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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무쌍 (호방천 수령여우신선살이의 묘미)





 
  오늘은 오겹살의 날이다.

  아우는 상추 씻고, 형은 고기 포장을 뜯었다. 고기는 가히 최상의 상태였다. 상추 씻다 말고 천이는 멍하니 고기를 쳐다보았다.

  일 년 만에 구경하는 오겹살이다. 붉은 것과 흰 것이 부들부들한 곡선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야말로 절경이고 장관이다. 또한 둥글고 말랑하고, 향그럽고 탐스럽다. 만지면 그대로 녹을 것 같고, 젓가락으로 행여 조금이라도 세게 집으면 아파서 깜짝 놀랄 것 같다. 양글거리는 것이 비단결 같고, 찰지면서도 산뜻하고 나긋한 것이 먹기도 전에 아랫배가 뜨듯 허니 흐뭇하여 천이는 벙글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형의 재촉에 깜북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열심히 상추며 파를 씻었다.

  그것도 잠시고, 방이 형이 나무젓가락으로 제일 위쪽 오겹살을 한 점 집어 올리는데, 바로 아래쪽 고기가 붙어서 올라온다. 온다. 온다……찰박 한다. 떨어진다. 진다. 진다……층층이 쌓여 있던 고기가 분리되는 모습이 마치 비단 한 필 굴러떨어지는 듯하다. 천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안타깝게 배고픈 지경이다.

  고기가 후라이팬에 들어가 누울 때에는, 착 붙긴 하지만 떱떱히 달라붙지는 않는다.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열기에 찰싹 붙는가 싶다가도 팬 바닥에서 조금 날아오르는 듯 미끄러진다. 오만 난리를 치며 익어가는 살점의 모습에 아우는 그저 행복하게 웃으며 파채 칼을 들었다.

  백학동 잣촌로 구석에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신선이 산다. 그냥 신선도 아니고, 수령 신선이라 한다. 수령이든 뭐든 빈둥대는 것 말고는 달리 하는 일이 없다. 천이는 그것이 늘상 불만이었다. 수령 신선이면 뭘 하나, 다 허물어진 오두막에 살면서 식구라고는 자신과 형 단둘을 둬 놓고, 무슨 가르쳐 주는 것도 없고 종처럼 죽어라 부려 먹기나 하면서 신선은 무슨 구워먹지도 못할 신선인가? 무엇보다 여우 신선이 왜 백학동에 와 얹혀사는 건가? 학 동네가 백학동이잖은가?

  오겹살의 날에는 무슨 불만이든 까맣게 잊기 마련이다. 아주 가끔 스승은 고기 먹자 하시는데 그러면 두 식객 중 형인 방이가 인계로 내려가서 오겹살을 사 온다. 두껍게 잘라오는 고기는 항상 최상급이고, 그런 날에는 천이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마당 청소, 집 안 청소, 부엌 정리, 고기 구울 준비를 싹 해 놓고 형이 오기를 기다렸다. 형이 고기를 구우면 곁에 달라붙어 온갖 일을 도왔다. 고기가 다 익으면 번개처럼 빨리 상을 차렸다. 양념 파채와 물기 잘 뺀 상추, 풋고추와 생마늘, 고추장과 쌈장, 참기름 소금, 맨 소금을 주르륵 상에 올리고 밥 푸고 물 따르고 수저와 젓가락 놓고 휴지까지 준비를 끝마치면 형이 안방으로 조심조심 간다.

  “스승님, 이제 어서 나오셔서 드십시오.”
  “오냐.”

  고장 난지라 돌리면 끝까지 돌아간 후 또 돌아가는 문고리가 돌아가고, 스승이 느적느적 걸어 나온다. 어찌 된 영문인지 평소와는 달리 꼬리도 안 보이고, 멀쩡한 사람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아홉 꼬리를 떡 하니 내놓고 누워 배꼽 긁으며 티비 보거나 한다.) 지금은 파자마 차림의 마흔 넘긴 백수 같은 모습으로, 그럭저럭 잠에서 깬 모습이었다. 그는 상을 앞에 두고 비스듬히 앉은 채 눈을 비비다가 “진주 고기 먹겠구나,” 했다. 그러고는 인정사정없이 젓가락을 집더니 거침없이 고기를 집어 입에 넣는다. 방이와 천이는 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은 채였다. “스승님, 뭐라도 좀 찍어서 드시지요.”

  “오냐.”

  다시 한 점, 또 한 점, 계속 한 점, 걸신들린 것처럼 급하게도 먹는다. 천이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했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슬쩍 형을 보니 평온하기 그지없다. 하긴 언제나 스승을 하늘처럼 받드는 형이니 당연하다. 족히 천 년은 지난 것만 같은데, 스승의 젓가락 속도가 약간 느려졌다. 또 한 오백 년은 지났을까, “너희도 와서 먹어라,” 드디어 허가가 떨어졌다. 천이는 방이 보다 빨리 일어서지 않도록 심히 노력했다. 형을 따라가서 상 앞에 앉아 보니 고기는 이미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조금, 실은 많이 울컥했지만 천이는 그래도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천이는 행복하다 못해 떨리기까지 하는 젓가락으로 보송 상큼한 오겹살 한 점을 집어, 소금만 약간 찍어 입에 넣었다. 현기증마저 왔다. 고기는 탱탱하게 앙탈을 부리다가 이내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꾹 씹으면 육즙이 입안에 확 퍼지고, 살살 누르면 찌잉 하니 은은히 감도는 맛이 있다. 이 사이서 살살 녹아들면서도 통! 하고 탕! 하고 퉁기는 생생함이 있다. 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짜릿 은근하고, 상추에 싸 먹으면 황금색, 신선한 청색 맛이 뒤섞이며 그야말로 희열에 가득 찬 향연이 벌어진다. 고기와 대비되는 청청한 풀 맛이 옥구슬 씹히듯 하고, 생마늘 한 쪽을 더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화룡점정이었다. 너무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왔다.

  “아 이놈이!”

