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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5월 심사평

2023.06.15 00:0006.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3년 5월 1일부터 2023년 5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 12편을 심사하였습니다.

 

2023년 5월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박낙타 님의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유원, ‘위험한 가계, 2086
기형도의 시 「위험한 家系 · 1969」를 차용한 형식과 그에 기반을 둔 내용이 미래를 배경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좋은 의도의 실험이 엿보이는 소설입니다. 모티브로서 쓰인 기형도의 시는 소시민으로서 삶을 이어가던 가정에 아버지가 쓰러짐으로써 발생하는 일련의 상황이 담백하고도 짧은 단락으로 이어집니다. 유원 작가는 이를 기초 삼아 소설 ‘위험한 가계, 2086’ 안에서 범세계적으로 닥친 재앙 앞에 소시민처럼 작아질 수밖에 없던 화자의 가족 이야기를 서술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서글픈 한 가족의 단편적인 시간을 종말이 가까운 미래에 접목하고자 한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소설 안에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위해서는 문장의 구체성과 완성도의 면에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먼저, 기형도의 시는 ‘소시민’이라는 주제와 아버지의 “風病(풍병)”으로 인한 가정의 위기를 서정적이고도 끈질기게 묘사합니다. 일반적인 장면 묘사의 과정에서 구체성과 사실성을 확보해야 하는 건 시 장르의 전반적인 특징이지요. 시를 전혀 접하지 않은 대중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시가 ‘그럴듯한’ 문장과 감성으로만 이루어진 추상적인 글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러나 시는 오히려 하나의 장면과 순간을 명확히 포착하는 짧은 글로서 밀도 있는 메시지를 담는 장르입니다.
물론 유원 작가는 이렇게 오해하는 수준의 독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를 많이 접하고 그것을 소설 안에서 적극 실험코자 한 독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소설 ‘위험한 가계, 2086’은 미래 배경의 어떤 사회에 범지구적인 위기가 닥쳤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이 일에 휘말려 그 가족 구성원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는 설정과 분위기까지는 파악이 되지만, 장면이 하나로 이어져 구체적인 인과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시가 아닌 소설 창작으로 가정한다면 사실성은 이 글 안에서 더욱 먼저 보완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현재 인물과 사건, 배경 중 가장 모호한 것은 사건입니다. “사흘이 지나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위기의 원인이 끝까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군용 트럭”, 사이비 종교와 같은 소재가 등장함으로써 흔히 ‘종말론적’이라고 표현하는 위기감이 소설 안에 감돌기는 하지만 이 위기를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주체는 “그것”이라는 대명사로 처리되고 맙니다.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범지구적 위기’의 실체가 밝혀져야 함에도 이야기는 단순한 불안함 속에서 마무리됩니다.
물론 스토리텔링 속 모든 위기의 주체가 구체성을 획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으스스한 공포를 연출코자 일부러 불확실한 두려움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위기는 행성 규모이며, 서술자의 아버지가 실종된 이유와도 긴밀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서술자의 아버지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세계의 종말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이야기 내부에서 반드시 설명되어야 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원작 삼은 「위험한 家系 · 1969」의 단편적인 시적 형식에 필요 이상으로 기댐으로써 인공지능이 어떤 이유로 세상을 망가뜨렸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초반은 시의 문장으로, 후반은 소설의 문장으로 쓰인 이 글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형식으로서의 시와 소설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형식(짧게 나뉘는 문단)으로 쓰인 지금은 미완처럼 보입니다. 소설의 문장은 더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시’로서 쓰인 원작의 형식에서 조금은 벗어나 한 문단은 시의 문법으로, 한 문단은 소설의 문법으로 쓴다면 어떨까요. 더욱 긴 분량 안에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의 기능을 하는 단락에는 유감없이 원작의 형식을 차용해 시적인 장면 묘사를 하고, 소설의 기능을 하는 단락에는 쓰고 싶던 미래의 위기를 마음껏 구체적으로 서술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개인과 가정의 서정적인 이야기를 담은 기형도의 시 「위험한 家系 · 1969」의 배경을 세계 수준으로 확대하여 SF 소설로 쓰고자 한 유원 작가의 빛나는 발상에 무한한 응원을 보냅니다. 원작의 형식과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해 구체적인 종말의 순간을 환상적으로 그려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단순한 위기와 공포를 형성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과정이 이 글을 더욱 소설답게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니그라토, '우주폭력배론 : 신앙', ‘최종 악마의 한탄
인간의 폭력성을 극단적 격리로 몰아내고자 시도하는 두 신부의 짧은 대화가 빠르고 명료하게 읽힙니다. 범죄자가 될 확률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사람을 사회와 분리해야 하는가에 관한 종교적 논의에서 출발하는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완결감이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인물과 사건, 배경을 구체적으로 덧입힌다면 좋은 이야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소 극단으로 치닫는 대화의 양상과 단편적인 장면의 연속으로 서사성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화의 주제를 조금 더 찬반양론이 가능한 주제로 설정하는 동시에 인물 개인의 사상을 종교적, 철학적으로 보완하기만 해도 괜찮은 미니픽션으로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미래적 가정이라는 설정에 기대어 모든 상상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이런 논의는 자칫 인간의 특정 부류를 '청소'하는 대량 학살로 이어질 수 있기에 날카롭게 벼린 윤리적 잣대로 섬세하게 써 내려가야 합니다. 폭력과 범죄를 대하는 다양한 입장과 시선,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가능성을 깊고 넓은 폭으로 재정리한 후 그것들을 개연성 있게 엮어간다면 독자에게 지금보다 완성도 있는 이야기로 읽히리라 생각합니다.
