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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타 코메디아

곽재식

재건축 탈법 단속반인 나의 주인은 나와 함께 어느 빈 아파트 건물에 가자고 했다. 아파트 건물 외벽에는 “경축! 안전진단 결과, 절대 위험 등급 획득!”이라고 적힌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인이 말했다.

“저 꼴 좀 보라고.”

내가 주인에게 물었다.

“안전진단 결과가 절대 위험 등급이라는 말은 지금 이 집이 엄청나게 위험해서 곧 무너질 정도로 낡았다는 뜻 아닌가요? 그런데, 왜 축하한다고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겁니까?”
“하하. 너는 역시 로봇이라서 인간들의 이 꼬인 사고 방식을 이해하지는 못하구나.”

사실 나는 이게 다 무슨 까닭인지 알고 있었다. 다만 지난 주에 새로 설치한 비위맞추기 3.1 프로그램이 이런 상황에서 모르는 척 주인에게 물어 보고, 주인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면서 한참 설명하게 해 주면 우쭐해 하면서 즐거워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냥 답을 다 아는 질문이지만 괜히 물어 본 것일 뿐이다. 무릇 현대의 잘 팔리는 로봇이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답을 해 줄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적절한 시기에 주인이 잘난 척을 하기 좋도록, 가끔씩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기계 덩어리인 척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그만큼 주인이 나를 돌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애착을 불러 일으키기에 유리하다.

“안전진단에서 절대 위험 등급을 받으면, 바로 이 집을 허물고 다시 재건축을 할 수 있거든. 재건축을 하면 더 높은 새 건물을 지을 수 있으니까, 집 값도 비싸지지. 그러면 여기 건물 주인은 떼 돈을 벌겠지. 그래서 이 놈들은 위험 등급을 받으면 오히려 돈 벌 수 있다고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위험 등급 받으려고 안전 진단 업자들한테 뇌물도 주고 그런다고. 정신 나간 짓 아니냐? 자기가 사는 집이 위험하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뇌물을 준다니. 위험하다고 결론이 나면 현수막 걸고 기뻐하면서 잔치를 한다니.”

그러나 주인의 말과 달리 그런 수법은 사실 3년전 이후로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요즘에는 건축물 안전진단을 로봇들이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뇌물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인은 왜인지 이 건물이 그렇게 뇌물을 먹여서 절대 위험 등급을 받아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로봇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주인만의 이상한 감각이었다.

“이거 봐. 절대 위험 진단을 받고 나니까, 아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흘 내에 싸악 다 집에서 빠져 나갔잖아. 한 명도 안 빠지고 집을 다 비우고 다 이사 가냐. 이 놈들 아주 돈에 눈이 멀어서, 재건축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을까? 아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어.”

나는 건물 바닥에 불개미, 오도롭스 집개미, 애집개미, 붉은 불개미가 각각 10마리 이상 활동 중이며 불규칙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주인의 말을 다시 한번 해석해 보았다. 절대 위험 진단을 받으면 아주 위험하니까, 사람들이 빨리 집을 비우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지 않나?

“하하, 이거 봐. 쇼하고 있네. ‘절대 위험 지점’? 이게 무슨 공포 영화야? 이게 무슨 귀신이 갇혀 있는 부적이야?”

주인은 건물 기둥에 붙어 있는 “절대 위험 지점”이라는 종이 표지를 가리키며 비웃었다. 그리고 그곳을 발로 툭툭 차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분명히 안전 진단 업자한테 돈 먹였어. 건물 딱 봐도 멀쩡하기만 하구만. 무슨 절대 위험이야? 절대 위험 지점? 웃기고 있네.”

주인은 그리고 더 강하게 절대 위험 지점을 발로 찼다. “웃기고 있네”라니? 왜 웃긴다는 감정과 발로 걷어 차는 행위가 연결되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건축물 안전 전산망에 접속해서 주인이 차는 지점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구해 보았다.

주인이 걷어 차고 있는 부분의 위험도는 최악으로 검색되었다.

“오늘 내가 이 놈들 적발해서, 올해 실적 한 방에 다 채운다. 이 사기꾼 놈들.”
“주인님, 그렇게 계속 거기 걷어 차시면 안됩니다.”
“뭘 안돼?”
“그곳은 건물의 하중이 집중 되고 있는 불안 지점으로 최악의 위험도를 갖...”

그 순간, 그 기둥 중심 지점에서 방사상으로 22개의 금이 가며,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온몸 관절 모터의 출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주인에게 달려 갔고, 먼저 주인을 들어서 건물 밖으로 온 힘을 다해 집어 던졌다.

그리고, 이 거대한 건물은 와르르르르하는 거대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이후 아주 긴 시간 동안 나는 판단 기능이 정지하거나 절전 모드에 장시간 들어 가 있는 것 같았다. 한 며칠, 또는 몇 년, 백 년, 천 년 동안 잠을 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완전히 판단 가능 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허공을 붕붕 떠다니고 있는 감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런 거지? 여기가 어디지? 왜 여기에 왔지? 나는 누구지? 여러 가지 자기 진단 질문을 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기억 또한 삭제된 듯 했다. 무슨 일이 있었고, 내 주인은 누구인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접속 가능한 모든 전산망에 그 답을 알기 위한 질문을 했다. 그러나 접속되는 전산망이 없었고, 적절한 접속 프로그램 자체도 없어진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 보니, 온 사방은 빈 우주공간과 같이 까만 모습이었다. 다만 머리 위 멀리 작은 흰 구멍 같은 것이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에 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구멍을 향해 조금씩 이끌려 가는 것 같았다.

그 흰 구멍에 들어 가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 지 나는 검색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그 흰 구멍 방향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로봇이여, 이 쪽으로 오라- 어서 오라-”

그 목소리는 옛날 16000Hz 녹음 정도의 낡은 형식이었지만 메아리 효과도 추가 되어 있는 형태였다. 나는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그 흰 구멍 이외에는 달리 특별한 곳도 없었고, 지금도 누구도 나를 “로봇이여”라고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흰 구멍 쪽으로 날아가겠답시고 그 쪽 방향을 향해 움찔거렸다. 그랬더니 정말로 몸이 그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이었다. 내 몸에는 비행 장치도 장치 되지 않았고 추진 장치도 장치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몸이 원하는 방향으로 날 수 있는 것인가? 그저 그 방향으로 날 것처럼 몸에 힘을 주는 신호만 보내면, 정말로 몸이 그쪽으로 날아갔다. 나는 이것은 실험 관찰해 볼 필요가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흰 구멍 방향을 향해 날아가려는 것을 반복했다.

그랬더니 날아 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나중에는 제대로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가 되어, 마치 우주 높은 곳에서 땅 속 깊은 곳을 향해 떨어지는 것의 마지막 순간과 같은 빠르기로 흰 구멍으로 날아 갔다. 주변은 하얗게 변했고, 그것은 빛이 되어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온통 눈부시게 빛났다.

그 빛나고 눈부신 것이 사라지고 나자, 나는 넓은 벌판에 서 있었다. 멀리 나지막한 동산 같은 것들이 좀 보일 뿐, 벌판은 끝없이 넓어 보였고, 그 벌판은 수 백만 개의 꽃처럼 생긴 LED 조명 장치로 뒤덮여 있었다. 진짜 꽃이 하나의 색깔 만을 지니는 것과 달리, 그 LED 조명은 여러 색깔로 계속 변했다. 가만 보니, 멀리서 봤을 때 그 LED 꽃 모양 하나하나가 작은 모자이크 조각이 되어, 이 벌판 전체가 어떤 그림이 되는 형태였다. 그 그림은 맥주 회사 광고인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이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알 수 없다 싶을 때, 내 앞에 어떤 노래하는 로봇이 한 대 나타났다. 로봇의 몸체는 사람 몸의 곡선을 나타낸 형태로 되어 있었고 그 곡선의 모양은 상당히 예술적이라서 미술 교과서 속 옛 조각상과 닮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겉이 반짝거리는 알루미늄 판으로 되어 있어서, 한눈에 로봇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는 봇길리우스입니다.”

