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가작 책의 미로

2010.04.30 23:1804.30

  도서관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미래 세계의 상세한 역사, 천사들의 자서전들, 도서관의 믿을만한 서지목록, 수백만 개의 가짜 서지목록, 그 가짜 서지목록의 허구성을 증명한 책, 진짜 서지 목록의 허구성을 증명한 책, 바실리데스의 그노시스적 복음, 이 복음의 주해서, 그 주해서의 주해서, 당신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해명서, 각각의 책에 대한 모든 번역본들, 모든 책들의 증보판들.

- 호르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중



  나는 책으로 된 미로 속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약간의 경의를 담아 바벨의 도서관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약간의 경멸을 담아 책 무덤이라고도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것은 책으로 된 벽이고 그 너머에도 책으로 된 벽 뿐일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하든 큰 무리는 없을 터이다. 미로 전체를, 도서관을 짧은 문장에 담아보자. 마치 세상 전체를 포괄하고 심지어는 그 자신마저 나타내고 있는 알레프의 구체처럼:

  먼저 그것의 가장 우선석인 속성은 무한이다. 무한의 정의에 관해서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아직 논쟁이 끊일 일이 없지만, 실제적으로 아직까지 미로의 끝이라든가 벽에 도달했다는 보고는 들어온 일이 없다. 더군다나 미로가 무한하다는 것은 미로 안의 모든 거주자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동의하는 사실이다(그리고 사실은 동의로 인해서 사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로가 유한함을 주장하는 교파도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미로가 무한하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그것을 발견하기 까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미로 안에서는 무엇이든 존재하고 있다는 것. 사실, 미로가 유한함을 주장하는 일은 별 효용이 없으므로 그리 설득력을 지니지는 못한다. 무한보다 1 많은 숫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수학자가 없는 것처럼, 미로의 전역은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그 다음으로 언급할 수 있는 속성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미로 전체를 어떤 원칙에 따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통로들은 위로 또는 아래로 옆과 뒤와 앞으로 닥치는대로 내달리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막다른 골목이기도 하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기도 한다. 오로지 이해할 수 없는 혼돈과 비대칭성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미로의 구조를 온전히 계측하고 예측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꿈과 광기의 산물이고 가장 미치광이 같은 건축가가 신적인 영감에 사로잡혀 자아낸 비현실의 일부이다. 어떤 사람들은 첫번째 속성을 인용하여 언젠가는 그 혼돈 속에서 질서가 나타날 것임을, 반복되는 주기가 나타날 것임을 희망하고 인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소망이 사실임을 시사하는 증거는 아무곳에도 없고 주기를 발견하기에 충분한 시간 역시 무한일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 외에 세부적인 속성이 있다면 미로가 책과 서가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끝없이 뻗어나가고 갈래진 서가들 사이로 발광성 곰팡이 빛이 어두침침하게 번쩍거리고, 온갖 양식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갖가지 물건들이 시간의 무게 속에 침묵하고 도열해있다. 오래된 도서관의 종이냄새, 부스러진 책의 먼지들, 허둥허둥 기어가는 좀과 번져서 알아볼 수 없게 된 얼룩들. 그리고 미로의 첫번째 속성처럼 거기에는 모든 종류의 무한한 책이 있다. 한 권의 책에 쓰인 글자수 만큼의 책에 쓰인 글자수 만큼의 책의 글자 수도 이 곳의 책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리라. 또 미로의 두번째 속성처럼 그것들이 책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규칙도 있지 않다. 위대한 문호의 걸작이든 100가지 추천 요리서든 수압식 기계에 적용되는 유체 공학 원리든 잊혀진 종교의 경전이든 가리지 않고 서가에 마구잡이로 꽂혀 있거나 혹은 누군가가 꽂는 것을 잊어버린 듯이 바닥에 놓여 있다. 반드시 한 언어로만 써 있는 것도 아니며, 여태까지 읽혀 왔던 것보다 더 많은 책들은 사용자가 없는 언어로-사용자가 존재했었거나 혹은 아직 존재하지 않은- 되어 있을 것이고 그러한 언어들의 문법책도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한 책이 반드시 한 권씩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한 책의 모든 판본들과 오자가 있는 인쇄본들이 있다. 단지 이 곳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한한 책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미로라는 것 뿐이다.