'최종 악마의 한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모두 학살하고 홀로 남은 단 하나의 로봇이라는 상상의 출발은 매력적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잘 알려진 요한복음의 구절을 인용한 것 역시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짧은 분량의 이야기에서 꽤 두꺼운 단락을 차지하는 양자역학 이론이 독자가 읽기에 서사와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로봇이 자신의 차원에서만 인간을 몰아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가 행한 모든 살육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도다"라고 단조롭게 그것을 맺기에는 이미 인류의 절멸이라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진 상태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미 수많은 멸종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로봇의 대량 살육과 인간으로 인해 사라진 수많은 생물종을 향한 무관심이 같은 맥락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무의미하게 읽기에는 큰 대가를 치른 이 소설 역시 단편적인 장면의 전환으로 끝나기보다는 철학적이고도 문학적인 결론을 생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교와 인간, 철학과 미래의 결합을 글로 풀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그리고 그 출발에 상당한 매력이 있다면. 무엇보다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섬세하고 꼼꼼한 서사의 골자를 촘촘히 완성해 가는 과정 안에서 피어날 복잡다단한 의미에 집중하여 더 풍성한 소설을 완성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야, ‘해피 버스데이 프롬 유어 마리아’, ‘해피 버스데이 투 마이 민하
가정폭력 피해자의 양육 로봇인 마리아의 입장에서 쓰인 두 편의 연작입니다. ‘해피 버스데이’로 시작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생일로 피해 아동을 기억하는 로봇과 그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과정이 어딘가 애달픕니다. 마리아가 민하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라는 글쓴이의 의도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제목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 두 소설은 모두 마리아의 시점에서 민하와 그의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연작을 의도하고 쓰였는지, 아니면 그저 연속된 소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연작을 의도한 것이라면 두 소설은 하나로 합쳐져도 무방합니다. 배경도, 사건도, 인물도, 서술자의 시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시간대만 다른 두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달아 읽었을 때 이질감이 없어 맥락에 맞게 단락을 조정하고 두 편을 이어 붙인다면 오히려 무게감 있는 분량의 안정적인 단편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편보다는 후편의 도입이 독자로서 더 흥미롭습니다. 후속편의 도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중간에 첫 소설의 내용을 회상 등의 형식으로 삽입하고 다시 뒤편의 결말로 맺어지는 구성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만약 두 편을 개별의 엽편 완고로 만들고 싶으시다면, 후편에서 민하의 시점을 택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가정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대개 지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경우 로봇인 마리아의 입장에서 전편을 보완하고 민하의 입장에서 후편 작업을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물론 쓰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신중해야 하지만, 민하의 입장을 쓸 때 새로이 발견되는 반전과 복선이 있을 것입니다.
