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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본작은 연작 단편 〈우주선 임라나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뮌스터호의 비극



〈제바스티안 뮌스터(이하 뮌스터)〉호는 지구에서 만든 가장 큰 우주선이다. 파괴되었든 건재하든 현재까지 알려지고 발견된 것들 중에서 제일 클 뿐만 아니라 현재도 비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다만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이는 실수와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비극적인 결과였다.

생긴 건 총알처럼 한쪽 끝이 뾰족한 원기둥 모양이고 반대쪽 끝에는 뚫어뻥 흡착부처럼 생긴 부위가 달려 있다. 첫인상과 달리 뚫어뻥이 앞쪽이다. 우주에서 직접 연료를 흡입하며 날아가는 버사드 램제트 엔진을 탑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을 지구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는 전제에 대해 나는 무한한 불신과 의심을 품고 있다. 전수받았든 훔치거나 빼앗았든 다른 행성, 다른 문명에게서 알아낸 게 아닐까 싶은데…….

“선장님은 같은 종족의 능력을 믿지 못하시는군요. 의외인데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말투로 태클을 거는 이 녀석은 나를 따라 뮌스터호 잠입에 동참한 부관이다. 좋은 말상대는 아니지만 능력만은 믿음직한 인공지능이다.

“같은 종족이니까 더더욱 못 믿는 거지. 원래 지구인이라는 놈들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게 자기네보다 뛰어나면 외계인이 만들어준 거라고 의심하는 종자라고.”

말을 하고 나니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나도 그런 놈들 중의 하나라는 얘기가 되는 건가.

“늘 선장님은 지구 출신이란 걸 강조하셔서 자랑스레 여기는 줄로 알았는데 말입니다.”

대답이 궁색해서 하던 조사로 돌아갔다. 우리는 선외 활동용 육체를 입고 우주선 표면 위로 착지하여 외부 점검 및 수리용 출입구를 통해 내부로 잠입했다. 원시적인 제어장치를 해킹하여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중력의 적응은 신경을 써야 했다. 원통형 내부 구조물의 회전에 의한 원심력으로 중력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고장이 난 건지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통로 벽을 기어서 지표면으로 올라가니 거기엔 하늘이 있고 땅이 있었다. 강과 숲, 밭과 마을도 있었다. 태양 대신 가늘고 긴 빛줄기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게 특이할 뿐 지구와 상당히 흡사한 환경이었다.

일단 가까운 마을 근처로 가되 신중을 기했다. 우리 모습은 사람들이 보기에 커다란 은색 거미처럼 보일 터였다. 외계의 침략자로 오인당하기 딱 알맞은 꼴이 아닌가. 일단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빛의 띠는 태양을 흉내 내어 약 12시간 간격으로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모양이었다.

어두워지자 우리는 혼자 쏘다니는 건장한 성인 남자를 붙잡아 외계인의 전매특허 대사인 “우리를 너희 지도자에게로 데려가라.”를 시전하고 반항하면 전압 10만 볼트를 쏘아서 기절시켰다. 사실 그 전에 알아서 기절하는 녀석이 더 많기는 했다만.

몇 번 허탕을 치고 방침을 바꿔서 마을 안에 있는 집 하나를 골라 창문으로 침입했다. 벽면에 그려진 태양계 지도며 우주선 비슷한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예상이 적중했는지 운이 좋았는지 대머리에 수염을 기른 집주인은 책을 읽다가 우리를 보고는 놀라긴 했으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리님들은 우주에서 오신 분들이 맞으시죠?”

맞다고 했더니 기뻐하며 지하 창고로 우릴 안내했다.

“조상님들 말씀에 틀린 게 없다니까요! 저희 가문은 대대로 지식을 전수하며 기록을 보관하고 있었죠. 글쎄 우리가 우주를 날아가는 원통 속에서 살고 있더라는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배우기는 했습니다마는 증거가 없어서 참으로 믿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외계인 나리들이 오셨으니 우리 조상님께서 옳았음이 증명되었군요!”

이번엔 우리가 놀랄 차례였다. 주인장은 출발 당시의 기록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었다. 뮌스터호는 유럽을 중심으로 개발된 세대 우주선으로 당초 지구에서 6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의 케플러-22b 행성을 목표로 출발했다. 하지만 엔진에 결함이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아직까지 생존이 가능했다. 감속에 실패하는 바람에 목적지를 지나쳐버린 우주선은 폭주하듯 속도를 높여만 갔다. 은하계 밖으로까지 나갔다가 겨우 되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엔진이 노쇠한 탓인지 제 성능을 내지 못하게 되면서 속도는 정상일 때 광속의 80%까지 쫓아갔으나 지금은 5%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 시간지연 효과도 거의 사라져 우주선 내부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목적도 의미도 잃어버린 채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조각배 신세가 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선내에서 경과된 시간은 지구 출발 이후 700년 정도 되었다. 엔진의 성능이 최상이라고 가정하면 목적지까지 30년 정도면 도착했을 텐데. 그러나 지구인이 돈과 기술과 땀과 눈물을 쏟아 부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머나먼 우주로 떠나보냈던 세대 우주선의 말로가…… 우주 쓰레기라는 얘기다. 이미 지구는 1억 년 가까이 흘렀고 인간이란 종족은 9999만 년 전에 멸종한 지금.

나는 지구인이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조직 〈은하 연방〉의 일원으로서 은하계 내부를 떠도는 쓰레기의 처리라는 임무를 띠고 이곳에 왔다. 명목상 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떠맡긴 했는데 나와 지구의 연결고리는 보손 끈보다 더 가늘게 당연하잖아……. 휴우, 돈이 웬수지. 마침 우주선도 새로 뽑아야 되고 돈 나갈 구석은 많은데 들어올 데가 영 신통치 않아서 말이야.

아무튼 이어서 뮌스터호의 700년 역사를 살펴보았다. 나름 파란만장했다.

출발과 함께 품었던 희망과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몇 세대가 지나자 조종과 관리를 맡은 소수 엘리트 집단이 대를 이어 권력을 물려주고 받으면서 자연스레 지배계층이 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일반 주민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여기에 폐쇄적인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인 자원 부족으로 인해 양 계급의 빈부격차까지 심화되며 갈등은 충돌로 번져갔다.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출생부터 직업, 결혼, 출산 등을 관리해야 하는 통제가 필연적이었건만 이런 배경으로 인해 특히 태어나면서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며 욕구불만이 폭발한 젊은 세대의 반항과 폭력이 극심해졌다. 결국 출발 후 150년, 뮌스터호는 혼란과 폭동의 무법천지로 변했다.