  미로 안의 모든 인간은 누구나 미로의 구도자일테지만 결국 미로에서 길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미로라고 부르지 않고, 미로가 아닌 것은 이 세상이라고 부를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곳이 처음인 사람은 누구나 물을 것이다. 대체 이처럼 많은 책이 여기에 쌓여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그리고 가장 덜 둔감한, 혹은 가장 둔감한 사람은 놀라서 물을 것이다. 대체 자신이 누구냐고 말이다.



  마지막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글쎄, 나 자신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답해줄 수는 없겠다.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만나본 모든 사람들도 대개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사람을 만나본 일이 있는데, 그 사람은 너무 오랜 시간을 기사도 소설과 무용담들이 가득한 서가 앞에서 보내고 만 나머지 자신이 어느 마법사에 의해 갇힌 기사가 틀림없다고 열렬하게 믿고 있었다. 굳이 그런 사람을 예로 들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자기라고 확신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물론 어떤 것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습관이 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둔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두세 주(여기서도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몇가지 있다: 발광성 곰팡이의 주기, 천천히 타들어가는 특수 잉크, 규칙적으로 책장 넘기는 기계, 혹은 단순히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 가량 지나고 나면 누구든 이 상태에 익숙해지게 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린다면 너무도 괴로울 것이고 삶의 의미가 사라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그 습관을 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차라리 미로에서 자신이 어느 시점에 어디에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지도학자라고 부르는 이 부류의 사람들은 낡아빠진 종이에 수도없는 지도를 그리고 서가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책들의 연대와 인쇄 상태와 책장에 새겨 놓은 눈금 또는 발광성 곰팡이의 주기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불행한 사실은 미로를 완벽하게 모사하는 지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지도를 그리고 나면 미로 전체의 크기와 맞먹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조금쯤 타협해서 자신이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과 자신이 살 수 있는 시간 정도만 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도학자들도 있지만, 거기에도 변동은 있다. 숨을 죽이고 있으면 아주 조용한 통로 어디에선가 작고 둔중하게 미로의 먼 구역이 함몰되는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낡아빠진 서가가 견디지 못하고 삭아버리거나, 지하수에 한방울씩 젖어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거나, 거대한 좀벌레가 뚫고 지나간 굴이 무너진다거나. 미로 전체의 미묘한 하중은 언제나 균형상태가 아니어서 서가 하나가 넘어지면 백년 정도는 걸려서 다른 서가가 그 하중으로 무너지는 일도 있다. 완벽하게 밀폐 상태에 있던 서가에 공기가 들어오면 그 기압의 변화로 균형이 깨지는 일도 있다. 서가에 깔려 죽는 것은 드문 죽음이 아니나, 언제나 사람이 있는 통로보다는 없는 통로가 많은 법이다.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그들 주위에 있는 것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들이 읽은 책이 전해주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며 책의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유일한 빛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책의 미로는 무한정한 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탐색하기만 하면 어떤 내용이든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수가 상당히 많아서 스스로를 사서라고 부르고 미로를 도서관으로 일컬으면서 책을 탐독하고 조직적으로 책을 정리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 덕으로 정리된 서가들이 있으며 책의 목록표나 몇 구획씩이나 되는 거대한-거기에 맞는 책을 찾아와 끼워넣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수 세기의 시간이 필요했다- 도서관들(이 이름은 미로 전체 뿐 아니라 정리된 구획을 부르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이 생겨났다. 여기서 정제된 지식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충실한 사서들은 곧 수많은 난관에 부딫힌다. 사서들이 정리하려는 목록 또한 무한하기 때문에 정리하는데는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고, 책의 손실은 매 순간 일어나고 있으며(무너지는 서가 아래서 바스러지든, 기사도 책에 심취한 열광적인 독자가 사악한 마법사의 비밀 주문책이라고 믿고 찢어버리든), 심지어 어떤 책을 정리하고 보존해야하는지에 관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전 사서로부터 갈라진 분파 가운데 필경사들이 있다. 어쩌면 최초의 사서는 동시에 필경사였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신성한 책이 손실되는 것을 강박적으로 두려워한 나머지, 귀중한 지식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허무로 바스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책을 옮겨쓴다. 그러기 위해서 필경사들은 오래된 책들의 가루를 반죽하고 가장 증오스러운 적인 흰개미들-눈이 퇴화된 이 거대한 곤충들은 자신들에게 무의미한 얼룩이 묻은 종이를 물어다 침으로 반죽해서 거대한 육각형이 무한히 연속되는 집을 짓는다-을 사냥하여 종이를 만들고 그을음으로 잉크를 만드는 방법을 최초로 발명해냈다. 이들이 책을 보존하기 위해서 다른 책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책은 단순히 보존될 뿐 아니라 더 멀리, 더 멀리 퍼져 나가 영원히 창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래서 서로 서가의 반대쪽 끝에서 상대의 책을 찢어 종이로 만들고 다시 옮겨 적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잘못 옮겨 적히는 경우도 생각보다 자주 있으며 오류는 다시 잘못 적히고 또 잘못 옮겨져서 이후의 판본은 완전히 딴 판이 되기도 한다.

