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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죽음과 소녀

2009.03.27 11:4803.27

죽음과 소녀

1.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정말 짜증나. 지하철에서 변태새끼 만났을 때보다 더 짜증나. 그리고 같은 짓을 체육선생한테 당했을 때 보다 더 짜증나.
뒤집어진 버스 안에서 나 혼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건, 사람처럼 생긴 개새끼인지 아니면 그냥 개새끼인지 구분 안가는 선생들 보다 더 짜증나.

  그래. 거꾸로 매달려 있어. 버스가 뒤집어졌거든.

  2학기 막바지에 문화체험인지 뭔지 한다고 몇 만원씩 걷어가 놓고, 기껏 데려 간 데가 서울이야. 그러고는 박물관 두어 군데랑 청계천 둘러보고 오는 게 전부였다니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청계천에 무슨 얼어 죽을 문화가 있어? 그건 그냥 기다랗게 파놓은 콘크리트 수조잖아. 그게 문화라면 우리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연안부두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할 거야.
  이야기가 잠깐 딴 데로 빠졌는데, 시작은 그 ‘문화’체험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날은 흐렸고 비도 부슬거리기 시작했지. 고속도로를 빠져 남동공단 쪽으로 나오는 구간이었는데 거긴 내 기억에  S자로 두 번 정도 크게 휘는 길이었어. 진입하기 전에 길가에는 40km로 시속을 유지하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버스는 누가 봐도 40km로 달리지 않았어. 버스기사는 아마 그 길에서 관성 드리프트라도 하고 싶었나 봐.

오는 내내 시끌벅적 하던 애들은 거의 모두 잠들어 있었지. 하지만 나는 잠이 어렴풋이 깨던 참이었어. 그리고 소리를 들었지. 뒤에서 서너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똑똑히 들을 수 있었어. 타이어가 찢어지는 듯 한 소리였어. 그와 동시에 가드레일을 들이 받는 소리가 이어졌지.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었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거든. 누군가 내 눈에 백열등을 들이 댄 것처럼 말이야.

그러고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적막.

그리고 하얀 빛.

서 서히 빛 속으로 어둠이 흘러들어 왔어. 그리고 몸이 알려 주었지. 통증이 가슴과 허리에서 느껴졌고, 온몸의 피는 머리로 다 쏠린 듯 한 느낌이었어. 눈앞에 하얀 빛이 한가득  차있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서서히 물러가자 버스 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 한 거야. 아직 초점이 흐릿해서 뭐가 뭔지 분간 할 수 없었지만 상황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어. 적막뿐이던 내 귓속으로 비명과 울음소리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거든.

버스는 뒤집어져 있었어.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 말고 유일하게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사람이었지. 버스 안에서 누구도 안전벨트를 매라고 한 사람은 없던 거야. 기사아저씨나 담탱이나 어느 누구도. 나 역시 서울로 가는 길에는 벨트를 안 매고 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좀 달랐어. 자리에 앉았을 때 안전벨트의 한쪽이 자리 중간에 풀어져 있었거든. 그걸 모르고 버클의 뭉툭한 부분에 그대로 앉았던 거야. 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어. 잠시 엉덩이의 꼬리뼈 부분이 욱신거려 손으로 거길 문지르다가, 다시 앉아 별 생각 없이 벨트를 매었지. 입으로는 씨발 씨발 거리면서. 그걸 보며 킥킥대었던 옆자리의 영지는 몸 반쪽이 차 밖으로 나가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어. 같은 교복을 입고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아무렇게나 구겨져있는 아이들 속에서 영지를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늘 그 애가 신고 온 오렌지색 캔버스화 때문이었지. 그나마도 한쪽은 벗겨져 있었어. 영지는 좀 전 까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우리집 맞은편 빌라에 살아. 그런 애가 그 꼴로 엎드려 있는 광경은 보고 싶지 않았어. 짜증났어.
그래, 짜증부터 치밀어 오르더라고.

   버스의 유리창들은 거의 다 박살났고, 그리로 흙과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쏟아져 들어와 있었지. 비는 아까보다 더 거세어진 것 같았어. 뒤집어진 차는 원래 천정이었던 곳과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흩어져 있었지. 몇몇은 우는지 웃는 건지 분간 안가는 소리를 지르며 차창 밖으로 기어나가기 위해 밀려들어온 흙을 미친 듯이 파내고 있었고, 어떤 애는 그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만 있었어. 의자에 거꾸로 매달린 데다 앞좌석이 밀려 들어와 가슴팍을 누르고 있는 처지에 남 걱정 할 건 아니었지만, 그 애는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로 울고만 있었지.

- 쟤 피난다…… 쟤 피나.

  의자에 끼어 있지 않은 왼팔을 들어 그 애를 가리키며 한 소리가 겨우 ‘쟤 피난다.’ 였어. 아무도 내 말을 못 들은 게 오히려 다행이지. 하긴 비명과 곡소리, 그리고 빗줄기가 뒤집어진 버스를 때리는 와중에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일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는 곧, 내가 이렇게 혼자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당장 나를 내려줄 사람은 없다는 소리였지. 나는 왼팔을 밀어 넣어 벨트를 풀어 볼 까 했지만 더럭 겁이 났어. 만약 벨트를 풀자마자 몸이 그대로 곤두박질친다면? 먼저 양팔로 몸을 지지 하고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전에 양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궁금했어. 고개를 아래로 숙여, 그러니까 지금 위치에서 위를 보며 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더라. 영화 같은데 보면 사고를 당하고 뒤늦게야 자기 팔이나 다리가 잘려 있는걸 알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있잖아? 내가 그 꼴일까 봐 무서웠지.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어. 감각이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말이야. 양쪽 발가락이 모두 움직였어. 가슴과 허리에 통증은 느껴졌지만 그건 그냥 앞좌석에 끼어 그런 것 같았어. 찢어지거나 부러진 건 일단 여기서 내려가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괜찮은 것 같았어.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어. 양쪽 발가락이 움직인 다는 사실에 말이야. 갑자기 미안했어. 한쪽 신발이 벗겨 진 채로 엎드려 있는 영지를 보니 미안했어. 반대편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창문이 있는데도 흙으로 막힌 창을 맨손으로 파내고 있는 아이를 보니 미안했어. 살아서 기쁘다는 사실이 미안했어.

2.

  앞에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 다 취소!

  우아악! 엿 같아서 정말!!!

  지금부터가 본론이니까 들어봐.