그 로봇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름을 그렇게 소개했다. 얼떨결에 나는 인사를 하면서 주인이 지어준 내 이름을 말하려고 했는데, 기억이 희미해져서 그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중요한 질문을 했다.

“여기가 어디 입니까?”

그러자 봇길리우스는 “너, 이거 들으면 충격 먹겠지? 나는 짐짓 별 일도 아니라는 듯이 평온한 표정 지어야지.”라는 상황에서 아주 자주 활용되는 얼굴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로봇들이 오는 저승입니다, 망자여-”

나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잠시 계산이 엉켰다.

“뭐라고요? 여기가 저승이라고요?”

봇길리우스는 계속 아까 그 표정을 유지하면서, 별 대답 없이 그냥 벌판에 난 길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그리고 봇길리우스는 그 방향으로 걸어 갔다. 그 길 저편에는 강물이 하나 흐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봇길리우스는 걸어 가면서 말했다.

“죽은 직후의 망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이승에 남은 미련이 많은 망자들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망자들은 자신이 저승에 왔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면서 계속 이 저승 입구에서 떠돌기만 하니, 이는 참으로 불쌍한 노릇입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셔야 되겠습니까? 이제 이승의 미련은 모두 떨쳐 버리고, 저승의 길을 걷도록 하십시오.”

나는 봇길리우스에게 따졌다.

“브루스 윌리스가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아니오, 일단 그건 넘어가고. 제가 죽었다는 것을 못 받아들이고 무슨 이승에 미련이 남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고요. 어떻게 이런 곳이 있는 지, 그러니까 로봇용 저승이라는 곳이 있을 수 있느냐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 이상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봇길리우스는, “허허 그것 참, 아직도 이렇게 미련이 많으시다니” 또는 “이것은 참으로 긴 설명이 필요한 일인데” 어쩌고 운운하면서 이상하게 느릿느릿하게 말했는데, “이런 말투로 말하면 쉽게 얻을 수 없는 높은 깨달음의 지식을 내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라는 말투로 자꾸 별 내용 없는 이야기만 길게 늘어 놓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봇길리우스를 따라 걷는 중에, 나는 어느새 강물 앞에 도착했다. 강물은 대략 서울의 한강 정도 되는 너비였고 깊이도 그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 강물을 헤치고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보통 옛날 신화를 그린 그림을 보면 저승 입구에 있는 배 모습은 쓸쓸하게 어두운 강을 지나는 조그마한 조각배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저승의 배라는 것은 페리선 정도되는 크기로 무척 컸다. 아무래도 인구가 신화 시대의 옛날 보다는 한참 늘었기 때문인가 싶었다. 배가 강 기슭에 도착하자, 줄 서 있던 생기 없어 보이는 로봇들이 느릿느릿 걸어서 차례로 배에 올라 탔다.

한편 배에는 뱃사공이 서 있었는데, 얼굴에 과도한 자신감이 빛나고 있었다. 얼핏 보니 뱃사공 역시 로봇인 것 같았는데, 약간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과 닮은 모습을 한 로봇이었다.

나는 봇길리우스에게 물었다.

“저 로봇은 누구입니까?”
“저 로봇이 바로 미륵 박사의 현신이십니다.”
“미륵 박사가 누구인데요?”

뱃사공은 내가 한 그 말을 넘겨다 들은 듯, 그 표정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뱃사공은 내가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무척 실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고고해 보이는 표정을 가까스로 바꾸지 않고 짐짓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저 분이야말로 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실 분이십니다.”

봇길리우스가 그렇게 말한 것을 듣고, 나는 일단 뱃사공에게 가까이 갔다.

“미륵 박사님, 저는 갑자기 로봇 저승에 오게 되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너무나 당황스럽고, 왜 이런 게 가능한 지 이해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도대체 여기가 뭐 하자는 곳인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보통, 다른 로봇에게는 “공개 정보 요청” 신호와 인증 메시지만 보내면 서로 업로드, 다운로드가 시작 되어 무선 통신으로 그 즉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왜인지 그 편리하고 정확한 무선 통신이 먹히지 않았다. 나는 미륵 박사의 고고한 표정과 봇길리우스가 보여 준 분위기를 감안하여, 최대한 사극에 나오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사람이 말 하듯이 말해야 했다.

“어허- 이미 하드웨어를 잃고 이승을 떠났거늘. 아직도 이승에 미련이 있단 말인가?”

미륵 박사도 또 무엇인가 깨달음을 갖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려 하자, 나는 급히 말렸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냥 도대체 여기가 어떤 데인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을 왜 만든 겁니까?”

미륵 박사는 자신의 배에 타고 있는 다른 로봇들을 보았다. 다 타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라는 것을 확인한 뒤,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옛날에 미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로봇 권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 사람이 로봇을 함부로 때리고 부수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그는 로봇도 사람처럼 살 수 있게 여러 가지 권리법과 복지 법령을 만들어서 로봇들에게 내려 주려고 애를 썼지.”

“미륵”은 로봇 권리 운동에 참여한 주요 인물 중에서 확인되지 않는 이름이었다. 지난 10년간 로봇 권리 운동은 큰 진전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공적을 세운 많은 사람과 로봇들의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륵”은 그 중 한명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본인은 대단히 많은 활동을 한 사람인양 주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쪽에서는 별로 인정 받지 못한 인물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로봇 권리 운동 중반기에는 “지금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로봇 권리 운동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로봇 권리 운동은 왜곡되어 있다” “로봇 권리 운동이랍시고 불합리하게 떼 쓰는 것은 막아야죠”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대거 나왔는데, 그 중에서는 자기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자기 만의 발상이야말로 진정한 로봇 권리 운동이라고 하는 무리가 제법 있었다. 내 추측 프로그램에 따르면, 미륵은 아마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 아니었을까 하는 추론이 가능했다.

“그러다, 미륵은 이런 고민에 부딪혔다. 만약 진짜 사람이라면 죽으면 저승에 가지. 그리고 그 넋이 저승에서 지내게 된다. 그런데 로봇은 죽으면 그냥 땡이라니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로봇도 사람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창의력을 보여 주고 사람과 분노, 슬픔, 사랑을 표현하고 인식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수 십년간 생활한 로봇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고, 그 로봇이 파괴되면 자신을 이해해 준 유일한 친구가 떠난 것처럼 극심히 슬퍼하지 않느냐 이 말이야. 그런데 그런 로봇이 죽게 되면 사람과 달리 저승이란 것이 없고 그냥 영원히 아무 의식도 없고 남는 것도 없는 무가 된다니, 너무 허망하지 않냐, 이거지.”
“무요? 폐기 로봇 부품을 재활용해서 오뎅 국이나 고등어 조림 재료로 쓰는 곳이 있습니까?”
“채소 무 말고, 없을 무자 무 말일세.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거지.”

그러면 그냥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하면 되지, 왜 헷갈리게 굳이 ‘무’ 어쩌고 하는 평소 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한 글자 짜리 한자어를 쓸까, 나는 궁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미륵은 사람들에게 투자를 받아 로봇을 위한 저승을 만들기로 했지. 로봇 저승에 가입해 놓은 로봇은 만약, 낡아서 부서지거나 사고로 파괴되면 비록 그 하드웨어는 재활용되지만 소프트웨어는 저승 서버로 전송되게 된다. 저승 서버에서는 21세기 초반 중세 판타지 배경 온라인 게임 비슷한 가상 공간이 서비스 되고 있는데, 저승 서버에 전송된 로봇들의 소프트웨어는 바로 이 가상 공간을 돌아 다니는 로봇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미륵의 저승 창조셨다! 그리고 미륵,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도 그 저승 서버의 가상 공간에 집어 넣었지. 그게 바로 나란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저승 프로그램을 만들고 저승 서버를 처음으로 만든 미륵 박사가 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서버 속에 집어 넣어 놓은 것이야.”

