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아빠. 왜 혼자 쓸쓸하게 이러고 있어?”
  그녀는 딸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속삭였다.
  묘는 누구도 찾지 않는 산 허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벼랑 끝에서 발 아래 도시를 힐끔 내려다보며 그렇게, 언제나처럼 처량하게, 그녀의 아버지는 죽어서까지 당신의 성미를 버리지 못하고 불편한 모양새로 뉘어져 있었다.
  그녀는 묘비를 내려다 보았다. 묘비에는 민용수 이름 세글자 외엔 딱히 아무런 글귀도 쓰여있지 않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은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 하라부지가 여기 계신거야?”
  “그래. 이 안에 잠들어 계신 거란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은미에게 답해주었다.
  “하라부지 춥겠다.”
  “응. 그렇겠구나. 많이 추우실 거야.”
  “실은 은미도 추워.”
  은미가 그녀의 다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조그만 손이 떨고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한테 절 두번만 하고 내려 가자. 우리 은미 할 수 있지?”
  “응! 은미는 착해!”
  은미는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무덤 앞으로 달려가 철푸덕 엎어지듯 절을 했다. 하라부지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세요! 하고, 앙증맞은 목소리도 내었다. 그녀는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옛 생각을 했다. 기억 속에서 그녀는 목매단 시체 아래서 편지를 읽고 있었다.
  미안하다 다애야. 시체는 불태워주기 바란다. 시체가 다 타고 뼈만 남으면 가늘게 빻아서 여기 발 아래 깡통에 보관해 줬으면 한다. 그러다가 네 어미가 죽으면 그 뼈도 같이 빻아서 깡통에 넣고 흔들어 섞어주렴. 누가 누구 뼈인지 아무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이면 아무 곳이든 네가 원하는 곳에 묻어다오.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아빠 화 안났다고 전해주려무나.
  스물 세 살의 그녀는 아버지의 시체 아래서 그 편지를 읽었고, 그대로 쓰러져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땐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눈물인가 했는데 엄마가 곁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다애야. 엄마는 아빠랑 똑같은 소리를 했다.
  장례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엄마는 아빠의 유언을 지켜주지 않았다. 시체를 화장하는 대신 이 산속에 가져와 묻어버렸다.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딸이 볼까 무서워서. 고양이가 뜯어먹고 남긴 쥐머리를 황급히 휴지통에 던져버리듯. 그러는 내내 그녀의 엄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미안하다 다애야. 엄마는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랬어. 외로움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아빠를 죽인 걸까.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삼십칠일 만에 엄마를 재혼시킨 걸까.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내가 이렇게…
  “엄마!”
  갑작스런 외침소리에 그녀는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은미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으, 으응 은미야, 왜?”
  “나 절 다했어.”
  “두 번 했어?”
  “응! 두 번 했어.”
  그녀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 착하다 우리 은미. 응! 은미 계속 착할 거야. 그래 계속 착하렴.
  산 아래로 내려오니 자동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봐온 어느 자동차보다도 새카맣고, 어떤 자동차보다도 긴 리무진 승용차였다. 그녀는 수행원들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평범한 자동차는 없었나요? 죄송합니다. 각하의 특별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그녀는 더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은미를 리무진에 태웠다. 그리고 자신도 리무진에 올랐다. 은미가 왁 왁 소리를 지르며 폴짝 폴짝 뛰었다. 엄마 엄청 폭신해! 응 그러네. 위험하니까 바로 앉아. 치이. 착하지 우리 은미. 은미는 곧장 바른 자세로 앉았다. 리무진은 곧바로 출발했다.
  리무진엔 수행원 두 명이 함께했다. 한 사람은 운전을 담당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조수석에 앉아 무전기를 차고 여기저기 바삐 명령을 내렸다. 어디선가 똑같은 리무진이 두 대가 더 나타나 그녀가 탄 자동차의 앞 뒤를 감쌌다.
  
  고작 1년 전의 일이다.
  어느 가을 저녁, 지구의 하늘에 또 하나의 달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것이 거대 외계문명의 항성간 우주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은하계에 방대하고 짜임새 있는 수많은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에게 알려졌다. 태양계 밖에서 온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당당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었다. 여러 별에서 태어난 제각각의 생명들을 바라보며 어떤 사람들은 공포에, 어떤 사람들은 환희에, 그 밖의 사람들도 각자의 감정에 벅차올라 찾아올 새로운 시대를 예감했다.
  우주에서 온 자들은 자신들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멋대로 바깥사람, 은하제국, 은하연방, 은하정부, 에일리언, ET, 그레이, 우주인들 따위로 그들을 불렀다. 격렬한 논쟁과 차츰차츰 제공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종국에는 ‘은하연대’라는 모호한 호칭이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그들을 ‘은하연대’라 부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들 모두의 활동범위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은하, 우리가 은하수라 부르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은하’ 혹은 ‘우주’라는 단어 대신 ‘은하’가 채택되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의 국가나 종족 같은 단위로 묶이지 않았다. 그들이 은하 전체의 그들 생명체들의 이권을 대변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의무나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류는 그들에게서 우리가 사회활동이라 부르는 종류의 행위에 대한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종류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단 한가지의 목표뿐이었다. 그래서 ‘제국’이나 ‘연방’, ‘정부’같은 단어 대신 ‘연대’라는 단어가 채택되었다.
  셋째로, ‘은하연대’가 그들이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호칭이었다는 점이다.
  호칭이 정해지게 되자, 그제서야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은하연대’는 인류에게 그들의 목적을 밝혔다.
  
  어느새 은미는 쌔액 쌔액 숨소리를 내며 그녀의 다리를 베고 잠들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시계를 한번 보았다. 오후 두 시. 탑승 시간인 오후 일곱 시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 그녀는 목에서 스카프를 풀어 매듭을 만들기 시작했다. 길게 꼬아 한쪽 끝과 끝을 어긋지어 통과시키고, 끝까지 쭉 잡아당겨 팽팽해질 때까지 힘을 준다. 매듭이 완성되면 두어 번 잡아당겨 마무리했다.
  “잘 매듭지으셨나요?”
  수행원 하나가 물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쪽이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스카프를 감추었다가, 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빠의 무덤에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시 슬그머니 스카프를 무릎 위에 놓고 침착하게 매듭을 늘려나갔다. 어느새 매듭이 다섯 개나 완성되어 있었다.
  “글쎄요. 오히려 매듭을 풀기 위해서 왔다고 할까요.”
  그래. 못다한 일을 이루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껏 다하지 못한 일은 평생 다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사실을 수긍하기 위해 아빠의 무덤을 찾은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매듭을 하나 풀어헤쳤다.
