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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은 느낌이 좋은 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가작으로 선정된 분도 다섯 분이나 됩니다.
모두 건필하세요. ^^


세이지님의 "설녀"와 "어린왕자의 우주"는 읽으면서 앞에 쓰신 글보다 점점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문단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문장마다 줄바꿈을 하시는데요. 뜻이 이어지는 문장들끼리는 줄바꿈을 하지 마시고, 하나의 문단으로 만들어주세요. 그 문단이 이어져서 한 편의 글이됩니다.

소설의 기본 구도는 인물, 사건, 배경입니다. "어린왕자의 우주"는 스스로 떠나온 조종사도, 그걸 손에 넣은 소년도 다 외로웠고, 외로움이란 슬프고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이야기를 쓰시려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외로움'이란 소재를 이야기할 만한 '배경'은 갖춰져 있습니다. 그걸 이야기할 '인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독자가 재미있게, 발단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는 인과관계의 터널을 거쳐 읽어내고 싶어하는 '사건'은 밋밋했습니다.

세이지 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분 같습니다. 차근차근 한 편씩 쓰시다 보면 좋은 글을 쓰시게 될 것 같습니다. 자주 글 뵙길 바라겠습니다.  


구르토그 님의 "망령의 외출"은 글을 쓴 이가 이야기/설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는 글에서 주는 정보만으로 내용/설정을 유추해야 하는데,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설정을 더 치밀하게 짜시고,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해파리님의 "잃어버린 화요일"은 중심 미스터리가 확고하고, 전개도 차근차근 잘 나가서 흥미있게 읽다가 결말에서 맥이 풀려습니다.
실화에서 소재를 포착한 후 소설화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재를 포착했다면, 거기에서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망상^^을 부풀렸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roland님의 "검은 고양이"는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제일 간단하고 자신있는 볶음밥을 뚝딱 만들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소재에 너무 집착해서, 소재가 주제로 뻗어나가지 못했습니다. 마녀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는 언제나 같이 나와서 신선하지도 않고, 엄마가 진짜 마녀였다는 반전도 전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남자애가 예상에서 아주 약간이나마 벗어난 길을 걸어가려고 해봤는데 그게 초자연적인 마녀들의 힘으로 그냥 흐지부지 결말과 함께 뭉개져버리는 것도 굉장히 안이하고 무책임합니다. 뒤를 궁금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정작 궁금했던 뒤는 아무 것도 없네요.
기본기가 있는 분이라 골격은 탄탄했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분인데, 이 글은 최선을 다한 글이 아니네요.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유진님의 "Joshua Tree"는 신선했습니다. 엽기적인 발상인데 재미있었어요. 유머러스하게 가서 블랙 유머를 만들 수도 있었고, 더 세밀한 묘사로 아주아주 그로데스크한 글로 만들 수도 있었는데 조금 어중간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마지막 문장도 살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 죽은 것 같아요. 싱싱한 활어를 골라내는데는 성공하셨고요. 회를 뜨는 솜씨가 는다면 더 멋진 글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안님의 "시간은 언제라도 주파수는 몇이라도"는 포장이 과한 꽃다발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꽃 자체로도 아름다운데 포장지가 오히려 꽃을 죽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석의, '알려지지 않은' 잔혹한 공정 과정과 실태를 해적방송에서 '알린다' 라는 '알린다' 삼박자 를 교묘히 맞춘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배열을 한 번에 알아차리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또한 이 배열을 완성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가 되었다, 외에 이 이야기가 필요할 이유가 뭘까, 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했고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목적이고 어디가 덧붙임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아주 고심해서 일관적으로 배열한 상징을 팝 문화를 연상시키는 해적 방송으로 포장해, 진가가 안 보이고 가려지는 역효과가 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볼티님의 "귀하의 의무 임신 등급은,"은 발상이 재미있었습니다. 단지 뒤집어놓은 것 이상으로 이야기가 나갈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요. 지금 이 글에 있는 내용은 배경으로 해서, 여기를 꿰뚫는 화두가 될 만한 무언가가 더 들어갔다면, 멋진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테드 창의 중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다큐멘터리"라는 중편을 한 번 읽어보시기 권합니다.