  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병원으로 옮겨 진 것은 사고가 난 뒤 두 시간이 지나서였어. 나는 그대로 거꾸로 매달린 채 삼십 분 정도를 낑낑대다가 겨우 몸을 빼냈지. 물론 한쪽 다리를 마저 빼내다가 의자를 밟고 몸을 지탱하던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떨어지긴 했지만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어. 그 사이 고속도로 출구는 아수라장이 되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우리가 구겨진 버스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걸 구경만 하고 있더라. 몇몇 사람들은 차를 멈추고 버스가 추락한 경사면을 힘겹게 내려왔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제대로 몸을 가누며 걷는 것조차 힘들었을 테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선의와 용기를 끄집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몰론 그 외 나머지는 멀뚱히 바라보는 구경꾼들뿐이었지만. (내가 도로 위로 끌어 올려 질 때 폰카로 내 얼굴 찍으며 히죽대던 새끼, 뒈져버려라.)

  앰뷸런스를 타고 나서 병원까지는 도통 기억이 안 나. 화나서 뭐라고 막 지껄였던 것 같은데 그게 구급대원들에게 한 욕이 아니길 바랄 뿐이야. 어쨌든 두 발로 걷는 게 가능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어. 응급실에서 의사가 이것저것 물어 보고 나서 몇 가지 검사를 받은 것 같은데 기억이 드문드문 날 뿐이야. 허리는 괜찮아졌지만 가슴이 아팠고, 어지러움이 사라지지 않았지.

   엄마가 병원에 온 건 내가 병원에 도착한지 두어 시간 정도 지나서였어. 야간에 핸드폰 조립공장에서 일하는 엄마는 낮 시간은 대부분 잠들어 있기 때문에 연락을 늦게 받았던 거야.

건너편 빌라에 사는 영지네 엄마가 전화를 받고는 혼비백산해서 학교로 뛰어 갔었대. 학교에서도 애들이 간 병원이 여러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병원 이름을 되는 대로 이야기 해 줬나 봐. 영지네 엄마는 길병원에 갔다가 내 생각이 나서 우리 집에 들렀다는 거야. 엄마가 낮에는 주무시는 걸 알기 때문에 전화도 해보고 큰소리를 치며 현관문도 두드렸나 봐. 엄마는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대. 두어 군데의 병원을 돌아 내가 실려 온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말이야. 내가 하도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앉아 있어서 그때까지도 꿈같이 느껴졌다고 그랬어.

- 괜찮아. 별로 안 다쳤어. 이마하고 허벅지만 조금 찢어 졌는데 몇 바늘 꿰맸어. 근데 우리 의료보험 돼?

  내 말에 엄마는 갑자기 침대 옆에 주저앉았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었지. 그냥 내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만 연발 하는데 그게 누구에게 감사하다는 소리인지는 모를 일이고.

  10분 정도 사고 때 이야기를 해주니까 엄마는 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어.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내 환자복을 벗기며 다른 상처가 없는지 찾아 볼 정도였다니까. 어쨌든 그러고 나서야 나는 영지엄마에게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군지 물어 봤는데, 글쎄 그게 영지였다는 거야.

-영지가 어떻게 전화를 해?

  엄마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무슨 소리야? 했지.

- 영지 살아 있었어? 내가 버스 밖으로 나올 때 까지도 영지는 머리부터 흙에 반쯤 파묻혀 있었어.

   엄마는 크게 한숨을 쉬며 ‘용케 살았네. 제 엄마한테 전화까지 할 정도였으면 괜찮은가 보네.’라고 넘어갔지.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겼어. 신발 한 짝만 신은 채 흙 속에 파묻혀 있는 광경이 내가 본 영지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다 여겼지.


  내가 실려 왔을 때보다는 응급실 분위기는 많이 차분해진 편이었어. 몇몇 상태가 위험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큰 상처는 없었나 봐.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리긴 했는데 다른 병상에 들릴까 봐 조금씩 억누르는 듯한 웃음 소리였지. 영지가 사진(그게 엑스레이를 말하는 건지 CT촬영을 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을 찍으러 간 사이에 영지 엄마가 내 병상 쪽으로 와 정말 다행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 적어도 내가 있는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죽은 아이는 없다고 하셨어. 엄마와 영지 엄마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섰어. 엄마가 따라 나오려고 했지만 난 괜찮다고 그랬어. 머리가 좀 멍한 것 빼고는 화장실 정도는 혼자서 갈 수 있을 것 같았지. 몇 시간 전에 앰뷸런스로 실려온 환자 치고는 쌩쌩하게 걸어 다니는 게 위화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괜찮았어. 오히려 살짝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몰라.

  안도감. 그래 안도감이었어.
  그걸 보기 전까지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통해 그걸 보기 전 까지는 말이야.

  죽음.

  거울을 통해 비친 내 모습에는 등 뒤에 ‘죽음’이 붙어 있었어.
  그게 어떻게 ‘죽음’인줄 알았냐고? 자기를 그렇게 소개 했거든.

- 난 ‘죽음’이다.

  아, 그러세요? 저는 한수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여자화장실이에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죽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뒷말은 자칫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
  아니지. 아니야. 시커먼 연기 덩어리 같은 몸뚱이에 전구를 박아 넣은 것 같은 눈을 가진 형체가 등에 매달려서 있는데 인사말을 고민 할 때가 아니잖아! 비명을 질러야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뒤로 넘어져 기절하던가 해야지! 뭐야, 이거! 도대체 뭐야? 나 미친 거야? 아니면 이미 죽은 거야? 등짝에 왜 저런 게 붙어 있는 거야?
  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버스로 자이로 드롭을 타고 나온 뒤에 멀쩡한 게 보일 리 없다’ 였어.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말야. 일단 기절하거나 비명을 지를 타이밍조차 놓쳐 버렸으니 멍하게 서있을 뿐이었지. 그러다 화장실 세면대 옆의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어. 손을 씻고 있던 아주머니는 나를 쳐다보더니 물었어.

- 학생도 그 버스에 타고 있었어?

- 네.

  아주머니는 갑자기 ‘어이구’ 하며 내 어깨를 토닥거렸어.

- 많이 다친 데는 없고?

  ‘다친 데는 별로 없지만 등에 ‘죽음’이 붙어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 나는 거울을 힐끔거렸어. 여전히 그곳에는 시커먼 연기덩어리 같은 죽음을 등에 달고 있는 나와 아주머니가 보였지만, 아주머니의 눈에는 ‘죽음’이 보이지 않았나 봐. 어쨌든 내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머니는 꼭 우리 엄마 같은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았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지을 수 있는 표정을 몇 가지씩 갖고 있나 봐.

- 다행이다, 에구……다행이야.

