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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자르 사전

2004.04.30 23:5004.30





redfish.pe.krtoredfish@hotmail.com

  수많은 책을 읽더라도 영혼을 압도해 버리는 글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영혼을 압도해 버린 글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미야자와 겐지의 <봄과 아수라>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카자르 사전>을 우선 꼽을 것이다.

   <카자르 사전Dictionary of the Khazars>을 읽게 된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법칙, 우연과 운명 중 하나 때문이다. <카자르 사전>이 출간되던 98년, 나의 독서경향을 꽤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지인이 간곡하게 권했던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다. 검은 띠가 둘러진 야릇한 색깔의 표지의 맨 아래를 보면 이런 문장이 시작된다. ‘이 책은 남성판이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돌아가는 세상에 이제 책도 수컷과 암컷이 나누어진다? 괴이한 일이다. 그리고 괴이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복원 개정판 서문’이라는 제목이 시작되면 출판사에서 실수로 소설로 분류해서 출간한 것이 아닐까 싶은 기분마저 든다. 마치 정말 사전인양 시치미를 뚝 떼고 ‘카자르 사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뻔뻔스러운 작가는 밀로라드 파비치Milorad Pavić로서 동유럽 유고 연방에 살고 있는 시인이다.

   밀로라드 파비치의 능청스러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가상의 사전인 ‘카자르 사전’을 진짜 복구라도 한 양 책 전체를 사전 형식으로 꾸며 놓았다. 사전과 똑같은 형식으로 단어와 설명이 나란히 붙은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 진다. 그러나 단어의 설명을 읽는 순간 그 혼란스러움은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이야기로 파생되고 하나의 이야기는 세 개의 전설로 탈바꿈한다. 위력적인 신화 속에 존재하는 단어 하나가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듯이 카자르 사전에 수록된 단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며 신화를 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하는 새롭고도 아름다운 변주곡이다.

   밀로라드 파비치가 선택한 그 변주 방식은 매우 이채롭다. 우선 그가 잡은 모티브는 ‘한 때 카프카스(코카크스) 지방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던 카자르인에 관한 역사’이다. 그 역사 속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민족의 개종과 관련된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 것은 8, 9세기 무렵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 사이에 벌어졌던, 이 민족의 개종을 둘러싼 논쟁이 끝난 후 카자르 민족의 군주 카칸이 이 세 종교 중 하나고 개종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카자르의 전통 종교와 언어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 원인이 된 이 사건의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 종교에서는 카칸이 개종한 종교가 각자 자신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각각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이야기가 레드 북(기독교), 그린 북(이슬람교), 옐로 북(유대교) 세 권의 책이다.

   <카자르 사전>은 이 세 권의 책을 묶은 것으로서 결국 같은 단어에 대한 설명이 각기 다른 해석과 관점에서 해석되어 세 번 나오게 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그 단어들에 대한 설명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멋들어진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카자르 사전>에는 중요한 인물이 셋 등장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브람 브란코비치, 유대인 사무엘 코헨, 이슬람 교도 마수디. 각각의 종교를 대표하는 세 인물은 과거, 현재, 미래처럼 구분될 수 있지만 경계가 모호한 ‘하나’이다. 아브람 브란코비치는 꿈속에서 사무엘 코헨이 되고, 사무엘 코헨은 아브람 브란코비치가 된다. 그들은 서로를 꿈꾸며 이어져 있는 이 둘의 관계는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는 유명한 장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꿈과 현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듯이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서로 상대방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다시 ‘꿈’을 모티브로 하여 꿈 사냥꾼인 마수디가 등장한다. 이 세 사람의 얽혀진 운명과 평행선을 달리는 이야기는 마술사인 아테 공주와 위대한 꿈 사냥꾼 알 사파르의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에 그들의 운명을 지켜보는 악마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한층 더 탄력을 받는다.

   이렇게 단어와 단어를 오가며 유기적으로 엮어진 이들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현실로까지 이어지며 대단히 감탄할만한 결말로 매듭지어진다. 서사적인 전개가 아니라 퍼즐 맞추기처럼 복잡한 지적 유희를 필요로 하는 이런 구성은 서사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낯선 방식이다. 서사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독자들은 치밀하게 유기적으로 엮여져 나가는 이야기에 난색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과 치밀한 설정으로 독자를 위로한다.

   시인의 언어의 정수를 뽑아내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시인인 그가 쓰는 언어는, 이미 번역이라는 거름망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와 전설의 변주를 연주하며 지독할 만큼 아름다운 빛을 낸다.

   “진실은 투명하기 때문에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 반면 거짓은 불투명하기 때문에 빛도 시선도 들여놓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섞어 놓은 제3의 형태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런 것이 가장 많다. 한쪽 눈으로 우리는 진실을 꿰뚫어 보지만 그러한 시선은 무한대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고 만다. 다른 한쪽 눈으로 우리는 한 치도 거짓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그러한 시선은 더 이상 뚫고 들어가지 못한 채, 땅 위에 우리의 것으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옆으로 밀쳐 둔다. 그러므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거짓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든 모호함. 작가는 아무래도 그 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꿈과 현실, 피아의 구분이 모호하고 상대적인 믿음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 현실에 수없이 존재하는 그런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 사전을 진짜 사전인양 시치미를 뚝 뗀 그의 뻔뻔함에 대한 변명이 되고도 남을 듯하다.

   어쩌면 <카자르 사전>만큼이나 몽환적이고 낭만적일 듯한 저자는 ‘남성판’과 ‘여성판’으로 구별된 이 책에 대하여, 각각의 판을 가진 두 남녀가 책을 들고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을 꿈꾼다는 유머를 던지고 있는데 두 사람이 각기 다른 판을 사서 읽은 뒤 그 은밀한 차이를 이야기해 보는 것도 아마 남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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