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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2008년 1월



정원사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에 점점 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추세가 누그러질 것 같지는 않다. 언제부터 먹을 것에 관한 뉴스가 매일 뜨는 데 익숙해졌을까? 언제부터 이건 건강에 나쁘고, 저건 체중조절에 나쁘고, 그건 비윤리적이라는 말들을 주고받는 식사 풍경이 이상하지 않아졌을까? 오늘날 우리는 TV와 신문과 인터넷 포털을 통해 음식과 식품에 관한 뉴스를 계속 접한다. 당장 이 몇 달 사이에만도 채소값 급등, 구제역, 인근 바다의 방사능 오염,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큰 화제거리가 연이어 터졌다. 사람들은 ‘그래서 뭘 먹으라는 거냐 도대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래, 그게 문제다. 무엇을 먹느냐.

 물론 꼭 먹을 것의 안전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요새 세태가 아니라도 ‘무엇을 먹느냐’는 언제나 중요하고도 일상적인 문제였다. 특별한 뉴스가 없어도 우리는 매일, 매끼니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산다. 그리고 무엇을 먹느냐가 고민거리인 까닭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다처럼 대나무잎만 먹거나, 코알라처럼 유칼리투스 잎만 먹는 동물에게 ‘무엇을 먹느냐’가 문제가 될 리 없다. 먹거나, 죽거나일 뿐이다.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대부분 동물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잡식동물인 인간에게는 언제나 무엇을 먹느냐가 문제였고, 그래서 음식은 생각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선택지가 넓고 복잡해진 지금 시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잡식동물의 딜레마]다.


   ▲국가별 1일 칼로리 소비량 지도(2009년 5월 20일 기준). 색상은 명도가 높은 노란색부터 각각 순서대로 3,000칼로리 이상, 2,500~3,000칼로리, 2,000~2,500칼로리, 2,000칼로리 이하를 표시한다. 오만, 그린란드, 에리트리아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집계에서 제외되었다.
   (자료발췌 Atlas of World History, Patrick O’Brie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Concise edition (November 7, 2002))

 그러나 제목과 달리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저자 마이클 폴란이 초점을 맞추는 질문은 사실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아느냐'에 가깝다. 음식과 식품에 관해 그토록 많은 기사가 나오는데도 정작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범람하는 정보와 대조를 이루는 무지함, 그것이 지금 우리 음식 문화의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대단히 넓은 시각으로 조망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접근한다. "직접 찾아가보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이 접근은 크게 세 부분, 세 가지 여행으로 나뉜다. 처음에 저자는 음식사슬의 가장 거리가 멀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 잘 알지 못하게 짜여 있는 산업 형태의 농장과 축사에 찾아가본다. 그 다음에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유기농 산업과 유기농이 대규모화하면서 포기한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소규모 순환 농장을 경험한다. 마지막으로는 직접 숲과 들에서 사냥과 채집을 해서 요리해서 먹어보기에 도전한다. 패스트푸드의 극단에서부터 슬로푸드의 극단까지, 가장 산업적인 생산 풍경에서부터 가장 비산업적인 풍경까지 따라가는 여행이다.

 1장의 산업적 음식사슬에서 저자가 보고 그리는 풍경은 디스토피아 미래상을 능가한다. 번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마다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씨앗을 사야 하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 한 종류만으로 뒤덮인 드넓은 밭, 과다 생산되는 옥수수를 처리하기 위해 옥수수로 모든 가축용 사료를 만들어내는 사료제조공장,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좁은 공간에 모인 소들이 풀이 아닌 옥수수 사료를 먹으면서 억지로 살을 찌우고 있는 공장식 사육장에 대한 묘사를 읽어나가다 보면 입맛이 절로 떨어질 것이다. 코카콜라의 원래 성분이 100퍼센트 옥수수이고, 맥도날드에서 파는 치킨 너깃도 옥수수 함유율이 56퍼센트라는 데 이르면 확실히 SF의 세계는 이미 도래했구나 싶어진다.