이를 평정한 건 경비대 장교였던 유진 피반다리였다. 당시 경비대는 경찰과 군대는 물론 소방과 구급대 역할까지 도맡은 독립 기관이었으나 혼란의 수습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경비대의 무력한 모습을 본 유진은 뜻이 맞는 부하들을 이끌고 조종실과 방송실을 점거한 후 자칭 혁명정부를 수립했다. 폭동 진압 성공으로 주민의 지지를 얻은 유진은 혁명위원장에 취임하여 10년 가까이 권력을 독점했다.

그 사이에 절대적인 권력체제를 구축한 유진은 공화정 수립 후에 물러나겠다는 혁명정부 출범 당시의 약속을 어기고 스스로 유지니아 1세라 칭하며 왕정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졸지에 유지니아 왕국이 된 세대 우주선 뮌스터호는 이후로 200년 이상의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폭정이 이어지고 가난과 전염병이 시달리며 국민의 저항도 거세졌다. 유지니아 5세의 암살과 함께 뮌스터호는 두 번째 혼란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른바 삼국시대였다. 유지니아 5세의 동생을 왕으로 내세운 후(後)유지니아 왕국, 창조신 뮌스터를 받드는 제정일치 체제인 뮌스터 교국(敎國), 민주정부를 추구한 뮌스터 공화국으로 나뉜 것이다. 삼국의 팽팽한 긴장상태는 약 100년 가까이 지속됐으나 강성해진 교국이 공화국 국민 상당수를 포섭하고 군사력으로 밀어붙이자 결국 공화국은 무너지고 소수의 정부 요인 및 지지자들은 비상용 지하 셸터로 피신했다.

남은 두 세력의 대립도 오래 가지 않았다. 지구에선 개척과 정복을 통해 유럽 제국들이 부흥한 대항해시대가 있었으나 애초에 영토와 자원이 한정된 채로 시작한 뮌스터호 안에서는 그런 식의 위기 극복이 불가능했다. 정벌 대신 교국은 토지와 농장을 소유한 토호세력에게 작위를 주며 끌어들이는 회유책을 써서 영토를 확장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체제를 추구하는 왕국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저울추는 교국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갔다. 마침내 유지니아 12세 때 일어난 대기근을 계기로 국왕은 교황에게 굴욕적으로 원조를 요청─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한다─하면서 항복을 했고 유지니아 왕국은 신성 뮌스터 제국의 슬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제국은 자치제에 가까운 봉건제 연합 왕국 형태로 오랜 평화를 이루었다. 이 상태로 현재까지 20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역사 공부는 이만하면 됐어. 그러니까 이 안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뮌스터 제국의 교황이란 말이지?”

“기록에 따르면 유지니아 왕국도 존속은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국왕은 유지니아 17세인데 아무래도 교황보다 권력은 약하겠죠.”

유지니아 17세라니, 어쩐지 뺨에 여드름이 난 17세 소녀가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는 보나마나 얼굴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하고 배가 튀어나온 늙은 남자겠지만 말이야.

근데 둘이서 대화를 나누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창고로 안내한 집주인이 아까부터 보이질 않는다.

부관에게 물어보려는데 문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창고를 향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함정에 빠진 것 같은데요, 선장님.”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부관의 말을 들으니 나까지 맥이 빠졌다. 하긴 통나무를 잘라 맞추고 철판을 덧대어 만든 부실한 창고문은 바깥에서 빗장을 질러 막은 상태였다. 이 정도 부수는 건 간단했으나 밖에 있는 사람들을 괜히 상처 입히고 싶진 않았다. 생긴 게 외계 침략자여도 우린 명색이 은하 연방의 조사단이 아닌가.

“외계인이 이 안에 있다고?” “잡아라!” “외계인 놈을 잡자!”

밖에서 우리 들으라는 듯이 막 소리를 질렀다. 신경을 끄고 대신 천장을 살펴보았다. 지하 창고라고 해도 환기구는 있을 터였다. 우리는 다리를 더 길게 늘린 다음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철망을 간단히 벗겨내고 환기구로 들어갔다. 거의 동시에 문이 열리며 장정들이 몽둥이나 도끼를 들고 들이닥쳤다.

“저기 외계인이 도망친다!” “잡아라!” “잡아 족쳐라!”

놈들은 소리만 지를 줄 알았지 우릴 잡을 능력이 안 되었다. 우리는 1층으로 올라와 부엌 옆 출입구를 통해 집을 빠져나왔다. 몇 명이 집 밖으로 나와 우릴 발견했으나 뾰족한 앞발을 꽂고 전기를 흘려 넣어 잠을 재웠다.

장정들이 1층으로 올라오는 걸 보니 이대로 달려서 도망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일일이 상대하기가 귀찮다 이거지. 우리는 정원에 있는 키 작은 나무 위로 올라간 후 가볍게 몸을 날려 날아갔다.

“어! 외계인이 날아간다!”

우리의 육체에는 압축 공기를 원료로 하는 비상용 제트 엔진이 내장되어 있다. 소형이다 보니 위력이 약해서 아무래도 장기간 비행은 어렵지만 이 정도 중력과 산소 환경이라면 위기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성능이었다. 놈들은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으나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자꾸 기분 나쁘게 외계인 타령이야, 듣는 외계인 기분 나쁘게! 따지고 보면 내가 저놈들 조상님인데 말이야.”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더니 부관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굳이 이런 육체를 고른 건 선장님이었습니다.”

내가 굳이 거미를 닮은 육체를 고른 이유가 있다. 지구인의 시각에서 외계인 같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활동 목적상 우리는 어디까지나 타인, 즉 외계인이어야 했다. 상황에 따라서 뮌스터호는 폐기되고 구성원들의 목숨조차 보장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괜히 호감을 주거나 친밀해져서 인정에 얽매일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현장의 판단 권한은 내게 있다 이 말씀.

뒤에서는 몇 놈이 쫓다가 지쳐 쓰러지고 대다수는 집 주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구에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이 있었지. 딱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야.”

“아직도 추격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도 있군요.”

늘 침착하고 세심한 부관은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 녀석이 끈질기게도 말을 타고 달려와서 우리는 다시 속도를 높였다. 그래봤자 숲으로 들어가자 결국 녀석도 단념하고 돌아갔다. 우린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집주인 놈이 밀고한 모양이지?”

“호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군요.”

