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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지진기(地震記)

2010.05.28 23:5305.28

    1.
    고구려의 상부(相夫)가 즉위한 지 8년 째 되는 기미년(서기 299년) 음력 겨울 12월, 지진이 일어나자, 달탄(達呑)땅 인근의 일자(日者)들에게 급히 좌영성실(左靈星室)로 들어 오라는 전갈이 전해 졌다. 이 때의 지진에는 달탄땅에서 피해가 생겼는데, 가뭄과 홍수, 지진과 화산에 대해서는 하늘의 별과 달을 관찰하는 일자들이 여러 일을 맡아 하고 있었으므로, 달탄에서 가장 가까운 좌영성실에서 급히 움직인 것이다.


    이에 낮은 지위의 일을 맡은 한 소대일자(小大日者)가 급히 집을 나서려 하였다. 그러자 그 부인이 물었다.


    "오늘은 나가면 언제 돌아 오시오?"


    소대일자가 따졌다.


    "지진이 일어나 흙무더기와 돌더미가 무너지고 사람이 깔려 죽었는데, 하늘의 별을 보고 재난이 일어날 것을 궁리하는 일자로서, 위급한 일이 끝나는 때까지 있다가 오는 것 아니겠소? 어찌 언제 돌아오는지 기약을 하고 집을 나서겠소?"


    부인은 마르고 몸집이 작았으며, 얼굴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러므로, 부인은 소대일자가 따지자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 말씀이 진실로 맞소. 나는 공이 늦게 들어올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오.


    공이 말한 그대로, 일자란 무릇 별을 보는 것이 일이오. 그러니, 밤늦게 별을 보다가 새벽에 돌아와야 마땅할 것이오. 그런데 공은 밤에 돌아오시는 일이 매우 드무니, 혹 무슨 일이 있으신 것은 아니시오?


    또한 공께서는 몇년 째 오직 소대일자의 자리에 머물로 계실 뿐이시오. 제가 아는 부인들이 말하기로, 공의 벗이라 하는 분들은 모두 삼사년 전에 이미 중대일자(中大日者)로 오르셨다하오. 더우기 개중에 뛰어난 분들은 태대일자(太大日者)에까지 이르신 분이 있다 하는데, 공께서만은 아직도 젊은이들이 있는 소대일자 자리에 계시오. 이는 혹시나 공께서 일이 잘 풀리시지 않고, 힘겨운 걱정거리가 있으신 것은 아니시오?"


    그 말을 듣자, 소대일자는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부인은 내가 일을 하는 재주가 부족한 못난 놈이라, 자리가 높아지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며 탓을 하고 있는가?"


    부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것이 아니라, 지금 국상(國相) 자리에 있는 창조리(倉助利)가 '공구수성(恐懼修省)'이라하는 말을 내걸고, 온 나라를 들쑤시고 있지 않소? 그러한즉, 조정에서는 조그마한 잘못을 한 사람도 죄를 묻소. 멀쩡히 크게 농사를 짓고 곡식을 배불리 거두며 살던 자들도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게 되는 자들이 있으니, 혹여라도, 그대의 일도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여, 같이 근심하는 것일 뿐이오."


    그러자, 소대일자가 다시 소리 쳤다.


    "그렇다면, 부인은 내가 하는 일이 지금 부족하다는 뜻이오?


    내가 비록 소대일자라고는 하나, 일자의 일을 하고 있으므로 벌어오는 재물에 부족함이 있었던 적이 없소. 부인은 혼인을 하고나서 흙을 파서 농사를 짓는 힘든 일을 지금껏 한 번이라도 해 본 적 있소? 이제 드디어 부인이 궤짝 속에 금으로 빚은 황금천(金丸釧)과 은으로 빚은 백은천(白銀釧)이 하나 둘 쌓여가기 시작했다고, 이제 그 맛을 알아 더욱 재물이 탐이 나고 높은 지체가 부러운 것인오?


    어찌 부인은 그 동안 밤을 새워 눈이 빠지도록 검은 하늘을 보며 일하여 그대를 먹여 살린 내 공을 잊고, 이제와서 다른 집안의 남자가 더 낫다고 배반하는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오?"


    그러자 부인이 덜컥 겁을 먹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어찌 공께서 힘겹게 일한 것을 모르겠소. 다만 공께서 별을 보는 일을 하는 자로, 요즈음 일찍 돌아와 집에서 잠을 자며 쉬기만 하는 날이 많으니, 공을 걱정하여 하는 말일 뿐이오.


    공이 말한대로, 나는 공이 벌어다 준 밥을 먹고 공이 지어준 집에서 사는 사람으로 공에게 몸과 목숨이 매여 있는 사람이오. 내 어찌 공에게 작은 고민이 있다한들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혹여 몸이 약하여 그렇다 하시면, 내가 산속에서 사는 나의 어미 아비에게 말하여 인삼(人蔘)이라도 그대를 위해 구해 보려하오. 또한 만약 옷이 낡아 업신여기는 자들이 있어 근심이라 하시면, 내가 밤을 새워 새로 좋은 옷을 지어 드리겠소."


    소대일자가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다시 소리쳤다.


    "부인이 일자의 일을 어찌 아는가? 부인이 사방의 별들을 따지고, 해와 달의 움직임을 배워, 땅이 날뛰고 하늘이 우는 일을 밝히는 것에 대하여 익히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찌 내가 다만 밤 늦게 일하지 않고 일찍 돌아온다 하여 일이 뒤쳐진다 생각하는가?


    아무리 일자의 일이라 한들, 사람이 하는 일인즉, 맨눈으로 별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얼마든지 있음을 부인은 정녕 모르는가?"


    소대일자가 씩씩거리자, 부인이 다가와 소대일자를 뒤에서 안았다. 부인의 몸이 마르고 허약했으므로 안는 힘도 약했다. 소대일자가 움직이자, 금새 안은 팔이 풀어졌다. 부인이 그대로 몸을 붙인채로 말하였다.


    "내가 잘못하였소. 지금 지진이 일어나, 공께서 크게 힘들고 바쁜 것을 나도 아는데, 공께서 문을 나서기도 전에 그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니, 공께서 어떻게 제대로 일을 하겠소? 다시 돌이켜 보니 나의 큰 잘못이오. 내가 잠이 덜깨어 헛소리를 하였나 보오."


    부인이 간곡하게 말하였으나, 소대일자는 부인을 물리쳤다. 소대일자가 나가면서 말하였다.


    "다시 한 번 더 내가 바깥에서 일을 잘하는 지 마는 지 탓하는 말을 그대가 한다면, 나는 곧 부인과 혼인한 것을 무르겠소. 그러면 다시 산속으로 돌아가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살면 되지 않겠소?"


    그러자 부인이 눈물을 훌쩍이며, 소대일자의 등뒤에다 대고 말하기를,


    "부디 내가 지금 허망한 말을 하여 마음에 붙은 불일랑, 집 마당 안에서 다 꺼트리시오. 그리하여 공께서는 그저 차갑고 고요한 가슴으로 나아가 부디 일을 그르치지 마소. 크게는 공께서는 지진으로 놀란 이 나라 사람들의 보배요, 작게는 이 집안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주는 집안의 보배요."


    하였다.


    소대일자가 부인을 뿌리치고 나서니, 부인의 옷이 너무 낡아 그 끈이 떨어지며 옷에 구멍이 났다.


    소대일자가 좌영성실에 도착해보니, 건물과 담장들은 모두 무사해 보였으나, 장대와 지푸라기로 만들어 놓은 마굿간만은 무너져 있었다. 여러 일자들은 모두 분주히 돌아 다녔는데, 특히 건물 뒤편의 연못 주위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일자들은 작은 나룻배와 뗏목을 타고  연못 가운데에 있는 돌로 쌓아 놓은 네모 모양의 섬으로 계속 왔다갔다 하였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한 일자대형(日者大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일자대형은 연못쪽을 보고 살피고 있었는데, 소대일자가 궁금해 하여 일자대형에게 물었다.


    "지진이 일어났으나 다행히 좌영성실은 크게 상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자대형께서는 무엇이 이렇게 걱정스러운 얼굴이십니까?"
    
    일자대형이 소대일자를 한참 보더니, 한심해 하여 혀를 찼다.


    "그대는 일자의 일을 하루 이틀 하는 자가 아닌 데, 택상석(澤上石)이라 하는 저 연못 가운데의 섬에서 밤에 앉아, 연못에 비친 별들을 보며 밤하늘을 따지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 말을 듣고 소대일자가 어리둥절해 하여 물었다.


    "제가 어찌 택상석에서 별을 보고 제사를 올리고 신성한 기운을 다스리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오나, 제가 보기에는 연못 가운데의 택상석은 무너지지도 않았고, 택상석이 연못 가운데에 가라앉지도 않았습니다. 택상석에 무슨 탈이 있습니까?"


    일자대형이 고개를 좌우로 절래절래 흔들었다.


    "비록 지금 멀리서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지진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나타낸 표시가 조금씩 흔들렸다. 무릇 지진이 한 번 일어나면 금새 다시 지진이 따라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당장 오늘 밤 별을 세밀히 살펴보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위험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다들 달라 붙어 흔들린 택상석의 동서남북 표시를 바로 맞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일자들이 일을 마치고, 모두 안으로 모여 들어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모여 앉자마자, 가장 먼저 한 나이가 어려 보이는 일자가 말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슬프면서도 굳게 다짐한 듯한 맹세가 있었다.


    "이번의 지진에서 별을 본 사람은 저 입니다. 달탄 땅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저의 큰 잘못입니다.


    요즈음 국상 창조리는 '공구수성'이라 하여 세상의 일마다 잘못된 것과 틀린 것이 있으면, 빈틈 없이 급히 고쳐야 한다 합니다. 그런데, 저의 잘못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 사람이 죽는데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하였으니, 국상의 무리가 우리를 모조리 내 쫓아 버릴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루 아침에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며, 또 우리 처자식은 무엇으로 먹여 살리겠습니까?


    저는 좌영성실의 큰 원수입니다. 제가 이번에 별을 잘못 본 죄를 빌고자, 저와 제 처자식들을 모두 노비로 팔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팔아 만든 재물을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하오니, 여러 공들께서는 국상의 무리들에게 내 쫓기거든 그 재물로 논밭을 마련 하시어, 서툰 쟁기질과 호미질로나마 농사라도 지어 생계를 이으 십시오."


    그러자 일자대형이 말했다.


    "그대는 그와 같은 말을 하지 말라. 그대는 지은 죄가 없다.


    그대는 이번에 별을 제대로 보았다. 누가 보아도 이번에는 동방의 영성(靈星)들과 서방의 영성(靈星)들을 따져 보았을 때, 서쪽의 기운이 더 강하였다. 당연히, 그대가 따진대로 땅의 동쪽이 올라와 있다하는 것이 맞고, 그러므로, 지진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달탄 땅의 반대편이 흔들린다고 보는 것이 맞다. 누가 달탄 땅에서 지진이 일어날 줄을 알았겠는가?"


    그러자 죄를 빌었던 일자가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오늘 옛날의 기록들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옛 기록에는 지진을 따질 때는 땅에서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 밖에서 천제(天帝)가 내려다 보며 땅을 보고 있는 것으로 따져서, 방향을 반대로 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오니 제가 이번에 별을 본 것은 반대로 보아야 하는 것이며, 달탄 땅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저의 죄가 분명하니, 제가 어찌 잘못을 빌고 갚을 길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한 일자가 말하였다.


    "그 말이 참으로 이치가 옳습니다.


    예로부터 땅의 지진을 일으키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 하였으니, 하늘 밖에서 보는 방향에서 별을 따져야만 지진을 볼 때 별을 따지는 것이 맞아들 것입니다. 마치 거울을 볼 때에나 마주 보고 앉은 사람끼리 보았을 때에, 내 왼손이 맞은편 사람의 오른손이 듯이, 지진을 따질 때에는 동쪽의 영성을 보고 서쪽 처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일자대형이 꾸짖었다.


    "너는 어찌 네가 자리를 잃고 가난해질까 두려워 내 벗에게 죄를 주려고 하느냐? 8년전까지만 해도 바로 오늘 말한 바와 같이 지진을 따질 때에는 방향을 반대로 따져서 영성을 보았다. 그러나, 그 해에도 지진이 일어났으나, 역시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맞히지 못했다. 그래서 그해에 틀린 것을 깨달아 고친 것이 바로 방향을 반대로 보지 않고 바로 보고자 한 것이다.


    이제 또 지진을 맞히지 못했다 하여 또다시 별을 보는 방향을 바꾸면, 이는 그저 8년전의 틀린 방법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것 뿐이다. 그것이 어찌 옳은 일이겠는가?


    비록 국상이 말하는 '공구수성'이라 하는 것이 매섭다하나, 어찌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이는 일에 큰 죄를 묻겠는가. 솔직히 말하고 잘못을 빌면 좌영성실이 모두 함께 다같이 망하는 일까지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처음 죄를 빌었던 일자가 다시 말했다.


    "국상의 무리가 우리를 따지러 나왔을 때에 지금까지 지진을 다스리는 방법이 맞지 않았다고 빌며 아뢰면 한번은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 지진이 일어나면 또 지진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빈다하더라도, 다음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제대로 다스릴 방도가 없으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한 노쇠하여 기력이 없고 비실비실한 일자소형이 문득 말했다.


    "동서남북의 영성을 보고 지진을 따지자니 이렇듯 헷갈리는 것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중앙의 방향을 다스리는 황룡(黃龍)을 따져 보면 어떠할 것인가? 중앙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는지 본다면, 지진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대략은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오늘 밤부터 황룡이 머무는 별들을 유심히 따져 보면 어떠하겠는가?"


    노쇠한 일자소형이 말하자, 한 태대일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진이란 땅이 흔들리는 일이니, 차라리 땅을 다스린다는 후토(后土)의 지신(地神)을 살펴보면 어떻겠습니까? 지진과 후토의 지신이 관계가 없을 수 없으니, 후토의 지신이 산다는 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시 지진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알 수 있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말들을 들으며, 일자대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자대형이 살펴 보니, 아침에 왜 연못을 오가며 택상석을 살펴보는 지도 모르던 소대일자가 보였다. 소대일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멍하니 듣고 있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일자대형이 소대일자에게 소리쳤다.


    "그대는 지금 우리가 국상의 공구수성으로 모두 망하여 생겼는데, 어찌 그와 같이 아무 힘이 되지 못하고 있는가? 또한, 힘이 되지 못하거든 근심스러운 얼굴이라도 내비쳐서 마음이라도 거들지 못하는가?"


    소대일자가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아 무릎을 꿇었다. 일자대형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저 편으로 가서, 천상지도(天上地圖)에 북극성(北極星) 그리는 일을 하라."


    소대일자는 꾸물거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소대일자는 물러나며 스스로 탄식하기를,


    "북극성을 그려 넣는 것은 이제 갓 일자가 된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일 아닌가?"


    하였다.


    소대일자는 붓과 칼을 들고, 쌓여 있는 나무판이나 돌판에 원모양과 선모양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세 개의 원을 일정한 위치에 그려 넣고, 또 세 개의 원을 세 가닥 선으로 이었다. 그것이 곧 사람들의 장식품이나 무덤에 들어가는 별그림에 쓰이는 북극성 표시였다. 이는 간단하고 또한 지루한 일이었다. 소대일자가 혼잣말하기를,


    "내 어찌 자리가 높아지고 많은 재물을 버는 일은 못할 망정, 처음 일자가 되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을 때에나 하는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게 되었는가? 또한 비록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하나 그래도 몇 년간 별을 보아 소대일자라고는 하는데, 어찌 이런 따위의 일을 맡았는가?


    이것이 어찌 별을 보며 하늘의 이치를 따진다는 일자의 일인가? 호미질을 하는 농부도 잡초와 곡식을 골라내는 슬기로움은 있어야 하며, 산속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는 숙신족의 사냥꾼도 제 눈으로 짐승을 고르고 제 머리로 화살을 맞출 급소를 찾는다. 하다 못해 수레를 끄는 말도 어디로 세상 구경은 할 수 있으며, 쟁기를 끄는 소도 하늘과 들은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나무판과 돌판 위에 하루 종일 동그라미 세 개, 줄 세 개만 손이 부르트도록 만지고 있으니, 이는 갑판 아래에 갇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노만 젓는 노꾼의 일이나 다름 없도다."


    하였다.


    한편, 일자대형은 계속해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음 지진을 방비할 계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황룡이 머무는 별이나, 후토의 지신이 머무는 별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고 따지기 어려울 때도 많다. 차라리 그렇다면, 지진은 어차피 천제의 뜻인즉, 하늘의 모든 일을 따진다는 황천(皇天)의 천왕(天王)을 잘 알아보면 어떻겠는가? 황천의 천왕이 머무는 별들과 그 별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다섯 행성만 잘 살펴본다면, 지진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북극성을 그리는 소대일자를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골똘히 고민하게 되었다. 좌중의 사람들은 저마다 별을 따질 때에 쓰는 자를 꺼내들어 이리 저리 살펴보고 궁리해 보았다.


    그러고 있을 때,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살펴보니, 군사들이 가득 나타나 꽹가리를 가득 가져와서 쌓아 놓는 것이었다. 군사들을 이끌고 온 자는 매우 젊고 훤칠한 중대일자(中大日者)였다. 중대일자는 군사들이 꽹가리를 다 쌓아두자 공손히 인사를 하고 돌려 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일자대형이 의아해 하여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지금껏 어디에 갔다 왔으며, 이 꽹가리는 또한 다 무엇인가?"


    그러자 중대일자가 말하였다.


    "하늘을 보고 날씨를 알거나 계절과 날짜를 아는 것 정도는 열심히 익히고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진을 따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우기 지진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어떤 말이 맞고 어떤 말이 틀리는 지 살펴보고 고쳐나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일자대형이 말했다.


    "그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대일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차라리, 지진에 대해 방비하려거든 별을 보고 미리 따질 것이 아니라, 지진이 일어나면 무너질 흙더미나 돌더미가 있는 곳을 면밀히 살펴서 그 근방에 사는 사람들을 옮겨가서 살게 하고, 또한 바닷물이 넘쳐 덥치면 위험한 곳의 사람들을 따져서 그런 곳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깊은 밤 곤히 자고 있는 와중에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면, 그 때문에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모여서 사는 사람들 중에 돌아가며 밤을 새는 사람이 있도록 하여, 만약 지진이 일어나면 그 사람이 꽹가리를 요란하게 쳐서 사람들을 깨워서 집밖으로 뛰어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만약 지진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사람의 목숨은 크게 구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성벽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고 군사들이 쓰는 꽹가리를 빌려 왔으니, 이것을 지진이 난 곳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혹여 뒤이어 지진이 또 일어날 때에 요긴할 것입니다."


    중대일자가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또한 중대일자가 별을 보는 일에 대해 아는 것에 틀림이 없음을 모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중대일자의 말은 매우 믿음직스러웠다.


    "과연, 그대는 젊은 나이에 중대일자가 될만 하도다."


    일자대형이 기쁘게 말하였다. 일자대형은 땅바닥에 앉아 돌멩이를 굴리며 놀고 있는 심부름 하는 옥저(沃沮)아이에게 말하였다.


    "옥저아이야, 너는 이 꽹가리를 달탄에 가져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자 옥저아이가 대답했다.


    "마굿간이 무너져 소가 죽어서 꽹가리를 싣고 갈 곳이 없습니다. 작은 아이인 제가 어찌 이 꽹가리들을 혼자 다 들고 가겠습니까?"


    일자대형이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이제 곧 국상이 사자(使者)들을 보낼 것이고, 사자들이 와서 우리를 보는 것이 끝날 때 지음이면, 국상이 차주부(次主簿)를 보내어 지진에 대해 어찌 처분할 지 끝을 내어 판결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 중에 누가 한가롭게 소 대신 꽹가리나 나르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윽고 잠시 후, 일자대형이 먼 곳을 향해 말했다.


    "소대일자는 들어라. 그대는 북극성 그리는 일을 멈추고, 심부름하는 옥저아이와 함께 꽹가리를 들고가서 달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라."


    소대일자는 그 말을 듣고 홀로 말하기로,


    "이제는 심부름 하는 천한 옥저아이 따위와 같이 소가 되어 일하란 말인가?"


    하며, 성을 내고 북극성 그림을 새기던 칼을 내던졌다.


    그러나, 이내 소대일자는 그나마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걷는 것이 지루하지라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므로, 소대일자는 옥저아이와 함께 꽹가리를 들고 길을 나섰다.


    옥저아이가 소대일자와 함께 걷다보니 어느새 문득 소대일자는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옥저아이가 의아해 하여 물었다.


    "지금 모든 다른 일자들께서는 지진을 맞히지 못했으므로 무서운 국상 나리에게 쫓겨날까 두려워 떨고 있는 데, 소대일자께서는 어찌 그리 걱정이 없으십니까?"


    그러자, 소대일자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나의 아내는 산골에서 풀뿌리를 캐어 먹고 살던 극히 가난한 사람이라, 작은 재물도 항상 아끼고 모으는 재주가 깊었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자리는 높지 않으나, 놀랍게도 어느새 모은 재물이 조금은 있게 되었다. 그런즉 지금 내가 일자 노릇을 그만 둔다고 하여도, 내가 먹고 살 길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이 잘 되어 국상의 엄한 분부가 미치지 않는다면, 그대로 그만이거니와, 혹 일이 잘못되어 우리가 모두 쫓겨나고 좌영성실이 문을 닫고 헐린다하여도, 이참에 이토록 날마다 나를 탓하는 무리들이 하루 아침에 먹고 살 길을 잃고 구걸하는 꼴을 보게 된다면, 그 또한 보기 좋은 구경거리일 것이니, 아쉬울 것이 있겠는가? 나는 걱정이 없도다."