  가깝다면 가까운, 멀다면 멀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호반에 집이 딱 한 채 세워져 있었다. 리무진은 그 앞에 멈춰섰다. 여기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수행원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모친께서 이곳에 살고 계십니다. 그밖에는요? 그밖에? 뭐 강아지라던가, 고양이라던가, 자식이라던가, 남편이라던가… 아무도 안 계십니다. 모친께선 혼자 생활하고 계십니다. 수행원은 머뭇거리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법적으로도요.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은미의 손을 잡고, 이미 열려있는 대문을 지나 현관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문이 열렸다. 십년만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말없이 몸을 돌려 거실로 향했다. 그녀는 은미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어디가 어떻게 변한 건지, 눈빛으로 서로를 꼼꼼히 보듬었다. 이윽고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탁드려요. 엄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딸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은미는 엉거주춤 넘어질 듯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 제 할머니의 품안에 쏘옥 안겼다.
  “이름은 은미라고 해. 서. 은. 미. 나이는 네 살이구. 생일은 오월 십이일. 나랑 똑같아. 한글은 다 뗐구, 요즘은 알파벳도 간간히 읽어. 구구단은 아직 오단까지밖에 못 외웠어.”
  은미는 처음 보는 할머니의 품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 몸에서 손이 떼이자 마자 쪼로로 등 뒤로 걸어가 할미의 한쪽 다리 뒤로 숨었다. 그러고서는 빼꼼 고개를 내밀어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이제껏 할머니와 살아왔던 아이가 제 어미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라 여길 것만 같다. 사실은 정 반대인데. 하지만 그 모습을 보니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은미는 마치 지금을 꿈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렇게 끝날 수만 있다면 그녀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게 꼭 떠나야만 하겠니? 가끔 전화하는 것 말고는 십년 동안 살아있는 기척 한번 제대로 안 냈으면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는 니 딸을 던져놓고 떠나겠다는 거니. 꼭 이래야만 하겠어?”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삼십삼년 동안 한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아빠가 죽었을 때도 눈물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자신의 딸을 붙잡으려 했다. 그것은 몇 남지 않은 혈육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어쩌면 외로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외로움.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썹이 서글픈 모양새를 하며 미안해요 엄마, 그렇게 소리없이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그런 표정을 바라보기가 힘들어서 그만 고개를 숙이고 딸의 가슴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볼에 닿아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에,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추었다. 언제까지나 소녀일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었구나. 너도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말았구나. 아마도 그런 의미의 놀람이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네가 떠나야 해? 왜! 왜!”                  
  “난 괜찮아 엄마.”
  “이것아… 네가 무슨 지은 죄가 있다고…! 그놈은 멀쩡하게 땅 밟고 하늘 보고 잘 사는데 네가 왜 저 먼곳까지 가야 하냔 말이다…”
  “죄 지어서 그런 거 아냐, 엄마. 내가 원해서 가는 거야.”
  “뭐가 부족한데? 응? 또 그 연구욕심인 거니? 아니면 저것들이 주겠다는 영원한 생명이 필요한 거야?”
  “아냐. 이번엔 달라. 엄마, 난 무언가를 얻고 싶은 게 아니야. 오히려 버리고 싶어. 날아오르는게 아니라, 가라앉고 싶은 거야, 난.”
  그녀는 어머니의 몸을 쓰다듬으며 창 밖을 보았다. 한 낮의 하늘 가운데 새하얀 달 반조각이 떠올라 아름답게 흘러갔다. 달은 밤에 뜨는 건데. 입술이 멋대로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속삭임은 입 속을 떠돌 뿐 엄마의 귀에까지 닿지는 않았다.
  달 아래 또 한 조각이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옮겨 다른 한 조각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하늘에 나타나 이제는 당연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또 하나의 달. 그것은 마치 달의 나머지 반쪽이 떨어져나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둘을 가져다 붙이면 꼭 맞을까? 입술이 또 한번 멋대로 중얼거렸다. 완전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반쪽으로 보이는 달은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 사실은 완전히 둥근 별이었으니까.
  그리고 원래의 달이 그러하듯, 또 하나의 달 역시 홀로 완전한 존재였다. 그것은 달과 같이 완전한 구체를 이루고 있었다. 실은 그것은 우주선이었다. 우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우주선이었다.
  
  오늘저녁, 그녀가 서 있게 될 우주선이었다.
  
   “엄마 그거 알아? 우주인들 중엔 암수를 가진 생물이 없대. 으응, 사랑을 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가 사랑해주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어떤 환경이든, 어떤 시대든, 진화의 단계가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모든 생물은 더 이상 연인도, 자식도 만들지 않게 돼. 그게 이 우주의 정상적인 흐름이고, 자연의 올바른 섭리라는 거야.”
    그녀는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늘을 보았다. 그 눈에 비친 우주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외로워지고 있었다.
  “너무 멀어. 별들이 서로를 사랑하기엔,”
  그녀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잠시 뒤 가슴이 꽉 조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은 탓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 남자 때문은 아닌 거니?”
  “응. 조금도 상관 없어. 우진 선배도, 은정이도, 석현씨도. …은미도, 그리고 엄마도. 그저 나는…”
  그녀는 그 뒤의 말을 애써 집어삼켰다. 앞으로 영영 이별하게 될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람들에겐 앞으로의 삶이 있으니까 내 찌꺼기를 남겨 그들을 방해해선 안돼. 그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지금은 그저 불행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그 한마디 말을 뱃속 깊은 곳에 감추었다.
  “할머니…”
  은미가 제 할머니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안은 팔을 풀고 자리에 앉아 은미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 그래, 불쌍한 것. 이리 할미 품에 오렴. 옳지. 착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뺨에 뺨을 부비며 체온을 나누었다.
  “애가 가엾지도 않니? 요 조그만게 평생 엄마도 없이 자라게 될 텐데 넌 엄마가 돼서 가엾지도 않아? 응? 다애야. 다시 한번 생각하렴. 부탁이야…”
  “…”
  “꼭 우주로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잖니. 여기서도, 아니면 미국에 건너가서든, 니가 원하는 연구도 사랑도 얼마든지 실컷 하면서 지낼 수 있지 않니. 석현 청년도 기다리겠다고 했다며? 아주 끝난 건 아니라고 니가 니 입으로 그렇게 말했던 거 기억 안 나? 응? 다애야.”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은미를 보았다. 은미는 얼굴 찡그리지도 않고, 그 조그만 입으로 나쁜 투정하나 부리지 않고, 눈물 그렁이지도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뿐인 내 딸 은미. 착한 은미. 네 잘못이 아닌데. 네 잘못은 정말 하나도 없는데. 미안해. 엄마라고 하나 있는 게 이렇게 못나고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그녀는 미련 속에서 억지로 고개를 들어 시야 속에서 딸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목소리에는 단호한 결의가 서려있었다.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다, 다애야…”
  “잘 있어, 엄마. 부디 잘 지내렴, 은미야.”
  “얘야 가지 마.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그녀는 거세게 저항하는 어머니의 팔을 뿌리치고서 곧바로 고개를 돌려 현관을 나섰다.