“몰라, 제 딴엔 기뻐서 주위에 알리려고 했던 걸지도. 어쨌든 저놈들이 우릴 반기는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녀석들이 어딜 감히! 아, 이것도 지구 속담이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나밖에 더 있겠어? 우리는 연방을 대표하는 입장이니 상대편 대표를 만나봐야지. 그 교황한테 가자고. 이왕이면 어둠을 틈타 만나는 게 좋겠어. 옆에 인간들이 많으면 성가시니까.”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나는 말없이 앞장섰다.



* * * * *



창문 밖으로 환한 빛이 뿜어 나오는 성벽에 우리는 다리를 흡착시킨 채로 매달려 있다. 찬찬히 뜯어보면 독특하고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건물이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기반은 철골재로 만든 코어 벽체 구조인데 외장은 벽돌을 투박하게 쌓아 만든 성이었다. 전기자동차에 말을 매달아 마차로 쓰고 있는 격이었다.

내부에선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오면서 지나친 마을에선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안에선 식탁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과 철철 넘치는 술이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져 있다. 가장자리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과 헐벗은 차림으로 춤을 추는 무희들이 흥을 돋우고 있다. 환각효과가 있는 듯한 향초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다.

신성 뮌스터 제국의 최고 권력자와 그 식솔 및 측근들은 뚱뚱한 몸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먹고 마시며 떠들었다. 긴 세월동안 쇠퇴하고 잃어버린 건 과학기술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언론과 기자를 잃어버린 게 뼈아팠다. 이 모습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국민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아뇨, 이미 그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부관은 내 생각을 가볍게 부정했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니 제국은 신앙심을 기초로 유지되는 국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권력자들은 곧 신의 사랑을 받는 이들이란 얘기죠. 국민들은 부러워하되 증오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들처럼 되고 싶어서 더 열심히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해서 결과적으로 이들을 더욱 살찌우게 만들어주겠죠.”

“확실히 일리 있는 의견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제대로 된 신문 하나 없는 제국의 현실을 탓하겠어.”

“그보다 다음 행동을 지시해주시죠.”

“생각 같아선 지금 뛰어 들어가 밥상을 뒤엎고 싶지만…… 일을 그르칠 뿐이겠지? 교황이 파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침실로 잠입하자고.”

부관도 그편이 낫겠다며 동의했다. 우리는 성벽을 돌아다니다 복도의 촛불이 꺼진 창문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병들도 얻어온 술과 음식을 먹고 노느라 최소 인원만이 경비를 서고 있었기에 이동은 수월했다. 교황의 침소 부근에 있는 놈들은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킨 다음 벽에 기대서 세워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파티를 마치고 얼큰하게 취한 교황이 침소로 돌아왔다. 시종 둘이 양쪽에서 그의 육중한 몸을 받치고 낑낑대며 옮겼다. 힘겹게 교황을 눕히고 옷을 벗긴 다음 밖으로 나오자 경비병이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보였다.

“어쭈, 똑바로 안 서? 이것들이 감히 폐하의 경호를 이따위로……!”

시종이라고는 하지만 교황을 직접 모시는 이들이라 고위 관리였다. 사납게 쏘아붙이며 경비병을 밀치니 힘없이 쓰러졌고, 놀란 시종이 상황 파악을 하기 전에 재빨리 꽃병 뒤에서 튀어나와 두 녀석도 잠재웠다.

부관과 나는 즉시 침실로 들어가 교황을 깨웠다.

“여보시오, 교황! 얼른 일어나요!”

흔들며 소리를 질렀더니 교황은 얼굴을 찌푸리며 욕설 비슷한 말을 토해내더니 다시 잠들었다. 이 늙은 뚱땡이 같으니. 밀고 때려도 끄떡없자 홧김에 자리끼로 준비해놓은 물을 주전자채로 얼굴에 끼얹었다.

평생 떠받들어지던 교황은 이런 거친 취급을 받는 게 믿어지지 않았는지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으히히익!”

이어서 은빛 거미를 닮은 몸에 머리에 띠를 두른 것처럼 푸르게 빛나는 눈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놀랄 차례였다.

“다 놀랐으면 잘 들으쇼. 우리는 외계인이에요. 나쁜 놈인지 착한 놈인지는 댁의 태도에 따라 달렸지.”

“뮌스터 신이시여…… 어찌 이런……”

“뮌스터는 그만 찾고, 묻는 말에나 답하셔. 이 세상이 하나의 우주선이란 걸 알고 있겠지?”

교황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은 지구라는 별에서 우주로 보낸 사람들의 후손이에요. 약 700년이 흘렀고 목표를 못 찾은 채로 우주선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이것 참. 술이 덜 깬 노인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겠군. 상대성이론이라고 들어나 봤는지 모르겠네. 일단 지구에서 흐른 시간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는 게 나을지도. 어쨌거나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대로는 내부에서 자원이 떨어져 굶어죽든 소행성과 부딪치든 불지옥처럼 뜨거운 행성에 추락하든 블랙홀에 삼켜지든 결국 망할 운명이라고요, 뮌스터호는. 댁들이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은하 연방에 구조를 요청하고 연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청원하는 길밖에 없어요. 어때요, 당장 그렇게 해야겠죠?”

교황이 멍한 얼굴로 답이 없자 앞쪽 다리 하나를 뻗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댁이 주지육림에서 놀고 있는 동안 오랜 기근으로 국민들은 고통 받고 있다고요!”

“당신들이 정말 외계인이라면 우리가 오면서 외계인의 별을 발견했을 텐데……?”

“이제야 털어놓으시는군. 여기가 우주선이라는 정도는 아는 모양이지?”

“여기 성터가 원래 조종실이었소. 우리는 뮌스터님의 가호로 우주의 신대륙을 찾아 떠나고 있는 탐험가의 후손이지, 맞아. 헌데 외계인의 나라가 있다면 우리가 진작 발견하지 않았겠소……?”

“우주에 대한 지식이 한참 모자라는군요. 은하에서 댁들의 존재는 지구의 바다 속에 빠뜨린 모래알 하나만도 못하다고요. 뮌스터호가 자기 능력으로 살기 적합한 행성을 찾아내 도착할 가능성은 모래알이 바다 속을 떠돌다가 조갯살 속에 정확히 박혀서 진주로 탈바꿈할 확률보다 낮을 걸요. 우리가 어렵게 댁들을 찾아내서 와준 걸 고맙게 여기라고요. 우릴 새로운 신으로 모셔도 좋을 정도로 엄청난 기적이란 걸 아셔야지!”

