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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나비 혁명

2024.01.02 06:2201.02

 

나비 혁명

 


어린 시절 꽃밭을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 보신 적, 누구나 한 번은 있으실텐데요. 그 나비가 어린 시절에는 꼬물거리는 징그러운 애벌레였고, 번데기에서 변태를 거치고 나면 나비로 변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도 분명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애벌레 모습과 나비 모습, 엄청나게 다른 두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며 산다는 것은 곤충들의 굉장히 뛰어난 능력이랍니다. 다른 능력을 가진 두 가지 생명체의 장점만 골라서 살릴 수 있거든요.

애벌레는 나뭇잎이나 풀잎을 잘 갉아 먹는 특징이 있죠. 그래서 천천히 움직이며 억센 나뭇잎을 잘 소화시키는데 온 몸이 특화되어 있답니다. 거추장스러운 다른 기능은 없고 통통하고 길쭉한 몸 속에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 장기만 꽉꽉 들어 차 있을 뿐이죠.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 다른 일을 하는 기능이 없어요. 그래서 애벌레는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거기서 몇 십 마리, 몇 백 마리가 나뭇잎을 갉아 먹으며 잘 살 수 있어요. 굉장히 효율적으로 사는 거죠.

그렇지만 이런 삶은 전체 종족으로 보면 문제 있어요. 다들 그렇게 꾸물거리며 나무 한 그루 근처에만 모여 살고 있는데, 만약 그 나무가 어느날 갑자기 뚝 부러져서 죽어 버린다면? 그러면 나뭇잎이 다 시들텐데 그 다음에는 뭘 먹고 살죠? 아니면 그 나무가 있는 곳에 불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홍수라도 나서 나무가 있는 곳이 물에 잠긴다면? 그렇게 되면 그 나무에 퍼져 살 던 그 많은 애벌레들이 단숨에 모두 전멸해 버리겠죠. 꾸물거리는 재주 밖에 없는 통통하고 별 기능 없는 몸으로는 도망치기도 어렵죠. 애벌레들은 대가 끊기고 씨가 말라서 멸종되어 버릴 거에요.

그런데 애벌레는 어른이 되면 나비로 변신할 수가 있답니다. 나비가 되면 날아 다닐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갖게 되지만, 대신 나뭇잎 처럼 억센 먹이를 소화시킬 수는 없어요. 나뭇잎 뿐만 아니라 먹이라고는 거의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되어 버리죠. 가끔 꿀이나 좀 빨아 먹을까. 그런데 꿀이란 게 그냥 널려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 나비가 되면 먹고 살기란 매우 어려워져요. 그냥 애벌레 때 열심히 먹으면서 길러 둔 체력으로 며칠 정도 버티는 게 전부죠. 아마 일단 나비로 변신하고 나면 얼마 못 살고 죽을 수 밖에 없을 거에요.

그렇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비는 최대한 멀리 날아 가는 거에요. 그리고 열심히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죠. 그렇게 해서 나무 한 그루에만 우글우글 모여 살던 애벌레들이 죽기 전에 나비로 변해서 먼 곳으로 날아 가서 여기저기로 퍼지는 거에요. 이렇게 되면, 나무 한 그루 쯤 망가져도 자손이 없어지고 대가 끊겨 멸종하는 일은 없어요. 훨씬 살아 남기 좋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들은 다시 잘 먹고 소화시키는 재주를 이용해서 무럭무럭 오래오래 잘 자라나는 거고요. 에너지를 흡수해서 몸에 채우는 데 집중하는 애벌레 단계와, 에너지를 이용해서 멀리 퍼져 나가고 알을 낳는데 집중하는 어른 단계로 완전히 전문분야를 나눠서 사는 거죠.

게다가, 이렇게 멀리까지 날아 다닐 수 있으니까 먼 곳에 있는 아주 다양한 동료들을 만나서 짝짓기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다양한 유전자, 다양한 체질을 가진 여러 가지 자식들을 많이 낳을 수 있겠죠? 가뭄을 잘 버티는 녀석, 천적을 만났을 때 잘 도망갈 줄 아는 녀석, 더 지능이 높은 녀석, 다양한 자손들이 태어난다고요.

그렇게 되면 역시 무슨 큰 재난이 닥치거나 심지어 전염병이 돌아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자손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다양한 짝짓기로 다양한 자손들이 태어나면 온갖 재난 속에서도 어떻게든 특이한 자손 몇몇은 살아 남아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아 대를 이어 갈 수 있어요. 만약 한 그루 나무에서 살던 비슷비슷한 족속들 끼리 짝짓기를 하면 비슷비슷한 자식들 밖에 안 태어 나겠죠. 그러면 전염병 한 번 돌면 그냥 전멸이라고요!

먹는 것 밖에 모르는 애벌레였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날아 다니면서 알만 낳아야 하는 나비로 변태를 하게 되는 삶은 이것 말고도 장점이 많아요.