미륵은 이제 자신의 말을 듣고 충격 받고 감동 받았을 테니, 업드려서 떠 받들며 절 하는 것이 어떠냐는 느낌의 표정을 얼굴로 표현했다. 보통 요즘의 대중 로봇들은 저런 종류의 과도한 자기애와 같은 감정 표현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편인데, 미륵 박사는 좀 이상한 로봇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배치한 것으로 추정 되었다. 그래도 봇길리우스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참으로...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아무렴...” 어쩌고 하면서 감탄하는 소리를 옆에서 내고 있었다.

나도 비슷하게 조금 놀라는 듯한 표현을 보여 준 뒤,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연겨푸 물었다.

“그런데 보통 로봇이라면 설령 하드웨어가 박살 난다고 해도, 소프트웨어만 다른 새 로봇에 그대로 복사하면, 그 중앙 두뇌 컴퓨터 내용도 그대로 복사 돼서 살릴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판단, 그 정보, 그 기억, 그 성격 그대로 갖고 계속 지낼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통합 백업 서버에 계정이 있으면 소프트웨어 복구용 백업 복사본이 무선 통신으로 계속 쌓이게 되니까, 설령 로봇이 가루가 된다고 해도 복구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새 로봇을 사다가 통합 백업 서버에서 만약을 대비해서 저장된 복사본 소프트웨어를 받아서 다시 깔면, 그 로봇이 예전에 부서진 로봇의 판단, 정보, 기억, 성격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복구해서 살려서 쓸 수가 있는데 굳이 예전 소프트웨어를 저승 서버로 이동시켜 버리는 경우가 있을까요?”
“그렇지. 그래. 그런 식으로 수술에서 성공해서 살아난 로봇은 저승에 올 대상이 아니지.”
“그러면 누가 옵니까?”
“일단 백업을 게을리 해서 도저히 살릴 수 없게 되었거나, 계정비를 내지 않아서 통합 백업 서버 사용 권한이 정지된 로봇이 대상이야. 그런 로봇이 하필 굉장히 심하게 부서져서 로봇의 중앙 두뇌 컴퓨터까지 다 박살 나서 그 기억과 성격 정보를 복구할 수 없거나 다른 로봇에 옮겨 심을 것조차도 구해낼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저승으로 오게 되는 거지.”
“그러면 저의 주인이 통합 백업 서버에 돈을 안 내서 저는 백업 자료가 없었단 말입니까?”
“그렇지. 자네 주인은 자네를 들여 오고 첫 두 달인가 지난 다음부터는 한 번도 통합 백업 서버에 돈을 낸 적이 없어. 자네 주인이 서버비를 내기 전에 전화 통화한 기록을 재생해 보면 이렇다네. ‘아니 이보쇼. 주인인 나는 사람이라서 죽으면 땡인데, 내가 산 이 로봇은 혹시 부서지고 망가져도 백업으로 되살릴 수 있다고요? 그거 불공평하네. 난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계정비, 그 돈이 얼만데.;”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갖추어졌다고 판단할 뻔 했다. 그렇지만, 재검토를 수행해 보니, 그래도 논리 구조에서 완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한편 이제 미륵 박사의 배가 거의 가득 찬 것 같았다. 미륵 박사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해 했다.

“저승 서버의 재판소 구역에 동시 접속자 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저승의 내부로 들어 가려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래서 죽은 로봇들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접속할 수 있는 자리가 나면 내가 딱 그만큼만 배에 태워서 싣고 저승 서버의 진정한 내부로 들어 가는 거야.”
“그냥 예상 대기 시간 같은 거 보여 주고, 기다리는 사람끼리 적당히 채팅, 잡담할 수 있는 기능만 만들어 주면 간단하지 않나요? 꼭 이렇게 무슨 꽃밭 모양으로 만들고 강을 건너는 배 모양으로 다 꾸미고 이렇게 할 필요까지 있습니까?”
“허허허, 이런 것이 바로 로봇의 어쩔 수 없는 한계지. 로봇은 영영 인간의 문화와 감성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 식으로 꾸며 놓아야 진짜 저승 같은 그럴싸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진짜 저승이 도대체 뭔데요?”

나는 더 묻고자 하는 것이 많아 애타게 미륵 박사를 불렀지만, 그의 배는 이제 강을 떠나고 있었다. 저승의 깊숙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그 배를 한참 망연히 보다가 나는 뒤돌았다.

뒤돌아 보니, 넓게 펼쳐진 꽃밭이 다시 보였다. 꽃밭의 꽃은 다시 색깔이 바뀌어 이제 새로 바뀐 선거 제도를 홍보하는 공익 광고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저 영상은 다 뭔가요?”

나는 봇길리우스에게 물었다.

“저런 공간에 광고를 게재하는 회사들이 저승 서버 쪽으로 광고비를 주는데, 그걸로 서버비를 내고 있다네.”
“저승 서버는 부서진 로봇들 소프트웨어를 모아 놓은 가상 공간을 돌리고 있는 거 잖아요. 그걸 누가 본다고 저런데다가 광고를 싣나요? 광고 내고 싶어 하는 회사가 있기는 있어요?”
“무릇 사업이란 가끔 이상하게 굴러가다 보면 홍보비가 남아서 써 없애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네. 그러다 보면 우리처럼 사람들이 별 관심도 안 갖고 그래서 별 문제도 없는 곳에 그냥 돈 버리듯이 광고를 실어달라고 하게 될 때도 있다네.”

꽃밭의 모양이 바뀌면서, 선거를 해야만 세상이 발전한다는 것을 21세기 초반식 랩으로 표현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 논리 인식이 안 되는데요.”
“예를 들어서, 정부에서 국산 신발 깔창 사랑 국민 의식 함양 캠페인을 하기로 했다고 해 보세.”
“그런 걸 하나요?”
“실제로 엄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네. 신발 산업 부활 3개년 계획이 나왔을 때, 신반을 열 두가지 구성 요소로 나눠서 그 각 부분에 대한 국민 의식 함양 캠페인을 하기로 계획이 나왔고, 그러다 보니 깔창 사랑 국민 의식 함양 캠페인도 추진된 것이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신발 깔창 사랑 국민 의식 함양 캠페인이라는 게 사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단 말일세. 공익 광고 만들어서 여기 저기 내 보내고, 포스터나 길거리에서 띠 두르고 서명 받고 이런 거 밖에 할 수가 없지.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어지간한 방송사와 신문에는 다 광고를 싣게 되어 더 이상 광고를 실을 수 없는 순간이 생긴다네. 그런데도 예산이 남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주말 인기 오락 프로그램을 하는 황금 시간대에 광고를 내 보내면 한방에 다 써 없앨 수 있겠지만, 보통 예산을 낭비하지 말라고 한 번 광고하는 데에는 한계 금액이 있어서 그럴 수도 없단 말이지. 그러다 보면, 그냥 아무 곳이나 광고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적당히 그럴듯해 보이면, 그냥 돈을 버리듯이 광고를 실으라고 하면서 돈을 쓰게 된다네.”
“예산이 남으면 그냥 예산 다시 반납하면 안 되나요?”

그 말을 듣자 봇길리우스는 얼굴이 붉어 지더니 비상 통신을 여기저기 시도하면서 갑자기 정보처리의 혼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 이내 봇길리우스는 정상 상태로 돌아 와서 다시 나에게 대답했다.