 


    2.
    소대일자와 옥저아이가 꽹가리를 짊어지고 달탄 땅에 도착해 보니,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방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달탄의 집들은 산의 계곡 사이에 비좁게 판자와 돌과 흙을 어지럽게 다닥다닥 붙여 만들어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계곡 위에서 멀리 내려다보니 어지럽게 붙어 있는 수많은 작은 집들의 모습과 그 집들이 여기저기 무너진 사이로 다친 사람들이 아파서 우는 소리를 내는 모습이 어지러울 정도 였다.


    "마치 조그마한 달콤한 산열매의 쪼개진 틈바구니에 수천마리 개미가 까맣게 달라붙어 아웅다웅하는 꼴 같구나."


    소대일자가 말하였다. 옥저아이가 소대일자와 함께 걸어가며 물었다.


    "일자님께 여쭙습니다. 비록 이번에 지진이 있었다하나, 일자님들의 집이 있는 곳에는 담벽에 흠집이 난 곳 조차 하나 없었는데, 어찌 이들은 이리도 다친 사람들이 많습니까?"


    소대일자가 답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영성실은 튼튼하였으나, 마굿간의 소는 깔려 죽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들은 가난하여 집을 풀로 이어 엉성하게 지었으므로, 지진이 일어나 땅이 조금만 흔들려도 집이 무너진 것이다. 더우기 이번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천둥번개가 같이 떨어졌으므로, 이곳저곳에 번개불이 붙는 곳이 많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바닥에 온돌을 깔아 놓는 것도 잘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집이 무너지면 바로 불이나서 타죽는 일이 많은 것이다."


    소대일자는 옥저아이와 함께 무너진 집들과 다친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꽹가리를 나누어 주었다.


    "이 꽹가리를 들고 있다가, 혹시 지진이 일어나면 이웃들이 자다가 깔려 죽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 요란하게 치는 것입니다."


    소대일자와 옥저아이가 직접 꽹가리를 치면서 요란하게 설명했으나, 다친 사람들이 아파하는 소리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집들이 넘어가는 소리가 자주 들렸으므로,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집 지붕이 무너진 짚푸라기를 밟고 길을 돌아나간 순간, 갑자기 한 여자가 튀어 나왔다. 그 여자는 얼굴에 군데군데 상처가 있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하여 옷자락이 이리저리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옷은 금실과 은실로 빛나게 수가 놓인 매우 화려한 옷이었다. 여자가 갑자기 소대일자를 향해 말하였다.


    "저는 본시 비류(沸流)부(部)의 대인(大人)이라 불리우는 집안의 딸로, 넓은 마당과 높은 집에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정에서 궁전과 관청을 짓는다하면서, 큰 집의 기와 마다 세금을 내라고 하므로, 저희는 급하게 집을 옮기기도 전에 세금낼 재물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세금낼 재물이 없어서 저는 천손(天孫)이라 하는 자에게 재물을 급하게 빌렸는 데 그랬더니, 그 급하게 빌린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그만 재산을 모두 날려 없애고, 이곳 달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는 집은 예전에 사는 곳에서 기르던 개의 집 보다도 못했는데, 이제 그나마 그 집이 갑자기 지진으로 무너졌습니다. 마침내 저는 제 가족 조차 모두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죽어 무덤에 들어갈 때 입고 죽으려고 남겨 둔 이 옷 한 벌 뿐입니다. 지금 내가 그대의 의관을 보니,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으니, 꼭 조정의 일을 맡아 하는 사람 같습니다. 내가 지금 조정의 일을 하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 꼴이 된 내가, 옛날 내 강아지와 다른 줄 누가 분별 하겠습니까?"


    그러더니 여자는 품속에 넣고 있던 손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여자는 갑자기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칼을 휘둘러 소대일자를 찌르려 하였다. 소대일자는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러자, 옥저아이가 소대일자를 돌아보고 다급히 말하였다.


    "저 여자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저의 말씨를 따라하여 같이 하십시오."


    그리고, 옥저아이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끌며 엎드렸다. 그리고 여자에게 옥저의 말씨를 심하게 섞어서 말하기로,


    "저희는 옥저에서 온 천한 심부름꾼들입니다. 옥저의 천한 옷이 서울의 귀한 옷과 비슷해 보이는 까닭에 잘못 보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소대일자도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옥저아이를 따라하였다. 여자가 그 말을 듣자, 칼을 들고 춤을 추듯이 하며 외쳤다.


    "내가 예전에 조정에서 옥저 사람들을 핍박했다하는 일을 들었을 때에, 그 때에는 왜 옥저 사람들이 가련한 줄을 몰랐던가!"


    그 틈에, 옥저아이는 소대일자에게 손짓하여, 두 사람은 그 곳을 피해 도망쳤다.


    두 사람은 칼을 든 여자로부터 멀어져서 목숨을 구하고자 사람들이 많은 넓은 공터로 나갔다. 공터에 나와 두 사람은 숨이 차서 주저 앉았다. 주저 앉아 보니, 그곳에는 집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잠시 후, 숨을 돌린 옥저아이가 물었다.


    "이것은 무슨 까닭으로 모인 사람들입니까?"


    그러자 소대일자가 답했다.


    "아끼고 모으는 것을 잘하는 나의 아내가 알려준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까닭 없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 있거든, 바로 그 곳은 공으로 나눠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답을 마친 소대일자는 일어서서 사람들이 줄을 선 끝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곳에는 한 귀한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 귀한 여자는 줄을 선 다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추울 때에 덮고 잘 거적데기 같은 것을 나눠 주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말했다.


    "보아라, 사람들에게 공으로 먹을 것과 덮을 것을 나눠주고 있지 않으냐?"


    한편, 그 여자의 곁에는 국상의 깃발을 든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군사들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받아 갈 때마다, 다음과 같이 크게 외치게 하였다.


    "국상 겸 대주부께 감사합니다. 이것이 공구수성하는 뜻이오니, 반드시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기쁜 마음으로 재난을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그런즉, 때로는 자식이 죽고, 부모가 죽은 자가 음식을 얻으러 왔다가 그러한 말을 외쳐야만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따라 외치는 자도 있었다.


    옥저아이가 물었다.


    "저 것은 국상의 깃발이니, 저 자는 국상의 부인입니까?"


    소대일자가 답하였다.


    "국상은 부인이 없고, 저 여자는 국상 보다 훨씬 젊으니 국상과 혼인한 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자 옥저아이가 말하였다.


    "시정(市井)에서 심부름하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때에, 국상이 혼인한 자는 아니나, 매일밤 찾아가 어울리는 여자가 몇 있다고 들었더니, 바로 저 여자가 그 중 하나인가 봅니다. 아이들끼리 이야기하기로, 세상을 벌벌 떨게 하는 권세 높은 국상이라하기에 그 여자는 하늘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여자처럼 아름다울 줄 알았더니, 그렇지는 않은 듯 합니다.


    저 정도라면, 옥저에 있는 제가 살 동네의 피리 불던 한 낭자 보다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옥저아이는 옥저에 있던 피리 불던 낭자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였으나, 소대일자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그저 그 여자를 보았다.


    소대일자가 보니, 여자는 다친 사람들에게도 물건을 나눠주면서 측은한 표정을 짓는데, 그 표정이 어린 아이가 제 부모가 떠날 때 슬퍼하는 것과 같이 순박한 데가 있어서, 사랑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키가 크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턱을 끌어 당기고 있어서, 한번에 보기에도 당당하고, 까닭 없이 위세가 있어 보였다. 한편으로 여자는 살이 닿는 부분의 옷이 팽팽하게 당기어, 움직일 때마다 어째 옷자락이 터질 듯 하였다.


    소대일자는 한참 동안이나 넋을 놓고 여자의 몸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국상이라는 자는 왜 저런 아이와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인가? 저런 아이가 날마다 집에서 기다려 주며, 밤마다 하루가 힘겨운 것을 위로하며 안아 준다면, 그때의 감촉이 어떠할 것인가?"


    소대일자가 중얼거렸다.


    그때, 한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며 사람 사이를 뛰어 다녔다. 사나이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수염을 길게 기르고, 온 몸에 미역과 다시마 따위를 휘감고 있어서, 옳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나이는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사람 사이를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가한신(可汗神)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신 비기(秘記)를 써 놓은 책이 있으니 이것을 읽고 따르십시오! 가한신께서 비기를 주셨습니다!"


    사나이가 날뛰며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있는 여자 가까이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자, 군사들은 말이 채찍질에 놀라 튀어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순식간에 사나이를 붙잡아 끌고 가버렸다.


    주변이 소란하거나 말거나 소대일자는 계속해서 여자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옥저아이가 멀리 눈치를 보며 말하였다.


    "그토록 오래 귀한 분을 바라보시니, 병사들이 공을 의심스럽게 쳐다 봅니다. 공께서는 그만 자리를 피하십시오."


    소대일자는 그 말을 듣고 곧 정신이 들어,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꽹가리를 모두 나눠 주었다. 옥저아이는 발걸음을 옮겨 돌아가려는 데, 소대일자는 자꾸 걸음을 늦추었다. 소대일자는 자꾸 하늘의 해를 보았다. 아직 해는 하늘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모양으로 밤이 깊으려면 멀었다. 소대일자는 조용히 탄식하였다.


    "지금 집에 돌아가면, 또 아내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느냐고 의심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지진으로 다른 일자들은 모두가 바빠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있는데, 홀로 심부름하는 옥저아이와 꽹가리나 나눠주고 왔다고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


    소대일자가 한참 서성거리며 고민하다가, 옥저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시정의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느냐? 너는 필시 밤이 깊도록 지낼 구경거리나 일거리들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이 없느냐?"


    옥저아이가 답하였다.


    "신라국(國)에서 온 신이한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입호무(入壺舞)꾼이라고 합니다. 입호무꾼은 항아리 두 개를 가져다 놓고 멀리 띄워 두고서는, 한 항아리로 들어가서 채찍을 휘두르는 사이에 갑자기 다른 항아리로 나오는 술수를 보여줍니다.


    채찍을 휘둘러 사람을 나타나게 하고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재주가 매우 괴이한 데, 몸 반쪽은 한 항아리에 담아 두고, 몸 반쪽은 다른 항아리에 담아둔 뒤에 이리저리 옮겨다니게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구경시켜주게 하기도 하는 등, 왠갖 솜씨가 끝이 없다 합니다. 이런 것을 구경하면 밤이 새도록 잠이 오는 줄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소대일자가 웃으며 답하였다.


    "너는 참 알 수 없도다. 항아리에 들어가서 다른 항아리로 나오는 재주를 나에게 가르쳐 준다면 모를까, 어찌 구경 한 번 하는 데에 아까운 재물을 쓰느냐? 그런 신기한 것을 한 번 보고나면 그 후에 대체 너에게 좋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힘들게 모아 놓은 재물을 써 없애느냐?"


    옥저아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소대일자가 이어서 말하였다.


    "옳다. 내 오늘은 박견(狛犬) 가면놀이를 보리라. 박견 가면놀이는 개처럼 생긴 괴물 가면을 쓴 재주꾼이 웃긴소리를 잔뜩하는 것인데, 잘하는 재주꾼이 웃기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계속 웃을 수 있으니 이만한 것이 없다. 이것을 못 본 지 벌써 몇 해 째인가?


    또한, 똑똑한 놈, 벼슬 높은 놈들 욕을 실컷 하는 데, 그 통쾌한 맛이 마치 내가 평소에 원한을 품었던 자들에게 원한을 대신 갚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소대일자가 박견 가면놀이를 보러 간다 하자, 옥저아이가 홀로 돌아가면서 말하였다.


    "눈이 펑펑 쏟아질 때에 옷에 구멍이 뚫어져도 덧댈 천조각을 아껴, 구멍에 맞는 헝겊 조각을 주울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어찌 오늘은 하룻밤 웃고 노는 일에 재물을 써 없애려 하는가?"


    소대일자가 시정에 내려가보니, 거리마다 사람들이 왁자하였으며, 술취한 자들과 길바닥에서 날뛰며 춤추는 자들이 몹시 많았다. 소대일자가 말하기를,


    "내 오랫만에 저녁 무렵에 시정에 나왔기로, 이토록 야밤에 노니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하면서, 주변에 물어, 박견 가면놀이 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마침내 가면놀이 하는 곳에 가보니, 재주꾼들이 짐을 싸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의아해 하여 물었다.


    "박견 가면놀이를 하는 곳이 이곳이 아니오?"


    나이든 재주꾼이 답하였다.


    "하는 곳은 맞으나, 하지는 않고, 곧 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오."


    그러자, 소대일자가 다시 물었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하여 짐을 싸서 가려 하시오?"


    어린 재주꾼이 답하였다.


    "국상 쪽으로부터 명령이 내려 왔으니, 박견 가면놀이는 너무 비루하고 천박하여 요즘과 같이 힘든 일이 많은 지금은 그 판을 벌여서는 안된다고 하오. 또한 웃는 대목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작년의 흉작과 금년의 지진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내년에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오.


    본래 박견 가면놀이는 벼슬아치를 욕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예로부터 높은 벼슬아치들이 금지시키려하는 때가 많았소. 때문에, 국상이 금지시키려고 하면 대주부(大主簿)에게 아뢰어 계속하게 했고, 대주부가 금지시키려고 하면 국상쪽으로 아뢰어 계속하게 했소.


    그런데, 지금은 국상 한 사람이 대주부를 겸하고 있으니, 그만 두는 수 밖에 없지 않겠소. 말이 통하는 부여로 건너가서 한 번 일을 해 보려 하오."


    소대일자가 안타까워 하였다.


    "국상의 무리가 매섭다하나, 박견 가면놀이의 통쾌한 뜻을 좋아하는 자들이 높은 벼슬아치들 중에도 많은 데, 천박하다는 말을 한번 듣고 그만 두는 것은 옳지 않소."


    어린 재주꾼이 하늘을 보고 소리쳤다.


    "어찌 비루하고 많이 웃기는 것이 죄가 되겠소? 다만 욕을 듣는 것을 권세가 많은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소?


    내가 긴히 가면을 사가는 높은 군후(君侯)의 부인을 붙잡고 애걸하였더니, 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소. 요즘의 시기에는 세상에 슬픈 일이 많으니, 조정에서 명령을 주기로, 박견 가면놀이를 하기는 하되, 다만 세 번만 웃기면 죄가 없는 것으로 하고, 만약 네 번보다 많이 웃게 되면 벌을 주겠다 하였소. 이런 말을 듣고 어찌 재주를 부리겠소?"


    그리고 어린 재주꾼을 한참 말없이 짐을 쌌다. 그러다 말고, 문득 어린 재주꾼이 가면을 쓰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갑자기 크게 세 번 웃었다. 그러자, 문득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실없이 웃었다.


    그러자 어린 재주꾼이 말하기를,


    "나는 죄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하니, 나이든 재주꾼이 짐을 마저 싸서, 어린 재주꾼을 잡아 이끌고 떠나면서,


    "이것이 웃자고 하는 것인가, 울자고 하는 것인가?"


    하였다.


    마침내 소대일자는 박견 가면놀이를 못보게 되었다. 소대일자는 할 일이 없어져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소대일자는 옥저아이가 한 말이 떠올라, 신라국에서 온 입호무꾼이라도 보러 가려 하였다. 소대일자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입호무꾼이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그런데 입호무꾼이 있어야할 곳에는 이번에는 입호문꾼은 없고, 한 나이든 여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물었다.


    "신라국에서 온 신이한 술수를 부리는 자는 어디에 있고, 부인이 구걸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그 나이든 여자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원래 노래를 하는 여자는 아니었으므로, 곡조가 맞지 않고, 목소리는 매우 탁하여, 듣기가 괴로웠다. 노래 가사는 이러하였다.


    "구슬픈 노래가 아름답다 하나, 나의 사연보다 슬픈 사연이 또 있겠소.
    슬픈 사연을 듣고 가슴이 아프시오면, 부디 무릎끓고 비옵나니,
    한 푼만 줍쇼.
    한 푼만 줍쇼.


    신이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자의 몸으로 신라국까지 가서 보니,
    과연 이와 같이 신기한 사람은 또 없는지라, 금은을 있는 양 주고 모셔 왔는데,


    모셔온 첫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 사람이 어딜 갔는지 없어진 것 아니겠소?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국상의 관리들이 붙잡아 가서는,
    '이 자는 얼굴이 국상 나리와 닮은 곳이 많으니, 불경하여,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재주를 부릴 수 없소.'
    하는 것 아니겠소?
    그리하여, 나는 울며불며 빌기도 하고, 또한 성내고 성상께 목을 걸고 아뢰겠다 따지기도 하면서, '이 사람도 나도 시정에 길가는 사람들은 국상 나리의 얼굴도 모르거니와, 얼굴이 닮은 것이 무슨 죄요?' 하여, 간신히 재주꾼을 모시고 나왔소.


    돌아와 숨을 돌리고 항아리를 벌여 두고, 해가 하늘 가운데 온 것을 보니
    또 이 사람이 어딜 갔는지 없어진 것 아니겠소?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대주부의 관리들이 붙잡아 가서는,
    '이 자는 몸집이 국상 나리와 비슷해 보이니, 불경하여,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재주를 부릴 수 없소.'
    하는 것 아니겠소?
    그리하여, 나는 울며불며 빌기도 하고, 또한 성내고 성상께 목을 걸고 아뢰겠다 따지기도 하면서, '이 사람도 나도 시정에 길가는 사람들은 국상 나리를 만나 뵌 적도 없거니와, 몸집이 비슷한 것이 무슨 죄요?' 하여, 간신히 재주꾼을 모시고 나왔소.


    돌아와 보니 벌써 해가 질 때가 된 지라, 숨이 멎을 듯 하여, 급히 다시 판을 차려 두니,
    죽겠구나, 아, 또, 이 사람이 어딜 갔는지 없어진 것 아니겠소?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병졸과 군사들이 몰려와 붙잡아 갔다하기에,
    울고 불며 따지려 하니,


    장군님 말씀하시기를,
    '이 자는 우리가 이미 날쌘 말등에 태워 나라 밖으로 보냈소'
    '이유를 묻는 것은 군율의 제도에 없소.'
    하였소.


    아이고, 이 사람아.
    이 항아리로 들어가서 사라지고는 저 항아리에서 나오랬더니,
    관청으로 들어가서 사라지더니 국경 밖에서 나오는구나.


    신이한 술수로다.
    재주꾼은 사라지고,
    빚더미만 남았구나.


    본 적 없는 사람과 얼굴이 닮은 재주꾼을 데려 오는 바람에, 바닥 끝 밑 둥치까지 망하여
    오늘 저녁 바람 피할 곳, 내일 하루 요기 거리도 없는, 가련한 이 내 몸을 불쌍히 여기시면,
    한 푼만 줍쇼.
    한 푼만 줍쇼."


    여자가 노래를 부르자, 그 가사를 듣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곡식 몇 줌이며, 조금씩 여자가 얻어 가질 것을 던져 주었다. 소대일자는 슬며시 자리르 피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중얼거리기로,


    "저 부인의 사정은 딱하나, 나 또한 오늘 밤 긴긴 동안을 적은 재물로 보내야 하기에, 재물을 아낄 수 밖에 없도다."


    하였다.


    소대일자는 이렇게 되자 갈 곳이 없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나와서 손짓을 하며, 등불을 밝힌 술집들은 많이 보였다. 소대일자는 어쩔 수 없이 술집에라도 가려다가,


    "집에서 아내가 술을 빚어 주면 맛은 열 배인데, 값은 백분의 일이라."


    하고는 멈추었다.


    소대일자는 시정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저는 진귀한 것을 구경하러 나온 것이니, 집안에서도 즐길 수 있는 술이나 음식보다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가려 합니다. 볼 것이 있습니까."


    소대일자는 결국, 호선무(胡旋舞)라는 것을 한다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호선무를 하는 곳에 들어가 보니, 저마다 올라 앉는 나무로 된 자리가 있고 앞에 길게 늘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춤을 추는 자리가 있었다. 북소리와 악기 소리가 점차 들려 오는 데, 소리가 크고 곡조는 빠르기에, 소대일자는 가슴이 쿵쿵 뛰는 듯 하였다. 마침내, 무희들이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음악에 맞추어 몸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돌면서 춤을 추던 무희들은 점차 움직여 자기 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하였다. 소대일자의 가까이에도 한 무희가 자리를 잡았다. 소대일자는 깜짝 놀랐다. 까닭인즉, 소대일자의 앞에 자리 잡은 무희의 모습이 낮에 본 음식을 나누어 주던 귀한 여자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 이러한가?"


    소대일자가 놀라서 다시 가만히 살펴 보니, 사실 무희와 낮에 본 여자와는 많이 달랐다. 다만, 이 여자도 키가 크고 몸집이 큰 편이며, 또한 살결이 옷에 닿는 모양이 비슷할 뿐이었다. 소대일자가 나직하게 탄식하였다.


    "내가 낮에 그 여인을 짐짓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있었으니, 다른 여인을 보아도 계속 떠오름이 이와 같구나."


    음악이 점차 빨라지자, 무희의 동작도 같이 점점 빨라졌다. 곧 디디고 선 공모양 바닥이 돌아가기 시작하니, 무희는 그것과 함께 돌면서 회오리처럼 빨리 움직이고, 깜짝깜짝 갑자기 놀라운 동작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소대일자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점차 무희의 춤에 깊게 빠지기 시작하였다. 소대일자는 빠른 동작에 따라 흔들리는 무희의 몸과 옷자락이 움직이는 것을 면밀히 보았다. 계속 보고 있으니, 그 몸이 음악에 맞추어 부드럽게 꺾이고 깊게 돌며 움직이는 박자에, 어느새 보고 있는 소대일자 또한 같이 올라 타게 되었다.


    이윽고, 음악이 끝이나자 무희들은 자리에서 내려 왔다. 소대일자는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는데, 그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춤을 마친 무희들은 저마다 작은 솥을 꺼내 들었다. 무희 앞의 사람들은 춤을 춘 값으로 저마다 재물을 솥 안에 던져 넣어 주었다. 소대일자가 보니, 아이들이나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저마다 적당한 값을 쳐 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소대일자 좌우에 있는 두 사나이는 꽤나 많은 재물을 솥 안에 던져 넣는 것이었다. 소대일자는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눈치를 보면서,


    "비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지도록 아름다운 춤이었기는 하나, 어찌 한 번 보고 사라지는 춤에 이토록 많은 값을 치르는가."