하다 못해 애벌레와 어른 벌레가 서로 경쟁하지 않게 된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보통 갓 태어난 아기보다는 어른이 훨씬 힘이 세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둘 다 나뭇잎을 먹고 산다면? 그러면 어른 벌레가 나뭇잎을 먼저 먹어버릴 거라고요. 옆에 있는 아기 애벌레는 어른 벌레 보다 힘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나뭇잎을 먹는 경쟁에서 뒤져서 잘 못먹게 될 거에요. 그러면 아기 애벌레는 결국 굶어 죽게 되겠죠. 이건 망하는 길이라고요. 아기 애벌레들이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랄 기회를 어른 벌레들이 빼앗아 버리면 결국 다음 세대가 사라지고 대가 끊기고 멸종될 거라고요.

잘 아시겠죠? 변태는 곤충의 가장 멋진 힘입니다.

곤충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4억년 전, 5억년 전일 거라고요. 그런데 지금도 곤충은 세상에 널리 퍼져 있어요. 여전히 세상에 곤충들은 우글거리죠. 수없이 많은 나비들이 가득한 세상이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번성하면서 잘 살아 남았을까요? 바로 변태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저희는 바로 나비 제국의 지혜를 사람들의 세상에 도입하기 위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나비 세럼은 사람이 갖고 있는 평생의 호르몬 분비 단계를 완전히 극적으로 바꾸어 줍니다. 태어난 아기들에게 나비 세럼을 주사하면 사람이 바로 나비처럼 되는 거에요.

나비 세럼을 맞은 사람은 인생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은 바로 나비 애벌레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호르몬이 완전히 통제되기 때문에 쓸데 없는 반항심, 저항 정신 같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사춘기도 오지 않죠. 18세 정도가 되면 충분히 덩치가 커져서 힘은 세지지만 그것 말고는 몸이 성숙해지지도 않습니다. 대신 항상 뽀송뽀송한 피부, 상쾌한 근육과 뼈로 살게 되죠.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쓸데 없이 짝을 찾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세상에 불만을 품거나 하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받지 않아요.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공동체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하고 먹고 자는 삶만 살아 갑니다. 꾸역꾸역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아요. 호르몬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괜히 싸우는 사람도 없고, 사회에 별 커다란 갈등도 생기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만 일을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두고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빚지도 않아요!

여러분, 혹시 이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지 않으셨나요? 아니, 그런 세상은 창의력이 없는 따분한 세상 아니야? 그런 세상은 발전과 변화가 없는 정체된 사회일거야. 아니, 짝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야? 애는 누가 낳고? 이렇게요.

그런데 걱정 마세요. 여러분! 나비 세럼을 맞은 사람은 나이가 60세가 될 때 완전히 변태하게 된답니다.

호르몬 분비가 완전히 달라져요. 굉장히 강력한 엔돌핀과 함께 각종 다양한 성숙 호르몬이 단번에 온몸에 뿜어져 나오게 되죠. 나비 세럼을 맞은 사람들은 60세 전후로 정말 아름답고 멋지고 성숙한 몸으로 바뀌게 됩니다. 온몸은 열정으로 충만해지고 정신은 강력한 정열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가장 활발히 놀고, 온갖 예술에 빠져 들죠. 자신을 표현하고 발산하고, 온 힘을 다해 짝을 찾으며 밤낮 즐기고 싶어지는 거에요. 그렇게 매일 밤 화려한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 갖가지 신선한 생각, 경계와 고정관념을 박살내는 놀라운 일들을 선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죠. 인생에서 가장 환희가 폭발하는 시기가 60세의 변태를 맞아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온몸을 바꾸기 위해서 몸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영양분을 소모하게 되고, 뼈와 근육도 크게 손상되게 됩니다. 신경이나 뇌도 굉장히 많이 망가지죠.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삶을 즐기기만 하다 보니 대부분 이런 시간을 2년 정도 밖에 보내지 못해요. 2년이 지나면 목숨을 다하게 될 수 밖에 없답니다. 사실 뭐 그렇잖아요. 일도 하지 않고 자제심도 절제심도 없이 모아둔 재산을 펑펑 써 없애기만 하는데 그것 때문에라도 오래 버틸 수 없죠.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그런 꿈과 같은 마지막 2년을 보내고 나면, 다들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 너무나 아름답지 않나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짝짓기를 거쳐 다들 쌍둥이, 삼둥이들을 낳고 나면, 그 아기들은 덤덤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젊은이들의 공동체가 공동으로 기르게 되는 거랍니다.

어때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나비의 지혜를 사람 사회에 도입하는 이 방법은 선진국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혁명적인 방법으로 현재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 문제에서부터 노인들이 너무 많아서 복지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문제까지, 수많은 문제의 해답이라고요. 지금 세계 17개국이 나비 세럼을 도입하고 있고, 그 나라들이 점점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수 억년 전 나비들이 만들어낸 멸종 극복의 지혜, 이제 우리들이 받아들일 때입니다!


- 2023년, 목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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