  “으응… 엄마… 어디가?”
  등 뒤에서 은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엉엉 목놓아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해서 뺨을 한번 훔쳐 보았지만, 의외로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흘려야 할 눈물은 이미 과거에 전부 쏟아버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녀는 막연히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리무진에 올라 출발해 달라고 외쳤다. 손 닿는 곳마다 푹 푹 허물어지는 시트의 사치스러운 감촉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승강장으로 향하시겠습니까? 운전석의 수행원이 물었다. 아뇨. 아직 몇 군데 더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원하는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차분하게 목적지를 알렸다.
  영등포 교도소로 가주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무진이 출발했다. 선행된 지시에 의해 도로는 깨끗이 비워져 있었고, 리무진은 막힘 없이 서울의 도로를 질주했다. 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속이 섬세하게 이루어진 탓에 그녀는 조금의 진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창 밖으로 우주선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달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전궤도의 차이 때문이었다. 우주선은 점점 커다래졌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우주선은 이제 곧 머리 위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앞으로 세 번하고 반의 반바퀴. 그녀는 마음속으로 횟수를 헤아려보았다. 그게 앞으로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엄마 어디가?
  어디로. 무엇을. 어떻게. 왜. 아이의 목소리가, 허공을 휘젓던 손짓이, 그 호기심 가득했던 눈빛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어디로.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무엇을. 왜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어떻게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리무진은 어느 샌가 시내로 진입해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는 왼편으로 스쳐가는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수행원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알고 있나요?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들 중 하나가 그렇게 대답했다. 아는 만큼이라도 좋아요. 한번 말해봐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제껏 운전을 하느라 한번도 목소리를 내비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제가 과학은 잘 모릅니다만… 아무튼 이 우주라는게 점점 팽창한다더군요. 허블인지 하는 양반이, 그 뭐시기 망원경도 이사람 이름이라던데, 아무튼 그 양반이 백년도 전에 증명을 했다나요.
  그래서 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이, 쉽게 말하면 원래 우주라는게 물이고 공기고 흙이고 전- 부 한 점에 꾹꾹 눌러담아져서 모여 있었던 것인디, 이유는 모르지만 암튼 그게 폭발을 일으켜서 흩어지게 된 거라지요. 그 와중에 끼리끼리 뭉쳐모인게 해고 달이고 별이고 뭐 그렇다고요.
  그래서요? 그녀가 재촉했다. 그 기세에 운전수는,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한다는게 지루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군요. 저는 대통령 경호원이지 민다애씨 처럼 과학자는 아니어서… 하고, 움츠러들었다. 아니에요. 잘 하고 계신걸요. 말씀을 잘 하시네요. 재미있어요. 운전수는 으흠, 하고 한번 목을 가다듬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헌데 이것이 상식적으로 보면 중력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정확히는 만유인력이요. 그녀가 정정했다. 네 아무튼 그런 거요. 그러니까 별이라는게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긴다. 그래서 이 지구도 태양에서 멀어지지 않는 거고, 달도 지구를 도는거고, 저기 저 우주선도 지구 위에 떠 있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잘 이해하고 계시네요. 그녀는 마치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처럼, 친절하게 맞장구 쳐 주었다.
  흐흠, 그니깐 별들이 서로서로 잡아당긴다 카믄 이게 폭발로 멀어지다가도 나중에는 다시 점점 모여들어야 맞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에는 끌어당기는 힘 땜에 점점점점 가까워지다가 꽈당, 하고 부딪쳐서 다시 원래처럼 한 점으로 모여야 하고 말입니다.
  네. 그래서 과거의 과학자들은 별들의 팽창속도가 점차 느려질 거라 생각했었죠. 이윽고 완전히 멈춰서고 나면 다시 수축하기 시작할 거라고요. 어렸을 때 그런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요.
  맞십니다. 근데 안그렇다 카데요.
  네. 1998년에 초신성 폭발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결과 오히려 팽창이 점차 가속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죠. 별들이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서로에게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점차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게 된다는 거에요. 오래된 이야기죠. 지금에 와서는 상식이 되어버린 이야기에요.
  TV에서는 암흑 물질인지 에너지인지 그런게 있답디다. 그래서 그 진공에너지인지 하는 것이 서로를 밀어낸다고요. 이 중력이 당기는 힘이라는게 멀어질수록 쭐어드는 거니께, 멀어져서 중력의 영향을 덜 받게 되면 될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지요. 요전번에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유명하신 과학자가 나와서 하는 말이 참 가슴에 와닿았는데, 그 뭐더라, 우주는 점점 외로워질거다 어쩐다 하는 거였지요. 스탭롤이랑 같이 그양반이 덤덤- 하게 그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그래요. 우리는 점점 외로워 지겠죠. 그녀는 멀리 사라져가는 두번째 달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내뱉었다.
  어허!
  운전수의 꾸짖는듯한 말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그가 허리를 틀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신호등에 걸려 정차중이라고는 하나, 운전자가 해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하물며 경호가 직업인 사람이, 그것도 지금 현재 보호하고 있는 의뢰인을 향해서 저질러도 되는 행동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그녀는 상대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걸 막을라꼬 저기에 올라타시는 거 아닙니꺼. 그러니까네 우리 경호실이 이렇게 민다애씨를 모시는 거고 말입니다. 그런 분이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은 조심하고 봐야지요. 막- 중하신 책임을 짊어지신 분이 쉽게 쉽게 그런 소리 하고 그라믄 부정탑니더. 쫌 더 자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암요.
  막- 중하신 책임이라… 저들의 눈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느새 우주선은 지구의 뒤편으로 사라져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오후 2시의 강렬한 햇살에 진짜 달도 이제는 그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사라진 달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도 끊겼다.
  스카프. 손안에 쥐어진 스카프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마치 스카프가 남겨두고 온 딸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칠게 붙잡고 매듭 하나의 틈새로 손가락을 비집어 넣기 시작했다. 단단히 매어진 매듭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손톱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걸 선물해준 게 누구였더라? 우진 선배? 은정이? 아니면 석현씨?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해냈다. 내가 직접 샀구나. 인터넷을 돌다가 충동적으로 질렀었지. 오천구백원짜리 치고는 참 괜찮다 그러면서.
  그러고서 생각해보니 지금 입고 있는 자켓도, 블라우스도, 스커트도, 발에 신은 구두도 전부 스스로 구입한 것들이었다. 심지어 가슴의 브로치나 손가락의 반지까지도 그랬다. 타인과 연관된 건 하나도 없구나. 그녀는 거기에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의 흔적을 지닌 채 떠나고 싶지 않은 거야, 난. 그건 너무 행복한 기억들이니까. 더 이상 행복해선 안되니까. 행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행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는 몇 번이고 그 말을 되풀이했다. 되풀이하고 되풀이하는 사이 리무진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영등포 교도소. 우진 선배가 갇혀있는 곳. 도착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매듭이 풀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수행원에게 물었다. 면회는 어디서 하죠? 무슨 의미이신지? 평소처럼 유리벽으로 막혀 있나요? 벽이 없는 방을 원하십니까? 아뇨. 벽이 있었으면 해요.