    하면서 망설였다. 소대일자는 그러다가 제 앞에서 솥을 들고 있던 무희의 얼굴을 보고 민망하여 더욱 얼굴을 붉혔다. 마침내, 소대일자는 황급히, 좌우에 있는 사나이들이 준 재물의 3분의 2정도를 헤아려 솥에 춤을 본 값을 넣어 주었다.


    그러자, 무희가 소대일자 앞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겨우 몇 번 춤을 추는 저와 같은 재주 적은 아이를 이처럼 사랑해 주시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무희가 새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소대일자는 잠시 생각하기로, 낮에 본 여자의 모습과 비슷한 표정을 찾을 수도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소대일자는 무희에게 무엇이라 답을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면서, 다만 무희의 자태를 이곳저곳 살필 뿐이었다.


    그러자, 무희가 다시 소대일자를 보고 말하였다.


    "옷차림을 보니, 땅을 파 농사를 짓는 분이시거나, 시정에서 소리를 지르며 장사를 하시는 분은 아니신 듯 한데, 혹 벼슬을 하는 분이신지요?"


    소대일자가 답하였다.


    "나는 일자요."


    그러자 무희가 양 손을 모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뻐하며,


    "하오면, 밤하늘의 별을 보시고, 하늘과 땅의 도리를 밝히시는 분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소대일자가 답을 하지 못하고 다만 얼굴을 붉히자, 무희가 다시 또 물었다.


    "하늘에는 별이 많기도 하나, 그 중에 저와 같은 미천한 무희를 나타내는 별도 있습니까?"


    소대일자가 답했다.


    "별에는 방향이 있고, 또한 별마다 그 때가 항상 정해져 있으니, 그대의 태어난 곳과 태어난 때를 안다하면, 그대의 별도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무희가 소대일자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러면, 나리께서 저의 별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십시오."


    소대일자가 당황하여 끌려 나가면서 말하였다.


    "저는 겨우 소대일자의 자리에 있으니, '나리'라 하는 것은 옳지 않고, 별의 때를 맞추어 보자면 언제 나가야 하는지 모르오만."


    무희와 소대일자는 요란한 시정의 한 가운데에 섰다. 이미 해가 기울었는데, 좌중에는 술이 취한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술 취한 자 하나가 갑자기 길에 선 무희의 어깨를 붙잡더니,


    "가한신께서 알려 주신 비기를 써 놓은 책에 나와 있기로, 이제 곧 계속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다가, 땅이 뒤집히고, 산이 모두 뽑혀서 날아가고, 하늘이 무너져 떨어져 내리며, 해가 꺼질 것이니, 그러면 세상이 모두 없어지고, 모두 다 죽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전에 귀한 음식을 마음껏 맛보고, 좋은 술을 마음껏 즐겨야 합니다. 땀흘려 모아 놓은 재산이 뒤집힌 땅속에 파묻히면 무슨 소용입니까? 재산은 그전에 모두 써 없애고, 세상이 망하는 것을 모르는 멍청한 자들에게 빚을 얻어 더 놀아야 합니다.


    나는 땅 한 쪽, 내 몸 하나 뿐인 가난뱅이이나, 지금 가진 것을 다 팔고 있는 대로 빚을 얻어, 주머니에는 금은이 가득합니다. 그대는 무너지는 하늘에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우니, 세상이 없어지기 전에 나와 함께 즐기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소대일자는 크게 놀랐으나, 무희는 말하기를,


    "저런 말을 하는 취한 자들이 지진이 일어난 뒤에 적지 않습니다."


    하였다.


    소대일자는 자리를 피하여 무희와 함께 사람들이 적은 골목의 한 모퉁이에 섰다. 집과 길 사이로 하늘이 한쪽 보이고, 별이 총총 떠 있었다. 무희가 소대일자에게 자신이 태어난 곳과 때를 말하면서 물었다.


    "제 별은 어떤 것입니까?"


    소대일자는 기실 별을 보는 것을 많이 익히지 몰라서, 그 정도만 듣고 어느 별인지 짚어낼 수가 없었다. 소대일자는 대충 아무 별이나 짚어내어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적당히 아는 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별이 그대의 별이오."


    그러자, 무희는 소대일자의 팔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얼굴을 맞대어 눈의 방향을 같이 하고는,


    "어느 별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였다. 소대일자는 무희가 숨을 쉬는 데 따라서 무희가 입은 옷 밖으로 그 몸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자, 문득 다시 낮에 보았던 여자를 잠깐 생각하게 되었다. 소대일자는 다시 무희에게 별을 찬찬히 일러 주었다.


    그리하여, 소대일자는 무희와 함께 밤이 늦도록 같이 곁에 있다가, 등불을 구하여 들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오자, 오래간만에 새벽녘 늦은 때가 되어 돌아온 소대일자를 보고, 부인은 기뻐하였다. 부인이 달려와 말하였다.


    "지진이 일어난 때문으로 이토록 일이 힘드셨으니, 우리 집에는 흠이 없더라도, 지진이 또한 저의 원수입니다. 하오나, 무릇 일자라 함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늘의 도리에 대한 큰 뜻을 가슴에 담아 보는 것이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소대일자가 보니, 부인은 아침에 뜯어져 구멍이 난 낡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소대일자는 그만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니, 부인은 소대일자가 씻을 물을 데우고, 소대일자가 자리에 눕고 잠을 자려 하자, 한켠에서 소대일자가 벗어 놓은 옷을 다림질 하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늦게 온 까닭에 밤새 일을 하게 되는 부인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대일자는 스스로 호선무를 보고 무희와 놀다 온 것을 속이는 것이 도리어 자기 마음에 거슬렸다. 소대일자는 자리에 누운채, 기분이 나빠하는 투로, 부인에게,


    "그대가 별을 보는 것이 힘든지, 하늘의 도리가 무엇인지, 조그마한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가? 다시는 함부로 나에게 보람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그러자 아궁이 쪽 한켠에서 옷을 다림질하던 부인은 잠깐 놀라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부인은 오랫만에 소대일자가 제몫을 다한 것이 기쁘기만 하였으므로, 다시 웃음 띤 목소리로,


    "공께서 하라는 데로 하겠습니다. 공께서 하시고자 하시는대로 일이 잘 되신다면, 저 또한 그것이 잘되는 일이니 무엇이 또 걱정입니까."


    하였다.


    소대일자는 눈을 감고 무희의 춤추던 모습을 생각하였으니, 부인이 일하는 가운데 언뜻 잠이 들어 잠꼬대로 문득 말하기를,


    "빙빙 도는 모습이 곱고 고우니, 마치 큰 물결이 출렁출렁하는 듯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바다가 온통 큰 꽃잎이 되어 파도가 친다하면 이러할 것인가."


    하였다.


    이튿날 아침, 소대일자가 집을 나서려 했다. 소대일자가 부인을 보니, 간밤에 늦도록 일을 한 까닭인지, 마르고 작은 몸은 더욱 허약해 보였다. 또한 부인의 옷차림 역시 더욱 낡고 구김이 많아 보였다. 소대일자는 늦도록 잠을 자다가 도망치듯이 집을 빠져나왔다.


    소대일자가 좌영성실에 도착해 보니, 일자대형은 자리 한 구석에 앉아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런데 소대일자가 온 것을 보자마자 화를 냈다.


    "그대는 어찌 북극성을 새기는 일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소대일자가 놀라서 살펴보니, 어제 달탄에 꽹가리를 가져 가기 전에 그렸던 북극성 그림 중에 정반대로 그린 것들이 있었다. 그리는 판을 무심코 반대로 돌려 놓고 그림을 그렸던 까닭이었다. 소대일자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 하였다.


    "어찌, 이런 처음 들어온 어린 일자에게나 시키는 일을 시키느냐고 화가 나서 마음이 어지러워 졌으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가, 제대로 보지도 않은 까닭에 잘못하고 말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자꾸만 하다가,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은 까닭에 틀리게 하고 말았다."


    소대일자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젊은 중대일자가 걸어 들어 왔다.


    "영성실의 창고를 열고, 다른 창고에서도 물건을 실어와서, 다치고 집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도우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빨리 도와서 기운을 차리게 해야만, 이 사람들과 함께 흙더미와 돌더미를 다지고, 다시 축대를 세우고 제방을 골라서 다음 지진을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자대형이 옳다 하였다. 이윽고 여러 일자들이 모두 들어오자, 일자대형이 말했다.


    "모든 일자들은 들으라. 모든 일자들은 대가(大加), 대인(大人)들을 돌아다니며 청하여, 지진에게 당한 달탄 사람들을 도울 재물을 얻기를 청할 방도를 세우라. 또한, 옥저아이는 재물이 구해지면 그것을 들고 가서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천막을 치도록 하라."


    노쇠한 일자소형이 끼어들었다.


    "죽은 소가 살아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옥저아이가 혼자 천막을 들고 가서 치는 것은 쉽겠는가?"


    그러자, 일자대형이 말했다.


    "그렇다면 소대일자가 옥저아이와 함께 가도록 하라."


    그러자, 소대일자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채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젊은 중대일자가 말렸다.


    "대형께 아룁니다. 비록 소대일자께서 북극성을 반대로 그리는 잘못을 했다하나, 긴 동안 일자의 일을 해 온 분이십니다. 그런 분께 천막 치는 일이나 시키는 것은 가혹하지 않습니까? 또한 하늘의 이치를 밝히는 일자의 직분으로, 어찌 천한 심부름하는 아이와 함께하는 막일 따위를 하겠습니까?"


    이에 일자대형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어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 답이 나오기 전에, 먼저 소대일자가 말했다.


    "중대일자께서는 그와 같이 말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니, 저는 천막을 치러 가야 마땅합니다."


    소대일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옥저아이가 보니, 소대일자는 나오면서 자신을 두둔하려 하였던 젊은 중대일자를 화가 난 눈으로 잔뜩 노려 보고 있었다. 옥저아이가 의아해 하여 물었다.


    "소대일자를 탓하시고 꾸중하신 것은 일자대형 어르신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소대일자께서는 일자대형 어르신이 아니라, 오히려 소대일자를 감싸 주려고 하신 중대일자를 그토록 노려보십니까?"


    그러자, 소대일자가 답하였다.


    "내가 잘못했으므로, 일자대형이 나를 탓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대일자는 다른 여러 일자들이 있을 때, 괜히 나를 두둔한답시고 한 번 더 그 이야기를 하여, 다른 여러 일자들이 모두 나의 잘못을 알게 하였다. 이것은 나를 두둔하는 척 하면서, 실은 내가 멍청한 잘못을 했음을 모두에게 알리며 놀린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옥저아이는 그것이 아닌 듯 하다고 말하려 했으나, 소대일자는 그렇게 말하기 전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왕 천막치는 일을 하게 된 것, 오늘도 일찍 일은 끝날 것이며, 그렇다면 오늘 밤은 또 어떻게 깊어 지도록 때를 기다릴 것인가."


    소대일자가 그 다음을 소리내어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에 호선무를 보러 가려고 그 때부터 마음 먹었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밤하늘에 태양이 다시 떠오른 다 한들 더 뚜렷할 수 있으랴.


 


    3.
    달탄의 무너진 집들 사이에서 소대일자와 옥저아이는 천막칠 곳을 찾았다. 마침 땅이 물렁물렁하고 구덩이가 적당히 있어서 천막치기에 마땅한 곳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 곳에 천막을 치려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인이 항아리를 들고 나타나더니,


    "그곳은 내 자리다."


    하면서, 두 사람을 멈추게 하였다. 그러더니, 노인은 손으로 땅을 좀 더 헤쳐 파내고는 문득 구덩이 속에 들어가 주저 앉았다. 소대일자가 의아하여 물었다.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기에 천막을 못치도록 막으시고,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노인이 답하였다.


    "가한신의 뜻이 세상을 모두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미 가한신의 비기를 쓴 책에 나타나 있으며, 그 징험이 벌써 지진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세상이 망할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나는 벌써 모든 재산을 다 써서 없애버렸으며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몸마저 상하였다.


    이제 이대로 있으면 비참하게 굶주려서 바닥을 기다가 죽거나, 혹은 남의 노비가 되어 힘든 일을 하다가 병들어 죽을 뿐 아니겠는가? 또한, 나 뿐만 아니라 그대들도 이제 곧 세상이 망하면서 함께 없어질 것이다. 그런즉, 더 살아 무엇하겠는가?


    지금 이 항아리의 술은 칠일내성(七日乃醒)이라하는 독한 술로, 한 항아리를 내리 다 들이켜 마시면 그대로 취해 쓰러져 자빠질 것이다. 그러면 요즘은 날씨가 추우니, 술이 깨기 전에 그대로 취해 자다가 얼어 죽지 않겠는가? 기분 좋게 술 취하여 잠을 자다가 세상을 떠나니, 이와 같은 좋은 수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더니 노인은 주저앉은 채 항아리를 들었다. 노인은 그 모양대로 술을 마실까 말까 망설였다.


    소대일자가 노인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 곳곳의 구덩이에 노인들이 들어가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옥저아이가 말하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살린다고 물건을 나눠준다는 천막을 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소대일자도 그 말이 맞다고 여기고, 두 사람은 천막을 들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고 하였다.


    마땅히 천막을 칠만한 공터가 없었으므로, 소대일자는 차라리 길가에 나 있는 개울이 흐르는 옆에 천막을 치기로 하였다. 소대일자가 천막을 칠 것들을 내려 놓았다.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좀 떨어져 있어 불편할 것이나, 또한 길가에 있으니, 짐을 가져다 두기에는 편리한 점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곳에 천막을 치기 시작 하였다. 얼마 후, 길을 따라 몇 대의 수레가 줄을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옥저아이가 먼저 알아 보고 말하였다.


    "저것은 어제 먹을 것을 나눠주던 여자 옆에 있던 깃발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국상이 보낸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자, 소대일자가 놀라서, 옥저아이에게 손짓하였다.


    "저 분들이 바로, 국상께서 우리들을 다스리기 전에 알아보러 보낸다는 국상의 사자들이다.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라."


    그리고는 옥저아이와 소대일자는 나란히 서서 수레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수레는 지나가다 말고 멈추었다. 수레에서는 관복을 입은 세 사람이 내려섰는데, 옷을 보니 금은으로 장식되어 있는 모양이 국상이 보낸 사자가 옳은 듯 하였다. 사자 중의 한 명이 소대일자가 입은 일자의 옷을 알아보고 말하였다.


    "그대가 이번에, 지진을 맞히지 못한 죄를 지은 일자의 무리인가?"


    그러자 소대일자가 허리를 더욱 숙이며 그렇다고 하고, 잘못을 빌었다. 사자는 천막을 왜 치고 있는지 물었다. 소대일자는 재물을 풀어 지진에 다친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할 물건들을 이 천막에 쌓아 두고 나누어 줄 것이라고 답해 주었다. 사자들은 멀리 산골짜기에 가득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그 집들이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어찌 저꼴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몇 명의 젊은 사나이들이 무리지어 길 옆의 개울을 따라 나타났다. 사나이들은 웃옷을 벗어서 개울물 속에 담갔다. 그리고는 옷을 다시 건지더니 길을 따라 다시 떠났다. 남루한 옷 차림을 보니, 지진으로 일을 당한 사람들인 듯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짐승을 잡는 활과 잡은 짐승을 자르는 칼을 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해 하며 사자들이 놀라서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소대일자도 알 수가 없었으므로, 소대일자가 지나가는 사나이를 붙잡고 물었다. 그러자, 답하기를,


    "저희는 가한신의 비기가 쓰여있는 책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책에 나오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졌으니, 이제 벌써 지진이 일어났고, 이제 곧 세상이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이에 저희는 모든 재물을 다 써 없애 버렸으며, 이제 한 톨의 좁쌀, 한 뼘의 땅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이제 먹고 살 길이 없어 서울 성벽 안으로 들어가서 도둑질을 하고 잘 사는 이들의 재물을 빼앗아 살려고 합니다. 도적질을 해 본 적은 없으니, 혹여라도 많은 재물을 얻는다면 얼마남지 않은 세상 더욱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며, 도적질을 하다 화살을 맞아 죽는다면, 그 또한 겁내는 일 없이 세상을 잘 떠나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이제 이곳을 떠나기로, 이 개울물이 바로 가한신의 뜻이 서려 있는 물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 옷을 담갔다가 건져 올리면 운수가 좋다고 하기 때문에 이곳을 들러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사자들이 크게 걱정하며 서로 말하였다.


    "국상께서 조정의 일도, 사자의 일도, 모두 백성들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하셨거늘,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와 같이 백성들이 비참한 꼴을 당하고, 믿을 것이 없어 도적떼가 되어 죽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한다니, 어떠한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인가?


    이제 얼마 후에 국상께서 차주부 어르신을 보내셨을 때, 차주부께서 길을 가시다가 이와 같은 꼴을 보시면, 크게 노하시여 우리를 모두 벌하실 것이다. 차주부께서, '국상께서 사자의 일도 백성의 마음에 달린 일이라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하고 꾸중해 물으시면, 장차 우리는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사자들이 안절부절 못하였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문득 소대일자가 사자들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제가 비록 일자의 일을 하고 있으나, 사자 나리의 걱정하시는 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하여 아룁니다."


    사자들이 물었다.


    "국상께서 차주부 어르신을 보내실 때에, 그 분이 달탄의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백성들의 마음에 달린 이 나라를 어찌 하실 것이냐하시면서, 국상의 이름으로 우리를 벌하실 터인데, 그대가 무슨 수가 있겠는가?"


    소대일자가 답하였다.


    "제가 지금 지진에 대한 일을 위하여 천막을 치고 있는데, 이 천막을 본 모양대로 치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길게 치게 되면, 길을 따라 길게 천을 늘어 뜨리며 천막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길을 따라 길게 천막을 치면, 천막이 길을 따라 모두 가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천막을 길을 따라 쳐서 가리도록 하면, 수레나 말을 타고 지나간다하여도, 천막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차주부 어르신이 나중에 지나가실 때에도, 달탄 땅의 모습과 재산을 없애거 칼을 들고 도적이 되어 떠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소대일자의 말을 듣자, 사자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내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또한, 지금은 한가지 방책이다."


    하였다. 사자들은 소대일자에게 당부하여, 길을 따라 길게 천막을 쳐서 가리고, 그리하여, 길을 지나가면서 지진으로 도적으로 변한 달탄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막도록 하였다.


    사자들은 다시 수레를 타고 가던 길을 떠났다. 소대일자가 다시 천막을 치려고 보니, 옥저아이가 옷을 개울에 집어 넣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왜 그러는지 묻자, 옥저아이가 말하였다.


    "비록 가한신이 세상을 없애려고 하고, 그 비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자들이 말하는 꼴을 보니 나도 문득 도적이나 되어 볼까하여 그렇습니다."


    소대일자는 옥저아이를 잡아 끌어 재촉하여 천막 치는 일을 계속하였다.


    천막 치는 일도 낮에 다 끝이 났으므로, 소대일자는 밤이 깊도록 호선무를 보리라 생각하였다. 소대일자가 호선무를 보는 곳에 갔더니, 어제 보았던 무희가 그 날도 있었다. 소대일자는 기뻐하며 그 앞에 앉아, 무희가 춤추는 모습을 꼼짝 않고 빤히 쳐다 보았다.


    "오늘은 내 춤 값을 아까워 하지 않으리라."


    이윽고 무희의 춤이 끝나자, 과연 소대일자는 오히려 어제 좌우의 사나이들이 내어 놓았던 재물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솥 안에 넣어 주었다.


    "어제 적은 값에도 그토록 기뻐한 여인이니, 오늘 이 값에는 혹여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대일자가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무희는 솥을 들고 사람들이 주는 값을 받고 나자, 오늘은 바쁘게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소대일자는 어제처럼 무희와 곁에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였다가, 크게 실망하였다. 실망한 소대일자는 일어나서 혹여 무희가 자신을 못 본 것은 아닌가 하여, 일어나서 기웃거리며 두리번 거렸다.


    이윽고, 무희가 나타나지 않자, 소대일자는 크게 실망하여 주저 앉아 탄식하였다.


    "아아, 일자대형의 말이 옳도다. 나와 같이 아둔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저와 같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이하여 나와 같이 볼품 없는 자 따위를 따르겠는가."


    소대일자는 문득 솥에 던져 놓은 재물이 아까워 그대로 자리를 떠나기가 어려워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소대일자는 계속 머뭇거리다가 또 다른 춤추는 사람들이 나타나 춤을 추고 가도록 계속 그 자리에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머지 다른 춤을 추는 것을 보아도 재미가 없고 지루하였으니, 소대일자는 마음이 괴로웠다.


    오래도록 지나, 마침내 새벽이 깊었다. 소대일자는 돌아갈 때가 되었다 생각하게 되었다. 소대일자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런 소대일자 곁으로, 한 나이든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요염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소대일자 곁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여자가 소대일자를 보고 말하였다.


    "저는 이곳의 주인으로, 공께서 누구이신지는 공의 앞에서 춤을 추었던 무희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공께서는 하늘의 별을 따지시는 고귀한 일을 하시는 분이시니, 과연 멀리서 그 옷과 풍채만 보고도 바로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소대일자가 의아해 하여, 주인이라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주인이 눈웃음을 웃었다.


    "그 무희가 공을 알게 되었다하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공께서 하늘에 있는 자기 별을 알려 주었다하시고, 어제 밤, 오늘 내내 저에게 자랑을 하면서 하루 종일 공에 대한 이야기만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철없는 어린 여자 아이라 하여 남자에게 마음이 급하게 이는 것이 잔물결이 오고가는 것과 같이 빠르다하지만, 어찌 그리 설레어 날뛰겠습니까?