아주 짧은 순간 환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뮌스터호 안에 내 이름을 딴 신성 요하네스 제국이 건설되고 방방곡곡에 거미를 닮은 석상이 세워지고…… 잠깐, 그건 싫다. 이래봬도 나도 원래 지구인이었다고. 원래 내 외모는 데이터로만 남아 있을 뿐 실감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지구인 외모의 동상으로 세워주라. 아주 거대한 크기에 겉에는 금칠도 해서 말이야.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며 한손을 든 자세가 좋겠군.

“당신들 외계인의 능력이 우리보다 앞선 건 분명한 것 같구려.”

교황은 이제 거의 정신을 차렸는지 눈빛이 또렷해졌다. 그는 안경을 집어 쓰고 침대 위에 있는 나와 아래에 있는 부관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모두 당신들처럼 생긴 거요? 우리말은 어떻게 아는 거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요?”

교황은 상대를 잘 만났다. 부관은 상관인 내 덕분에 일일이 말로 설명하는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귀찮은 정보전달 방식에 적응이 된 상태였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당신들의 옷에 해당하지요. 목적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육체를 입습니다. 의사소통은 여기 선장님이 갖고 계신 고대 지구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뮌스터호에서 습득한 정보를 추가해서 판올림한 번역기를 통하고 있고요. 여기까지는 우주선 임라나호를 타고 왔습니다. 비행 원리나 엔진에 대해서는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 같군요.”

“과연. 얼마나 대단한지 그 말만으로도 잘 알겠소. 그럼 인구나 규모는……?”

“연방은 2억 문명권의 연합체입니다. 뮌스터호 수준의 우주선은 우주 공간을 오염시키는 데브리에 불과하죠. 우린 수거 및 처리 임무를 띠고 여기로 온 겁니다. 여러분이 살아남고 싶다면 선장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정답이죠. 전 여러분의 생명이니 주거지니 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거든요.”

“얜 인공지능이라 그래요. 생명체에 감정이입을 잘 안 하죠.”

내가 부연설명을 해주자 교황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제야 우리가 뮌스터호를 침략해온 나쁜 외계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나보다. 어떻게 생각하든 결정을 빨리 내려줬음 좋겠다. 차라리 우릴 배척하고 연방을 거부할 거라면 얼른 그러든지. 그래야 나도 미련이나 죄책감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분명한 건 지금 교황의 입에 뮌스터호에 탄 3만 명(추정치)의 목숨이 달렸다는 사실이다.

“꼼짝 마!”

갑자기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총을 겨눈 경비병들이 침실 밖에 모여 있었다. 그래봤자 유명인 구경하러 온 군중마냥 멀찍이에서 웅성댈 뿐이다. 총의 생김새를 보니 원본을 조악하게 베껴서 대장간에서 고철 두드려서 만든 모조품 수준이고 무엇보다 침실에는 지켜야 할 교황이 있는데 함부로 우리에게 총을 쏠 수 있을까?

다만 녀석들을 만만하다고 지나치게 무시한 게 흠이었군. 귀찮게 되었는데.

“선장님, 제 의견으로는 여기서 반격하거나 교황을 인질로 삼는 건 현명한 대처가 아니라고 봅니다.”

부관이 모처럼 묻기도 먼저 발언을 하는 걸 보니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냥 듣기만 했다.

“우리는 침략자도 스파이도 아니고 설득을 하러 온 사절에 가까운 입장이니 대화로 풀어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관은 상대가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나는 즉시 몸을 웅크렸다.

“좋았어, 부관에게 신성 뮌스터 제국과의 교섭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부여하겠다.”

“그럼 선장님은요?”

“이럴 거다!”

다리를 쭉 펴면서 곧장 교황의 방 창문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갔다. 어차피 제대로 대화도 안 통할 저 무식하고 답답한 종교쟁이들을 상대하는 귀찮은 일은 부관에게 떠넘기고 나는 다른 가능성을 찾기로 결심했다.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와 가장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상대, 바로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이들을 만나는 거다.



* * * * *




200년 전 사라져 전설이 되어버린 공화국의 후손들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지도를 보면서 셸터의 후보지를 몇 군데 골랐다. 뮌스터호의 설계자들도 한정된 공간에서 오랜 세월 생존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해 최악의 경우 생존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진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승무원은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도 없을 뿐더러 오래 생존하며 후손을 남기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더 고통을 받느니 전원 자결하는 편이 효율적인 처리겠지만 사람의 일이란 게 어디 그렇게 논리로만 이루어지던가.

나는 후보지로 예상되는 곳을 찾아가봤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일종의 박물관으로 고대 지구의 지식과 기술을 보관하여 도중에 단절되더라도 후손에게 제대로 전수해주는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애석하게도 후손들은 이런 좋은 의도를 가진 조상의 선물을 총기 제조법 입수에나 썼던 모양이었다. 건물은 안팎이 엉망으로 부서지고 난장판이 된 채였고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수풀과 덩굴에 뒤덮여 있었다. 도굴꾼에게 털린 뒤로 버려지고 잊힌 고대의 왕릉 같았다. 여기만 제대로 활용했어도 중세 유럽 수준으로 퇴행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두 번째로 간 정수장 근처 수풀에 감춰진 녹슬고 육중한 철문 아래 지하에서 셸터의 입구를 찾아냈다. 물은 식량처럼 보존하기가 힘드니 비상시에 물의 공급이 필요한 대피소는 정수처리 시설 근처에 있을 거란 추측이 가능했고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면서 보안 장치를 뚫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호신용 EMP를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단순한 전자기기들은 죄다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힘든 장벽이 나타났으니 바로 가장 원시적이지만 단단한 장금장치인 빗장과 자물쇠를 걸어놓은 철문이었다. 먼지 쌓인 벽을 더듬으니 수화기 비슷하게 생긴 물건도 달려 있건만 주위의 단추를 눌러도 말을 해봐도 작동한다는 징조가 보이질 않았다.

별 수 없이 나 역시 원시적인 의사전달 방식을 쓰기로 했다. 통로 구석에서 끊어진 철근 조각을 주워서 문을 다짜고짜 두들겼다. 모스 부호 같은 걸 시도해봤자 알아들을 가능성도 없으니 그냥 막 두드렸다. 좁은 콘크리트 동굴 안이 음파로 가득 찼다.

다행히 성능 좋은 나의 청각기관은 소음 속에서도 문 저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잡아냈다.

상대방은 발소리를 죽이고 몰래 다가와서 눈치를 살피려 했지만 나는 그런 의도까지 다 파악하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해보려 했으나 철문은 두꺼웠다. 그때 영영 고장난 줄 알았던 문 옆의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누구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정중하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외교적 방문임을 알렸다. 다짜고짜 외계인이라고 하면 안 믿어줄 테니 일단 우주선 바깥에서 왔다고만 했다. 생각보다 반응은 빠르고 호의적이었다.

