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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imento@hanmail.net이 책은 테일즈(www.tales.pe.kr)에서 그간 사이트에 올라온 이야기를 묶어 낸 두 번째 책입니다. 책 크기도 크고(B5) 글자 폰트도 작고 빽빽하며 페이지도 500쪽 가까이 됩니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에 책을 펼치며 설레었습니다. 앞부분에는 테일즈에 대한 소개와 가족들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99년에 문을 연 테일즈는 올해 초에 3번째 책을 찍었습니다. (3번째 책에 대한 리뷰는 다음 호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전체로 봐서 실린 글이 기초가 탄탄했고 공들여 썼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흡한 대로 개별 작품에 대한 감상을 달아보려 합니다.

  "Another Name of...."(저니리)는 미래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인물간 관계나 감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입니다. 연작 드라마 중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설정으로 다른 소설을 쓴 바 있다고 작가가 뒷부분에 설명을 썼었던 걸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러했습니다. 한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기승전결이 있는 구조가 아닌 여러 인물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작품만으로 내용과 인물간 관계를 파악하는데 무리는 없지만 완결된 단편으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설정도 세밀하게 공들여 만든 흔적이 돋보이며 문장도 비교적 탄탄하나 군더더기가 좀 보입니다. 특히 묘사에서 주춤거리거나 변명이 많습니다. 그런 변명은 작가가 묘사에 대해 자신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독자가 읽는데 혼란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충분히 문장력이 받쳐 주는데도 몇몇 의성어로 상황을 넘기는 점도 아쉽습니다. 만화에서 보면 땀방울이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커다랗게 그림으로써 상황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법이 글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걸 보는데 문제는 그런 점을 차용한 많은 글이 만화에는 의성어와 의태어 말고도 다른 그림들이 함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점입니다. (콰당이라는 소리와 함께 넘어져 있는 사람의 다리만 거꾸로 보여준다거나) 글을 쓸 때 그 점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의성어와 의태어만을 사용할 때는 더 재치 있게 그릴 수 있는 장면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같은 말이지만 작가가 머릿속에 상상한 장면을 독자가 보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묘사가 필요합니다.

  "신기세계영웅담“(성화)은 말괄량이 공주가 궁전을 떠나 건달과 거지와 마수를 동료로 삼아 다른 마수를 물리치러 간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반전까지 충실한 장르 판타지입니다. 문장도 현란하고 재미있고 중간중간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망토”(미르)는 한 외로운 소년이 현실과 꿈과 과거의 기억 사이를 오가는 소설입니다. 소재로 쓰인 망토는 시린 사람끼리 작은 배려를 나누는 걸 보여줍니다. 아련한 슬픔과 고독이 잘 묻어나온 글입니다. 문장도 원숙하고 공들여 쓴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비밀의 화원”(미르)는 몇 문단을 읽으며 낯이 익다 싶더니 망토의 미르님이 쓴 글이었습니다. 저택에서 일하는 앤은 저택의 아가씨인 루이와 친하게 지냅니다다. 루이가 떠난 후 쓸쓸해하던 앤이 다시 기운을 차리는 내용입니다. 줄거리를 쓰고 나니 이야기의 힘이 감소되어 버렸는데  미르님의 차분한 문장력과 현재형이 주는 애틋함이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중심점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단조롭게 흘러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뚜렷이 보이지 않네요. 망토도 그런 면이 있었는데 망토는 이야기가 충분했기 때문에 그런 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비밀의 화원은 이야기로만 보자면 단조로웠기에 글이 밋밋해졌습니다.
  동명의 유명한 작품에서 따온 제목은 양날의 칼입니다. 기존 작품의 이미지로 인해 글에 설명을 줄이고 작가가 의도한 바를 암시할 수 있지만 색다른 해석이나 다른 면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상대적으로 글이 초라해질 수도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단상”(미르)은 한 인물이 독백처럼 내면을 묘사합니다. 뚜렷한 서사 없이 심리만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미르님의 필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글은 무언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독백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와 닿을 수 있지만 구체성이 약하기 때문에 글이 힘을 받기 어렵습니다. 이런 형식의 글은 미르님이 즐겨 쓰는 형식인 것 같고 어느 면 편하게 쓴 글이 아닐까 싶은 점이 아쉽습니다. 인물의 내면을 더 치열하게 따라잡아 봤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영주님”(카자마신)은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한 글입니다.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한 많은 글에서 주인공은 지극히 현대적입니다. 당시는 계급에 따라 다른 삶과 다른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노약자와 여자에 대한 존중 의식이 생긴 건 훨씬 뒷날의 일입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시대를 비웃거나 환멸을 느끼는 인물은 그에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배경은 계급사회인데 시각은 현대적인 면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언밸런스하지요.
  루이의 영주부인에 대한 짝사랑, 영주의 농노에 대한 무자비함, 재판 중 이야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할지 혼란스러웠어요. 재판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서두가 길었습니다. 충실한 자료 조사, 설정과 인물에 비해 큰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가 아쉽네요.