  교도소에 들어서니 수속은 이미 마쳐져 있었다. 그녀는 서류 한 장 만지지 않고서 곧장 면회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유리벽이 있는 방이었다. 선배는 비스듬히 돌아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안녕. 선배.”
  선배는 힐끔 그녀를 쳐다보더니, 신문을 접어들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녀는 면회실 가운데 놓인 의자를 유리벽 가까이로 당겨 앉아,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그녀를 부드럽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매끈한 입술이 달콤한 말을 했다.
  “머리가 많이 자랐네. 염색도 새로 했나봐. 전엔 좀 더 옅은 갈색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단단해졌구나.”
  “삼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녀는 두 손을 아플정도로 꼬옥 쥐었다.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네 기사를 읽고 있었어.”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신문을 벽에 들이밀었다. 그녀의 사진과 함께 1면 톱 타이틀로 그녀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타이틀이 <The One Who Walk Away from Lairtserret>이라니, 기자가 꽤 센스가 있어. 8면엔 네가 르귄의 팬이라는 이야기도 쓰여있더라. 사실 이거 1면부터 8면까지 전부 네 기사로 채워져 있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건사고 모조리 싹 다.”
  “여유가 있나 보네. 감옥에서 영자신문을 다 읽고 말야.”
  “글쎄, 여유가 있는 건가? 물론 육아에 연구에 우주여행까지 하는 너에 비하면야 무지하게 한가한 편이겠지만 말이야. 이렇게 여유로운 것도 다 고마우신 어떤 분 덕이지.”
  그녀의 눈썹이 또 한번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비꼬는 말투는 그만 둬.”
  “내가 뭘? 난 그저 내가 여기서 영자신문을 읽을 수 있는 게 누구 덕인지 말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건 바로 여기 계신 차기 노벨 물리학상 후보자 민다애라고 말이야.”
  “제발 그만해.”
  “내가 스카이랩Skylab의 실험요원으로 선발된 바로 다음 날에 내 연구논문의 팩트가 조작됬다고 떠벌리고 다닌 여자가 대체 누구인지 말해 줄까? 내 연구소가 정부 지원금을 횡령했다고 고발해서 마흔두명의 직원을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만든 여자가 누구인지는? 막 태어난 딸을 가진 아빠를 감옥에 처넣은 인정 없는 여자가 누구인지 말해 줘? 그게 바로 그 딸의 엄마였다는 사실은 어때?”
  “그만 해.”
  “그렇게 내 인생을 망쳐 놓고 넌 우주로 떠나겠다는 거야? 내가 평생토록 그렇게도 우주를 꿈꿔왔던 걸 알면서? 잔인해. 넌 너무 잔인한 여자야.”
  “그만 하라고 이 개자식아!”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바닥으로 유리 벽을 때렸다. 쾅 소리가 면회실을 가득 메웠다. 선배는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 신문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입도 닫혔다.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움츠린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다행히 바닥에 떨어지진 않았다. 경호원의 과잉요구에 따라 팔다리의 수갑을 의자에 단단히 고정시킨 덕분이었다.
  딸꾹. 선배는 너무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시작했다. 잔뜩 주눅이 들어 딸꾹 딸꾹거리며 주섬주섬 신문을 줍는 그의 처연한 어깨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그녀는 살짝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벽을 때린 손이 꼬옥 주먹을 쥐었다.
  그녀는 힘이 풀린 듯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선배에게 물었다.
  “내 평생에 가장 괴로웠던 날이 언제인지 혹시 알아?”
  선배는 말이 없었다. 그저 딸꾹, 딸꾹, 소리만 났다.
  “아빠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이야. 난 그 나이가 되도록 누가 죽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 친구라고는 없었으니 누구랑 헤어지는 일도 겪은 적이 없었구. 그런 철부지가 스물 두 살이나 먹어서 처음으로 겪은 상실이 하필 아빠였으니 어련했겠어? 나한텐 인류 종말의 날이나 다름없었지.”
  그녀는 몇 번 호흡을 했다. 금새 평소의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내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이 언제인지는 혹시 알아?”
  선배는 이번에도 뭐 훔쳐먹은 벙어리처럼 딸꾹질만 했다.
  “인생 참 웃긴 게, 그것도 아빠 장례식 날이야. 기억 안 나? 도저히 끝까지 지켜볼 수가 없어서 장례식 도중에 선배랑 포장마차 갔었잖아. 나 진짜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근데도 선배랑 술 마시고 있을 때 나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아빤 심장이 차갑게 식어서는 다시는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는데, 내 심장은 그딴 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쳐 날뛰더라고. 선배가 그 예쁜 입으로 뭐라 얘기한다거나, 또 손가락으로 소주 잔을 톡톡 건드리거나 할 때마다… 그래, 알아. 내가 미친년이야. 모텔 앞에서 멈춰섰을 때 선배가 얼마나 난처해 했는지 똑똑히 기억해. 니 아픈 감정 이용하고 싶진 않다. 너도 죽은 아빠 팔아서까지 남자랑 자고 싶진 않을 거 아니냐. 뭐 그런 말도 했었지. 지금에 와선 그런 모습도 전부 연기였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가 있긴 하지만… 설마 선배가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거라 믿고 싶어.”
  “일부러 그랬어.”
  선배는, 잔인하게도 확인시켜 주었다. 그녀는 눈썹을 모아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버릇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 무어라 반응을 보이는 대신 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모텔에서 선배한테 안겼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 이렇게 처량하고 아픈데, 이제 내 안에 남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행복한 걸까 하고. 그리고 그건 선배 때문일 거라고. 선배랑 이러고 있을 수 있다면, 나만 봐주고 나만 챙겨주고 내 옆에만 있어주고 그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선배를 곁에 둬야겠다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 혼자서도 이렇게 잘 사는데.”
  그땐 왜 그랬던 걸까. 괴로워서? 아님 외로워서?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선배가 나 좋아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는 거 나도 알아. 선배. 내가 선배한테 임신한 거 같다 그랬을 때 선배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딱 지금 같았어. 서울역 앞에서 해병대 옷 입고 질질 짜면서 구걸하는 거지면상 같았다고. 내가 이럴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닌데.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는 표정.”
  “은미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해.”
  “나한테는 아니구?”
  “넌 다 알면서도 결혼한 거잖아.”
  “…그래. 이 얘긴 그만하자. 우리 둘 다 잘한 거 없으니까. 잘잘못 따지고 싶은 마음 없어. 나 선배 원망 같은 거 안 해.”
  “그럼 왜 찾아온 거야?”
  “…”
  그녀는 말이 없었다. 선배는 신문을 내려놓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칠게 자란 수염이 안쓰럽게 생각되어서, 그녀는 그만 그의 턱을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일 얘기나 해줘.”
