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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을 앞두고


 


 
 
 1.
 미영이 우주선의 추진 명령어를 입력하려고 하는데, 양식이 손을 뻗어 말렸다.
 
 "여기가 지도 지역의 끝이라고요. 여기 넘어서면 지도에 안나오는 지역으로 가는데, 그럼 위험해요. 잘못하면 우리힘으로 다시 못돌아올 수도 있어요. 잘못돼서 길잃은 다음에 구조요청 신호 보내도 찾아 오는데 얼마나 걸릴 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쟤는 갔잖아. 지금껏 태양계 밖으로 한 번도 안나가 본 열여덟살짜리 애도 가는데, 왜 우리가 못가."
 "나이로 사람차별하는 말 하면 안돼죠. 나이만 갖고 '뭘 알겠어?' 이런거 싫다면서요."
 "쟤네 아버지가 쟤 데려와 달라고 했잖아. 쟤 못데려오면 계약금 다시 물어 줘야 된다고요."
 "다시 물어 주고 말죠. 이렇게 위험하게 갈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이번 건은 간만에 큰 건이라고. 계약금 벌써 대출금 갚고 사무실 수리하는데 다 썼는데, 어떻게 계약금을 다시 물어줘. 쟤가 간 걸 보면, 우리도 갈 수 있을 거라고."
 "록밴드하는 것만 멋진 줄 아는 반항적인 10대 청소년이 어딘들 못가겠어요?"
 "어. 그거야말로 나이 내세워서 어쩌고 저쩌고 한 거 아닌가?"
 "제 말은 쟤는 아버지한테 반항한다고 도망가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돌아올 건 생각 안하고 어디로든 막간다는 거죠. 우리는 그게 아니고. 벌써 여기까지만 해도 얼마나 멀리 온 겁니까. 사장님. 이거 보세요. 우리가 온 거리가 얼마만큼인데."
 
 양식은 화면에 나오는 거리 표시를 가리켰다. 미영은 거리 표시를 보면서 망설이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 그런데 화면을 같이 보던 양식의 얼굴이 희게 변하며 탄식했다.
 
 "잠깐만요. 이거 이렇게 멀리 날아왔으면 우리 연료는 얼마나 쓴거예요?"
 "뭐, 많이... 썼겠지."
 "안돼. 안돼. 이거 이러면 큰일나요. 쟤를 아버지한테 연결해 줘야 비용을 받는데. 우리가 비용을 못받으면 우리 연료비 이거 절대 감당안돼요. 가야겠네요. 이렇게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최소한 쟤 붙잡으면 안망할 가능성이라도 있으니까."
 "잠깐만 잠깐만. 김이사. 이거 위험한 거라면서요?"
 "돈 못벌면 망한다면서요?"
 "그래도 이건 정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죠. 우리 우주선이 지도제작장비 달고 다니는 탐험우주선도 아니고, 지도 없는 지역까지 가는 건 좀 아닌거 같은데. 이건 좀 아니다."
 "조금 아니면, 아주 아닌건 아닌거니까. 그러니까 조금 아닌거니까, 상대적으로 봤을 때 아닌 부분은 조금인 거라는 거죠. 즉 결과적으로 전체에서 부정적인 부분이 적고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는거니까. 그러므로, 지도 없는 지역까지 가는 데 긍정적인 의견이 더 많다는 뜻인 줄로 알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양식이 갑자기 키보드에 손을 뻗어 입력 키를 누르려고 하자, 미영은 입력 키 위에 손을 바짝 대어 양식의 손을 막았다. 양식이 이리저리 손을 뻗어 미영의 손바닥 사이로 파고 들어 키를 누르려고 하자, 미영은 멋진 솜씨로 양식이 손을 뻗는 모든 방향을 다 막아 내어 절대 미영의 손을 넘어서서 양식이 손을 못 뻗도록 막았다. 뻗는 양식의 손을 막아내는 미영의 손놀림은 마치 무술의 고수와도 같아 보였다. 그런데,
 
 "헛!"
 
