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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치는 밤과 정전기에 대하여

박낙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으로 태어난 게 잘못 같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부러워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아니, 사실 자주 부러워했다. 근심 걱정 같은 게 없어 보였다. 먹고 자기만 하면 되니까.

근심과 걱정과 고민과 그로 인한 좌절로 삼십삼 년을 보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우울증과 그로 인한 끝 모를 무기력감뿐이다. 친구 중 누군가는 벌써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도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나와 같은 선상에 있는 건 아니었다. 나에 비하면 한참 앞서 있다. 그들은 몇 년 내에 집을 사기를 차를 사기를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기를 기대하며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살았다.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지 꽤 됐다. 나는 낡은 반지하 월세방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었다. 핸드폰으로 연예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배고프면 대충 라면을 끓여먹었다. 밤이 되어야 밖에 나갔다. 언젠가부터 낮이 싫었다. 밤의 거리는 어두웠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무턱대고 글을 쓴 게 문제지 싶다. 우습게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이 토익 점수나 공모전에 연연하는 동안 같잖은 글을 썼다. 위대한 인물이 되는 꿈을 꾸었다. 톨스토이나 뭐 그런 류의 인간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톨스토이는 재산이 많았다.

몇 차례 되도 않는 직장을 다졌던 적이 있었다. 밤 산책이 유일한 하루 일과가 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되도 않는 직장을 때려치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살고 있을까.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싶다. 기질적으로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할 거다.

나의 기질. 나는 게으르고 잠자기를 좋아하며 태생적으로 머리가 나쁘다. 머리가 텅 비어 있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랬다. 뭘 우겨 넣어도 깨진 바가지에 담은 양 주르륵 샜다. 그래서 애초에 감각에 의지해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그러니까 냄새에 의지한다든가 유쾌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기분에 따라 결정한다든가 하며 살았다.

특히 냄새를 맡았다. 나는 사람에 관해서 냄새로 판단했다. 너무 강하게 향수를 뿌린 여자는 어쩐지 성격이 날카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남자는 폭력적일 것 같아서 싫었다. 나는 살 냄새가 고소한 사람을 좋아했다. 몇 번의 연애도 살 냄새가 고소한 여자와 했었다. 냄새에 의지한 연애는, 실패였다. 그녀들은 시끄러웠고 무척이나 폭력적이었으며 나보다 더 이성적이지 못했다. 아무쪼록 살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남자에게 얻어터진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판단을 내려버렸다. 그래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지만 결국에는 여지없이 그렇게 판단하고 말았다.

어쨌든 나는 그런 글을 썼다. 감각에 의지한 글들을. 그래서 엉망이었다. 어떤 출판사―망한 걸로 알고 있다―에서 책을 한 권 낸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심각하게 안 팔렸다. 내가 때때로 계약이나 인세 따위의 문제로 연락을 하면 직원을 딱 하나 두고 있는 그 출판사의 사장은 나에게 꽤나 무례하게 굴었다. 그 사장이 이런 말도 했었다. 이 사람아, 글이 그 따윈데 얼마나 팔리겠어? 그때 화가 났었지. 그럴 거면 왜 출간해보자고 꼬드겨서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그렇게 서른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워낙 멍청해서 그런지 인간으로 인간답게 인간처럼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야 알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심각한 무기력감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이 모든 잘못을 똑바로 바로잡으려면, 정말이지 엄청 힘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힘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힘내지 않는다. 그냥, 있기로 했다.

이대로 죽어야지 했다. 내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불분명하다. 밤 산책을 하다가 뺑소니를 당했을 수도 있다. 먹을 게 떨어졌는데 바깥으로 나가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그냥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우울감이 정도 이상으로 치솟아 손목을 긋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강아지가 되었다. 이 문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 그대로다.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환생을 했든 어떤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강아지로 변해버렸든 그도 아니라면 원래부터 강아지였는데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환상을 갖게 되었든, 어떤 이유건 간에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나는 강아지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보다 분명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이 상황이 오히려 감지덕지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 이제 누구의 인생을 부러워하고 자격지심에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아, 그리고 당신들은 모른다. 강아지의 몸으로 살면 얼마나 나른한지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졸음에 푹신한 아무 데서나 엎드려 잤다. 그러니까 내 말은, 자느라 그런 걸 생각하고 자시고 할 세가 없었다는 거다.

젊은 부부가 나를 키웠다. 맞벌이 부부였다. 낮 동안은 나 혼자서 집을 지켰다. 나는 새 집이 마음에 들었다. 반지하 월세방보다 넓고 쾌적했다.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인간으로 살면서 아파트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는데, 개가 되니 아파트에서도 살아본다.