  “일?”
  “신문에서 가르쳐 주는 건 말이 이랬다 저랬다 너무 모호해서 말이야. 핵심 관계자의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별로 전문적이랄만한 이야기가 없어. ‘은하연대’의 기술 수준은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있어서 대체 무얼 기반으로 하는지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게 대부분이거든. 애당초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게 별로 없어. 그러니 다들 필사적으로 소설을 쓰는 거지. 기사마다 내용이 제멋대로인 것도 이해가 가.”
  “암흑에너지를 차단하러 간다는 얘기는?”
  “그게 공식적인 이유야. 그들이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우주를 바라보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주의 팽창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심플하게 설명될 수 있어. 이 우주에 ‘적’이 존재한다는 거지.”
  “적? 우주의 확산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공격이라는 건가?”
  “그래. ‘적들’의 ‘우주’에 대한 공격. 우리를 흩어놓고 흩어놓아 최후의 하나까지도 완전히 혼자가 되도록, 보다 외로워지도록. 산낙지를 토막 내는 것처럼 우리를 잘게 토막 내는 거지. 어쩌면 ‘은하연대’는 이 우주를 하나의 유기체나 유일신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
  정말 사랑스러울 정도로 실감나는 거짓말이야. 철저하게 사람의 시선에 맞춰져 있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속을 수 밖에 없겠지. 그들은 우리보다도 우리를 잘 알아.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적’을 상대할 병사로, 하고많은 인류 중에 널 대표로 뽑은 건가? 하필 너를? 넌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데.”
  “그런 종류의 ‘강함’은 문제가 되지 않아. 그들은 그런 게 진정한 강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두 팔로 휘두르는 폭력 같은 건 이 넓은 우주에선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해.”
  서로에게 닿을 리 없으니까. 무슨 짓을 하든.
  “그들이 원하는 건 다양성이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생각. 어떤 상황에서도 해답을 도출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춘 집단. 그들은 대화를 원해.”
  “대화?”
  “선배처럼 둔감한 남자는 평생 모를 거야. 그게 가장 폭력적인 수단이라는 걸.”
  “평생 모르겠지. 알고 싶지도 않아.”
  그래. 그게 선배와 내 차이야. 그녀는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쥐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머지 말들은 그저 쓰잘데기 없는 일상의 잡담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는 별로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그저, 가끔이라도 좋으니 은미랑 만나서 얘기나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중얼거렸다. 대화란 말이지.
  면회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아직도 선배 사랑해. 선배 정말 엿 같은 놈인 거 잘 아는데, 나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하는 거 정말 잘 아는데, 그래도 싫지가 않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선배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럼 금방이라도 홀딱 넘어가버릴 것만 같아.”
  그녀는 한 호흡을 쉬고서 이어 말했다.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왔어.”
  “그럼 왜 떠나려는 건데? 나를 여기 두고서, 넌 왜 수십만 광년이나 떨어진 곳으로 떠나려는 거야?”
  “이제 사랑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으니까. 사랑 같은 걸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
  쾅.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졌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두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시간이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리무진을 향했다. 그녀를 따라 수행원들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다음 목적지를 또렷이 말했다. 그곳은 서울 소재의 한 정신병원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나누셨습니까? 수행원 한 명이 그렇게 물었다. 운전을 맡은 그 사람이었다. 그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 얘긴 묻지 말았으면 해요. 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수행원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시 뒤,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사람이 바라는 게 제가 아니라 아빠의 연구소였다는 거 전 다 알고 있었어요. 알고서도 좋아했죠. 이유가 뭐든, 그게 동정심이든, 야망이든, 성욕이든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예요. 조금 비참해도 견딜 수 있었어요. 아파 죽을 것 같아도 그 사람 얼굴 한번 보고 그러면 견딜 만했어요. 사랑이란 게 그런 거죠. 운전수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부정했다. 아뇨. 사랑이 문제가 아니에요. 외로움이 문제죠. 단지 사랑 때문이었다면 전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에요. 외로웠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전 선배가 절 떠나려 하자마자 그를 버렸어요. 절대 우주로 보내줄 수 없었어요. 사랑만으론 그러지 못했겠죠.
  그런 걸까요? 그런 거에요. 그럼 왜 이 일에 지원하신 겁니까? 네? 왜 이 일에 지원하셨냐 말입니다. ‘은하연대’에 인류 대표로 뽑히는 거는 딱 한사람이잖습니까. 민다애씨 혼자서 탑승하시는 거잖습니까. 앞으로 한참을 사람구경이라고는 못 할 텐데 말입니다. 글쎄요.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외로워지고 싶어요. 그녀는 천천히 매듭을 풀며 말했다. 매듭 한 개가 풀려 이제 남은 것은 두 개뿐이었다.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그이랑 이혼하기 전에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세련되게 한답시고 수면제를 가득 집어삼켰죠. 목을 매고 싶진 않았어요. 가까운 사람이 그걸로 죽었었거든요. 근데 약을 삼킨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더라구요. 원래 알약을 잘 못 삼키거든요. 꾸역 꾸역 넘기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삼키다가 자꾸 목젖을 건드리다 보니 오히려 구역질이 나서 토하고 말았어요. 약을 많이 삼켜서가 아니라 목을 채 넘기질 못해서요.
  그래도 삼키는 데 성공한 양도 꽤 되었던지, 저는 꼬박 나흘 동안 잠들었어요. 잠에서 깨어보니 병원이었죠. 누가 옮겨다 준건지는 모르겠어요. 간호사 말로는 어떤 남자가 절 응급실에 데려다 놓곤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고 했어요. 제가 집 문을 잘 안 잠그는 편인데, 당시에 살던 곳 현관이 가만히 놔둬도 멋대로 끼익 끼익 열리곤 했거든요. 문 틈으로 보기에 여자가 약병 안고 거실에 쓰러져 있으니 누가 달려들어와서 구해줬던 모양이에요.
  남편은, 전 남편은 모르는 일이에요. 그이가 출장 떠난 사이에 있었던 일이거든요. 의사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리고 그 대가로 어떤 모임에 참석하기로 약속했어요. 네. 자살을 실패한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이었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은정이도 거기서 만났죠. 아마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 가서 만나려는 게 은정이에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오고 그러니까 아마 한번쯤 보셨을 거에요. 사람들이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서 서로의 사연을 듣고 들려주고 하는 거죠. 좀 나아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아질 수 있겠거니 희망을 갖기도 하고, 아파요 아파요 비명소리를 들으며 아픔을 나누기도 해요. 사실 정말로 아픔을 나눠 갖진 못해요. 아픔이란 각자의 것이니까. 제 아픔은 저만의 것이니까요. 누구도 가져갈 수 없죠.