 양식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미영의 손 위를 덮쳐 눌렀고, 미영의 손은 양식의 손에 눌리는 바람에, 입력 키를 누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지구로부터 132억 광년 떨어진 화로 은하계로 오게 된 것이었다.
 
 
 2.
 미영과 양식은 화로 은하계까지 와서 의뢰인의 가출한 아들을 따라갔지만, 록밴드 하고 싶다면서 집나간 부유한 아들이 자유롭게 조종하는 우주선을 상대하기에는, 비용에 쪼들리고 전망 없는 사업에 지친  두 회사원의 몸과 마음이 모두 극히 부족하였다. 결국 목표를 놓친 두 사람은 다시 돌아갈 길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이거 정말 우리 못돌아가는 거 아녜요? 그러게 왜 그렇게 일을 저질러."
 
 미영의 답답해 하는 말이 분노에서 공포로 점차 넘어 가는 동안, 양식은 갖은 말로 둘러대며 미영을 안심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양식 역시 비슷한 감정을 점차 숨겨야만 하게 되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인근 행성에서 나온 신호를 발견한다. 신호는 특별한 내용 없이 행성의 위치와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는 내용만 있었다.
 
 "어느 행성에서 오는 거 겠습니까?"
 "모르죠. 여기는 지도에 없는 지역이잖아요. 벌써 까먹었어요? 본인이 여기로 우주선을 끌고 왔잖아요."
 
 그러는 동안 행성 근처에서 우주선에 충돌할 뻔한 소행성들이 나타나서 잠깐 위험한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갈길이 따로 없는 두 사람은 일단 행성에 착륙해 보기로 했다.
 
 착륙하면서 보니, 이 행성은 기후가 좋고 지구와 다른 점이 거의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건설되어 있는 도시들은 동양풍의 기와집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기와집 건물이면서도 목탑 양식으로 올린 건물들이 5층에서 10층 정도의 높이가 되는 것도 꽤 많아서 번화한 느낌이었다. 도시는 번화했으며 행성 각지에 많은 도시들이 있어서, 인구가 적어도 몇 억에서 몇 십억명은 되어 보였고, 도로에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20세기 초 지구의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들이 많이 있었다.
 
 착륙하는 도중에 간신히 잡은 통신 신호는 원시적인 무선 음성 통화였고, 그 통화 내용에 따라 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착륙한 곳에서 미영과 양식은 그 행성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지구의 문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던 이 행성의 학자가 다소간 과장된 한국식 예절로 미영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고, 미영은 어색하게 생각했지만 반가운 이 사람들의 태도에 즐겁게 응해 주었다.
 
 근사하게 꾸며 놓은 정원의 정자에 자리를 잡자, 학자는 미영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300년전에 지구를 떠나와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입니다. 저희들은 지구의 문명과 달리 사람들의 악행과 범죄가 최대한 없는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노력했습니다. 저희들은 일부러 지구와는 연락이 끊어진 이 멀리 있는 지도 바깥 지역을 찾아서 이곳으로 건너왔습니다. 지구와 연락을 끊고 그 영향 밖에서 우리만의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말고도 착한 사람들만 착하게 사는 풍요로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몇백년 전에 지구를 떠나온 무리들은 꽤 많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실패했지만, 저희들은 성공했습니다."
 
 미영에게 몰래 양식이 말했다.
 
 "살던 나라를 떠나서 자기네들끼리 새로 나라 세우고 법만드는 그 자체가 불법 아니에요? 이거 무슨 사이비 구세주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살면서 교주를 왕처럼 모시고 자기들끼리 법 만들어서 괴상하게 사는거랑 비슷하잖아요. 여기서 얘네들이 이렇게 이상하게 모여사는 바람에 여기서 태어난 아기들은 지구에서라면 간단히 치료 받을 수 있는 병에 걸려도 손도 못쓰고 죽게 된다고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자기네들 이상한 풍습 지킨다고 애들을 죽게 놔두는 거 아니에요?"
 