나는 그들이 좋았다. 주인 여자는 눈매가 날카로웠지만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딱 코가 간질거릴 정도로 약하게 향수를 뿌렸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좋아할 수 있었다. 주인 여자의 손길은 부드러웠다. 결코 나를 함부로 들어 올리지 않았다. 주인 남자의 경우 손이 거칠어 나를 불쾌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좋아할 만한 인간이었다. 간식을 잘 줬다. 주인 여자가 주인 남자의 등짝을 살짝 때리면서 너무 주지 말라고 했지만 주인 남자는 개의치 않고 줬다. 강아지로 사는 데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면 사료가 질린다는 거였다. 매일 똑같은 두 끼 식사. 짭쪼롬한 고기 간식은 강아지로 사는 데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아무쪼록 주인 남자는 살 냄새가 고소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땀 냄새를 풍기지는 않았다. 아, 땀 냄새 풍기는 남자는 나의 기준에서 최악의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들은 매질을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두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 목숨을 내놓아도 괜찮을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맙소사. 내가 인간을 좋아하게 되다니. 인간이 정말로 싫었는데.

인간에서 강아지가 되었지만 바뀌지 않는 게 있었다. 밤 산책. 주인 부부는 맞벌이 부부인지라 밤에만 시간이 났고 그래서 밤에 산책을 시켜주었다. 특별한 경우를 빼면 거의 매일 밤 산책을 나갔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지루하기도 하고, 좀이 쑤셨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면 너무 신났다. 밤공기는 시원했다. 온갖 냄새가 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팡팡 터졌다.

“살 만한 세상이구만!”

세상 냄새를 맡다가 주체하지 못하고 이렇게 외친다. 인간의 귀에는 컹컹 개 짖는 소리로만 들리겠지만.

가슴줄을 찬 내가 앞장서고, 젊은 부부는 천천히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도 이 밤 산책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빠 치과 갈 때 되지 않았어?”

“가기 싫은데. 양치 열심히 해서 썩은 이 없을 걸.”

“되도 않는 핑계대지 말고 시간 내서 다녀와. 입 냄새 좀 나는 거 같더라. 뽀뽀 안 해줄 거야.”

주인 부부는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눴다.

때때로 무거운 얘기를 나누고 싸우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들은 서로를 존중했고 사랑했다. 그리고 그 존중과 사랑이 나에게도 주어졌다. 나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어서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내가 많이 예뻐해 줄 텐데. 친구가 되어주고 지켜줄 텐데. 얼굴을 핥아줘야지.

당신들에게 신기한 거 하나 알려줘야겠다. 왜 강아지들이 전신주나 나무 밑에다 코를 박고 킁킁대는지 아는가. 더럽게 오줌 냄새를 맡고 지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강아지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노즈 워킹이고 다른 개들 냄새를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풀 냄새와 흙냄새, 바람이 싣고 오는 물 냄새 따위를 맡는 건 정말이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다른 강아지들 냄새를 맡는 것도 재밌다. 강아지로 살면서 냄새를 맡는 건 중요한 일이다. 코를 쓰지 않으면 불행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행하다. 이건 내가 한번 실험해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언젠가 궁금해서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일부로 킁킁거리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아무쪼록 왜 다른 강아지들이 오줌 싸질러 놓은 데에 코를 박을까. 강아지들은 자기 오줌에다가 간단한 문장을 넣을 수 있다. 복잡한 문장은 어렵다. 복잡한 문장은 더 유심히 맡아야 읽을 수 있다. 어떻게 문장을 넣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된다. 나 역시 그게 되어서, ‘오랜만에 산책 나와서 기분 최고’라는 문장을 담은 오줌 옆에다가 ‘난 매일 나온다’라는 오줌을 찍 하고 싼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줌에다 문장을 담을까. 문장 담긴 오줌들이 너무 신기해서 몇 차례 시도를 해보면서 터득한 건데, 해보니까 별거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담고 싶은 문장을 떠올린 다음 찍 하고 싸면 되었다. 아, 그리고 기분도 중요하다. ‘기분 좋아’라는 오줌을 싸려고 할 때 기분이 나쁘면 ‘기분 정말 구리게 좋네’라는 다소 이상한 오줌이 나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런 기분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냉정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찍 하고 싸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온전한, 읽기 쉬운 오줌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동네 강아지들은 정말이지 읽기 어려운 오줌, 감정 표현에 불과한 오줌을 자주 갈긴다.

어쨌든 이 낙서장은 나에게 큰 재미를 준다.

‘나 새로 이사 온 강아지야.’

‘반가워.’

‘집에 가기 싫어.’

‘난 다리 아파서 집 갈래.’

‘반가워!’

‘만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근데 바퀴벌레 먹어도 돼?’

‘졸려.’

‘반가워 친구야!’

뭐 이런 식의 난장판인데, 그래서 재밌다. 말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좋기도 했다. 나도 자주 오줌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종종 궁금증이 생겨 이런 오줌을 남기기도 했다.

‘나처럼 인간이었던 친구 없어?’

 

생각해보건대 나는 원래 인간이 아니었지 싶다. 원래부터 강아지였던 거다. 야단맞다가 머리에 꿀밤을 맞았는데 그 이후로 원래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생겨났다거나 한 게 아닐까. 나의 기질은 강아지가 된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졌다. 게으르고 자는 거 좋아하고, 기분에 따라 움직이며 냄새 맡고 냄새로 이거다 저거다 하는 것 등등.

