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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항해술

어슐러 K. 르 귄, 김지현 옮김, 황금가지, 2010년 7월


pena (pena12@naver.com)



 세상에 글을 써야 할 일은 많기에, 또한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여 존재를 알리고 형태를 바꾸어 문화의 한 부분이 되는 일도 많기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굉장히 많은 사람이 골머리를 썩는 문제이다. 그러나 소설, 넓게는 책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취향상 어떻게 하다 보니 장르문학의 포로가 된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조금 다르게도 울린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향유하고 내보이고, 가능하면 그걸로 벌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즉 작가 지망생이 독자층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문학 팬덤이 이곳이 아닌가 싶다. 일반 소설 독자와 작가 지망생의 비율보다는 확실히 높을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숫자와 비율만의 문제가 아니라 팬덤의 성격 문제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냥 글을 잘 쓰기 위한 책과, 장르문학을 잘 쓰기 위한 책은 다를까? 작법서에는 문학을 전공하고 그 분야를 깊이 공부한 사람이 쓰는 책이 제일 많지만, 요새는 그 못지않게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연극과 영상매체로 옮길 글을 쓰기 위한 작법서도 많다. 이야기와 글의 기본법칙은 같을 테지만 그런 책들만 보고 장르문학을 쓸 수 있을까? 바꿔 말해서 장르문학 작가가 쓴 작법서를 읽으면 좀 더 나은 점이 있을까?
 이 글에서는 최근에 출간된 어슐러 르귄의 [글쓰기의 항해술]을 비롯하여 이전에 출간된 작법서 중 장르문학 작가가 쓴 책 5권을 모아놓고 이 책들이 과연 작법서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장르문학 작가가 썼기에 다르고 요긴한 요소가 있는지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 대상으로 삼은 작법서는 다음과 같다.



 딘 쿤츠,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How To Write Bestselling Fiction, 1981), 박승훈 옮김, 문학사상사, 1986, 1996
 아이작 아시모프, [과학소설 창작 백과](Gold, 1995), 김선형 옮김, 오멜라스, 2008
 어슐러 르귄, [글쓰기의 항해술](Steering The Craft, 1998), 김지현 옮김, 황금가지, 2010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2001), 김진준 옮김, 김영사, 2002
 오슨 스콧 카드,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How To Write Science Fiction & Fantasy, 2001), 송경아 옮김, 북하우스, 2007

 위에 열거한 순서는 원서 출간 시기에 따른 것이다. 모두 미국에서 글을 쓰고 작품을 낸 작가들로서 시기에 따라 시장과 장르의 상황이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괄: 작법서로서 얼마나 유용한가?

 일단은 각 책들의 특징을 개괄하겠다. 여기에서는 주로 책 전체의 짜임새와 그 책이 중점을 둔 부분이며, 그 책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나을지에 대한 추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각 작가의 약력이나 특징, 작가들이 쓴 자기 소설의 특징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겠다. 자기 글을 잘 쓰는 것과 글 쓰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글도 못 쓰는 작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듣고 싶진 않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이 5권을 쓴 작가들은 제각기 억 단위 판매부수를 자랑한다거나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거장들이다. 작가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비소설인 이 책들에서도 작가의 특징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달리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딘 쿤츠의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는 한 줄로 평하자면 ‘목차만 봐도 보배로운 꼼꼼한 작법서’이다. 작가로서 자기가 겪었던 경험에서 시작해서 선배로서의 조언, 플롯과 스토리, 집필 환경, 주인공, 인물, 시점, 작가가 빠질 수 있는 함정, 장르문학에서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짚어준다. 또한 이러한 조언들을 항목별로 작게 묶어서 각 항목마다 제목을 붙여두었기 때문에 일단 목차만 봐도 책의 반은 본 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다만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초판이 70년대에 개정판이 80년대 초인 점, 딘 쿤츠가 하는 조언이 철저히 그 시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실정이나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는 점, 그냥 작가가 아닌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하므로 접근이 다소 전투적인 점 등은 감안해야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 소설 창작 백과]는 사실상 작법서라고 하기 힘들다. 과학소설과 과학소설 쓰기에 관하여 다룬 내용이 책의 2/3를 차지하지만, 그 내용들이 칼럼에 가깝다. 원래 아시모프가 운영하는 잡지에 실은 글들을 모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시모프의 특징 같기도 하다. 본인이 쓰고 쓰고 또 쓰는 식으로 스스로 깨친 것들이 많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뭔가를 가르칠 게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구체적인 조언을 기대하지 않고 읽자면 그 자체로 재미있고 작가로서 자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만한 책이다.