추가로 이 엽편들은 로봇과 폭력이라는 주제가 결합할 때 예상이 가능한 범위에서 진행됩니다. 전술하였듯 제목에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직관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은 분명히 큰 장점이지만, 독자의 기대 지평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설은 그만의 한계를 갖기 마련입니다. 예리하게 파고드는 한 가지의 차별점만 있어도 이야기는 순식간에 신선해질 수 있습니다. 기술과 폭력을 결합한 수많은 소설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이 엽편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보세요. 민하가 마리아를 특수한 방식으로 조작한다면, 로봇의 망상이 극단으로 치달았다면, 아니면 둘이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면 어땠을까요. 서정적이고도 감상적으로 끝나는 결말보다는 조금 더 이야기를 구체적이고도 특수하게 만드는 데에 시간을 들여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의 설정만으로도 뽑아낼 수 있는 논의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인간사에 로봇은 얼마의 깊이로 개입할 수 있는가, 이런 기계의 개입에 인간이 피해를 본다면 어떤 기준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로봇에게도 인간과 같은 법제를 적용해야 하는가. 이런 기술윤리적 문제부터 음지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사회적 관심 호소까지 넓은 범위의 이슈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이 소설 속 과학 요소는 인간과 기술, 그리고 경계를 넘어 존재를 구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정과 보완으로 더욱 인간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요휘, ‘천마총’, ‘기네스 펠트로
요휘 작가의 소설에는 그만의 유머가 있습니다. 특히 ‘천마총’에서는 문장 자체의 유희뿐 아니라 상황의 설정 면에서도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창작 의도가 드러납니다. “야, 억지로 웃으라고 하지마. 여기 무덤 앞이잖아. 죽은 사람이 좍 깔렸는데, 웃을 순 없잖아”와 같은 여러 문장은 작가의 이런 센스를 잘 보여줍니다. 이런 유머 감각은 소설을 쓰는 데에 큰 힘이 됩니다. 개성적인 문장이 소설에 자리 잡으면 특징적인 문체가 되고 이는 독자가 특정 작가의 소설을 읽는 이유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달에 올려 주신 두 소설은 내용 면에서 완결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인물, 사건, 배경이 모두 갖춰졌지만, 배치된 복선이 전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마총’에서는 주인공이 악몽을 꾸는 이유가 있고 조력자가 나타나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만, 더 이상의 진행 없이 이야기가 종결됩니다. 작가의 언어유희가 빛나고 충분히 흥미로운 결말이 가능한 소재였음에도 완결되지 않은 결말이 아쉽습니다. ‘기네스 펠트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네스 펠트로가 왜 한국인 애인을 만나는지, 그가 왜 한국의 평범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되었는지에 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소설의 상상력 역시 비범합니다만, 발생하는 질문에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대로 소설이 완전히 맺어지지 않은 채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일컬어 ‘열린 결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열린 결말은 ‘마무리가 되지 않은 소설’과는 조금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 오히려 결말이 없이도 독자가 충분히 여러 방향의 결과를 예측하고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단서를 소설의 곳곳에 숨겨놓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내용 안에서 충분히 내린 상태로 단지 정확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을 뿐이지요. 열린 결말은 복수 정답이 가능한 질문이고, 미완의 소설은 정답이 없는 (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문입니다. 전자는 채점이 가능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소설에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소설의 대질문에 해당하는 답 찾기입니다. ‘천마총’에서는 ‘왜 천마가 사람들에게 악몽을 꾸게 하는가’, ‘기네스 펠트로’에서는 ‘왜 기네스 펠트로는 한국인 노인과 사귀는가’가 대질문에 해당합니다. 이 두 문장에 관한 답을 정하고 그 내용을 개연성 있게 첨가하기만 해도 이 두 소설은 좀 더 명료해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유머와 재미가 담긴 글을 쓰기보다는 완결성과 개연성에 조금 더 관심을 두고 끈질기게 매달릴 수 있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짧지만 즐거운 소설 잘 읽었습니다.

박낙타,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
근래의 환상소설에서 괴물 또는 이물(異物)은 차별을 가시화하는 데에 종종 쓰입니다. 인간종에게 유구한 ‘선 긋기’의 역사는 계속되었기 때문에 돌연변이와 타종이 ‘인간’으로 편입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테죠. 박낙타 작가의 단편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는 이런 현상을 분명하게 잡아내 한 회사의 대리인 황유석 씨가 어떤 사유로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지를 짧지만 통찰력 있게 보입니다.
이 소설은 황유석 대리와 박종훈 이사가 주고받는 메일을 시간 순서대로 이어 붙인 형식입니다. 보통 회사의 생산 2팀, 대리라는 직함마저 지극히 일반적인 황유석 씨는 사실 늑대인간입니다. 그에게 ‘늑대인간’이라는 정체성 외의 모든 게 평범합니다. 소설의 두 번째 단락을 읽을 때까지 독자는 그에게서 전혀 특이점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단락을 읽는 순간 기이함을 감지하고(“생산 2팀에 보름달이 뜨는 이번 주 토요일에 특근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단락에서는 그가 공동체 내 유일한 늑대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됩니다(“김 팀장님이 늑대인간인 저에게 매우 차별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독자는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그는 직장 내 차별과 조롱으로 퇴사합니다.