  “내 마음 속 보석 상자에는”(세미)은 버려진 아이와 돌보는 사람의 정을 다뤘습니다. 세미는 버려진 아이(미혜)를 데려와 돌보았습니다. 3년이 지났을 때 미혜의 부모에게 연락이 옵니다. 미혜를 데리고 가는 도중 미혜가 교통사고로 죽고 영혼을 볼 줄 아는 세미는 부모에게 미혜의 영혼과 만나게 합니다.
  미혜가 죽는 과정이 설득력이 약합니다. 미혜는 갑자기 차도로 달려듭니다. 세미가 미혜를 부모에게 보내겠다고 말한 건 아니고 일단 만나러 가는 자리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부모를 보고 싶어했으면서도 말이지요.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부모에게 가고 싶은 마음과 세미와 살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켜 내린 선택이라고 보기에는 설명이 미흡했습니다.
  세미의 영혼을 볼 줄 아는 능력도 초반에 복선이 있어야 했습니다. 갑작스런 미혜의 죽음, 그제서야 독자에게 보여주는 세미의 능력은 부자연스럽습니다.
  불필요한 말줄임표가 걸립니다. 말줄임표는 꼭 필요할 때, 3의 배수로 사용하는 게 원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Sword of Memory-반려자”(백아)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습니다. 단편은 한 점을 향해서 가야합니다. 에피소드에 의존해서 글이 전개되는데 자잘한 에피소드가 전체 구조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불필요한 구두점의 남발도 걸립니다. 채팅을 할 때 구두점은 여운을 주거나 강한 표현을 부드럽게 하는 등 여러 효과가 있습니다만 글에 쓸 때는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합니다. 여운을 주기 위해서라면 ‘말끝을 흐렸다.’라는 식의 서술어나 묘사로 진행해야지 구두점으로 하면 글이 어지러워 보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얼마나 큰 소리인 지를 묘사해야 합니다. 느낌표의 숫자로 큰 소리라는 걸 표현하는 것보다 문장으로 해줘야 합니다. 귀청이 찢어져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창문이 깨지는 듯한 큰 소리였다, 목이 터져라 악을 썼다 등등 찾으면 다양한 표현을 살릴 수 있습니다.
  글이 대사에서 연상되는 효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는 그 대사와 함께 표정이나 몸짓도 함께 떠올렸을 텐데 글에는 묘사가 생략되고 대사만 남았습니다. 지나친 설명은 글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키지만 묘사가 빠진 글은 엉성해 보입니다. 역시 문장력이 되는데 사용하지 않은 느낌이 아쉽습니다.

  “반룡수인전”(가아트)은 고대부터 존재하던 수인이 인간과 섞여 사는 이야기입니다. 소재도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서술에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묻어나오는 점이 아쉽습니다.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라고 해도 일정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목소리가 바뀌는 느낌입니다. 지나치게 설명조이기도 하고요.
  암시로 인해 독자는 알고 있다고 해도 소설 속의 인물이 내막을 아는 데에는 과정이 필요한데 독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과정이 생략된 채 진행됩니다. 중반에 나온 스케일에 비해 갑자기 사건이 종결되어 버리는 느낌도 있네요. 국제적인 스케일로 가다가 책임자 한 명이 죽자 이야기가 결말이 난다는 점이 조금 서운했습니다. 리플레이와 소설은 다릅니다. TRPG의 코드를 소설로 차용할 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다리는 이유”(슈이)는 견우와 직녀 설화를 차용해 우리나라 민담과 잘 어우러지게 만든 글입니다. 초반에 수진과 연혜가 견우와 직녀의 환생이라는 복선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한 계절의 이야기”(에르키나)는 분량에 비해 줄거리가 미흡합니다. 자잘한 에피소드에 지면을 너무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진행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습니다. 한 두 장면 정도라면 이야기에 맛깔스런 양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향신료를 지나치게 사용해 원 재료의 맛을 알기 어렵습니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장면을 독자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적절한 묘사가 필요합니다. 분위기는 있는데 묘사가 없네요.

  “APORIA"(미니)는 주인공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아니었다는 문장으로 주인공의 비극을 암시하며 시작합니다. 스케일을 크게 잡은 것에 비해 이야기가 너무 쉽게 흘러가는 면이 있습니다. 독자에게 긴장을 주는 부분이 약했어요. 헤어진 친어머니, 의붓아버지, 하녀 중 초점을 주는 관계가 없이 비중이 비슷했습니다. 단락을 소제목으로 끊는 것이 구성상 어떤 효과를 주는지, 반드시 필요한 장치인지에 대해서도 되짚었으면 합니다.

