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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 해킹

– 곽재식 –

 1.

다람쥐 행성은 행정 실수로 은하 연합의 치안 구역 바깥으로 지정되었다. 그 덕분에 다람쥐 행성에 가면 온갖 괴상하고 위험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은 은하수 전체에 파다했다.

 그렇지만 막상 다람쥐 행성의 제1 도시에 처음 도착해 보면 별로 이상한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다람쥐 행성도 사람 사는 곳인 이상, 법령과 규칙은 필요 했고, 다람쥐 행성에 가장 많이 드나드는 사람들이 은하 연합 출신이니 그 법령과 규칙은 은하 연합과 닮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다람쥐 행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는 은하 연합의 어느 법으로 따져 보건 합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 된다.

 식당과 옷 가게, 우주선 정비 사무실과 통신소들이 들어 선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작은 골목이 나타나는 곳이 있다. 그런 골목 중에 하나는 좀 더 복잡하게 꼬인 또다른 골목으로 이어져 더 깊은 건물 그림자 속으로 이어져 있다. 그곳은, 항성의 빛이 가장 눈부신 한낮이라고 해도 고개를 들어 보면 파란 하늘은 얼굴 하나 크기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 도시의 깊고 어두운 구석이다.

 그곳에서 어떤 위원회의 위원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위원은 보통 말끔하게 꾸며 놓은 로봇인 경우가 많은데, 위원이 그곳을 찾아 온 사람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 없으세요? 하루가 지나서 밤 12시가 되면, 모든 것이 다시 그날 새벽 0시 상태로 다 다시 변해 버리고 반복되는 거죠. 고객님만 그렇게 반복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뇌의 의식이 이어지시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모르고 그냥 똑같이 하루를 반복하는 거에요. 이 행성에서 한 번 그렇게 살아 보시면 어떠실까요? 만약 반복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아내셔서 빠져 나오신다면, 그냥 보내 드리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도 않았거니와,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다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해서 그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주는 넓고 모험가들은 많았다. 쓸데 없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얼마전 가드노마타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다가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가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의 블랙홀”이나 “리플레이” 같은 20세기 말에 나온 영화를 떠올리면서, 그 영화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보여줬던 영리한 일이나 멍청한 일을 따라하면 재밌을 거라고 상상한 것이다.

2.

다람쥐 행성에 찾아간 모험가는 위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 동안 신나게 살았다.

 모험가는 허구헌날 시간을 낭비하며 놀기도 했고, 살찔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음식을 먹거나, 재산이 거덜 날 걱정을 하지 않고 갖고 있는 돈을 톡톡 털어 쓰면서 굉장한 쾌락을 즐기기도 했다. 모험가는 그래도 걱정이 없었다. 위장에 트랜스 지방 성분이 가득하고, 갖고 있는 전재산이 옛날 한국은행권으로 426원 밖에 남지 않았어도 괜찮았다.

 밤 12시만 지나면, 몸은 그날 아침 0시의 상태로 완전히 돌아 갔고, 재산도 그때 갖고 있었던 만큼으로 회복 되었다. 다만 그 많은 즐거움을 누린 기억만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노는 사이에, 모험가는 과거에 생긴 마음의 상처도 잊고, 언젠가 생긴 감정적 고통마저 어느 정도 치유되었다.

 그렇게 노는 게 지겨워 질 때쯤, 이제 모험가는 위원회를 찾아 가서, 이 반복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시도하려고 했다. 모험가는 레이저총 사격 솜씨를 열심히 익힌 뒤, 위원 로봇을 추적하여 한 높은 빌딩의 66층에 자리 잡고 있는 위원회의 본부로 숨어 들어 갔다.

 모험가는 위원장을 찾아낸 후, 레이저총으로 총격전을 벌이며 본부로 쳐들어 갔다. 그러나 위원회에는 로봇들이 아주 아주 많았다. 그러니 모험가가 나름대로 화려한 레이저 사격으로 난동을 부려 본다 한들, 제압 당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험가는 제압된 상태였지만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다.