말티즈가 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부모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대학교에 가서 무엇을 전공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군대에 관한 기억은 퍽 인상 깊었던 모양인지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새 서리 낀 유리창을 통해 보듯 흐려졌다. 인간이었던 시절 나는 불행했다. 그래서 기억을 더 빠르게 잊는지 몰랐다. 그러나 간혹 낮잠을 자다가 불현듯 깰 때가 있었다. 강아지가 땀을 흘릴 수 있는 신체를 지녔다면 식은땀에 하얀 털이 흠뻑 젖었을 거다.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덥석 나를 잡아챘다. 꿈을 꿨다. 첫 번째 직장, 개 같은―아니 인간 같은 회사라고 해야지. 그래, 인간 같은 회사에서 온갖 욕을 다 처먹었던 기억. 사장이란 작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야 이건 이제 열두 살 된 내 아들놈도 하겠다. 너 왜 사냐?

꽤 진지하게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지던 때. 그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했었지. 내가 집 앞까지 찾아가니까 집에서 나오진 않고 전화로 이렇게 말했었다. 솔직히 말할게. 글을 쓴다고? 오빠 주제를 봐.

깨어나서 나는 껌을 뜯었다. 마치 그 기억이라도 되는 양 사납게 물어뜯었다. 그러면 기억들이 조각조각 나는 것 같았다. 턱이 알알해질 때까지 뜯었다. 문득 주변을 돌아본다. 아무도 없는 집. 나는 외로웠다. 주인이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맞아. 글을 썼지.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글을 써서 주인 부부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나 사실 인간이었는데 개가 됐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개가 됐어요.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런 글을 써서 보여줄까. 그러면 주인 부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이 참 잘했어 잘 썼네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진 않을 것 같다. 너무 놀라 기절할 수 있겠고, 악령이 들렸다고 나를 내다버릴 수 있겠다. 아, 그건 상상도 하기 싫다. 버려지면 떠돌이 강아지가 되어 씻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을 텐데. 그러다 붙잡혀 유기견 센터에라도 끌려가면, 거기서 새 주인 찾지 못하면 안락사당할 텐데. 그냥 쓰지 않는 게 낫겠다.

나는 하얀 색 앙증맞은 말티즈로 사는 데 만족했다. 사료를 먹고 배변판에 똥오줌을 누고 낮잠을 자고 주인을 기다리다 주인이 오면 짖지 않으려 노력하며 반기고, 주인 여자가 손 하며 손바닥을 펴면 그 위에 앞발을 올려주는 삶. 주인 남자에게 간식 달라고 낑낑 소리를 내며 그를 따라다니는 삶.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한 삶이었다.

그런 내 삶에 균열이 일어났다.

밤 산책 중이었다. 나는 까만 코를 전신주에 들이댔다.

‘나처럼 인간이었던 친구 없어?’

내가 이틀 전에 남긴 오줌. 그 옆에 이런 오줌이 싸질러져 있었다. 그 오줌은 하루 전에 남긴 듯 진했고, 어떠한 기분도 전해지지 않았다. 보기 드물게 아주 완벽한 형태의 문장이었다.

‘내가 그 친구야. 집 주소 남겨줘. 내가 찾아갈게.’

한참을 맡았다. 놀람과 흥분으로 나는 이빨까지 드러냈다. 그러다 당황스러워졌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와 같은 경우가 또 있었구나. 아, 그러면 나 정말로 인간이었나 보네.

나는 침착하려고 노력하며 냄새를 좀 더 세세하게 맡아보았다. 이 오줌을 남긴 강아지는 꽤 덩치가 있는 강아지였다. 그러니까, 대형견이었다. 믹스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품종인지는 알 수 없었다.

“꼬미야 가자.”

너무 맡고 있었나보다. 주인 남자가 줄을 끌었다.

나는 급하게 전신주에 이렇게 갈겼다.

‘맨 오른쪽 아파트야. 우우와. 칠 층이거나 칠 층이야.’

맡아지는 내 오줌은 놀람과 흥분, 당황이 뒤섞여 이상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오줌을 남겼는지 모르겠다. 신중하게 판단해도 되었을 텐데. 그 대형견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알고. 친구인지 적인지 어떻게 알고.

적?

 

그 메시지를 생각하자니 뒤숭숭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강아지인 괴물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나는 소파 아래로 기어들어가 벌벌 떠는데, 어느새 문짝을 뜯어낸 괴물이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수그려 소파 아래쪽을 들여다본다. 킁킁거리는 까만 코에 주름이 흉측하게 잡히고, 입에선 뜨거운 입김이 쏟아진다. 괴물의 눈은 새까맣다. 그 눈과 마주친다.