 양식의 그 말을 눈치 챘는지, 학자는 간단한 식사를 마치자 같이 거리를 걸으면서 이야기 하자고 했다. 학자와 함께 거리를 걸으면서, 과연 모든 사람들이 성실하고 착하며 각자 개성적이고 즐겁게 지내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저희는 처음부터 최대한 합법적으로 저희 행성에서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직까지 자연재해들과 인간의 평등권에 관한 문제들을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저희 행성은 살기 좋은 곳이고 우리 행성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어려운 큰 문제가 있어서, 두 분 지구인들께 저희들이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양식은 미영에게 "우리를 이 사람들이 믿는 이상한 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된다고 하는거 아녜요?"하고 중얼거렸지만, 미영은 말을 멈추게 했다. 학자가 말했다.
 
 "저희 행성 가까이에 소행성들이 다가와 있고,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저희가 사는 행성에 소행성들이 충돌할 예정입니다. 소행성들이 충돌하면 저희 행성은 멸망하고, 저희들 사는 사람들 전체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죽게 될 것입니다. 저희 행성은 300년전 부터 지구와는 별도로 기술을 발전시킨 곳이기 때문에 아직 비행기에 대한 기술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우주선도 없고, 소행성을 파괴할 기술을 개발해 놓은 것도 없습니다."
 
 미영은 그 말을 듣고 겁을 먹고 말을 한참 멈추었다. 양식이 대신 말했다.
 
 "저희 우주선도 그냥 순항용 우주선입니다. 저희 우주선에는 소행성을 부술 무기도 없고. 구조용으로 쓴다고 해도 몇 사람 더 태우기도 버겁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저희가 돌아갈 길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우주를 향해 막연히 구조 신호를 보내면서, 그 신호를 받은 우주선이 무적의 우주함대일 가능성을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훨씬 더 간단한 다른 일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저희는 두 분께 물과 식량을 충분히 드리는 대신에, 우주선 컴퓨터에 보관 중인 감정진보공학 교과서를 얻기를 바랍니다."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요. 그걸 뭐에 쓰시게요?"
 
 미영이 물었다. 양식이 끼어들었다.
 
 "감정진보공학 기법을 사용하면 사람 마음을 조정하고 설득하는 데 좋은 기술을 얻을 수 있을거니까. 그걸 이용해서 소행성이 충돌해서 멸망하기 전에 여기 사시는 분들이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공포감 없이 안락한 마음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위로하는 선전 작전을 펼치시려는 뭐 그런건가요?"
 "그렇게 쓰는 것도 마지막 수단으로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닙니다.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소행성을 부술 수 있는 무기를 구했습니다. 빌려온 무기인 셈입니다."
 
 학자 앞에 이 행성 한 나라의 공주가 나섰다. 그 공주는 지구의 기준으로도 이 행성의 기준으로도 미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공주가 미영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웃음은 매우 공주 같아 보였다.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한 가지만 더 선생님께서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3.
 미영은 한 남자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방은 편안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남자는 이 행성의 평범한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미영은 학자에게 부탁 받았던대로 남자에게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미영은 우주선에서 가져온 입체 영상 기계를 이용해서 설명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영상을 보여 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이 행성이 소행성 때문에 멸망할 위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걸로 생각 합니다. 행성 멸망을 앞두고 이렇게 사람들이 다 침착한 걸 보니, 저는 여기에 얼마나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문명이 건설됐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밖에 말 안했는데, 남자는 벌써 미영이 지구에서 온 사람인 것을 알아 챘다. 미영이 놀라자, 남자는 입체 영상 기계를 가리켰다. 이 행성에는 이런 전자 장비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지구에서 오신 분을 만나다니, 엄청나네요. 지구에서 오셨으니까, 저런 소행성 같은 건 그냥 한손으로 쓱쓱 쓸어 버릴 수 있으시죠?"
 
