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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 수태고지 - 감동란

2023.09.15 00:0009.15

수태고지

감동란

 

 직선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고 한산했다. 선욱은 라디오를 끄고 조용히 울리는 바퀴와 아스팔트의 마찰음을 느끼며 운전했다. 고속도로는 이 나라의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처럼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욱은 서울에서 대전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했다. 그동안 이동한 경로를 보여주는 선욱의 지도 앱에는 수많은 직선들이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선욱은 지난 3년간 산부인과협회의 요청으로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왕진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집을 서울에 둔 채로 선욱은 지방 소도시의 산부인과 병원이 없는 곳에 있는 산모들을 검진해주고 출산을 도왔다.

 선욱은 왕진의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부의 복지정책에 의해 협회에서는 왕진의로 활동할 젊은 산부인과 의사가 필요했고, 때마침 전문의 자격증을 딴 젊은 의사가 선욱이었기 때문에 하게 된 일이었다. 그동안 돈은 돈 대로 못 벌고 자리잡을 시간도 늦춰진다는 생각이 맴돌아 선욱은 이 일을 영 내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산모를 대충 대하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불만이 있긴 했어도 선욱은 나름 자신을 사명감 있는 의사라고 생각했고, 산부인과도 그래서 선택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 산모가 마지막이다. 협회에 3년을 채웠으니 보조금 받는 왕진의 생활을 그만두고 개업을 하려고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협회에서도 승인했다. 대신 다음 왕진의를 구해야 하니 이번 산모 까지만 출산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선욱은 약간의 불평을 하고 받아들였다.

 선욱은 잠깐 갓길에 차를 세워 두고 산모 왕진차트를 확인했다.

 

 ‘이름: 최소정, 왕진요청사유: 하반신마비’

 

 하반신마비. 선욱은 출산시에 구급차를 부르는 방법밖에 없으니 더 주의해서 검진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선욱은 불안감과 근심을 안고 쭉 뻗은 고속도로 차선으로 다시 진입했다. 지도 앱의 화면에서 도로 위의 점이었던 자동차는 다시 긴 선을 그었다.

 

 “왜 저 그림이 그렇게 좋으세요?” 선욱은 진료를 마치고 소정에게 물었다.

 “찾아오잖아요. 천사가. 내가 가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오니까요.” 소정은 자신의 예술취향을 드러냈다는 것이 약간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정이 사는 전형적인 낡은 시골집의 거실 벽에는 다 빈치의 수태고지가 걸려있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이미지를 A4용지에 조악하게 프린트해 해상도가 낮았다. 그 마저도 고양이가 모서리를 물어뜯어 약간 구겨져 있었다. 작은 거실에 작은 방 하나가 딸린 소정의 작은 집은 최소한의 가구만 있었고 점박이 벽지의 색깔 때문에 누런 빛을 띄었다. 벽 하나를 다 채우는 옷장 하나와 고양이 밥그릇이 눈에 보이는 거의 전부였다. 소정은 텔레비전의 교양프로그램에서 수태고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저한테는 너무 아름다운 장면처럼 보여요. 천사 가브리엘이 내려와서 마리아에게 임신했음을 알리는 장면이요. 말 그대로 수태를 고지할 뿐인 장면인데도요. 그동안 아무도 제가 임신한 걸 인정해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요즘은 임신 테스트기가 수태를 고지하죠. 좀 아쉬우셨겠어요. 천사가 아니라서.” 선욱은 농담을 하고 나서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플라스틱 조각이라도 저에게 알려줘서 다행이죠. 모르고 있다가 혼자 아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소정은 조금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선욱은 대화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가족에 대해 물었다.

 “남편분은 잠깐 나가셨나요? 함께 계실 때 주의사항이라던지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요.”

 “남편은 없어요. 이혼했… 아니 애초에 결혼도 안했거든요. 남자친구였는데 임신했을 때 헤어졌어요.”

 선욱은 이번에는 정말로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어… 그럼 임신 초기 주의사항이랑 처방 말씀드릴 게요. 죄송합니다. 괜한 말을 해서...”