다음 날 밤 산책에 나와서 빠짐없이 낙서장을 킁킁 뒤적여보았는데 그 친구의 오줌은 더 맡아지지 않았다. 동네 곳곳의 전신주와 나무 둥치와 담벼락 어디에도 그 친구의 오줌은 없었다. 딱 그 메시지뿐이었다. ‘내가 그 친구야. 집 주소 남겨 줘. 내가 찾아갈게.’ 어쩌면 어떤 빌어먹을 떠돌이 강아지의 장난인지 몰랐다. 그런데, 인간이었던 적이 없던 개에게 ‘집 주소’라는 개념이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내가 전날 남겨 놓은 답장에다가 찍 하고 진하게 오줌을 갈겼다. ‘헤헤헤’라는 오줌을. 전날 남긴 답장은 ‘헤헤헤’에 가려져 잘 맡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동안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안심이 되니 입맛이 돌았다. 질릴 대로 질린 사료가 아주 맛났다.

강아지로 지내면 시간 개념 날짜 개념이 없어진다. 기껏해야 평일과 주말 정도만 구분할 수 있었다. 주말엔 주인 부부가 출근하지 않으니까. 아무튼 정확하게 며칠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그 메시지를 받은 뒤 한 번의 주말이 지나갔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맡아져 눈을 떴다. 꿈이 아니었다. 코는 꿈을 꾸지 않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린 와중에 코를 벌름거려 냄새를 맡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냄새였는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안해져 나도 모르게 거실을 잰걸음으로 서성거렸다.

그 냄새가 현관문 앞에 멈춰 섰다.

“다행이네. 도어락이어서. 문 따기는 쉽겠어.”

가까이서 맡아보니 이 대형견은 골든 리트리버인 듯했다.

“누구야?”

내가 물었다.

“나야. 네 친구. 인간이었다고 했지?”

“아.”

올 게 왔구나. 나는 경계하며 현관문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나도 모르게 이빨을 드러냈다. 입 밖으로 으르렁 소리가 절로 났다.

“왜 그렇게 긴장해? 믿기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골든 리트리버가 물었다.

“당신도 인간이었어?”

내가 물었다.

“그랬지. 지금은 강아지의 몸에 갇혀버렸지만. 인간이었을 적엔 꽤 잘나가는 사업가였어. 예쁜 와이프가 있었고 자식도 둘이나 있었지.”

리트리버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났다. 그런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짠해졌다.

“어쩌다…….”

“나도 몰라. 그냥 이렇게 되어버렸어.”

“나랑 똑같네. 나도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렸어.”

“모두에게 일어난 공통점이라면 그거지.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그냥 갑자기 강아지가 되어서 강아지로 살고 있는 거야.”

모두에게? 그럼 나 말고, 현관문 너머 저 리트리버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인간이었던 강아지가?

내 의문이 냄새로 퍼졌는지 리트리버가 말했다.

“너에게 얘기할 게 많아. 그런데 강아지의 몸으로 계속 이러고 있는 게 좀 그런데……. 인간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어떤 덩치 큰 강아지가 누구 집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게 말야. 가면서 얘기해줘도 괜찮겠지? 도어락 비밀번호가 뭐야?”

“가다니? 어딜 가?”

리트리버가 헥헥 하며 웃음 지었다.

“본부로 갈 거야.”

“무슨 본부?”

“그것도 가면서 얘기해줄게.”

“모, 몰라.”

“모른다니?”

“비밀번호.”

“아니…… 넌 인간이잖아? 그것도 안 알아놨어?”

사실 알았다. 진작 알아놓았다. 조그만 말티즈의 몸이 되어서 문을 열고 닫고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이런 걸 염두에 두고 알아놓은 건 아니고.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내가 도리어 성을 냈다.

“알았어. 그럴 수 있지 뭐. 그런데…… 우리 계산에 따르면 대략 이십 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가 얼마 동안 얘기를 나눴지?”

“글쎄. 한 십 분 정도?”

“그럼 십 분 남았네. 음, 그러니까 이십 분 시간이 있다는 건, 안전하게 너를 데려올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거야. 인간들 눈에 띄지 않게 너를 빼내올 수 있는 시간. 그런데 비밀번호를 모른다니 어쩔 수 없지. 다음 기회를 엿볼 수밖에. 비밀번호 금방 알아낼 수 있지? 어려울 거 없잖아. 네가 싸놓은 오줌들을 맡아보니까 거의 매일 산책을 나오던데.”

리트리버가 신이 나서 떠벌렸다. 강아지가 되었지만 이런 영특한 구출 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게 꽤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대체 본부가 뭐야?”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본부야. 인간이었다가 강아지가 된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본부지. 김 박사님께서 만들었어. 김 박사님은 물리학 박사이시고, 우리나라에서 최고야. 물리학계 최고 권위자께서 강아지가 되다니.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우리한텐 정말이지 엄청난 행운인 거야. 박사님한텐 내가 이런 말 했다고 전하지 말고, 눈치 없이. 아무튼 박사님께선 본부를 설립하고 거기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연구를 진행 중이셔. 우린 곧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다구.”

