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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아흐메드 사다위, 조영학 옮김, 더봄, 2018년 6월


9.11 테러 이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미국과의 전쟁으로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고 미군에게 점령당한 상태다.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불안하고 혼란스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사는 폐품업자 하디는 폭발로 조각난 인간의 신체 부위를 모아서 시체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폭발에 휘말려 다친 채 겨우 집으로 돌아온 하디는 시체가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그 폭발로 목숨을 잃은 호텔 경비원의 영혼이 산산조각나 사라진 자신의 육체를 찾아다니다 하디가 조립한 시체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어 깨어났기 때문이다.

살아난 시체는 대범하고 엽기적인 살인 범죄를 저질러 명성을 얻는다. 그를 추종하여 돌봐주는 이들도 생길 정도로. 총에 맞아도 죽지 않으며 시신의 일부를 가져가는 그를 언론에서는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제목과 위의 줄거리 소개를 보면 『프랑켄슈타인』의 기본 아이디어를 차용한 소설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단순한 패러디나 오마주를 넘어 이 소설만의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주는 요인은 바로 제목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무대 바그다드다.

시대 배경을 2005년으로 둔 소설 속의 바그다드는 영미권 장르소설에 익숙해진 필자와 같은 독자에게 이세계처럼 독특하고 이질적으로 느끼질 것이다. 디지털 녹음기와 마법사, 점성술사가 공존하는 이 도시에는 시체를 기워 만든 괴물이 활보한다 해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이러한 독특한 분위기가 아랍권을 넘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남미에 뒤지지 않는 아랍의 매직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매일 같이 폭탄 테러가 터지고 컴퓨터와 마법사가 공존하는,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아랍 도시에서 펼쳐진 기괴한 이 모험담은 공포소설이고 환상소설이며 세태풍자소설이고 사회파소설이기도 하다.

이런 무대에 어울리는 인물 역시 소설의 매력을 더해주는데, 짧은 분량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아서 조금 혼란스럽지만 모두들 저마다의 고민과 목적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움직이며 사건을 만들어낸다. 정의롭거나 고결한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결함이 있고 어리석으며 이기적이고 문제투성이다. 살기 위해서는 자기 육체를 보수해야 하기에 타인의 신체부위를 취할 때, 범죄자의 신체를 거부하는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이 개중에 제일 철학적인 인물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지만 살인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사악한 괴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비록 이런 군상들의 행보가 마지막에 정교하게 맞물리는 세련된 스릴러 소설은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란스럽긴 하지만, 블랙유머로 점철된 음울한 전쟁터 같은 도시의 초상에 걸맞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혼돈의 소용돌이’라 할 수 있고,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댄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 대로, 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훑으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각 등장인물의 상황은 처절하고 비극적이다.

이러한 극적인 대비는 실제 바그다드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으며, 소설에서 그려지는 현실과 비현실이 섞인 아랍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바로 실제 바그다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희극의 가면을 씌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술했듯 장르소설에서 기대하는 복선의 회수, 뚜렷한 플롯, 수수께끼의 명쾌한 해명, 확실한 결말 같은 요소를 거의 얻어낼 수 없음은 유의해야 한다. 그런 기대는 애초에 버리고 낯설고 독특한 개성에 빠져든다면 만족스러운 독서 체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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