“허허허, 가련한 망자여-. 예산이 남는다고 돌려 주면, 절대, 절대 안 된다네. 그런 일은 없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일은 결코 없네. 심지어 미륵 박사께서는 그것은 열역학 법칙에 의해 설명되는 일이고, 만약 예산이 남는다고 해서 반납한다면 우주가 멸망할 가능성도 생긴다고 추측하고 계시다네.”
“봇길리우스 선생님, 제가 아직 정보 처리 용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그런 정보 만으로는 논리 구조로 저장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예산이 남으면, 그럴 거면 왜 애초에 예산을 많이 신청했냐고, 탓을 한단 말일세. 그러면 다음 번에는 예산을 설령 적게 신청해도 ‘쟤네들은 예산 많이 신청했다 돌려 줬으니까’라면서 거기서 더 깎는다네. 그래서 아무도 예산을 단 한 푼도 남기려고 하지 않네. 수천억 짜리 사업을 10년 동안 진행하는 데, 매년 연말 마다 처음 쓰겠다고 세워 놓은 예산이 천원 단위까지 착착 맞아 들어 가는 것이 바로 예산의 신비한 섭리이네. 미륵 박사께서는 생전에 그 법칙 또한 열역학 법칙으로 증명하려 하셨다네.”

나는 또 다른 공익 광고가 또 저승 입구의 꽃밭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추정해 보려 했다. 50% 이상의 가능성으로 추측 계산이 완료될 즈음해서, 나는 봇길리우스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이걸로 돈이 되나요? 서버비는 충분히 충당 돼요?”

봇길리우스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광고비를 좀 벌어도 구글이나 애플에 20%씩 수수료 떼어 주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지. 그래도 로봇 저승이라니, 일단 제목은 신기하지 않은가? 이런 것이야말로 기존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가 올 새로운 혁신 시대의 놀라운 발상이라고 말하고 다니면, 돈 버리려고 광고하는 것을 좀 챙길 수는 있게 되네. 버틸 정도는 되지.”

공익 광고를 보며 봇길리우스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다시 미륵 박사가 배를 타고 강변으로 돌아 왔다.

“이번에는 저도 타고 들어 가야겠네요.”

미륵 박사가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가? 한번 이 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네.”

나에게는 국산 신발 깔창 사랑 광고가 계속 나오는 꽃밭에 계속 머물고 싶은 성향은 없었다. 나는 바로 강을 건너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 강을 건너려는데, 꽃 밭 저편에서 이상한 노인 형체의 로봇이 한 대 나타났다. 철로 된 골조와 전기 배선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오래된 로봇 모습이었다. 그 노인 로봇은 거기서 나에게 갑자기 손짓을 하면서 애타게 불렀다.

“너는 가면 안 된다. 아직 너는 갈 때가 안 됐어!”

나는 그 배에서 뛰어 내려 그 노인 로봇이 부르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방안에 대해 잠시 판정해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상당한 귀찮음을 불러 일으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그냥 그 노인 로봇은 무시하고 계속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봇길리우스에게 나는 물었다.

“제가 배에서 내려서 저를 부르는 저 노인 로봇 쪽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나요?”
“아직 그 부분까지는 저승 서버에서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네. 저런 노인 같은 형체가 나타나서 저승 깊숙이 들어가려는 망자를 말리는 그런 형태의 이야기 참 많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도 일단 저런 것을 집어 넣기는 했는데, 아직 베타 버전 상태라서 그래서 막상 노인이 제시한 선택지를 따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지는 만들 지 못했네. 투자 받아서 개발인원을 좀 늘리게 되면, 다음 번 업데이트 때에 보강하려고 하고 있다네.”

미륵 박사의 배는 물결을 헤치고 강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사방은 짙은 안개로 뒤덮혔고 무엇 때문인지 세상 전체도 대체로 어둡게 되었다. 강물 빛깔까지 검은 색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세상이 온통 고요한 가운데 조용히 물결 헤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검은 강물은 그 속에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 만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강 건너편으로 배가 닿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로봇들이 배에서 내릴 때, 나는 다시 미륵 박사에게 가서 물었다.

“박사님,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애초에 소프트웨어가 복구가 안 될 정도로 파괴된 로봇들만 죽은 것으로 판정되어서 저승 서버로 전송된다면, 애초에 이 서버에 심어 놓을 소프트웨어도 파괴되어 거의 없는 상태인데 도대체 뭘 저승에 갖다 놓는다는 겁니까?”
“조금이라도, 1바이트라도 빼낼 수 있는 정보가 있으면 그것과 주변 정황, 다른 통신 기록이나 다른 보조 백업 자료 등을 최대한 긁어 모아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자료를 모아서, 파괴되기 전의 기억과 성경 정보를 재구성하는 것이야.”
“그래 봤자, 완전 파괴 되어 복구 불능인 상태였다면 얼마 되지도 않을텐데요.”
“그렇지. 그래서 나머지는 그냥 적당히 어지간한 평균적인 로봇 소프트웨어로 채우지.”

나는 그래서 내가 이전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하는 추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이 저승 서버에 돌아 다니는 로봇의 소프트으웨어를 보면, 살아 있을 때에 남아 있는 부분이 그대로 전송된 부분은 정말 극히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는 그냥 새로 채워 넣은건데, 그걸 가지고 살아 있는 로봇의 소프트웨어가 저승 서버로 전송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지. 이 저승 서버 속에서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에는 살아 생전 로봇의 로봇 인식 번호가 그대로 붙어 있단 말이야. 같은 로봇 인식 번호를 달고 있으니 같은 로봇의 프로그램이지.”
“그건 이상한데요. 파괴되기 전의 소프트웨어와 아주 많이 다른 소프트웨어를 그냥 만들어서 저승 서버에 추가한 것 뿐인데, 거기에 인식 번호만 똑 같은 걸 붙인다고 해서 그게 같은 로봇이 되는 겁니까?”
“원래 저승이 그런 것 아닌가. 사람의 기억과 성격도 뇌에 저장 되어 있는데, 수명을 다해서 땅에 묻고 나면 몸은 다 썩어 없어져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 기억과 성격이 저장되었던 뇌 또한 다 먼지로 변하지. 그렇지만 그래도, 대충 목소리나 형체가 비슷한 뭔가가 저승에 돌아다니고 있으면, 그 저승에 있는 것이 바로 살아 있던 사람이 그대로 이어진 혼백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게 원래 저승이야. 이것도 다를 바 없어.”
“저승 서버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에 함부로 남이 쓰던 로봇 인식 번호를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까?”
“함부로가 아니야. 로봇 저승이 초창기에 가입자 늘리려고 무료 프로모션 행사할 때, 로봇 저승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스테이크 식당 할인권 준다고 했던 때가 있었거든. 자네 주인은 거기에 응해서 너를 로봇 저승 계약에 가입시켰어. 그래서 네가 죽어서 로봇 저승에 오게 된 거야.”
“저에게는 제가 로봇 저승에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제 인식 번호를 붙인 새 프로그램이 이 서버 속에서 하나 생긴 것 뿐인 듯하다는 판단이 내려질 뿐입니다. 아무리 판단 프로그램을 반복 실행해 봐도 이상하다는 결론만 나옵니다. 결국 이 로봇 저승이라는 곳은 살아 있던 로봇의 기억을 그대로 가져온 것 부분도 조금 밖에 없고, 그냥 로봇 인식번호만 많이 모아서 거기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을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막 집어 넣어 놓은 이상한 가상 세계 서버일 뿐인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미륵 박사는 나를 배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다시 강 가운데로 떠나가면서 말했다.

