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lunabell.netlunabell@orgio.net 웹시리얼(www.serial.or.kr)은 그 뿌리가 깊은 문학창작 커뮤니티이다. 바로 VT 하이텔의 창작연재 게시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하이텔의 창작연재란은 당시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수많은 인기소설 (이른바 ‘통신문학’)을 양산해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통신에서 비롯된 그 환타지 문학의 붐이 출판업계와 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매우 지대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영향력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구차하고도 비효율적인 논쟁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그 창작연재란을 통해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VT의 침체와 더불어 하이텔의 창작연재란도 지금은 그 빛을 잃었다. 하지만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웹으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또다시 온라인 아마추어 소설을 양산하고 있다. ‘serial’이라는 창작연재게시판의 인덱스 앞에 ‘웹’이라는 접두어만 붙인 채.

   웹시리얼의 1회 단편선집은, 그동안 단편에 익숙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단편의 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필력과 센스를 겸비한 온라인 아마추어 작가들이 정성을 담아 쓴 열다섯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필자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통쾌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1. 누가 환타지를 현실도피라고 했는가?

   단편은 단지 장편보다 ‘길이가 짧은 글’이 아니다. 좋은 단편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한정된 지면 안에서 호흡을 골라야 하고, 주제를 함축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장치들을 교묘하게 고안해내야 하고, 또 교묘하게 배치해야 한다. 그런 자체적인 특성 때문에라도, 작가는 적어도 단편을 쓰면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는 할 수가 없다. 잘 다듬어지고 준비된 주제가 읽어내려갈 때에 일침을 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웹시리얼 단편선집은 그러한 단편의 특성이 환타지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환타지가 현실의 모순과 대립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환상 속의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이기 때문에 문학적인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는 일설을 무색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wizdom07님의 {검은 코뿔소}는 실제로 살아가면서 흔히 느끼기 마련인 갈등을 다룬 글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보이는 가상의 부족사회를 배경으로, 부족을 위해 사냥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한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군더더기가 빠진 담담하고 유려한 필치가 그 부족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그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아픔을 매우 맑고 절제된 어휘로 묘사해서 흔히 장르문학에서 느껴지는 과하게 화려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부득이하게 입을 수밖에 없는 마음의 상처에 대한 고찰을 하나의 건조하고도 세련된 삽화로 담아낸듯한 이 작품은, 읽으면서 마음으로 선득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Chelsona님의 단편은 두 편이나 실려 있는데, 두 편 모두가 우리가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그러나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의 모순을 환타지적인 시각에서 들추어내는 통쾌한 글이다. {달변의 남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면적 얼굴을 가진 이상주의자를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으며, {프레스, 스피커, 펜}은 이라크 파병 사태를 SF의 무대에 그대로 옮겨놓아 비꼬고 있다. 구체적이다 못해 현실적이기까지 한 자세한 설정들은 두 글의 풍자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반면에 작품의 진솔함이 떨어져, 시니컬하게 웃고 그걸로 끝나는 지나치게 가벼운 꽁트가 될 위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Chelsona님의 두 작품은, 환타지적인 요소가 그 어떤 문학적인 수단보다도 훨씬 더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영민님의 {파르마콘}은 진리라는 것과 그것에 다가서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너무도 전형적인 타입의 성기사인 주인공 윌리엄과 지혜의 신 토트의 대담은,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끝없이 궁금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너무나도 철학적이다.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을 재기있고 무겁지 않게 풀어낸 이 작품에는 아마추어답지 않은 품격이 있다.



   2. 일상의 진정성에 마주치다

  온라인 소설=장르문학 이라는 공식이 공공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온라인 문학계에서, 순수문학은 사실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웹시리얼의 작가들은 순수문학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서, 온라인 문학계의 장르적 포용성에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김지아님의 {동자불}은, 관계가 뒤틀려버린 모자간의 대화가 주가 되는 작품이다. 동자불이라는 소재의 상징성과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연결짓는 솜씨라든가, 섬세하고 부드러운 흐름이나 한국적인 정서가 마치 기성작가의 단편을 연상케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간의 미묘한 감정이 잘 잡아내지지 않아서 그다지 공감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특히 어머니가 1인칭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어머니의 감정이 제일 불투명해서, 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대화의 내용들이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위해 작위적으로 짜여진 느낌이 남아있다는 것이나, 뒷부분에서 호흡이 가빠지고 마무리가 엉성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글에 흐르는 풋풋하고 물기어린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달리아님의 {이상}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할 여지를 주는 글이다. 살면서 누구나 느끼게 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대처 방식을 여러 각도의 인물들을 통해 제시하고, 어떤 가치관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자칫 훈계적이거나 따분하게 될 수도 있었을 글을 재미있는 소재들을 사용해서 맛깔스럽게 만들었으며, 특히 마무리의 처리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깔끔하지 못하고, ‘이상’이라는 주제의식에 너무 표면적인 상황들이 집중되어서 오히려 주제의식을 반감시켰다는 점이 아쉽다.



  주로 에픽 환타지나 무협 등의 장르소설들이 장기연재되었던 옛 시리얼의 경향을 생각해보면, 웹 시리얼에서 단편 공모전을 열고 그것을 책으로까지 펴낸 것은 의외이면서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단편소설은 온라인 문학 시장 내에서 장편에 비해서 외면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단편에 있는 많은 특미와 개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성으로 볼때 불리하다는 약점때문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안그래도 장르단편이 생경한 독자들을 더더욱 그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웹시리얼 1회 단편공모전 수상집은, 삶의 철학을 담은 깊이있고도 재기있는 온라인 단편소설을 다루고 있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다른 많은 개재 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웹시리얼 단편선보다는 늦게,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단편집 또한 최근에 출간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웹진들과 창작 커뮤니티들에서 온라인 문학계에 단편문학이라는 새로운 화두의 도화선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 2
  • No Profile
    진아 04.08.28 12:06 댓글 수정 삭제
    웹 시리얼에서 2회 단편 공모전 마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웹시리얼 사이트에서 단편공모 클릭하세요.
  • No Profile
    미로냥 04.08.28 22:53 댓글 수정 삭제
    ...공모 준비해 보다가 '검은 코뿔소'를 읽고 전의를 상실, 포기한 사람이 있다죠(여기^^;;)
분류 제목 날짜
소설 [마왕과 황금별], 미셸 투르니에 2004.09.24
소설 2004 환상문학웹진 거울 단편선 감상2 2004.09.24
소설 2004 환상문학웹진 거울 단편선을 읽고3 2004.09.24
비소설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004.08.28
소설 앤 라이스, 뱀파이어 연대기 2004.08.28
소설 에비터젠의 유령 2004.08.28
소설 웹 시리얼 1회 단편공모전 수상집2 2004.08.28
비소설 깔리다사 2004.07.30
소설 에러곤2 2004.07.30
소설 돌 속의 거미3 2004.07.30
소설 마감증후군3 2004.07.30
소설 타이거! 타이거! 2004.06.25
소설 두더지 2004.06.25
소설 뢰제의 나라3 2004.06.25
소설 여왕의 창기병8 2004.06.25
소설 작은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2 2004.06.25
소설 십이국기4 2004.05.28
소설 열 번째 세계18 2004.05.28
소설 환타지 읽기Reading Fantasy 중단편집 I9 2004.05.28
비소설 신화와 점성학 200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