 “아뇨. 저 사실… 낙태… 고민하고 있어요.”

 선욱은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 네 가능합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났으니 임신 초기에 한해서는 임산부의 의지로 낙태가 가능해요.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키울 자신이 없어서요… 저는 다리가 이래서 아이 학교는 당연하고 어린이집도 못 데려다 줄 거예요. 아무도 제 임신을 인정해주지도 않았고요.”

 “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 조금만 더 생각해보세요. 일단 주의사항이랑 처방 설명 드릴게요.”

 선욱은 소정에게 임신 초기 주의사항과 처방한 입덧 방지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럼 다음주에 오시나요?” 소정이 물었다.

 “네 그때 오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고 계세요. 임신 중에도 운동을 하는 게 산모에게 도움이 됩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시고 움직이시고 하시면 좋아요.”

 선욱은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으면서 문 앞에 세워진 휠체어를 보고 자신이 또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아찔했다.

 ‘말실수를 너무 많이 했네. 다음에 올 때는 뭐라도 사가지고 와야겠다.’

 선욱은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신발장이 있는 중문 밖으로 나섰다. 현관문을 열자 뭔가 물컹한 것이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또리야! 안돼! 어디가!” 소정이 소리쳤다.

 선욱이 나가려고 현관문을 연 사이 소정의 고양이가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보였다. 선욱은 뛰어나가 또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흰색 바탕에 검정색 점 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날쌔게 뛰어 동네의 콘크리트로 포장된 내리막길을 내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찾아올게요.” 선욱은 어쩔 줄 모르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소정에게 사과했다.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으니까 빨리 찾아봐요. 저도 나갈게요.” 소정은 양 팔로 자신을 지탱해 움직이면서 현관에 있는 휠체어를 다급하게 폈다.

 “저 좀 들어서 앉혀 주실래요?”

 선욱은 소정을 들어 휠체어에 앉히고 뒤로 가 휠체어 손잡이를 밀어 밖으로 나갔다. 선욱과 소정은 문 앞의 세 칸 계단을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놓은 나무판자를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멀리는 안 갔으면 좋겠는데… 큰 도로 쪽으로 나가면 위험해요.” 소정이 말했다.

 “일단 동네부터 찾아봐요. 죄송합니다. 괜히 그 때 문을 열어서…”

 “괜찮다니까요. 금방 찾을 거예요. 겁이 없어서 구석에 숨어있지는 않을거예요.” 오히려 소정이 선욱을 위로하고 있었다.

 선욱은 소정이 탄 휠체어를 밀고 동네 여기저기를 찾아봤지만 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소정이 사는 동네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바닥이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턱이 없어 휠체어가 오갈 수 있었다. 소정은 집을 구할 때 그 이유로 일부러 이 동네를 골랐다고 했다. 문제는 또리가 큰 길의 차도 쪽으로 나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동네에서는 주민들에게 수소문하고 구석구석을 뒤져도 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떡하죠. 아무래도 큰 길가로 나간 것 같아요. 제가 가서 찾아볼게요. 소정씨는 안에 들어가 계세요.” 선욱은 급한 말투로 말했다.

 “왜요? 제 고양인데 제가 찾아야 되잖아요. 가요.”

 “그래도 몸이 불편하시잖아요. 제가 뛰어다니면서 빨리 찾아볼게요.”

 “몸이 불편하면 자기 가족이 집을 나가도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집에 앉아있어야 되나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해요.”

 “됐어요. 빨리 찾아봐요. 저도 휠체어로 다닐 수 있어요. 그러라고 있는 건데요.”