  이들과 반대이자 가장 과격한 사서의 분파는 검열관들이다. 검열관들은 소거법이라는 방식을 신봉하는데, 무한한 책들 가운데 필요하지 않은 책들을 하나 하나 모조리 파괴해버리면 정리할 필요가 있는 책만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서가에 폭풍처럼 들이닥쳐서 엄숙한 얼굴로 책을 한 권 뽑아들어 한 두 장 넘기다가 지그시 눈을 찌푸리고는 집행인들에게 책을 내던지며 이 곳을 정화하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집행인들은 서가 전체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리거나 제지업자들에게 책을 팔아버리고 거짓에 미혹되어 감히 신성한 정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들 역시 함께 정화해버리는 것이다. 검열관들의 횡포는 미로 전체에 악명 높으며 검열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이들의 믿음은 흔들림없이 견고하다. 이제까지 검열관들에 의해 사라져버린 서가는 셀 수 없이 많다. 간혹 두 도서관의 검열관들이 서로의 서가에 대해 엇갈리는 판단을 내리면, 그 때는 두 도서관 중 어느 한 쪽만 살아남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다. 서가와 서가 사이에 피가 잉크처럼 얼룩져 번지고 수세기 동안 정리된 목록들이 한순간에 불타 사라지는 전쟁이.

  필경사들 가운데 자신이 반드시 똑같이 옮겨적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도,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미로의 무한에 더하려는 욕망은 언제나 있어왔다. 이 욕망의 부름에 응답하는 이들을 통틀어서 작가라고 부른다. 작가들이 왜 그러한 욕망을 느끼고 책을 쓰게 되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책에서 모은 지식을 추려 보다 통합적이고 완성된 책을 만드려고 한다. 헤아릴 수 없는 푸른 호랑이의 수의 속성에 관해서나 끝없이 갈라지는 길의 중국식 정원 양식, 사막의 패권을 쥔 가리워진 얼굴의 예언자에 대해 근엄하게 말하는 교수들을 생각해보라(그것들을 책이 아니고서야 미로의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어떤 작가는 자신의 비할데 없는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 글을 쓴다. 몸의 얼룩무늬가 문자를 이루는 표범들에 관한 목격담과, 반짝이는 은화에 대한 강박증, 경이로운 복권 추첨 풍습에 관해서. 글로 이루어지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세상을 반영하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작가들도 있다. 세상 모든 것을 담고 심지어 그 자신까지 반영하는 작은 구체, 불에 타지 않은 아들을 꿈꾸어 창조해내는 환영, 세번째 궤도를 도는 세계에 대한 백과사전. 더 냉소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그저 이미 쓰여진 것에 만족하지 못할 뿐이라고 하기도 하고, 자신은 사라져도 자신의 책은 또다른 사서와 필경사들에 의해 불멸하기를 바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비꼬는 시선에도 진실이 담겨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작가들이 미로를 확장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미로의 서가 수와 같을 것이다.