  “Count Down (CD) - Episode 1”(이스)는 제목대로 에피소드였습니다. 한 편의 완성된 단편으로 보기에는 이야기가 미약했습니다. 독자가 읽을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글의 기본인 성실성입니다.
  아래 “하얀...”과도 겹치는 이야기입니다. 되도록이면 문장을 끝맺었으면 합니다. 문장을 끝맺지 않는 것은 적절하게 사용하면 감정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주지만 남발하면 글이 미숙해보입니다. 구두점 역시 쓰는 이의 입장이 아닌 읽는 이의 입장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얀...”(이스)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만남과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재가 떠올랐을 때 그 소재를 이야기로 만들기 전에 좀 더 묵혔으면 해요. 소재만으로 단편 소설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느낌이 좋은 글인데 좀 더 살렸으면 더 완성도 높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서”(부엉이)는 원주민이 사는 섬을 침략한 세력에 맞서서 싸우는 내용입니다. 침략자는 원주민 대부분을 노예로 만들어 섬에 있는 금을 캐도록 합니다. 살아남은 몇이 산에서 마을을 일구어 게릴라 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주인공 아크룩스는 원주민의 후예이나 아버지가 부족들에게 오해로 인해 버림받은 후 정복자의 편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아크룩스는 피가 이끄는대로 원주민을 이끌고 정복자에게 대항하는 중심축이 됩니다. 스케일도 컸고 길이도 중편 분량의 긴 이야기를 무리 없이 끌어나갔습니다. 다만 포인트가 약했어요.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정복자와 원주민의 전투가 별 다른 상황 설명없이 승리로 끝납니다. 앞에서 계속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는 복선을 주었다는 점, 이야기가 종반을 향해 달리던 시점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을 흘려버렸어요. 그 점은 다른 부분에서도 드러나는데 동료의 처형을 지켜봐야 하는 자의 슬픔, 아크룩스가 원주민의 편으로 돌아서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나 심리 등 살려줘야 할 부분들이 너무 밋밋하게 지나갔어요. 아주 사소한 지적이지만 단어 뒤에 (!), (...)는 빼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더 자신감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막차”(용권)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단편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지하철을 기다리다 잠들어 한순간 꾼 꿈같은 글입니다. 이미지만으로 단편 소설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주 짧은 단락에 굳이 개별적으로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요. 이미지간의 연결을 내용으로 진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각 이미지를 개별적으로, 단락을 나누어 쓰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썼다면 좀 더 완성된 느낌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폴티악”(용권)은 아이를 잡아가는 귀신과 귀신에 대항해 싸우는 아이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짧은 글이고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잘 살렸습니다. 그런데 부적, 귀신, 달, 태양 등등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티리함에 대해 주석을 찾았을 때  ‘태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설명을 보니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이름은 작품 분위기에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있는 것과 이름만 다를 뿐 다른 역할을 하지는 않는데 짧은 단편에서 일일이 주석을 찾아보며 읽는 게 번거롭습니다.

  “For What?”(루닌)은 이야기의 스케일에 비해 진행이 헐겁습니다. 엘프는 멸망을 막기 위해 인간과 전쟁을 벌이고 리건이라는 소녀 안에 잠들어 있는 아나트라는 여신을 깨우고자 합니다. 어째서 아나트가 리건이라는 평범한 소녀 안에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한 인간을 얻기 위해 전쟁까지 벌여야 한다는 것도, 다른 국가가 전쟁을 벌였는데 주동자는 엘프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리건과 왕도 갑자기 결혼을 하는군요. 인물도 너무 많이 나와서 중심을 잡기 어렵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지를 쳐서 핵심을 살린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A gemstone”(어둠)은 두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느닷없이 사라져 두 아이는 할아버지 손에 큽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 용병이 찾아오고 두 아이는 용병을 따라 마을을 떠나 부모님을 찾기를 바라며 용병을 찾아갑니다. 아이들이 어째서 용병을 찾는지 밝히지 않고 수수께끼를 던져주다가 막판에 밝히는 구도와 반전은 좋은데 핵심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현재 평화로움, 용병을 찾아다니는 것, 용병을 찾은 후 집에 있는 원석을 대가로 지불하고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 하는 갈등으로 단편 안에 세 가지 이야기를 넣어 중심이 모호합니다. 현재 평화로운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보기엔 첫째의 친구와 싸운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제목인 gemstone의 의미가 너무 뒤에 나오는데 제목으로 인해 떠나느냐 마느냐의 갈등이 핵심이라고 보기에는 복선이 약했습니다. 용병을 찾아다니면서 왜 이 아이들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용병을 찾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강조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Story of Vampire”(은빛)는 제목대로 뱀파이어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뱀파이어라는 걸 감추고 인간 여자(세리스)를 사랑합니다. 세리스는 그가 뱀파이어라는 걸 알고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신부는 뱀파이어를 처단하려 하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세리스와 뱀파이어의 1인칭 시점이 교차하는데 한 줄 띄우기로만 시점의 변화를 설명하는 건 부족합니다. 줄거리에 좀 더 살이 붙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너무 앙상하네요.