    아쉽게도 오늘 무희가 춤을 출 때 손에 덧대는 덧소매가 뜯어져 그것을 꿰멜 것이 많아서, 공께 나타나 같이 즐기지 못하였으니, 무희는 안타까워서 지금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을 것입니다. 덧소매가 뜯어지면 춤을 추지 못하니, 제가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밤새 꿰메어 놓으라고 한 것이니, 제가 이렇게 무희 대신에 와서 공께 죄송스럽다고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소대일자는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소대일자는 크게 기뻐하며 다시 묻기로,


    "그 말이 정녕 참입니까?"


    하니, 주인이 다시 웃고는 답하였다.


    "무희가 밤새 일을 하다 말고, 문득 바깥에 나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공께서 자기의 별을 가르쳐 주었으니, 그것이 뜨고 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희가 말하기를 공께서 별을 가르쳐 주며 몸에 기대어 손가락을 내밀던 그 몸짓을 어찌 잊겠냐고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데, 어찌 그 마음이 곱지 않다 하겠습니까."


    그러자, 소대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하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어찌, 세상의 이치가 한쪽이 자라나면서 다른쪽은 자라나지 않겠는가? 이른 바 해와 달은 번갈아 뜨고, 겨울과 여름은 일년에 같이 지나가는 것이니, 남자의 마음이 있으면, 여자의 마음도 있는 것이라. 내가 무희를 그토록 생각했으니, 그 무희도 나를 이토록 생각함이 지금 생각해 보면 또한 당연하지 아니한가?


    내가 가르쳐 준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보러 밤새 오락가락하며 기다렸다니, 이처럼 애틋한 일이 있는가?"


    소대일자는 기뻐하며 하늘을 보고 소리를 내어 껄껄 웃었다. 마침 다시 춤을 추고 춤을 춘 사람들이 솥을 들고 춤 값을 받으러 다니니, 소대일자는 기분이 좋아, 춤값을 가득가득 넣어 주었다.


    소대일자는 무희에 대한 생각에 설레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부인이 국상이 보낸 사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을 하며 걱정하였으나, 그런 일은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았으므로, 화를 내어 말하지 못하도록 멈추었다.


    잠을 설친 소대일자가 이튿날이 되어 좌영성실에 나가 보니, 어제 본 사자들이 일자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사자들이 평소 일자대형이 앉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일자대형은 그 바로 아래자리에 앉아 있었다. 때문에 자리가 모자랐으므로, 몇몇 일자들은 집 밖에 서서 있었다. 소대일자는 그래도 가장 낮은 곳에나마 자리 위에 앉았다.


    사자가 말했다.


    "공들은 일자라하면서, 이와 같은 때에 지진을 맞히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왜 지진을 맞히지 못한 것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지진을 맞힐 것인지 방책이 있습니까? 만약 국상께서 차주부를 보내실 때까지도 좋은 방책을 만들지 못하신다면, 큰 일을 당하실 것입니다."


    일자대형이 말하였다.


    "사자께 아룁니다. 지진을 밝힌다 하는 것은 별을 보고 하늘의 이치를 따진다하여도 쉬운 일이 아닌 까닭에, 여러 다른 말이 많습니다. 저희는 지금껏 동서남북 각 방향의 영성들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달려 있다는 설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을 반대로 보고 따져야 한다는 설이 있기도 하고, 중앙의 황룡이 머무는 별들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달려 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후토의 지신이 머무는 별들에 달려 있다는 설도 있고, 황천의 천왕이 머무는 별들에 달려 있다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


    일자대형이 공손히 말을 마쳤다. 그러자, 여러 일자들이 돌아가면서, 각각의 지진에 대한 별을 보는 방식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설명을 하였다. 긴 동안 온갖 별에 대해서 설명이 이어졌으니, 사자는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사자들은 별을 보는 일을 잘 알지 못했으므로, 그 말들을 잘 알아 듣지 못하고 몹시 지루해 하였다.


    결국 사자 중 하나가 답답해 하며 소리치기를,


    "알아 듣지 못하겠습니다. 공들은 어렵고 요란한 말로, 감히 국상의 명을 받고 온 우리를 놀려서 공들 스스로 아무 죄가 없다고 속이려 하는 것입니까?"


    하였다.


    그러자, 일자대형이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며 그런 것이 아니라고 빌었다. 곧 중대일자가 말했다.


    "사자께서 하시는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희들이 아뢴 말씀 역시 속이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진을 밝히는 일은 어려우며,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지진에 대하여, 별을 보고 해를 보는 것보다, 오히려 위험한 흙무더기와 산사태가 일어날만한 돌무더기를 미리 피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 지진이 일어나면 곧 죽을 사람들을 구해내어 살려 놓고, 갈 곳이 없고, 잘 곳이 없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창고를 열어 사람들을 구하면서 일자의 일을 다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자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일자라 하면서 지진에 대해 아는 것이 그렇게 없는가."


    그때까지도, 소대일자는 역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사자 하나가 어제 천막을 칠 때 소대일자를 만난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 사자가 소대일자를 알아보고 물었다.


    "그대는 옛부터 내려오는 고루한 생각이 아니라, 국상의 뜻을 잘 아는 듯 보인다. 그대가 지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소대일자는 깜짝 놀랐다. 소대일자는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 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소대일자는 할 말이 없고 모른다고 하려는 데, 문득 일자대형의 얼굴을 보니 사자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하면 매우 위험하다는 듯이 보였다.


    이윽고, 소대일자가 어제 사자들이 한 말을 떠올려 그자리에서 지어내어 답하였다.


    "제 생각에는 지진이란 백성들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자, 좌중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소대일자를 바라 보았다. 사자 역시 놀라며 다시 물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는가?"


    소대일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조정의 일도 백성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고, 일자의 일도 백성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지진 역시 백성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자가 소대일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백성의 마음이 괴로운 곳에 하늘이 지진과 같은 변고를 내린다는 것인가?"


    소대일자가 덜컥 겁을 먹어 말을 못하고 멈추었다. 그러나, 소대일자는 기왕에 말을 꺼낸 것 어떻게든 말을 끝내야만 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도리어 힘을 내기 위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진정코, 저의 생각이 바로 그러합니다.


    만약 백성들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웃음이 그치지 않으면 지진 또한 멈추어 도망가는 것이고, 백성들이 슬프고 괴롭고 눈물을 흘리면 점차 그 기운에 지진과 같은 악한 것이 고여서 하늘이 땅을 떨게 하고 산을 뒤엎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한 사자가 길게 소리를 내며 크게 감탄하였다.


    "과연 그 답이 절묘하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국상의 뜻을 알고, 국상께서 공구수성이라 하신 말씀을 아는 사람의 뜻 아닌가. 지진 또한 백성의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 매우 그럴듯하니, 반드시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사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대일자를 크게 치하하며 나갔다.


    소대일자는 일자대형도 두려워하는 사자들이 자신을 칭찬하자 우쭐하여, 싱글벙글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일자대형은 근심하는 얼굴이었으므로, 애써 고개를 숙이고 표정을 감추었다.


    일자대형이 좌중을 향해 말하였다.


    "국상이 지금 그 자리에 머무르는 제도를 종신으로 하였으며, 또한 대주부의 힘 또한 겸하여 갖고 있다. 그러니, 저들 사자들이 말한 바를 따르지 않으면, 곧 차주부가 판결을 내릴 때에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사자들이 백성의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보라 하였으니, 우리가 그 말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이것을 누가 알아 볼 것인가?"


    노쇠한 일자소형이 일자대형에게 말하였다.


    "지금, 모든 일자들이 밤에는 별을 보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지진에 대해 알아내기 위하여, 잠깐 눈을 붙일 겨를이 없습니다. 또한 낮에는 지진에 당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재물을 모으느라 이곳저곳 찾아다니느라 역시 너무도 힘에 겹습니다.


    그런데, 누가 갑자기 고금에 없는 엉뚱한 새로운 일을 맡아 하겠습니까?"


    일자대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일자대형이 말하였다.


    "이는 소대일자가 해야할 일이다. 어차피 이는 답이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소대일자는 힘을 다할 뿐, 답을 내는 일에 애를 쓰지 말라."


    소대일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그러겠다는 뜻을 밝혔다.


    저마다 일을 하러 이곳저곳으로 떠나가 흩어지자, 옥저아이가 소대일자 곁에 다가와 물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맡으셨습니까?"


    소대일자가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값 없는 일을 맡았다."


    소대일자는 스스로 부끄럽고, 자신이 재주가 없다고 여기는 다른 일자들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대일자는 한편으로는 이리하여, 며칠 동안 이 일을 핑계로 하여 일찍 일을 마칠 수 있고, 그리하면 또한 밤에는 호선무를 보러 갈 수 있음을 알아 기뻐하였다.


 


    4.
    소대일자는,


    "백성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 집집이 묻고 다니는 것 외에 다른 방책이 있겠는가?"


    하고는, 이집저집을 다니면서,


    "그대의 집에는 웃는 일이 많습니까? 그대의 집에는 우는 일이 많습니까? 그대는 지진을 얼마나 크게 겪었습니까?"


    하고 묻고 다녔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까지 묻고 다니다가, 소대일자는 지루해지고 힘들기도 하여, 곧바로 호선무를 보러 갔다. 이번에는 무희가 크게 기뻐하며, 소대일자의 한 팔을 감싸 안으며, 맞아 주었다.


    무희는,


    "공께서 배가 고프실 것이니, 주인에게 술과 국을 내어 오게 하겠습니다."


    하고는, 손짓하여, 자리에 국과 술을 가져 오게 하였다. 주인이 국을 가져오면서 그 값을 받으려 하였는데, 그 값이 비쌌으므로, 소대일자가 깜짝 놀라서 말하였다.


    "이 값이면, 집에서 아내가 해 줄 때 드는 값의 열 곱절이 넘지 않는가?"


    그러나, 이내 무희가 기쁘게 웃으며, 국을 숟가락에 한 술 떠서 입에 넣어 주므로, 소대일자는 웃으면서 받아 먹었다.


    무희가 춤을 출 때가 되어 무희는 나아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손에 덧소매를 끼우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역시나 아름다웠다. 무희는 여러 번 쉬어 가면서 밤새도록 여러 곡에 맞추어 춤을 계속 추었으므로, 소대일자는 한 자리에 앉아 계속 그 모습을 보았다.


    소대일자가 한참 구경을 하다가 문득 주위를 보니, 좌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무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무희의 모습을 구석구석 쳐다보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듯이 푹 빠져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소대일자 자신 보다 몹시 풍채가 좋고 부유해 보이는 자도 있었다. 무희는 즐겁게 웃으며 신나게 춤 추면서 힐끗힐끗 구경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소대일자가 보니, 그러다가 앉아 있는 사람들과 문득문득 눈빛이 맞는 듯 하기도 하였다.


    무희가 춤을 추는 것을 마치자, 소대일자는 밤새 무희와 함께 즐겼다. 소대일자는 극히 황홀해 하여, 나중에 옥저아이에게 말하기로,


    "내가 일전에 너와 함께 국상의 깃발을 세워 두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저와 같은 이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꿈과 같지 않겠는가 하였건만, 이제 내가 꿈 속에 또 들어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하였다.


    헤어질 때에, 무희가


    "춤을 많이 추었더니 지칩니다."


    하고 말하면서, 소대일자의 등에 몸을 붙이며 기대었다. 소대일자가,


    "산은 지진이 일어나면 흔들릴 수 있으나, 내 다리는 산 보다도 튼튼한 것인지, 만약 그대가 기댄다면 결코 넘어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을 수 있으니, 마음놓고 기대고 계시오."


    하고 말하고는, 웃으며 즐거워 하였다.


    무희가 말하였다.


    "공과 제가 춤을 추어 알게 되었고 또한 별을 보다가 알게 되었으니, 공께서 별을 그려 놓은 덧소매를 하나 사 주시면, 제가 춤을 출 때마다 공을 생각하며 모든 춤을 공을 위해 추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소대일자는 그날 보았던 무희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기에 서슴없이,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하였다.


    그리하여, 며칠 동안 계속 낮에는 이집저집을 다니며 지진에 대해 묻고 다녔고, 밤에는 호선무를 보러가서 무희를 만났다. 춤을 출 때 쓰는 덧소매를 사려고 했더니, 무희가 주인에게 물어보라고 하였기에, 소대일자는 주인에게 덧소매를 샀다. 그 값이 매우 비싸서 소대일자는 극히 놀랐다. 그러나 선물이라 하면서 줄 때에 무희가 몹시 기뻐하여, 팔짝팔짝 뛰면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으므로, 그 모습을 보고 소대일자는 마음이 흡족하였다.


    또한, 과연 그날 밤에 그 덧소매를 손에 끼우고 춤을 추니 더욱 황홀하여, 소대일자는,


    "마치 함께 엉켜 날아올라 같이 춤을 추는 듯 하구나."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부터는 그 덧소매를 쓰지 않기에, 소대일자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왜 사준 덧소매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무희가 답하기를,


    "여러가지 옷을 입고 화려하게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 춤을 추는 사람의 본래 뜻입니다. 비록 공께서 사주신 덧소매가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나, 어찌 매일 하나만 쓰겠습니까. 몇을 더 사주신다면 바꾸어 가며 쓸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소대일자는 덧소매를 몇 개를 더 사주었다.


    그러고부터는 이제 소대일자는 호선무를 보러가서 무희를 만나는 것이 하는 일이고, 일자의 일을 하는 것이 놀이인냥 하게 되었다. 소대일자는 밤마다 무희와 더불어 즐겼으며, 언제나 호선무를 보러가서 솥에 가득 재물을 집어 넣고, 비싼 값을 치르고 나쁜 술과 음식을 잔뜩 먹었다. 그리고 낮이 밝으면 소대일자는  몇 집을 돌아다니며 지진에 대해 묻고 다니다가, 해가 저물 즈음이 되면 다시 급히 호선무를 보러 뛰어가곤 했다.


    소대일자를 보고, 옥저아이가 눈치를 채어 묻기로,


    "호선무를 보러 너무나 자주 드나드시는 것 아닙니까?"


    하였다. 그랬더니, 소대일자가 답하기로,


    "그곳의 무희가 입고 있는 덧소매와 장신구들 중에 내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절반이니, 내가 들인 재물을 아깝게 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그곳에 자주 가는 것이 옳은 일이다."


    하였다.


    무희는 더욱 소대일자를 극진히 대접하며, 소대일자가 즐겁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베풀었다. 소대일자는 밤이 어떻게 새는 지도 모르도록 무희를 만났다. 그랬으므로, 가끔 호선무를 보러 갔으나, 무희가 없는 날에는 매우 서운해 하였다. 주인에게 무희가 어디에 갔는지 물어보면, 주인은,


    "옷을 고쳐야 한다 합니다."


    하기도 하고, 혹은, 아파서 누워 있다거나, 머리를 자를 가위를 사러 갔다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소대일자는 무희에게 그 전날 다음날 나타날 것인지 안나타날 것인지 미리 약조를 하고 보자고 하였다.


    "그러나, 하루하루 급하게 살아가는 저와 같은 춤을 추는 사람이, 어찌 내일의 일을 오늘 다 알겠습니까."


    그러나 소대일자가 굳이 다그쳐 따져 묻는 날에는 그래도,


    "내일은 제가 춤을 출 것이니, 반드시 오셔서 보십시오."


    하며 약조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또 갑자기 무희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소대일자는 극히 마음이 상하여,


    "내가 부질없이 한바탕 치마 저고리의 휘휘 돌아가는 바람속에 없애 버린 재물이 도대체 얼마인가?"


    하면서, 곧 이제 호선무를 보러 가지 않으리라 결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날일 수록, 주인이 나타나,


    "무희가 오늘 반드시 공을 만나고자 하였는데, 강을 건너 옷감을 구하러 갔다가 뱃사공을 놓쳐서 강을 건너지 못하여, 오늘 오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낯선 곳에서 홀로 자면서 공을 그리워 하며 두려워 울고 있을 것이니 불쌍하지 않습니까?"


    하니, 곧 소대일자는 마음이 약하여, 다음날 또 찾아왔다. 그 때 무희가 찾아와 소대일자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면, 그만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 유쾌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만 소대일자가 참기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무희가 춤을 보러온 다른 사나이들과도 함께 웃고 떠들며, 같이 술과 음식을 같이 나눈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솥에 많은 재물을 집어 넣어준 한 농사꾼에게 붙어 웃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였다. 그리하여, 소대일자가 굳은 얼굴로 새벽이 될 때 따졌다.


    "어찌 그 농사꾼과는 그리도 다정하였소?"


    그러자, 무희가 한번 웃었다. 그리고 답하였다.


    "저는 춤을 추는 사람이지, 시집을 갈 때에 돈을 받고 처녀를 넘기는 옥저의 천한 여자가 아닙니다. 어찌 춤을 보러 온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것에 마음을 상하십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춤이라는 것이 손동작과 발놀림이 전부가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춤이라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흥을 나게 하는 것이고, 보는 사람의 기분을 돋구는 것이니, 곧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춤에서 중요한 것은 춤을 보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모시고,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희가 장황하게 말하였으나, 소대일자는 여전히 무희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자 무희가 소대일자의 신발을 벗겨 벌을 품에 안으며 말하였다.


    "공께서 가르쳐 주신 저의 별이 하늘에서 빛을 잊지 않고 빛나고 있어서, 하늘도 알고 있는데, 제 마음이 어찌 공의 곁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소대일자는 그제서야 한 번 따라 웃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보니, 무희가 떠나가려는 한 젊은 사나이와 손을 부여 잡고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젊은 사나이는 얼굴이 거칠었으나, 소락해 보이지 않았으며, 무희는 웃으며 말하고 있었으나, 젊은 사나이는 웃지 않고 있었다. 대개 다른 이들과 말을 할 때에 무희는 소리내어 웃으며 크게 떠들었으나, 이번에는 소곤거리듯이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 젊은 사나이는 말을 팔고 사는 말장수인 것 같았다.


    "저자는 가끔 말을 타고 나타나 말을 탄 채로 춤을 구경하던 자가 아닌가?"


    말을 탄 채로 춤을 구경하게 해 주는 것은 좋은 대접이었으므로, 소대일자는 곧 말장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곧 말장수가 떠나려 하자, 무희는 지체없이 말앞에 넙죽이 몸을 보이며 엎드렸다. 그리하여 말장수가 무희를 밟고 말에 올라갈 수 있도록 몸으로 받쳐 주었다.


    소대일자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무희에게 다가가려 하자, 무희가 곧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무희 대신에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이 무심히 지나치려 하자, 소대일자가 주인을 붙잡고 캐물었다. 그러자 주인이 답하기로,


    "저 말장수는 특히 춤을 추는 자들에게 베푸는 것들이 많으니, 우리 춤꾼들이 마치 군후(君侯)와 같이 극히 높게 모시는 날도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소대일자는 너무도 이상하여, 무희를 끝끝내 좇아가 따졌다. 그러자 무희가 소대일자를 쓰다듬으며 배시시 웃었다. 무희가 말하기를,


    "공께서 이토록 저를 아끼시니, 저는 비록 공의 의심을 사고 있으나, 너무도 기쁩니다.


    공께서 그렇게 의심이 나시거든 공께서 제가 춤출 때 입을 옷과 속옷을 마련해 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리하면, 제가 어디에 가서 누구와 함께 있거나, 항상 공께서 주신 것을 온몸 구석구석에 두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하면 제가 잠시라도 공을 잊겠습니까? 제가 잠시라도 공과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소대일자는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그러나, 무희의 옷을 구해다 주는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여러벌의 옷과 속옷을 마련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재물이 필요하였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있는 소대일자에게 옥저아이가 묻기를,


    "무엇을 그리 고민하십니까?"


    하니, 소대일자가 갑자기 답하기로,


    "굳게 닫힌 성문에 무서운 장수가 지키고 있다면, 옛날 부분노(扶芬奴)와 같은 좋은 계책을 떠올려야만 깨뜨릴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였다. 옥저아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물었으나, 고민하는 소대일자는 더는 답이 없었다.


    기실, 소대일자는 그동안 호선무를 보러 다니고, 무희에게 이것저것을 사다 주느라, 가지고 다니던 재물들을 거의 다 써서 없애 버렸다. 그러므로, 무희에게 옷과 속옷을 사 주려면 다른 곳에서 재물을 마련해 와야 했다. 때문에 소대일자는 그동안 아껴서 모아 놓은 재물로 숨겨둔 황금천(金丸釧)과 백은천(白銀釧)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소대일자가 집에 들어와 보니, 마루 깊숙한 곳에 황금천과 백은천을 넣어둔 궤짝이 들어 있고, 그 위에 부인이 앉아 있었다. 부인은 보통 궤짝을 깔고 앉아 있었으며, 집을 멀리 떠나지도 않았다. 밤늦게 돌아온 소대일자가 부인에게 묻기로,


    "부인은 어찌 엉덩이가 불편하도록 그와 같은 자리에 항상 앉아 있소?"


    하였다. 소대일자가 빤히 그곳을 쳐다보자 부인이 답하기로,


    "이것은 공께서 긴 세월 밤 새 별을 헤아려 고생한 것으로 모아 놓은 재물을 숨겨 둔 것이오. 어찌 힘써 지키지 않겠소.


    또한 만약 도적이 몰래 집을 엿본다 하여도 내가 치마로 덮고 이곳에 앉아 있으며, 이 밑에 황금천을 넣은 궤짝을 둔 줄 모를 것이니, 도둑의 눈을 피할 수 있지 않겠소?"


    하였다.


    그리하여 소대일자는 날이 새도록 부인의 자리 아래를 쳐다 보았으나, 몰래 황금천을 꺼낼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있으니, 부인이 문득 소대일자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껴안으며 말하기를,


    "내가 요즘 밤을 새는 일이 잦아 몸에서 살이 빠지는 듯 하였기는 하나, 공께서 내 엉덩이가 아픈 것을 걱정해 줄 줄은 몰랐소. 공께서 나를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줄 어찌 알았겠소?"


