는데, 앉아 보니 딱딱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편했다.

외계인은 떠나고 건물 문은 닫혔다. 건물 벽 전체가 빛을 내고 있어서 어둡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식은 아무것도 없으니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물은 뭐 같은데, 뭐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다, 드디어 문득 이것은 감옥 같다는 생각에 미쳤다.

“우리 속은 것 아니에요? 여기 갇힌 거 아닐까요?”

“뭐라고?”

그 말을 듣고 양식의 얼굴을 보자 미영도 마음이 흔들렸다. 미영은 일어서서 외계인이 나갔던 건물 문 쪽을 손으로 두들겨 보았다. 열리지 않고 그대로 벽처럼 느껴졌다.

“이게 뭐야? 진짜 문 잠근거야?”

미영은 당황해서 여러 번 손으로 그 벽을 두들겼다.

“나가게 해줘. 나가게 해줘!”

그런데 벽을 한 열 댓번 쯤 두들겼을 때, 손이 벽을 쑥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미영은 그에 따라 그대로 벽을 통과해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 버렸다. 미영이 밖으로 나온 뒤에 머쓱하게 서 있자, 양식도 비슷하게 벽을 계속 두들기면서 나가려고 부딛혔더니 한 열번 쯤 시도했을 때 벽을 통과해서 나올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우리를 가두려고 한 거야 만 거야?”

바깥을 보니 아까 봤던 외계인이 어딘가에서 부서진 작은 우주선 한 대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아, 나와 계셨어요? 혹시 이 고장난 우주선이 폭발이라도 하면 위험할까봐 안에 계시라고 한 건데. 그래도 아예 못 나오게 해 두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나오려고 몇 번 시도하시면 벽을 통과할 수 있는 확률로 지어 놓았던 겁니다.”

“아, 그러니까 저희를 가둬 놓으신 건 아니네요.”

“에이,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희가 왜 여러분을 가둡니까?”

미영이 외계인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몇 마디를 더 하고 있는데, 끌고 온 우주선에서 얼굴이 하나 보였다. 바로 조난신호를 보낸 사람이었다.

“야, 진짜 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허겁지겁 우주선 밖으로 나와서 미영과 양식에게 고맙다고 굽실거렸다. 그는 자신만만한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한 남자였는데, 상당한 미남이었다. 젊었을 때의 신성일 배우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박호성 변호사입니다.”

3.

그는 그러면서 미영과 양식에게 자기 명함을 돌렸다. 우주 개척 권리 관련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법률회사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법률회사가 요즘에 더욱 잘 알려진 것은 최근에 악명 높은 마금희 변호사와 소송을 붙었다가 처참하게 참패한 사건이 워낙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 소문은 미영과 양식도 익히 들은 바 있었기 때문에 법률회사 이름은 익숙했다.

“변호사님, 어쩌다 이런데서 이렇게 고생을 하시게 됐습니까.”

“여기서 별로 안 먼 곳에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이 있거든요. 제가 거기 개척권 선언하러 왔죠. 제가 최초발견권하고, 선발견 우선권은 확보 했으니까 이제 개척권까지 확보하면 100% 제 몫이거든요.”

변호사는 말해줘서는 안 되는 비밀을 말 해 주는 것처럼 망설이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자 너무나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다는 것처럼 줄줄줄 길게 설명했다. 무슨무슨권, 무슨무슨 등기, 무슨무슨 신고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용어들이 이어지면서 그는 자신이 하는 말에 스스로 흥겨움을 느끼는 것 같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 쏟아지는 말을 미영이 잠깐 말렸다.

“잠깐만요, 변호사님. 그런데 그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이라는 게 뭔데요?”

“그게 뭐냐면요. 사장님, 시공장성 아시죠?”

시공장성은 사람이 만든 가장 거대한 것으로, 행성 하나 전체의 크기와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훨씬 더 거대한 길다란 기계였다. 이 기계가 언제나 돌아가고 있는 덕분으로 사람들의 우주선은 도약 항법을 이용할 수 있고 먼 우주 공간을 빠르게 항해 할 수 있다.

“알죠.”