 소정과 선욱은 큰 길가로 나갔다. 소정은 선욱에게 자신 있게 말하기는 했지만 내심 두려웠다. 도로에는 버스와 보행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빠르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좁은 인도에는 온갖 상점의 입간판들과 행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소정의 휠체어가 지나갈 틈이 거의 없어 보였다. 소정에게는 15센티미터 남짓의 연석도 높게 느껴졌다. 소정의 동네는 대부분 평지에 턱이 없는 곳이었지만 동네 밖의 세상은 온통 소정에게 장애물투성이였다. 상점들이 호객을 위해 인도 쪽으로 열어 둔 유리문은 좁은 인도를 더욱 좁게 만들었고, 저 멀리서 자전거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기만 해도 소정은 어느 방향으로 휠체어를 돌려 비켜야 할지에 온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고양이를 찾기 위해 마음껏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복잡했고, 선욱은 거리에 대해서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선욱과 소정은 좁은 거리의 입간판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간신히 앞으로 나아갔다. 10미터를 갈 때도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상인들에게 흰 바탕에 검은 점 무늬가 있는 고양이를 봤냐고 물으며 세 블록 정도를 오니 선욱과 소정은 진이 다 빠질 수밖에 없었다.

 “소정씨, 평소에도 이런 길로 다녀요?”

 “네. 힘들긴 한데 받아들여야죠. 큰 길로 자주는 안 나와서 괜찮아요. 오늘은 또리도 찾아야 하니 좀 더 힘들긴 하네요. 좀 더 찾아봐요. 조금만 더 가면 8차선 도로가 나와요. 차가 많이 다녀서 그 도로는 못 넘어갈 거예요. 그 도로에 있는 육교까지만 찾아봐요.”

 둘은 근처의 온 구석들을 뒤지며 또리를 찾아다녔다. 자전거를 피하고 연석을 오르고 길을 건너고 다시 자전거를 피했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서 어디에 있을지 모를 또리를 찾느라 소정과 선욱의 윗옷은 온통 땀에 젖었다. 선욱은 휠체어 손잡이를 쥔 손이 땀에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이제 겨우 공기가 조금 시원해졌다고 느꼈을 때쯤, 두 사람은 8차선 도로의 양 옆을 잇는 육교에 다다랐다. 점심쯤부터 저녁까지 또리를 찾아 헤맸지만 성과가 없었다. 흰 바탕에 검정 무늬 고양이를 봤다는 상인이 한 두 명 있었지만 그들이 알려준 골목에는 또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답답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육교 위로 올라갔다. 휠체어를 미는 선욱과 휠체어 바퀴를 돌리는 소정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

 “제가 끝까지 찾을게요. 소정씨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정씨 말 대로 너무 멀리는 안 갔을 거예요.” 선욱은 소정을 위로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이것도 받아들여야 할까요?” 소정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욱은 놀라 대답했다.

 “또리가 그냥 집을 나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해서요.”

 “네? 절대 아니죠. 소정씨가 가족이라고 했잖아요. 가족이 집을 나가는 건 받아들이면 안 되잖아요. 이건 받아들일 일이 아니에요.” 선욱은 육교 한 가운데에서 소정을 바라보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 아래에는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어두워져 가는 도로에 붉은 선을 긋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선들 위에 선 점처럼 서서 대화했다.

 “어쩌면… 또리는 집을 나가게 됐을 운명일지도 모르잖아요.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 일어난 걸지도 모르는 거니까. 제가 사고를 당해서 휠체어를 타게 된 것도… 힘들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요. 이것도 그런 운명 중에 하나일지 모르잖아요.”

 “아니에요, 소정씨.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이건 운명이 아니라 하필 그 때 문을 연 제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예요. 또리는 그냥 문이 열려서 나간 거고요. 책임은 저한테만 있어요. 제가 일으킨 사고니까 제가 수습할게요. 약속해요. 또리 반드시 찾아줄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그럼 이건 안 받아들이는 걸로 할게요.” 소정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선욱씨 바쁘신데 이제 가보세요. 저녁엔 거리에 사람이 적어서 혼자 갈 수 있어요.” 소정은 선욱을 보내고 육교를 내려왔다.