    하였다.


    소대일자는 한숨을 쉬며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부인에게 다시 물었다.


    "부인은 이제 날씨가 더 추워지면 나다니기도 어려울 텐데, 어디 멀리 다닐 일이 있다면 지금 가보는 것은 어떠한가? 혹여 구경을 가거나, 만나러 갈 옛 벗이라도 없는가?"


    그러자 부인이 웃으며 부끄러워 하였다.


    "공께서는 내가 살이 빠진다고 말했다 하여, 그와 같이 마음을 써 주실 필요는 없소. 공께서 요즘 지진으로 일이 많아, 밤마다 늦도록 별을 보시며 지새시는데, 내가 어찌 함부러 놀며 나다니겠소. 나는 또한 집을 지키며 내 일을 다할 것이오."


    소대일자는 다시 근심스러운 얼굴로 눈을 감았으니, 날이 밝도록 자기가 사준 옷을 무희가 갖가지로 갈아 입는 온갖 모습들을 끊임없이 떠올릴 뿐이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자, 소대일자가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말하기 부끄러우나, 부인에게 부탁할 것이 있소. 내가 하는 일이 힘들어 몸이 망가져 가는 듯 하여, 약을 구하고자 하오. 부인께서 일전에 말한 바와 같이 인삼을 구할 수 있겠소?"


    그러자 부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살이 빠지는 것을 걱정하고, 내가 밤을 지새며 공을 기다리는 것을 괴로워 하였으나, 막상 지진을 걱정하며, 국상의 두려운 뜻을 근심하는 공이 얼마나 더 괴로워하는지는 내가 잊고 있었소. 이와 같이 마음 씀씀이가 모진 사람과 같이 살고 있으니, 공에게 죄라고 할 뿐이오.


    나의 아비와 어미가 산에서 풀뿌리를 캐어 살고 있으니, 비록 그 두 분이 곰과 오소리보다 가진 것이 없이 살고 있기는 하나, 인삼을 가진 것은 있을 것이오. 제가 급히 달려가서 한 뿌리를 받아 공께 바쳐 올리겠소."


    소대일자는 부인의 그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집을 나섰다.


    "부인은 살이 적고 마르며, 기운이 없어 보이는 데, 옷 차림 마저 떨어지고 남루하니, 그와 같이 찡그린 표정을 지으면 참으로 볼 품이 없나니."


    소대일자는 마침내 부인이 자신에게 줄 인삼을 구하러 그 부모를 만나러 간 틈을 타서, 숨겨둔 궤짝에서 황금천을 꺼냈다. 황금천은 금으로 만든 팔찌였으므로, 귀하게 여겨 여러 물건을 사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소대일자는 황금천을 호선무를 보는 곳에 가져가 주인에게 주고, 무희의 옷과 속옷을 만들어 주었다.


    무희는 옷이 만들어지자, 소대일자가 보는 앞에서 바로 갈아입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공에게 말씀드린대로, 공께서 언제나 저를 함께 휘감고 계시는 것입니다."


    소대일자는 또한 부인이 인삼을 구해오자, 그 인삼도 자신이 먹었다고 하고는 다른 재물로 바꾸었다. 소대일자는 그 재물도 호선무를 보는 데에 모두 써 없앴다.


 


    5.
    한편, 인삼을 팔아 없앤 재물도 모두 없앴을 즈음 하여, 사자들이 다시 일자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이제 국상의 명이 떨어졌으니, 내일이면 차주부께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도성에서부터 짐을 꾸리실 것입니다.


    공들은 그간에 아뢸 일들을 대비하여 둔 것을 밝혀 보십시오."


    일자대형이 지시하자, 여러 일자들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였다. 먼저 두 일자가 이야기 하였으나, 특별히 나아진 바가 없었으므로, 사자들은 탐탁치 않아 하였다. 다음으로 중대일자가 이야기하였다.


    "산사태가 일어날 곳을 보아 두었으며, 산사태가 일어날 곳을 고칠 재물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또한 다시 지진이 일어나면 무너질 집들을 보아 두었으며, 이 집들을 고칠 방법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지금 다쳐 쓰러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재물들을 모아 두었으며, 집을 잃은 달탄 사람들이 추운 겨울 밤을 버티기 위해 덮을 거적데기, 짐승가죽을 살 재물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써서 사람을 구하는 데에 쓴다면, 비록 하늘을 읽어 지진을 세밀히 꿰뚫어 보는 일은 못한다 하여도, 일자라하는 사람으로 도리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대일자가 자뭇 비장한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소개하는 이야기들 또한 뜻이 옳고, 말이 정교하였으므로, 일자들과 사자들이 모두 감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중대일자가 말을 마치자, 한 사자가 말하였다.


    "이번에는 지진이 백성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한 일자가 아뢰어 보라."


    그러자, 소대일자가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제가 직접 집집이 물어보며 살펴보니, 작년 가을에 서리와 우박으로 곡식을 헤친 일이 있었으므로, 백성들 중에 고생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 중에 슬픈 날을 보내고 괴로워 하며 울고 지낸 때가 많은 집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인즉, 슬프고 괴롭고 울고 지낸 백성의 집에서, 또한 지진을 크게 겪어, 집이 무너져 지붕에 깔려 죽은 자가 있고, 온돌이 무너져 불에 타 죽은 자가 있었으며, 반대로 기쁘고 즐겁고 웃고 지낸 백성의 집에서는 또한 지진을 작게 겪어 별 탈이 없었습니다.


    이러하온즉, 지진이라 하는 것은, 동서남북의 영성이나, 신이한 것이 머무는 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백성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소대일자가 말을 마치자, 사자들이 극히 놀라워 하며, 소리를 내어 탄복하였다.


    "이러한 놀라운 일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국상께서 말씀하신 백성의 마음을 따라 하늘이 움직이고 하늘을 따라 백성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그대로 밝히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이 있는가?


    그대야 말로, 우리가 스승으로 모셔야하는 사람 아닌가?"


    그리고는 사자들이 소대일자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소대일자는 당황하였으나, 이내 우쭐하여 소리 없이 몰래 웃었다.


    소대일자가 다시 말했다.


    "이렇게 백성의 마음에 따라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니, 지진이 또 일어날 지 모르는 달탄에 지진을 막으려거든, 달탄에서 백성이 울고 괴로워하는 일이 없고, 웃고 즐겁게 하기만 하면, 지진은 저절로 물러 갈것입니다.


    그러니, 차주부께서 오시는 날에, 달탄에 재물을 풀어 술과 고기를 사서 쌓아 놓고, 무릇 달탄 사람들에게 모두 밤새 춤을 추며 노래하라고 시키면, 차주부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과연 지진을 막을 좋은 방책이라 여기실 것입니다."


     사자들이 그 말을 듣더니, 감격하여 소대일자의 손을 잡았다.


    "그대가 우리를 살리고 무릇 일자들을 살렸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옳다. 백성의 마음에 따라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틀림이 없고, 지금 집집이 물어본 것도 이와 꼭 맞아 든다. 그러니, 지진으로 위험한 곳에서 백성들이 웃으며 놀게 하면, 지진이 물러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상의 뜻에 꼭 맞는 일이다. 이와 같이 아뢰면서 빌면, 비록 이번 지진은 못 맞추었다 할지라도, 차주부께서 용서하시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러자 중대일자가 사자들에게 물었다.


    "중대일자가 사자들에게 여쭙습니다. 달탄에는 좁은 골짜기에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짚푸라기와 나무판자와 흙더미로 집을 만들어 살고 있으니, 이 사람들에게 술을 나눠 주고 춤을 추게 하려면 매우 많은 재물이 들 것입니다. 그 재물을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그러자, 한 사자가 답하였다.


    "그대가 알리기로, 산사태를 막고, 추운 날 덮을 거적데기를 구하기 위하여 많은 재물을 모아 놓지 않았나? 지금 이와 같이 좋은 계책이 생겼으니, 그대가 말한 방책은 멈추고, 그 재물을 모두 써서 달탄 사람들에게 술을 나누어 주고 춤꾼을 보내어 모두 밤새 춤추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러자, 노쇠한 일자소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무슨 짓인가?


    지금 해와 달을 보는 일자라 하는 사람으로, 지진이 일어나는 곳에서 술잔치를 벌여 지진을 막자는 말을 따르려 하는가?


    지금 말하는 것이, 즐겁게 사는 집에서 지진을 작게 겪고, 괴롭게 사는 집에서 지진을 크게 겪었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즐겁게 사는 집은 곧 부유한 집이 많으니, 집이 튼튼하여 지진에 무사하였고, 괴롭게 사는 집은 가난한 집이 많으니, 집이 약하여 지진에 무너져 다친 사람들이 많았을 뿐인 것이다. 그것을 두고, 무슨 백성의 마음과 지진이 따르는가, 마는가, 하는 헛된 소리를 말하는가?"


    노쇠한 일자소형이 소리치자 일자대형이 그를 말리려 하였다. 한 사자가 그를 꾸짖었다.


    "공께서는 어찌 감히 국상께서 세우신 높은 뜻을 거스르는 소리를 떠드는가? 공은 이제 일자 일을 그만 두고 길바닥에서 구걸을 하며 먹고 살려고 하시오?"


    일자소형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소리쳤다.


    "그 말이 옳다. 일자의 일을 그만두고 나갈 것이다. 내가 오늘부터 일자가 아니다.


    늙은이는 먹는 것이 적고, 살 날은 많지 않으니, 목숨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렵겠는가?  어찌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하여, 일자라 하면서 하늘을 속이겠는가?"


    곧 많은 일자들이 노쇠한 일자소형에게 달라 붙어 말리려 하였으므로, 크게 소란하였다.


    이후에, 다들 어두운 표정으로 나서는 데, 소대일자만 얼굴 표정이 밝았으므로, 옥저아이가 소대일자에게 물었다.


    "어찌 소대일자께서는 또 홀로 기쁘십니까?"


    그러자 소대일자가 답하였다.


    "나에게 밤하늘의 얼룩덜룩 잘 눈에 뜨이지도 않는 별을 따지는 것이 서툴다 하여 꾸짖던 무리들이 우습지 아니한가. 저들이 그토록 벌벌 떠는 국상의 사자들이 도리어 나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다. 일자의 일이라 하더라도, 중한 것은 별과 달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고,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참된 것이다.


    그것을 모르니, 저 일자들은 저와 같이 쩔쩔 매는 것이다."


    소대일자는 이제 사자들에게 칭송을 들었으므로, 더욱 힘이 나서 평소보다 훨씬 더 힘을 기울여 여러 집들을 찾아 다녔다. 그리하여, 소대일자는 보통 때보다 더 많은 집을 찾아 갔으니, 그러다가 꽤 먼 곳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소대일자는 그러다 길에서 언뜻 한 말장수를 보았다. 가만히 보니, 예전에 무희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그 말장수였다.


    소대일자는 바로 따라가려다가 얼핏 보니, 말장수 곁에 여러 사람이 있는 듯 하여, 잠시 떨어져 어느 집의 담 옆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보니, 말장수 옆에 가까이 있던 한 여자가 말장수로부터 떨어져 떠나가는 데, 꼭 그 모습이 무희와 같아 보였다. 소대일자는 놀라서 갑자기 뛰쳐나가려다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며, 혼자 말하기로,


    "이는, 내가 무희의 생각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기에, 비슷한 사람을 보면 항상 무희부터 떠올리기 때문이다. 일전에도 이때문에 무희를 보고 국상이 함께 노닌다는 여자를 떠올리지 않았던가."


    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려 말장수를 몰래 따라가 보기로 하였다. 따라가보면서 보니, 말장수는 분명히 그때의 말장수임에 분명하였다. 소대일자가 계속 좇아가니 말장수는 한 집으로 들어가므로, 소대일자는 짐짓 우연히 만난 듯이 하고는 말장수가 들어간 집의 문을 두드렸다.


    말장수가 나타나자 소대일자가 말했다.


    "저는 일자로, 지진에 대해 알아보고, 국상 어르신의 뜻을 받들고자, 여러 사람들께 이런 저런 것을 묻고 다니고 있습니다. 공께서도 잠깐 제가 묻는 말에 답을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말장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소대일자는 말장수의 답을 듣기도 전에, 말장수의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장수에게 물어 보았다.


    "공께서는 괴롭고 울며 사십니까? 혹은 즐겁고 웃으며 사십니까?"


    말장수는 무뚝뚝하였다.


    "여름날 매미나 비온 뒤의 개구리가 아니라면 어찌 항상 울기만 할 것이며,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항상 웃기만 하겠소?"


    소대일자는 그 답을 듣지도 않고 말장수의 집을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다. 그런데 말장수의 집 한쪽 구석에, 소대일자가 무희에게 사주었던 덧소매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소대일자가 놀라서 말장수에게 갑자기 따졌다.


    "공께서는 여자와 함께 사십니까?"


    말장수가 답했다.


    "말을 팔고 사는 것이 나의 일인데,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이 이치인 줄 모르겠소?"


    그러자, 소대일자가 분하여 소리쳤다.


    "공과 함께 사는 여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소대일자가 소리치자, 말장수가 문득 의아해 하여 소대일자를 노려 보았다. 소대일자가 보니, 말장수의 몸집이 건장하고 힘이 세어 보였으므로, 소대일자는 함부로 행패를 부리다가는 도리어 화를 당하겠다 생각하고는,


    "원통하구나! 원통하구나! 이와 같이 내가 속았구나!"


    하고 소리치면서, 바람과 같이 달려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소대일자는 그대로 뛰어나가 즉시 무희를 찾아 갔다. 무희가 춤을 출 때가 멀었으므로, 주인이 나타나자, 소대일자는 짐짓 모르는채 하고,


    "오늘은 배가 고파 일찍 왔으니, 주인이 잘 구해다 주는 호랑이뼈와 같은 값으로 사다 먹게 되는 생선가시 끓인 상한 냄새가 나는 더러운 국을 주십시오."


    하였다. 주인이 웃어 보이고는,


    "공께서 하는 우스갯소리는 항상 재미가 있습니다."


    하며, 국을 내어 주었다.


    이윽고 무희가 나타나자, 소대일자는 무희의 손을 붙잡고는 강하게 밖으로 끌어내었다. 소대일자가 순식간에 움직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보고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소대일자가 성난 얼굴로 소리치며 말하자, 무희는 한참 말이 없었다.


    한참을 더 소대일자가 이것저것을 더 들어 밝혀 말하며 소리질렀다. 그러자, 무희는 갑자기 푹 주저 앉으며, 한동안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소리내어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대일자는 그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없앤 여러 재물들을 마음속으로 줄줄이 읊으면서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소리쳐 무희를 꾸짖었다.


    "이와 같이 많은 사정이 분명하니, 그대는 이제 다른 여러말로 그 말장수와 그대가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할 것이오."


    마침내, 무희가 우는 가운데에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가난한 몸으로 달탄의 누추한 집에서 살고 있었으나, 이제 지진으로 그 살 집을 잃었습니다. 제가 비록 춤을 잘 춘다 한들, 옛날 부정매(負鼎妹)와 같이 물가에서 춤을 추면 지나가는 군사들이 모두 멈출 지경이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니 고작 춤추는 재주로 어찌 집을 잃고 이 추운 겨울에 살기가 쉽겠습니까.


    그리하여 살 집이 없으니, 이곳의 춤을 좋아하는 말장수에게 빌어 그의 집에 잠깐 자리를 빌려 지내는 것뿐 입니다.


    제가 공과 같이 귀한 분과 함께 노닐면서, 이와 같은 것이 어찌 흠이 되고 죄가 되는 것인 줄 몰랐겠습니까? 하오나 제가 이를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공을 속여서 공께 벌을 받아 공으로부터 멀어지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공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공의 곁에 가까이 있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공께는 제가 큰 죄를 지었으니, 이제부터는 공의 곁에는 감히 제가 멀리서도 깃들지 않겠거니와, 공께서 다시 저를 찾지 않는다 하여도, 죽어서 없어지고 난 뒤에까지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무희는 말을 마치고 계속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렇게 되자, 소대일자는 이제 무희가 진정으로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속으로 드는 생각이, 지금 이와 같이 되어 그대로 무희와 멀어진다하면, 그동안 무희에게 준 그 많은 재물과 옷과 장신구들은 그대로 다 무희의 것이 되어 같이 떨어져 나가고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소대일자는 몹시 아까운 생각이 들어, 무희에게 말하였다.


    "지금 그대가 당장 그 말장수의 집에서 나온다면, 내 그대를 용서해 줄 것이오."


    그러자, 무희가 다시 서럽게 울면서 계속 말하였다.


    "공께서는 제가 아는 가장 고귀한 분으로, 저를 별과 같이 일컬어 주신 분입니다. 하오니, 저는 오직 공의 뜻만을 따를 뿐입니다. 저는 항상 공께 바치는 몸짓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 말 한마디를 하고 걸음 한 걸음을 내 딛을 때마다 공께서 바라는 것만을 하고 싶어하느라 마음이 달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에 갑자기 집에서 나오면 저는 어디에서 살겠습니까? 또한 가끔 말장수가 집에서 집어다 주는 양식이 없으면, 저는 발을 삐어 춤을 출 수 없는 밤에 무엇을 먹고 지내겠습니까?"


    소대일자가 그 말에 답을 못하고 난감해 하였다. 그러자, 무희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대일자의 얼굴에 부비었다.


    "공께서 저에게 다만 순금 몇 근만 마련해 주신다면, 저는 이제 제 집을 짓고 오직 공만을 맞으며 살 것입니다. 또한 순금 몇 근을 더 마련해 주신다면, 공께서 여러 사람이 제가 춤추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싫다하시니 춤을 추는 것 또한 그만 두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소대일자는 생각도 하기 전에, 곧바로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순금 몇 근이라는 재물을 내가 어찌 구하겠는가?"


    무희가 훌쩍이며 말을 이어 하였다.


    "공께서 집을 만들어 주시고, 부유하게 갖추어 준다 하시면, 설령 제가 그 말장수와 자식 셋을 낳아 같이 기르고 있다한들, 고작 달탄을 떠도는 말장수 보다야 고귀하고 믿음직한 공을 따르려 하지 않겠습니까?


    정녕 황금 몇 근을 얻어 제가 머물 곳을 구할 수 없겠습니까? 저는 공의 곁에서 공에게 안겨 지내고 따르며 지내는 것만 바라고 있으니, 이는 오직 남녀의 정분 밖에 모르는 멍청한 어린 여자의 마음입니다."


    소대일자는 그 말을 듣고보니 정말로 그럴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희가 춤을 추러 나가자, 소대일자는 마음이 울적하였다. 소대일자는 주인에게 칠일내성이라 불리우는 술을 가져 오라 하였다.


    "무희의 권하지 않고 술을 내어 오도록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참으로 이곳에서 먹는 술은 그 술값이 과연 세상이 망해 없어질 때라 할만하구나."


    소대일자는 밤새 홀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소대일자는 혹시 무희가 나와서 돌며 춤을 추지는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밤이 새어 아침이 밝도록 무희는 나오지 않았다.


    소대일자가 집에 들어가 보니, 집 앞 길에 부인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이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인은 소대일자를 보자 스스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것을 생각하여,


    "공께서 얼굴을 찡그리지 말라한 것을 잊었소."


    하며 사과하고는 곧 다시 웃는 낯으로 바꾸었다. 부인이 소대일자에게 말하기로,


    "어찌 오늘은 아침이 다 밝도록 일을 하다 오시오? 눈이 아프고 잠이 오는 것이 심하지 않으시오?"


    하였다. 소대일자가 부인에게 물었다.


    "밤새 나와서 기다린 것이오?"


    부인이 답하기를,


    "저는 추울 때 마다 방안에 들어가서 몸이라도 녹일 수 있겠지만, 택상석 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밤새 하늘을 보는 공께서는 얼마나 더 추우셨겠소."


    하였다.


    그때, 소대일자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으니, 바로 중대일자였다. 중대일자가 나타나니, 길 한 켠에서 중대일자의 부인이 나타났다. 중대일자의 부인이 나타나자, 소대일자의 부인은 몸을 궆어 한쪽 무릎을 꿇어 땅에 끌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소대일자가 보니, 중대일자의 부인은 중대일자보다도 더욱 더 나이가 어려, 오히려 소녀와 같은 기색이 있었다. 중대일자가 그 부인에게 말했다.


    "오늘 국상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자들이 너무나 얼토당토 않은 일을 내세우므로, 혹시나 다른 방도가 있을까 하여 궁리하느라 밤을 새우다 들어 왔소."


    그리고, 중대일자와 그 부인이 다 들어가고 난 다음에야, 소대일자의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소대일자가 부인에게 물었다.


    "비록 저 자가 나보다 높은 중대일자이기는 하나, 그대와 내가 모두 저 자와 저 자의 부인보다 나이가 많고, 또한 내가 저 자보다 일자가 된 지 오래 되었소. 어찌 그대는 저 자의 부인 따위를 두려워하며, 그와 같이 무릎을 꿇어 옥저에서 온 종과 같이 인사하였소?"


    그러자 부인이 답하기를,


    "나는 본시 미천한 출신이라, 자리가 높아지기 전에는 이와 같이 할 수 밖에 없소."


    하였다. 그러자, 소대일자가 아직 술이 덜깨었으므로, 하늘을 보고 욕을 하였다.


    "저 자는 어린 나이에 중대일자가 되어 매양 나이가 들어서도 소대일자에 머물러 있는 나를 마치 쏟아지는 폭포가 말발굽에 튀는 구정물을 생각하듯 하니, 내가 저 자를 예로부터 미워하였다."


    부인이 소대일자를 달래며 말하였다.


    "그러나, 저 자와 같이 인물이 좋으면, 주위에 사모하는 여자들이 많으니 부인이 애를 끊는 것이오. 부러워할 것이 없소."