  와장창 소리와 함께 천이 눈앞이 일순간 깜깜해졌다. 이윽고 세상이 빙글 붕 뜨더니 입안 고기와 상추와 쌈장과 마늘이 더불어 쌩그러니 구른다. 안돼! 그러나 그의 귀로 들린 소리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깨애앵!” 일 뿐이었다.

  “이놈! 느이 형은 아직 입도 못 댔다 이 자식아! 두 개씩 집고 이 뭣 하는 짓인고!”
  “스승님, 진정하십시오.”

  천이는 앞마당에 널브러진 자신의 처지를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그 와중에도 젓가락은 여전히 쥐고 있었다. 사람의 모양도 그럭저럭 유지했다. 짜리몽땅하니 잘려나가 토끼 꼬리 같은 꼬리만 제외하고. 그는 입을 벌리려다가 일단 먼저 입안의 음식을 다 삼켰다. 하도 세게 쥐어서 손가락이 다 아픈 오른손에서 젓가락을 빼내고, 주무르고, 꼬리를 다시 감추고, 끙차 하며 일어났다. 하다 다시 철썩 주저앉았다.

  “막내야?”

  형의 표정을 안 보아도 잘 안다. 천이는 비쭉시쭉 떨리는 입꼬리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보나 마나 난처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겠지. 스승님 눈치 보랴, 아우 눈치 보랴. 난 하도 오랜만에 먹는 고기가 정말 맛있어서 그냥 좀……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하도 배가 고프고 급해서 형 속도를 깜박했는데, 그게 그렇게도 큰 죄인가? 그런가?

  “끼이이잉…….”

  주저앉은 아우가 닭똥 같은 눈물 뚝뚝 떨구며 울기 시작하자, 방이는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아직 화가 뻗친 스승 앞에 얼른 납작 엎드렸다.

  “스승님, 부디 화를 푸십시오.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제 탓이니 저를 야단쳐 주십시오. 천이는 아직 어려서 그렇습니다.”

  이마를 마룻바닥에 댄 방이는 몰랐지만, 스승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큰 제자와 작은 제자를 번갈아 보다가 파자마 소맷자락 확 떨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문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당에 엎어진 새끼 여우의 울음은 흐느낌에서 통곡으로 바뀌었다. 아예 몸도 인간에서 여우로 돌아갔다. 방이는 얼른 아우에게 달려가 그 팔뚝만 한 솜털 뭉치를 안아 들고 바삐 달랬다.

  “괜찮아, 놀랬지? 많이 놀랬지?”

  천이는 형 손등이 눈물 닦아내는 대로 더 울었다. 아주 서럽고 또 서러워서 어떻게 참을 수도 없었다. 배 조여들고 가슴 펄떡였다. 잔뜩 웅크린 앞발 뒷발 바들바들 떨렸다. 방이는 아우의 등을 쓸어내리고 토닥이며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애썼다.

  아우는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치지 못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랬다. 특히 부모를 사냥꾼 인간에게 잃은 후부터 더욱 그랬다. 천이는 꼬리 잘린 채 붙잡히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결국 붙잡혔을 것이다. 그때 스승은 두 여우의 상처를 단번에 낫기고서 바랑에 훌렁 넣었다. 주해사의 스님으로 둔갑해 있었으니, 사냥꾼은 상대가 여우인 줄 꿈에도 몰랐다. 새끼 여우 두 마리를 보지 못 했느냐고 묻고서는 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바삐 달려갔을 뿐이다. 스승은 이윽고 절 계단 한 발 딛고 훌쩍 뛰어 하늘 올랐는데, 도착한 곳이 백학 신선 동네 한구석 다 무너져가는 오두막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길은 없다. 방이는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한 시도 쉬지 않고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런 형과는 달리, 천이는 버릇없게 굴거나 부주의한 실수를 저질러 큰 야단을 종종 맞았다. 그때마다 울고 부는 아우 어르고 달래는 것이 방이 일이었다. 오늘도 전과 다르지 않아서, 방이는 밤늦게까지 동생을 다독이다 말뚝잠이 들었다. 전과 다른 것이라면 천이는 잠들지 않았다.

  늦은 밤, 막내 여우는 살살 마당으로 나섰다.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 뒷마당으로 돌아갔다. 장독대 지나 화단으로 들어서서 담벼락 등지고 쪼그려 앉았다. 그는 앞발로 흙 긁어 몇 개 선 그었다. 만월이라 사방이 환했다. 오늘 밤 따라 달이 더욱 커 보였다. 한밤인데 나비 몇몇 호랑나리 곁을 떴다 앉았다 한다. 귀뚜라미 소리가 담 너머에서인지, 마루 쪽에서인지 뚜르륵 뚜르륵 울렸다.

  뒷마당 한가운데 큰 대추나무 한 그루 자라는데, 바람 불 때마다 요란하게 가지를 떨었다. 천이는 멍하니 나뭇가지 움직이는 모양을 보았다. 밤인데도 밝고, 가지가지마다 달빛 줄줄이 걸려 흔들리다가 그림자와 두루 섞인다. 바람 세게 불면 시원하고 그치면 선선하다. 선계의 밤은 나른히 자상하여 마치 엄마 품 같다. 눈물이 왈칵 났다.

  천이는 우는 소리가 날까 얼른 입을 땅에 박았다. 그러자 맘 놓고 울 수도 없구나 싶어서 더 서글펐다. 엄마하고 아빠가 보고 싶었다. 복실한 엄마 배에 머리를 팍 묻고 마구 비벼대면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러면 발밑 땅에서 젖내나는 흙내가 살살 올라왔다. 아빠가 뺨 핥아줄 때면 시원하고 까슬한 바람 냄새가 났는데, 그게 콧잔등을 툭툭 치며 올라갔다. 굴 밖으로 뛰쳐나가 신나게 달리고 구르고 싶어지는 냄새였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랐다. 사냥꾼이 개 앞세워 나타나기 전에는. 인세의 밤은 가차 없고 무서웠다. 그는 몸을 소르르 떨었다.

  “예서 무얼 하느냐?”
  “에그머니나!”