 소정은 혹시나 또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하루종일 힘겹게 돌아다녔던 그 길들을 다시 바라봤지만 까맣게 때가 탄 길고양이들만 있을 뿐 또리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은 사람이 많지 않아 올 때보다 수월했다. 소정은 오늘 밤은, 어쩌면 내일 밤도 또리가 없이 혼자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울적해졌다. 자신이 유일하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또리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어쩌면 또리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때 길 건너편의 가로수 사이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주제로 보는 서양미술사: 수태고지전, 8월 1일 – 8월 31일. 한점미술관’

 

 복사본이기는 했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집주인이 빌려준 작은 tv에서 나오는 교양프로그램 화면으로만 봤던 수태고지였다. 오늘은 8월 30일이다. 전시는 내일 까지다. 횡단보도의 불이 파란불로 바뀌었지만 소정은 혹시 놓친 정보가 있을까 그 현수막을 꼼꼼히 읽느라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선욱은 소정이 사는 시로 차를 운전했다. 출발하기 전 소정에게 받은 또리의 사진을 넣은 종이를 프린트하느라 하루종일 인쇄소를 뛰어다녔다. 포스터 상단에는 ‘고양이를 찾습니다’ 라는 글귀가 크게 적혀 있고 그 아래에 소정이 찍어 뒀던 또리의 사진과 선욱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선욱은 소정의 동네를 뛰어다니며 전봇대마다 그 포스터를 붙이고 상인들에게 포스터를 나눠줬다. 자신의 잘못이었지만 평소라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찾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욱은 이번에는 소정의 고양이를 꼭 찾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시각 소정은 집을 나서기 위해 옷을 차려 입고 휠체어 위에 탔다. 그토록 바라던 수태고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소정은 보고싶었던 그림을 보는 것으로 또리의 실종으로 우울해진 마음이 달래지기를 바랬다.

 ‘수태고지전, 한점미술관’. 소정은 어제 봤던 현수막의 글귀를 머릿속에 다시 되뇌었다. 한점미술관을 검색하기 위해 지도 앱을 켜자 그간의 경로에는 직선이 없고 소정의 집 주변에 있는 점만이 있었다. 소정은 한점미술관을 검색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한 뒤 아홉 정거장을 가야 했다. 지도 앱에는 예상되는 소요시간이 1시간이라고 나왔다. 소정은 2시간 반으로 받아들였다. 쉽지 않은 길일 것이 예상되어 소정은 한숨을 푹 쉬고 문을 나섰다.

 소정은 큰 길가의 버스정류장 옆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가 왔지만 소정은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타지 않고 보냈다. 버스 두 대를 보내고 나서야 저상버스가 왔다. 소정은 뒷문 쪽에서 버스기사가 뒷문의 발판을 내려주기를 기다렸지만 소정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버스가 출발했다.

 “기사님! 뒤에 발판 좀 내려주세요!”

 소정이 더 크게 외치자 겨우 소리를 들은 버스기사가 멈춰 발판을 내렸다. 소정은 휠체어를 밀고 힘겹게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님 휠체어자리 의자 좀 접어주실래요?” 소정이 말했다.

 버스기사는 약간 귀찮은 듯이 운전석에서 나와 뒷문 옆의 의자를 접어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는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기사님 죄송합니다.” 소정은 버스를 탈 때마다 괜한 일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죄송하다는 말이 버릇처럼 입에 배었다.

 휠체어를 고정장치로 버스에 고정했지만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휠체어가 어긋나지 않게 손잡이를 세게 잡아야 했다.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선들이 보였다. 각자의 집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도서관으로, 도서관에서 카페로, 가끔은 휴양지로. 사람들은 저마다 수많은 선들을 연결하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출발하고 도착하면서 살고 있다. 소정은 문득 자신만 이 세상에서 점으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장애를 탓하지 않기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소정은 또리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우울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그래도 오늘은 달랐다. 그토록 바라던 수태고지를 볼 수 있다. 오늘만큼은 소정에게도 하나의 선을 긋는 것이 허락되는 날이다.

 소정은 버스에서 내릴 정거장이 하나 남았을 때 미리 기사에게 말해야 했다. 지하철역 근처의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기사는 소정의 휠체어 고정장치를 풀어주고 버스 뒷문의 발판을 내려주었다. 소정은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후련한 마음을 느꼈다.