“그런데 이 근처에 있다는 그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이란 건 뭐냐면요. 근처 시공간 배열이 되게 이상하게 되어 있는 거에요. 근처에 회전하고 있는 블랙홀 위치도 아주 교묘하고요. 그래서 여기에 아주 간단한 주먹만한 장치 하나만 띄워 놓으면요. 뭐, 실제로는 주먹 보다는 훨씬 크지만, 그게 시공장성 역할을 거의 다 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시공장성이 몇 백대, 몇 천대의 우주선을 우주 곳곳으로 날아가게 해 줄 지 모르는데, 그 정도 역할을 하는 걸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요?”

“진짜 떼 돈 버는 거죠. 20세기 지구로 따지면 전세계의 유전이 다 한 곳에 모여 있는데 거기서 기름 나오는 수도꼭지가 딱 여기,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에 있는 거나 다름 없거든요. 무슨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바람개비 은하계로 탐사 소풍 왔다가 발견했는데요. 자기가 발견한 게 뭔지도 몰랐죠. 그리고 너무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사소하게 보고한 거라서 사람들이 관심도 없었고요. 그런데 제가 통신망에서 그걸 알아 봤거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그 아마추어 천문학자한테 최초발견권 양도 계약하고, 최초등기하고, 발견신고도 제가 접수시키고, 그렇게 해서 제가 직접 확인해서 여기를 정식으로 개발권 확정하려고 날아 온 거죠.”

“정말로 거기를 확보하면 그렇게 값어치가 있어요?”

“그럼요. 혹시라도 뭐가 잘못될까 싶어서 최대한 빨리 온다고 제가 그냥 제 개인 우주선으로 여기까지 막 날아 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무리를 했어요. 여기가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 근처라서 도약 추진기가 오동작이 일어나는데 방지 기능이 없었어요. 그래도 막 빨리가려고 밀어 붙이다가 여기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미영은 양식을 쳐다 보았다. 양식의 눈은 “말하는 게 좀 약장수 같아요.”라는 뜻을 전하는 듯 보였다. 미영은 우연히 발견한 우주의 이상한 장소 때문에 그렇게 엄청난 돈을 버는 수가 있나 싶어서, 마음 속이 이상하게 휘몰아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변호사님은 그런 걸 정말 잘 아시네요.”

“아, 예.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은하물리학자가 되려고 했거든요. 이런 신비한 진리를 알아 내는 게 정말 고귀하고 숭고한 일 아닙니까? 옛날 사람들은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고 태양과 달을 움직인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사실 하늘과 땅은 중력 법칙 때문에 만들어졌고, 태양과 달이 움직이는 것도 중력하고 가속도 운동의 법칙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런 과학 법칙이야 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이고, 그 과학법칙들이 우주에 주어져 있는 우주 만물을 어떻게 움직이라고 하는 명령이자, 신의 명령이죠. 그 신의 명령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일인데. 은하물리학이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한 겁니까?”

양식은 부동산 등기 재빨리 해서 한 몫 잡아 보려고 하는 사람이 하는 말 치고 지나치게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변호사의 목소리는 열렬한 자신감, 찾아 보기 드문 고양감과 함께, 공감하지 못하면 누구든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성스러운 신비감에 젖어 있었다.

양식이 변호사에게 말했다.

“변호사님, 이제 안심하십시오. 저희 우주선은 추진기는 좋아서 이런 정도 시공 구조 왜곡은 충분히 견딜 수 있고요. 저희랑 같이 고향으로 돌아 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차근차근 준비하셔서 다시 한번 도전하시죠.”

변호사는 미영과 양식의 우주선에 다 도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사실 그래서 제가 좀 다른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요?”

“막상 여기에 와 봤더니, 이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에서 엄청 가까운 이 행성에 문명을 이룬 외계인들이 살고 있더라고요. 우리하고 별 접촉은 없었지만요. 그런데 이 외계인들이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더라고요. 얘네들 과학기술 수준이 부족해서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는 전혀 몰라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게 가까운 우주에 있더라는 걸 알고 있기는 알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되면, 제 최초발견권이 무효가 되고, 그러면 개발권 신청 우선권도 여기 사는 외계인들한테 있게 되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이 외계인들이 먼저 개발권 신청하면 저는 십원도 못 챙기는 거죠.”

“여기 외계인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면서요. 그런데 개발권 신청을 할 줄 알아요?”

