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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올리버 색스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pena (http://pena9.egloos.com)



잠깐 스쳐본 수다 사이트에서, 읽은 책을 세 글자로 요약해서 정의해보자는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정말 재치 있고 절절하고 엄지손가락이 절로 올라가는 요약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한 작가에 대한 요약이 아주 가슴에 와닿았더랬다. 작가 이름은 비밀로 하겠지만, 이 요약만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복불복.” 좋게 말하면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나쁘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작품들 사이에 기복이 너무 심해서 잘못 걸리면 그 책을 집어든 손을 원망하게 하는 그런 작가였던 것이다.
창작을 아는 입장에서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를 언제나 훌륭하게 쓰는 것이, 훌륭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재미와 질을 보장하는 것이 프로의 덕목일 것이나, 창작은 또한 유희의 영역에도 속하고 억지로 지어내지 못하는 측면도 많기 때문에 상당수가 복불복이기 쉽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가도 다시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할 수 있고, 여러 권의 저렴한(...) 소설을 쓰다가 뒤늦게 빛을 발하는 작가도 있다. 어떤 책과 이야기를 선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이름뿐이지만, 그것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소설 분야는 상대적으로 그런 면이 적다. 실화를 바탕으로 글을 쓰거나, 이론을 풀어서 이야기하는 비소설 작가들은 이름을 믿고 선택했을 때 소설에 비해서는 기복이 적고, 그러므로 작가 이름으로 추천하기도 안전하다.

올리버 색스도 바로 그렇게 ‘안전한’ 작가이다. 올리버 색스는 미국의 의사이자 신경학자로, 신경 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임상 사례를 묶어 펴낸 책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색스가 쓴 책은 상당히 여러 권이지만 한결같이 독자의 사랑을 받았는데, 다음과 같은 공통된 부분이  있어서라고 본다.

첫째로 올리버 색스가 실제로 관찰한 환자들의 증상이 참으로 기묘하고도 놀랍다. 올리버 색스는 색맹처럼 일반인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힘든 장애부터, 자폐증처럼 일반적인 인상과 속 내용이 많이 다른 병, 사고로 인해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이 몸 어느 곳에 장애가 생긴 사례 등 특징적이고 흥미로운 신경 장애 증상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고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올리버 색스는 이 병들의 증상과 원인이 아니라 환자와 그 주변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기에, 의학도 결국은 과학의 일종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에 증상과 원인이 필수로 등장한다. 그러나 거기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색스와 그 동료들은 병에 걸린 ‘인간’에 집중하며, 그가 병에 걸리기 전에 살던 삶, 병에 걸려, 또는 병과 만나 환자가 겪은 충격과 변화, 초기의 충격과 고통을 넘어서서 병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 첫째 이유에서 꼽은 기기묘묘한 환자들의 증상이 인간 몸속에 숨은 거대하고 복잡한 체계에 대한 경외감을 자아낸다면, 이러한 환자들의 삶에 대한 조명은 인간의 의지와 애정에 대한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셋째로 올리버 색스는 작가로서도 웬만한 문필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섬세하고 따뜻한 감수성과 문학적인 필력을 지녔다. 색스의 글은 물론 실화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환자를 애정 어리게 바라보는 세심한 관찰력과,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글솜씨 덕에 더욱 대중적으로 사랑받는다.

이 글에서는 [화성의 인류학자]를 중심으로, 앞뒤로 나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색맹의 섬]을 덧붙여 소개하려고 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 장애 환자 24명의 사례를 상실(무언가가 모자라서, 없어서 일어난 장애), 과잉(반대로 정상보다 과도하게 많아서 일어난 장애), 이행(정상에서 비정상을 왔다 갔다 하는 장애, 주로 환영과 환각), 단순함의 세계(지능이 낮지만 다른 부분이 풍부하게 발달한 백치천재들)라는 4가지 범주로 묶어서 소개하는 책이다.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 자기 몸이 없다고 생각하는 감각 장애, 언어에 담긴 감정은 이해하지만 단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장애, 한시도 가만있을 수 없는 과잉 행동 장애,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리는 변신, 더하기 빼기도 못하면서 몇 만 년에 걸친 달력을 외울 수 있는 자폐아 등, 조금 비인간적으로 이름 붙이자면 기인 박람회와도 같은 책이다.
위에서 말한 공통적인 부분이 모두 들어 있지만 24명이나 되는 사례를 다루다 보니 사례 모음집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부분이 약하고 약간은 기계적인 느낌이다. 여기서 소개할 3권 중에 가장 실화의 힘에 기댄, 달리 말하자면 작가로서의 색스는 가장 작은 책이다.

인상적인 부분: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중략)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이다.
- {큐피드 병} 중, pp. 205~206




화성의 인류학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거의 같은 소재에 같은 주제이지만 7명의 환자를 추려내어 각 환자와 증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다양한 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놓지 않고 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의지에 대해서 느끼게 된다면, 이 책에서는 그걸 넘어서 인간이라는 것, 정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조금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올리버 색스의 글 솜씨는 완숙한 경지를 넘어서 웬만한 소설가나 수필가보다 아름답다.