 다음은 지하철을 타야했다. 지하철역 아래로 휠체어가 내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지하철을 두 세대 정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정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그 사람들은 몸의 어느 곳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지하철 아래로 내려갔다. 오른쪽의 휠체어용 개찰구를 통과해 지하철을 탔다. 소정은 임산부석 쪽으로 가야 할지 노약자석 쪽으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사람이 적은 노약자석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홉 정거장만 가면 수태고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소정은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지하철 창문으로 지나가는 역 안의 풍경이 한 폭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다 빈치, 보티첼리, 안젤리코, 베첼리노, 그리고 카라바조의 수태고지가 지하철 창문의 프레임을 통해 눈 앞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중세, 근대의 수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라는 하나의 종교적 주제를 가지고 자신들의 그림들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서 소정은 (비록 복사본이기는 했지만) 꿈에 그리던 수많은 그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다시 한참을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점미술관은 지하철역 출구에서 약간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다.

 소정은 힘겹게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미술관 근처에는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한점미술관’이라고 써 있는 입구 간판이 보였다. 한여름의 더위에 땀이 비 오듯 났지만 참을 수 있었다. 소정은 입구에 있는 계단 한 칸 높이의 작은 턱을 발견했다.

 ‘돌아서 갈 수 있는 경사로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소정은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소정은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경사로가 없었다. 미술관 입구의 턱은 빗물 배수 겸 외관을 위해 유려하게 포장된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다. 그러나 소정에게는 외관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외관을 생각할 시간에 휠체어 하나 지나갈만한 경사로를 만들었어야 했다.

 ‘어떡하지, 이대로 돌아가면 정말 눈물 날 것 같은데’ 소정은 땀으로 흠뻑 젖어 미끄러지는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려 이리저리 경사로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때 차량 검색대에 있는 ‘관리인 호출’ 버튼이 보였다. 소정은 달려가듯이 휠체어를 밀어 버튼을 눌렀다. 너무 가속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버튼 누르셨어요? 무슨 일이세요?” 경비원이 나와 물었다.

 “제가 휠체어 타고 있어서요, 이 턱 넘어가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드디어 경비원의 도움으로 소정은 턱을 넘어 미술관 건물로 향할 수 있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 층이라뇨? 거기다 엘리베이터가 없다고요? 그런 말은 광고 현수막에 안 써 있었는데…”

 “저희 미술관의 일 층은 로비로 쓰이는 공간이고요, 초청작품들이 전시되는 공간은 이 층에 있습니다… 죄송해서 어쩌죠…”

 “엘리베이터, 엘리이터는요? 왜 없어요?”

 “저희 미술관은 설계단계부터 유명 설계사분의 디자인 철학이 있어서 엘리베이터는 따로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위로가 안되시겠지만, 수태고지전 다음 전시가 도쿄에서 열립니다. 그 미술관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접근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요. 가능하시다면 그때를 이용해주시는게…”

 도쿄. 도쿄라고 했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를 나오기도 이렇게 힘든데 도쿄라니… 소정은 애먼 미술관 소개책자만 들여다보며 고개를 떨궜다.

 

 

 소정은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오랫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장애인 복지관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남자였다. 소정은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그 남자는 소정에게 필요한 것들을 갖다 주었다. 그러다 사귀게 됐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 남자는 소정이 좋다고 했고 소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남자가 좋아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소정은 받아들였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남자는 멀끔하게 차려 입은 대학생이었고, 소정에게 잘해줬다. 장애인 복지관에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더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남자가 과제 때문에 바쁘다고 핑계를 댈 때도, 과 모임으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느라 소정에게 못 간다고 말해도, 소정은 받아들였다. 그렇게 가끔 만나며 지내다 보면 그 남자의 시험기간이 됐고, 몇 번을 만나고, 또 다시 과 모임을 하고, 다시 시험기간이 됐다. 소정은 그래도 그렇게 그 남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자신에게 이런 천사 같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을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그 남자가 손을 잡는 것도, 입을 맞추는 것도, 잠깐 자기 집에서 영화를 보자고 했을 때도 받아들였다. 소정은 자신의 뒤에서 조용히 휠체어를 밀고 같이 걸어주는 사람은 그 남자 말고는 없을 거라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2층 식당을 검색해서 예약해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신 테스트기가 자신에게 수태를 고지했을 때, 그 남자도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너 임신한 거 맞다고, 은총을 받은 거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러나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와 사라지지 않는 메신저의 1만 남기고 떠났다. 그 끔찍한 침묵이 그 남자가 소정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때만해도 소정은 엄마와 이모와 같이 살았다. 소정이 그들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줬을 때도 그들은 소정에게 수태를 고지해주지 않았다.