변호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나서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알려줬어요. 여기 추락해서 구해달라고 부탁하다 보니까, 이 외계인들이 처음에는 의심도 하고 경계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왔고, 이러저러하다고 솔직하게 다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대충 거짓말만 안 하는 수준에서 두리뭉실하게 말한 다음에, 그냥 싸구려 고물 우주선 두 세 대 사주고 그 대가로 권리 다 넘기라고 했으면 이 외계인들이 얼씨구나 하고 다 넘겼을텐데. 그때는 진짜 추락해서 곧 죽는 줄 알아서 그런 수를 써야 할 지는 몰랐죠. 그냥 사실대로 다 말해줘버렸어요.”

“그래서 지금 어쩌고 싶으시다는 거지요?”

“외계인들이 자기들이 만든 구닥다리 우주선을 보내서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에 표지 위성을 띄우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걔네들이 개발권 등기를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걔네들이 표지 위성 띄우기 전에 지금 제가 재빨리 가서 저도 표지 위성을 띄우려고요. 그러려면 제가 집까지 왔다갔다 할 시간이 없거든요.”

변호사는 다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가 보수는 드릴테니까, 지금 제 장비 갖고 거기, 잠깐만 들렀다 가면 안 될까요?”

양식은 그 말을 듣고 미영만 볼 수 있는 작은 화면에 비밀 메시지를 하나 재빨리 보냈다.

“가지 맙시다. 수상쩍잖아요. 애초에 여기 온 목적도 아니고요. 보수를 얼마나 줄 지 모르겠는데, 저 사람 모험하는 걸 우리도 끼어서 괜히 위험하게 도와 줄 필요가 뭐가 있어요. 이 행성 문명 전체와 대결하는 일이 될텐데.”

미영은 그 비밀 메시지를 다 읽었다. 그러면서도 아무 다른 이야기는 안 들은 척하며 변호사에게 되물었다.

“거기 재빨리 가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걔네들을 설득하는 거죠. 저한테 정당한 개발권이 있으니까, 내가 표지 세우기 전에는 세우지 말라고요. 이 컴퓨터 외계인들이 논리를 되게 중시하거든요. 그래서 합리적으로 설득하면 황당할 정도로 쉽게 설득이 돼요. 그래서 추락했을 때도 제가 쉽게 살아 남았던 거고요. 제가 나름대로 논리는 있거든요.”

“설득에 실패하면요?”

“그러면 저도 표지판 그냥 같이 세우고, 소송 걸어야죠. 소송으로 붙으면 그래도 한 10% 정도 권리는 챙길 수 있을 거에요. 이게 개발만 되면 우주선 천 대, 만 대가 여기 시설을 이용해서 날아다닐 텐데, 그 수익 10%면 그것만 해도 어딥니까.”

양식이 보낸 비밀 메시지가 다시 나왔다.

“저 말투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커피 두 잔 시켜 놓고 세 시간 동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수상한 데 투자하라고 꼬드기는 사기꾼 말투임. 절대 하면 안됨.”

변호사가 미영에게 말했다.

“사장님. 만약에 설득 성공하면, 제가 사장님께 대가로 지구에 있는 달, 그 땅 1만평을 사서 수고비로 드리겠습니다.”

30분 후, 우주선은 문제의 우주 배경 복사 특이점에 도착했다.

4.

도착해 보니, 예상대로 외계인들의 우주선도 와 있었다. 외계인들의 우주선은 역시 빛나는 모습이었고 육각형 형태였다. 이 우주선은 매우 불안정하게 비틀거리면서 떠 있었다.

“쟤네들 기술이 저 정도 밖에 안 돼요.”

변호사가 말했다.

미영은 양식에게 지시해서, 얼마 전에 사용했던 AM 음성 신호 방식으로 외계인 우주선과 통신을 시도했다. 다행히 시도는 성공해서, 외계인들과 전화하 듯이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변호사가 외계인들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이곳을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표지 위성을 띄우 려고 하니까, 자체적으로 표지 위성 띄우는 일은 멈춰 주십시오.”

외계인이 대답했다.

“그때 추락했다가 구조되신 분이시네요. 허리는 괜찮으세요?”