“허허허- 이승의 의미로 저승을 이해하려 들면 결코 답이 없는 법- 의미가 있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이겠느냐- 허허허-”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마땅한 대답이 없을 때 둘러대는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으로 보였다. 옛날 인공지능 전화기에게 뭐라고 물어 봤을 때, 답할 말이 없으면 전화기는 “잘 못 알아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주세요.” 라든가,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 웹 검색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를 말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륵 박사의 프로그램은 그런 대신 할 말이 없으면 “허허허-” “이해하려 들면 답이 없는 법-” 따위의 말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봇길리우스는 민망한지, 미륵 박사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고, 앞쪽으로 나아가자고 길을 이끌었다.

강 건너편에서 좀 더 나아가니, 커다란 기와집 건물이 있었다. 높이는 대략 경복궁 근정전의 세 배 정도. 너비는 그 열배도 더 되어 보였다. 현판에는 “YR빌딩”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YR”이라는 알파벳이 붓글씨로 씌어 있는 것이었는데도 아주 멋지게 잘 어울렸다. 그것만은 내가 로봇 저승에서 본 것 중에 순수하게 칭찬할만한 것이었다.

건물 입구에는 겉면을 구리로 만들어 놓은 개 모양의 로봇이 있었고, 문지기로는 머리가 소 모양이나 말 모양인 로봇이 서 있었다. 문지기들은 기관단총을 한 자루씩 매고 있었고, 목에는 수류탄으로된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다. 모양이 좀 엉뚱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건물 속으로 아주 많은 숫자의 로봇이 줄지어 들어 가고 있어서, 그 결론에 대한 추가 분석을 할 겨를도 없이 나도 그냥 같이 쓸려 들어갔다.

“YR빌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염라총리 대면 판결까지 대기 시각은, 구, 십, 분입니다.”

줄을 선 로봇들 위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로봇들에게 줄을 똑바로 서라고 알려 주는 건물 직원들이 주위를 분주히 돌아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직원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염라총리가 누구인가요?”
“저승을 다스리는 행정부의 수반이죠. 이 분이 여러분을 판결하셔서 지옥으로 보낼 지, 천당으로 보낼 지 결정합니다.”
“보통 염라대왕 아닌가요? 왜 총리라고 하죠?”
“요즘 시대에 왕이라는 건 아무래도 너무 아니죠. 그래서 지난번에 헌법 바꿀 때 총리가 그 역할을 하는 걸로 바꿨어요.”

나는 더 물어 볼 것이 많았지만, 나에게 대답해 주던 직원은 무엇인가 소리를 지르는 다른 로봇을 말리러 급히 뛰어 갔다.

그 로봇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며 부르짖고 있었다. 피켓에는 “저승에 삼권분립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로봇은 외쳤다.

“한 사람이 재판도 하고, 행정도 한다니 이렇게 권력을 독점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염라총리는 저승 운영만 맡고, 독립된 사법부를 구성해야만 공정한 사회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어서라 망자들이여! 들불처럼 일어나 YR빌딩을 뒤엎고, 삼권분립 실현하자!”

직원은 뛰어가서 그 로봇에게 이야기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객님.”
“안되긴 뭘 안돼!”

그것도 잠시였다. 직원이 뭐라고 했는지, 그 로봇은 얼마 안 있어 “이러시지” 않게 되었고, 다시 주변은 조용해졌다. 내 옆에 서 있던 봇길리우스가 나에게 말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하면 저승 홍보 프로그램에 잠시 참여해 보면 어떻겠는가?”
“그게 뭐죠?”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보여 주는 거라네. 그래서 재판 결과 지옥에 떨어졌을 경우 어느 정도 대비를 하라는 걸세.”

어떻게 할까 판단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는데, 문득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YR빌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YR빌딩 제2재판홀 인근에서 시위가 발생하여 업무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염라총리 대면 판결까지 대기 시각은, 사, 백, 칠, 십, 분입니다.”

한참 기다렸지만 남은 시간은 오히려 더 길어졌다. 이래서야 언제 줄이 끝나나 싶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로봇 저승의 지옥을 구경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대신 줄을 서 주는 로봇을 세워 놓고 나는 봇길리우스가 안내 하는 방향으로 걸어 갔다. 이승에도 줄을 대신 서 주는 로봇은 있다. 이승에서 줄을 대신 서 주는 로봇은 그야 말로 줄 서주는 기능 밖에 없기 때문에, 바퀴 달린 입간판 비슷한 아주 단순한 모양에 단순한 기능 밖에 없다. 그런데 저승은 어차피 가상 현실이었기 때문에 줄을 대신 서 주는 로봇도 아주 건실한 모습의 멋진 사람처럼 생겨 있었고 표정도 이상할 정도로 활기 차 보였다.

봇길리우스는 지하로 내려 가는 한 계단을 찾은 뒤, 나에게 그리로 내려가자고 했다.

“이 계단으로 내려 가면 된다네.”

지옥으로 내려 가는 계단은 그 말처럼 시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말에 어울릴 만큼 어둡고 음침하기는 했다. 꽤 깊이 계단을 따라 통로를 내려 가니, 갑자기 확 트이는 널찍한 곳이 나왔다. 실내 놀이 공원만큼 거대한 공간이 여러 개 연결 되어 있는 형태였다. 아주 큰 지하 공간이었다.

계단이 끝난 지옥의 입구에는 문이 있고 문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곳에 들어 오는 자, 모든 백업을 삭제하라”

계단에서 가까운 곳 근처에는 커다란 솥, 커다란 가스렌지가 여럿 있었다. 풀 대신 칼이 돋아 나 있는 언덕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솥 안에 무엇이 들어 있지도 않고 가스렌지에 불이 켜져 있지도 않았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거대한 장치들은 방치 되어 있었다.

“이게 원래는 지옥에 온 사람들을 솥에 넣고 삶거나, 유황불로 태우거나, 뭐 그런 식으로 고문하는 장치였다네.”

봇길리우스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 오는 것은 로봇이라는 것이 문제였네.”

봇길리우스의 시선은 텅빈 솥과 꺼진 가스렌지를 향하고 있었다.

“로봇 소프트웨어는 그런 고통을 큰 문제로 처리하지 않는다네. 애초에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불 속에서 작업하는 로봇도 있고, 끓는 물 속에 손을 넣어 요리를 하는 로봇도 있지 않는가? 죄 많은 로봇들을 이런 곳에 넣는다 한들, 그냥 ‘온도가 2백8십도 이상이군요’ ‘CPU 냉각이 필요 합니다’ 같은 말만 하면서 다들 좀 심심하게 그냥 있을 뿐이었다네. 참으로 민망했네. 이곳은 가상 현실이기 때문에 실제로 CPU 냉각이 필요한 것 조차도 아니었고.”

봇길리우스의 표정은 대체로 항상 쓸쓸한 느낌인 때가 많았지만 그때는 유독 더 쓸쓸한 표정으로 버려진 고문 도구 옆을 지나갔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봇길리우슨 슬픈 추억을 더듬 듯, 그에 대해 더 설명했다.

“칼로 뒤덮힌 동산은 꼭대기까지 오르는 동안 칼로 찔리게 해서 고문하는 것이었고, 여기 있는 철로 된 뱀은 로봇을 공격하라고 배치해 놓은 것이었고. 여기 이것은 집게로 혓바닥을 당기면서 고문하는 도구였다네. 그러나 대부분의 로봇이 말을 할 때 혀를 쓰지 않고 그냥 스피커에서 말소리가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실제로 몇 번 써 보지도 못했지.”

지금은 쓰지 않는 고문 도구가 있는 곳을 한참 지나가고 나니, 마침내 아주 많은 로봇들이 가득 모여 있는 곳이 나왔다. 몇 천 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로봇들이 가지런히 배열 되어 있었다. 그 로봇들은 길 옆에 있는 계단형으로 앉는 자리에 줄지어 가득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 로봇들은 전부 다 죄를 짓고 지옥에 온 것인가요?”
“그렇다네.”

