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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2분기 우수작은 4월 후보작인 김성호 님의 「여교사의 공중부양」, 박낙타 님의 「뱀파이어와 피주머니」와 5월 후보작인 박낙타 님의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 중에서  박낙타 님의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가 2분기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A
늑대인간은 처음에는 서구의 설화 속의 존재였다고 해도 세계 전체가 문화를 공유하는 지금 늑대인간은 우리 나라에도 낯선 존재는 아니지요. 만월이 되면 돌아가는 원래의 모습이 늑대라는 점은 늑대의 공포심과 함께 오직 한 반려만을 사랑한다는 습성과 결합하며 <트와일라잇>시리즈의 중요한 캐릭터로 쓰이면서 더욱 더 대중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늑대인간이 1인칭인 이 소설은 시작부터 흥미를 유발하네요. 만월에는 근무하지 않을 권리란 늑대인간의 특성을 이용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소수자성을 빗대는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소수자성을 비웃으며 그걸 특권 취급하면서 박탈하려고 하는 빌런은 시사하는 바가 많네요.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요청이 받아들여지고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빌런은 빌런답게 꼭 뒷담화 같은 지질한 수단으로 주인공을 곤란에 빠뜨리는 것도 현실 반영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엔딩은 유쾌한 개그로 읽힙니다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까지 권리를 찾고자 했던 주인공의 호소를 빌런과 공유하는 관리자의 모습이나 소수자인 늑대인간 안에서도 다시 계급이 있다는 점 등은 계속 여운으로 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B
웃기고 귀여운데 어처구니없이 슬픈 소설입니다. 회사 내부의 메일 송부라는 특수한 설정을 활용해서 메일 바깥의 상황을 그려내는 꽤 수월한 트릭을 사용한 소설입니다. 환상이 현실에 어떻게 유비될 수 있는지 늑대인간이라는 특성을 통해서 아주 매끄럽게 그려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유보조항이 사용자에게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만약 통과된다면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적용될지, 소수자의 소수자성은 어떻게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구성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짧고 비극적인 단편에 깔끔하게 집어넣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건 깔끔하지만 너무 안전한 선택이긴 하네요. 황유석 대리의 삶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용기있는 이야기도 보고 싶습니다.

C
늑대인간과 사회의 언더도그마를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치와와 늑대인간인 황유석대리를 향한 사회적인 시선을 날카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전작인 ‘뱀파이어와 피주머니’보다 설정이 깔끔하게 다듬어졌습니다. 설정이 간결하게 다듬어져서 오히려 다른 늑대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작품의 형식도 메일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이다 보니 몰입감도 개선되었습니다. 확실히 재미있고, 시의성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D
<여교사의 공중부양>은 속도감 있는 전개에 극적인 사건이 더해진 소설입니다. 인간 내면에 잠든 두렵고도 징그러운 심리를 묘파하는 방식,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폐함만 남기는 결말을 향해 빠르게 치닫는 서사에서 편혜영 작가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쌓아 올린 사건들에서 작위성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새 남편이 죽게 만든 피해자가 실은 화자의 친아들이었다는 설정이 드러나는 장면은 그 무게에 비해 전개가 느슨하게 서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반동 인물이자 중심 인물인 여 교사의 평면적인 인물성, 하나의 메타포처럼 묘사된 ‘여 교사의 공중부양’이 단순한 오컬트적 장치로 소비되는 애매한 반전 등도 소설의 약점으로 느껴졌습니다.
<뱀파이어와 피 주머니>는 박낙타님의 장기인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소설이었습니다. 뱀파이어에 관한 여러 세세한 설정이 장르적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잘 쓰여 막힘없이 즐겁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잘 짜인 세계관에 비해 중심줄거리가 되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싱겁게 진행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을 가진 장편소설의 첫 에피소드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는 환상 문학이 현실과 관계할 수 있는 방식인 ‘알레고리’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늑대인간에 대한 차별로 은유되는 ‘종족주의적 차별’은 분명 현실에서도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더해 늑대인간 사이에서도 반복되는 배제의 풍경을 통해 작가는 다수와 소수라는 이분법적 차별 도식을 과감히 깨부숩니다. 깊이 있는 통찰과 사유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곤경에 아주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서사로서 독자에게 값합니다.