다만 우주복을 입은 지구인이 아니라 거미를 닮은 생물인지 로봇인지 모를 상대가 나타나자 놀라서 도로 문을 닫으려 했다. 당연히 내가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다. 전광석화처럼 좁은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 했다. 나는 앞발로 얼른 잡고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번쩍 들어올렸다.

“끼야아아아아아!”

“진정하고 내 말을 좀 들어요. 따지고 보면 나도 지구인이라고요.”

“예? 그럼 설마 미래에서 오셨나요?”

설명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어차피 하려면 한 번에 끝내는 게 제일이었다. 이 대사를 또 써먹게 될 줄이야.

“일단 제일 높은 사람에게로 데려다줘요.”

졸지에 인질처럼 된 그 사람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을 품은 채로 순순히 안내를 해주었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 널찍한 방으로 들어가더니 무전기 비슷한 투박한 장치에 말을 걸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지저분한 외모에 두꺼운 옷을 껴입은 걸 보니 노숙자들 모임 같았다. 나를 보고 놀란 거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안내자가 모두를 진정시켜주었다. 마침내 ‘수상’이라 불리는 중년 여성을 비롯해 여럿이 모인 앞에서 나의 소개와 방문 이유를 들려주었다. 다행히 그들은 공포나 히스테리에 빠져 소란을 피우진 않았다. 상당히 침착한 반응이었다.

“오, 조상님 보우하사! 우린 이제 살았어!”

수상의 선창과 함께 모두들 봇물이 터진 듯이 눈물을 흘리고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표했다.

“우릴 구하러 외계인들이 찾아온 거야! 살았다! 조상님 고맙습니다!”

갑자기 열렬한 환영을 받으니 약간 얼떨떨하지만 여태껏 만난 놈들이 거친 대접만 해줬으니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가장 먼저 마음을 가라앉힌 수상이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조금 아쉽군요. 우린 미래 지구에서 데리러 와줄 후손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고도의 문명을 영위하는 외계종족이 있다니 안심이 되네요.”

“여러분은 몰락한 공화국의 후손인 걸로 아는데, 맞나요?”

“그렇습니다. 세대가 지나며 점점 인구는 줄어서 이제 40명 남짓밖에 없지만 우린 우주선에 대한 지식을 대물림하며 언젠가 올 해방의 날을 기다렸답니다. 역시 조상님은 우릴 버리지 않으셨군요.”

너무 기대에 찬 것 같아서 이쪽 입장이 좀 난처해질 지경이다. 미리 언질을 주는 편이 낫겠군.

“아직 기뻐하기엔 이릅니다. 저희는 원래 이 우주선의 처리를 위해 찾아온 것이거든요. 연방은 이런 무허가, 무목적의 우주선이 은하계 내부를 떠도는 걸 원하지 않고 있어요. 여러분이 연방의 구조를 받을 의사가 있다면……”

“여부가 있나요? 우린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요. 굳이 그 은하 연방이란 조직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요. 생존에 적합한 행성에 내려만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살아갈게요.”

“그건 제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서……. 표면적으로는 이 우주선의 대표자 혹은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교황일 텐데, 맞죠?”

수상은 마음으론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을 인정한다는 듯이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일단 제 부관이 교황과 회담을 시도했으니 지금쯤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죠.”

나는 부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부관 나와라! 어떻게 잘 되고 있는 거야?”

“마침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선장님. 허가를 받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무슨 허가?”

“미사일을 한 발 쏘고 싶습니다.”

“뭐? 설마 뮌스터를 박살내고 싶은 거냐! 아니, 임라나에 탑재된 건 방어용이라서 그렇게 위력이 세진 않을 텐데…… 그래도 그렇지!”

“아닙니다. 설마 제가 아무 위협도 안 되는 생명체 3만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이 사람들이 제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아서, 저희의 과학력을 보여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명중시키려는 게 아니라 근거리에서 폭발을 시켜서 우주선 전체에 충격을 주려는 겁니다. 이걸로 뮌스터가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이동하는 물체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우리가 우주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도 알릴 수 있겠죠.”

“좀 위험할 텐데. 실수 없이 해낼 수 있겠지?”

“선장님 밑에서 일하면서 실수한 적은 없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어리석은 무리들이 어떻게 나올지 겁은 났으나 나는 나대로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난 이상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정 안 풀리면 우리 힘으로 성을 무너뜨려 교황 이하 멍청이들을 소탕하고 여기 공화국 후예들을 우주선의 대표로 승격시킨 다음 연방과 교섭을 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라고!”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이미 준비를 다 끝냈습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나는 얼른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를 내어 알렸다.

“다들 엎드려요!”

당황한 눈치였으나 수상이 따르라고 하자 모두들 바닥에 엎드렸다. 영문은 모르지만 일단 나를 믿기에 따른다는 투였다. 동기야 어쨌든 좋았다.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엔 미약해서 별 위력이 없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여기는 지하 셸터라서 그렇고 밖은 지금쯤 엄청난 지진과 폭풍우에 난리도 아니겠지. 겁도 안 내고 내게 바짝 붙어 있던 남자애가 물었다.

“외계인 아저씨, 지금 지상을 공격하고 있는 거죠? 제국을 때려 부숴줘요!”

“음, 아까 설명 드렸다시피 우리가 침략하러 온 나쁜 외계인은 아닌데요. 제국의 권력자들이 워낙 고집이 세서 겁을 좀 줬을 뿐이에요. 그자들 입장에서야 우주선을 포기한다는 건 자기들의 부와 권력을 놓아야 한다는 얘기니까……”

“자, 그럼 우리에게도 반격의 기회가 온 거네요!”

수상이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재빨리 지시했다.

“제국의 썩어빠진 놈들에게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순 없지. 우리가 시궁창 쥐 신세가 된 채로 여기서 계속 살 줄 알았으면 오산이야!”

침착한 모습은 어디 가고 잔뜩 흥분해 있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실린더 비슷한 물건을 들고 왔다. 척 보기에도 무언가 위험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수상은 이어서 끌고 온 바퀴 달린 대포 비슷한 발사대에 장착하도록 시켰다.

“이게 뭔지 알겠어요? 이 지하에서 비밀리에 연구해서 만든 생물 병기예요! 고대의 지식을 발굴하고 응용하여 만들어낸 비장의 무기죠. 우리 아버지가 대를 이어 연구한 끝에 완성했다고요. 막 얼마 전에 양산에 성공해서 언제 써먹을까 시기만 살피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되었네요.”

슬쩍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보았다.