 인간이 잡식동물이기 때문에 이런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고 하면 너무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셈이겠으나,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음식 문화는 고민의 범위를 좁혀주고 선택을 도와준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지역에서 그 전통 문화가 대부분 와해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처럼 전통이 약한 나라에서는 다른 논리가 음식 문화가 하던 역할을 상당 부분 빼앗아갔다. 어떤 음식이 가장 싸고, 효율적이고, 편리한가 하는 '산업' 논리가 한 축이고, 맛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안전' 논리가 다른 축이다. 정작 미국만큼 음식의 안전과 위생에 집착하는 나라에서 정작 이렇게 강력한 산업 논리가 식품 시장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니 얄궂기도 하다.

 물론 완전한 지배는 아니다. '안전' 논리도 죽지는 않았고, 그 점은 미국에서 유기농 산업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는가에서 증명된다. 저자가 두 번째로 찾아가는 곳이 바로 여기다.

 유기농 '산업'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을 내포한다. 본래 유기농은 산업형 농업의 대안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슈퍼마켓마다 친환경 코너가 생길 만큼 유기농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제는 유기농이나 무농약, 친환경이라는 딱지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때가 오고 말았다. 국가적인 유기농 표준이 산업의 논리에 영향을 받아 세워지면서, 때로는 훨씬 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친환경을 고수하고 있는 농장이 표준에서 벗어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두 번째 장인 전원적 음식사슬에서 산업화한 유기농의 장단점(그렇다, 당연히 유기농 산업은 모순이지만 완전히 사기는 아니다. 여기에는 단점도, 장점도 있다)과 이제는 유기농이라는 표현을 버리고 '지속가능'과 '로컬푸드'를 고수하고 있는 농부들을 다룬다.  

 저자가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일을 돕고 경험한 폴리페이스 농장의 뛰어난 순환성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농장은 전통적인 농업도, 산업적인 농업도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생산 체계를 보여준다. 숲과 풀밭,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서로의 생장을 돕는 모습이나 분명히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기는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삶을 누리는 동물들의 모습에 대해 읽다보면 현실도 아주 암울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이런 방식을 낭만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암울한 현실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농장에서 직접 닭을 잡는 방식에는 현대 도살장과 도축 방식의 보완 혹은 대안이 될 만한 암시가 담겨 있다. [도살장]이나 [육식의 종말], [동물 해방] 같은 책과 채식주의에 대한 논의로 확장해볼 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에 반대하거나 그런 선택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어떻게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 의도가 충분히 이해가 갈 뿐만 아니라 특히 한국에서 채식주의를 고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터에!), 16년을 채식주의자로 살다가 자기 손으로 닭을 죽여보고 나서 오히려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람의 예는 그야말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예 때문에 저자는 사냥을 해서 직접 동물을 잡아먹어보는 도전을 감행한다. 3장 수렵, 채집 음식사슬이다. 직접 사냥에 따라나서고 버섯을 채집하면서 저자가 겪은 사건들과 여러 상반된 감정에 대해서까지 요약하지는 않겠다. 완벽하게 투명한 생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낸 풍요롭고 아름다운 식탁은 그야말로 절정이다.

 여기까지의 요약 내용을 읽고 나면 패스트푸드에서 슬로푸드로 가는 배치가 이 책의 의도를 드러낸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나온 식사가 가장 이상적인 식사라고 말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음식은 "슬로푸드나 패스트푸드가 아닌 그냥 푸드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주목하라. 그는 어떤 명확하고 쉬운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의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저자는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려 한다. 여기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있다. 물론 맛깔스러운 글솜씨와 독창적인 접근 방식, 역사와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시야도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지만, 저자가 보이는 신중함과 균형감각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최근 육식주의/채식주의와 동물권리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추천 도서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그밖에 유전자조작식품이나 로컬 푸드, 슈퍼사이즈 같이 이 책에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간 주제들만 해도 몇 권씩 참고 도서를 찾아볼 수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그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없을 때, 무슨 책부터 봐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혹은 다른 정보들을 모으기 전에 큰 줄기를 세우려면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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