나는 가만히 앉아 그 얘기를 듣다가 남은 십 분이 다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리트리버가 놀라서 컹 하고 짖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그 친구의 냄새가 빠르게 옅어지는 걸 맡으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불안에 떨었는지 알게 되었다. 괴물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의 내 삶을 뒤흔들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금의 삶. 강아지의 삶. 쪼꼬매서 이름이 꼬미인 하얀색 말티즈로 사는 삶. 나는 이 삶에 만족했다. 내 꿈은 이렇게 살다가 늙어 죽는 거다. 사랑하는 주인 부부의 품에서 눈물 조금 흘리다가 죽는 거다. 그런데 이걸 빼앗으려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걸 느꼈던 거다. 직감적으로 알아챈 거다.

인간이었던 과거가 나를 잡아채려 한다.

들켰다.

 

근심과 걱정과 고민과 그로 인한 좌절은 모두 IMF 때 생긴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다. 집안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작은 집으로 이사 가야 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와 나를 보살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할머니는 나의 어머니를 욕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갑자기 온화한 말투로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 예전처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기도했다. IMF가 지나갔고 우리 집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모든 게 무슨 의미인지 서서히 깨달았다.

생각해보건대 그때를 잘 버틴 집에서 자란 친구들은 잘 살았다. 학자금 대출 몇천만 원을 짊어지지 않았다. 듬직한 아버지와 세심한 어머니의 조언을 들으며 이것저것 준비를 잘했다. 밥값 걱정 월세 걱정 없이 살며 저축도 많이 했다. 그 친구들은 빌어먹을 회사에서 너 왜 사냐 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별 시답잖은 여자친구에게 오빠 주제를 봐 라는 말을 들을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배신당했다고 했다. 아주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IMF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의류 매장 몇 채를 운영하고 있었다. 일종의 매니저로 채용한 박 씨 아저씨는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왕처럼 떠받들었다. 명절마다 아버지를 찾아와 형님 감사합니다, 소리를 하며 절을 올렸다 한다. 아버지는 그때만 해도 사람에 대한 정이 깊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박 씨를 아꼈다. 그런데 그렇게 아끼던 박 씨가 날랐다. 아버지가 믿고 맡긴 돈을 모두 들고 날랐다. 박 씨를 위해 보증을 서준 상태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로는 박 씨를 독립시키려고 서준 보증이었다 했다. 그 사람이 언제까지 내 밑에서 일해야 하겠느냐.

그래서 아버지는 IMF 이후 남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IMF 이후 예정된 가난과 좌절뿐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저씨는 덩치가 산만 했고 얼굴에 큰 점이 두 개 찍혀 있었다. 뒷모습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꿍꿍이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린 나를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먹을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그걸 먹고 있으면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저씨였다. 만일 내가 아버지였더라도 그를 믿었을 것이다.

인간이 참 무섭다.

강아지들은 배신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 무엇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강아지들은 냄새를 풍겼다. 그걸 유심히 맡으면 그 강아지가 어떤 성격을 가졌고 취미가 무엇이며 무슨 간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지 다 알 수 있었다. 냄새를 맡으면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활발한 성격에 심술이 나면 쓰레기통을 뒤적이고 물을 무서워하며 약간의 장 트러블이 있어 한 달에 한두 차례 묽은 똥을 누고, 쿠키에 환장하는구나. 그 냄새는 항문 쪽에서 난다. 그래서 강아지들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항문을 탐한다.

나는 최대한 내 항문을 지키려 한다. 쉽사리 내 정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산책길에서 개를 만나면 관심 없는 척하며 도도하게 지나치려 한다. 그러나 이 동네 강아지들은 다른 강아지에게 관심이 많았다.

“거기, 냄새 좀 맡자!”

그래서 컹 짖으며 내게 달려드는 거다.

결국 나도 질 수 없어 그 녀석의 항문 냄새를 맡았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그거였다. 강아지들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 녀석, 그 리트리버는 결국 인간이었다.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비록 강아지의 몸을 하고 있지만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숨기는 게 없다 하더라도 그 본부는 나를 인간으로 되돌려놓을 거다. 나는 그걸 원치 않는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된다. 몰라. 난 이렇게 사는 게 편해.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인간이었던 시절 내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알아?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난 아주 만족한다구. 나를 괴롭히지 마. 썩 꺼져. 난 계속 이렇게 살 거야. 그냥 강아지로 살 거라구.

내 말을 들은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어이없어하겠지. 어떻게…… 어떻게…… 강아지로 살겠다는 거야? 넌 인간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는 잘나가는 사업가였으니까. 예쁜 와이프가 있었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으니까. 집도 있었겠고 차도 있었겠지. 보험도 두둑이 들어뒀을 테고 붓는 연금도 꽤 되었을 거다. 땅도 얼마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그런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단코.