 이 행성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구에서 탈출해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행성 주민들은 착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맨손으로 도시와 나라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조상들이 어마어마한 우주선과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대대로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 행성 사람들은 지구인을 아주 사악하고 도덕적으로는 완전히 타락해 있지만, 힘과 기술은 비할바없이 막강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행성 사람들은 지구인들을 무서운 힘을 가진 악마나 용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용에게도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기우제는 지낼 수 있듯이, 자신의 조상인 지구인들에게 대신 소행성을 없애 달라고 빌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영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탐사 우주선이 일부러 여기를 찾아온 것이 아닌 다음에야, 보통 우주선으로 지구에서 이곳까지 찾아오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는 지구에서 오기는 했지만, 소행성을 막아낼 힘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 우주선에 막아낼 힘이 없다고 해도, 이 행성에도 지구의 기술이 보존 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처음 여기로 올때 타고온 우주선을 지하 동굴에 묻어 둔 것이 있었습니다. 조상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부수지 않고 보존해 둔 것입니다. 아무도 함부로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금지해 두었고, 대부분의 기계가 낡아서 못쓰게 되었지만, 아직 그 잔해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잔해를 이용해서 소행성들을 부술 수 있는 광진동 공명 대포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몇 가지 부족한 재료들은 제가 저희 우주선에서 나누어 드렸기 때문에, 지금은 무기가 완성되어 있습니다."
 "잘됐네요. 그러면 그 대포로 소행성 부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왜 불안하게 이렇게 이상하게 아늑하고 너무 깨끗하고 좋아보이는 곳으로 저를 데려온 건데요?"
 "광진동 공명 대포는 300년전에 유행한 생체신경망 기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 처리 컴퓨터 대신에 사람이 들어가서 사람의 뇌를 컴퓨터처럼 활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생체신경망 장치는 유전자 열쇠가 맞아야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우주선이었던 것을 부족한 우리 기술로 다시 재조합해서 무기로 바꾸다보니, 유전자 열쇠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원래 우리의 조상들이었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섞인 모양이 되었던 겁니다.
 
 그 섞인 유전자와 정확히 들어 맞는 사람으로 찾아낸 사람이 딱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그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우리 행성을 구할 무기를 작동시키는 열쇠라는 겁니다."
 
 미영이 거기까지 설명하자, 학자가 다시 방으로 들어 왔다. 미영은 부탁한대로 설명을 마쳤기에 돌아서서 나왔다. 미영은 학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제가 설명해야 된다는 건가요?"
 
 학자는 미영을 보지 않고 방안의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미영이 물은 것에 대답했다.
 
 "왜냐하면, 이미영 사장님께서는 지구에서 오신 분이고, 우리 행성 사람들은 지구에서 오신 분이 하시는 말씀은 엄청나게 진지하고 위대한 사람이 하시는 말로 듣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 오신 이미영 사장님께서 이렇게 설명을 해 주셔야,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나머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미영은 '나머지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흥분을 하고 말고 한다는 건가'하고 잠깐 궁금해 했다. 학자가 뒤이어서 방안의 남자에게 말했다.
 
 "저희 기술로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지만, 광진동 공명 대포의 컴퓨터는 불안정합니다. 선생님이 대포 안으로 들어가면, 대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하겠지만, 대신에 작동하면서 선생님의 뇌에 큰 무리가 갈 겁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대포를 작동해야만 우리 행성은 안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대포 안에 들어가서 대포를 사용하게 되면, 선생님의 뇌는 완전히 튀겨지고 선생님은 사망할 것입니다. "
 
 미영은 방안에 나온 뒤에 방 바깥의 스피커로 그 소리를 들었다. 미영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미영은 계속 지켜보면서 양식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에요?"
 
 양식이 대답했다.
 
 "내일 아침까지 저 양반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이 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는다는 거죠."
 
 
 4.
 방안의 남자는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감정진보공학 이론을 사용해서 학자들은 차분히 남자를 설득하고 있었다. 결코 목숨을 바쳐 행성을 구해달라고 윽박지르거나, 협박하지도 않았다. 학자들은 모든 것이 다 남자의 자유라고 했다.
 
