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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자들의 탄생

2009.07.31 22:4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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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형 스릴러, 눈을 뗄 수 없는 음모론의 판타지

 [위대한 자들의 탄생](고경오, 반디출판사, 2009년 7월)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다. 스릴러라면 일단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빠른 전개와 긴장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만하다. 한 번 책장을 펼치면 지루한 구석 없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상 세대에 맞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흡인력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 전개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매력 요소이다.
 사실 처음에 발단만 봤을 때는 우려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병남은 자신의 후배들과 함께 홍대 앞에서 클럽 데이 때 술에 취해 길에 퍼진 여자애를 데려온다. 병남의 기행과 넘치는 성욕을 그런대로 참고 봐주던 기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병남을 신고하려 한다. 놀란 병남이 여자를 되돌려 놓을 찰나 여자의 이마에 새겨진 바코드를 발견하는데… ― 알라딘 책소개 中

 바코드가 찍혀 있는 소녀라는 이미지는 진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진부한 장면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새로운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나, 음모론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점 그리고 온갖 소재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섞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띠고 있다. 즉, 이 소설의 소개문 중 하나인 “2009년 이 땅의 뜨거운 이슈를 재구성한 하이브리드 소설.”이라는 명칭이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인 것이다. 정치 사회적인 요소와 스릴러 적인 요소, 오타쿠를 등장시켜 서브컬쳐 이야기까지 결합시킨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인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은 새로운 독서 경험을 체험하게 한다. 2008년 7월에 신(新) 1918형 독감, 일명 살인 돼지 독감이 퍼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곳곳에서 ‘노무현’, ‘김대중’, ‘이명박’이나 ‘참여정부’ 등 지금 이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인물들이 언급되면서 독특한 정서를 전달한다. 재미를 주는 부분들이기도 하고 흥미를 끄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은 단순한 재미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제의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필연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전체적으로 2008년 7월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 이면에 이런 음모들이 존재했으며 이런 이해관계와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밀고나간 소설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음모론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음모론을 즐기거나, 거부감이 없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너무 노골적이라 유쾌한 풍자극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모성’ 같은 장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가슴 앞은 장면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워낙 빠른 이야기 전개 때문에 현 세태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로 읽히는 글이기도 하다.(오타쿠인 주인공 기호의 존재 또한 그런 점을 부각시킨다. 전투 속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배경음악으로 듣는 장면들은 기묘한 느낌과 독특한 재미를 주는 요소이다.) 처절한 전투 장면도 진지하기보다는 허무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가 부조리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지루한 구석 없이 발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단숨에 읽어 내리게 하는 흡인력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음모론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부터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던가. 이 소설은 그런 음모론들을 적절하게 끌어들이고 결합하고 밀어붙임으로써 독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소재들과 전혀 새롭지 않은 음모론들이지만, 이런 것들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솜씨는 매우 훌륭하다. 거침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와 곳곳에 배치된 설명들은 독자를 어느 정도 납득하며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이야기의 흥미를 놓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인물들은 아주 매력적이거나 입체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어느 정도 개성을 보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초법적인 기업들의 연합, 전 세계 상위 1% 초인류 엘리트 신종족, 스포츠․연예 등 미디어 산업 전반에 끼치는 비밀 조직의 영향력, 돼지 독감의 전파 등등은 하나하나는 새롭지 않지만 결합함으로써 낯선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소설이다.
 영상으로 잘 그려지는 소설이라 영화로 제작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었다. 실제로 글자보다 영상으로 보아야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만한 장면들도 몇 개 있었다. 후반 들어서 전투씬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씬들은 아무래도 텍스트에서는 박력을 느끼기 힘들고 긴장감도 덜하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새로운 소설의 탄생이자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 아닐까. 첫 번째 작품치고는 하려는 이야기를 과감히 쏟아 붓는 솜씨가 능숙하다. 오타쿠인 기호 같은 캐릭터는 신선하고 음모론 이야기에서 독특한 개성을 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결말은 조금 빠르고 순식간에 하이라이트만 전개되는 듯해서 아쉬움도 느껴졌지만 마지막 엔딩은 결국 단번에 크나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해도 점차적으로 세상이 바꿔지리란 기대를 심어줌으로써 여운을 남긴다.
 한 번에 읽어 내릴 수 있는 뛰어난 흡인력의 소설을 찾는 독자나, 신자유주의와 돼지 독감, 세상의 이면에 숨겨진 음모론을 즐기는 사람, 독특한 새로운 유형의 스릴러 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제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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