    그 말을 들으니, 소대일자는 또한 중대일자는 인물이 좋은데, 자신은 인물이 좋지 않다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희의 일이 떠오르기도 하여, 갑자기 왠갖 이상한 생각이 들므로,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길을 걸어 갔다. 갑자기 말없이 고요히 한참을 걸어 가고 있으니, 조용한 가운데 부인이 한숨을 쉬더니, 들릴듯 말듯이 말하였다.


    "어릴적에 산 속에서 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셋이 있으니, 하나는 좋은 짝이요, 또 하나는 재물이요, 다른 하나는 높은 자리라 하였던 것을 기억하오.


    그런데, 내가 산 속에서 살며 얼굴에 흙먼지가 묻고 손마디로 나무뿌리만 만지던 사람으로, 공과 같이 별의 역수(歷數)를 따져 밝히는 분을 만나, 지금껏 이처럼 잘 지내고 있으니, 좋은 짝은 하늘이 도와준 까닭으로 오래전에 이미 벌써 구했다 할 것이오.


    또한, 많은 재물을 쓰지 않고 모으고 아끼며 살아 왔으니, 어느새 궤짝안에 금과 은으로 빚은 황금천, 백은천이 있으므로, 비록 수정으로 성을 쌓을 만한 재물은 아닐 지언정, 내 살면서 넉넉히 여길만한 재물도  구했다고 할 것이오.


    다만, 아직도 여전히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이라 불리울 뿐이니, 그것이 내 큰 아쉬움이오. 내가 비록 형(兄)의 자리에 오른 사람의 부인으로 받들어 지는 것은 까마득하여 바라보지도 못할 것이나, 다만 까불거리며 노는 심부름하는 아이 따위가 '대부인'(大夫人)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한 번 되어 보았으면, 그만하면 내 무슨 더 부러울 것이 있겠소?"


    소대일자가 그 말이 들렸으므로, 문득 돌아 보았다. 그러자 부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일전에 지진이 일어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공께서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저에게 탓하기를, 지체를 탐내는 것이 아니냐고 하였소. 내가 그날 아니라 하며 미안하다고 빌었는데, 사실 그날 그토록 미안해 한 까닭인 즉슨, 내가 높은 자리를 탐내는 것이 사실은 내 참마음이었기 때문이오.


    이제 공께서도 일자의 일을 하면서 벌써 지나간 햇수가 넉넉한 데, 아직도 거느리는 사람이 없고 받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아쉬워 하여, 그날 공에게 그만 그와 같은 말을 하며, 어리광을 부린 것이오. 내가 자리를 탐내는 것이 이와 같이 나쁜 버릇으로 가시지를 않고 있으니, 그날 공에게 그와 같이 투정부린 것은 참으로 잘못이오."


    소대일자가 부인의 얼굴을 쳐다보니, 이른 아침 빛이 밝지 않아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눈에 눈물이 있는 것 같았다.


 


    6.
    이튿날 채 술이 깨지 않고, 잠이 깨지 않은 채로, 소대일자는 일자들과 사자들이 모인 곳에 나아 갔다. 중대일자가 사자들 앞에 나아가 앉아 있었다. 중대일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지, 눈에 핏발이 가득하였다. 중대일자가 말하였다.


    "사자께 중대일자가 마지막으로 아룁니다. 제가 비록 별을 보는 일만 알기에 국상의 뜻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진이 난 곳에 술을 마시게 하고 춤을 추게 하여 지진을 쫓는다는 말은 아무래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어제 밤새 살펴 보니, 이제 달탄의 사람들에게 술을 돌리고, 춤 추는 사람들을 풀어 놓게 하려면 재물이 매우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껏 산사태를 막고,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모아 놓은 재물을 모두 쓴다고 하여도 모자라니, 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디, 멈추어 주십시오."


    그러자 사자가 걱정하였다.


    "백성의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하는 것이 국상의 뜻이며, 이때문에 백성이 즐거워하면 지진도 물러간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가? 그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어려울 것이 없으나, 재물이 부족하다면 일을 벌일 수가 없으니, 그것은 과연 큰 일이다. 그렇다면, 곧 옛 방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인가?"


    사자가 근심하며 좌우를 둘러보며 속삭였다. 소대일자는 중대일자를 한 번 노려보다니, 갑자기 중대일자를 꾸짖듯이 말하였다.


    "공께서는 국상의 뜻을 모르십니까? 어찌 이 중요한 일을 그르치려 하십니까.


    재물이 부족하다 하시면, 저에게 좋은 수가 있습니다. 수인 즉슨, 이러합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잠자다가 사람이 깔리지 않도록 꽹가리를 쳐서 깨우기 위하여, 달탄 사람들에게 꽹가리를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이제, 지진을 쫓아버리면, 꽹가리가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하오니, 그 사람들에게 다시 꽹가리를 걷어 온 뒤에, 그 꽹가리를 팔아서 부족한 재물을 마련하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사자들이 감탄하였다.


    "과연 좋은 방책이다. 백성이 즐거워 하여 지진이 사라지면, 꽹가리가 다 무슨 필요겠는가?"


    그러나 중대일자는 지지 않고 따졌다.


    "그러나 꽹가리의 값으로도 충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소대일자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더니 소대일자가 답을 말하였다.


    "하오면, 사자들께서 가져오신 국상의 깃발을 높이 걸고, 부유한 자들의 집을 돌아다니시면서 재물을 주고 싶은 만큼 주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국상의 깃발을 앞세우면, 요즘과 같은 때에 제 몸을 아끼는 부유한 자로 겁을 먹는 자가 많을 것이니, 반드시 재물을 모으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중대일자가 소리를 높여 따졌다.


    "사자께 중대일자가 다시 아룁니다. 재물을 써서 국상의 뜻대로 지진을 막으려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고는 하나, 지진에 대한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 한가지 방책으로 모든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국상이 보내는 차주부는 높은 자리의 현명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제 지금 쓰려는 방책은 어제 오늘 사이에 새롭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즉, 만약 그 분이 우리가 쓰는 다만 한가지 방책을 크게 믿지 못하면, 우리는 어찌하겠습니까? 지난날 지진을 맞히지 못한 죄와, 앞으로 지진을 대비할 방법을 찾지 못한 죄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대답만 마련해 놓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틈도 주지 않고 소대일자가 바로 뒤따라 말하였다.


    "하오니, 저에게 또다시 계책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크게는 일대의 천문과 역수를 따지고, 작게는 달탄의 지진을 다루기 때문에, 수천, 수만의 사람과 수백리의 땅덩어리, 수십의 산과 강이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다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니, 오직 차주부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수천 수만의 일을 다루는 것이라 하지만, 사실 차주부 한 분만 잘 움직일 수 있다하면, 우리는 아무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적당히 정성을 들여 차주부 어른께 대접을 극진히 하여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바치고, 호사스런 자리를 베풀어 주무시게 하면서, 저희 잘못을 용서해 줄 것을 빌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 줄 것을 도와 달라고 또 빌면, 어찌 틀림이 있겠습니까?


    춤을 추는 여자 또한 수백의 사람 사이에서 몸을 움직일 때에, 모든 사람의 눈길을 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눈이 마주친 하나 둘의 사람과 마음을 맞추고 애틋함을 통하여,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로 많은 정성을 기울여 차주부를 대접하며 빌고 또 비는 것이야말로, 한 두 사람을 움직여, 여러 사람의 일을 구하는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일자라 하더라도 별을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아까워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차주부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 차주부가 오시면 차주부를 군후와 같이 극히 높게 모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소대일자가 말을 마치자, 소대일자는 스스로도 말에 뿌듯해 하였다. 사자들 역시 감탄을 거듭하였다. 이윽고, 세 사자들이 서로 속삭이며 의논하더니, 좌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지금 이 소대일자는 국상의 뜻을 높이 받들어, 백성의 마음을 움직여 지진을 물리친다는 대단한 방책을 만들었으며, 또한 기이한 술수로 많은 어려움을 풀었습니다. 이와 같이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어찌 상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한 사자가 소대일자를 향하여 물었다.


    "소대일자는 마음을 정하는 대로 말을 하시오. 그대가 바라는 것이 황금이면 수 근을 갖게 하게 해 주거니와, 자리를 바란다면, 마침 흉흉한 소리를 하며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자소형의 자리가 비었으니, 그대는 일자소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오."


    소대일자는 크게 놀라서 엎드려 절을 하며,


    "국상 겸 대주부께 감사하며, 사자께 감사드립니다."


    하였다.


    사자들이 나가자, 일자대형이 굳은 얼굴로 좌중을 향해 물었다.


    "달탄에 가서 꽹가리를 다시 걷어 와야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몇몇 일자들이 소대일자를 힐끗힐끗 보았다. 그러자, 중대일자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 집에 있는 수레를 갖고 가겠습니다. 술판과 춤판으로 없애버릴 재물이니,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남으려거든 팔아버리는 꽹가리 값이라도 제대로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중대일자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이윽고, 모든 일자들이 흩어질 때가 되자, 일자대형이 가만히 소대일자를 불렀다. 소대일자는 일자대형이 자신을 또 무슨 나쁜 말로 꾸짖을까하여 걱정했다. 그러나, 일자대형은 가만히 수염을 쓰다듬을 뿐으로, 화를 내지 않았다.


    "이제, 그대가 한 말이 국상의 뜻과 같다 하여 지진을 다스리는 법으로 뽑히게 되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한 동안 그대의 말을 따라 세상에서 지진을 따질 지도 모르니, 그대가 어찌 중한 책임을 맡았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지금껏 일자라고 하면서, 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 내가 그것이 걱정이다. 비록 그대가 말한 지진에 대한 것이, 별이나 달이나 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나, 또한 일자들 사이에서 이와 같이 큰 일을 하려거든 아는 것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하여, 내가 직접 그려 놓은 지도와 직접 짜 놓은 자를 주겠다. 이것은 내가 정밀히 만들어 놓은 것이니, 사용하기가 편하고 따지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부디 부지런히 익혀, 누가 새로 지진을 다스리는 법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찾아와 이런저런 일을 묻는다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하라."


    일자대형은 그리고 소대일자에게 석판 하나와 나무에 눈금이 이리저리 새겨진 자 하나를 주었다.


    "대형께서 이와 같은 것을 직접 내리시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소대일자가 감격하여 무릎을 꿇고 일자대형이 주는 것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일자대형은 한숨을 한번 푹 길게 쉬더니,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소대일자는 느끼는 바가 있어서, 부지런히 석판에 새겨진 별과 해의 지도를 읽고, 자를 대어 보면서, 별을 보는 것을 익혔다. 그런데, 아무래도 워낙에 틀리는 일이 잦았던 지라, 잘 알 수가 없었다. 자연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곧 사자들에게 황금을 상으로 달라고 할지, 일자소형의 자리를 상으로 달라고 할지 그것을 근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자소형의 자리를 상으로 달라고 할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민을 하고 있으니, 옥저아이가 지나가며 묻기로,


    "오늘 꽹가리를 가지러 중대일자께서 혼자 가셨으므로, 저는 일이 없어 기쁩니다. 그런데, 여느 때에 항상 즐거이 웃으시던 소대일자께서 오늘은 왜이리 근심스러운 얼굴이십니까?"


    하였다. 그러자, 소대일자는 이렇게 답하였다.


    "사람이 이루어야 하는 것이 좋은 짝과, 많은 재물과, 높은 자리라고 하더라.


    이제 좋은 짝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 여기저기 다니며 발을 옮기며 손을 휘젓는 맹수가 짝을 삼켰으며,


    재물을 모아서 궤짝속에 꼭꼭 숨겨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 불도 때지 않는 솥 속에다가 집어 넣어 다 태워 없애는 도적에게 모두 도둑 맞아 버렸다.


    이제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어서 높은 자리인데, 오늘 이것 하나를 건져 가야 하는 것이겠느냐?"


    그리하여 소대일자가 생각해보니, 만약 일자소형의 자리에까지 오른다면, 자신과 부인이 굽신거렸던 중대일자보다도 훨씬 더 높은 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일자대형의 바로 아래에 있는 자리였으니, 근방의 일자들 사이에서는 부러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과연, 부인이 높은 자리로는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만 하였다.


    그러나, 해가 지고, 밤이 되어, 별이 뜨자, 또다시 소대일자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밤이 되자, 소대일자는 별을 보기 위해, 배를 저어 연못 가운데에 있는 택상석에 가서 올라 앉았다. 소대일자는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늘 이곳저곳을 보았다. 그러나 호선무를 보러 가던 때에 이르게 되자, 소대일자는 자기도 모르게 흥얼흥얼 호선무의 음악 곡조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하니, 빙빙 돌며 빠르게 온몸을 움직이며 격하고 또한 급하게 춤을 추는 무희의 모습이 생생히 생각났다. 이내 하늘에 별이 하나 둘 떠오르니, 밤하늘이 가득 무희의 몸 동작 처럼 보여서, 이 별과 저 별로 무희가 옮겨가며 움직이면서 춤을 추는 듯 하였다.


    소대일자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읊기를,


    "그 몸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 얼굴이 방긋 웃는 모습과, 들으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소리와, 또한 큼직큼직한 몸집이 멀리서부터 내가 허리를 굽혀야 할만큼 귀하게 보이는 시원한 빛을 어찌 버리겠느냐? 그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언제 또 있어서 이와 같이 나를 믿고 귀한 일자라 하며, 내가 조금만 성을 낼때마다 애처롭게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매양 나를 따르겠는가?"


    하였다.


    그리하여, 자꾸 무희의 생각이 나기 시작하니, 무희와 함께 지샜던 밤들이 나날이 떠올랐으며, 또한 그 때마다 반가워하던 마음과 애가 타던 마음이 속속들이 다시 샘솟았다. 이윽고 밤하늘 한 켠을 보니,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의 별빛 한 사이로, 무희가 나타나 눈물을 뚝뚝흘리면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하며 울고 있는 듯 하였다.


    "이제 나의 뜻대로 지진을 말하게 되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한들, 국상의 뜻을 내가 말하고 있으니 자리가 높아지지 못하겠는가. 그러니 자리를 굳이 급하게 바랄 필요가 았겠는가?


    그러나, 지금 내가 황금 몇 근을 얻어 무희를 내 곁에 들인다면, 날과 밤을 가리지 않고 무희와 함께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재물은 무엇에 쓰며, 높은 자리에 오른 들 무슨 까닭인가. 무희가 지금도 애타게 나를 보고 싶어하며 그리워하거늘, 어찌 그것을 그대로 하지 못하겠는가."


    곧 소대일자는 무희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가슴이 터지도록 일어나 견딜 수 없을 듯 하였다.


    "무희가 버릇이 그러하게 되어 비록 내가 답답할 때가 있다하나, 본심은 오직 믿고 따르는 것이 나 뿐이거늘, 어찌 그것을 모르고, 지진으로 집을 잃고 밤을 지새워 춤을 추어 끼니를 잇는 아이가 나에게만 기대고 있는 것을 실망시킨단 말인가?"


    소대일자는 속이 뜨거워져서 길게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였다.


    그런데, 잠을 자러 들어가던 옥저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우습다 생각하여, 소리 쳐서 물었다.


    "일자대형께서, 조금이라도 별 보는 것을 익히라 하였는데, 어찌 그와 같이 다른 생각에 빠지다 못하여 다른 생각 속에 가라앉아 계십니까?"


    그러자, 소대일자는 문득 갑자기 일어서서 하늘 한쪽을 보며, 짐짓 아닌 척 하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 나는 별을 보는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소대일자는 하늘 저 끝을 보며 유심히 별을 보는 흉내를 내었다. 그런데, 그때 소대일자는 갑자기 크게 깨닫는 것이 있었다. 소대일자는 깨닫는 바에 놀라서 그만 중심을 잃고 기우뚱 거리다가, 택상석에서 넘어져, 연못에 빠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옥저아이가 혀를 찼다.


    "생각만 엉뚱한 것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몸까지 엉뚱한 곳에 빠졌구나."


 


    7.
    소대일자는 연못물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급히 호선무를 보는 곳으로 달려 갔다. 소대일자의 온몸은 물이 젖어 옷에서 물줄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소대일자는 갖가지 치솟아 오르는 생각에, 옷을 갈아 입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달렸다.


    소대일자가 호선무를 보는 곳에 와 보니, 무희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고 있었으며, 빠른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 본즉, 한 켠에 주인이 있었다. 주인은 한 자리에서 국과 술을 가져다 두고 먹고 있었다. 소대일자는 주인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주인이 소대일자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오늘은 무희가 공께서 서운한 말을 하셨다하여 얼굴을 보기 괴롭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께서는 왜 이토록 온몸이 젖으셨습니까?"


    소대일자는 그에는 답도 하지 않고, 성을 내며 소리쳤다.


    "주인께서 저를 처음 본 날부터 말씀하시기로, 무희는 밤마다 제가 가르쳐준 무희의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때마다 밖에 나가 밤하늘을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주인이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껴 작은 목소리로 답하려 하였다. 주인은 그래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젖은 소대일자의 몸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붙으려 하였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무희가 공을 생각하는 진실한 마음이 그처럼 바뀌는 것이 없으며, 질박하여 도리어 맑은 것이 귀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대일자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을 하지 않고, 노려보며 숨소리만 고르고 있었다. 소대일자가 다시 주인에게 외쳤다.


    "그러나, 제가 무희에게 가르쳐 준 별은 사실은 무희와는 아무 관계 없이 그냥 제 마음대로 고른 별 입니다. 그러니 그 별은 제가 잘 아는 별인즉, 바로 북극성입니다. 제가 별을 보는 일자라 하면서, 옷이라 하면서 걸레라고 하고, 무기라고 하면서 바늘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합니다만, 그래도 북극성을 모르겠습니까?


    북극성은 하늘 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는 별이니, 때가 가고, 밤이 가고, 달이 간다 한들, 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뜨고 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주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없어졌으니, 곧 얼굴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대일자가 말을 다시 계속하였다.


    "그런데, 주인께서는 무희가 제가 가르쳐 준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며 좋아한다 하였으니, 이는 있지 않은 일을 지어낸 거짓말입니다. 그러니 주인과 무희가 함께 짜고 저를 혹하게 하려고 지어낸 것이 아닙니까? 그리하여, 무희가 저에게 기대어 이런 저런 것을 얻어 가게 하고, 매양 이곳에 찾아와 많은 재물을 쓰게 하려고 같이 속인 것 아닙니까?


    무희가 이곳에서 항상 덧소매를 사고 장신구를 사고 옷을 산 것이 그토록 비싼 까닭은 그 값을 주인과 무희가 뒤에서 함께 나누어 쌓아 놓기 때문이 아닙니까? 무희가 몰래 말장수 소장수 개장수 돼지장수 양장수 새장수 뱀장수를 만날 때에 바로 그대와 함께 짜고 거짓말을 맞추어 나를 속인 것 아닙니까?"


    주인이 머뭇거리며 물러나려 하자, 소대일자는 곧 국그릇과 술이 놓여 있는 상을 들어 엎어버렸다. 상이 엎어지면서 큰 소리가 났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았으며, 춤을 추는 사람 중에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음악 소리가 멈추고, 사람들의 눈길이 향하자, 온몸이 젖어 물을 뚝뚝 흘리던 소대일자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옛날 산상태후(山上太后)가 태자를 미워할 때 국을 엎어버린 일이 있었던 후에, 사람들이 매양 울분이 쌓이고, 속이 터지면, 엎어버린다, 엎어버린다 하더니만, 과연 이렇게 확 엎어버리니 기분이 가히 통쾌하구나."


    그 때 두 사나이가 나타나 소대일자의 양팔을 붙잡았다. 소대일자는 그것을 뿌리치려 하였으나, 자세히 보니 한 사나이의 소매 안에 조그마한 쇠뇌 장치가 있어서 작은 화살을 발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 사나이가 소매를 가까이 하여 소대일자의 가슴팍을 향해 화살촉을 가까이 대었다. 그러자 소대일자가 겁을 먹고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두 사나이는 소대일자를 끌고 나가서 행인들이 보이지 않는 달탄의 외지고 깊숙한 곳까지 데리고 갔다. 작은 집들이 어지러이 모여 있고, 걸인과 불치병에 걸린 자들이 보는 이 없이 죽어가는 으슥한 곳이었으니, 눈에 뜨이지 않고 만약 두 사나이가 소대일자를 죽인다 하여도 알려질 길이 없는 곳이었다.


    소대일자가 가만히 보니, 두 사나이는 처음 소대일자가 호선무를 보러 왔을 때, 소대일자 양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었다. 소대일자가 알아보고 다급히 말하기를,


    "그대들은 나와 옆에 앉아 춤을 보았던 분들이 아니오? 나는 도적이 아니라 그대와 같은 처지로 주인에게 속은 사람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나를 해하지 말고 주인을 탓해야 하오."


    하였다. 그랬더니, 두 사나이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자는 일자로서 꽹가리를 지고 다니는 심부름이나 한다 하더니, 과연 바보가 아닌가? 우리야말로 주인의 부하이다.


    처음 호선무를 보러 온 사람은 솥 안에 춤 값을 조금만 낼 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곁에서 먼저 듬뿍 많은 값을 집어 넣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 온 사람은 눈치를 보다가 우리가 낸 만큼 내게 되는 데, 그를 위하여 주인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고, 항상 처음 찾아온 사람만 골라서 그 곁에서 춤 값을 크게 던져 놓도록 우리에게 시키는 것이다."


    소대일자가 그 말을 듣고 분하여 바둥거렸다. 그러자, 사나이가 소매에 숨긴 쇠뇌를 겨누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갑자기 울부짖는 듯한 이상한 사람 소리가 잔뜩 들려오더니, 곧이어 사람들이 여럿 몰려 들었다. 더러운 옷을 입은 남녀 수십이 있었는데, 이들은 짐승 잡는 활과 낫, 몽둥이 따위를 들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말하였다.