색맹이 된 화가 : 사고로 인해 갑자기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게 된 나이 든 화가의 이야기.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역겹게 느껴지는 것뿐만 아니라 생업인 화가를 할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히지만 점차 상황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 삶을 계속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의문: 색깔을 인지하는 주체는 어디인가? 색깔이 없는 세상, 색맹들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생겼는가? 색깔이란 절대적인 가치인가, 상대적인 가치인가?

마지막 히피: 뇌의 많은 부분을 잡아먹고 있던 종양 때문에 뇌의 많은 부분이 마비되어 언제나 평온하고, 자극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으며, 무엇보다도 특정 기간 이후로 최근의 기억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
의문: 뇌의 전두엽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뇌를 통해 과거의 한순간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도 미래와 변화는 의미가 있는가? 사람에게 삶은 순간인가, 과정인가?

투렛증후군 외과의사: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고, 불쑥불쑥 아무데나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며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하기도 하는 등 산만함의 극치를 보이는 투렛증후군을 앓으면서도 집중과 공부의 최고위 수준을 요구하는 외과의사가 된 사람의 이야기.
의문: 강박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극단적인 신경장애인 투렛증후군 환자라도 어떤 패턴 안에 들어가거나 몰입할 수 있는 순간에는 병세가 나타나지 않고 정체성마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거의 선천성 시각장애인으로 50년을 살던 사람이 수술을 통해 시력을 찾는다. 그러나 소경이 눈을 뜨고 광명을 찾는 것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고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
의문: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는 것은 얼마나 큰 훈련을 필요로 하는 과정인가? 감각기관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세상은 어떤 식으로 구축되는가? 감각기관의 손실이 곧 정체성과 고유성의 상실로 이어지며, 이는 또한 새로운 정체성과 감각의 계발로 이어진다. 정상인과 감각기관이 다른 사람들의 감각을 '불완전'하고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꿈에 그리는 풍경: 어렸을 때부터 시각적 기억력이 뛰어났고, 아주 좁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서로 긴밀한 공동체였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 마을이 파괴된 이후 외지를 떠돌던 중 아팠다 일어난 이후에 꿈에서나 깨어서나 고향 마을을 보게 된다. 너무나 세밀하고 정확하면서도 화가의 정서를 반영하는 이 환상 속에서 화가는 계속해서 고향을 그려댄다.
의문: 기억이란 무엇인가? 뇌에 저장되는 객관적인 정보인가, 자신이 무의식 중에 선택하여 남기고 버리고 편집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가? 기억과 현재는 양립할 수 없는가? 과거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

자폐증을 가진 천재 소년: 정상인의 기준으로 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언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지적 장애가 있지만 무엇이든 한번 본 것은 정확하게 기억해서 그려내는 천재 소년의 이야기.
의문: 자폐증과 천재성은 동전의 양면인가, 우연적인 한 쌍인가? 예술과 자아의 관계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백치예술가가 가능한가? 자폐증인 사람에게 외부세계는 자극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재능이란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현하고 꽃피는가?

화성의 인류학자: 고독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박사학위까지 따고 장애인과 동물들의 처우 개선에 정열적으로 매진하고 있는, 자폐증 환자로서 입지전적인 사람의 이야기.
의문: 자폐증 환자들은 사실 종이나 우주를 잘못 태어난 사람은 아닐까? 자폐증 환자들이 어려워하는 인간관계와 감정 능력이란 어떤 과정을 통해 습득하고 습득하지 못함을 판가름할 수 있나? 느낀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얼마나 다른가? 훈련으로 얻은 감정이나 사회생활은 진정한 것이 아닌가?

인상적인 부분:
인간은 비상한 기억력을 타고날 수는 있지만 기억하려는 습성을 타고나지는 않는다. 기억하려는 습성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사무치게 증오했거나 사랑했던 사람, 장소, 사건, 상황과 결별하여 인생에 변화가 생겼을 때에만 발현된다. 우리는 인생에 커다란 단절이 찾아왔을 때, 회상과 회상 너머의 신화인 예술을 통해 다리를 놓거나 화해하거나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성장 과정에서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거나 잃어버리고 추방자나 망명객 신세로 전락했을 때, 자라왔던 장소와 환경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깊은 단절감과 향수가 찾아온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과거에서 쫓겨난 망명객이지만 스스로 인류의 영원한 과거를 기억하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생각하는 프랑코로서는 이런 느낌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력, 그림 재능, 발작, 향수 등 프랑코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재능과 질병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감정과 동기도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과거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의 의미를 보존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문화적인 필요성 또한 그를 자극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프랑코의 작품은 망명의 소산이다. 프랑코의 작품뿐 아니라 인류의 예술과 신화는 상당수가 망명에서 비롯되었다.  에덴동산과 시온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성서의 중심을 이루는 신화이고, 모든 종교마다 이런 식의 신화가 있을 것이다. 상당히 변형된 형식의 향수와 망명이 제임스 조이스의 생애와 작품에 원동력이 되었다.  
- {꿈에 그리는 풍경} 중, pp. 248~249