  아무튼 어느 하루는 제 차례가 왔어요. 제 사연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거죠. 뻔뻔스럽게 듣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받았으면 내놓는 것도 있어야지. 그런 마음에 저도 제 이야기를 했어요.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했다. 너무 좋아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그 남자는 날 고양이 사료만큼도 생각해주지 않더라. 그래서 수면제를 삼켰다. 줄여놓고 보면 참 한심한 이야기죠.
  그 때 한 남자가 저한테 그랬어요. 그깟 연애 한번 실패한 걸로 뭘 그러느냐고요. 세상에 사랑앓이 한두 번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말예요. 참 나쁜 사람이죠. 자기가 더 불행하다고 증명해봐야 남는 건 아픔뿐인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깎아 내리려고 애를 써요.
  하지만 전 아무 반박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에게 한 마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져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거든요. 완전히 겁에 질려서 꼼짝도 못한 거죠. 그런 저에게 그 남자는 신이 나서 더 심한 욕설을 퍼부었어요.
  그리고, 짝, 따귀를 맞았어요. 한 사람이 저 대신 그 남자의 뺨을 후려쳤던 거죠. 서른 일곱 명에게 강간을 당했다던 여자였어요. 그녀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어요. 나한테도 한번 말해 보라고, 더 심하게 당한 년도 있는데 그 정도로 뭘 그러느냐고 한번 말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미친 듯이 소리쳤죠. 지금도 한 글자 빠짐없이 기억나요. 그때 은정이가 했던 말이요. 그 남자에게 은정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 있는 법이에요. 당신에게 겨우 그 정도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밧줄에 목을 매다는 일일 수도 있어요. 세상엔 겨우 그런 일로도 죽어버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타인의 나약함을 그리 쉽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누구에게도 남의 아픔을 ‘그깟’ 이라고 말할 권리는 없어요.
  굉장한 분이군요. 수행원 중 하나가 말했다. 네 굉장한 아이에요. 저 같은 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죠. 저는 그 애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어요. 그래서는 안됐었는데. 정말이지 그런 짓을 해선 안됐었는데.
  그래서 사과하러 가시는 겁니까? 수행원이 물었다. 글쎄요. 받아줄지 잘 모르겠네요. 분명 잘 될겁니다. 그런가요? 네. 민다애씨도 참 착하고 훌륭하신 분이니깐 잘 될낍니다. 그녀는 대답없이 서글픈 미소만 지어 보였다. 사실 그녀는 용서받을 생각이 없었다.
  리무진이 부드럽게 멈춰섰다. 병원이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유리벽이 있는 방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저는 그런 부탁 한 적 없는데요. 환자분의 요청이었습니다. 은정이가요. 네.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다 잘 될낍니다. 뜬금 없이 수행원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잠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아… 사과 말이군요.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하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짧게, 별 거 아닙니더. 하고 답했다.
  그녀가 병원으로 들어서자 담당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듯 다가와,
  “강은정환자 지금 상황이 좀 여의치 않으니 면회는 웬만하면 포기하시는 게…”
  하고, 운을 띄웠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그녀의 물음에 의사는 머뭇거리다가, 뚜렷한 폭력 성향을 보이고 있어서 위험할 수 있다고, 민다애씨가 혹여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이라고, 그녀의 마음을 크게 다치게 하는 말들을 부주의하게 쏟아놓았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을 아프게 하다니, 이 돌팔이 의사 같으니라고. 그녀는 의사를 밀치듯 지나쳐 은정이 기다리는 면회실로 향했다.
  문에 나있는 조그만 창으로 안을 바라보니 어둠 속에서 은정이 유리벽 건너편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은정은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손톱만 자근자근 물어뜯었다. 손톱을 부수고 부딪친 이가 손톱깎이처럼 톡, 톡, 소리를 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 은정아.”
  “나가 줄래?”
  “은정아…”
  “나가. 나가라고.”
  그녀는 버릇처럼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은정의 눈에는 눈썹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톡, 톡, 손톱만 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여기까지 찾아오는 거야? 꼭꼭 숨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니가 찾아올 수가 있어?”
  “미안해…”
  “미안하단 소린 전에도 지겹도록 들었어. 그 소리 듣기 싫어서 내가 여기로 옮긴 거잖아. 근데도 넌 참 뻔뻔하구나? 여기까지 찾아오고 말이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염치라는 게 있는 건데 말이야. 아 넌 평범하지 않구나. 하! 평범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
  그녀는 은정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입술을 달싹거리는 간단한 행동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은정은 죄의 화신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죄를 직시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가슴이 갑갑해져서, 그녀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단추 잠궈.”
  “은정아, 이건…”
  “단추 잠그라고!”
  단추! 단추 잠그란 말야! 은정은 거의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놀라서 급히 단추를 다시 채웠다. 그제서야 은정은 다시 잠잠해져서, 원래의 조용히 손톱 뜯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너를 믿어보려고 했는데. 너는 평범한 사람이겠거니 진심으로 신뢰라는게 쬐끔 생겼는데 말이야 너는 너는 어쩜 그럴 수가 있니? 나한테 어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얘기해 줬는데, 너한테 쪼끔도 숨기는 거 없이 다 다 전부 얘기해 줬는데 너는 말이야 어쩜 그렇게 내가 믿는걸 다 부숴놓고 그래. 니 입으로 나 평범한 사람 아니다. 그렇게 말했으면 나도 그냥 처음부터 접근도 안했을텐데 말이야 넌 나한테 어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 말 좀 그만해! 제발!”
  은정은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네가 그 날 나한테 어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난 니가 그 남자랑 헤어진다고 그래서 정말 기뻤는데. 그 새끼 감옥에 처넣고나서 얼마나 후련했는데. 너 그렇게 괴롭힌 로보캅 속눈썹같은 새끼 이제 다시는 안 봐도 된다고 기뻐서 이혼 축하 파티까지 열었는데…”
  은정은 훌쩍이기 시작했다. 주륵주륵 떨어지는 눈물은 마치 물구멍으로 새는 물줄기처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쏟아졌다.
  “그런데 니가 나한테 뭘 했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술을, 술을 그렇게나 많이 마시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나는 내방에 누워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벌써 아침인데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근데 햇빛 속에 니 입술이 나타나서… 어떻게… 흑…”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정은 소매로 쓱 눈물을 닦아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이 싹 사라지고, 대신 증오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래. 눈을 뜨고 있었는지 몰랐겠지. 알고도 그랬진 않았겠지. 몰랐으면 좋았는데 어떻게 그때 잠이 깨서 알았겠지. 모른 채로 넘어가면 좋았겠지. 나도 아는데 모른 척 할랬는데 잠이 깨서 알아지는데 어떡하냔 말야!”
  “미안해…”
  “용서해주길 바래? 정말로? 정말 그래서 온 거야?”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서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내 잘못이 지워질 거라고도 생각 안 해. 그건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일인걸. 네게 준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내 죄의식도 결코 지워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럼 대체 왜 온 거야?”