  천이는 화들짝 놀라 펄쩍 뛰어 굴렀다. 사실은 구르려던 게 아니라 웬 소리 들려온 담벼락에서 떨어지려 한 것이지만, 착지하다 발이 엉켜 구르고 말았다.

  “무얼 그리 놀라느냐? 본묘(本猫) 외려 무안쿠나.”
  “뭐, 뭐, 뭐하는 놈이냐! 아 뭐야…….”

  급히 제대로 일어나 외치다 말고 천이는 당장 김이 빠졌다. 담벼락에는 자신보다 훨씬 작아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 꼬아 앉았을 뿐이다. 천이는 집 쪽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넌 대체 뭐냐?”

  “묘선(猫仙)이다. 네놈은 호선(狐仙)은커녕 구미호는커녕 아예 꼬리가 잘렸구나. 그래 예서 울었는가?”
  “울긴 뭘! 내가 꼬리가 있든 없든! 아니 대체 그러니까 너 뭐냐고?”

  천이는 목소리가 높아지려 할 때마다 애써 참았다. 담 위 고양이 신선은 고개를 우아하게 틀어 옆으로 아래로 천이 보았다. 달 등졌는데 눈동자에 별 무리 든 듯 초롱하니, 천이가 보기에도 보통 고양이는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묘선이 삿뿐 뛰어내려 순식간에 자신의 발목을 꼬리로 쓸며 돌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 꼴사납게 넘어져 다시 한 번 구르고 말았다.

  “영 어리어리한 것이, 아직 새끼로구나.”
  “나보다 쬐끄만 게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하는구나!”

  고양이 수염 느긋이 까닥인다. “뒤를 봐라.”
  뒤는 무슨, 하고 싶었지만 천이의 고개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말보다 냄새가 먼저였다. 김이 모락 모락 이는 오겹살 그득 담긴 접시가 뒤에 있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셋씩이나. 그뿐이랴, 오겹살 접시 너머에는 상추며 풋고추, 쌈장, 참기름 소금, 고추장, 생마늘과 깻잎, 된장찌개 등이 완벽히 구비되어 있었다.

  “이건, 이게 다 뭔가?” 꿈인가?
  “먹고 싶잖느냐?”
  “그……. 너, 아니 묘선님의 재주가 신묘하기 그지없사옵니다!”
  “별말을. 어서 먹어라.”

  묘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이는 오겹살 접시로 돌진했다. 정신없이 앞발로 젓가락 집으려다 아차 하고는 급히 인간으로 둔갑했다. 고기를 신나게 상추쌈 해서 먹고, 그냥도 먹고, 소금만 찍어 먹고, 쌈장만 찍어 먹고, 생마늘하고만 먹고, 깻잎 싸서 먹고, 풋고추에 둘러 먹고, 고추장 찍어 먹고, 찌개에 담가 먹고, 그야말로 세 접시를 깨끗이 여한 없이 먹었다. 배가 슬슬 불러오는데 문득 보니 상추바구니 곁에 막걸리까지 있다. 시원하게 들이키고 부른 배 두드리며 하늘 보니 눈물마저 나올 지경이다.

  이것이 행복 아닌가. 이렇게 속 시원하게 먹고 싶은 대로 먹은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스승 형 눈치 보지 않고, 솟구치는 허기를 다스린다고 힘쓸 것 없이 그냥 막 먹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 줄 정녕 몰랐다.

  “정말 다 먹었느냐. 거 참 배고파서 지금껏 어찌 살았는고?”

  천이는 묘선 앞에 넙죽 엎드렸다.

  “어떻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얼마나 가시방석에 앉은 양 불안한지 모릅니다.”

  묘선은 고개를 살랑 저었다. “수령호선 밑에서 고생이 많았겠구나.”

  “말도 마십쇼. 아주 고문스러운 나날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묘선 어르신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아주 잘 먹었습니다.”

  천이는 진심을 듬뿍 담아 큰절 올렸다. 묘선은 꼬리를 부드럽게 감아 내렸다. “여우 신선들은 어찌 사는지 모르겠다만, 우리는 많이 다르니라. 따라와 보려느냐?”
  “예?”
  “우리는 먹을 것 갖고 치사하게 굴지는 않니라. 하지만 너는 여기 사는 동안 주욱, 끝없이 계속, 뭘 먹을 때마다 항시 불안에 떨어야 하지 않겠는고?”
  “그것은 그렇사옵니다.”
  “그게 어디 먹어도 먹는 것이리.”
  “맞는 말씀이옵니다. 게다가 저희가 직접 요리도 해야 하고, 나중에 설거지며 뒤처리도 해야 하고, 아주 번잡하고 힘들게 먹고 사옵니다. 저는 그렇다 쳐도 형은 습진까지 났습지요.”
  “가련한지고.”
  “예…….”

  천이는 훌쩍이느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미처 못 했다. 그는 울렁이는 심정을 가라앉히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제가 고기 먹고 싶었던 것을 어찌 아셨는지요?”
  “신선이 그도 모르리.”

  묘선은 가볍게 답하며 빙글 돌아섰다. 그러고는 나비처럼 훌훌 담으로 날아올라 위에 서서 천이를 돌아보았다.

  “어찌하리, 구경 와 보려는고?”
  “예?”
  “와서 고양이 신선의 법도가 어떠한가 보겠느냐? 맘에 안 들면 돌아오면 될 일이고, 좋으면 나중에 네 형도 데려올 수 있느니.”
  “그렇사옵니까? 그게, 아무래도 너무 급작스러워서요.”
  “싫으면 그냥 있으려무나.”
  “그게 아니옵고!”
  “본묘는 네가 마음 정할 때까지 한 세월 기다릴 수 없니라. 이만 돌아가야느니.” 그러고는 돌아앉더니 다시금 날아오를 태이다. 천이는 다급히 외쳤다. “가겠습니다!”
  “그래?”
  “갔다가 돌아오고 싶으면 바로 올 수 있지요?”
  “아무렴.”
  “돌아오는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금방이니라. 무에 그리 걱정이 많은고?”
  “아무래도…… 형이……”

  묘선은 앞발을 몇 번 핥으며 생각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내 너를 데리고 궁에 도착하면 이곳 호선에게 통신하리라. 그러면 네 형도 걱정을 덜 것이니.”