E
근래의 환상소설에서 괴물 또는 이물(異物)은 차별을 가시화하는 데에 종종 쓰입니다. 인간종에게 유구한 ‘선 긋기’의 역사는 계속되었기 때문에 돌연변이와 타종이 ‘인간’으로 편입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테죠. 박낙타 작가의 단편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는 이런 현상을 분명하게 잡아내 한 회사의 대리인 황유석 씨가 어떤 사유로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지를 짧지만 통찰력 있게 보입니다.
이 소설은 황유석 대리와 박종훈 이사가 주고받는 메일을 시간 순서대로 이어 붙인 형식입니다. 보통 회사의 생산 2팀, 대리라는 직함마저 지극히 일반적인 황유석 씨는 사실 늑대인간입니다. 그에게 ‘늑대인간’이라는 정체성 외의 모든 게 평범합니다. 소설의 두 번째 단락을 읽을 때까지 독자는 그에게서 전혀 특이점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단락을 읽는 순간 기이함을 감지하고(“생산 2팀에 보름달이 뜨는 이번 주 토요일에 특근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단락에서는 그가 공동체 내 유일한 늑대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됩니다(“김 팀장님이 늑대인간인 저에게 매우 차별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독자는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그는 직장 내 차별과 조롱으로 퇴사합니다.
차별의 객체(황유석 대리)와 주체(박종훈 이사)가 주고받는 업무 메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대화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의견이 충분히 들어가 있는 한편 정제된 문장으로 소설은 진행됩니다. 만약 이 대화를 두 인물이 매우 사적이거나 공적인 공간에서 대면해 나누었다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감정이 고조되기 마련이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개인의 사정을 스스럼없이 내어 보이기에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메일의 형식을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황유석 대리의 메일이 일반적인 늑대인간 피해자의 호소에 그쳤다면 다소 평면적으로 읽혔을 것입니다. 소설의 평가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 구조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황유석 대리는 자신이 늑대인간종 안에서도 말티즈인간임을 밝힙니다. 그는 스스로 약자 안의 약자임을 말합니다. 그는 단순히 늑대인간인 모습을 들킨다면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가 속한 늑대인간 집단 내부의 또 다른 차별구조는 소설에서 다루는 약자의 차원을 확장합니다. 사람은 약자의 정체성이 중첩될 때 같은 집단 내에서도 더욱 배척됩니다. 여성보다는 장애 여성이, 그보다는 성소수자 장애 여성이 차별받는 것처럼 말이죠. 작가는 이런 복잡다단한 인간의 층위 나누기를 소설 안에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황유석 대리가 말티즈인간이라는 사실은 팀 내에 굉장히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개됩니다. 팀장을 물어 황유석 씨가 퇴사하는 것은 약자를 완전한 약자로만, 강자를 완전한 강자로만 그리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팀장이 회복하면 황 대리가 있던 팀이 이전과 다름없이 굴러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합니다. 이는 여전히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다져진 사회의 차별을 완전히 부술 수는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겠습니다.
크고 작은 문장의 오류와 의미의 중복, 정돈되지 않은 문단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보완되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퇴고와 타인의 평가, 개인의 노력으로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가벼운 오류보다는 내용의 완결성과 흥미에 중점을 두고 평가했을 때 이 소설에는 짧지만 독자에게 강렬히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환상적 요소를 채택해 교묘하게 지속된 인간의 차별 역사를 통찰력 있게 꿰뚫고 이를 메일이라는 형식으로 적절히 엮어낸 박낙타 작가의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를 이달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에 추천합니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소설 잘 읽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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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낙타 23.07.18 18:25 댓글

    선정되어 신기하고 기쁘네요:) 훌륭한 피드백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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