 “너 임신했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엄마가 너 하나 책임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렇게 네 맘대로 임신하면 어쩌자는거야? 너 키울 자신이나 있어? 다리 멀쩡한 사람도 애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아!” 엄마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다. 먼저 임신했음을 인정해 주었어야 했다. 소정은 엄마마저 자신의 임신을 부정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소정은 이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선욱은 다시 소정의 집으로 왔다. 소정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 보였다. 수태고지를 프린트한 종이가 걸려있던 벽에는 점박이 무늬 벽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리 찾는 포스터는 제가 여기저기 붙여 놓고 수소문도 해 놨어요. 금방 연락이 올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정씨.”

 “네…” 소정은 힘 없이 대답했다.

 “그동안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별 일 없으셨어요?”

 “수태고지 전시회가 있었는데 못 봤어요.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는데… 정말 보고싶었는데... 다음 전시는 도쿄에서 한대요. 난 버스랑 지하철 타는 것도 너무 힘든데 못 가겠죠. 이제 또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전 항상 왜 이럴까요? 사고로 생긴 하반신 마비도, 예상 못했던 임신도, 또리의 가출도… 전부 받아들이고 살았는데 왜 자꾸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요? 그깟 그림 하나 보겠다는 건데 그것도 저한테는 허락이 안 되나 봐요. 이것도 다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요? 아이까지 낳고 나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죠? 저 혼자서도 이렇게 힘든데… 아무도 제 임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데 제가 이 아이를 낳는 게 맞을까요?” 소정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선욱은 차마 소정에게 해줄 말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함부로 한 조언이 소정에게 주제넘는 낙관처럼 들릴까 하는 걱정에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저는 지금까지 힘든 일들이 있어도 다 받아들였어요. 그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전부 받아들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이 아이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요. 아니, 저 애초에 임신한 건 맞나요? 왜 플라스틱 쪼가리 말고는 아무도 저에게 말해주지 않죠…? 저 이 임신 그만두는 게 맞을까요…?”

 “소정씨…” 선욱은 무슨 말을 하려다 괜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기를 머릿속에서 여러 번 반복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의학 외적인 이유로 임산부에게 낙태를 권유하기도, 출산을 권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정씨 임신하셨어요.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되시겠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네요. 임신하신 거 맞아요. 아기가 소정씨에게 찾아온 거라고요. 조금 옛날 식으로 말하면, ‘축복을 받은 이여, 두려워하지 말아요’ 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상황도, 사람도… 아무도 소정씨 임신을 인정 안 해준다면, 제가 해드릴 게요. 소정씨 임신하셨어요.”

 소정은 선욱의 말을 듣고 조금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선욱은 소정의 집을 나와 서울로 돌아가면서 소정에 대해 생각했다. 소정을 도와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은 오늘의 대화 이후 더욱 선명해졌다. 선욱은 이것이 의사로서 자신의 환자에게 느껴도 되는 감정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웠다. 작은 위로라도 건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도저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늘처럼 수태를 고지해주는 일이 전부일 것이다. 선욱은 뭔가를 더 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에 힘들어하는 소정에게 의사로서 해야 하는 것 이상의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소정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넘기 어려운 턱을 넘어서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선욱의 차는 선욱의 고민이 길게 늘어진 듯 비 오는 고속도로 위에 긴 선을 그으며 달렸다.