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가 핀지랩과 괌 등 태평양의 섬에 가서 그 폐쇄적인 사회에서 보통 국가들보다 수십에서 수백배 빈도로 나타나는 신경질환과 그 환자들을 둘러싼 섬 생활을 보고 와서 쓴 책이다. 인구의 10%가 햇빛에 약하고 원시 또는 근시이며 색맹인 핀지랩 섬, 치매와 루게릭 병, 파킨슨 병을 섞어 놓은 듯한 리티코-보딕이란 병이 40대 이상 세대에서 광범위하게 발발하는 괌을 중심으로 폰페이, 로타, 미크로네시아 제도를 스케치한다.
색맹이 그저 색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눈의 특정세포가 없고 대신 막대세포로 시각을 감당하기 때문에 빛에 약하다는 것, 명도로 사물을 구분하기 때문에 색맹이 아닌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기도 한다는 것이 재미있고, 원인을 알 수 없이 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가거나 기억력이 확 떨어지는 병의 진행양상이 무시무시하면서도 그런 그들도 일정한 패턴, 즉 계단이나 체스나 음악처럼 지극히 일정한 패턴의 자극을 받으면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이 활동을 한다는 점이 경이롭다.
다른 책에 비해 두드러지는 점 첫 번째는 환자를 대하는 문화이다. 이 섬들은 워낙 폐쇄적인 사회인 데다 환자의 비율이 높다 보니 환자를 돌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환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아픈 것이 죄가 아니다. 올리버 색스의 특징이, 병이 그냥 병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임을 잊지 않는 거라고 한다면 여기에선 섬 전체, 사회 전체가 그런 분위기이다. 그래서 병에 걸린 사람이 참으로 많은데도 그것이 짐이 아니라 그저 일상일 뿐이다.
두 번째는 섬의 비극적인 역사와 현재를 통해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다. 온갖 침략과 발견(흥!)에 시달리면서 함께 들어온 무기와 병과 문화에 속수무책으로 녹아내리거나 격렬히 저항한 섬 사람들, 지금도 군대의 통제를 받아서 살벌한 분위기이며 전통적으로 조상이 묻힌 곳조차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적인 역사와 현재를 보면서 문명 사이의 접촉, 그걸 넘어서 사람과 사람, 그걸 넘어서 접촉 자체가 가지는 폭력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부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접촉으로 인해 변하고 나아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서로가 능동적인 입장이고 서로가 상대를 존중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전쟁과 침략으로 인한 사람과 생태계의 변화는 남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세 번째는 섬과 그 섬을 채운 식물들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생태계도 폐쇄적인 군도이기 때문에, 식물의 종류도 굉장히 제한적이고 한 식물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살아온 독특한 환경도 조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섬들에서 유난히 색맹과 리티코-보딕 병이 발병하는 이유를 식물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이런 원인 탐구 과정이 책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식물에 대한 저자의 묘사에서는 감탄이, 소위 모에가 뚝뚝 떨어져서 독자마저 빨아들일 기세이다.
마지막으로,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는 느슨함이다. 책 내용이 색스가 여행한 경로를 따라서 그대로 이어지며, 환자 각각의 사례에 집중하지 않고 색스가 묵은 숙소라든가 구경한 해안 같은 사소한 일화도 소개되어 있으므로,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 즉 여행 가고 싶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자료적 성격이 적지만, 느슨하고 따뜻하고 수다스러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상적인 부분:
필의 울분은 더 깊었다. 여기는 수메이의 옛 마을이 있던 곳이라고, 차로 기지 입구로 돌아갈 때 말해주었다. “괌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일본군이 괌을 공격한 첫날 이 마을이 폭격당했고, 마을 주민 전부가 쫓겨나거나 살해당했어요. 연합군이 들어오자 일본군은 저기 보이는 벼랑에 있는 동굴 속으로 퇴각했고, 그걸 몰아내자고 미군이 저 일대를 통째로 폭격해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죠. 저쪽 교회 건축물의 잔재와 묘지, 남은 건 저것뿐입니다. 우리 조부모님이 여기서 태어나셨어요.”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여기 묻히셨죠. 많은 사람이 여기에 조상을 묻었고, 그래서 묘지를 찾아 조상님을 정성스럽게 모시고 싶어합니다. 허나 그러려면 방금 보신 그 관료적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이런 모욕은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 {점령당한 낙원 수메이} 중, pp. 202~203



이 글에서 소개한 3권 외에도 [소생(대흥, 1991)], [인간의 기적(중앙 M&B, 1995)],[엉클 텅스텐(바다출판사, 200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소소, 2006)], [뮤지코필리아(알마, 2008)]가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절판된 책도 있고, 도서관에서는 구할 수 있는 책도 있고, 손쉽게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도 있다. 어떻게 구해서 읽든 올리버 색스의 글은 기대치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불복”에 대해서 한마디 더.
올리버 색스의 책은 복불복이 아니지만, 그의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복불복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와 난관으로 장애가 생기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인생이 참 그렇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의지란 위대해서, 복불복에 걸려도 똑같이, 혹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더라. 시절이 하 수상하니 나부터 더욱 의지를 다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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