  천이는 한결 안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기도 주시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인제 가자꾸나. 그런데,” 묘선은 눈을 가느다랗게 했다. “지금은 여우 모습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으리.”

  “아, 예. 그럼 바로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궁에 가면 꼭 옷 입는 버릇을 들여야 하리,” 하며 묘선은 만월을 올려다보았다. 여우 모습으로 돌아간 천이도 덩달아 달을 보았다. 아까 보았던 달이 잎사귀만 했다면 지금은 어찌 된 영문인지 접시만 했다. 어떻게 저렇게 큰가? 하는데 달빛이 삽시간에 시야를 물들였다. 온통 백색, 자색, 청색, 금색, 그리고 온갖 보석이 들어차 소용돌이치듯 휘황한 광채뿐이다.

  발끝까지 취한 듯 어지러운데, 지경 알 수 없이 크고 크던 세상이 느닷없이 호랑나리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꼬리 끝이 아찔아찔한 것 같기도 하고, 뱃속을 그득히 채운 진주 꿰미가 울렁이며 착착 소리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승의 혀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누가 우는 것 같은데……천이는 그저 까마득하였다. 그러다 아예 굴러 넘어 떨어지듯 정신을 잃었다.

*

  묘묘궁(猫猫宮)은 곧 묘선동(猫仙洞)이다. 천상천하 모든 고양이 신선의 거처이며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자옥산(紫玉山) 꼭대기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이 묘궁은 거대한 크기도 크기거니와, 전체적인 구조가 정교하고도 세세한 계획에 따라 이룩되어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고을이라 이를 만했다. 궁을 이룬 모든 석재는 옥이요, 기와는 황금과 백은으로 호화로웠다. 온갖 기화요초 만발한 동산에는 난새와 백학이 노닐었고, 거울같이 맑은 호수에는 자색 안개가 비단처럼 어른댔다. 그에 더하여 때때로 자욱한 채운이 뜨락을 지나 흘러다니거나 황홀한 서기가 곳곳에 일렁이는데, 이야말로 선경이고 선궁이라 할 만하였다. 정작 천이는 이 모든 비경을 보지 못하였으니, 푹 기절한 채 좀처럼 깨지 못한 탓이다. 

  천이는 묘묘궁에 도착한 지 근 사흘 만에, 기다리다 못한 묘선이 피워 둔 선향 내음 맡으며 깨어났다. 어찌어찌 눈을 뜨고도 한동안 어리벙벙하여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그런 천이의 얼굴로 옷가지 한가득 떨어졌다.

  “기다리다 발톱 다 빠지는가 하였도다. 얼른 일어나거라.”

  천이는 이불을 앞발로 밀어내고 앉아 눈 비벼댔다.

  “여기서 지내려면 사람 모습을 해야 한다. 여우 모습으로 다녔다가는 사방천지서 뀌어대는 콧방귀에 불려 축생지옥까지 날아가리. 둔갑하고서 이 옷을 잘 입어라. 그러고서 요기하러 가자꾸나.”

  밥 먹자는데 무엇 더 묻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천이는 얼른 사람으로 둔갑하고서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입어야 하는 옷이 얼마나 많고 매고 묶어야 하는 끈은 또 끝이 없으니, 배는 고픈데 손발이 마음같이 빠르지 않아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급하다고 대충 하지 말고 잘 하여라.”

  묘선 역시 이제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아니, 아니지, 인간이 아니라 선녀다. 천이는 저고리 여미는 것을 잠깐 잊을 뻔했다. 머리채는 먹으로 구름 그린 듯하고 이목구비는 옥을 다듬은 듯한데, 그 수려한 자태가 또한 아른하고도 몽롱한 기운이 있어 정신마저 혼미하였다. 귀밑머리며 눈썹 끝까지 어느 한 군데도 허투르지 않아 마치 인형 같기도 했고, 또렷한 눈빛은 별처럼 밝아서 미처 바로 바라보기가 부끄럽기도 했다. 노을빛 저고리와 자홍색 족접군(簇蝶裙)은 무슨 옷감인지 빛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색을 달리하였고, 길게 드리운 흑옥 노리개는 연방 광채를 발하였다. 사방에 감미로운 향기마저 진동하는데, 천이는 거의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몰랐다. 

  “제가 혹시 달에 온 것입니까? 이곳이 월궁인지요?”
  “응?”
  “월궁항아신가 해서요.”

  묘선은 약간 웃는 것도 같았다. “꼬맹이가 능구럭하기는.” 그러면서 손수 천이의 저고리를 여미어 주기까지 했다. 이리 늘어지고 저리 허술하던 차림새가 야무진 손끝 따라 빳빳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천이는 그제야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경탄스러울 밖에 없었다. 자신이 막 일어났던 침상에는 폭신하고 부드러운 비단 금침이 깔렸고, 나비 날개 같은 휘장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병풍은 색색으로 그린 꽃과 나비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양 생생하게만 보였고, 모란이 한가득 꽂힌 화병이 창가에 죽 늘어서서 아예 화단처럼도 보였다. 모든 것이 화려하고 경경(耿耿)하니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는 앞서 걷는 묘선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꼬박 사흘을 잠만 잤으니 심히 허기지리.”
  “예, 맞습니다!” 

  묘선의 소맷자락이 한 번 팔락였다.

  “다소곳이 말하는 버릇을 들여야 하리.”
  “예, 그리해야지요.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가는 것입니까?”
  “그러하니라. 발뒤꿈치를 들고 걷도록 하여라.”
  “예, 주의하겠습니다.”
  “본묘를 잊지 말고 묘궁항아님이라 칭하여라.”