  “그냥… 한번 보고 싶었어. 그 뿐이야.”
  은정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어디… 가? 다애 너 어디 가는 거야?”
  “응. 조금…”
  “얼마나 멀리?”
  “10만 광년쯤.”
  은정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까와는 다른, 천천히 한 방울 맺혀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떠나는 거야?”
  “우주가 외로워지고 있대. 점차 서로의 목소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게 될 거래. 그리고 그건 우릴 미워하는 누군가가 서로를 갈라놓기 위해 우리에게 증오를 뿜고 있기 때문이래. 그래서 우릴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서게 된 거야. 적들을 무찔러 외로움을 없애자고. 난 그들과 함께 은하계 밖으로 떠날 거야.”
  “거짓말이지?”
  “응. 거짓말이야. 역시 들켰네.”
  은정은 살포시 미소를 보였다.
  “넌 남한테 상처 주는 일 같은건 못하는 사람인걸. 누가 그런 거짓말을 믿겠어?”
  “78억 인류가 모두 그렇게 믿고 있는걸.”
  “전부 바보야.”
  “응. 바보들이야.”
  헤헷, 은정은 기쁜 듯 웃어 보였다.
  “진짜를 말해줘.”
  그녀는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이건 정말 우리 정부도 모르고 UN도 모르는 ‘은하연대’가 몇몇 사람에게만 말해준 톱 중의 톱 클래스 보안정보인데, 그들은 35만년으로 본대. 인류의 수명 말야. 35만년 안에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쏘아 죽이고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겉으로는 인류에게 경험을 쌓아주겠다고, 150만년 후에 다시 돌아와 모두를 우주로 이끌 사람을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멸종 동물의 마지막 한 마리를 보호하려는 것뿐인 거야.”
  “살아있는 박제 인형.”
  “응. 사실 ‘은하연대’는 우주가 확산되는 걸 막을 생각이 없어. 그들은 타인의 온기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들은 홀로 완전하거든. 그건 다시 말해 스스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야. 누구도 필요 없이 완전한 고독 속에 잠길 수 있다는 뜻이야. 그 누구의 감정도 착취할 필요 없고, 그 누구의 육체도 탐할 필요 없는, 파도치지 않는 바다와도 같은 완연한 정적 속에서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야.”
  “넌 그렇게 되고 싶은 거구나.”
  “난 그렇게 되고 싶어.”
  그녀는 뒤돌아 서서 유리벽에 기대었다. 은정도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향해 뺨과 가슴을 대고 기대었다. 뒤돌아선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고 목덜미에 뺨을 부벼 체온을 느끼고 싶었지만 총알로도 꿰뚫지 못할 두터운 유리가 그녀와 은정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사실에 두 사람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나… 실은 어제 사람을 죽였어. 합해서 서른 일곱 명. 그게 인류의 대표로 뽑히는 대신 내가 요구한 조건이었어. 딱 세 시간 만에 널 괴롭힌 그 사람들 전부를 체포할 수 있었어. 겨우 세 시간이면 끝날 일을 십오 년이나 끌어왔다니 허탈해서 웃음만 나오더라.”
  그녀는 몸을 반쯤 돌려 유리벽에 옆으로 기대었다. 은정은 어둔 실루엣 속에서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하얗게, 유리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말했듯이 나도 이 별을 떠날 거야. 아마 오늘 밤 열 두 시쯤 되면 지구 궤도 바깥으로 사라지고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내일이 되면 이 방에서 나와도 좋아. 네 순수를 위협하던 여자는 태양계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 없을 테니까”
  “다애야…”
  그녀는 벽에서 몸을 떼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미소를 지었다.
  “나, 다음 달에 상 하나 탈지도 몰라. 만약 그렇게 되면, 상은 네가 대신 받아 줘.”
  은정은 망설이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게.”
  “후우… 이제 가봐야겠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발을 옮겼다. 등 뒤에서 은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한가지 부탁 해도 될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줍은 듯, 미안한 듯, 복잡한 표정으로 은정은, 두 검지손가락을 맞대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부탁을 했다.
  “TV… 하나만 가져다 줄래? 네가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눈물이, 지금껏 참아온 눈물이, 꼭 이런 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의 감정이, 하지만 이제는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늦어버리고 말았다고, 그런 안타까움이 넘쳐 그녀의 두 뺨을 적셨다. 그녀는 두 뺨을 닦아내며 답했다.
  “응. 그렇게 할게. 제일 커다랗고 제일 비싼 걸로 준비해 줄게.”
  “고마워.”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전 외로웠어요. 이제 선배를 곁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곁에 남은 건 은정이 뿐이었죠. 그래서 그 애한테 매달렸어요. 제 살기도 벅차서 하루하루를 자살충동과 싸우는 사람한테 말예요. 정말 나쁜 짓을 해버렸죠. 아 정말이지 외로움이 뭐길래. 대체 그게 뭐라고 이렇게 제 인생에 사사건건 끼어드는 걸까요? 아빠도, 엄마도, 저도, 다들 그게 뭐라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던 걸까요?
  달리는 차 안에서 그녀는 스카프의 하나 남은 매듭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미 해는 지고 한낮의 달이 아닌 진짜 달이 떠올라 노랗게 온기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또 하나의 달이 접근하고 있었다. 두 번째 달은 한 밤에도 새하얬다. 새하얗고 차가웠다. 새하얗고 차갑고 노란 온기도 내뿜을 줄 몰랐다.
  왼편으로 한강이 보였다. 이제 여의도로 가 주세요. 우주선의 랑데부 포인트 말씀입니까? 네. 그래요. 이제 미련은 없으니까. 수행원은 크게 핸들을 꺾었다. 리무진은 통제되어 텅 비어있었던 도로로부터 벗어나 마포대교 위의 수많은 차량과 인파 속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모두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들에 시선이 향했다. 좋은 이야기. 고마운 이야기. 나쁜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싫은 이야기. 다들 제멋대로야. 그녀는 생각했다.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혹은 그녀의 기분을 감지했는지, 수행원 한 명이 위로를 건네었다. 다들 부러워하는 겁니다. 다애씨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요. 그 대가로 무얼 지불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정작 자신들에게 내놓으라면 내놓지도 못할 사람들이 생떼를 쓰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쾅. 어디서 돌이 날아와 창에 부딪쳤다. 유리 위에 하얗게 흉터가 생겼다. 생떼 치고는 정열적이네요. 그녀가 평했다. 그렇군요. 수행원도 동의했다. 계속해서 물건들이 날아들었다. 깡통, 돌멩이, 달걀, 페인트, 심지어는 탄환도 하나 앞유리에 박혔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비싼 차를 보내준 국가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전수는 침착하게 리무진의 속도를 높였다. 다리를 통과하고도 한참을 달려 길게 늘어선 철조망을 두 번 통과하자 그제서야 더 이상 물건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석현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차에서 내려 그의 앞에 섰다.