“덕분에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때 도와 주신 것은 고맙지만, 여기 사용권은 정말 제가 갖는 게 합리적이고 정당합니다.”

“왜 그러신가요? 먼저 발견한 사람이 표지 위성 띄우고 등기하는 거라고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이 장소는 저희 행성에서는 8년 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자기 컴퓨터를 꺼내서 준비해 두었던 자료를 꺼냈다. 미영이 흘깃 건너다 보니, 변호사가 심심풀이로 보던 자료 중에는 1960년대 한국영화 영상들이 많이 있었다. 외계인들이 어디에서 지구인을 만났을 때 자기 겉모습을 꾸밀 재료를 얻었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변호사는 자기 컴퓨터의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류야 말로 이러한 우주의 신비로운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이 따르는 법칙은 모두 수학이라는 언어로 씌여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수학을 개발하고 이해해서 우주의 법칙을 이해한 장본인이 바로 저희 인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주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주 중앙에 어떤 머리 하얀 할머니 한 사람이 있고 그 할머니 지시 대로 오늘은 은하수가 이쪽으로 돌다가, 내일은 행성들이 삼각형 모양으로 움직이는 그런 것이라면, 그 때 우주의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은 그 할머니, 혹은 그 할머니가 지목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주는 일정한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필 왜 할머니나 혹은 할아버지나 호랑이 처럼 생긴 괴물이 아니라 우주가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까? 도대체 누가 그 수학적 법칙을 만들어서 그 수학에 따라 온 우주가 움직이도록 한 겁니까? 여기에는 분명히 중요한 뜻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수학을 이해하고 아는 존재는 독특하고 중요한 겁니다. 바로 그 존재를 위해서 이 우주가 생긴 거라고 말 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수학에 딱 맞춰서 우주가 움직이지 않습니까? 마치 그 수학을 누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수십억년 전부터 우주가 거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가 그것을 알아 주는 것입니다.”

말을 끝낸 변호사는 이제 다들 자기 말에 감동할 것을 기대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미영과 양식은 분위기가 그런 방향이 아니라는 느낌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외계인의 응답이 들렸다.

“그래서 그 수학을 이해하고 아는 것이 바로 인류라는 겁니까?”

“물론, 저도 여러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이제 나름대로 과학을 발전시키셨지요. 그렇지만 저희보다는 훨씬 느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 주변의 세계에 관한 간단한 과학을 간단히 알고 계실 뿐이지만, 저희는 여러분의 은하계는 물론 다른 여러 은하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그 사이를 날아 다닐 수 있는 힘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희 인류의 과학 기술 수준에 도달하려면 멀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주 자격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저희들에 비해서는 순위가 떨어진다고 생각 합니다.”

변호사는 짐짓 외계인을 위로한다는 투로 말했다. 양식은 또다시 자존심이 상해 분노한 외계인들이 갑자기 미사일을 쏘지는 않을까 겁을 냈다. 그러나, 외계인은 차분하고 정중한 말투로 대답할 뿐이었다.