  무슨 주의사항이 그리 많은지, 묘선은 걷는 내내 천이에게 궁에서의 범절을 가르쳐 주었다. 천이는 처음에는 잔뜩 긴장해서 답하다가 나중에는 “예, 예” 하고 다소 건성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천지에 신기한 것 투성이인 것이다. 저기 난새 날고, 학 노닐고, 무지갯빛 안개 흐르고, 하늘은 물감 접시 내던져 뒤엎은 듯한 보랏빛 노을로 일렁이는데 걸음걸이니 식사 예절이니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고양이 신선의 밥상이란 천 번 만 번 감탄을 해도 부족할 정도로 훌륭하였다. 가히 아름답고 향그러운 하나의 그림이요 일월성도의 정연한 자태였다. 둥근 주상(朱床)에는 먼저 백옥 깎아 다듬은 그릇이 달처럼 둥글게 쌀밥 품었다. 색색이 다채로운 반찬이 곱게 말아 올린 비단처럼 단정히 진열되었고, 황홀한 냄새가 넉넉히 담담하여 먹기도 전에 마음부터 그득하였다.

  상 곁에 따로 놓인 소원반 위 은쟁반에는 선과(仙菓)가 소복하고, 용각배(龙角杯) 가득 채운 도화주 꽃향기는 정신이 쏙 빠질 듯 어지러웠다. 천이는 곁에 앉은 다른 신선들처럼 한껏 고고한 표정을 지으려 부단히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가히 팔진성찬(八珍盛饌)이요 진미가효(珍味佳肴)라, 어찌 감탄을 금할 길 있으랴. 선계의 갈비, 산적, 동치미, 죽순채, 신선로, 곰탕, 옥돔찜, 수육, 더덕 생채, 계란조치, 사슬적, 용봉족편, 다시마튀각, 육회, 우설편육, 삼합장과, 송이찜 게다가 저편 소반에 따로 놓인 매작과, 대추단자와 가련수정과까지 그야말로 천하절경이라.

  둥근 상 위 둥근 그릇 모두 구슬을 꿰어놓은 듯 달 풀어둔 듯 영롱한 지경이니 하늘 천장에 앉아 별 바다 내려다보는 듯하다. 옆자리 묘선의 헛기침 소리에 천이는 얼른 정신 차리고 눈물을 닦았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이라면,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앉은 묘선이 모두 다섯인데, 어째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덩달아 가만히 기다리면서 천이는 몹시 배고팠다. 그러던 중 맞은편 자리 선관이 대뜸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는가.

  “붕 뜬 자리에 중심 없는 실개울 흐르는 모양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우리 호선 나으리께옵서는?”

  순식간에 모든 묘선의 시선이 천이에게 모였다. 특히 묘궁항아님은 사뭇 기대하는 듯한 눈빛인지라, 천이는 그저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먹자는 밥은 안 먹고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날더러 뭘…….“

  천이는 입을 합 다물었다. 혹시 대답을 잘 못하면 밥 안 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야 안 될 일이었다! 묘선들은 이런 식으로 시험을 하는가! 하필이면 밥을 앞에 두고, 치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다 보니 삼겹살 먹던 날 아침 스승의 말이 문득 기억났다.
  일단 천이는 손으로 산적 한 점을 덥석 집었다. 최대한 제 스승 특유의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이게 뭐요?”

  묘선의 표정이 모두들 아리송해졌다. 서로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거나 쑥덕거리기도 한다. 천이는 더욱 짜증스런 표정으로 산적을 대청 한가운데로 확 집어던졌다. 그러니 다들 헉하고 놀라며 못 볼 걸 봤다는 듯 천이를 쳐다보는 것이다.

  “이거야 나 원! 진주 고기지! 나 참 답답해서!” 내친김에 혀까지 끌끌 찼다.

  이쯤 되니 좌중 분위기는 더욱 묘해져서, 다들 숨죽인 채 왠지 얌전히 천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천이는 수저를 들고 밥

 푹 퍼서 입에 쑤셔 넣었다. 갈비도 뜯고 튀각도 와각와각 씹었다. 설령 쫓겨나더라도 뭐라도 먹고 쫓겨나리라. 그때 맨 처음 뜬 소리 했던 묘선이 벌떡 일어나 천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제 잡아가려나 보다 하고 천이는 육회를 얼른 입에 넣었다.

  “과연 수령호선의 제자 다우십니다.”

  멱살을 잡기는커녕, 고양이 선관은 도화주를 가득 천이 잔에 따르며 칭송하였다. 천이는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일단 고기를 얼른 삼키고 홀랑 잔을 비웠다. 그야말로 천상 도화 향기가 혀끝을 타고 올라와 골을 찡하니 때리는데 아주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그쪽도 받으시오.” 자못 근엄히 말하며 천이는 자신의 잔을 상대에게 들이밀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연후 분위기가 사뭇 풀어져 여기저기서 젓가락 부딪기는 소리, 술 따르는 소리가 났다. 옆에서 묘궁항아가 아주 흡족하다는 듯 말했다.  

  “수령 여우신선이 이제껏 제자는커녕 시자 하나 받은 적 없는데, 느닷없이 제자 둘을 거느리고 백학동으로 갔다기에 모두 매우 궁금해하던 참이라. 이제 보니 과연 그 까다로운 호선이 의당 택할 만하구나.”

  또 도화주를 부어주기에 천이는 얼른 받아 마셨다. 뭔지 몰라도 잘 넘긴 것 같다. 쫓겨날 것 같지는 않으니 마음 놓고 밥 먹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도의 도리는 차치하고 잘린 제 꼬리조차 나슬 줄 모르는 새끼 여우 천이는 과연 실컷 마시고 먹었다. 실로 난생처음 겪어보는 호강에 그만 형이 집에서 얼마나 걱정을 할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아, 그러셨습니까, 하하하! 스승님께서 날 좀 편애하시기는 한다만 말입니다!”

  그는 그저 과히 술을 마셨고, 들뜬 기분에 오래 떠들었다. “수제자라는 것이 쉬운 자리는 아닙지요, 어찌나 신경 쓸 것이 많은지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그나마 고귀한 비서며 비책을 보는 재미로 버티는 것이지…….” 경탄어린 시선이야말로 가장 달콤하여, 장장히 멈출 수 없었다.
 