  작가에 관해서 이야기했으면 장난꾼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들 미쳤다고 하는 이 패거리는 의도적으로 바꿔 놓은 내용들로 가득찬 책이나 완전히 허구이지만 그럴 듯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말장난이 계속되는 책을 써서 무한에 더한다. 이들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지 설명하려는 심리학적 시도도 있었다-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이 따르면 이들은 미로의 혼돈과 혼돈의 무의미함에 압도당한 나머지 책, 미로, 또는 그 둘 모두를 동시에 증오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장난꾼들의 모독적인 태도는 경건한 사서들의 분노를 사고 있으며 광신적인 검열관은 이들을 흰개미와 다르게 취급할 필요가 있는지에 관해서 토론한다(박멸 방법에 대해서도.) 하지만 정확히 누가 장난꾼이고 어떤 책이 장난꾼들의 장난인지에 관해서는 이론이 많아지고 실체가 모호해진다. MCV가 끝없이 계속되다가 마지막 장의 두번째에 '오, 시간, 너의 피라미드들이여'라고 적고 있는 책은 어떤가? '아삭사사스 믈뢰Axaxaxas mlo'가 '뒤로 달이 떠올랐다'라는 문장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가? 장난꾼을 지목하고 작가와 책을 함께 불태워버리는 일은 일부 도서관들에 의해 여전히 행해지고 있으나, 정말로 그들이 장난꾼이냐고 물으면 화형 장작의 재가 식은 후에도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어떤 경우에서는 장난꾼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것이 분명해보이며, 검열관들의 횡포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장난꾼이라는 단어 자체에 넌더리를 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장난꾼이라는 개념 자체가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곧 그러한 모독적인 언사는 정화되었다. 불경건한 것 없이 신성함은 정의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불명확한 혼돈에 지나지 않는 까닭이다.



  이제 두번째 질문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미로 안에서의 삶은 전적으로 무한에 달려 있다. 앞서 말했듯이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이 안에서는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얻을 수 있다- 그 '충분한 시간'이란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무한의 속성이다.) 최초로 미로 안을 헤매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궁지에 몰린 채로 자신이 누구라고 믿는 습관을 벗어나 부풀어오른 곰팡이, 딱정벌레의 부드러운 속살, 통통한 흰개미 알을 입에 댔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 중에는 사람 속에서 자라는 포자, 육식성 딱정벌레, 알을 지키는 흰개미의 독침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남긴 기록에 의해, 혹은 미로의 서가 어디엔가에 꽂혀 있던 더욱 오래된 기록에 의해 먹을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지식들이 전승되었다. 기록이 남아있는 최초의 방랑자들은 거대한 설치류를 쫓거나 혹은 쫓기고 버섯 밭을 찾아다녔지만, 얼마 안 가서 농경과 목축이라고 할 만한 시도들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 많은 도시들은 아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방식에 따라 곰팡이 농장과 흰개미 사육장들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서가들에는 먹을 수 있는 책들도 있다. 텁텁하고 아무 맛도 없는 것이 대다수지만, 흐릿한 향이 남아있거나 치료를 위해 약초즙을 섞어만든 책-그런 책들은 읽는 이 혹은 먹는 이의 건강과 쾌유를 비는 기도가 적혀 있는 것 같다-들도 무한한 서가에 무한히 존재한다. 어떤 도시들은 이런 책들의 제조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여기는' 몇몇 도서관을 중심으로 특히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농경과 목축이 불확실한 미로 안에서 도시가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미로의 지층 여기저기를 흐르고 있는 수맥은 귀중한 서가를 젖게하는 재앙일 수도 있지만 도시의 입지에는 필수적이었다. 도시들은 처음에는 이런 샘들을 중심으로, 이후에는 지하수로와 거대한 운하들을 끼고 세워졌다.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교수들은 점잔빼면서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자시킬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짐으로써 비로소 도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로의 방랑자들을 한 군데로 모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미로-도서관의 압도적인 무한에 대한 두려움과 혼돈 가운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어 보이는 질서에 대한 미약한 희망일 것이다. 처음 방랑자들을 이끈 것은 지식을 담은 책을 쥔 선지자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단단하게 굳은 종이를 잘라 만든 벽돌로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자 의미는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원시적인 도서관이 창설될 때 실질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대치점에 선 냉소적인 자들이었다. 그들은 미로의 무한에 일찌감치 겁을 집어먹고 멀찍이 물러섰거나 스스로의 왜소함에 절망하고 굴복했다. 그들은 삶이란 아무 목적도 없으며 단지 우리는 책더미("책 무덤")의 한가운데 떨어졌을 뿐이라고 믿는다. 안심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선지자들이 낡아빠진 책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이들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곰팡이 농장과 흰개미 사육장의 지주들, 무심한 제지업자(어떤 시인들은 직업적 의식에서 죽음을 제지업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탐욕스러운 서적상이 되었다. 이들에게 책은 무한한 미로의 무한한 자원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의 삶은 다음과 같다 : 수많은 노동자들은 습기로 책장끼리 눌어붙고 압력으로 단단해지거나 무한한 시간동안 알아볼 수 없게 된 오래된 책 채굴장에서 곡괭이를 휘두른다. 채굴된 책들은 물에 개어져 곰팡이 사육장에 던져 넣어지고 그 위로 포자가 뿌려진다. 노동자들은 시시각각으로 찾아드는 굶주림을 피해서 곰팡이로 만든 빵과 딱정벌레 고기 조각에 종일의 노동을 팔고 지쳐간다. 제지업자들은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흰개미 침이 가득한 통에 던져 넣어 휘휘 젓는다. 이러한 작업은 거기에 잠시 부여되어 있던 의미를 빼앗고 태초의 공허한 백지로 돌려놓는다. 제지업자들의 작업에 분개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없다면 아무도 이 신성한 죄를 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필경사도 작가도 사서도 모두 종이를 구할 수 없을 터이다. 도시 외부와 내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서적상들은 도서관들과 열정적인 장서 수집가들을 위해 일하며, 미로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무력충돌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이따금 도서관들의 전쟁에 용병으로 고용되기도 하고 밝혀지지 않은 구역을 탐사하는 지도제작자들의 길잡이가 되거나 때로는 말 그대로 미로의 악당들, 약탈자들이 되기도 한다. 책은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일 뿐이기에 때로는 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다른 판본들을 불살라버리는 일도 있다.

