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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와 인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영화나 만화, 소설에서 등장하는 좀비들을 보면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좀비들의 놀라운 전염성과 맹목적인 공격성, 그리고 생존자들이 벌이는 세계적인 전쟁. 황금가지 밀리언셀러클럽에서 출간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는 바로 세계 좀비 대전을 다룬 소설이다. ‘좀비’라는 존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이미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비라는 소재에 거부감이 없음에도 아직 안 읽어본 사람을 위해서 책을 소개하자면, 이 책은 한 두 사람의 입장에서 전쟁을 세세하게 그리는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소재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매우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전쟁 발발 이후, 한 기자가 전쟁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형식이다.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대한 것과 달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좀비들과의 긴박한 전쟁 모습을 감상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쟁 이후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형식이라니. 처음에 재미가 있을지 의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에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능청스럽게 실제 세계 좀비 대전이 발발했다는 설정에서 벌어지는 인터뷰들은 작가의 상세한 조사가 빛을 발해서 그럴듯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 설정이나 고증이 탄탄할 경우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들어도 현실성을 띠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러했다. 밀리터리 지식과 세계 각국의 사정 등을 세세하게 조사하고(남한과 북한의 정세도 등장한다. 한국 독자라 어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외에도 각국 정세가 그대로 드러난 부분들은 방대하다고 말할 분량이다.) 집필했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럴싸하게 느끼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현실성을 띠지 않는다면 먼저 독자가 몰입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나갈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은 그 독특한 인터뷰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루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으나, 읽어나가면서 그런 걱정도 금세 사라졌다. 일단 인물의 배치를 적절하게 해서 처음 좀비가 나타나고 전염되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는 인터뷰어가 앞에 있고 이후에도 사건의 시간 순서대로 인물들을 배치해서 하나의 큰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즉, 인터뷰를 모은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스토리가 읽히면서 집중이 되고 분산되는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한 명의 인터뷰마다 강렬한 이미지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들어 있고, 짧은 단편을 여러 개 읽는 것처럼 각각의 기승전결을 가진 스토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각각 인물들의 이야기 안에도 사건과 스토리가 존재하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다음 인터뷰를 읽으면 또한 전체 큰 스토리가 파악되고 따라가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형식인 것이다. 그렇기에 끝 부분에서 등장하는 가장 큰 피해자인 자연에 대한 언급에서는 뭉클함을 느꼈다.
 이 소설은 과거에 실제 좀비 전쟁이 있었던 것 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아마존 등에서 많은 호평을 받은 소설인데, 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비 전쟁이 일어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사례를 모은 느낌이었다. 지구의 좀비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주정거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핵잠수함을 타고 도피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히키코모리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그려냈다. 좀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에 대처하는 각국 인간들의 대응책들을 한 눈에 훑어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성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중국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장기 매매 등으로 퍼져 나가고 마침내 지구 전역에 퍼져서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일이 가능할 것 같았다. 또 인터뷰라는 형식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진술할 때마다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로 떠올랐다. 몰입이 잘 된 요인이었다.





▲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을 맡고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 2008)의 마크 포스터 감독이 촬영하는 [세계대전Z](World War Z, 2010)의 컨셉아트.

 이 소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와 브래드 피트가 영화 판권 경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브래드 피트가 영화화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극적인 사건들이 많고 괜찮은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이 다수 나오기 때문에 각색만 잘하면 정말 근사한 좀비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군대와 좀비들의 격전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고, 인간이 좀비가 되길 바라는 퀴즐링, 가짜 좀비 백신 이야기, 창 독트린, 끝까지 라디오 방송을 한 사람들, 심해를 걷는 좀비의 이미지, 차에 갇힌 채 좀비가 된 사람들까지 경악스런 장면이나, 인간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부분들이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결국 생존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책이 후일담이라는 사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이 좀비가 되어서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어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도 그럴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남는 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망에 맞서 끝내 승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희생하며 싸워나간 사람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가상의 이야기일지라도 큰 울림을 지닌 소설이었다. 소설부터 영화까지 많이 다룬 좀비라는 소재이지만, 이 책은 형식의 변화를 통해서 또 방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서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쉽게 다룰 엄두를 내지 않은 좀비 전쟁을 그려냈고 인터뷰 형식으로 현장감을 살리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고위층에 대한 풍자를 비롯해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그려낸 소설이었다. 좀비 소설이지만 이처럼 유머와 따스한 시선이 섞인 책이라 불쾌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좀비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다면 재미있는 소설로서 [세계대전Z]를 읽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좀비를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는 소설이다.





▲ 맥스 브룩스의 소설 [세계대전Z]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컨셉아트. 파라마운트에서 2010년 개봉 예정이다. 제작진은 “지금까지의 좀비 영화들은 좁은 공간 안에서 좀비에게 쫓기는 것을 소재로 했는데, 우리들은 이 영화에서 방대한 양의 좀비들이 물밀듯이 몰려드는 것을 촬영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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