 “나를 죽일테면 언제든지 죽여라! 나는 이제 이곳의 위치와 구조를 익히고 있다! 내일이 되어 모든 것이 다 원래대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여기에 찾아 와 너희들을 공격하겠다! 그러면 오늘보다는 더 잘 싸우겠지! 그런 식으로 나는 하루하루 발전 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너희들을 모두 무찌르고 이 시간의 반복을 깨뜨릴 수 있겠지!”

 모험가의 외침은 글로 쓴다면 지나치게 느낌표를 많이 써야 할 것 같은 말투였다. 위원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반복되면서 원래대로 돌아 가는 것은 너 말고 다른 것들과 네 사지육신 뿐이야. 네 정신과 두뇌는 그대로 유지되는 거지.”

 “그게 어때서! 그것 덕분에 나는 나날이 더 강해진다! 나는 정신을 특히 단련하고 있어! 내 마음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내 어린 시절 세번째 고백이 거절당한 부끄러움까지도 이제 잊었어! 내 마음은 평정심 뿐! 아무 고민도 두려움도 없다고!”

 “그렇지. 우리는 거기에 더해서 인위적으로 너의 감정과 기억을 파괴할 거야. 정신은 내일이 되어도 그대로 유지될 테니까, 너의 정신은 파괴된 채로 그대로 유지되겠지. 무슨 말이냐면 말이야, 우리에게는 전기 충격으로 뇌세포 연결을 조작하는 장치가 있어요.”

 위원장은 붙잡은 모험가의 머리에 전선이 잔뜩 연결된 냉면 그릇 같은 것을 씌웠다. 그리고 전원이 연결되자, 그 기계는 모험가의 두뇌 속에서 여러 추억을 지워 버렸다.

 잠시 후, 모험가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고,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도 잊었고, 숫자를 헤아리는 법과 말하는 법까지 깨끗하게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텅빈 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이 유지될 참이었다.

 다음 날이 되어 다시 또 하루가 반복 되었다. 모험가는 전날과 같은 곳에서 전날과 같은 재산과 전날과 같은 몸뚱아리를 갖고 깨어 났다. 정신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것은 멍한 텅빈 껍데기였다.

 모험가는 그런 상태로 앞으로도 영영 영원히 하루를 반복해야 했다.

3.

다람쥐 행성에 찾아간 다른 모험가는 위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달기로 했다.

 “어디서 소문을 들으니까, 정신은 계속 유지 되기 때문에, 기억을 잃는다거나 감정이 사라지면 그것도 그렇게 없어진 채로 계속 유지 되는 게 문제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만약에 누가 머릿속의 기억을 싹 지워 버리면, 기억이 전혀 없는 멍멍한 상태로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위험을 겪기는 싫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회복이라는 게 원래 몸뚱아리만 회복된다고 다 회복이 아니잖아요. 정신도 회복 되게 해 주셔야죠. 뇌에서 뭔가 정보가 늘어나는 것은 유지되지만, 정보가 줄어드는 것은 다음날이 되면 무효로 해서 저절로 회복되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해 줄 수도 있나요?”

 위원은 잠시 어딘가에 접속해서 통신을 하는 듯 하더니, 곧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모험가는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이 모험가 역시 지겨워질 때까지 한 동안 괴상한 짓을 하다가, 이윽고 위원회 본부로 쳐들어 갔다.

 모험가는 이번에도 위원장을 물리치고 이 시간의 반복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역시 곧 위원회의 로봇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모험가가 말했다.

 “이 놈들! 나를 붙잡았다고 좋아하긴 이르다! 아무리 나를 핍박해도 나는 내일 또다시 돌아올 것이다! 지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내가 싸웠는 지 기억하고 있으니, 내일은 조금이라도 더 잘 싸우겠지! 너희들은 내 기억을 지울 수도 없어! 그러니, 언젠가는 내가 이길 것이다!”