   계획에 따라 심어진 발광성 곰팡이로 빛나고 발효한 책의 가스로 불을 밝히는 등이 매달린 도시들은 미로의 혼돈 속에서 언제까지고 뻗어나갈 듯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들도 미로의 무한한 시간 안에서는 밀폐되어 있다가 기압에 바스러져 버리는 귀중한 고서들처럼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두 세기만 지나도 명멸하는 도서관들과 도시들의 이름은 심지어 그것을 기록한 역사서조차 파기되기 십상이다. 가장 흔한 재앙은 화재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광원인 딱정벌레 기름을 태우는 횃불이나 흰개미집을 정제해서 만든 촛불은 부주의할 경우 서가 몇 개를 잿더미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는다. 물론 미로는 무한하기 때문에 공기 속에서 불붙는 잉크로 쓰여져 단 한번만 읽을 수 있는 책이나 불 속에서만 새빨갛게 글씨가 달아올라 읽을 수 있는 금속질 책도 얼마든지 있다. 화전민이라고 불리는 족속도 있는데, 이들은 서가에 불을 질러 빈 공간을 확보하고 잿더미 위로 금방 자라는 작은 버섯무더기를 키우며 불을 피하지 못해 그을려 죽은 동물 시체를 끌어간다. 배화교도라는 부류는 책을 불 속에 던져넣고 응시하는 것이 진정한 읽는 법이라고 주장하며 그들만이 흔들리는 불길 속에서 참된 의미를 본다고 말한다. 이들이 단순히 야만족이나 이교도가 아니라 장난꾼 가운데 일부라는 설도 있지만, 어지되었든 이러한 행동은 도시민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고 사서들에게는 흰개미들보다도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이 된다. 몇군데의 도서관이 연합해서 전쟁을 일으켜 불을 함부로 다루는 자들을 그들의 불 속으로 밀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몇은 반드시 끝없는 미로의 어디론가 도망쳤기 마련이고, 무한의 일부는 여전히 불타고 있을 터이다.