나중에 가선 나를 비웃을 거다. 한심하게 여길 거다. 보잘것없는 놈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 본부라는 곳에 가서 신나게 떠벌리겠지. 아니 그 새끼는 진짜 개새끼더라고. 쪽팔린 줄도 모르고, 에휴 개새끼. 어쩌면 몇몇 인간이었던 강아지들을 끌고 와 문밖에서 나를 놀릴지 몰랐다. 야 이 불쌍한 개새끼야!

그것들에게서 해방된 줄 알았다. 이제 그 모든 것들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 불결한 시선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강아지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좋았는데. 정말로 좋았는데.

딱 한 번만 참으면 되었다. 그 모욕을 딱 한 번만 견디면 되었다. 너 왜 사냐. 오빠 주제를 봐. 그 말들을 견뎌냈던 것처럼 말이다. 멍청하게 듣고 말면 끝이었다. 난 진짜 멍청하니까, 이것도 잘 해낼 거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쪽팔려서.

다시 한 번의 주말이 지나간 뒤, 나는 그에게 순순히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리트리버는 큼지막한 앞발 때문에 버튼을 정확히 누를 수 없었다. 잠시만, 이번엔 해낼게. 리트리버가 민망한 듯 헥헥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버튼을 눌렀다. 좀처럼 잠금을 해제하지 못했다. 나는 주어진 이십 분 동안 문을 열지 못하기를 빌었는데, 야속하게도 오 분만에 띠리릭 하며 잠금이 해제되었다.

문이 열렸다.

“시간이 없어. 어서 가자.”

리트리버는 축 쳐진 선량한 눈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항문 냄새를 맡고 싶어서 조심스레 그의 뒤편으로 향했다.

“뭐 하는 거야?”

그가 물었다.

잠깐, 냄새 좀 맡아도 될까?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하잖아. 차마 말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아주 이 집에서 떠나야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그건 네 선택이야. 본부에서 지낼지 아니면 당분간 여기서 지낼지. 본부에서 지내면 연구 활동이며 뭐며 뭔가를 더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지내기 불편해. 사료며 간식이며 풍족하게 먹을 수 없어. 원래 살던 집에서 지내면 이러저러한 제약이 있겠지만 그래도 편하게는 지낼 수 있고 말야. 우리들 중 절반은 본부에서 지내고 나머지 절반은 집에서 지내. 본부 쪽에선 일단은 원래 살던 집에서 지내기를 권유하고 있어. 요즘 본부 사정이 썩 좋지 못하거든.”

그가 그렇게 말해줘서 다행이었다.

“알았어. 그럼 난 여기서 지낼게. 이따가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난 몸이 작아서 문을 못 열어.”

“당연하지.”

나는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인간들 눈을 피해 가느라 좁고 더러운 길로만 갔다. 신경질이 났다. 어젯밤 주인 남자가 목욕을 시켜줬었다. 얼마 안 있어 발과 배의 하얀 털이 까매졌다.

“근데 넌 인간일 때 뭐 하는 사람이었어?”

리트리버가 물었다.

“나는…… 작가였어.”

“오오. 대단한 사람이었는걸. 무슨 책을 냈어?”

“그다지 유명한 책은 아녔어. 그저 그런 소설책일 뿐이야.”

“아아. 그럼 가족은?”

“없어. 혼자 살아.”

본부란 곳은 버려진 낡은 양옥집이었다. 야트막한 산 밑에 위치해 있었고 길에는 사람 발길이 뜸했다.

“문 열어.”

리트리버가 주변을 살피다가 칠이 까진 대문 앞에서 컹 하고 짖었다.

“암호는?”

대문 너머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머리독수리.”

그가 그렇게 말하곤 뒤쪽으로 물러났다. 나도 그를 따라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대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대문 안쪽에는 그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시베리안 허스키가 서 있었다.

리트리버가 허스키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 친구는 본부의 경비를 맡고 있는 홍 씨야. 원래는 형사였어. 이 본부를 구하는 데도 홍 씨의 역할이 컸어. 이곳은 살인 사건이 난 뒤로 몇 년 간 버려진 집이었거든. 그 사건을 맡은 게 홍 씨였고 말야.”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가니 꽤 많은 강아지들이 모여 있었다. 푸들과 포메라니안, 진돗개와 불도그, 사모예드, 시바……. 몇몇 개들이 입과 앞발로 어떤 금속 물체를 조립하고 있었다. 몇몇 개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완성된 금속 물체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배식 담당인 듯한 진돗개가 일렬로 늘어선 밥그릇에다가 사료를 담았다. 커다란 입으로 한 움큼 문 다음 밥그릇 안에다 뱉는 방식이었다. 청소 담당인 듯한 푸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끊긴 케이블이며 비닐 껍데기 따위를 물어서 커다란 흰색 봉투에다 뱉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드럼통이 세워져 있었다. 드럼통에 이런저런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복잡하게 꼬이고 얽힌 전선은 한 군데로 모여 하나의 전선이 되었다. 그 전선이 노트북에 꽂혀 있었다. 노트북 앞에는 늙고 나만큼 자그마한 치와와 한 마리가 눈을 끔뻑이며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저 분이 김 박사님이셔.”