 "이 행성에 우리가 건너와서 300년 동안 고생을 한 것은 제대로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저희는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억지로 희생시킨다면 수억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도 꺼림칙하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죽고나면 뭐가 다 소용이겠냐는 생각도 이해합니다. 내가 죽으면, 그 다음에 남은 세상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인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회의론적인 유아론도 인정합니다. 세상에 선생님만이 의미있는 존재이고 우리와 이 행성의 모든 사람들은 사람처럼 움직이는 인형일 뿐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결코 저희는 선생님이 죽어야만 한다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되물었다.
 
 "내일까지 입니까? 그러면 내일이 되면 어차피 다같이 죽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내일이 지나면 대포로 소행성을 모두 없앨 수 있는 궤도에서는 벗어나게 되고, 우리가 살아날 기회는 잃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행성이 당장 이 행성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15년 정도 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잘하면 30년 정도는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정말로 내일 모래 소행성들이 땅 위로 쏟아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학자들은 남자에게 내일 아침에 목숨을 버리고 대신에 모든 사람들을 살리도록 하든지, 아니면, 15년 정도 다 같이 지내다가 한꺼번에 같이 모두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선생님 마음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대로 이 길로 이 방을 나가시기만 하면 그냥 끝입니다. 아무도 붙잡지 않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모두 다 죽을 겁니다."
 
 공주가 나서서 그 뒤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만약에 대포 안으로 들어 가시는 것을 결심하신다면, 저희도 그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이 사실을 모두 당당히 모든 나라에 알릴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칭송하고 선생님께 환호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모두를 다 구해낸 영웅이 될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니까 말입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그 어떤 위인이나 영웅들보다도 찬양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 있는 저희들이 나서서 선생님께서 이 행성의 역사에 영원히 선생님의 업적이 칭송되도록 모든 힘을 다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선생님께서는 죽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끝으로 생명을 버리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50년에서 80년 정도를 살다가 죽을 뿐입니다. 조금 많이 살든, 조금 적게 살든 어차피 긴긴 세월에 비하면 잠깐 살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그렇게 사는 그 많은 사람들이 삶이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부질없이 잊혀질 뿐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높은 위대한 자리에 영원히 기억 되어 남으실 겁니다.
 
 지금 선생님 나이 보다 더 짧은 삶을 살다가 죽은 예술가나 배우들로도 유명하고 존경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 사람들에 비하면 더 긴 삶을 사신 것인데, 그 후에는 더 유명해 지실 것이고, 더 착하고 더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어차피 당장 이번 주말에 교통사고로도 죽을 수 있는 삶이고, 아무도 모를 불치병에 걸려 연말에 죽을 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신다면 선생님께서 선택하실 일에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걸어 나가려고 하던 남자는 다시 주저 앉았다. 남자가 주저 앉을 것을 보자, 공주는 다시 남자에게로 다가 갔다.
 
 "결심을 하시고 나면, 저희는 선생님을 위해서 저희가 세상에서 해드릴 수 있는 무엇이든 해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연설회이건, 뭐든 내일 아침까지 준비해드릴 수 있습니다."
 
 남자는 한참 망설였다. 그리고 남자는 점차 힘없어지고 기운빠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남자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고 있던 여자에 대해서 고백했다.
 
 "제가 죽는다고 하면 뭐든 다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그 아이가 저를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건 안되잖아요.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저 좋아하는 척 하라고 위협할 수야 있겠지만, 정말 좋아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자 공주는 밝게 웃었다.
 
 "아니오.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지구에서 오신 분들로부터 감정진보공학에 대한 자료를 얻었습니다. 저희들은 선생님 그 여자분이 선생님께 반하게 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예? 그럴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 이 행성의 수 억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라는 사실이 있다면,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막강한 감정을 기회로 이용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신실한 사랑의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내일 아침까지 선생님은 세상 누구도 부러워할만한 진실한 사랑의 열정을 선생님께서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는 모든 지원을 다해서, 선생님과 그 여자분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행복하게 자라나도록 지원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5.
 사람들이 남자에게 제안한 것을 듣자 미영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소행성에 대해 다른 방법을 찾아 다니면서 돌아 다녔다. 그렇지만, 밤은 속절 없이 깊어만 갔고,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갔다. 미영은 남자의 죽음을 반대하는 몇몇 이 행성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 그런 반대 의견에 의심을 품게 되는 사람도 생겨 났다.
 