  도시를 위협하는 재앙은 그 외에도 많다. 무한의 가능성으로부터 무한히 기어나온 악몽들은 한숨섞인 체념으로  미로를 헤매는데 지쳤다고 말하는 도시민들을 덮친다. 많은 역사서들이 셀수 없이 많은 도시들의 멸망과 도서관들의 최후의 날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도시는 효율적인 흰개미떼의 교배에 성공했지만 사육장을 벗어난 일부가 도시 전체를 뒤덮을만큼 거대하고 견고한 돔을 만들었고 거주자들은 모두 질식해서 죽었다. 신을 의미하는 단어만 갉아먹는 파괴적인 좀벌레들의 증식으로 인해 붕괴한 '말씀'의 도서관도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의지해온 수원이 납으로 된 잉크를 사용하는 서가에 닿아 도시 전체가 독살당한 사건도 있다. 미로 전체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어떤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짐승-그 짐승은 반은 희고 반은 검으며 두 눈을 번갈아 감는데 맛은 꿀처럼 달다고 한다-에 의해 멸망당한 도시는 몇이나 된다. 도시민 전체가 점차 시력을 잃는 희귀한 전염병이나 몸 전체에 어떤 문자가 돋는 괴질에 관한 기록도 있다. 경전은 미로 전체의 구획을 정리하는데 거의 성공했던 고대의 한 도시를 신의 분노가 내리쳐 모두 뒤섞어버린 사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시민들의 소박한 소망을 부수어 놓는 재앙은 다름아닌 그들 내부에 있다. 왜냐하면 미로 안의 방랑자들이 더 이상 방랑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다시는 방랑할 수 없게 되는 때 뿐이며, 무한 속에서 정체는 찰나에 지나지 않고 완벽한 정지 상태는 철학자들의 사고 장난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로 안에서 이미 모든 규칙이 무의미해졌는데 도시가 강요하는 규칙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매일 같은 곳에서 잠들고 깨어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종이채굴 노동이나 곰팡이 수확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미로 안에 던져진 사람이 다시 회의를 품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까지 길지 않다. 피로가 권태를 넘어설 때 그들은 엄습하는 확실성의 회의를 피해 불확실한 미로 속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다. 유목민이라 불리는 방랑집단은 먼 옛날 모든 도시민들이 떠나 멸망해버린 도시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미로를 방랑하며 이따금 도시에 들러 서적상과 거래하고 곰팡이로 만든 빵을 사들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어디까지 갔고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순찰대라는 조직은 도시와 도서관들의 방식에 반기를 들고 따로 갈라져 나왓다. 본디는 도시 주변의 위협요소를 미리 확인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맡은 집단이지만, 도시로부터 벗어난 후로는 유랑하며 홀로 여행하는 방랑자들과 접촉하거나 곤경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활동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처럼 수많은 책들이 이 곳에 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가 무한한 미로 속을 헤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해 누구든 제각기 답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하고 한 때 거의 진실인 것처럼 여겨졌던 믿음은 이것이다- 단 하나의 진정한 책, 모든 진리를 담은 책이 이곳 어디엔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그 한권의 책을 찾기 위해 미로 전체를 뒤지고 목록화 하는 일에 몰두한다. 책장을 펼치면 자신이 누구이고 미로가 어째서 생겼으며 혼돈 속에 예비된 미래와 과거가 모두 풀려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왜 그 책이 숨겨져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시험이라고도 하고 본디 은닉이 신의 속성(그 책은 보통 신이라고 불린다)고도 하지만 열광적인 사서들을 제외하고는 납득하기 쉬운 설명이 아니다. 이 믿음에는 여러가지 다른 판본도 존재한다. 그 책이 존재하고 그 책을 읽은 어떤 사서가 있으며 그 사서는 전지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거나, 그 책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고 어떤 젊은 작가가 자신에게 예비된 운명을 알지 못한 채 그 주위에서 맴도는 비밀결사의 손길에 의해 그 책을 완성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책과 학자들을 모두 땅 속에 파묻어버린 황제를 떠올린다. 어떤 사람은 무한히 변화하는 모래의 서를 두려워한 나머지 지하 열람실의 어느 서가에 책을 숨겼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파괴를 피해 지하로 숨겨진 거대한 도서관의 장서들과 사서들이 마침내 그 기억을 잃고 무한히 미로를 확장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생물학자라는 교수들은 책 틈을 기어다니는 좀으로부터 더 크고 복잡한 벌레들이 생겨났고, 또 거기서 더 지성적이고 감수성 있는 것들이 출현하면서 우리가 생겨났다고도 한다.