  아주머니가 젖은 손을 웃옷자락에 대충 닦으며 화장실을 나선 뒤,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른 사람들이 없나 살피고 나서 다시 거울 앞에 섰지. ‘죽음’은 여전히 내 등에 매달려 있었어.
  대체 이건 뭐야?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는 이미 죽은 걸까? 지금 내 등에 매달린 것은 나를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보내진 저승사자 같은 걸까? 조금 타이밍을 못 맞췄지만, 지금이라도 여기서 기절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나를 혼자 화장실에 보낸 엄마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며 괜히 자책 하지는 않을까?
  많은 질문들이 머리를 스쳐갔어. 어쩌면 머리를 다친 걸지도 몰라. 그래. 머리를 다쳐서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거야. 생각해봐. 몇 바퀴를 구르다 처박힌 버스에서 멀쩡히 살아 나왔으니 적어도 정신줄 정도는 놓는 게 세상 이치에 맞는 일이잖아.

- 수경아. 괜찮아?

어느새 거울에 엄마의 모습이 비쳤어. 물론 ‘죽음’도 여전히 보였고.

- 뭐해?

- 아, 그냥. 나가려던 참이야.

- 의사선생님이 찾으셔.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어.

-괜 찮은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혹시나 해서 등 뒤를 흘깃 보았지만 ‘죽음’은 보이지 않았어. 내가 뒤를 돌아보자 엄마가 잠시 걸음을 멈춘 다음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어. 그런 표정 짓지 마.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자기가 뭘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지 마.

의사는 느릿한 말투로 몇 바늘 봉합한 것 말고 다른 심각한 외상은 없다고 설명해 주었어. 몇 군데 타박상이 있지만 물리치료를 받으면 괜찮아 질 거라고도 했지. CT촬영에서도 뇌출혈은 안 나왔지만, 교통사고의 특성상 후유증이 염려되니 한동안은 통원치료를 받는 게 좋을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어. 나는 등 뒤에 ‘죽음’이 붙어 있으면 어디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할 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지. 뻔하지 뭐. 어디겠어?

그리고는 의사가 잠시 어머니와 이야기할 게 있다며 한쪽으로 엄마를 불러내었어. 볼 수 있는 건 엄마의 등과 의사의 표정뿐이라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몰랐지. 워낙 표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라 더 그랬어. 다행히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었나 봐. 돌아서는 엄마의 얼굴도 그 의사처럼 무표정 했거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단 집으로 가도 좋다는 말에 엄마는 안심한 듯 보였지. 다만 옷이 문제였는데, 병원에 실려 올 때 입고 있던 교복은 걸레로도 못 쓸 상태였거든. 엄마가 내 옷을 가지러 집에 간 동안 나는 다른 병상의 아이들에게 가볼까 했어. 그렇지만 어쩐지 그 애들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서워졌어. 영지조차도 보는 게 무서웠지. 그 애들 등에도 죽음이 붙어 있으면 어떡하지? 혹시 그 애들이 내 등에 붙은 죽음을 알아보는 건 아닐까? 딱히 논리적으로 들어맞지 않는 소리란 건 알지만 어쩐지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애들에게 다 같이 죽음이 붙은 건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지.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꿈조차 없는, 짧지만 깊은 잠이 들었어. 엄마가 몇 번 흔들어서야 겨우 눈을 뜬 나는 잠시 동안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었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응급실 병상 위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입을 옷이 든 쇼핑백을 들고 서 계셨지.

  저녁 무렵의 버스는 한산했어. 버스에 오르기 전 까지 만해도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본 ‘죽음’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지. 하지만 자리에 앉아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죽음’이 매달려 있었어. 나는 눈을 질끈 감았어.

  다 사라질 거야. 괜찮아 질 거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어.

  차창에 기대면 유리창에 비친 죽음이 더 가깝게 보일 것 만 같았어.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안 하면 돼. 그럼 사라질 거야.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마. 그냥 조용히 사라져 줘.

  내가 몸을 엄마 쪽으로 기대자 엄마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지. 가늘고 앙상한 손으로. 마침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는 오늘 내가 탔던 버스의 사고소식이 뉴스로 나오고 있었어. 창밖을 보던 엄마는 나를 감싸 안은 손에 힘을 주었어. 마치 내가 어디론가 달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엄마는 내 어깨를 잡았지. 엄마는 조용히 울고 있었어.







3.

  현관 앞에서 엄마는 낮 동안 붙여진 광고지며 배달음식점 소개 책자들을 모아서는 빌라 앞에 내다 버리고 오겠다고 하셨어. 나는 불 꺼진 집안에 혼자 들어가는 게 싫어 엄마가 준 집 열쇠를 그냥 손에 쥔 채 들고만 있었지. 잠시 동안, 엄마가 사라진 복도는 어둠이 감돌았어. 복도의 등은 움직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켜지는 종류라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등이 켜졌겠지만 나는 꼼짝 않고 서 있었어. 만약 불이 켜진 다음 내가 보기 싫은 어떤 것이 갑자기 빛 속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잠깐이었지만 차라리 어둠 속이 편안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서 있었어. 어둠 속에서.

  계단 쪽에서 불빛이 살아나고,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 그리고 복도의 등이 켜졌어.   제일 먼저 엄마의 얽굴이 눈에 들어왔어. 그건 마치 거대한 산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 바다가 뒤집어져 모든 것을 삼키고, 믿었던 모든 게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는 얼굴 같았어. 엄마는 황급히 뛰어와 나를 안았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그렇게 안 고 있다가 내 손에 들린 열쇠를 빼앗다시피 잡아채고는 현관문을 열었어.

  집안은 어지러웠어. 아까 엄마가 옷가지를 가지러 들렸을 때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 옷장문과 서랍들이 그대로 다 열려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도둑이라도 들었던 줄 알았을 거야. 엄마가 방 안을 치우는 동안 나는 안방 한 구석에서 엄마가 치워야 할 짐처럼 앉아 있었어. 엄마는 정리하려는 건지 아니면 더 어질러 놓으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부산스럽게 움직였어. 대충 정리가 끝날 때 까지도 나는 그냥 앉아 있었지. 다른 때는 안 그랬는데. 엄마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답답해서 ‘걸레는 빨아서 써야지 바닥 닦던 걸로 서랍장을 닦으면 어쩌자는 거야?’, ‘구석에 먼지는 엄마랑 내가 마시지 누가 와서 대신 마셔주는 줄 알아?’ 등등 잔소리를 해가며 유난을 떨었는데 말이야.

  하여튼 청소가 얼추 끝난 뒤 엄마는 공장에 전화를 걸어 하루 쉬겠다고 했어. 통화가 길지 않았던 걸 보면 공장 쪽에도 이미 소문이 돌았던가 봐. 하긴 우리 학교 다니는 애들의 부모 중 몇 명은 그 공장에 나가고 있었을 테니까.