 

 

 다음날 아침 선욱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선욱은 잠에서 겨우 깨어나 휴대전화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와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선욱은 모르는 번호로 아침 일찍부터 온 전화를 무시할까 하다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짧은 대화 후 선욱은 바늘에 찔린 듯 침대에서 튀어나왔다. 대충 아무 옷이나 입었다. 그러고는 아침도 먹지 않고 곧바로 주차장으로 뛰어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선욱은 소정의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 긴장감과 환희의 감정이 뒤섞여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고속도로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이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선욱의 차는 소정의 집으로 밝은 선을 그리며 곧장 달렸다.

 

 “어디 있다고요? 지금도 거기 있나요?”

 “네 선유아파트 주차장 구석진 곳 박스 안에 있어요. 101동쪽이요. 누가 박스를 놔줬더라고요. 새끼들도 있으니 아직 거기 있을거예요.”

 “감사합니다. 사례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아뇨, 괜찮아요. 안 받을게요. 딴데 갈 수도 있으니까 빨리 가서 찾아보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욱의 차는 제보자가 알려준 아파트 주차장으로 곧장 들어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건물 구석에 있는 박스를 찾아다녔다. 드디어 찾은 박스 안에는 흰 바탕에 검정무늬가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또리였다. 또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대략 6마리 정도 되는 흰색, 검정색이 섞인 새끼 고양이들이 또리의 배에 파묻혀 있었다. 선욱은 새끼들이 빠져나오지 않게 박스를 조심스럽게 들어 차에 싣고 소정의 집으로 향했다.

 

 “또리야! 새끼도 낳았구나!” 소정이 급하게 현관문까지 나와 또리를 안았다.

 “어떤 제보자분이 전화해 주셨어요. 근처 아파트 구석에 있는 박스에서 새끼를 낳았더라고요. 새끼도 있어서 빨리 찾아야 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선욱씨 정말 고마워요… 또리 찾느라 많이 도와주셔서… 그리고…”

 “아니에요. 제 실수로 잃어버렸던 건데요.”

 소정은 돌아온 또리를 보며 잃어버렸던 희망을 얻은 것 같았다. 새끼들을 핥아주고 있는 또리를 보며 마음 속에 다시 온화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단 또리가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번 만남에서 선욱이 소정의 임신을 인정해줬을 때 이후로 소정은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임신을 인정해준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소정씨 앞으로 어떻게 할 지는 생각 해 보셨어요?”

 “…” 소정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산책하러 가요. 가면서 얘기해요.” 선욱은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저 좀 태워주세요.”

 선욱은 소정을 안아 휠체어 위에 앉혀준 뒤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섰다. 비가 갠 뒤의 청량한 하늘의 구름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두 사람은 조용히 걸었다. 선욱은 그저 천천히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갔고 소정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눈 앞에 또리를 찾기 위해 올라갔던 육교가 보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육교의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다.

 “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정이 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네?”

 “저 아기 낳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욱씨가 인정해줬잖아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선욱씨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저 선욱씨 좋아해요. 이런 말 부담스러울 거란 거 알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요. 이제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을래요. 선욱씨랑 같이 있고 싶어요. 날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줬잖아요. 미안해요. 갑자기 이런 말 해서…”

 “아니요,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저도 좋아요.”

 또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육교 위에 다시 섰다. 지나가는 차들이 만드는 선 위에 또다시 두 사람은 점으로 남아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저물고 있었다.

 “한 번 더 해 줄게요.” 선욱이 말했다.

 “네? 뭘요?”

 “수태고지 말이에요. 소정씨는 이제야 임신한 거예요. 받아들였잖아요. 소정씨를 인정해준 건 나니까, 이제 제 아이라고 생각할게요. 우리 같이 도쿄로 가요. 거기서 수태고지전 다시 열리잖아요. 그림 보러 가요.”

 “...”

 머리 위로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도로 위에는 비스듬한 해가 비추는 육교 아래로 두 사람의 겹쳐진 그림자가 가만히 서서 대화하고 있었다. 선욱의 뒤로 떠 있는 해가 선욱의 주위로 후광을 만들었다. 선욱의 얼굴은 검게 그림자 져 보이지 않았다.

 

“소정씨, 당신은 임신했어요. 다시, ‘은총을 받은 이여, 두려워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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