 위원장은 모험가에게 말투를 좀 고칠 수 없겠냐고 먼저 물었다. 모험가가 어리둥절해 하자, 위원장은 포기하고 그냥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우리가 약속한 조건이 있으니까, 기억을 지울 수는 없지. 그렇지만 기억을 더 집어 넣을 수는 있지. 우리 한테는 단시간에 뇌 속에 기억을 집어 넣을 수 있는 신경망 조작 장치가 있어요.”

 그 말이 끝나자, 로봇들은 전선이 잔뜩 연결된 비빔밥 그릇 같은 것을 가져와 모험가의 머리에 씌웠다. 전원이 연결되자, 그 장치는 모험가의 머릿속에 온갖 이상한 지식, 기억, 감정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운 것이어서 도저히 제 정신을 유지 하지 못할 만한 것도 있었고, 너무나 강렬한 내용이어서 다른 일을 할 만큼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모험가는 점차 이상한 정신머리가 되었고, 마침내, 뇌의 용량이 꽉꽉 가득 찰 만큼 너무나 많은 온갖 무거운 생각이 다 주입되었다.

 다음날이 되자, 모험가의 재산과 몸뚱아리는 그대로 전날처럼 회복 되었다. 뇌의 모든 기억과 지식도 그대로 손상 없이 유지 되었다. 다만, 그렇게 온갖 내용이 꽉 찬 상태로 용량이 넘치도록 유지 되는 덕분에 이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이라고는 단 한 톨도 더 머릿속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한 마디 말을 더 이해할 수도, 눈으로 본 풍경을 마음에 새길 수도 없었다. 그저 백만가지의 강렬한 기억과 폭발하는 감정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빽빽 울어 대는 것만 같은 상태로 아픈 머리를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모험가는 그런 상태로 앞으로도 영영 영원히 하루를 반복해야 했다.

4.

위원 중 한 명이 몰래 다람쥐 행성에서 도망쳐 나와서 미영과 양식을 찾아 간 것은, 위원장이 모험가들을 끌어 들여 폐인으로 만드는 일을 벌인지 벌써 한참이 지난 후 였다.

 미영이 물었다.

 “도대체 위원장이라는 사람은 그런 짓을 왜 하는 건데요?”

 “그런 모험가들이 처음 행성에 와서 내일이 오면 모든 게 다 다시 되돌아간다고 알게 되면, 그때부터 별별 이상한 짓을 다 하거든요. 그 모습을 녹화해서 나중에 그 사람들이 폐인이 되고 나면 이상한 구경거리로 팔아 먹으려고 하는 거죠.”

 “그걸 돈 주고 보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주는 넓잖아요. 그리고, 진짜 심하게 이상한 짓 많이 하거든요.”

 위원은 위원장이 하는 짓이 옳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도망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영과 양식이 도와 준다면, 이제 위원장을 망하게 할 계획을 세울 작정이라고 했다.

 미영이 물었다.

 “우리가 뭘 어떻게 도와 주면 된다는 건데요?”

 “위험한 일은 못하고요. 은하 연합 치안 지역 바깥에서 하는 일도 못합니다.”

 양식이 미영의 말 뒤에 덧붙였다. 위원이 대답했다.

 “위험한 일은 제가 할 거고요. 주문할 일은 쉬운 겁니다. 좋은 우주선을 갖고 계시니까, 지금 빨리 올챙이 은하계에 가서 ‘파마파마’라는 외계 동물을 좀 데려 와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미영이 물었다.

 “그것만 하면 돼요? 그렇게만 하면 위원장을 물리칠 수 있어요?”

 “다른 일은 제가 알아서 할 게요.”

 “불법 아니죠?”

 “제 컴퓨터로 계산 가능한 한은 아닙니다.”

 미영은 위원에게 몇 차례 확인을 하더니, 잠깐 뒤로 물러서서 양식과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 일, 우리가 해도 될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우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랑은 다르잖아요.”