  “여긴 어떻게…”
  석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약혼자 자격으로 우겼지. 거기에 친구가 중령인 것도 있고 해서 어떻게 어떻게 들여보내 주더라구. 하하 뒤쪽이 더 위력적이었던 것 같지만.”
  “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약혼자니까.”
  “결혼식날 드레스 던져버리고 도망간 사람인데 무슨 약혼자라고.”
  “내 맘이야.”
  그는 밝게 웃어보였다.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보였다. 항상 바르구나 이 사람은. 항상 바르고 옳고 착하고 건전해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도 그렇게 말했었죠. 내 맘인데요 뭐, 하고.”
  “것도 예의 없게 피 칠갑이 되어서 말이야.”
  “내 피인데 뭐.”
  “다애씨 그때 피 정말 많이 흘렸지.”
  “그랬나요?”
  “응. 사람 몸에 피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어. 손목에서 콸콸콸 쏟아지는데 대체 어찌 하면 좋을지 모르겠더라고. 그냥 손목을 꽉 움켜쥐고 냅다 병원까지 달렸지.”
  “미안해요… 그땐 그냥…”
  “외로웠지. 그 애한테 상처 주고, 병원에 갖히게 만든 자신이 싫어서, 죽여버리고 싶어서, 근데 알약 삼키는 걸 잘 못해서 하는 수 없이 눈썹 다듬는 칼로 손목을 찔렀던 거잖아?”
  “…미안해요. 지겹죠? 내가 너무 자주 이야기 했나봐요.”
  그녀는 고개 숙여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흉터가 뚜렷이 보였다. 팔을 감추려 하면 석현씨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뭘.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타인에겐 부끄럽지 않아도 자신에겐 부끄러운 흔적이었다. 몇 번을 설명해도 석현 씨는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었다.
  “불행해지고 싶어?”
  “네?”
  “결혼식날 말야. 지금은 그저 불행해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었지?”
  “응…”
  “이제 충분히 불행해진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멀리 하늘을 보았다. 멀리 우주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착하는 데엔 앞으로 삼십 분쯤 걸릴 것 같았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난 그냥 내가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드는 게 싫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는걸. 나도, 너도,”
  “아니, 그렇지 않아요. 나… 석현씨 만나면서 우진 선배가 딱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고 느꼈어. 그렇게 행복해하는 당신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는 거 보면서 나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다, 아니, 나도 행복하다,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그렇게 몇 번씩 생각했어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스카프를 꺼내었다. 그리고 하나 남은 매듭을 손 안에 넣고 움켜쥐었다. 단단하게 매어진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어. 결국 기쁨은 언제나 석현씨 혼자만 가졌어요. 난 결코 함께할 수 없었죠. 내 착각을 깨닫고 몰래 구석에 처박혀서 우는 모습 감추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아픔을 나눠줄 수 없는 것처럼, 결국 기쁨도 결코 함께할 수는 없는 거에요.”
  “다애씨 오랜만에 만나서 나 상처 주는 소리만 하네.”
  석현씨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그는 그렇게 가끔 아픈 농담을 하곤 했다.
  “미안해요. 한번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인데…”
  “두 번이야.”
  그녀는 놀라 크게 눈을 떴다. 그리고 금새 이해했다는 듯 다시 쓸쓸한 눈을 했다.
  “그랬군요.”
  “숨겨서 미안해.”
  “아니에요. 고마워요. 정말로. 정말 고마워요.”
  “그래…”
  그녀는 석현씨의 손을 잡고는, 손바닥 위에 매듭 진 스카프를 올려놓았다. 그는 궁금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 뜨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물이에요. 가져요. 그리고 다신 내 생각 같은 거 하지 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석현씨의 옆을 지나 오늘 하루 함께했던 수행원들을 향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2분 정도로 제한했고 질문도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냥 하고 싶은 말 몇 마디만 하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하면 안되나요?”
  “그래도 저희 경호실 애들 오늘밤에 술 빨면서 씹을 안주거리 하나쯤은 남겨주셔야죠.”
  웃으며 부탁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그녀는 연단 가운데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만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장내는 금새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의 선한 부분, 섬세하고 따스한 부분은 때로는 그를 참 고통스럽게 합니다. 여러분들이 조금만 더 악했다면, 조금만 더 냉혹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삶이 잔혹하다고 여기진 않았을 거에요.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의 삶은 아픕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문제는 인간 정신의 그 섬세하고 유약한 부분이야 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거에요.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더 많은 기쁨을 주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그가 남들보다 더욱 더 고통에 민감하고, 아파하고, 외로워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는 그런 착취가 싫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면서까지 기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누구도 없는 곳으로. 누구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곳으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러분이 무척 부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여러분이 정말로 가엾습니다.
  부디 사랑은 조심해서 하세요.
  이상입니다.
  그녀가 밖으로 나와 승강장에 서게 되자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가 멀리서 커다란 007가방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수행원 한 사람이 귓속말을 했다. 등 뒤에 서있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로 보아 운전을 하던 사람 같았다.
  “저 사람이 들고 있는 게 나노머신 주사라카는 겁니다.”
  “먹지도, 늙지도 않게 해준다는 그거요?”
  “네. 그렇게 말하니까네 꼭 성배라도 되는 거 같네요.”
  “부럽나요? 영생을 얻는다는 거.”
  “부러울끼 뭐 있습니까. 포르말린 용액 같은 건데요 뭐.”
  “…알고 계셨군요.”
  “감춰서 죄송했십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하루를 편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가방이 열리자 마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주사를 집어 들고 팔에 찔러 넣었다. 은빛 액체가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보기와는 달리 아픔은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바늘을 찌를 때도 없었다.
  그녀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두 분, 그리고 다른 경호실 분들, 오늘 하루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 됐어요.”
  수행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나 둘 자리를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들이 떠나가고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축구장 두 개만한 크기의 승강장에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조용했다.
  “혼자구나…”
  그 말은 누구에게 한 말이었을까. 그 고민을 할 틈도 없이 머리 위의 달에서 새하얀 광선이 쏟아졌다. 광선이 사라진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어느 방 안에 서있었다. 방 안엔 벽과 바닥과 천정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유리보다 투명했다. 심지어 그녀의 발 아래조차도 투명했다. 저들은 이런 곳에서 살아왔구나. 홀로 외로이. 단 하나의 별빛도 놓치는 일 없이.
  나는 좀 더 혼자가 되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그녀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잠겨있을 셈이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외로움이 두려워 꺼내놓는 마음 따위는 티끌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무릎을 안고 몸을 동그랗게 했다.
  이윽고 우주선이 가속을 시작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압력이 육체를 짓눌렀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고통 속에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가속은 끝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런 생물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팔다리를 길게 펴고 천천히 몸을 젖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보았다. 수억의 별들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혼자야. 이 막막한 공간 속에 나는 혼자야.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완전하게, 자신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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