엄마와 나는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 내 방으로 갈 까 했지만 그러긴 싫었어. 엄마는 마치 남의 집에 온 사람처럼 방 한가운데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했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던 것 같아. 밤중에 다시 깨었을 때는 엄마가 가늘게 코고는 소리를 내고 있었어. 나는 살금거리며 이부자리를 빠져 나와 화장실로 갔어. 불을 켜고 거울을 보면 여전히 ‘죽음’이 등 뒤에 붙어 있을까?

  불을 켤 필요도 없었어. 어둠 속에서도 그 두 눈이 내 등 뒤에서 있는 게 보였거든. 불을 켰어. 죽음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은 연기와 같은 몸뚱어리에 머리와 몸통을 구분하기 힘든 형상이었지만 팔처럼 보이는 게 양쪽으로 하나씩 나와 있기는 했어. 나는 천천히 거울 속의 ‘죽음’을 살펴보기 시작했어. 보고 있자니 그것은 연기와 같지만 연기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어두웠지만 형체는 또렷해 보였어. 나는 다시 한 번 두 눈을 질끈 감아 보았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것이 사라져있기를 바라며. 하지만 눈을 떠도 ‘죽음’은 여전히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더군. 부들부들 떨리는 몸이 진정되길 기다리며 몇 분을 서있어야 했지. 그리고 참다못한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 입안이 말라 목소리가 갈라졌어.

- 나를 데리러 온 거야?

‘죽음’은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가만히 있기만 했어.

-내가 죽는 거냐고.

-모든 것은 죽는다.

‘죽음’이 말했어.

-하지만 지금 순간 죽음은 멈춰있다. ‘죽음’이 너에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지. 모든 죽음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죽음’의 목소리는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도 모호했어. 그리고 귓가가 아닌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지.

- 나는 영혼이 있는 모든 것들의 죽음, 그 자체다. 영혼을 가진 것들의 죽음은 모두 순서가 있다. 그래서 ‘죽음’은 순서에 따라 돌아다니며 영혼을 거두지. 네 차례가 되었다. 그래서 너를 찾아 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네 영혼을 데려 갈 수 없더군. 그래서 기다리는 중이다.

- 기다리다니. 뭘?

  목소리는 더 갈라지고, 뱃속에서 무언가 시커먼 게 치밀고 올라 올 것 같은 기분이었어.

-간혹 이런 일이 생긴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더라도 어느 순간엔가 멈추거나 헛도는 일이. 그럴 때 톱니바퀴들을 다시 돌게 하는 게 나의 일이다. 넌 아까 그 버스에서 죽어야 했고, 다른 죽음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네가 죽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죽음이 멈춰있다. 네가 죽어야 세상은 죽음을 되찾는다.

살다 살다 이런 좆같은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이야.

내 무릎이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의 무릎과 바꿔 치기 당한 게 아닐까 싶어졌어. 관절이란 게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후들거리기 시작 했지. 잠시 주저앉고 싶었지만, 앉을 곳은 화장실 변기뿐이었어. 하지만 변기 위에 앉아 ‘넌 죽는다.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지. 잠시 무어라 대꾸를 해야 할 까 생각했지만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어. 어지럽고, 구토가 몰려왔어.

- 그럼 나를 지금 죽이겠다는 거야?

나는 힘겹게 목소리를 짜 냈어.

- 나는 죽음 그 자체일 뿐. 죽이는 건 영혼을 가진 자들의 일이다. 네가 선택해야 돼.

응? 내가 한다니? 자살이라도 하란 거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죽음은 내 생각을 알아 차렸는지 먼저 이야기 했어.

-그저 의지를 갖고 선택 하면 된다.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만약 싫다고 하면?

-기다린다. 네가 원할 때까지.

뭐야. 그런 거였어? 별거 아니잖아. 아, 지금은 괜찮으니까 한 70년 뒤에 다시 찾아 주세요. 이러면 되는 건가? 70년도 너무 길다. 하긴 그 나이 되어서 치매로 골골하거나 자식새끼 문제로 골머리 썩게 된다면 그럴 필요 없겠지? 그냥 ‘제가 찾을 때 다시 방문해 주세요.’ 하면 되는 거 아냐?

- 대신 그때까지 세상의 모든 죽음은 멈춰있다. 너를 비롯해서, 영혼이 있는 모든 것들은 죽지 않는다.

  나는 잠시 그 말의 의미를 이해 해보려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어.
  지금 당장 죽을 필요는 없지만 내가 죽지 않는 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는 소리인가? 아니, 영혼이 있는 모든 것들이라고 그랬지. 그럼 개나 소나 돼지나, 고양이나, 새들도? 갑자기 어지러워졌어.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아서가 아니라,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말이야. 정말 변기 위에 주저앉아야겠어. 그럼 ‘죽음’을 볼 일도 없을 테니까.
  변기 위에 앉아 휴지걸이를 바라보며 죽음이 사라진 세상을 고민하게 되다니. 또다시 화가 났어. 아까보다 더.

- 말도 안 돼!

  나는 벌떡 일어나 거울을 향해 소리쳤어. 하지만 죽음은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지. 그때 화장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엄마가 내 목소리에 잠을 깨 번개처럼 일어나 달려 온 거야.
  미처 뒤를 돌아보지 못한 내 눈에는 거울에 비친 엄마의 얼굴이 보였어. 엄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지. 오늘 하루 동안 엄마의 저 표정을 몇 번이나 보는 건지 모르겠어. 엄마의 표정 만 본다면 오늘 세상의 모든 산은 수백 번을 뒤집어지고 바다는 수천 번 끓어올랐던 것 같아.
  결국 나는 아침까지 엄마의 품에 안겨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어. 엄마는 내가 수소가스를 채운 풍선이라도 되는 양 어디론가 날아갈까 꼭 끌어안고 있었지. 나는 계속 ‘죽음’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 했어. 죽음이 멈춘다는 것. 그게 나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도 죽음이 멈춰 있다는 것. 머릿속으로 그려보려 했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어.
  모두가 죽지 않는 다니. 그럼 지금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죽는 사람이 없다는 걸까? 사람뿐 아니라 영혼이 있는 것들이라면, 동물들도, 물고기들도, 식물들도? 그것들도 영혼이 있는 존재들에 속할까? 수십 수백 가지 질문들이 떠올랐어.
다음날 아침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죽음이 멈춘다는 것의 의미는 알게 되었어.




4.