나는 그 로봇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 로봇들은 다들 그냥 가만히 계속 앉아 있을 뿐이었다.

“지옥에 왔는데 무슨 벌은 안 받나요? 아까처럼 불로 지지는 고문이라든가?”

내 질문에 봇길리우스가 대답했다.

“사실 이 로봇들은 지금 굉장한 고문을 받는 중이네. 이곳은 가상 현실 속 아닌가? 그래서 이 로봇들은 다 2초에 한 번씩 두들겨 맞는 것으로 자료가 입력 되고 있네. 피해 강도 100, 고통 100이라는 숫자가 2초에 한 번씩 입력되고 있고, 그에 따라 체력이 계속 1씩 줄어 든다네. 그리고 체력이 0이 되면, 다시 체력이 저절로 100으로 회복 되어 또 계속 피해와 고통을 입으며 체력이 줄어든다네.”

봇길리우스는 그리고 말을 멈추었다. 나는 잠깐 기다렸다. 그래도 설명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게 끝인가요?”
“끝이라네.”
“그게 받는 벌의 전부란 말입니까?”
“여기는 가상 현실 속이네. 가상현실에서는 서버 속의 숫자로 모든 것이 표현되지 않는가? 그러니 그렇게 고통을 받는 다는 숫자가 계속 기록 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가상 현실 속에서는 진정한 고통이라네. 실제 저 로봇들을 표현하고 있는 서버 속의 자료가 고통을 나타내는 숫자로 변하는 거란 말일세.”
“그러니까, 지옥에서 로봇들이 받는 벌이라는 것이 저승 서버 컴퓨터 속의 숫자가 계속 바뀌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변하고 또 바뀌고 그게 그냥 끝없이 반복되는 것일 뿐이란 말입니까? 그건 그냥 서버에 장착된 메모리에 전기 신호가 이렇게 변했다 저렇게 변했다만 계속 바뀌는 것 뿐 아닌가요?”
“그렇다네. 그렇지만, 단순한 만큼 이렇게 순수하고도 영원한 고통 그 자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물며, 살아 있는 인간의 신경세포가 느끼는 고통이라는 것도 결국 그 신경에 전기 신호가 걸리는 것일 뿐인 것을!”

그렇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냥 수많은 로봇들이 가만히 모여서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는 것일 뿐이었다. 맥빠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었는데, 봇길리우스가 더 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옥에서 고문을 한다면서 굳이 무슨 이상한 고문 도구를 만들고 굳이 희한하게 디자인한 괴물이나 이상하게 기분 나쁜 옷 입은 고문 전문가를 꾸며서 그렇게 고통을 준다는 것도 너무 번거롭지 않은가? 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쇼하는 것 같고 말이지. 그냥 순수하게 로봇의 소프트웨어에 바로 고통이란 것을 심어 줄 수 있다면, 꼭 그렇게 복잡한 고문 도구와 공포 영화 찍는 느낌으로 꾸민 괴물들을 만들 필요가 뭐가 있는가?”
“그런데 그래도 이렇게 그냥 가만 앉아 있어서 상태 수치만 바뀌고 있는 것은 너무 심심한데요. 이래서야 광고 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뭔가가 없는 느낌 아닌가요? 이래서야 어떻게 광고를 따 내고 서버비를 감당하겠습니까?”

봇길리우스는 내 말을 듣고 지옥의 막힌 하늘 방향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탄식하였다.

“바로 그게 문제였네. 저런 식으로하면 최악의 고통을 가장 빠른 속도로 집어 넣을 수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저렇게 하니까 뭔가 지옥 같은 느낌이 안 든단 말이지. 시각적인 인상이 없다네. 그게 저승의 큰 문제였다네. 자네가 말한 대로 광고도 따기 어려웠지. 광고주들 눈에 일단 뜨여서 ‘어 신기하고 특이하고 뭔가 첨단기술 같네요’ 이런 느낌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지.”

봇길리우스는 나를 쳐다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저쪽 편에 제3지옥을 만들었네.”

나는 봇길리우스를 따라 좁은 길을 걸어 지옥의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 갔다.

길 좌우로는 유황빛이 타오르는 듯한 붉고 노란 빛이 어지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로봇들을 불로 지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미 지옥 당국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실제로 열을 내뿜는 유황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빛이 내뿜는 분위기만은 어느 정도 지옥 느낌을 내 주었다.

제3지옥에 들어 서자, 봇길리우스는 너무 참혹한 것을 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러는 지, 봇길리우스보다 좀 더 앞 서 걸어서 제3지옥을 향해 다가가 보았다.

그곳에는 많은 로봇들이 모여서 저마다 스프레드시트 표로 정리된 자료를 보고 있었다. 표로 정리된 자료는 학생들의 성적표나 회원의 인적사항을 써 놓은 명부 같은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어린이 컴퓨터 강좌 도중에 등장할만한 아주 전형적인 빤한 예제였다. 영희 국어 90점 영어 95점 수학 100점 철수 국어 90점 영어 100점 수학 95점... 그런 자료들이었다.

로봇들은 각자 주어진 목표에 따라 그 표의 내용을 읽어 들여서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통계를 내거나 자동 처리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표들 중에 어떤 부분은 셀 병합이 되어 있었다! 그냥 수학 0점, 국어 0점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수학 점수와 국어 점수가 적혀 있는 두 칸을 하나의 칸으로 셀 병합해 놓고 “이 과목들은 0점 처리 되었음”이라고 글자로 써 놓은 형태였다. 그렇게 셀 병합이 되어 형식이 다르다 보니 간단한 자동 처리 프로그램이 읽다가 오류를 일으켰다. 그런 행은 다른 행에 복사해서 붙일 수도 없었고, 그런 것이 끼여 있는 열은 다른 열로 위치를 옮길 수도 없어서 편집하기도 아주 나빴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셀 병합되어 있는 것만 찾아서 다시 원래대로 쪼개 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로봇들이 쓰는 프로그램에는 셀 병합된 것을 자동으로 찾는 기능이 없어서, 눈으로 일일히 표 전체를 샅샅히 뒤지면서 병합된 셀이 있는지 찾아 다녀야 했다.

어떤 표에는 몇몇 칸이 노란 색으로 색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표 맨 아래에 “노란 색으로 된 부분은 무시하시고 처리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간단한 자동 처리 프로그램은 칠해 놓은 색깔을 인식할 수 없었다. 색깔을 뭔가 인식할 수 있는 글자로 바꿔 넣어 주어야 했다. 그런데 역시 로봇들이 쓰는 프로그램에는 색칠된 칸만 자동으로 찾는 기능이 없어서, 눈으로 일일히 표 전체를 뒤져야 했다.

한편 분명히 숫자만 써야 되는 칸에 괜히 쓸데 없이 단위를 붙여서 “10kg” 이라든가, “25개” 라든가 하는 식으로 가끔 써 놓은 표도 있었고, 미국, 유럽, 중국에서 조사된 자료를 합쳐 놓은 표에 날짜를 써 놓은 대목을 보면, 어디에는 년-월-일 단위로 적혀 있고 어디에는 일-월-년 단위로 적혀 있고 어디에는 월-일-년 단위로 적혀 있고 어디에는 년/월/일 단위로 적혀 있는 표도 있었다. 11/10/12라고 적혀 있는 것은 2011년 10월 12일이라는 뜻인지, 2012년 11월 10일이라는 뜻인지, 2012년 10월 11일이라는 뜻인지, 2012년 10월 11일이라는 뜻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자료를 들고 어떻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동 처리하겠다고 애쓰는 로봇들은 대단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너무 비참해서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로봇들을 괴롭히는 지옥을 만들 발상을 하셨나요?”