“외계인님도 감염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샘플을 좀 보여주실래요?”

나는 수상을 따라 연구실로 들어갔다. 살펴보니 조악한 수준의 나노머신으로 원래는 인간 체내에 들어가 상처나 병을 치료한다든지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인데 이 여자의 조상들은 정반대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개조해왔던 것이다.

“저한텐 아무 효과도 없겠군요. 이 육체에는 소화기관 자체가 없거든요.”

“그럼 걱정 없네요! 백신을 맞은 우리를 제외한 우주선 내부의 모든 인간들이 이걸로 싹쓸이될 거예요.”

“굳이 그런 거친 방법을 쓸 필요가 있을지……”

“공화국이 망하고 200년이 흘렀어요. 신성 뮌스터 제국은 굳건하다고요. 우주선인 뮌스터나 독재자 유지니아를 신으로 떠받드는 사이비 종교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놈들은 이 우주선의 암적인 존재예요! 조상님께서 물려주신 바이러스 병기로 오염된 지상을 청소하겠어요! 조상님께서 굽어살펴주시기를!”

“청소해버리고 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야 물론 공화국을 재건해야죠.”

“죄 없는 국민들도 다 죽을 텐데?”

“대의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죠. 여기 순수하고 건전하며 우수한 사람들이 살아남았으니 다시 자손을 번성하면 됩니다. 어차피 여기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요. 연방과의 교섭으로 공화국이 정착할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할 테니까요.”

글쎄, 연방에서 잘도 조건이 좋은 행성을 공짜로 내주겠다. 내가 볼 때는 조상님 타령하는 이 사람들도 교황 패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지만 괜히 화를 돋우긴 싫어서 잠자코 있었다.

내가 괜한 짓을 해서 재앙을 늘리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는데 부관의 연락이 왔다.

“선장님, 뭔가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구인의 심리에 대해서는 선장님의 판단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조언을 구하고자 연락드렸는데요.”

“왜? 무슨 문제가 생겼냐?”

“교황이 죽었습니다. 암살도 아니고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살해당했지요.”

“이런. 지구인이 다 그렇게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더 곤란한 건 교황을 살해한 이들이 저를 새로운 교황으로 추대하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뭐어?”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자기네 신인 뮌스터보다 더 위대하다는군요.”

“그게 무슨…… 아니, 맞는 말인데?”

무능력하게 우주를 떠돌며 죽어가는 고물 우주선보다 우리 부관이 더 뛰어나다는 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 어리석은 자들이 나와 같은 사고과정을 거쳐서 얻은 결론일 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이대로 두면 교황을 추종하던 세력과 저를 따르는 세력의 충돌이 유혈사태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상황을 살펴보니 제국의 관리들은 교황을 따르지만 광장에 모이는 국민들은 오히려 저를 구세주로 여기는 분위기군요.”

“거미처럼 생긴 외계인을 잘도 따르네? 내가 생각한 지구인들의 속성과는 좀 다른데.”

“그렇습니까?”

“지구인은 자기랑 닮거나 친근하게 굴어야 좋아하는 습성이 있거든. 다르면 일단 경계하고 혐오하지.”

“이 상황에서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어차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을 거야.”

“어째서죠?”

“여기 있는 친구들이 반격을 개시할 거거든.”

“그러고 보니 셸터에 남은 사람들과는 원만히 대화가 진행되었나요?”

“생각보다 훨씬 원만했어. 지나치게 잘 되어서 탈이라고나 할까. 어느 정도냐 하면 연방의 구제를 거부할 게 빤한 제국을 소탕하겠다면서 나노머신으로 만든 인조 바이러스를 살포할 기세야. 아니 벌써 하고들 있군.”

공화국의 후예들이 긴 세월이 흐른 끝에 셸터를 나와 지상에서 처음으로 한다는 짓이 지상의 생명체를 전멸시키는 무자비한 복수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공격은 실패했다. 연구과정에 오류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세월이 흐르면서 실험장비나 생산설비에 일어난 노화나 고장으로 결함이 생긴 탓일지도 모른다. 조사를 해봐야 알 일이지만 그럴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왜지? 살포하면 바람을 타고 즉시 퍼져 체내에 들어가면 3초 안에 절명할 텐데!”

수상은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몸을 떨면서 중얼거렸다.

“아버지! 할아버지……! 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조상님의 의지를 받들고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역시 제가 못난 탓인가요……? 저는 조상님의 뒤를 이을 자격이 없는 못난 후손인가 봐요…….”

동료들도 수상과 함께 울고 탄식하는 등 좌절과 우울과 죄의식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했다.

“부관, 지금 상황은 어떤가?”

“국민들의 시위가 폭동 수준으로 번질 위기입니다. 언제 죽는 거죠?”

“죽을 일 없을 거야. 작전을 변경한다. 네 육체로 가능한 최고 큰 목소리로 사람들을 진정시켜. 삼자 대표 회의가 있을 거라고 말해.”

“삼자? 누구를 뜻하죠?”

“일단 제국의 최고 권력자. 교황이 죽었으니 아들이든 딸이든 아무나 한 명 나오라고 해. 그 다음 여기 공화국의 후예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는데 내가 데려갈게. 나머지 한 명은 바로 너야.”

“저라고요? 당연히 선장님일 줄 알았는데요.”

“지금 사람들은 너를 구세주로 여기고 있잖아. 내가 옆에서 조언해줄 테니 일단 내가 조수인 걸로 치자고. 이렇게 모여서 뮌스터호의 운명을 놓고 회의를 하겠다고 제안해. 그래도 소동이 그치지 않으면 미사일을 한 방 더 터뜨려.”

“알겠습니다. 가급적 그런 일은 없도록 하죠.”

대화를 마치고 돌아보니 수상은 아직도 땅을 치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저기요, 신세한탄은 나중에 하고 나랑 어디 좀 갑시다.”

눈물이 그렁한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멍하니 벌어진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서 내가 알아서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지금 제국에선 시위가 일어나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황제는 살해당했대요. 해서 제국의 현재 권력자와 우리 은하 연방 사절과 당신, 이렇게 셋이서 회담을 할 생각이니까 얼른 오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함정이라거나 불리한 제안이니까 가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고 좋은 기회이니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대와 우려,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깊은 지하 셸터에서 들이마셨던 먼지를 일거에 뿜어내려는 듯이 격한 토론과 외침, 연설과 설전이 이어졌다.