  아침뉴스는 별 것 없었어. 물론 세상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 챈 사람들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아침까지는 평온했어. 물론, 지난 밤 사이에 지구 반대편의 세상은 혼란의 시작을 느끼고 있었겠지. 그리고 이곳도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지난 밤사이,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걸. 와! 죽은 사람이 없다니! 그거 좋은 거 아냐? 라고 이야기 할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생각해 봐. 죽어야 할 사람들의 죽음이 유예되었어. 그게 무슨 의미냐 하면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날아간다 할지라도 죽지 못한다는 이야기야!    자살하겠다고 한강에 뛰어들었지만 폐까지 물이 가득 차는 고통을 당하고도 죽지 못해 결국 헤엄쳐 나온 중소기업 사장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뉴스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 했어.   엄마가 어제 사고로 인한 학부모회의 때문에 학교에 간 사이 나는 인터넷으로 포탈 뉴스 페이지들을 계속 새로 고침 하고 있었지. 처음에는 뉴스거리로도 취급 받지 못하던 황당한 이야기들이 점점 뉴스로 올라오기 시작 했어. 뉴델리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시위대들의 방화로 어린아이 둘이 전신화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못했어. 대신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겠지. 스페인에서는 열차 탈선사고가 일어났지만 역시 사망자는 없었어. 하반신이 잔해에 깔려 거의 으깨지다시피 하고 수 리터의 피를 흘린 사람도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어.    안산의 어느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를 잘못 조작해서 머리가 잘린 필리핀 노동자는 병원으로 옮겨 질 때 까지도 숨이 붙어 있었다고 해. 잘려나간 머리는 숨을 쉬려는 듯 입을 끔뻑였다는 목격담이 인터넷 게시판들을 통해 퍼져 나갔지. 아직 모든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 시켜 생각 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모두들 알아차릴 분위기였어.

세상에서 죽음이 멈췄다는 것을.

엄마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안방의 화장대 거울을 향해 가위를 집어 던지려던 중이었어. 엄마는 신발도 못 벗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 왔지. 이미 현관 옆의 거울이 박살난 것을 보고 그랬던 거야. 나는 집안에서 내 모습이 반사되는 모든 물건들을 다 박살내려 했어. 비명을 지르며 엄마가 달려들어 내 손에 든 가위를 뺏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현관의 거울과 안방의 텔레비전, 화장실의 거울을 해먹고 난 다음이었지.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까지 안 깬 게 천만 다행이야. 그럼 엄마가 나를 정말로 죽이려 했을지도 몰라.) 나는 우두커니 서서 거울 속의 죽음을 바라보았어. 엄마는 가위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어. 마치 그 가위가 죽은 나의 시신이라도 되는 양 부여잡고 울었어.

- 다치겠다. 그거 이리 줘.

  내가 가위를 달라고 손을 내밀자 엄마는 울음을 멈췄어. 겁에 질려 있었지. 나는 엄마에게 움직이면 유리조각에 다칠 수 있으니 가만있으라고 그랬어. 정작 신발을 신고 있는 건 엄만데 말이야. 그리고는 바닥에 흩어진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파편을 피해 현관으로 나가 슬리퍼를 찾아 신고,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었어. 현관과 화장실의 유리를 치우고 방안을 치울 때 까지 엄마는 가위를 끌어안은 채 방안에 앉아 있었어. 빗자루로 방바닥을 쓸고, 접착테이프가 달린 청소용 롤러로 다시 한 번 방바닥을 훑고 난 다음에야 나는 엄마 곁에 주저앉았어. 그리고 한동안 우리 둘은 브라운관이 터져나간 텔레비전의 껍데기를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있었지.

- 배고프다.

한참이 지난 뒤 내가 입을 열자 엄마는 나갔던 넋이 돌아 온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어.

-집에 밥 없어. 아까 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놔뒀어.

-그래. 그럼……. 나가서 먹자.

엄마는 아까부터 부여잡고 있던 가위를 그대로 손에 쥔 채 일어섰어. 그리고는 벗지 못한 신발을 우두커니 내려 보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어.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엄마는 조용히 가위를 부엌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는 웃옷을 걸쳐 입던 내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어. 둘이 뭘 먹으러 갈지 정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동네 한 바퀴를 돌았지. 그러다 들어간 게 결국 김밥천국이었지. 엄마와 나는 만두국과 순두부를 시켜 놓고 말없이 밥을 먹었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샀어. 동네 할인마트에서 50%세일 하는 것들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지. 집에 와서야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늘 난장판이 되었던 ‘대책회의’의 광경을 설명해 주었어. 영지엄마는 장난도 아니었다고 하셨지. 하마터면 책상을 교감에게 집어 던질 뻔 했다니까. MRI촬영 때도 큰 이상 없어 보이던 영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는 거야. 응급실에서도 멀쩡해 보였지만 뇌와 장기 손상이 갑자기 진행 되었대.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병원에 간 아이들 중에서 죽은 사람은 없나 물어 봤는데 역시나 없었어. 큰 중상을 입은 버스기사나 담임 역시 아직은 숨이 안 끊어지고 있었어. 엄마의 신경은 온통 나와 어제의 사고에 쏠려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그 정도까지 들은 게 전부였지. 아이스크림 통 바닥을 밥숟가락으로 긁으며 혹시나 세상이 안락사를 기다리는 식물인간들의 천지로 바뀌지는 않을 까 생각 했어. 죽음이 떠났다 해서 다쳤던 몸이 건강해지거나 잘려나간 머리가 다시 붙는 건 아니었나 봐. 그냥 최종 골인 지점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어. 생각 해봐. 골인 지점이 없는 길을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를. 심장이 터지고 다리가 굳어버려도 계속 달려야만 해. 골인 지점이 사라졌어. ‘완주’라는 단어 자체가 불가능해진 경주야.

  엄마는 오늘도 일을 쉬겠다고 했어. 그게 어떤 의미냐 하면 이틀 치 일당과 주 만근수당, 월 만근 수당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야. 오늘 회의 분위기로 봐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보상금을 기다릴 수도 없었고, 두 모녀뿐이지만 엄마 혼자 공장 일을 하며 버는 돈으로는 매달 빠듯하니까. 오늘도 엄마는 내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까봐 나를 꼭 끌어안고 잤어. 오늘도 엄마는 울었어.


- 순서를 바꾸는 방법은 없어?

  침묵. 정말 나를 혼자서 중얼거리는 미친년으로 만들래? 욱하는 성미가 뻗칠 것 같았지만 참기로 했어. 일단 쟤는 죽음이니까.