(이 주장은 최근의 흰개미 교배 성공으로 인해 생물학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함께 인기를 얻고 있다) 미로를 수색하려는 노력 자체가 미로를 무한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비슷하게 책에 쓰여 있는 것은 모두 무의미한 얼룩일 뿐인데, 그것을 글로 만들고 읽으려는 노력이 무의미 속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책의 개수를 무한으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 모든 미로란 어떤 책 한 권에 들어 있으며, 또 그 책은 미로의 어딘가에 있고, 그 미로는 또 어떤 책 안에 들어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의 사서들에 의해서, 혹은 화전민들의 불길 속에서, 흰개미집에 갇혀서 죽었다. 그처럼 여러번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신이 미로 속에 있고, 미로는 또 미로 속에 있는 까닭일 것이다. 미로라는 것은 반드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며 아드리아네의 실타래를 끌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혼돈의 아스테리온을 살해하고 더이상 무한이 아닌 무한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섞인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미로에 던져져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로의 바깥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겠는가? 그 책을 완성하기 위해 거대한 문자 직조기가 인식의 지평 너머에서 철걱거리면서 활자를 모든 가능성에 따라 조합하고 있고, 미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로가 무한이라는 주장. 미로는 가두기 위한 것이며 여기에 던져진 우리는 수인에 지나지 않고 낡아 부스러지는 책 같은 죽음만이 여기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염세적인 주장. 신적이지만 눈먼 도서관장이 그의 무한한 서가를 더듬거리고 있고 책 틈의 좀 같은 우리로써는 그를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주장. 미로는 구의 형태이고, 방랑자들은 그 표면에서 구의 끝나는 면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은 그렇다면 그 구의 중심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한가지 경험에 미루어서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오랜 시간의 모험 끝에 죽을 뻔한 위기를 몇번이나 넘기고 겨우 살아난 뒤-그것이 귀중한 고서를 쟁취하려는 서적상과의 검투에 의한 것이든, 광포하게 날뛰는 거대한 딱정벌레에 의한 것이든, 고대 도서관의 회랑에서 서고의 도적을 방비하는 함정에 의한 것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는 과도한 출혈로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가운데 맞은 편의 서가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심코 책을 한권 빼들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바로 이 문장을 읽게 되는 순간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로 어딘가에는 이 문장의 이후에 관해서 쓰여진 책이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로는 무한하고,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으니까. 미로 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양자를 헤맨다면... 그러나 그러한 책을 찾으려는 노력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관한 믿음들. 이해할 수 있는 의미에 관한 믿음들. 혼돈 가운데 찰나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질서에 관한 믿음들. 어깨를 스쳐간 서가의 책에 어떤 진리가 쓰여 있는지 누가 알 수 있으며, 설령 그것이 진리라고 한들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진리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미로에는 오로지 미로 만이 존재하고, 무한에는 오로지 무한 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한 모퉁이이고,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미로의 다음 모퉁이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미로일 것이라고는 누구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보르헤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금방 눈치채셨겠지만, 보르헤스에게 바치는 나름의 팬픽이라고 하겠습니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우수작 마지막 선물1 2009.07.01
우수작 마지막 겨울 上 2010.11.26
우수작 마지막 겨울 下 2010.11.26
가작 약물요법ZA 2015.12.31
후보작 비비 2017.12.15
가작 거미에게 나비를 2011.10.28
우수작 무엇을 먹을 것인가 2003.08.30
가작 죽음의 무도 2009.07.31
가작 책의 미로 2010.04.30
가작 오지맨디어스 2010.11.26
가작 갈매움과 돗뫼 2012.10.20
우수작 불지 않을 때 바람은 어디에 있는가4 2013.03.29
우수작 맹렬한 호랑이보다 맹렬하게 2014.03.01
가작 그림자 매듭 2010.03.27
가작 죽음과 소녀1 2009.03.27
우수작 스타 글라디에이터 2010.04.30
가작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 2014.03.01
우수작 환타지 소설1 2003.11.28
우수작 추적자1 2008.12.08
가작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2009.03.27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