    "우리는 가한신의 비기를 기록해 놓은 책을 믿고 따르나니, 이제 세상은 곧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먹고 즐길 제물을 다쓰고 이제 이러한 방법으로 너희들의 재물을 빼앗아 더 즐기려고 한다. 그런즉 너희들은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어차피 세상이 없어질 때 없어질 것들이 조금 더 빨리 없어진다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이들은 소대일자와 소대일자를 붙들고 있던 사나이 둘을 일제히 때리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소대일자는 갖고 있던 모든 재물을 다 빼앗기고 신발과 머리에 쓴 관까지 빼앗겼으며, 온몸에 피멍이 든채로 뒹굴고 있게 되었다. 또, 소대일자를 붙들고 있던 두 사나이는 좀 더 많은 재물을 들고 있었으며, 수박치기 솜씨를 쓰고, 쇠뇌를 사용하여 싸우려 하였으므로 더욱 더 많이 두들겨 맞았다. 소대일자는 좀 덜 맞은 덕분에 먼저 깨어났으므로, 급히 일어나 덜덜 떨면서 맨발로 뛰어 허겁지겁 좌영성실로 뛰어 들어 갔다.


    소대일자는 자고 있는 옥저아이를 깨워,


    "너는 혹시 제사를 지낼때 입는 옷과 모자를 둔 것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옥저아이가 온몸을 다친 소대일자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갖은 많은 일을 겪는 분인지 알고는 있었습니다만은, 이것은 또 무슨 일입니까? 오랫만에 보시지도 않은 별을 보라 하였다고, 별에 사는 황룡을 만나기라도 하신 것입니까?"


    옥저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옷을 내어 왔다. 소대일자는 마침내 힘이 다하였으므로, 물을 마시며 쉬면서, 옥저아이가 쉬는 머슴과 일꾼들의 자리에서 날이 밝도록 졸고 있다가, 날이 샐 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아침이 밝아 오자, 소대일자는 곧 사자들을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사자들이 물었다.


    "그대는 그대가 받고 싶은 상을 정했느냐?"


    소대일자는 망설임 없이 답하였다.


    "저는 일자소형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한 사자가 지도를 살펴보고는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가 밝히고 따졌던 달탄 땅을 다스리는 일자로서, 일자소형의 자리를 맡도록 하라."


    소대일자가 다시 한 번 절을 올리며 감사 하였다.


    "국상 겸 대주부께 감사하며, 사자께 감사드립니다."


    소대일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곧바로 다른 모든 일을 젖혀 두고 집으로 달려 갔다. 집에 달려 가는 길에 보니, 옥저아이가 차주부를 맞을 채비를 하느라 길에 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소대일자는 옥저아이에게,


    "나와 같이 잠깐 집에 가자."


    하고는 옥저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 보니, 부인이 이제 텅비어 있는 궤짝 위에 아무것도 모른채 꼼짝 않고 그대로 올라 앉아서는, 예전에 자신이 뿌리칠 때 뜯어졌던 옷을 꿰메고 있었다. 부인이 갑자기 다시 돌아온  소대일자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공께서 새벽에 돌아올 때에 내 자세히 묻지는 못하였으나, 옷차림이 어제와 달랐으며 얼굴과 손등에 상처가 보였으므로 걱정이 많았소.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오? 설혹 무슨 큰 일을 당하신 것이 아니오?"


    허약하고 파리한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소대일자는 싱긋이 웃었다. 부인이 영문을 몰라 이리저리 살피는데, 옆에 있는 옥저아이가 부인을 보고 인사를 하였다.


    "대부인, 잘 주무셨습니까?"


    부인이 대부인이라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여, 잠시 소대일자의 얼굴을 보더니, 곧 얼굴이 환하여 기뻐하였다. 소대일자가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공을 세워 자리가 높아졌으니, 이제 저 중대일자의 부인이라 하는 어린아이에게 허리 숙일 필요가 없소."


    부인이 물었다.


    "하오면, 공께서 태대일자가 된 것이오?"


    소대일자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것이 아니라, 달탄 땅의 별과 해와 달에 대해 모두 다스리는 일자소형이 되었소."


    그러자, 부인이 크게 감탄하더니, 곧 소대일자를 두 팔로 안고는 말없이 한참 있었다. 그리고 부인이 울먹이는 소리를 내었다. 부인이 소대일자에게 하는 말이,


    "일전에 공께서 인삼을 구해 오라 하였을 때, 내가 오랫만에 내 아비와 어미를 보러 산에 갔소. 그랬더니 두 사람이 늙도록 산에만 있어 가난한 몰골이 더욱 보기 측은하였소.


    아비가 캐어 놓은 인삼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주는 것을 어미가 말렸소.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것은 두 사람이 이미 늙었으므로, 산에서 풀뿌리를 캐어 먹고 사는 것이 힘든지라, 만일 둘 중에 한 사람이 병들어 눕기라도 하면, 그 인삼을 팔아서 죽이라도 쑤어 끼니라도 잇자는 것이기 때문이었소.


    그러나, 내 아비가 말하기로, 우리는 깊은 산속에서 흙을 파며 뿌리나 뒤지는 사람이니 개미의 무리와 다를 바가 없고, 사위인 공께서는 하늘을 보며 이치를 따지는 사람이니 용과 같다 하였으므로, 딸이 그대에게 있는 것이 다만 복인 줄 알고, 인삼이라 한즉 겨우 풀뿌리이니, 이런 것을 아까워하지 말라 하였소.


    내가 그때 인삼을 얻어 올 때에, 비록 공께 드리러 얻어 온다고는 하나, 눈물 짓는 내 어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슬픈 것을 지울 수가 없었소. 그러나, 그 때 그 인삼을 드시고, 공께서 기운을 얻어 밤하늘을 잘 보시고, 일을 또 잘하시어 이와 같은 큰 일을 하셨으니, 이제, 어미와 아비가 힘들여 캔 인삼이 보람이 있으므로 나는 효도를 하였소."


    하였다.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하는 그 말을 듣자, 소대일자는 갑자기 이런 저런 것들을 속여 없애고 날려 버린 것들이 온통 북받쳐 오르고, 스스로 지은 죄들이 겹겹이 가슴속에 차올라, 통곡을 하고 말았다.


    소대일자가 울며 부인을 당겨 안으니, 마른 부인의 등이 손에 잡히어 그 등과 어깨죽지의 뼈가 마디마디 와 닿았다. 소대일자가 부인의 입을 맞추고 또 가슴에 작은 체구의 부인의 얼굴을 묻기를 반복하며 말하기를,


    "비록 가난한 곳이나, 또한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달탄의 기운을 이제부터 내가 모두 살펴 볼 것이오.


    다른 사람들은 장가를 들면 데릴사위로 살며 아내를 데려오는 값을 치르고 혼인을 한다 하나, 나는 산에서 부인을 데려 올 때 일자라 하는 좋은 이름만 가지고 그저 손목을 잡고 이끌어, 시정 장사꾼 소리와 담너머 개떼 소리가 시끄러운 곳으로 부인을 데려 오게 되었소.


    이제 곧 국상의 차주부가 찾아와 마지막으로 판결할 것이니, 지난 지진을 맞히지 못한 죄가 조금은 남을 것이니 분명히 힘겨운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내 이제부터, 나날이 밤을 새고, 목이 꺾이도록 하늘을 본다 한들, 어찌 달탄을 맡은 일자소형으로 맡은 바를 다하도록 배우고 익히는 데 게을리 함이 있겠소."


    하였다.


    얼마 후, 국상이 보낸 차주부는 여러 사람이 기대하던 바와 같이 화려하고 장대하게 꾸미고 나타났다. 차주부가 말에서 내리려고 하자, 좌영성실에서는 극진히 대접하기 위하여, 특별히 고용한 아름다운 여자를 보냈다. 여자는 차주부의 말 아래에 엎드려서 차주부가 그 몸을 밟고 땅에 내려 설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도록 이미 정해 졌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일자대형은 괴로워 하면서도, 사자들과 함께 차주부를 호사스럽게 대접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그렇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일자대형은 차주부의 곁을 하인처럼 지키면서 시중 들었고, 차주부에게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고기와 가장 좋은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하였다.


    첫째 날이 그와 같이 놀고 웃으면서 지나가고, 둘째 날 아침에 차주부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잠자리에 그와 같은 것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차주부를 화려하게 대접하기 위하여 귀한 잠자리를 베풀고자, 아름다운 유녀(遊女)들을 몇 명 구하여, 차주부가 잘 때 바닥 대신에 사람을 깔고 자도록 나란히 눕혀 놓은 것이다. 일자대형은 덜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애써 웃으며 말하기를,


    "그것은 두로(杜魯)의 반정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치스러운 잠자리를 꾸밀 때에 많이 쓰던 것입니다."


    하였다.


    둘째날, 차주부에게 일자대형은 지진에 대해 이런저런 학문을 설명하였다. 차주부는 예전의 일들이 어떻게 틀렸는지 설명한 후에, 옛 소대일자가 말한 바에 따라,


    "이와 같이 이제 국상의 뜻과 같이 백성의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하는 말이 옳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지진도 없고, 백성이 마음이 슬프면 지진이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일자대형은 성심을 다해 자세히 말을 한 뒤에 가만히 차주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차주부는 그 말이 듣기 좋은 지 나쁜 지 기색을 알 수 없이, 그저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차주부와 일자대형은 지진으로 많은 일을 당한 달탄에 가 보게 되었다. 달탄에 가보니, 과연 온통 사람들에게 술을 나누어 주고, 춤 추는 사람들을 이곳저곳에 풀어 놓아서, 무너진 집과 불타는 연기 사이로 사람들이 마구 웃으며 정신 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는 국상의 깃발을 앞새워 부유한 집에서 재물을 거두어서 술과 음식을 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밤새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지 않으면 음식을 주지 않겠다고 하여 이룬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중에는 쓰러져 죽은 시체 사이에서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자도 있었고, 아파서 쓰러져 울다가도 억지로 웃으면서 노래하는 자도 있었으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다가 지진으로 무너진 길과 집을 잘못 디뎌서 구르고 넘어지는 자들이 끝없이 많았고, 한편으로 춤꾼들이 흥에 겨워, 넘어진 사람의 더미와 쌓여 있는 옷가지와 가축 위로 뛰어올라 갔다내려갔다 하는 등, 그 모습이 멀리서 보니 극히 괴이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일자대형이 차주부에게 설명하였다.


    "이곳은 곧 지진이 일어났던 곳으로, 지진이 한 번 일어난 곳은 지진이 뒤따라 일어나기 쉬우며, 이곳은 집이 약하고 산사태가 많은 곳이므로, 지진의 위험이 큰 곳입니다.


    때문에 이와 같이 국상의 뜻에 따라 백성의 마음이 즐거우면, 지진도 없어진다는 것을 이용하여, 백성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지진을 없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차주부는 깊게 관심을 갖고 그 말을 곰곰히 새겨 들었다. 그리고 달탄 사람들의 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장한 광경이오."


    하였다.


    이때 달탄 사람들이 밤새 춤을 추며 부른 노래 중에 한 가지 알려진 것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이 노래는 부여로 떠나려던 가면놀이 하는 사람들이 부여로 가다가 달탄에 머물렀다가 부른 것이라고도 하고, 혹은 신라국의 입호무하는 재주꾼이 신라의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서 달탄에 있는 한 항아리로 튀어 나와 부른 노래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춤을 추고 있고,
    집이 무너졌는데 그대는 노래를 부르며,
    굶고 있는데 우리는 술만 퍼마시고 있구나,


    가난한 이들은 웃으며 뛰어 나와 놀고 있고,
    부유한 이들은 욕하며 들어 앉아 있으니,


    가한신의 비기가 적혀 있다는 책에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엎어 진다 했다던데,


    이제 보니, 오늘 밤에 벌써 그렇게 된 것 아니던가?"


    다음날이 밝아, 차주부는 모든 일을 마치고 이제 판결을 남기고 다시 도성 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일자대형이 돌아갈 채비를 마친 차주부 앞에 바짝 다가가 무릎을 꿇고 간곡하게 말하였다.


    "저희가 비록 재주가 많지는 않으나, 여러 일자들이 온 힘을 다하여 그저 애쓰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여기에 있는 많은 일자들은 오직 이것이 일이니, 이제 좌영성실이 없어지게 되면, 하늘을 본다 하는 일자에서, 땅바닥을 기는 걸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차주부가 웃으면서 일자대형의 손을 붙잡았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잘 쌓아 놓은 학문도 잘 들었소이다. 또한 앞으로 지진을 준비한 것도 이와 같이 튼튼하니 어찌 큰 일이 있겠소이까. 걱정 마시오. 좌영성실은 아무 문제 없이 있을 것이오.


    다만, 이번에 지진이 일어나 여러 사람이 죽은 것을 맞히지 못한 죄를 책임진 사람은 누구라고 밝혀, 저 역시도 국상께 말씀은 아뢸 수는 있어야 하오. 그러니 그저 딱 한 사람의 죄만을 묻고 덮으려 하오. 무엇보다 사람이 많이 죽은 달탄 땅의 일을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하니, 달탄 땅의 일을 맡고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 한 사람만 처벌하여 죄를 묻도록 하겠소."


    그리고 차주부는 떠나갔다.


    이튿날, 철로 된 채찍과 도끼를 든 군사들이 나타나 옛 소대일자를 끌어 냈다. 군사들이 말했다.


    "그대는 달탄을 맡고 있는 일자소형으로, 차주부께서 판결하셨으므로, 국상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니, 저희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그러자 옛 소대일자는 겁을 집어먹고 크게 놀라 군사들을 붙잡고 떨면서 물었다.


    "벌을 내린다니, 그렇다면 저는 일자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입니까?"


    그러자, 군사들이 크게 웃고는,


    "자리에서 쫓겨나다니 그것이 무슨 명절에 즐겁게 인사하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까? 국상께서 벌을 내리신다하였으니, 그대는 아마 목이 잘리거나, 혹은 잘해야 노비가 될 것이오."


    하였다. 옛 소대일자가 정신이 아득하여 멍하니 있었다. 군사들이 붙잡아서 묶어가는 기둥에 묶으려 하자, 그제서야 갑자기 번쩍 마음이 치밀어 올라 다급하게 소리치기로,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하였다. 그랬더니, 한 군사가 돌아서면서 중얼거리기를,


    "엊그제 아침에 우리는 말 안장 위에 엎어져 있는 한 아름다운 여자의 시체를 보러 가게 되었소. 그 여자가 국상이 옛날에 더불어 즐기던 미인(美人)이라는 말이 있소.


    그 여자가 국상과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그 여자를 살펴본 즉, 혼인은 하지 않은 여자이며 홀로 사는 여자이나 또한 몰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어떻다 하는 말이 있었소. 그러나, 누가 왜 죽였는지도 모르고, 또한 살아 있을 때에, 무엇으로 끼니를 잇고, 무엇으로 좋은 옷을 입고, 무엇으로 좋은 말을 타고 살았는지 모른다고 하오. 억울한 것이 어디있겠소?"


    하였다.


    그 후, 옛 소대일자는 처분을 기다리며 갇혀 있었는데, 그러다가 다음달인 경신년(서기 300년) 음력 정월, 다시 달탄 땅에 지진이 일어 났다. 세상이 모두 가소롭게 여기기 좋도록, 춤을 추고 노래한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은 그때에도 알고 후세에도 잘 알 것이다.


    옛 소대일자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 때의 지진으로,  갇힌 곳이 무너지는 바람에 깔려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틈을 타서 부인이 이끄는대로 도망쳐서 함께 깊은 산에 들어가서 풀뿌리를 캐면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옥저아이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들려 주게 되어 전해진 것이다.



    - 2010년 양천향교에서


 


    * 주석


    "삼국사기"에는 상부가 임금의 자리에 있던 292년에서 300년 사이에 총 세 번의 지진이 일어난 것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객성이 달을 범했다"라는 천문학적인 흉한 징조도 같이  나와 있습니다. 또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에 "일자"라는 사람이 있어서, 별을 보고 운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예측하는 일을 맡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일자들의 관점에서 엮어서 본 것이 위의 이야기 입니다. 조선시대의 학자 이복휴는 저서 "해동악부"에 기재한 을불에 관한 시에서 당시의 자연재해에 대하여,


    "하늘이 어둡고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누군가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일지니
    天陰不雨知爲雖"


    라고 다소 애매하게 시를 지어 읊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평론을 덧붙이면서, 당시 임금이었던 상부의 폭정은 옳지 않았으며, 여기에 대해 반대하여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던 국상 창조리는 옳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만, 국상 창조리의 혁명과 반란에도 문제점이 있으므로 완전히 칭송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수준은 낮다고 평가 하였습니다.


    여러 소재들에 대한 더 많은 설명들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야기 속의 내용을 먼저 한 문단으로 설명하고, 원전이나 참고자료에 대해서 다음 문단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설명 해 보았습니다. 사진이나 그림자료는 수월하게 구하실 수 있도록, "동북아역사재단" 인터넷 웹사이트의 자료마당 - 간행도서 - 교양서 메뉴에서 전문 PDF 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이라는 자료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아래에서 소개하는 페이지수는 대부분 PDF 파일의 페이지입니다.)


    - 이외에 비슷한 시대를 소재로 창조리가 국상으로 정권을 잡기 이전 시절의 이야기를 쓴 이야기도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한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출간되는 것으로 협의 되어, 출판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


    1. 상부가 즉위한 지 8년이 지난 때의 겨울 12월 지진이 일어난다. 이때 서울의 집들이나 대부분의 거물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나, 빈민가의 부실한 집들이 무너져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서울 밖의 가난한 사람들만이 피해를 당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봉상왕"의 본명이 "상부"로 기록되어 있다. 봉상왕 8년 12월 우뢰가 있고 지진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한편 "삼국사기" 문자명왕 11년에는 지진이 일어나서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피해 상황도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2. 달탄(達呑)은 산골짜기에 있는 빈민가의 이름이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79PDF쪽에 실린 고구려의 단어 표기 방식을 보면, 달(達)이라는 표기는 "산(山)"이라는 뜻이며, 탄(呑)이라는 표기는 "골짜기(谷)"라는 뜻이다.


    3. "일자(日者)"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하늘의 별과 재해에 대해 살펴보는 사람들이다. 일자들은 무척 활발히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일자들은 도성 밖에서 작은 조직을 갖고, 정식 관료 조직과는 별개의 체계를 갖고 있으며, 대체로 중앙에서 파견하는 관리들에 비해서는 무척 낮은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다.
    "삼국사기"에는 차대왕때의 기록에 "일자"라는 사람이 있어서 다섯 행성이 모이는 것을 보고, 그것의 뜻을 해석하여 왕에게 보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백제에서는 "일관(官)"이라고 불렀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에 실린 김일권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의 벽화에는 방대한 양의 정교한 천문도 자료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비슷한 시기 주변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그 양이 매우 풍성한 편이라고 한다. 반면, "일자"라는 구체적인 명칭이나 설명이 문헌으로 나타난 경우는 차대왕 때, 단 한 번 밖에 없다.


    4. 일자들은 "영성(靈星)"이라고 하면서 하늘의 별을 열심히 살펴보고 있다.
    "삼국지"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영성"을 섬기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5. 일자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은 "좌영성실(左靈星室)"이다.
    "삼국지"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영성"이나 귀신등을 섬기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실(室)"을 각기 좌우(左友)에 건설하여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6. 일자의 직급으로는 각각 "태대", "중대", "소대" 등의 접두어와, "대형", "소형" 등의 접미어를 붙인 이름을 사용한다.
    "삼국사기"에는 "태대사자", "소사자", "대형", "소형" 등의 고구려 관직이름이 소개되어 있고, 덕흥리 고분 유적에 남아 있는 글씨에는 "소대형"등의 관직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7. 당시 창조리는 유일무이한 국상 겸 대주부로 자리에 올라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창조리가 봉상왕 3년에 국상이 되었으며, 작위가 대주부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상으로 대주부를 겸한 사례는 창조리가 유일하며, 기록되어 있는 대주부 역시 2명 밖에 없다.


    8. 국상은 당시의 시국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닦고 돌이켜 볼 때라고 하면서 공구수성(恐懼修省)할 때라는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다.
    "삼국사기" 봉상왕 9년에는, 창조리가 임금에게 요즘 시국을 일컬어, 공구수성(恐懼修省)할 때라는 이야기를 한다.


    9. 소대일자와 부인은 높은 값어치의 재물을 모아둘 때에 황금천이라는 것으로 바꾸어 숨겨 두었다.
    "천(釧)"은 팔찌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삼국사기"에는 온달 열전에 나오는 데, 고구려의 평강 공주가 궁전에서 갖고 나온 천을 이용하여 살림살이를 모두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10. 부인의 친정 어머니 아버지는 산속에서 풀뿌리를 캐는 사람으로, 가끔 인삼을 캐기도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인삼은 귀하게 여기고 있다.
    고구려의 "인삼찬(人蔘讚)"이라는 시에서는 인삼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찾아서 캐낼 수 있는 지 묘사하여 노래하고 있다.


    11. 좌영성실에서는 마구간과 건물이 분리되어 있고, 마구간이 무너져 안에 있던 소가 죽게 된다.
    "동명왕편"에는 마한(馬閑)이라는 표현으로 마구간이 나타나며, 고구려의 여러 벽화에도 마구간이 별개의 건물로 묘사되어 있다.


    12. 일자들은 별을 관찰할 때에 물 한가운데에 있는 "택상석"이라는 돌로 된 곳에 앉은 채, 물에 비치는 닮은 모양을 보면서, 하늘을 보거나, 제사를 지내고, 여러가지 신성한 중요한 일을 한다.
    "삼국사기" 유리명왕 21년의 기록에는 임금이, 땅 모양을 관찰하고 오는 길에 "택상석"(연못 가운데의 돌)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는데, 이 앉아 있는 사람이 임금을 보고 임금을 향하여 신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임금이  신하를 삼고, "위(位)"라는 말을 성으로 내려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 산상왕 때의 이야기를 보면 "위(位)"라는 말은 고구려 표기로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13. 젊은 일자 한 명은 자신이 지진을 맞히지 못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가족을 노비로 팔아서 그 재물로 사람들이 땅을 사서 생계를 잇도록 하겠다고 한다.
    "북사"의 고구려 혼인제도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에서는 자식을 종으로 매매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것을 비참하게 여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


    14. 일자들은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따질 때에, 기본적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영성이라고 하는 주요한 별들의 균형과 위치를 따지면서 지진에 대해 살피는 이론 체계를 갖고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에 실린 김일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표현된 천문도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따라 별들을 관념적으로 엄격하게 분할하는 것이,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천문 관념과 구분되는 강한 특색이라고 한다.