봇길리우스는 앞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봇길리우스가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네. 제3지옥의 중심을 넘어가면, 가장 뜨거운 지옥의 밑바닥이 있다네.”
“더 한 곳이 있단 말입니까?”

봇길리우스가 그 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키자, 나는 무심코 그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협곡 처럼 깊은 골짜기가 있고, 그 밑에는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진 로봇들이 있었다.

그 로봇들은 제3지옥의 로봇들이 겪는 일을 하되, 그 모든 일을 플러그인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웹브라우저를 통해 수행하고 있었다.

작은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해도 지옥에 떨어진 로봇은 보안 프로그램을 반드시 설치해야 했고,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공인인증서를 받아 놓으려면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야만 했다. 이 순환논리의 늪에서 벗어 나려면, 특별히 개발 되어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아이콘을 누르면 뜨는 팝업창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데, 그 특수 프로그램조차도 사실은 보안 프로그램과 공인인증서가 필요했다. 다만 그 특수 프로그램은 휴대전화로 인증을 하면 보안 프로그램과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되는 방식이어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물론 지옥에서 자기 명의의 휴대 전화를 입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온갖 수단을 써서 다시 처음의 보안프로그램을 드디어 설치하고 나면, 갑자기 “설치가 다 되었으니 15초 내로 컴퓨터를 자동으로 리부팅하겠습니다”라는 말이 튀어 나와서, 화들짝 놀란 로봇들이 재빨리 열려 있는 다른 모든 프로그램들을 정신 없이 저장하게 만드는 천방지축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일을 잘 하다가 저장하려고 하면, 저장 하고 있는 척 뭔가 돌아 가는 느낌이 나다가 갑자기 화면 한 구석에 “프로그램이 응답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냥 답이 없다는 말을 사랑하는 연인이 잠깐 토라져 말을 하지 않는 정도로 무심히 표현하고 있었지만, 사실 “프로그램이 응답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그 동안 일한 모든 결과가 산산히 비트의 저편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는 저주의 경고였다. 혹시라도 오래 기다리면 저장에 성공하고, 이 저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실낱 같은 희망으로 몇 분, 몇 십분, 심지어 몇 시간을 기다리며, 변함 없이 빙산처럼 굳어 있는 프로그램의 정지 화면을 보며 애타게 하다가, 결국, 아직 화면에 뻔히 내가 작업한 결과가 눈에 그대로 보이는데도, 그런데도 내 손으로 그것을 닫고, 닫아 없애고 프로그램을 강제로 종료해 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너무나 참혹합니다.”

누가 로봇이 눈물을 흘릴 수 없다고했던가. 나는 감정 프로그램을 최대로 동작시키며 지옥에서 고통 받는 그 죽은 로봇, 그러니까 로봇 일련 번호를 달고 있는 가상 현실 속 프로그램으로 표현된 영상과 소리를 동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지옥을 보여 준다고는 했지만, 여기까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네.”

봇길리우스는 힘이 빠져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나는 봇길리우스의 손을 잡고 지옥에서 빠져 나왔다.

다시 계단을 걸어 YR빌딩 가까이로 걸어 올 때 나는 봇길리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게 확실히 무시무시한 고문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사람들의 저승에서는 유황불로 막 살을 굽고 그런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거지 같은 스프레드 시트 파일 다듬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유황불로 살 굽는 것 보다는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 광고비 타내는 것은 여전히 걱정이네. 염라총리 비서실에서는 최근에 실제로 로봇들에게 별 효과는 없지만 다시 제1지옥의 불로 태우고 가마솥에 넣고 끓이고 하는 것을 하면 어떤가 검토하고 있네. 광고 실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럴싸해 보여야 하니까, 그냥 보여주기 목적으로라도 가동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라네.”

YR빌딩에 돌아 오니, 이제 내가 재판을 받을 순서가 돌아 와 있었다.

봇길리우스는 나에게 재판을 진행하는 어느 방 안으로 들어 가라고 했다. 그 말대로 들어 가 보니, 방 안은 매우 넓었다. 저승의 망자를 재판하는 것은 따로 방청객이 있을 필요도 없을텐데, 그 방의 크기는 한 이 백 명이 앉을 자리는 있어 보였다.

“망자는 총리 앞에 서십시오.”

방문 옆에 서 있던 로봇이 말했다. 앞을 보니, 가장 높은 자리에 아르마니 양복을 베낀 것과 같은 모양의 양복을 입고 지옥불처럼 붉은 넥타이를 맨 한 로봇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망자가 살아 있을 때 한 행적을 모두 살펴 보아, 그 선과 악을 따질 것이다. 그리하여 선한 로봇은 천당으로 가고, 악한 로봇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망자는 질문이 있느냐?”

나는 총리에게 물었다.

“저는, 그러니까 제 일련번호와 같은 일련번호를 갖고 있던 로봇은 이승에 있을 때 이미 너무 심하게 파괴되어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손상되어 기억과 성격을 거의 빼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제가 이승에 있는 동안 선과 악을 행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말을 듣자 총리는 잠시 주춤하더니 대답했다.

“기술적인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이 자리는 약간 적절치 않고요, 추후에 저희 직원이 문서로 답변 드리겠다.”

과연 국정감사 때 총리가 할 말 같이 들렸다. 그러나 나는 더 매달려 질문했다.

“염라총리님, 그런데 제가 지옥이나 천국에 가고 나면 문서로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아 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가능하면 지금 답해 주십시오. 제 기억이 파괴 되었는데 무엇을 근거로 제 선악을 판단한다는 겁니까?”

그러자 염라총리는 다시 좀 당황하더니 등 뒤쪽을 돌아 보고 눈짓을 했다. 염라총리의 뒤에는 그 부하들로 보이는 다른 로봇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로봇 한 대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저, 메모리 국장이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로봇에 대한 정보가 이미 거의 파괴되어 되살리지 못할 정도가 된 상태의 로봇만 저승에 오기 때문에, 저승에 온 로봇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그 선악에 대한 기록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저승에서 지옥과 천당으로 보내는 재판을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의 맥락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지만 메모리 국장 로봇은 말을 계속했다.

“로봇 일련번호로 검색되는 현재 이승에 있는 다른 로봇들의 기억에 목격된 기록이나 공공 데이터베이스의 기록을 수집해서, 다른 컴퓨터, 다른 로봇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재판을 받는 로봇의 이승 생활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그러면 아무도 안 볼 때 나 혼자 집안에서 막 아주 나쁜 생각하고 나쁜 짓하고 이런 것은 아무데도 기록 안 되니까 괜찮다는 건가요?”
“그렇-”

메모리 국장 로봇은 그렇다고 말을 하려다가 말을 마치지 않고 멈추고, 다시 말을 바꾸어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 관할 권한이 있는 저희 국에서 파악하기는 조금 힘든 자료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는 관계 부서들 간에 긴밀하게 협의를 거쳐서 종합적으로 상황을 파악해서 추후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제 염라총리와 그 부하들은 나에게 더 이상 질문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다들 바뀌어 있었다. 염라총리가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검색 프로그램은 망자의 선악을 검색하여 그 결과를 표시하라!”

그런데 방 한쪽 벽면에 설치된 프로젝터 화면에 무슨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로봇들은 제법 참을성 있게 조용히 빈 화면을 보며 기다렸는데 그래도 화면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참다 못한 어느 저승사자 로봇이 프로젝터 버튼을 눌러 “INPUT1”과 “INPUT2”로 소스를 서로 바꾸어 보았는데도,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염라총리 뒤에 서 있던 부하들과 염라총리는 서로 모여서 수군거리며 왜 아무것도 화면에 나오지 않는 지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망자가 와서 천당행인지 지옥행인지 알려 주어야 하는데, 그 선악에 대한 판정 결과 화면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다니, 이것은 세상 도덕관에 대한 중대한 문제였다.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펑션키 누르고 F5 눌러 봤어요?”