“저희들은 의견이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의 사고 방식은 세상이 움직이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에 무척 어려운 형식입니다. 여러분의 학문은 사실 우주가 움직이는 진짜 방식을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 너무 힘겨워지는 꼴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양자역할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코펜하겐 해석이니, 봄 해석이니, 앙상블 해석이니, 다세계 해석이니 하는 온갖 이상한 방식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런 내용을 직감적으로 흔한 생활의 당연한 일부처럼 이해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물체가 입자처럼 행동할 때도 있고 파동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해서 이해하기 어려워하거나, 반대로 이해한 척 하고 자신이 심오한 것을 깨달았다고 거만한 척을 합니다. 하지만, 저희 행성에서는 일상 생활의 모든 물건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은 누구나 바로 싱겁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미영과 양식은 이상하게 움직였던 외계인들의 모습을 기억했다. 외계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여러분의 세계에서는 한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위치에 동시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한 사람이 세 군데, 네 군데에 동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추리 소설에서 한 사람이 한 장소에 있었다면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증명하는 알리바이라는 것이 참 우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밖에 못 하는 무능한 종족을 상상하면 말은 된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그것은 여러분 입장에서 설명한다면, 온몸이 꽁꽁 묶인 두 사람이 발가락 끝만 갖고 서로 목숨을 건 결투를 하겠다는 장면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외계인의 말 사이에 뭐라고 반박할 틈을 찾으려고 했다. 외계인은 예의 바르게도 그런 생각을 짐작하고 말과 말 사이에 어느 정도 틈을 주었다. 그렇지만 변호사는 금새 반박할 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외계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여러분은 의미도 모르는 고유 함수 방정식을 억지로 풀어서 그 답을 복잡하게 꾸민 실험 결과와 맞혀 본 다음에 좋은 것을 연구했다고 얼렁뚱땅 넘어 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방식의 수학을 사용하지 않으며 저희 사고 방식에 훨씬 더 어울리는 새로운 방식의 계산법으로 저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과학 지식을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이 우주는 저희에게 이해하기에 꼭 맞는 방식으로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는 4차원 시공간이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 4차원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타내는 속어로 쓸 정도이지만, 저희는 누구나 5차원, 6차원 공간도 마음껏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저희 행성 위에서 저희가 움직이는 곳의 실체는 일련번호가 붙어 있는 여러분의 컴퓨터 메모리 같은 것이라서 1차원적인 것입니다. 그 위에서 2차원, 3차원 공간을 느끼며 살아온 저희들은 더 높은 차원을 상상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변호사의 얼굴 표정은 이제 확실히 안 좋아 보였다. 외계인은 변화 없는 말투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여러분의 과학은 너무나 표현하기 어려운 우주의 원리를 어떻게든 여러분의 세상에 익숙한 체계로 설명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겨우겨우 흉내내거나 여러분의 세상에 쓸모 있는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라도 계산해 보기 위해 가까스로 만들어낸 편법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만약 우주의 원리를 이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비국소성을 언제나 느끼면서 살아 가고, 언제나 대화할 때 마다 중첩된 상태를 고려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저희야말로, 우주의 주인입니다.”

변호사는 억지로 반박할 말들을 생각해내며 몇 번 구차하게 더 말을 붙이며 따졌다. 하지만, 결국 논리로는 외계인들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미영은 거기까지 변호사를 데려다 준 것이 겸연쩍어 양식을 흘깃거렸다.

그저 조용히 돌아가자니 민망해서, 은하수로 돌아가기 전에 미영은 외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물었다.

“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고 싶은데요. 그, 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아시나요? 그래서 그 고양이가 죽어 있는 건가요, 살아 있는 건가요? 여러분들이라면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외계인들이 대답했다.

“그 문제는 저희도 들어 봤습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저희는 파동함수라든가, 상태의 중첩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이해 했습니다. 그런데 설명하기에는 저희들도 딱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저희는 도대체 ‘고양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 2018년, 강남역에서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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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훈 18.02.01 18:44 댓글

    전혀 다른 인식체계에 기반한 지성체들의 사상을 상상해보는 글은 언제 봐도 재밌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닌 특정 원칙에 부합하는 결과를 위해 필요한 원인이 발생한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즉 미래예지가 기본인 외계인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구요. 미래를 예지한다는 것과 미래는 결정적이라는 게 모순이 아니라는 걸 설득력 있게 소개한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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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곽재식 18.02.02 08:13 댓글

    이지훈/ 저는 SF 장르의 재미 중 하나가 그런 데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 합니다. 막연한 상상이나, 철학 책에 나오는 상상에 언급된 일을 적당히 배경을 설명하고 이리저리 풀어서 제법 실감나게, 와닿게 느껴지게 이야기로 꾸미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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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열쇠 18.02.03 10:45 댓글

    최근에 미영과 양식 시리즈를 정주행했는데 매 편 새롭고 흥미진진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를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편에는 시공장성이 구체적으로 뭘 위해 세워진 곳인지 나왔네요! 다 읽고 나서 이번 편을 복고풍 SF라고 표현하신 것을 보고 정말 적절하게 확 와닿았습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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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곽재식 18.02.05 09:12 댓글

    나무열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미영과 양식 시리즈는 "은하수 풍경의 효과적 공유"라는 출간된 작은 책이 있는데, 지금은 구해 보시기 어려우실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 실린 3편도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즈 재밌게 읽으셨으면 한번 구해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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