  “First Meeting”(비파)은 이야기가 군더더기가 너무 많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소한 장면을 묘사하는데 지면을 너무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작은 에피소드들이 전체를 향해 가는 힘이 되지 못하고 흩어져 있습니다.

  “베르트”(레오)는 일종의 차원이동물입니다. 신의 변덕과 장난기로 육체가 바뀌어 다른 세계로 가게 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신을 찾아다니는 걸로 이야기가 완결됩니다. 앞부분에 있었던 친형과 친형에게 뺏긴 여자친구, 황녀 등등 다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이 갑자기 샛길로 빠집니다. 다른 세계에 와서 잘 살다가 갑자기 여행물이 되는 거죠. 흔히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섞어서 진행하다가 판타지다운 결말을 내버렸습니다. 신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결말을 내려면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적응하는 게 아니라 계속 방황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결말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카시아”(월광테제)는 장애인인 산이를 도와주는 친구 강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애인 친구와 어울리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 교통사고로 인한 산이의 죽음, 어른이 된 강이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모습이 평이한 구도이긴 하지만 좋은 주제입니다.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강이가 아이들도 데리고 자원봉사를 하러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마녀 이야기”(박성우)의 제목은 마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녀가 너무 뒤에 등장하네요. 마녀 이야기가 아닌 멜디오스와 디넬리앙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제목대로라면 마녀 이야기가 주가 되고 멜디어스와 디넬리앙의 이야기는 양념처럼 들어가야 하는데 주체가 바뀐 것 같습니다. 핵심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쳐내야 합니다.

  “별의 시”(엘린)는 사랑에 관한 글입니다. 레인은 세계의 빛인 예인의 비밀 창고에 겨우 들어가게 됩니다. 그 곳은 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인은 레인에게 사랑으로 별을 닦아주라는 말을 합니다. 말장난과 너무 가벼운 진행으로 참신한 소재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나온 교실 장면도 어째서 들어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비상열전-부부이야기”(용자)는 동양풍 시대극입니다. 독자가 작가가 설정한 배경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배경묘사와 사소한 소품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관건입니다. 비상열전은 그런 면에서 많이 미흡했습니다. 당시 모습을 보는 것도 시대극의 큰 재미인데 몇몇 지명과 인물 이름만으로 배경을 표현했습니다. 현대적인 대사가 나오는 것도 분위기를 깨뜨립니다. 이야기에 비해 제목도 너무 거창하네요.

  “Toy”(바도리)는 인간을 장난감으로 보고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을 농락하는 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냉소 이전에 깊이 있는 통찰을 바랍니다. 통찰 없는 냉소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In a different way”(우주)는 아직 완결된 단편 소설로 보기에는 미흡함이 보입니다. 줄거리는 있는데 핵심이 없네요. 기존 판타지 소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한 편을 엮은 듯한 느낌입니다. 문장력이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기다려봅니다.

  “Final&New”(페르아하브)는 굉장히 짧은 글인데 프롤로그, 외전, 본편, 에필로그가 모두 있었습니다. 서사보다 외형에 너무 치중한 점이 아쉽습니다.


  2tp에 실린 많은 글들이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편은 장편의 축약본이 아닙니다. 많은 글이 단락에 소재를 붙였습니다.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작품의 외형에 멋있어 보이는 편집에만 신경을 쓴 건 아닌지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영어 제목도 그렇습니다. 영어로 쓰면 원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직접적이지 않은 간접적인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만 꼭 영어로 했어야 하는지 이 역시 너무 멋을 추구한 것은 아닌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두툼했던 만큼 읽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좋은 단편이 많아 즐거웠습니다. 테일즈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댓글 2
  • No Profile
    비파 04.07.01 17:57 댓글 수정 삭제
    우와...몇년전 글을 이렇게나.. 민망해서 몸둘곳을 모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No Profile
    저니리 04.07.01 22:26 댓글 수정 삭제
    원래 오래전 글은 그리 민망한 것입니다. 비파님. 아, 이때에는 비파님이 안계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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