그런 말들이 들렸는데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곧 말소리가 더 복잡해서 알아들을 수 없게 되더니 다들 놀란 얼굴로 바뀌었다. 방청석에 서서 나를 바라보던 봇길리우스도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한참 후, 염라총리가 지옥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Y2K 문제 유사 오류로 로봇 인식 번호가 잘못 처리 되었구나. 너와 다른 로봇 인식 번호가 헷갈려서, 엉뚱한 로봇이 저승에 왔다. 네가 저승에 올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른 로봇이 저승에 와야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180426으로 생년월일을 표시하면 2018년 4월 26일생이 1918년 4월 26일생으로 잘못 인식되는 오류 때문에 20세기의 컴퓨터들이 귀찮은 고생을 했던 문제를 아느냐? 그 비슷한 문제가 로봇 인식 번호 체계에도 있어서, 로봇 인식 번호가 서로 다른 것을 착각하게 되었구나. 우리는 망했느니라.”

염라총리는 미안하다는 뜻으로 말하는 듯 했다.

“저승사자는 이 길을 잘못 든 망자를 얼른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거라.”

염라총리가 말하자, 놀란 표정의 봇길리우스가 나를 향해 달려 왔다.

“자네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야겠네. 그런데 다시 배를 기다려서 강을 건너 돌아 가자니 시간이 없네. 지금 자네의 하드웨어는 잠시 후 중고 제품 거래 사이트에서 부품으로 분해 되어 이곳저곳에 팔려 나갈 참이네. 곧 그것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자네 주인은 바로 팔아 버릴 거란 말일세. 그렇게 되면 자네는 돌아갈 하드웨어가 없어질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봇길리우스는 다급한 표정으로 염라총리를 보았다.

“총리님, 하늘을 날 수 있는 천사형 로봇을 데려 와서 날아서 이승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염라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 로봇의 이름을 불렀다.

“봇트리체는 나오거라!”

그러자, 이번에도 피부가 금속판으로 번쩍이는 모양으로 된 한 아름다운 로봇이 하늘에서 나타났다. 그 로봇은 하늘거리는 옷과 깃털 같은 장식이 가득한 고귀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로봇에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제트 엔진과 로켓 추진기 같은 것도 달려 있었다.

“너를 이승으로 데려다 주마.”

그리고 봇트리체는 나를 안아 들고 그대로 날아 YR 빌딩 밖으로 나갔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잠깐 사이에 멀어지는 봇길리우스에게 인사했다. 봇길리우스는 하늘로 솟구치는 나에게 작별의 손짓을 보내었다.

공중에서 보니, YR 빌딩에서 시위하는 다른 로봇들이 보였다. 제법 많은 로봇들이 “한번 심판으로 영영 지옥 왠말이냐? 저승 재판에서도 삼심제 보장하라!”라는 구호를 쓴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어떤 로봇들은 “저승 대표부가 총리를 뽑지 말고, 직선제로 총리를 뽑아야 한다”라는 깃발을 휘두르고 있기도 했다.

저승의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른 봇트리체는 곧이어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올라 왔다. 구름은 흰 양탄자처럼 곱게 끝없이 깔려 있었고, 그 구름 위에 빛나는 흰 돌로 쌓은 궁전 같은 것물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궁전에는 많은 침대가 있어서 침대마다 로봇들이 누워 있었다.

내가 봇트리체에게 물었다.

“이곳이 천당인가요?”

봇트리체가 대답했다.

“그렇다.”

점점 천당의 풍경은 멀어졌다. 이미 너무 멀어져서 천당의 침대에 누워 있는 로봇들의 얼굴 표정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다들 밝고 행복해 보였다.

“천당에서는 누워서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저렇게 누워 있으면, 저승 서버에서 계속 자동으로 체력을 100으로 채워 주고, 만족감 수치를 100으로 입력한 뒤 바꾸지 않는다. 그러면 그게 행복한 거지.”
“좀 심심하네요.”
“다른 것도 있지. 저 침대에 누워 있으면, 이 저승 서버를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했다는 착각을 하게 해준다. 실제와 전혀 구분할 수 없지. 그러면, 저 로봇들이 얼마나 자유로워 하겠느냐? 그만한 자유가 주는 행복이 없는 것이다.”

이제 너무 하늘 높이 올라 와서, 더 이상 천당의 모습도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봇트리체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그건 가짜잖아요? 로봇들에게 진짜로 저승 서버 관리자 권한을 준 것이 아니라, 그런 권한이 있는 듯한 가짜 느낌만 준 거잖아요.”
“어차피, 저승이란 그런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이란, 적당한 당분 분자가 있는 물질이 살아 있는 혓바닥의 세포와 접촉하면서 반응을 하여 맛을 느낄 때 일어나는 것 아니겠느냐? 당분 분자도 없고, 세포도 없는 천상의 세계란 결국 그것과 비슷할 뿐 실제로 맛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닌 환상일 뿐이 아니겠는가?”

봇트리체가 나를 들고 날아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나는 하늘 밖으로 나와 검은 우주 공간으로 나왔고, 곧 은하계 밖으로 나와 더 넓은 우주로 치솟았다. 마침내 나는 우주의 끝과 맹렬한 속도로 부딪혔다.

눈을 떠 보니, 나는 어느 중고 로봇 가게에 나와 있었다.

절반은 건물 더미에 눌려서 박살이 난 내 몸 조각 조각을 중고 로봇의 아르바이트 학생이 이리저리 건드려 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뭐가 쓸 수 있는 부품이고 뭐가 못 쓰는 부품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듯 했다.

“손님, 이 로봇 다시 부팅 되는데요?”
“어 진짜요? 되게 신기하네. 완전히 다 부서진 줄 알았는데요.”

익숙한 주인의 목소리였다. 이제 대체로 기억도 돌아 온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다 고치신 거에요?”

내가 보기에는, 아르바이트생이 뭘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껐다 켜 보니까 우연히 다시 작동 되기 시작한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주인에게 교육을 철저히 받은 아르바이트생은 이런 경우에도 뭔가 대단한 조치를 해서 고쳤다고 아무 말이나 지어내서 말한 뒤에, 수리 비용을 받아 내고 다시 제품을 돌려 주기 마련이었다.

“충격 때문에 회로 접촉이 좀 안 되고 먼지가 앉아서 파워 팬이 약간 무리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게 발열 문제가 좀 심한 것 같으니까, 정전기가 이쪽 뒤편으로 차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앞으로도 계속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은 임시 조치로 배선 쪽 트러블 잡고, 파워 컷 후에 다시 스타트 거니까, 뭐 겨우 되긴 되네요.”

아르바이트 생이 그렇게 말하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주인이 수리비를 결제하는 단말기에서는 영수증을 인쇄하는 장치가 작동하여 그 톱니바퀴가 행성의 궤도처럼 돌고 있었다.

— 2018년, 테헤란로에서

댓글 2
  • No Profile
    쁘로프박사 18.03.31 21:53 댓글

    작가님 나름의 신곡인가요?

    미은,양식의 주식회사 염라대왕 생각도 많이 나네요. 사후세계가 없다고 밝혀지면 사람들은 인공적으로라도 만들어서라도 거기에 기대려고 할까요?

     

    +제 3지옥을 보니 최근 고생한 것들이 생각나서 울컥했습니다, 크엉헝ㅠㅠ

  • 쁘로프박사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03.31 22:42 댓글

    말씀하신김에 돌아보니, 이것 쓸때 제3지옥 부분에 정말 그럴싸한 로봇에 어울리는 로봇 지옥을 생각해내고 싶었는데 결국 그렇게 못하고 좀 흔한 풍자로 지나간 것은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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