*
 
  천이는 제 형이 냇가에서 빨래하다가, 쌀 씻다가, 마당 쓸다가 왈칵 우는 것도 몰랐고, 밤마다 동네를 쏘다니며 저를 찾는 것도 몰랐다. 백학동 집은 이미 여러 번 발칵 뒤집혔다.

  처음 방이는 천이가 어디 놀러 나갔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건너뛰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털끝 하나 보이지 않으니 방이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샅샅이 살폈다. 스승님 진지상을 챙기다가도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부리나케 뛰쳐나가 천이를 불렀다. 설거지와 정리를 마치고 방이는 다시 마을 이곳저곳 헤매고 다녔다.

  걷다 걷다 지친 방이가 천이를 소리 높여 부르자 놀란 학들이 백옥 노을 속으로 다르륵 날아올랐다. 방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민들레 밭 한가운데 주저앉아 조금 울었다. 울든 헤매든 답하는 이는 없고 그저 풀벌레 우는 소리만 잔잔할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달이 하늘 꼭지까지 올라서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방이였다.

  제 형이 그토록 마음고생을 하는 와중에도 천이는 호의호식하며 하루하루 희희낙락하였다. 이를테면 채선 타고 옥정호수 유람을 하는가 하면, 한 무리의 묘선과 함께 동산을 거닐며 모란 따기도 했고, 구슬 놀이로 한나절 다 보내기도 했다. 끼니마다 산진해찬(山珍海饌)이요 용미봉탕(龍味鳳湯)이니 혀끝의 즐거움이야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나날이었다.

  한 가지 묘한 점이라면 꼭 밥술을 뜨기 전에 묘선들이 저마다 아리송한 말놀이를 즐겨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천이는 스승이 했던 말을 다시 던지고 또 던졌다. “오늘은 진주 고기나 먹자!” 혹은 “고기가 왜 진주라는가?” 하는 식이었다.

  매번 같은 말만 하니까 다들 좀 지루해하는 모양이었다. 설령 그렇단들 어떻겠는가, 무슨 큰 문제리? 하고 천이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실상 천이는 몰랐으나 여러 묘선은 상당한 의아해 하였다. 묘궁항아 역시 자신이 데려온 호선이 실은 호선이 아니라 그저 새끼 여우일 뿐 아닌가 싶던 참인데, 하루는 첫날 천이에게 질문 던졌던 묘선관이 항아를 찾아와 이리 물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소?”
  “아무래도 우리가 공한 수고를 자처한 꼴이 아닌가 싶네.”
  “다른 게 아니라, 내게 어떤 안이 있는데 말이오.”
  “말씀해 보시게.”

  그리하여 다음 날, 묘묘궁의 월화원에서 꽃놀이가 벌어졌다. 모두 한껏 치장하고 살랑이며 나선 모습이 도화 나무 아래 붉고 푸르고 환하여 한 폭 그림인 양 보였다. 천이 역시 기린문 비단옷에 운관 쓰고 황금 띠 매고 썩 자랑스레 나섰다. 오늘도 맛난 다과를 맛볼 테니 미리부터 흐뭇했다.

  제각기 꽃 피운 도화 나무 밭 한가운데 신선들은 제각기 자리 잡고 앉았다. 온갖 과자며 차, 술 휘황하게 차린 상부터 천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도 신선 중 하나가 무슨 뜬 소리를 할 셈인지 헛기침하며 나선다.

  “그간의 말 놀음은 이제 식상하니 이 손영,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선보이려 합니다.”

  그러면서 부채를 확 펴고 접고 다시 펴 흔드니 순식간에 복숭아 꽃잎 사방에 날았다. 좌중이 감탄하는 가운데 바람 길게 불더니 손영 곁 묘선 일어나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꽃잎이 모두 백옥 구슬로 화하여 쟁쟁이며 떨어졌다. 또 다른 신선이 손바닥을 한 번 마주치자 구슬이 제각기 온갖 꽃송이로 터져 열리고, 그런 식으로 다시금 앵조로 날아올랐다가 나비로 변했다가 그 기묘한 조화가 실로 끝이 없었다.

  마침내 순서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이 묘연, 약간은 다른 수를 보여 드리겠소,” 하는 소리가 나더니 새처럼 화드득 치맛자락 휘날리며 날아오르는 묘궁항아였다. 홍련 자수 소맷자락 붓끝처럼 감쳐 돌고 옥패 소리 낭랑한데, 하늘 메운 황금 나비 사이에서 묘연은 실로 그림 한 폭을 춤추었다. 하늘 나비 바람 그대로 고정된 듯한데 단지 흩어진 구름이나 쩡쩡한 햇살, 막 잠 깬 꽃망울이나 갓 꿈틀대는 안개, 한 겹 늘늘이 흘러가는 비단 같은 춤사위에 모두 할 말을 잃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묘연은 사붓이 땅으로 내려와 서며 천이의 어깨를 짚었다.

  “이제 네 차례니라.”
  “예, 예? 그것이, 꼭 저도 뭘 해야 합니까?”
  “다들 돌아가며 노는 것이니라. 너는 수령호선의 수제자이고, 스승이 널 아주 가장 신뢰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모두 기대가 크니 한 재주 선보여 보려무나.”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술이 과하면 그게, 말이라는 것이…….” 그러고 보니 전에 취해서 뭐라고 쉬지 않고 말을 했기는 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천이는 난처한 얼굴로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눈을 크게 뜨고 잔뜩 기대하는 얼굴인데, 묘궁항아와 일전의 그 선관만은 무표정하다.
  천이는 이 곤경을 어찌 타파할까 생각하다가, 금방 포기하고 땅에 납작 엎드렸다.