 “그래도 신기한 일이랑 엮였잖아. 돈도 좀 될 거 같고. 잘 하면 회사 홍보는 될 거 같은데요.”

 “우리 사업 목표에 별 도움되는 홍보는 아닐 거 같은데요.”

 “아무려면 어때, 일단 이름이라도 알리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몇 분 간의 부질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난 후, 미영과 양식은 지구에서 4억2천만 광년 떨어진 올챙이 은하계를 향해 출발했다.

5.

얼굴과 모습을 위장한 위원은 위원회 본부로 쳐들어 갔다. 본부에서 일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다른 여느 모험가들보다 위원은 훨씬 더 잘 싸웠다.

 그렇다고 해도 위원장과 그 부하들의 조직된 방어 능력은 위원 혼자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원도 곧 위원장의 무리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위원장이 말했다.

 “너는 이상한 짓을 별로 안 해서 재미가 없었어! 얼른 끝내야지! 너의 머릿속에 온갖 잡념과 충격적인 생각을 꽉꽉 채워서 더 이상 옳은 사람 구실을 못하게 해주마!”

 “맨날 헛바람든 모험가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위원장님도 말투가 그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변했네요.”

 위원장은 위원의 말은 듣지 않고, 그 머리에 장치를 씌웠다. 곧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굉장한 전기가 흘러들었다.

 그런데,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위원의 표정이 멀쩡했다. 눈빛도 말똥말똥 해 보였다.

 “이거 왜 이러지?”

 “아무리 기억과 감정을 주입해도 용량이 거의 줄어들지가 않는데요.”

 위원장의 부하가 말했다.

 “너 뭐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위원장은 위원을 들여다 보았다. 위원이 말했다.

 “사실 저는 사이보그예요. 뇌 속에 뇌와 연결된 고용량 컴퓨터가 있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히 충격적인 지식을 집어 넣어도 용량이 넉넉하게 남아요.”

 “뭐라고? 그래봤자. 한계가 있겠지. 더 팍팍 뇌에 감정을 주입해 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제 뇌 속에 있는 컴퓨터는 원격 서버에 무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서버 용량은 진짜 엄청나게 커요. 오늘 밤 자정까지 아무리 열심히 감정을 집어 넣어도 절대 오류를 일으킬 수가 없어요.”

 위원의 말을 듣고 위원장은 허둥지둥거렸다. 그러다가 위원장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따졌다.

 “이건 반칙이지. 어떻게 뇌 속에 들어 있는 기계를 뇌라고 할 수 있나? 그걸 어떻게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어? 이건 정신이 아닌 물체의 영역이지. 이건 떼어 내 버리겠어.”

 “그렇게 치셔도 상관 없어요. 제 정신이 아닌 모든 것은 내일이면 원상 복구시키셔야 하는 것, 아시죠? 제 뇌 속의 컴퓨터를 저의 정신이 아닌 걸로 치면, 컴퓨터도 그대로 원상 복구시켜 주셔야 돼요. 그렇게 되면, 제 뇌를 아무리 많은 지식으로 꽉꽉 채워 놓아서 제대로 못 움직이게 해 놓더라도, 제 컴퓨터의 복구 프로그램이 작동되면서 뇌를 건강한 상태로 고쳐 나갈 거에요. 그래서 뇌 상태를 다시 잘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회복시킬 거라고요.”

 위원장은 위원을 패배시킬 방법을 고민하며 부산하게 주변을 돌아 다녔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위원은 한동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위원장에게 말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여기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뭔가 틈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다음날이 되면 모든 것이 다시 원상태로,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아주 아주 정밀하게 따지면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의 기억과 의식은 되돌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시켜 줘야 하는데, 그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뇌 속의 세포가 연결 되어 있는 거 거든요. 그런데 그 뇌세포라는 게, 결국 그 사람이 먹은 음식이 흡수 되고 그 물질이 변해서 된 거란 말이에요. 내가 오늘 경험한 기억이라는 게, 결국 따지고 보면, 내가 먹은 음식 성분의 아주 작은 조각이 변해서 내 머릿 속 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건 내 기억이니까 유지시켜주고 되돌리면 안되지요.