 "생각해 보세요. 여기가 지구 같았으면, 너 만약 대포 안으로 안들어가면 내 손으로 잡아 죽이겠다는 사람들도 넘쳐 났을 거라고요. 지구였다면, 저 사람 가족이나 친구 붙잡아다가 고문하면서 대포 안으로 들어가서 죽으라고 협박하는 놈은 없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최소한 그렇지는 않잖아요. 여기서는 이만하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하지만 미영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별로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보였다. 양식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1951년 영화로 '세상들이 충돌할 때'라는 영화가 있는데, 혜성에 부딛혀서 지구가 멸망하는데 희생해서 살아남는다 뭐 이런 내용이라고요. 사람들이 꼭 이야기를 꾸미면 꼭 이렇게 되기가 쉽더라고요. 큰 위기가 생기면 그만큼 큰 대가를 치러야만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큰 대가로 항상 떠올리는게 누가 숭고한 희생을 하는 거라는 거지. 사람들 마음 속에 그렇게 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가 희생해야 된다는 게 합리적인 거래라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단 말이지."
 
 시간을 확인하더니, 양식이 뒤이어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는 위험해지니까 그 전에 우리는 빨리 멀리 가죠. 혹시 우리 우주선에 태울 수 있는 한 몇 명이라도 사람들을 구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그게 아니라요. 우리 때문인것 같기도 해서요. 우리가 신호 듣고 여기로 안왔으면 광진동 공명 대포도 완성 못했을 거고, 정교하게 감정진보공학을 쓰지도 못했을 거 같은데. 나는 멋모르고 그 남자한테 말하는 거 거들기도 했고."
 "반대로 우리 덕분에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마지막 기회라도 얻은 거죠.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도 결국 어떻게든 비슷하게 했을 거에요."
 
 양식이 한 말을 듣고 미영은 잠시 침통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미영은 갑자기 다시 남자가 있는 방을 향해 뛰어 갔다. 미영은 남자에게 우주선에서 쓰던 전화 하나를 주더니,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라고 했다.
 
 미영은 방안의 남자를 설득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이 행성의 음악가들을 찾았다. 지구에서 온 무서운 지구인 종족의 위엄으로 미영이 부탁을 하는 것은 효과가 상당해서, 미영은 도덕과 문화를 발달 시키는 것에 최선을 다한 행성의 음악가들이 소행성이 떨어질 날을 앞두고 가장 멋진 연주를 할 기회를 얻도록 부탁했다.
 
 미영과 양식의 우주선은 행성 상공으로 날아 올라 행성을 빙빙 돌면서, 구식 전파로 전송된 연주를 국소 타키온 통신으로 전송했다. 우주선은 행성을 도는 인공 위성이 되어 이 행성의 그 멋진 마지막 노래를 근처의 공간으로 퍼뜨렸다.
 
 "저기 있다!"
 
 한참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양식이 우주선의 감지기를 보고 외쳤다. 노래를 듣고 록밴드 하겠다고 가출한 녀석이 구경을 온 것이었다. 최신형 탐사 장비를 갖춘 녀석의 우주선이 다가 오자, 그 때를 기다리고 있던 양식은 멋지게 가출 청소년의 우주선을 습격했다.
 
 "왜 이러세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남의 우주선에 이러는 게 어딨어? 누가 이래도 된데?"
 "니 애비다."
 
 양식은 그 대답을 끝으로 가출 청소년의 우주선을 빼앗는데 성공했다. 미영과 양식은 탐사 우주선의 기능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빼앗은 우주선을 이용해서 전속력으로 지구 방향으로, 은하수로 날아갔다.
 