  “그만 제가 술에 취해 사실이 아닌 말을 늘어놓았사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너는 수령 호선의 제자가 아니라 시자인 게냐?”
  “애매한 것이, 스승님이랍시고 칭이야 합니다만 무엇 배운 것은 하나도 없삽지요, 그것도 많은 일은 다 형님이 하고 저는 그저 돕기나 하는 정도입지요!”
  “그러면 네가 할 줄 아는 것이 무어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천이는 풀밭에 이마를 박은 채 그제서야 조금 먹먹한 심정이었다. 허구한 날 말썽부리고 울기나 하는 자신을 그래도 형은 항상 애면글면 돌보아 주지 않는가. 맨날 혼만 내면서도 어쨌든 목숨도 구해 주고 방 한 칸 내주어 살게 해주지 않았는가, 스승님도. 그는 고개를 아주 약간 들고 묘궁항아에게 물었다.

  “제가 여기 온 것을 형님께선 아시지요?”
  “통신하는 것을 깜박했니라.”
  “예?”
  “너도 이제서야 기억하지 않았느냐. 생판 남인 나야 깜박했대도 너는 대체 뭐냐?”
  “저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흥이 다 깨졌다. 이걸 받거라.”

  묘궁항아는 황금 비녀를 쑥 뽑아 천이에게 내밀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예…….”

  천이는 소맷자락으로 이마에 붙은 풀잎을 밀어 떨구고, 얌전히 일어나서 비녀를 받았다. 비녀 너머로 다과상 위 백설기며 월병, 약과와 꿀떡 등이 아쉬웠지만 별수 없었다. 아무리 맛나 보인단들 이제 와서 과자 좀 싸달라 할 면목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왜 주십니까?”
  “어쨌든 본묘가 널 데려왔고, 또 네 형에게 소식 알리는 걸 잊었으니 주는 것이니라. 아무튼 이 길로 쭉 나가다 보면 집에 닿을 테니 딴 것에 정신 팔지 말고 그저 걷기만 하여라.”

  천이는 엉거주춤 거리다가 묘궁항아에게 큰절 올리고, 다른 묘선한테도 절한 후 월화원 청돌길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냥 처음부터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새끼 여우에 불과하다고, 사냥꾼에게 쫓기던 것을 스승이 구해주어 목숨 부지했을 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것을, 도대체 얼마나 허풍을 떤 건가. 이제 와서 후회막심하나 별도리 없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귀여운 짓이나 좀 했으면 계속 맛난 것을 먹을 수 있었을지 누가 아나? 적어도 묘궁항아님의 차가운 옥안 뵙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천지 이런 바보, 바보도 없으리라.

  천이는 손등으로 눈물 닦았다. 그러다 돌에 발 걸려 요란히 넘어졌다. 악 하고 소리치며 엎어지는데 한순간 땅에 닿지 않고 오히려 구름 끝에서 추락한 듯 바람만이 발끝에서 쌩쌩 불었다. 구르는데도 땅이나 풀은 느껴지지 않고 허공을 꽉 채운 바람만이 허허로이 맴돌았다. 꼭 감았던 눈을 뜨니 정말 하늘인 양 사방팔방 푸르기만 하고, 어디를 보아도 끝이 없다. 그는 속절없이 비녀만 꽉 안고서 비명만 질렀다.

  곧이어 푸른 것도 없어지고 비녀며 소매, 바람도 그저 없어졌다. 그렇다고 검지도 않고 밝지도 않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비명도 더는 없었다. 하늘 땅 강 산 바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쌩하니 없었다. 세월도 그저 거슬러 없어지고 없어져서, 아주 오랜 옛날의 옛날의 옛날, 또 그 옛날마저 따로 없는 옛날, 나중에는 그조차 없었다.

  그저 희게 텅 빈 세상 중에 흰 점 하나뿐이다. 그것이 문득 꼬륵 하고 생각하기를, 이래가지고서야 내가 나를 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그 흰 것은 끙차 하고는 갑작스레 까아매졌다. 깜깜하니 둥글어서는 또 둘러보니 아 이것 참, 세상이 그야말로 따그르르 구를 만하지 않은가. 그런 고로 그것이 고만 아고고, 하면서 또르르르 굴러버렸다.

  길게 둥글게 양옆으로 아래위로 둘러 둘러 휘돌아 다시 쪼르르 하니 한도 끝도 없이 간 곳도 온 곳도 없이 아주 시원하니 굴러버린 것인데, 그러고 보니 얄팍하던 세상에 한 선이 참으로 절묘하게 늘어지지 않았는가. 일단 그리 길어지고 나니 이게 퍽 어렵지는 않은 일이라, 그것은 그냥 주욱 퍼져 보았다. 한없이 번지고 번지다 보니 검던 색이 파래지기도 하고 붉어지기도 하고, 온갖 색깔이 다 나왔다. 세상을 얼마나 채웠는지, 어디까지 고여 물든 것인지 알 길 없었다. 한참을 그저 일렁이기만 하던 채색 바다 속에서, 어느 날인가 느닷없이 붉은 물방울 한 점 톡 튀어 나갔다. 푸른 것은 또 위로 툭 튀어 번지고, 곧이어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뜨거운 것 가벼운 것들이 제각기 생겨났다.

  그로부터 또 마냥 다른 일이라, 햇된 태양 아래 너른 들판 어느 날 꽃 무리 지어 피어났다. 나비와 벌과 계절 오가는 가운데 첫 서리와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다 졌다. 오직 한 송이만은 꼿꼿이 허리를 펴고 버텼다. 찬 비가 내려도 눈이 무겁게 내려도 바들바들 떨면서, 여전히 꽃잎을 펼친 채 한없이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도 못했으나 여하간 기다렸다.  

  겨울 꼬박 나고서 드디어 훈풍 불어올 때쯤, 녹는 눈 밀어내며 척척히 지나는 발소리에 돌아보니 검은 곰 한 마리 퀭한 몰골로 지나가지 않는가. 다급하게 부르니 곧 곰의 커다란 얼굴이 쑥 내려왔다. 비린 콧내음에 꽃잎 떨며, 그래 네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나를 좀 데려가라, 명하는 꽃이었다. 곰은 한참을 가만있더니, 곧 앞발로 꽃 주변 눈 밀어 치웠다. 아직 차고 딱딱한 땅인데도 그 큰 앞발로 쑥 쑥 밀어내자 가뿐히 파인다. 꽃 곁의 흙까지 파서 한 발에 담고는 곰은 다시 걸었다. 세 발로 가자니 휘청일 밖에 없다.