 어슐러 르귄의 [글쓰기의 항해술]은 아시모프의 책과는 반대로 이 중 가장 교재다운 작법서이다. 그냥 객관적으로 봐도 글을 쓰고 연습하는 데에 모든 부분을 할애한 '교재'이다. 합평회에서 실제로 쓴 교재이자 혼자 보고 연습할 수도 있도록 마련한 책이니만큼 대단히 실용적이고 사용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토론 주제와 그에 따른 예시문, 그리고 명확한 과제와 그 과제를 모임에서 쓸 때의 요령, 쓴 뒤에 생각해볼 심화문제, 더 찾아보아도 좋을 예들이 있다. 다루는 주제 또한 단순히 문장에 리듬을 주기 위한 연습으로 시작해서 점점 단위를 늘려가면서 마지막에는 글의 초점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부록으로는 합평회의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특히 합평하기와 논평받기는 주옥 같은 말이 가득하다.
 아주 실용적인 책이지만 책의 사용방법을 꼭 합평회에서 사용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한하지 않았고, 작가의 작업 과정에 대해서 여유와 융통성과 다양성을 고려한 책이라는 점 또한 강점이다.
 다만 장르적인 특색은 없다시피 하다. 예시로 든 글은 대체로 19세기 영미 소설이고, 더 읽어볼 글을 일러줄 때에도 장르 작품은 많지 않다. 해설덩어리를 부숴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부분 외에는 SF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는다. 이 작법서는 철저히 영어를 다뤄서 글을, 그중에서도 서사문을 쓰는 이야기만 하고, 그 서사문 중 소설 중 하부 분야인 장르문학 이야기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거의 서사문의 기본적인 소양을 기르고 기술을 연습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작법에 대한 조언과 작가로서의 자기 이야기가 반 정도 섞여 있다. 특히 앞 부분과 뒷부분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이 책을 쓰다 말고 교통사고가 나서 인생의 일대전환기를 맞았을 때 다시 이 책을 씀으로써 삶의 낙을 되찾은 이야기를 해서 그 자체로 감동적인 에세이로 읽을 만하다. 글을 쓰는 실제적인 작법에 대해서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문장과 소설의 기본요소를 ‘연장’이라고 칭하며 그것을 잘 갈고 닦아야 함을 역설하긴 하지만 조언이 세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로서 생활하는 것, 혼자 하는 작업으로서, 또한 즐거움에 기반을 둔 작업으로서 작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유의할 것은 아시모프만 한 수위로 발언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도 염장 지르는 말이 많다는 것이다.

 오슨 스콧 카드의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는 원서 제목이 How To Write Science Fiction & Fantasy, 즉 SF와 판타지를 쓰는 법이니만큼 SF와 판타지에 특화한 작법서이다. 인물 성격 묘사와 시점에 대해서는 이미 별도의 책을 썼으며, 소설을 쓰기 위한 방법을 모두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사변소설을 쓰는 법’에만 집중하겠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그래서 SF와 판타지 장르를 경계 짓는 법, 세계를 구축하는 법, 이야기를 잘 시작해서 끝내는 방법, SF와 판타지 작가로서 데뷔하거나 습작하는 방법, 작가로서 사는 법 등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재미있고 특징적인 장은 세계의 창조를 다룬 2장이었는데, 하나의 소설을 착상해서 착상을 덧붙여가면서 설정을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도 소설처럼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유용한 것으로는 이야기 구축을 다루는 3장이 으뜸이다.
 전체적으로 딘 쿤츠의 것보다 훨씬 뒷세대이고 장르 작가이기 때문에 유용하면서도 실질적인 이야기가 많다. 미국의 사정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딘 쿤츠의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써먹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단편이 건강한 시장도 아니고 장르 잡지도 없으며 단편에 돈을 많이 주는 공모전도 없다. 선집이 그나마 약간 요새 조금 생기는 추세인 정도. 그러나 미국은 막강한 팬진과 문학상과 컨벤션과 작가협회가 있고 대행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그저 부럽게 바라보거나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장르의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할 때 모델 중 하나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작가든,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준다. 심지어 재정 관리에 관해서까지 조언한다. 압도적인 것은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러니 이 책을 덮고 작업으로 돌아가라.”

 실질적으로 교재를 하나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따라하고 싶다면 어슐러 르귄의 책을 추천한다. 압도적으로 실용적이다. 딘 쿤츠의 책 또한 이것저것 빠뜨리지 않고 가려운 곳을 세심하게 긁어주는 집요한 책이므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장르적 현실과 작가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오슨 스콧 카드와 스티븐 킹, 둘 중에서라면 오슨 스콧 카드의 책을 조금 더 추천한다. 오슨 스콧 카드의 책은 장르문학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제일이다.
 스티븐 킹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은 (연장론을 설파하는 스티븐 킹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에세이와 칼럼으로 보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러나 위에 밝힌 분류와 특징은 상대적이며, 어떤 책이든 다 가치가 있으며, 동시에 어떤 작법서도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이 다음에는 5권의 작법서에서 공통으로 다루는 주제들(이야기와 플롯, 작가의 삶, 장르문학 등) 에 대해서 이 작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비교해보고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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