수상은 참을성 있게 듣기만 하다가 결국 머리를 다시 질끈 묶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우리에게는 은하 연방의 존재를 믿고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삼자라고 하지만 이쪽 둘은 같은 편인 셈이죠. 그러니 유리하면 유리했지 결코 불리하진 않은 상황입니다. 저는 이분을 믿고 우리 공화국과 뮌스터의 미래를 걸겠습니다!”

다들 연설에 감동한 기색이었다. 결국 나는 등에 수상을 태우고 제트 엔진을 풀가동시켜 제국 수도로 날아갔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난장판이었다. 아까 일으킨 지진 탓도 있고 폭동이 그야말로 회오리로 몰아치고 있었다. 성벽 내부 마을 지붕 위로는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난 군중은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불을 지르고 무너뜨리고 돌을 던졌는데 병사들은 진압은커녕 방어에만 급급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귀족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스스로 갇힌 꼴이 되었다.

나는 곧장 날아서 꼭대기 가까이에 있는 널찍한 테라스에 내렸다. 처음엔 병사들이 창칼로 우리를 에워쌌으나 이내 마중 온 화려한 제복을 입은 제국 대신(大臣)의 환대를 받으며 널찍한 회의실로 이동했다.

“세 분의 비밀 회담으로 담판을 짓기로 얘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내 동석을 거부했다. 나는 속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부관도 처음부터 그럴 속셈이었겠지만 회선을 열어놓은 이상 녀석이 보고 들은 모든 걸 나도 똑같이 접할 수 있다. 사실상 그 자리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회의실에는 황제의 아들─갓 스물이 넘었을까 싶은 어린애─인 황태자, 부관, 내가 데려온 공화국 수상 세 명만이 들어가고 병사들이 닫힌 문 앞을 석상처럼 단단히 지키고 섰다.

부귀영화를 독점한 관료들이 저 어린 황태자에게 전권을 위임한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저것들이 순순히 은하 연방의 뜻에 따를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당신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때 대신이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긴 복도를 지나 어쩐지 좁고 음침한 곳으로 접어든다 했더니 곧바로 덩치가 우락부락한 병사들이 나타나 밧줄로 나를 묶고 그 위로 또 쇠사슬을 겹겹이 감았다.

“단단히 묶어라. 외계인에게 어떤 능력이 있을지 모르니까 말야.”

대신은 그렇게 말하더니 금속으로 만든 커다란 상자를 들고 오도록 했다. 장정 넷이서 힘들게 들고 오더니 그 안에 나를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또 뭔가 열심히 쇠사슬로 휘감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건 대신의 웃음소리였다.

“으하하하하!”

악당 아니랄까봐 참으로 호탕한 웃음이었다.

비록 금속이 두꺼웠으나 부관과의 무선통신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지구의 중세 수준으로 퇴화된 제국의 과학력이란 이렇게 잔뜩 녹이 슨 쇠 상자 안에 가둔 정도로 나를 제압했다고 착각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한편 부관 쪽을 보니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는 멍청한 청중을 앞에 놓고 현재 은하계의 모습과 은하 연방에 대한 개요, 그리고 뮌스터가 처한 상황 및 대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황태자가 간단한 말로 부관의 모든 지식과 노력을 무시했다.

“우리 조상이 이 세상을 만들어 우주로 쏘아 올렸다고? 그 말은 조상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살고 기술도 뛰어나다는 얘긴데, 그게 말이나 되나? 우리가 퇴화라도 되었단 말인가? 외계인은 진화론도 모르나보지?”

그러자 참고 들어줄 수 없었는지 수상이 책상을 탕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 애송이가 우리 조상님들을 무시하는 거야? 조상님들은 위대한 과학문명을 꽃피우셨단 말이야! 우주선도 쏘아올리고 구름 위로 솟아오르는 높은 건물도 지으셨어! 뮌스터보다 몇 백배 몇 천배 커다란 땅에서 사셨다고! 그게 다 원래 우리 거였어! 이딴 뮌스터 제국과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초거대 제국의 후예란 말이야, 우리가! 어디서 알지도 못하고……”

“다들 진정하시죠. 감정에 휘말려서 판단이 흐려져선 안 됩니다. 두 분에게 뮌스터호와 거주자 3만 명의 운명이 달려 있어요.”

부관이 끝까지 침착하게 둘을 다루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수상은 짜증을 내며 팔짱을 끼고 회의실 벽에 기대어 섰다.

“황제의 측근들 오라 그래! 어디서 이런 애송이를 대표랍시고 데려온 거야? 도무지 말이 통해야지.”

“무엄하다! 이 몸은 차기 황제로 즉위할 황태자란 말이야.”

“웃기고 있네. 보아하니 똥오줌도 못 가리는 어린애구만. 이 나라는 네 아버지랑 주위를 둘러싼 내시 놈들이 다 해쳐먹었단다. 이제야 뭔가 뒤집히려는 모양이야. 정말 외계인이 구세주인 셈이지.”

“즉위하면 제일 먼저 네년부터 사형시키겠어!”

“끝까지 꼬맹이처럼 구는구만! 권력이 사람 목숨을 코딱지 파듯이 없애버리라고 있는 건줄 알아? 너한테는 더더욱 자격이 없어. 양심이란 게 있으면 당장 나가서 제국 해산을 선언하고 성난 군중에게 권력을 넘기라고. 오면서 다 봤어. 혁명의 불길이 성 주위를 감싸고 있던데, 불의한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혁명은 인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흐름이야. 하긴 네가 그런 걸 배웠으랴마는. 이제라도 얼른 깨닫고 용서를 빌어. 넌 국정에 관여한 게 없으니까 잘만 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야.”

황태자는 또 나름대로 화가 단단히 나서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고 탁자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부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난처한 상황이었고.

아무래도 내가 나가서 수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앞쪽 발 하나를 들어서 손가락을 뽑아냈다. 방출 가능한 최고 온도의 열을 가해 쇠사슬을 녹여서 끊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때 부관에게서 전송받은 화면이 순간 노란 빛으로 가득하더니 이내 시커멓게 물들었다. 폭음과 진동과 화이트 노이즈가 이어졌다.

폭탄이었다. 아주 구식이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원격 조작이나 시간제한으로 자동으로 폭발하는 방식을 제조하는 기술력이 없으니 누군가 집어던졌겠지만 부관이 문 쪽을 보고 있지 않았으니 누가 어떻게 폭탄을 넣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쇠사슬을 다 끊고 난 후 이어서 상자의 접합면을 녹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상자도 쇠사슬로 감았으니 뚜껑을 열려고 해봤자 허사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있는데 부관의 귀에 늙은이들의 성토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대충 정리해보면 황태자가 죽었는데 공화국 놈들 짓이니까 복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잠깐만, 그 공화국의 수상도 같이 죽었는데? 설마 자살 테러로 몰아가려는 수작인가?