리트리버가 컹 짖으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치와와가 되어 버린 물리학계 최고 권위자 김 박사가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강아지의 몸으로 산 지 오 년 가까이 된 거 같아. 자네도 알겠지. 강아지가 되면 많은 것들이 뒤바뀐다는 걸. 사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어. 어쩌면 삼 년밖에 안 됐을지 모르지. 아무튼, 나는 나른함과 간식에의 욕구를 이기고 집을 나왔어. 그리고 연구를 진행했네. 이대로 강아지로 살다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려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곤 김 박사가 드럼통에 꽂힌 전선 하나를 입으로 물어 잡아당겼다. 전선이 뽁 하고 뽑혔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한 지는 일 년 정도 됐을 거야.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됐을지도 모르고. 여기에 본부를 설립한 지는 육 개월 되었네. 이건 정확한데, 여기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는 날짜를 체크하거든. 아무튼 그동안 많은 것을 밝혀냈어. 우리가 왜 강아지가 되었는지 말야. 몇 가지 조건을 발견했지.”

“그게 뭔가요?”

내가 물었다.

“태풍과 정전기.”

“네?”

“태풍과 정전기. 내가 발견한 조건이 바로 그거라네. 이 두 가지 조건이 어떤 기묘한 작용을 일으킨 거야. 그래서 우리가 강아지가 된 거고. 이를 밝히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지.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그걸 어떻게 밝혀낸 거죠?”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네. 결국엔 알맞은 방법을 찾았지. 바로 최면이었다네. 우리는 최면을 배워야 했지. 서점에서 살 수도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없어서 책을 구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지. 그건 쓸 만한 노트북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어. 용감한 홍 씨가 무작정 서점으로 들어가 책을 훔쳐 오지 않았더라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야.”

김 박사가 자기 앞발-치와와의 작은 앞발을 어느 책 위에 올렸다.

“문제는 최면 방법이었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면과 강아지를 대상으로 한 최면은 차원이 달랐으니까. 게다가 강아지들은 산만하지. 무언가에 끈덕지게 집중을 못해. 아무리 인간이었다고 한들 강아지의 몸을 한 이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 그래서 강아지에 맞춰 최명 방법을 바꿔야 했네. 그건 꽤나 까다로운 작업이야. 하지만 결국엔 몇몇 사람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어. 거기에는 하나 같이 등장하는 조건이 두 가지 있었다네. 태풍 치는 밤과 정전기에 휩싸인 몸.”

“만약 그 두 가지 조건만으로 강아지가 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강아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좋은 질문이네. 그래. 두 가지 조건만으로 강아지가 되진 않아. 나는 정전기에 주목했네. 어떤 정전기인지 말이야. 그냥 정전기가 아닌, 특정한 값을 지닌 정전기가 우리를 강아지로 만들었지 싶어서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값을 똑같이 낼 수 있는 정전기 장치를 만들어야 했네.”

김 박사가 이번에는 치와와의 작은 앞발로 드럼통을 툭 쳤다.

“그게 만약 맞지 않다면요?”

“이번에도 좋은 질문이네. 개의 몸이 되었으니 그 값도 그에 따라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도 당연히 하고 있지. 다양한 값의 정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네. 밤은 길고 태풍은 단 몇 초간만 머물지 않을 거야. 아무튼, 그 값만 찾으면 일사천리야. 우리는 오랜 연구 끝에, 최근에 그 값에 근접했다네. 이제 우리는 이 드럼통 안으로 들어가 다시 인간의 몸을 되찾을 거야. 주위를 둘러보게. 불운한 이들을 보라고. 진돗개에 포메라니안에 시바라니. 제길. 우린 이런 몸으로 살 수 없어. 우린 인간이라구. 우리의 몸을 되찾아야 해. 이 기계를 통해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어. 그래. 밤은 길고 태풍은 꽤 오랫동안 머물러줄 거야. 우리 모두 돌아갈 수 있어. 다음번 태풍을 기다린다든가 할 필요는 없을 거라구.”

“태풍……. 그런데 태풍이 언제 오죠?”

“일기예보에 따르면 곧 오네.”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그 치와와의 말을 따라야 했을까. 태풍 치는 밤에 드럼통 안으로 들어가 정전기에 휩싸여 몸을 하얗고 노랗게 빛내며, 그러다 다시 인간의 몸을 되찾고……. 그래야 했을까.

나는 뒷걸음쳐 치와와가 되어버린 박사에게서 멀어졌다. 자네, 왜 그러나? 김 박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계속 뒷걸음쳤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나는 도망쳤다. 본부라는 곳에서 도망쳤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사실 난 다시 돌아가기 싫어요. 개로 사는 게 좋아요. 그 말이 쪽팔려서 못했다. 그냥 뒤돌아 달렸다.

