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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안 가보셨나요?: 빈스토크 일일체험 유람기

 안녕하세요. 저희 빈스토크를 찾아주신 여러분 대단히 환영합니다. 저는 골든구즈 여행사의 빈스토크 전문가이드이구요, 지금부터 빈스토크 일일체험코스의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저희 골든구즈 여행사의 황금거위 깃발을 놓치지 말고 따라와 주시기를 바라며, 만약 길을 잃으셨을 경우에는 사전에 나눠드린 호출 장치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빈스토크 국경인 2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현재 내려오는 중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빈스토크의 구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빈스토크는 가로 5km, 세로 5km 높이 총 674층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 유일의 초고층복합건물도시로서, 대외적으로 승인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입니다. 주요 산업은 위성 제작과 수출, 대여와 관리로 대표되는 첨단위성산업이며, 빈스토크의 주 수입원인 군사위성을 포함하여 위성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빈스토크에는 상시적으로 5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중이며, 건물 안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포함하는 모든 서비스가 구비되어 일생동안 빈스토크 안에서만 살아갈 수도 있도록 되어 있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사시는 분들도 정말 많구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오른쪽 입구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 멀미가 있는 분들께서는 바깥 풍경이 보이는 가장자리에 서시면 다소간의 멀미감소효과를 보실 수 있구요, 22층까지는 약 일분 삼십초 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문이 닫힙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보고 계시는 바깥 풍경은 빈스토크 주변국의 영토로서, 빈스토크와는 정치적, 행정적으로 구분되는 구역입니다. 주변국은 빈스토크와 유사한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인종적 구성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스토크와는 국경으로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답니다. 아, 22층에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립니다. 두 분씩 천천히 내려 주세요.

 이곳은 빈스토크의 공식적인 국경이며,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입국심사를 받으실 예정입니다. 여권을 미리 준비하시고 입국목적을 밝히신 후, 소지하신 물품을 바구니에 담은 뒤 금속탐지기를 통과하시면 됩니다. 사전에 주머니에 있는 동전과 기타 금속제 물품은 반드시 꺼내 주시기 바랍니다. 고객님, 가스라이터와 등산용 나이프도 전부 꺼내주시기 바랍니다.

 빈스토크 국경을 통과하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빈스토크에 정식으로 입국하셨습니다. 방금 여러분께서 여권에 받으신 도장은 일일 입국허가로서, 24시간 안에 빈스토크에서 출국하지 않으면 불법체류로 간주되어 차후 빈스토크 방문에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점 유념하시어 저희 여행사의 일정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 일일체험의 첫 번째 코스인 29층 빈스토크 시립박물관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박물관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주세요. 시립박물관은 빈스토크 건국 오십 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시설로서, 빈스토크의 건조와 국가의 설립, 운영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 29층에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곧바로 박물관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 여러분들이 현재 보고 계시는 사진은 빈스토크가 건조되기 전 주변국 영토였던 지역의 모습이랍니다. 5km x 5km 도합 25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재개발하기 위해 약 삼 년에 걸친 광범위한 토지보상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도합 삼십년에 걸쳐 빈스토크의 축조가 진행되었습니다.

 여기 보시고 있는 유물은 약 삼십년 전 520층에서 폭발했던 폭탄의 잔해인데요. 이 사건으로 인해 빈스토크에서는 긴급계획 1호가 시행된 바 있습니다. 긴급계획 1호란 빈스토크의 전 국민이 건물을 비우는 것으로서 당시 총 45만 7천 명의 국민이 주변국 영토로 빠져나간 대사건이었답니다. 네? 위험하지 않냐구요? 아, 이제 빈스토크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테러가 일어날 위험은 거의 없답니다. 22층부터 25층까지 이어지는 국경지대에 약 이천 명의 병력이 주둔중이고, 빈스토크 소속의 전략미사일이 주변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제 박물관을 대략적으로 둘러보셨으니 다음 코스인 시청광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시정부 청사 앞 광장이 있는 321층까지 가는 데에는 한 번의 엘리베이터 환승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희 여행사의 황금거위 깃발을 놓치지 말고 따라와 주세요.

 이곳이 빈스토크의 중심가, 시청광장입니다. 각종 관공서와 핵심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한 이곳은 명실공히 모든 권력과 행정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 이제 곧 빈스토크의 명물인 아미타불 코끼리가 나올 시간입니다. 저기 꽃길 보이시죠? 저 길을 따라 빈스토크 경비대 소속의 코끼리가 순찰을 나온답니다. 네? 빌딩에 웬 코끼리냐구요? 여러분 기마경찰 아시죠? 시위대를 평화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데요, 빈스토크에서는 특별히 인도코끼리를 크레인으로 공수해 시민들의 안전과 치안을 위해 활용하고 있답니다. 저기 나오네요!