57호에는 볼티니의 "귀하의 의무 임신 등급은,", 디안님의 "시간은 언제라도 주파수는 몇이라도", 유진님의 "Joshua Tree", roland님의 "검은 고양이", 해파리님의 "잃어버린 화요일" 다섯 편을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다섯 분은 ltpimento @ paran.com 으로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된 분들께 보내드릴 책을 받으실 주소, 성함, 연락처(택배 발송시 필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즐거웠던 달이었습니다.
다음 달 새로운 글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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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의 대 변혁과 우주로의 진출!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일궈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꾸는 나라들과 유토피아인 양 홍보하는 디스토피아 세계들이 존재하고, 찬란한 저 우주의 별들에 자기 나라 광고 간판들을 세워대고 있죠. 사람들은 쏟아지는 우주만한 정보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고요. 바야흐로 인류는 새로운 인구 폭발!의 시기를 맞이한 겁니다. 인류의 숫자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이 미치는 곳도 "넓은 세계를 본적이 있어야 그 사람의 세계관도 넓어진다"는 어느 케케묵은 말처럼 되어가고 있죠. 이번에 제가 있는 행성의 공전기에 나온 우주 패션 잡지 코스모플래닛, 에고, 길기도 하군요, 머릿기사 문구가 <지구의 수평선밖에 보지 못한 사람이 우주의 특이점을 보고 온 사람의 디자인을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더군요.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좌우간 중요한건 이게 아닙니다. 제 방송이 언제나 그렇듯 서두는 횡설수설 하지만, 좌우간 다음부터는 꽤 들을 만한 게 나오지요. 오늘은 여러분에게 <키에스트린>이라는 보석에 대해 알려드릴까 합니다. 보석 이야기라니, 드디어 방송 스폰서 모집하냐구요? 제가 자주 제 목이 날라갈 만한 일들을 벌이긴 했지만 적어도 팬들에게 맞아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방송은 제가 죽는 날까지 스폰서 없이 운영할 겁니다! 보석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디까지나 여러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주에서 살건 지구에서 살건, 사람들은 언제나 반짝이는 것에 매혹되지요. 대 확장! 우주 진출!의 시대인 요즘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좀 달라진 게 있긴 하죠. 우주의 특이점을 보고 온 사람들이 어디 지구의 돌들이 눈에 들어올까요? 제가 언뜻 듣기로는 요즘 다이아몬드는 예쁜 돌로 치지도 않는 다는군요. 그게 다 키에스트린 때문이라나요. 자 잠시 영상 재생기를 가지고 계신 분은 제가 보내드리는 이 멋쟁이 보석상의 화상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완전 돈방석에 올랐다죠! 이분이 키에스트린을 캐는 곳은 저 멀리 변방의 fs-3140이라는군요. 한 몫 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거기로 가는 셔틀을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가서 키에스트린이 너무 예쁘다고 기절하지는 마세요!
  키에스트린은 여러 형태로 가공이 가능하지만, 외부 연마나 가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신비롭게도 키에스트린 내부에 은하계처럼 소용돌이 치는 불꽃들이 존재한다는군요! 불꽃들이 서로 꼬리를 물듯 빙글빙글 도는 게 아주 예쁘다고 합니다. 저도 어렵게 질이 떨어지는 화상을 구해서 한번 봤는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여러분들께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보내드리는 영상은 처연한 푸른색이지만 불꽃의 색채는 각양각색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게 어디 돌입니까? 사실 신비한 화학 액체들로 채운 구슬이 아닐까요? 하긴 그건 지구 기업들의 방식이군요. 네, 이 보석은 진짜 돌입니다. 아름다운 돌.
  대체 어떻게 이런 게 나올 수 있을까요? 거대한 우주 구석탱이에 존재할 법한 신비? 역시 우주는 넓다?
  돌을 캐려면 많은 광부와 도구가 필요하죠. 하지만 fs-3140의 도구들은 새것처럼 처음 배달 온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군요. 어떻게 아냐구요? 언제나 말씀 드리지만 제게는 믿음직한 친구가 있습니다. 제 눈을 어디로든 배달해주는 친구죠. 거기서 이런 놀라운 걸 보았죠. 영상 나갑니다. 이런 빌어먹을, 이게 아니잖아…여러분 죄송합니다. 아, 이제 됐습니다.