  둘은 오래 함께 다녔다. 붉은 바위산과 독수리 계곡, 백송언덕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기나긴 강변 따라 하염없이 갔다. 곰이 틈틈이 꽃을 땅에 내려놓고 물주지 않았다면 훨씬 일찍 끝났을 여정이었다. 봄과 여름 가는 동안 둘은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꽃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언급하며 말했고, 곰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고니 떼 날아가는 광경이며 산꼭대기에서 보이는 노을, 저 멀리서 폭풍이 장벽 이루어 다가오는 모습, 새벽에 온통 풀잎처럼 일어나는 강 안개, 갓 알에서 깨어난 새끼 거북, 콩대 줄기에 꼭 매달린 번데기, 까마득히 높은 곳 고요히 맴도는 한 쌍의 매, 풀씨 쪼느라 바쁘기 그지없는 참새 떼, 새끼 이끌고 산 구렁 올라타는 어미 호랑이, 그야말로 모든 것에 꽃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처럼 말이 많던 꽃은 가을이라 한가득 꽃사과 열린 나무 밑에서 갑자기 조용해졌다. 곰은 여느 때처럼 흙구덩이를 얕게 파고서 꽃 놓고, 흙 덮고, 근처 계곡에서 물 떠와 부었는데, 그때까지도 아무 말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곰이 코를 바짝 들이밀었을 때 꽃잎 한 장 떨어졌다.

  곰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꽃은 꽃잎을 하나씩 하나씩 떨구었다. 마지막 한 장까지 떨어진 후에도 끝내 말이 없었다. 곰은 그 곁에 드러누운 채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 여기저기, 풀밭으로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먹이를 찾으러 갈 생각은 않고 꼬박 밤을 새웠는데, 다음날에는 꽃대까지 시들어 다 쓰러졌다. 곰은 한참을 그저 그 앞에 누운 채 코로 킁킁대는 소리만 냈다.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눈물만 흘렀다. 그러다 눈 감았는데 깜박 꿈꾸었다.

  꿈에서 그는 따뜻하게 일렁이는 구슬 속에 담겨 있었는데, 바로 곁에 잠든 꽃 있었다. 둘은 차례대로 어미 여우에게서 태어나 꾸무럭대며 젖 먹고 굴러다니며 놀았다. 눈도 뜨고 제법 운신을 할 때쯤 둥근 여우굴에 온통 부딪혀 가며 바쁘게 놀다가, 나중에 담이 좀 생기고 나서는 밖에도 나가 보고 메뚜기나 지렁이도 좀 건드려 보면서 매일매일 새롭게 지냈다. 그러다 사냥꾼이 왔다.

  아비 여우 먼저 사냥개에게 물려 죽고, 어미가 덤비는 와중에 형은 아우를 데리고 산속 깊이 뛰어들어갔다. 여우굴 주변을 떠난 적 없던 둘에게 산은 너무 크고 무서운 곳이었다. 사냥꾼은 여우 부부를 손쉽게 죽여 허리춤에 묶고서 개 앞세워 둘을 추격해 왔다. 너무 어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새끼 여우 따라잡는 일이야 어려울래도 어려울 수 없으나, 한 놈 목을 낫으로 치려는데 다른 놈이 번개같이 툭 튀어 올라 면상을 긁었다. 그걸 어찌어찌 휘둘러 베고 다른 놈 그저 꼬리나 잘랐는데, 와중에 배가 좀 잘린 놈이 꼬리 잘린 놈 귀를 물고 절벽 아래로 홀랑 뛰내렸다. 사냥꾼은 혀를 차며 낫 집어넣고 활 꼬나잡고서 오른편 절벽 경사 완만해지는 지점으로 달렸다. 멀리서 은근한 타종 소리 울려 퍼졌다.

  형 여우는 끙끙대며 우는 아우 여우를 꽉 끌어안았다. 뜨거운 것이 배 밖으로 한없이 흘러나가는데 굳이 아프지도 않고, 별다른 감각도 없다. 품 속의 아우가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 저 위에서 개 짖는 소리 나는데, 울면 잡히니까 안 된다고 달래는데도 그저 구슬프게 울었다. 엄마하고 아빠는 어디 있어, 아파 죽겠어, 형아야……. 가까운 발소리에 형 여우는 아우를 뒤로 밀고 앞으로 굴러 누웠다.

  “웬 여우새끼고?”

  죽이는 대신 낯선 목소리가 그리 물었다.
 
*
 
  천이는 백학동 잣촌로 한가운데서 정신을 차렸다. 일어나 보니 앞발에는 복숭아꽃 가지 쥐었고 뱃속 심히 더부룩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울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동네 학들이 다 모여들어 구경하기까지 울었다. 흐느껴 울고 몸부림치며 울고 머리 땅에 박으며 울고 곡하듯 울고 기침하며 울고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소리 중얼대며 울고 그야말로 울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울고 또 울었다. 울다 까묵 기절도 하고 다시 일어나서 울고 목이 다 쉬어 아무 소리 나오지 않아도 울었다.

  도화잎 분분히 향 풀며 흩어졌다.

  그는 울다 울다 속이 다 뒤집어져서 도화 가지 집어던지고 땅으로 엎어져서, 모여든 백학 일제히 도망치듯 날아오르는데 희게 빛나는 진주 꿰미 힘차게 토하여 쏟았다. 한없이 진주 토하며 또 울며, 가슴 치며 또 토하며 울며 하다가 노을 내리는 것 보고 또 울고, 뱃속 깊이 박힌 마지막 진주까지 다 게워내고는 탈진하여 쓰러졌다. 한참 후 오겹살 사러 인세 내려갔다 돌아오던 형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업혀 갔다.

  두 여우 멀어진 후 백학 여럿 내려와 진주며 꽃잎 건드리며 놀았다. 선계의 밤하늘에 또다시 달 올랐고 미풍 불었다. 때로 구름 가고 때로 안개 일었다. 잠잠히 온화한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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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궁항아의 이름인 묘연은 미로냥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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