 미영이 시간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며 아슬아슬하게 여기고 있으니, 사연을 들은 집 나갔던 녀석은,
 
 "하여튼... 답답하기는. 초광속으로 폭주족질 하는 게 뭔지 상상도 못하죠?"
 
 라고 하더니, 우주선을 더욱 더 정신 나간 속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영과 양식과 가출 청소년은 태양계로 돌아 왔고, 돌아오자 마자, 화성에 있는 긴급 항행 의회에 연락을 보내고 새로운 행성으로 가는 지도를 전송했다. 결국 머나먼 지구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행성을 구하기 위해, 지구인들은 막강한 화력을 가진 우주선들의 대함대를 보내게 되었다.
 
 
 6.
 함대와 함께 다시 행성을 향해 미영과 양식은 돌아 왔다. 미영은 이제 아무도 죽지 않아도, 날아드는 소행성을 모조리 다 수소폭탄과 살인광선으로 다 파괴하고, 행성을 간단히 구해낼 수 있다고 기뻐하며 방안의 남자에게 연락했다. 방 안의 남자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는 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 행성의 새벽에 잠 못이루고 깨어 있던 남자는 그러다가 아주 느린 속도로 미영과 미영이 이끌고 온 지구의 함대에게 말했다.
 
 "안 오시면 안됩니까?"
 
 미영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금방 알아 듣지 못했는 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냥 안 오시고 돌아가시면 안되겠습니까? 안 오시면 안되겠습니까?"
 
 남자는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왜요? 아니, 왜요?"
 
 미영은 겨우 힘을 내어 물었다. 하지만,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양식은 미영의 전화를 끊게 했다.
 
 "사장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 까지는 다 하신 거에요. 어려운 일이잖아요. 항행 의회 사람들이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하자고요."
 
 양식은 잠시 어쩔 줄 모르고 그저 머물러 있는 함대를 남겨 두고, 우주선이 다시 떠나도록 움직였다. 그리고, 잊혀져서 홀로 지내고자 했던 그 사람들이 원했던대로, 그 행성으로 가는 지도는 삭제해버렸다. 지도를 삭제하면서, 양식은 공주가 몰래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저 사람이 만약 우리 제안을 거절한다면, 저희는 저 사람에게 우리 다음 계획을 알려 줄 겁니다. 우리는 절대 협박을 하지도 않고, 저 사람을 강제로 세뇌하거나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희 다음 계획을 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효과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저 사람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저 사람에게 그러면 다른 사람 중에 유전자가 맞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 볼 거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물론 운이 없어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저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에게 한 제안을 할 겁니다. 그러면 저 사람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 내일 아침이 지난 후에도 그 목숨을 그대로 오늘처럼 어제처럼 그 전날 처럼 하루하루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대신 세상의 모든 기쁜 일을 경험하고 우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길이 남을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가는 것입니다."
 
 미영은 양식에게 어떻게 되었을 지 궁금하다고 알아보려고 해야하지는 않겠냐고 물었다. 양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독립 자치권을 얻은 행성들에 대한 원칙이 있으니, 어떻게 결론을 내든 눈앞에 성당의 어두운 벽면 앞에 기도하는 촛불처럼 반짝이던 함대의 우주선들도 돌아 오면서 지도를 지울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행성에서 있었던 일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는, 앞으로도 알기 어려울 것이었다.
 
 - 2012년, 논현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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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No Profile
    쑤우 12.09.01 00:46 댓글 수정 삭제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도 생각나고
    호시 신이치 옹의 단편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러네요
    곽재식 문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 이번에도 멋지게 묘사된 거 같아요~!
  • No Profile
    곽재식 12.09.01 13:37 댓글 수정 삭제
    아닌게 아니라 이 시리즈에서는 이것저것신경 안쓰고 별다른 내용없아 SF물 소재 생각나는대로 짧게 꾸며 보는 이야기로 해 보고 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이번 달에도 감사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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