    15. 일자들은 지진에 대해 별을 보는 방법을 해석할 때에, 동서남북 방향을 바로보는 방법과 반대로 보는 방법을 서로 바꾸어가면서 이론에 혼란이 있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에 실린 김일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표현된 천문도는 그 역사 시기에 따라 동서남북 표현 방식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히는 시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16. 일자들이 별과 지진에 대해 의논할 때에, 하늘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로 "천제"라는 명칭의 존재가 모든 재앙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 동명성왕 때의 기록을 보면, 해모수가 스스로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새운다.


    17. 일자들의 대화 중에 8년 전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나타난다.
    "삼국사기"에는 8년전인 봉상왕 원년 가을 9월에도 지진 기록이 있다.


    18. 일자들이 지진에 대한 이론을 논의하는 도중에, 하늘에 있는 황룡에 대한 의견이 나오는 데, 황룡은 세상의 중앙 방향을 상징하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하늘이 황룡을 내려 보내어 고구려의 건국자를 데려 갔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한 황룡의 모습은 강서대묘에 중앙의 방위를 상징하는 벽화로 그려져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122PDF쪽에 소개 되어 있다.


    19. 일자들이 지진에 대한 이론을 논의하는 도중에, 땅을 다스리는 신에 대하여, "후토의 지신"이라는 말을 하며, 또 다른 일자는 하늘에 대한 신에 대하여, "황천의 천왕"이라는 말을 한다.
    "동명왕편"에서 주몽이 물가에서 길이 막혔을 때, "황천과 후토"에게 빌면서 살아날 길을 구한다. 한편, 천왕지신총의 벽화에는 천왕과 지신이 각각 그 명칭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26PDF쪽에 소개 되어 있다.


    20. 소대일자가 일자들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졸고 있자, 일자대형은 천상지도에다가 북극성을 그리는 일을 시킨다.
    조선초기에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제작되었는데, "양촌집"에는 이것은 평양에서 오랫 옛날에 제작되었다가 전쟁으로 없어졌던, 돌에 새겨진 천문도를 과거에 본떠서 보존한 것을, 기초로하여 개발되었다는 경위가 나타나 있다.


    21. 소대일자는 일자대형이 시키는 까닭으로 원 세 개와 선 세 개를 그려서 북극성을 표시하는 지루한 일을 하게 된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에 실린 김일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세 개의 별로 북극성을 표시하는 방식은 주변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고구려의 독특한 체계라고 한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115PDF쪽에 씨름무덤에 그려진 북극성을 나타내는 세 개의 별그림 표시가 소개되어 있다.


    22. 중대일자는 지진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꽹과리를 어렵게 구해 온다. 나중에 재물이 더 필요하자 이 꽹과리는 다시 거두어서 팔아서 쓴다.
    "삼국사기"


    23. 옥저아이는 일자들의 허드렛일을 하는 천한 심부름꾼 아이이다.
    "삼국지"에는 옥저가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는 지역으로, 고구려인들에게 옥저 사람들이 물고기, 소금과 미녀등을 바치면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24. 달탄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산골짜기에서 초가집을 짓고 사는 빈민촌이며, 온돌을 파고 불을 지펴 화재의 피해도 많은 곳으로 되어 있다.
    "구당서"에는 고구려에서, 산과 골짜기에 의지하여 풀을 이어 지붕을 만들고, 빈곤하여 초췌하게 사는 자가 많으며, 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로 숯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한다는 묘사가 기록되어 있다.


    25. 소대일자와 옥저아이는 달탄에서 망하는 바람에 미친 여자를 만난다. 미친 여자는 금실과 은실로 꾸민 아주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삼국지"에 고구려에서 공복은 비단을 사용하고 금은으로 꾸민다는 기록이 있다.


    26. 미친 여자는 비류부의 출신으로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궁전을 짓는 공사를 위한 세금 때문에 망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창조리가 국상이 되기 전에는, 254년에서 294년까지 무려 40년에 걸쳐 비류부 출신의 음우와 상루가 대를 이어서 국상 자리를 연달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나기 5년전에 새롭게 국상이 된 창조리는 남부 출신인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창조리가 국상이 된 이후에 임금은 궁전을 짓는 공사를 하는데, 이 때문에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 하였고, 반대하는 신하들도 많았다고 되어 있다. 단, 창조리 스스로도 이후에 공사에 반대한다.


    27. 미친 여자는 훌륭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고구려의 문화와 역사" 90PDF쪽에는 무용총에 벽화로 그려진 잘 길들여진 커다란 사냥개의 그림이 소개되어 있다.


    28. 미친 여자는 천손에게 빚을 졌다가 재물을 크게 잃었다.
    "삼국사기" 고국천왕 16년에는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갚는 제도가 임금의 명령으로 정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임금의 자손/친척을 "천손"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편,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시기의 임금은 훗날인 "삼국사기" 봉상왕 9년에,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살하게 되는데, 이때 그 두 아들들도 함께 자살한다.


    29. 소대일자와 옥저아이는 달탄에서 국상의 애인이 지진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추울 때 덮을 것을 나눠주는 것을 본다.
    "삼국사기" 태조왕 66년 등에는 스스로 살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조치를 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30. 국상의 애인을 보호하고 있는 병사들은 국상의 깃발을 사용하고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역사" 203PDF쪽에는 약수리 벽화고분 행렬도의 모식도가 소개되어 있는데, 긴 창을 깃대로 사용하여 말탄 병사들이 깃발을 활용하는 모습이 묘사 되어 있다.


    31. 옥저아이는 시정에서 심부름 하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때 국상의 애인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에는 온달이 시정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 먹으며 살고 있다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 미천왕 즉위년의 기록을 보면 잡일을 하며 고용살이를 하며 얹혀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32. 달탄에서는 온몸에 미역과 다시마를 휘감은 사람이 세상이 망한다는 말을 떠들며 뛰어다닌다.
    "삼국사기" 동명성왕 즉위년에는 "묵거"라는 사람이 물풀로 되어 있는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주몽은 이 사람의 일행을 현인이라고 부르며,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3. 달탄에서 세상이 망한다는 말을 한다는 사람은 "가한신"의 "비기"에 그런 말이 나와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 보장왕 27년에는 "9백년이 되기 전에 80대장이 있어 고구려를 멸망시킨다"라는 "고구려"의 "비기"에 대한 뜬소문이 돌고 있다는 말이 하나 인용되어 있다. 또 "구당서"에는 고구려에서 가한신을 섬긴다는 기록이 있다.


    34. 옥저아이는 신라에서 온 재주꾼이 항아리를 이동하는 요술을 부리는 것을 구경하라고 소개해 준다. 하지만 이 재주꾼 고구려 밖으로 쫓겨 나게 되어 결국 한 번도 재주를 보여 주지 못한다.
    후대 일본의 문헌인 "신서고악도"에는 "신라악 입호무"라는 제목이 있는 그림 한 장이 실려 있는데, 한 쪽 항아리로 들어가서, 다른 쪽 항아리로 순간 이동하여 나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외에는 자세한 기록이 매우 부족하며, 다른 문헌에 신라 사람이 비슷한 형태의 마술 공연을 보여 주었다는 묘사는 자주 관찰되지 않는 편이다.


    35. 소대일자는 밤이 깊도록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박견 가면놀이를 보려고 한다. 그러나 박견 가면놀이 하는 사람들도 곧 놀이를 멈추고 짐을 싸서 떠나간다.
    후대 일본의 문헌인 "악가록" 등에는 "고려악"이라는 제목으로 삼국에서 유래하여 변형된 여러 음악과 무용이 전해내려 오는 데, 그중에 박견이 고구려 계통의 사자춤과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이는 가면놀이 이다. 그러나 사자춤과 같은 부류의 가면놀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명확하지 않으며, 고구려의 춤을 받아 들여 기록한 "수서", "신당서", "구당서"등에도 사자춤과 같은 부류의 가면놀이는 없다.


    36. 소대일자는 밤새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내게 되고, 시정에서는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고 춤추는 것을 보면서 노는 사람들이 많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에 대하여 그 백성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여 읍락에서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모여들어 서로 따르면서 노래하고 춤춘다고 기록되어 있다.


    37. 박견 가면놀이를 하는 재주꾼은 떠나가면서, 작년의 흉년과 올해의 지진으로 놀고 웃는 박견 가면놀이는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1년전에 서리와 우박 때문에 곡식을 헤쳐서 백성들이 굶주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훗날인 봉상왕 9년에는 국상이 임금에게 자연재해와 흉작이 심하니 근신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38. 높은 작위를 가지고 다스리는 영토나 성이 있는 사람을 일컬을 때에 "군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일정한 영토를 다스리는 직위 또는 명예 칭호로, "안국군" 등의 "군" 계통의 호칭과 "다물후" 등의 "후" 계통의 호칭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39. 소대일자는 술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손짓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지만, 가려 하지 않는다.
    "북사"에는 고구려의 풍속에 "유녀(遊女)"가 많은데 일정한 사람을 남편으로 삼지 않고,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노는데, 귀천의 절도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주서"에는 고구려의 풍속이 음란한 것을 좋아하며 이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40. 소대일자는 호선무를 보러 가는데, 호선무는 빠르게 빙글빙글 돌며 추는 춤이다.
    "신당서"에는 고구려의 놀이로 바람처럼 빠르게 돌면서 춤을 추는 호선무가 기록되어 있다. 다만, 호선무는 인도, 서역 계통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영향을 받아 고구려에 정착된 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일상화된 호선무는 광개토대왕 이후의 시기에 완성되는 것이 더 그럴듯할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요동성육왕탑에 대한 전설을 소개하면서 기원전후 무렵에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알아 볼 수 있는 신하가 있었다는 전설을 싣고 있는 등, 특수한 사례는 재미 삼아 소개되고 있다.


    41. 호선무를 추는 무희들은 춤을 다 추고 나면 솥을 꺼내 놓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마다 그 솥 속에 곡식등의 재물을 집어 넣는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4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임금이 군사를 이끌고 가는 도중에 물가에서 여인이 솥을 들고 희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가까이 가 본다. 그래서 솥 안에 쌀을 집어 넣어 보았더니 불을 때기도 전에 저절로 뜨거워져서 밥이 되었다. 이 여인의 오빠는 성(性)을 임금에게 하사 받고 신하로서 따르게 된다.
    이와 같은 신화적인 기록은 위 이야기로부터 약 3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위 이야기에서는 그때의 일에 유래하여 사람들이 그 일을 기념하여 춤값을 주는 방식이 그와 같다고 보고 있다.


    42. 소대일자는 처음 무희와 만나 시간을 보낸 뒤에 매우 좋아하다가 등불을 들고 밤길을 걸어서 집에 온다. 이는 소대일자가 자기 흥에 취하여 계획성 없이 괜히 충동적으로 사치를 부린 것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나타나고 있다.
    쌍영총의 벽화에는 고배형 등잔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등잔에 대한 기록과 유물, 유적은 부족한 편이다.


    43. 소대일자와 옥저아이는 사람들에게 일자들이 물건을 나눠주기 위한 근거지를 만들기 위해 천막을 치러 간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천막이나 휘장이 많이 보인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166PDF쪽에는 무용총에 있는 천막/휘장의 벽화가 소개되어 있다.


    44. 소대일자와 옥저아이는 달탄의 빈민가에서 세상이 멸망한다고 생각하고 삶을 포기하여,  구덩이에서 그대로 자결하려는 노인들과 그곳을 떠나 떠돌아다니며 도적이 되는 젊은 남녀들을 차례로 마주친다.
    "삼국사기" 봉상왕 9년에 국상이 혼란한 나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흘러다니며 떠나가고, 노약자들은 구렁텅이에서 헤메고 있다"(壯者流離四方, 老幼轉乎溝壑)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단 이것은 문학적인 서술로 보아야 한다.


    45. 소대일자가 만난 삶을 포기하여 자결하려는 노인은 "칠일내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술을 마시면서 술에 취하여 얼어 죽으려고 한다.
    "동명왕편"에는 "칠일이 지나야 술이 깬다"라는 표현으로 하백이 해모수를 잠재우기 위해 먹인 술을 묘사하고 있다.


    46. 소대일자가 만난 삶을 포기하여 떠돌이 도적이 되려는 젊은이들은 개울물에 옷을 담갔다가 건지면서 행운을 빈다.
    "수서"에는 고구려의 행사로 매년 초에 왕이 물속에 옷을 던져 놓으면,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서 서로 물에서 돌을 던지고 고함치며 떠들썩하게 쫓고 쫓기기를 하는 놀이를 한다는 기록이 있다.


    47. 소대일자는 큰 길가를 지나는 사자들의 수레 행렬을 보고 처음으로 사자들을 만나게 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다양한 고구려의 수레가 묘사되어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203PDF쪽에는 약수리 벽화 고분 행렬도에 나타나 있는 수레의 행렬이 소개되어 있다.


    48. 무희는 소대일자에게 춤을 출 때 사용하는 덧소매를 사달라고 조른다.
    "통전"에는 고구려의 춤을 출 때에 아주 긴 소매를 이용해서 춤을 춘다는 기록이 있고, 무용총 벽화에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89PDF쪽에 무용총의 벽화가 소개되어 있다.


    49. 소대일자는 하늘이 일으킨다고 하는 지진이 백성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자들이 이것이 국상의 뜻이라며 감탄한다.
    "삼국사기" 봉산왕 9년에 국상이 임금에게 조언을 하면서 자연재해가 극심한 것을 문제삼고 "하늘을 겁내고 백상을 걱정하라"라는 표현을 쓰면서, 근신하고 두려워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0. 무희에게 재물을 탐한다는 듯이 소대일자가 불평하자, 무희는 옥저의 천한 여자나 재물을 탐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잡아 떼며 변명한다.
    "삼국지"에는 옥저에서는 혼인할 때 여자 집에서 남자 집에 돈을 요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북사"에는 고구려에서는 혼인할 때 재물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이 예의로, 재물을 주고 받으면 여자를 여자 종으로 팔아 먹은 것이라고 욕하며 부끄럽게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51. 무희와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의심되는 말장수는 말을 탄 채로 그대로 춤을 구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용총의 벽화를 보면 크게 그려진 말을 탄 관찰자가 말을 탄 채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104PDF쪽에 무용총의 벽화가 소개되어 있다.


    52. 무희는 말장수에게 존경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딛고 말에 오르게 한다.
    "삼국사기" 모본왕 4년에 왕이 앉을 때 사람을 깔고 앉고는 했다는 묘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에는 연개소문이 말을 타고 오르 내릴 때에 일부러 귀한 사람을 엎드리게 한 뒤에 발판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53. 소대일자는 부인이 지키고 있는 황금천을 빼내오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면서, "성을 깨뜨리는 부분노의 계책"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삼국사기" 유리명왕의 기록에 부분노가 계책을 내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활약하는 묘사가 기록되어 있다.


    54. 무희는 자신이 지진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춤으로만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말을 설명 할 때, "부정매"라는 사람을 옛날 춤으로 성공했던 사람의 예로 언급한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4년에는 "부정"씨를 가진 사람 남매가 나오는 데, 그 중 여동생(妹)이 솥을 들고 유희하며 임금의 눈을 끌었다가, 솥을 잃어버렸는데, 임금이 이것을 보고 찾아와 이 가문은 부정씨 라는 성을 받고 신하가 될 수 있었다.


    55. 소대일자의 부인은 중대일자의 부인이 나타나자 한쪽 다리를 끌면서 무릎을 꿇어 인사한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에서는 꿇어 엎드려 절할 때에 다리 하나를 뻗는 데, "부여"와는 이것이 다르다는 기록이 있다.


    56. 역수
    "삼국사기" 태조왕 94년에는 하늘이 내린 운명이 그렇다고 하면서 왕위를 차대왕에게 물려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때, 하늘이 내린 운명 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역수"(曆數) 이다.


    57. 소대일자의 말을 사자들이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을 보자, 일자대형은 소대일자를 불러서 최소한의 천문을 익히라고 하면서, 천문도를 보고 별을 따질 때 쓰는 자를 준다.
    흔히 "이성산성 출토 고구려척"이라고 불리우는 유물은, 자와 같은 모양으로 3단계로 구분된 눈금이 3중으로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 고구려 시대의 것이다.


    58. 소대일자는 속은 것을 알고 흥분하여 주인의 자리를 엎어 버리면서, "산상태후" 이후로 엎어버리는 것을 통쾌하게 여기더니, 과연 엎어버리니 통쾌하다고 중얼거린다.
    후에 태후로 죽을 때에 산상왕의 무덤에 합장되는 우(于)씨는 "삼국사기" 동천왕 즉위에 나와 있는 기록에서, 후궁인 소후의 아들인 태자를 미워하여, 태자에게 국그릇을 들고 갈 때 국그릇을 일부러 엎질러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59. 소대일자가 주인 앞에서 따지자, 주인의 부하 중에 하나가 옷 속에 숨긴 작은 쇠뇌 장치로 소대일자를 위협하여 소대일자를 몰아간다.
    "삼국유사"의 "보장봉로 보덕이암" 대목에는 수양제에게 몰래 따라간 한 사신이 품 속에 작은 쇠뇌 장치(小弩)를 숨기고 있다가, 수양제가 글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쏘아 저격했다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60. 소대일자가 부인에게 잘못을 이야기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데릴사위로 지내면서 처가에도 일을 많이 해 주는데, 자기는 폐만 끼쳤다고 뉘우치는 이야기를 한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에 데릴사위 풍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61. 차주부가 왔을 때, 차주부를 후하게 대접하기 위하여, 유녀들을 침대 대신에 바닥에 깔아 놓고 누워서 자도록 하는 일을 하는데, 이것이 두로의 반정 이전에는 자주 있던 일이라고 언급된다.
    "삼국사기" 모본왕 4년에는 모본왕이 누울 때 사람들을 깔고 두웠다고 기록 되어 있다. 두로는 포악한 왕을 반대하여 왕을 칼로 찔러 죽인 사람으로 기록 되어 있다.


    62. 소대일자가 군사들에게 잡혀 갈 때에, 한 군사는 철로된 채찍을 들고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210PDF쪽에는 국내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로 추가 달린 철로된 채찍 유물이 소개되어 있다.


    63. 소대일자가 군사들에게 잡혀 갈 때에, 군사들은 도끼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고구려의 약수리 벽화고분 행렬도에는 상당수의 병사들이 도끼를 들고 있고, 오녀산성 등에서는 출토된 당시의 유물도 있다. "고구려의 문화와 사상" 203PDF쪽에 약수리 벽화고분 행렬도가 소개 되어 있고, 208PDF 쪽에는 출토된 도끼 유물이 있다.


    64. 군사들은 소대일자를 붙잡아 가면서, 벌이 엄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구당서"에는 고구려는 법을 준엄하게 적용하므로 범하는 자가 적다는 기록이 있다.


    65. 군사들은 소대일자를 붙잡아 갈 때 기둥에 묶어서 데려 가려고 한다.
    "북사"에서는 배반하거나 모반하자는 먼저 기둥에 묶어 놓고 묶은 채로 죽이는 것으로 묘사가 기록되어 있다.


    66. 달탄에서 사람들이 술판과 춤판을 크게 벌리고, 소대일자가 붙잡혀 간 뒤, 바로 다음 달에 다시 지진이 일어난다.
    "삼국사기"에는 봉상왕 8년 겨울 12월에 우레와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 이후에, 9년 정월에 바로 또다시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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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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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슴컹크 10.05.31 14:04 댓글 수정 삭제
    우와. 간만에 올리신 작품이 엄청 길고 특이해요!! 옥저는 무슨 이영애가 밭메고 김태희가 물 길어온다는 우즈베키스탄인가봐요. 주석을 보니 미녀를 공물로 바쳤다고 하니 옥저아이의 자랑이 그럴듯하네요.

    일자소형이 지진과 백성들의 행복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때 매개변수로 소득수준을 설명하는 걸 보니 왠지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

    좌영성실은 지금 시대로 치면 천문연구소 같은 곳 같네요! 일자는 연구원 같고요. 좌영성실이 있다면 우영성실도 있었을까요?

    아무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출판 예정이시라는 작품도 읽어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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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1 14:53 댓글 수정 삭제
    덧글 감사합니다. 주석에도 나와 있듯이 좌우에 실(室)을 세워두었다는 것이 옛 기록이니, 위 이야기 처럼 좌영성실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우영성실도 있었을 것입니다.

    뭐 옥저라고 미녀가 널려 있었겠습니까. 없듯 있듯 많은 인구중에 고르고 골라서 고생고생해서 뽑아 바치지 않았겠습니까.
  • No Profile
    쑤우 10.06.01 16:53 댓글 수정 삭제
    와~ 곽재식님 이름으로 된 책이 출판된다고 하니 무척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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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0.06.02 13:16 댓글 수정 삭제
    쑤우/ 기대해 주시는 만큼 좋은 책으로 나올지는 사실 걱정이 앞섭니다. 독자 여러 분들께서 힘모아서 만들어 주신 "곽재식 단편선" 정도만 되어도 좋겠습니다만.
  • No Profile
    긴글이라서, 아껴두었다가 시험기간에 읽고갑니다..ㅋㅋ

    이번에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 기대하겠습니다.
  • No Profile
    곽재식 10.06.19 16:02 댓글 수정 삭제
    부디 시험 잘 치르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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