  모두 영상을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설명해 드리죠. 이 먼지만 쌓인 굴착기들을 지나서…  식사 중이거나 노약자, 끔찍한 광경을 보기 힘드신 분들은 지금 제가 멈췄을 때 잠시 눈을 가리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다시 재생하겠습니다. 다시 봐도…정말 끔찍하군요. 네, 끝났습니다. 눈을 가리셨던 분들은 이제 보셔도 괜찮으실 겁니다. 방금 지나간 끔찍한 장면에 대해 몇 가지 부연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fs-3140의 발견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아까 보여드린 멋쟁이 보석상입니다. 발견도 하고 개척도 했죠. 보석의 채굴권은 모두 그에게 있습니다. 사실상 저 행성에 진짜 키에스트린은 없었습니다. 키에스트린을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있었을 뿐이죠. 바로 신비한 돌과 거주민들입니다! 저 보석상 아저씨가 아까 뭘 했던 건지 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과학기술 아니면 제가 모르는 부두교같은 괴상한 거겠죠. 확실한 건 저렇게 채굴한 돌에 행성 거주민들의 생체 에너지를 담은 게 키에스트린이라는 겁니다. 키에스트린은 저 fs-3140 거주민들의 말로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같이 넣어야만 키에스트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그게 사랑하는 가족들이건, 연인이건, 절친한 친구들이건 말입니다. 정작 저 보석들을 살 사람들은 영원히 알지 못할 그럴 사랑들이죠. 돌 안에 영원히 갇혀버렸으니까요!
  이제 fs-3140 거주민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키에스트린이 요즘 비싸진 이유는 그거라나요. 채굴량 부족. 보석상이 잡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조만간 광석이 바닥날 것 같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달라고요. 실제로 거주민들은 조만간 모두 죽을 겁니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요. 누구도 알지 못한 채 모두 죽어버린다면 키에스트린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 되겠죠. 그래서 오늘 제가 이렇게 방송을 하는 겁니다. 이 전파가 fs-3140근처의 사법기관 행성들에도 닿길 빌지만, 그건 희망사항이고, 제가 무엇보다도 믿는 건 여러분들의 행동력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면 당장 실행하라. 제가 존경하는 고릭 박사님이 그러셨죠.

  어쨌거나 무엇을 할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매번 말하지만 전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니까요. 제가 틀렸다면 증거를 들고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정정 방송을 올리도록 하죠. 아참, 연락 하니 생각났는데 연락처가 바뀌었습니다. 저 보석 업자가 절 한번 보고 싶다고 동네방네 찾으러 다닌다고 합니다. 무서워 죽겠어요. 제게 연락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코스모플래닛이 나온 행성들을 보고 제가 지금 있는 행성을 맞춰보세요. 오늘자 해적 방송은 여기서 쫑입니다. <전파 해적질> 방송의 프로듀서겸 캐스터겸 음향 담당, 음... 좌우간 이상 레인이었습니다.

댓글 2
  • No Profile
    볼티 08.03.06 17:56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키에스트린 제조 과정에 대한 묘사가 좀 더 자세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No Profile
    mirror 08.03.11 23:37 댓글 수정 삭제
    디안 님께는 "분신사바" 보내드렸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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