화면이 어지러운 걸 보니 손상을 입은 와중에서도 움직이려는 듯했다.

“괜찮냐? 많이 파손되었어?”

“정상적 동작이 어렵습니다. 선장님이 오셔서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지금 갇혀서 빠져나오느라 시간이 좀 걸려. 상황은 어때?”

“톨루엔 화합물 계열의 폭약이었습니다.”

“음, 지구에선 흔히들 TNT라고 불렀지. 단순해도 위력은 세. 둘은 보나마나겠지?”

연기가 흩어지며 내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탁자와 의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고 창문 쪽은 아예 뻥 뚫린 상태였다. 날 가뒀던 대신의 연설이 희미하게 들렸다.

황태자 전하께서 시해를 당했고 외계인도 죽었으니 남은 자기들끼리 단결해야 된다 뭐 이런 주장이었다. 몇 명 남지도 않은 미약한 공화국 무리를 가지고 제국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이라고 부풀리더니 이에 맞서 힘을 모아야 한단다. 의외로 먹히는지 군중의 함성이 줄어들고 있었다.

“전 아직 움직일 수 있는데…… 겉보기에는 상당히 파손된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병사들이 들어오는군요. 잠시 동작을 정지하겠습니다. 살아있다고 판단하면 저를 완전히 박살내려 들지도 모르니까요.”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화면이 꺼졌다.

상자에 겨우 작은 구멍을 냈다. 하지만 머리도 빠져나가기 힘든 상태라 팔 하나만 밖으로 빼서 쇠사슬을 끊고 뚜껑을 열어서 나왔다.

아까 나를 넣으라고 지시한 놈과 다른 대신─어차피 다들 화려한 제복 차림의 뚱뚱한 영감탱이라서 그놈이 그놈으로 보인다─이 부하를 시켜 부관을 내가 있는 방으로 옮기는 모양이었다. 상자 하나를 더 갖고 오라고 지시하는 걸 보니 나처럼 가둘 생각 같았다. 얼른 문 옆의 커다란 기둥 옆에 숨었다.

“자, 상자를 이 옆에 두고…… 어? 사, 상자가 열렸어?! 외계인이 탈출했다!”

다음 순간 나는 촉수처럼 긴 다리를 뻗어 영감의 목덜미에 꽂고 전류를 살짝 쏘았다. 이어서 부관을 옮기던 병사들도 똑같이 기절시켰다. 상자를 옮겨오던 병사들의 칼날에 몇 번 베였으나 생채기 정도의 피해였다. 반면 부관은 시커멓게 그을리고 다리 몇 개가 부러지는 등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야, 너 잘 구워졌구나.”

“면목이 없습니다, 선장님.”

“육체는 그냥 버려야겠다.”

나는 부관의 머리를 분리해내서 배의 외피 일부를 열고 비상용 저장 공간에 넣었다.

더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이내 병사들이 쫓아오는 바람에 도망가야 했다. 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도망치면서 부관에게 말했다.

“이 손해는 네가 돈 벌어서 갚아.”

“알겠습니다. 변상토록 하지요.”

“농담이야. 너와 난 어차피 운명공동체인데 네 것 내 것이 있겠어?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지.”

“대단한 사고방식이군요. 독재자의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럼 너 대신 내가 이 제국을 접수하랴?”

뼈 있는 농담을 던졌으나 부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을 구세주니 새로운 지도자니 떠벌였던 이들의 진지하고 확신에 찬 태도를 떠올리니 차마 웃어넘길 수가 없었던 거겠지.

시위인지 혁명인지 모를 소동은 차츰 정리되는 국면이었다. 한편으로 막 공화국의 후예들이 언덕을 넘어 수상이 황태자랑 잘 담판을 짓고 있나 보려는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달구지 위에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담긴 대포가 당장이라도 발사 준비를 마친 상태로 놓여 있었다. 몇 대에 걸쳐 인생을 바쳐가며 만들었으니 단 한 발만 준비했을 리는 없겠지. 그들이 수상에게 닥친 비극을 알아챈 즉시 저걸 쏠 테고,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을 거란 보장은 없다. 물론 제국 병사들이 공화국 무리가 저 수상한 대포를 쏘도록 가만 놔둘 리 또한 없으니, 누가 이기든 구제불능의 난장판이 될 것임은 분명했다.

“우리 임무는 실패야.”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부관에게 말했다.

“네 육체가 파손되었으니 증거도 충분히 있지. 우리의 설득과 조정은 실패했고, 저들은 내분으로 자멸 위기에 처했어. 우리가 손을 안 써도 알아서 정리될지도 모르겠군.”

“그 말씀은 뮌스터를 포기하신다는 뜻인가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한 속담을 말해줬지? 근데 따지고 보면 개구리에게도 선택의 권리가 있었던 거야. 우물 안에서 살아갈 권리. 우물 밖의 세상을 다 알았지만, 나오도록 손을 내밀어줬지만 다 거절하고 눈과 귀를 틀어막은 채 우물 속에서 계속 살고 싶은 개구리도 없으란 법은 없어. 은하는 넓고 생명은 많으니까.”

“선장님은 의외로 냉철한 분이시군요.”

“칭찬이라면 얼마든지 해. 근데 뜬금없는걸.”

“같은 지구인이라는 이유로 꽤 신경을 쓰셨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도 신경 쓰고 있어! 상대방이 친절을 거부한다면 이쪽은 명분도 이유도 없어지는 거 아냐?”

“치료를 거부한 불치병 환자를 대하는 의사 같군요.”

“저들에게 자기 운명을 결정할 능력은 없지만 권리는 있잖아.”

그때 언덕 위에서 날아간 대포 한 발이 성 안으로 빨려들듯 들어가는 광경이 보였다. 이끌리듯 시선을 성 주위로 돌렸다. 광장과 주변 마을만이 아니라 성 내부에서도 자욱하게 검은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최후의 구조신호가 될 수도 있었을 연기는 그저 화장터에서처럼 덧없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안녕, 개구리들아. 그 우물은 이제 곧 메워진단다.

우리는 그대로 뮌스터를 빠져나가 임라나로 돌아갔다. 좌표와 경로 및 이동 속도를 처리반에게 알려주면 우리가 할 일은 끝이다. 머지않아 굶주린 펜리르가 태양을 본 듯이 달려들겠지.

나는 뮌스터의 존엄사를 잠깐 애도했을 뿐, 이내 낭비한 임라나의 미사일과 파손된 부관의 육체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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