- 세상에 죽어야 할 놈들은 벽에 똥칠 할 때까지 버티다 가고, 어린 아이들이나 나 같은 보통사람들이 먼저 죽는 경우가 더 많잖아. 순서를 바꾸는 건 안 돼? 내 앞에서 죽음이 멈춘 게 내 잘못도 아니라면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잖아. 따지고 보면 실수 한 건 너희들이지.(복수형으로 얘기해도 되나?) 순서가 정 문제 된다면 한 일,이 년 뒤쯤 죽을 사람 중에서 제일 악랄한 놈이랑 내 순서를 바꿔주는 건 어때? 많이도 안 바라. 그래, 딱 일 년으로 하자. 딱 일 년 뒤에. 그때 갈사람 중에서 마약 파는 놈이나 살인범이나... 뭐 그런 것들 있잖아. 인간말종들. 그런 애들 중에서 스케줄 맞는 애랑 나랑 바꿔주면 안 돼?

침묵.

- 씨발.

  나는 뒤돌아 화장실을 나왔어.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담당의사에게 주의 할 점과 챙겨 먹을 약, 다음에 언제 병원을 방문 할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와 잠시 화장실에 들렀지. 사람이 없는 걸 확인 하고 죽음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봤지만 허사였어. 다시 하룻밤이 지나자 사람들이 드디어 술렁이기 시작 했어. 나는 세상 곳곳에서 이렇게 끔찍한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는 줄은 몰랐어.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그러한 사고를 당하고도 죽지 못한 다는 것이었지.
  미국과 유럽의 도축장에서 목이 잘린 소들이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도축장 직원들이 일손을 놓고 모두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가십란에도 못 낄 정도였어.
  파키스탄에서는 시댁사람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다가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이 붙여진 열여섯살 여자애가 죽지도 못하고 있었지. 그 아이의 남편과 시부모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악령이 붙었다며 숯 덩어리가 된 몸을 칼과 몽둥이로 난자 했지만 여전히 죽지 못했어. 결국 경찰까지 나서서 주민들을 내쫓고 여자아이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거기까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지. 이라크에서는 미군 차량 하나에 자살폭탄테러범이 인사를 했는데 폐가 있는 부위 아래쪽이 몽땅 잘려 나간 이 테러범이 아직 살아 있어서 치료가 먼저인지 배후세력 추궁이 먼저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차라리 양반이었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쑥밭이 된 팔레스타인을 생각해봐. 걔네들은 드디어 땅위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나라를 건설했어!
  공식적으로 입에 올리는 것은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지난 사흘 동안 전세계에서 ‘죽은사람’ 이 없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어. 신문과 방송들은 이러한 사건들을 점점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 했지. 누군가는 신종 바이러스를 의심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이것이 신이 내린 저주라고 그랬지. 심지어 어떤 멍청이는 이것이 김정일의 영생을 위해 북한에서 만든 신종 의약물질이 전세계로 유출되어서 생긴 사태라는 주장을 자기 홈페이지에 당당하게 올려놓았어. 이 모든 혼란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양심의 가책을 준다거나 하진 않았어. 난 죽을 순서를 잠시 놓쳤을 뿐이라고. 열일곱살에!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된 거 아니야? 세상은 원래 잘못 된 거라고 지껄일 거면 잠시 참아줘. 내가 달려가서 전기톱으로 허리를 끊어 놓아 줄 테니까, 그러고 나서 오지도 않을 죽음을 고통스럽게 기다려봐.

국제보건기구와 미국, 유럽연합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의료사태’에 대하여 적절한 수준의 대응책을 찾고 있다. 이 문장의 의미를 설명해 줄 사람?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버스 안의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에 투덜거리고 있었어. 엄마의 표정이 굳은걸 본 나는 중얼거리는 걸 멈추고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지. 싸늘한 얼음장 같은 차창 유리의 냉기가 머리로 흘러오는 듯 했어.

-오늘도 일 안 나가?

-괜찮아.

-뭐가 괜찮아.

엄마는 대답이 없었어.

-아빠한테 가지마.

여전히 대답은 없었지만, 순간 엄마의 몸이 학교 운동장 앞에 서있는 이사장 동상만큼이나 굳어버렸다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어.

-벌써 전화 했지?

-안 했어.

-거짓말.

  엄마는 다시 말을 잊은 사람처럼 침묵 속에 빠졌어. 건져 내려면 연안부두에 있는 크레인을 모두 동원해도 안될 만큼 깊이.

  나는 고개를 엄마의 어깨에 기대었어. 그리고 버스의 유리창을 바라보았어. ‘죽음’은 오늘도 내 등 뒤에 매달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죽음’을 보기 싫다면 세상의 모든 ‘나를 비추는 것’을 깨 부숴야 하는 걸까? 그러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거울과 얼마나 많은 유리창과 얼마나 많은 거울들을 깨 부숴야 할 까? 거울로만 만들어진 거대한 방을 상상해 보았어. 수십만 수천만장의 거울까지 상상 할 필요는 없었어. 그냥 마주보는 두장의 거울만 있어도 될 것 같아.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나와 내 등 뒤에 매달린 ‘죽음’이 보이겠지. 나는 엄마에게 속삭였어.

-괜찮아. 잠깐 화가 나서 그랬던 거야. 다신 안 그럴 거야. 그러니까 엄마 탓이라고 생각 하지 마.

  다음날, 엄마는 출근 했어. 밤에 나 혼자 집에 놔두는 게 마음에 걸려 주간조로 바꾸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나 봐. 야간조 라인도 곧 중단 되고 주간조 역시 인원을 줄인 다는 소문이 돌아 당장 다음 달 수입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였으니까. 엄마는 나에게 몇 번이나 이전 같은 짓은 안 할 거라는 다짐을 받고 난 다음에야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나는 내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어. 그 날, 그러니까 집안의 모든 거울, 유리로 된 물건들을 깨부수려고 했던 날, 나는 내 방안의 물건들은 미처 못 건드린 상태였지. 책상 옆의 거울도 그대로고 컴퓨터 모니터도 그대로였어. 불을 켜고 가만히 앉아 꺼진 모니터에 반사 된 나와 ‘죽음’의 모습을 보고 있었어. 그렇게 한참 ‘죽음’을 바라보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 했지. ‘죽음’은 주로 듣기 만 했어. 무언가 질문 하면 대부분의 대답이 ‘대답하지 않는다’라는 (아, 놔. 건방진 자식) 대답 아닌 대답만 돌아 왔어. 설득도 소용없었지.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건 죽을 차례가 된 내가 안 죽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죽음이 일시 정지 상태라는 것만 확인 받은 셈이야.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좀 더 융통성 있게 다른 방법으로 일처리는 할 수 없는지 질문 해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어.