밖은 어두웠다. 주인 부부가 퇴근했을까. 집에 들어와 내가 사라진 걸 알고 걱정하고 있을까. 어쩌면 동네 곳곳을 들쑤시며 나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 눈물이 났다. 그래서 짖었다. 길을 지나던 몇몇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계속 짖었다.

왜 그래야 할까. 이대로도 좋은데.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은데.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마자 주인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소리 내어 내 이름 꼬미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일 적 내 이름은 뭐였더라. 모르겠다. 상관없다. 나는 그들의 품으로 달려가며 캉 하고 짖었다.

다행히 주인 부부는 출근할 때 현관문을 연 사이 내가 빠져나간 줄 알았다. 주인 여자는 눈물을 보이며 다시는 그러지 마 내가 미안해, 라고 말하며 꼭 안아주었다. 주인 남자는 검게 물들고 더러워진 나를 씻기고 소고기 간식을 줬다. 나는 그들 주위를 빙그르르 돌고 따라다니며 헥헥 하고 웃었다.

다시 한 번 주말이 지나가고 리트리버가 우리 집을 찾아와 물었다. 문 열어도 돼? 대체 무슨 일이야? 뭐가 문제지? 곧 태풍이 온다구!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문 열지 마. 아무 일도 없어. 아무 문제도 없어. 아무것도 묻지 마. 그냥, 그럴 일이 있어.

그리고 태풍이 왔다. 밤새 거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쳤다. 나는 베란다 창가 쪽에 엎드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짜식, 내일은 산책 나갈 수 있을 거야. 주인 남자가 거칠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들은 다시 인간이 되었을까. 드럼통 안으로 들어가 하나씩 인간이 되어 나왔을까.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데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 데에 감격할까. 그들은 얼마나 잘났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할까. 또 나는 얼마나 못났기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걸까.

난 왜 살까.

내 주제는 뭘까.

다시 인간이 된 그들은 말티즈 한 마리를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의문을 품을 테고 눈치가 빠른 어떤 이는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한심하게 여기거나 그도 아니라면 역겨워할 거다. 얼마나 빌어먹게 살았으면 개로 산다는 건지 참.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게 있다. 그들에겐 좋은 직장과 집과 차와 가족과 물려받을 재산이 있겠지만, 나에겐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IMF를 살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더 이상 리트리버가 찾아오지 않았다.

내 오줌 옆에 어떠한 기분도 전해지지 않는, 완벽한 형태의 문장이 싸질러져 있지도 않았다. 그저 강아지들뿐이었다.

‘오늘 날씨 좋아.’

‘행복해.’

‘새로 찬 목줄이 아파.’

‘구름을 물어뜯고 싶어.’

‘행복해.’

‘반가워 친구야!’

‘목이 말라. 그리고 목이 말라.’

‘하루 종일 뛰어 놀고 싶어.’

‘오늘 날씨 최고.’

‘행복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조금씩 그들을 잊어갔다. 나는 주인 부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조금 살이 쪘다. 좋은 일이 생겼다. 주인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 냄새가 맡아졌다. 아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주인 여자의 배가 불렀다.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는 동안 산책하는 날이 줄어들었지만 꿋꿋이 참았다. 그리고 새 가족이 생겼다. 아이는 나만큼 작았는데 곧 나보다 커졌다. 나는 아이의 발가락을 핥아주는 걸 좋아하게 되어서 자주 그랬다. 아이는 나와 함께 자랐고 가끔씩 나를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이좋게 지냈다. 시간이 더 흘러 아이가 두 발로 걸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배신감이 느껴질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 함께 네 발로 걸을 때가 좋았는데.

인간이었던 시절에서 더욱이 멀어지면서 그 기억들도 많이 잊었다. 어렴풋한 장면과 인상만 남았다. 그러나 또렷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는 기억도 몇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저지른, 혹은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한 글. 그래. 나는 글을 쓰는 인간이었지.

당신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당신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

 

주인 부부와 아이와 함께 밤 산책을 나섰다. 주인 남자가 아이를 안고 주인 여자가 내 줄을 잡았다. 나는 밤공기를 맘껏 마시며 천천히 걸었다. 낙서장에다가 다소 해괴한 농담을 지껄이기도 하며 신나게 걸었다. 그러던 중 보았다. 단지 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그 남자에게선 기묘한 냄새가 났다. 분명 인간 냄새였는데 언젠가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강아지 냄새가 맡아졌다. 자그마한 강아지가 아니라, 대형견의 냄새였다.

몸체가 크고 눈매가 도드라지게 쳐진 그 중년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불가해한 무언가를 보는 눈초리로.

나는 그가 누군지 안다. 그가 예전에 어떤 몸을 지녔는지도 안다. 사실 아직도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일부로 헥헥 하고 웃으며 달렸다. 줄이 팽팽히 당겨졌다. 대체 왜 나를 찾아왔을까. 겨우 잊었는데 왜 다시 찾아와 기억을 되살릴까.

나를 괴롭히는,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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