 고객님, 시위대와 섞이시면 곤란합니다! 대열을 이탈하지 말아주세요! 광장 중심부로 가시면 위험하게 되실 수 있습니다. 빈스토크 경비대에서는 평화로운 시위 진압과 소강을 위해 물대포를 사용하거든요. 물대포는 인체에 무해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시면 시위대로 오인되실 수 있어요. 연행 시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을 달리 구분하지 않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고요. 만약 외국인 신분으로 연행되실 경우에는 테러혐의로 무기한 억류될 수 있으니 절대 대열을 이탈하지 말아주세요.

 다음 코스는 413층 식당가입니다. 빈스토크에는 매 층마다 개성적인 식당가가 있는데요, 여기는 특별히 세계 각국의 음식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만보객 푸드 코트랍니다. 빈스토크에서는 하나의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곳 푸드 코트에서 세계의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배치를 했답니다. 빈스토크의 674층을 상징하는 육백칠십사 개의 점포에서 자유롭게 식사를 해 주시면 된답니다. 식사대는 고객님들께서 미리 지불하신 패키지 요금에 포함되어 있으니 나눠드린 부저에 내장된 전자칩을 사용해 주시구요. 추가로 1인분 외에 더 주문하시거나 디저트를 드시고 싶으신 분은 마찬가지로 전자칩을 이용하시면 추후 자동으로 청구가 될 예정이니 이점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이곳은 487층의 고급주택가인데요, 저희 여행사에서 특별하게 준비한 코스입니다. 바로 여러분들 너무 좋아하시는 명 동물배우 P씨의 산책로를 관람하실 수 있는 기회랍니다. 네. 이곳이 P씨가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나오는 곳이랍니다. 이곳은 주택가이니 소음을 유발하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여주시구요. 여기 명배우 개 P씨의 동상과 사진을 찍고 싶으신 분은 추가옵션이오니 저희 가이드에게 말씀해주시면 촬영한 사진을 액자포함해서 댁으로 배송해드린답니다. 추가비용은 얼마 되지 않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네? P씨를 볼 수는 없냐구요? 네. 예전에는 산책시간에 맞추어서 여러분들 방문 스케쥴을 잡았는데요, P씨가 방문객 여러분들의 관심에 연기활동을 위한 적절한 휴식이 방해된다며 방문 자제를 요청했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구요.

 다음은 오늘 빈스토크 일일체험의 하이라이트, 674층 전망대 방문이랍니다. 사상 최고의 마천루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요. 빈스토크 599층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 최고의 위성디자인기업 이엔케이(E&K)에서 디자인한 고성능 망원경을 이용하시면 최고 30km 떨어진 골목의 벽에 그려진 낙서까지도 보실 수 있답니다. 프라이버시 침해의 여지가 있사오니 일반 가정집보다는 도로나 공공건물을 관람해주시구요. 여러분께 나눠드린 코인으로는 약 3분간 망원경을 보실 수 있답니다. 더 이용하고 싶으신 분들은 추가로 코인을 구매해주세요.

 지상 최고의 초고층 도시국가에서의 전망, 마음껏 즐기셨나요? 이제 이번 체험의 마지막 코스인 21층 쇼핑몰로 이동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자유쇼핑시간을 드릴 건데요, 쇼핑을 자유롭게 즐기신 후 시간에 맞추어 모이시면 된답니다. 아, 일부 점포에서는 저희 여행사에서 나눠드린 표찰을 보여드리면 5% 할인 혜택도 있으니 잘 활용하시구요.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동안의 빈스토크 일일체험, 어떠셨나요? 모든 것이 하나의 건물 안에 구비된 빈스토크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분들은 드물답니다. 그런 만큼 거주하기도 까다롭고 국적을 얻기도 힘든 곳이에요. 매년 수많은 분들이 빈스토크 거주권과 시민권 심사를 신청하시는데요, 혹시 상담을 하고 싶으신 분은 저희 여행사에서 함께 운영하는 이민 상담 코너를 이용하실 수 있답니다. 주변국에서 군복무를 마치신 분들은 빈스토크에서 4년간 추가로 경비대 근무를 함으로써 가산점을 얻으실 수도 있어요. 해군과 공군으로도 복무도 가능하오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출국절차를 밟으신 후 저희 직원에게 말씀해주시구요. 오늘 저희 골든구즈 여행사와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타워
배명훈, 오멜라스,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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