  ‘죽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설명했어. 내가 죽으면 세상은 다시 죽음이 찾아온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나를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 목을 매단 다던가 옥상에서 뛰어 내릴 필요도 없다고. 단지 죽음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 뿐이었지.    그건 차라리 ‘네 운명은 여기서 멈춘다’는 소리를 하며 낫을 들고 따라다니는 것 보다 더 했어. 죽음은 이 정체를 해결할 방법은 알려 주었지만 나에게 그걸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으니까. 어쩌면 이게 ‘죽음’에게 있어서는 휴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어.   ‘아이고 이걸 어쩌나. 죽음이 멈췄네. 이를 어쩌지?’하며 아무것도 안하고는 가만히 내 등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방법을 알려 주었으니까 직무유기는 아니고, 그냥 적당히 탱자탱자 놀며 기다리는 거지. 영혼을 가진 모든 존재라고 했으니까 지구상의 사람만 따져도 육십억이고 죽는 사람들도 매초 당 수없이 많을 텐데 그 영혼들을 혼자서 돌아다니며 수거 하려니 자기도 짜증이 났겠지. 핑계김에 ‘휴가다! 나이쓰!’ 이러고 나한테 들러붙어 있는 거야. 이게 제일 그럴 듯 하지?
  뭐, 내가 혼자 이렇게 주장 해봐도 답은 여전히 없었어.

여전히 ‘죽음’은 내 앞에 멈춰있었고, 왜 하필 나냐고 물어봐도 소용없었지.

  그냥 내 앞에서 멈춰 선거지. 버스에 오르며 교통 카드 찍으려는데 기계에서 ‘다시 대주세요.’라는 소리만 반복 될 때 있지? 버스는 출발 못하고 뒤에 줄 선 사람들은 짜증내는데 카드는 자꾸 안 읽히고. 시내버스에서조차 그럴 때에는 잠시 한쪽에 물러섰다가, 뒤에 손님들 다 타고 난 다음 버스가 출발해. 그리고는 달리는 차 안에서 카드를 다시 대보거나 정 안되면 현금으로 차비를 내도되잖아. 근데 죽음이란 건 그 정도의 융통성도 없었어. 시내버스보다 못한 삶과 죽음의 법칙이라니!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어. 허리도 뻐근하고 잠도 슬슬 왔지.

  세상 따위 어떻게 되던 간에 일단은 자야겠다 싶었어. ‘죽음’ 때문인지 두통이 슬슬 찾아오기 시작 했고. 아침에 엄마가 퇴근 하면 같이 병원에 가서 CT촬영을 한 번 더 해보기로 했기 때문에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자리에 누웠어. 적어도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죽음이 내 앞에서 멈춰선 이상 나를 죽일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이었지. 그건 맘에 들었어. 심지어는 약간 안심조차 되었어. 난 내 죽음을 결정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5.

  텔레비전을 부숴버린 터라 뉴스를 볼 수는 없었지만 죽음이 멈춰버린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지를 꼭 텔레비전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 눈에 띄게 군부대의 차량이 자주 보였고, 소독차량도 마찬가지였어. 세상의 대부분이 그동안 알고 있던 공포는 그 끝에 죽음이 맞닿아 있는 것들 이었어. 전염병, 전쟁, 기아, 연쇄살인마 같은 것들 말이야. 하지만 정작 죽음이 멈추고 난 다음의 끝이란 게 사라졌어. 뭐가 있을지 몰랐어. 단지 고통뿐인 삶이 지속된다는 게 전부였지.
  분당의 어느 교회에서는 주님이 약속한 부활과 영생의 때가 드디어 왔다며 신도들이 집단으로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렸어. 물론 죽음은 멈췄지만 중력의 법칙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예닐곱 명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고 허리가 나갔어. 인도, 파키스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자살폭탄 테러가 급증 했어. 조각난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들은 여전히 알라를 부르짖고 있었을 거야. 성대를 울릴 호흡이 불가능해서 입만 뻐끔거리는게 고작이라도. 죽음이 멈춘 것을 시험하기 위해 남을 찔러 죽이거나 총질을 해대는 바보들은 숫자를 세기 힘들 정도였지. 정 확인 해보고 싶으면 자기 머리나 날려 버리지 그게 무슨 짓이람.

  내가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는 동안 버스 안의 라디오로 들은 뉴스만 하더라도 이 정도였어. 슬슬 야간 통행금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학교들은 휴교령을 내리거나 방학을 앞당기고 있었지. 엄마는 그러한 일들이 남의 일인 양 단 한마디도 언급 하지 않았어. 병원에 가서도 혼수상태를 반복하는 영지와 그 애의 엄마를 보게 되면 아무 말 하지 않았어. 중환자실 앞에서 두 엄마는 그냥 말없이 앉아있거나 울거나,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지. CT촬영이 끝 난 다음 의사는 내가 아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어. 하지만 나도 무슨 말이 오갔는지 짐작 못 할 바보는 아니야.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지금 비록 살아서 움직이는 몸이지만, 죽음에 이를 만한 상처를 이미 갖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6.

- 월미도 가자.

  책상을 정리 하다 말고 멀뚱하게 돌아보는 나를 향해 엄마는 되풀이 했어
- 월미도 가자, 수경아. 평일이니까 사람도 없고 조용 할 거야.
- 아침에 퇴근 하자마자 뭔 소리? 잠 안자? 그리고 웬 월미도?
엄마는 신발을 벗고 옷을 걸치며 살짝 들뜬 듯이 이야기 했어
- 그냥, 바람 쐬어 본 지도 오래 되었잖아. 가서 캔맥주도 한잔 하자.
  열아홉에 술 취해서 사고치고 낳은 딸 앞에서 아직도 술타령이라니, 정신 못 차렸군.
- 하던 거 마저 하고.
- 뭐 하는데?
- 책상정리
- 갔다 와서 해.

  엄마는 그 새 옷장에서 외출복을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어. 물론 내 옷도 포함해서.
못 말려. 나는 책상 정리를 대충 마치고, 엄마와 옷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어. 위 아래로 파란색 더플코트에 파란색 모직 치마를 입히려 하다니. 딸자식을 스머프로 만들 셈이야? 옷 때문에 싸우다가는 점심때까지 월미도는커녕 집 앞도 못나갈 것 같아서 결국 둘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지. 둘이서 팔짱을 끼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어.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엄마는 야간조를 전담하는 관리자인 박 대리의 흉을 보느라 정신없었지. 박 대리가 얼마나 게으르고 무개념 행동을 일삼는지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나 까지도 박 대리를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놈으로 여기게 될 정도였다니까.