 그런 식으로 기억의 일부를 이루면서 뇌를 만드는 원료가 된 음식 성분은 하루가 지나도 다시 원래 음식 모양으로, 그러니까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가 없어요. 만약 그러면 기억까지 바뀌게 될 테니까요. 그러지는 않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저는 여기서 근무할 때, 항상 여기서 뇌의 일부로 변해버린 만큼의 음식은 외부에서 물질을 사 와서 보충해 놓는 일을 했어요.”

 잠시 후 벽에서 무엇인가 갈라지고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천둥 같기도 했고 벼락 같기도 했다. 위원장은 당황해서 외쳤다.

 “그게 뭔 대수라는 거야? 하루에 몇 그램 정도도 차이가 안 날 텐데.”

 위원이 대답했다.

 “저 말고도 제안을 받아 들인 게 있는데요. 그건 인간이나 사이보그가 아니라 파마파마라는 외계 동물입니다. 파마파마에게는 기어다니면서 먹어치우는 모든 물질을 자기 뇌의 일부로 합쳐 버리는 습성이 있지요. 파마파마가 먹어 치우는 물질의 양은 엄청나고, 하룻 동안에도 파마파마의 뇌는 몇 십 배, 몇 백 배로 커지면서 정신도 그만큼 자꾸만 발달하거든요. 하루가 지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이 세계에 뛰어든 모험가의 정신은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게 조건이잖아요? 그런데 파마파마의 정신은 온갖 물질을 다 먹어치워서 합쳐 놓은 걸로 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걸 건드리지말고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 줘야 해요. 그러니까 파마파마의 모습은 계속해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지기만 할 거에요.”

 곧이어, 벽면이 와지끈 무너지면서, 사방을 먹어치우며 다가오는 거대한 두부 같은 것이 나타났다. 파마파마였다.

 “아, 이 건물은 참 맛이 나네. 0시가 되면 모든 걸 다 복구해야 될텐데, 이제 건물도 다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버렸으니 어쩌면 좋아. 이건 다시 가져 갈 수가 없을텐데. 이제 건물 만들 재료 물질도 어디선가 자꾸 구해 와야 되겠구만.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겠어?”

 위원장의 표정은 부패된 상태였지만, 파마파마의 목소리는 무척 밝고 유쾌했다.

 고기 뷔페에 찾아 온 씨름 선수의 말투 같다고 생각했다.

— 2017년, 반포에서

 
댓글 6
  • No Profile
    temp 17.08.02 20:44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모험가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먹어치운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 temp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7.08.02 21:54 댓글

    감사합니다.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데 기억은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결국 정신과 뇌/육체가 완전히 분리 가능하다는 발상에서만 가능할 뿐, 그렇지 않다면 모순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써 본 이야기였습니다. 말씀하신 생각도 그런 모순을 잘 드러낼 듯 합니다.

  • No Profile
    헉슬리 17.08.04 11:35 댓글 수정 삭제

    얼마전에 최악의 레이싱을 읽고 지하철에서 낄낄거리며 신나게 웃었습니다. 정말 재미나더군요. 화이팅!!!

  • 헉슬리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7.08.04 20:27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듯 오래된 글을 또 찾아 읽어 주시다니, 무척 반갑습니다. 이곳 웹진 거울에도 대략 100편 정도의 제 소설이 올라 와 있으니 내키는대로 또 하나둘 살펴 봐 주시기 바랍니다!

  • No Profile
    청야 18.03.16 09:29 댓글

    위원장 말투를 지적하는 부분에서 뿜었습니다ㅋㅋ그런데 왜 다람쥐고 올챙이 일까요? 물론 귀엽긴합니다만ㅎㅎ

  •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03.18 22:05 댓글

    올챙이 은하계는 실제로 지구에서 4억 광년 떨어진 Tadpole Galaxy 라는 은하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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