  월미도는 예상처럼 썰렁하고 슬펐어. 메뉴판은 거창하지만 내용물은 싸구려인 음식점에 싸구려 놀이기구. 바다까지 싸구려로 느껴질 정도였지. 하지만 그래서 좋았어. 여기 있으면 어쩐지 나 자신은 적어도 이것들 보다 값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 엄마와 둘이서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셨어. 때가 때인지라 오가는 사람도 적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손에 든 캔맥주가 바닥을 비우고, 빈 캔을 우그러뜨려 납작하게 만 들 동안 엄마는 나를 낳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때의 이야기며, 아빠를 낚아 챈 ‘그 년’의 집에 젖먹이인 나까지 업고 쳐들어가 집안을 뒤집어 놓다가 ‘그 년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상 까지 받아먹고 나서는 둘이서 부둥켜안고 울다가 나온 이야기를 했어. 어찌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하던지, 꼭 프로도가 고향마을 호빗들 모아놓고 ‘그러니까 그 때 사우론이 말이야......’ 하는 분위기였지. 우리는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며 깔깔대고 웃었는데 그게 정점에 달했을 때는 휴교령이 내린 탓에 갈데없이 방황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날나리 고딩 두 놈이 엄마한테 다가와 ‘시간 있으면......’으로 시작하는 수작을 부릴 때였어. 얼마나 웃었는지 턱이 시릴 정도였지. 그리고는 그 악명 높은 ‘디스코’가 있는 곳으로 가 아까 그 두 고딩이 말 싸가지 없는 디제이에게 농락당하며 원판 위를 굴러다니는 걸 보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웃었어. 죽음이 멈추고 세상은 미쳐가도 디스코는 돌아갔어. 디제이는 여전히 싸가지 없었고.
  점심때가 되었고 어느덧 맥주로 오른 취기도 가라앉았을 무렵에 엄마랑 나는 밥 먹을 만한 곳을 돌아보았지. 하지만 점심은 결국 집에 와서 먹어야 했어.
공원 주변으로 갑자기 구청에서 나온 방역 차량이 들이 닥쳤고, 곧 이어 군부대의 차량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무슨 일이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인들에게 구청 직원은 쩔쩔 매면서 긴급 방역 조치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과 공원 주변은 방역조치가 끝날 때 까지 임시로 출입 통제를 한다는 설명이었지. 하지만 그게 먹힐 리가 있겠어? 먹고 살 가게 닫으라면 탱크가 와도 횟칼 들고 달려 들 사람들 앞에서. 주변이 더 혼잡해 지기 전에 엄마와 나는 서둘러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나왔어. 가는 내내 풍경들은 월미도와 다를 바 없었지. 라디오에서는 계속 이번 긴급 방역조치의 필요성과 주요 공공시설에 대한 출입 제한을 이야기 하고 있었어.

  집에 돌아온 엄마와 나는 집 앞 할인마트에서 사온 재료들로 떡볶이를 해먹고 맥주를 한 캔씩 더 마셨어. 미니컴포넌트의 라디오를 틀었지만 대부분의 방송은 비상방역 조치와 오늘부터 시작 될 야간통행금지에 대한 뉴스만 나왔어. 엄마와 나는 주파수를 이리 저리 돌리다가 컬투쇼가 잡히는 주파수에 채널을 잡아 놓고는 긴급뉴스로 방송이 중단 될 때 까지 낄낄댔지. 뉴스가 듣기 싫어 다른 주파수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동안 엄마는 피곤하다며 자리도 펴지 않은 채 그냥 방바닥에 누워 잠들었어. 나는 남은 떡볶이를 다 먹고, 엄마가 마시다 만 맥주 캔을 비웠어. 그리고는 방을 대충 치우고, 이불을 꺼내어 엄마를 눕혔지. 그리고는 내 방으로 가서 못 치웠던 잡동사니들을 꺼내어 재활용쓰레기 수집장소에 갖다 놓았어. 우편함에서 고지서 몇 통을 들고 와 안방의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다시 내 방으로 가 컴퓨터 안에 있는 디카사진들을 정리해서 바탕화면에 폴더를 만들어 모아 놓았지. 폴더에는 ‘엄마여기봐’ 라고 이름을 붙였어. 그리고는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했지. 샤워를 마친 뒤 내 방으로 가 깨끗하면서도 편안 한 옷을 골랐어. 머리를 한 번 더 드라이 하고 나서 화장대 거울 앞에 다시 섰어. 예쁘다. 이만하면 괜찮겠네.

  그리고 ‘죽음’에게 말했어.

  몸을 뒤척이던 엄마는 잠결에 내가 누워 있다는 걸 알고는 나를 끌어안았어. 술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괜찮아. 엄마는 잠꼬대처럼 ‘샴푸냄새 좋네.’ 라고 중얼거렸어. 나는 엄마의 품 안에서 여러 사람들을 생각했어. 비록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전부였지만 말이야. 아직도 파키스탄 어딘가에서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과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저주를 한 몸에 받으며 불에 탄 몸뚱어리에 갇혀 있을 소녀를 생각 했어. 머리가 잘린 필리핀 노동자는 의사들이 봉합수술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신체조직이 괴사되어 가고만 있다고 했어. 그럼에도 의식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대. 남자는 한국말로 ‘아파요’라는 말 만 했다고 해. 영지는 어떻게 될까? 영지엄마는? 엄마가 얘기한 ‘그 년’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 까? 아빠는?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욕이라도 한바탕 늘어놓을 까? 아니지. 아니야. 품위 없게시리.

  세상에 내가 아는 사람들과 알지 못했던 사람들, 영원히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작별 인사를 남겨야 할까 고민 했지만 시간은 짧았어. ‘죽음’에게 부탁한 시간은 30분이었거든. 세상은 내가 세상에 죽음을 되찾아 준 사람이란 걸 알기는 할까? 그 사실을 알면 나에게 감사 한다던가 아니면 내 죽음에 애도를 표해줄까? 모를 일이지.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꾸물거렸어?’ 라고. 인사를 할 사람은 한 명이면 족해. 죽음을 되찾아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는 안 받아도 좋아. 그냥 지금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엄마에게 한마디 인사를 남길 정도의 시간이 허락된 것만으로도 행운일지 모르겠어. 어차피 나는 그 버스 안에서 죽어야 했으니까.

  시간이 되었어.

  나는 엄마의 귓가에 속삭였어.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안녕.
댓글 1
  • No Profile
    미하 09.04.11 16:49 댓글 수정 삭제
    다 보고 넘 슬프네요. 그저 끝까지 잔잔한 문체 때문인지, 더욱.....ㅠㅠ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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