차별의 객체(황유석 대리)와 주체(박종훈 이사)가 주고받는 업무 메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대화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의견이 충분히 들어가 있는 한편 정제된 문장으로 소설은 진행됩니다. 만약 이 대화를 두 인물이 매우 사적이거나 공적인 공간에서 대면해 나누었다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감정이 고조되기 마련이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개인의 사정을 스스럼없이 내어 보이기에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메일의 형식을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황유석 대리의 메일이 일반적인 늑대인간 피해자의 호소에 그쳤다면 다소 평면적으로 읽혔을 것입니다. 소설의 평가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 구조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황유석 대리는 자신이 늑대인간종 안에서도 말티즈인간임을 밝힙니다. 그는 스스로 약자 안의 약자임을 말합니다. 그는 단순히 늑대인간인 모습을 들킨다면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가 속한 늑대인간 집단 내부의 또 다른 차별구조는 소설에서 다루는 약자의 차원을 확장합니다. 사람은 약자의 정체성이 중첩될 때 같은 집단 내에서도 더욱 배척됩니다. 여성보다는 장애 여성이, 그보다는 성소수자 장애 여성이 차별받는 것처럼 말이죠. 작가는 이런 복잡다단한 인간의 층위 나누기를 소설 안에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황유석 대리가 말티즈인간이라는 사실은 팀 내에 굉장히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개됩니다. 팀장을 물어 황유석 씨가 퇴사하는 것은 약자를 완전한 약자로만, 강자를 완전한 강자로만 그리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팀장이 회복하면 황 대리가 있던 팀이 이전과 다름없이 굴러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합니다. 이는 여전히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다져진 사회의 차별을 완전히 부술 수는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겠습니다.
크고 작은 문장의 오류와 의미의 중복, 정돈되지 않은 문단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보완되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퇴고와 타인의 평가, 개인의 노력으로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가벼운 오류보다는 내용의 완결성과 흥미에 중점을 두고 평가했을 때 이 소설에는 짧지만 독자에게 강렬히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환상적 요소를 채택해 교묘하게 지속된 인간의 차별 역사를 통찰력 있게 꿰뚫고 이를 메일이라는 형식으로 적절히 엮어낸 박낙타 작가의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를 이달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에 추천합니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소설 잘 읽었습니다.

아르굴, ‘루틴
유치원생 송하의 시점에서 평범한 가정의 아침 루틴 중 한 장면을 떼어와 기록한 소설입니다. ‘루틴’이라는 평범한 이름과 천진해야 하는 유치원생의 시점을 택했지만, 이 글 안에는 어딘가 기묘한 폭력성과 상처가 깃들어 있습니다. 보호자가 보호자 노릇을 수행하지 못하고, 일찍이 눈치를 보아야 하는 어린이 송하의 매일 아침 ‘루틴’이 이렇다는 점에서 어딘지 섬찟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질감은 독자의 시선이 송하의 상황을 세세히 훑도록 합니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로 조성되었을 불안감은 효과적으로 소설의 분위기를 통일합니다.
도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일인칭 시점입니다. 주변을 묘사하는 아이 송하는 유치원생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분위기와 서술 방식, 문장의 톤을 보았을 때 대략 초등학생 정도의 인물이 연상됩니다. 현재 소설 속 송하가 사용하는 어휘뿐 아니라 그의 생각과 판단, 상황을 인식하는 방법은 유치원생보다는 초등학생이나 조금 더 높은 연령대의 아이에게 어울립니다. 그렇게 설정한 후 읽었을 때 더욱 자연스럽습니다. 이 소설은 복잡하고 미묘하게 반복되는 상황의 일부를 떼어온 것이기 때문에 현재 송하의 나이보다 감정 표현이나 어휘가 발달한 인물의 시점으로 썼을 때 더 다양한 이야기와 복선의 설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소설 안에서 송하가 유치원생이어야 하는 이유도 드러나지 않기에 추후 보완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주인공의 나이를 조금 높여보거나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의 톤을 발화자(유치원생)의 연령에 맞게 수정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다음으로, 이 소설은 더욱 확장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오빠보다 능력이 뛰어난 송하, 그런 송하를 시기하는 오빠, 그런 오빠를 못마땅해하며 송하만 편애하는 엄마가 인물 관계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이 이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진행의 단순성은 이 엽편을 긴 소설의 도입부처럼 읽히게 합니다. 그렇다면 소설의 내용과 분량을 늘이는 동시에 완결성을 부여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송하의 가정은 부모의 관계가 불안정하고 어머니의 폭력성도 두드러집니다. 전형적으로 아이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반복되는 ‘루틴’이 깨지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줄 때는 외부인의 개입이 가장 편리합니다. 소설 외부에 존재하던 ‘아빠’나 제삼자가 느닷없이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제목은 ‘루틴’이지만 그 루틴이 깨지는 반전은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야기의 진행을 흥미롭게 하고 감정의 고저를 발생시킵니다. 이미 형성된 불안을 끈질기게 이어감으로써 그 원인을 밝히고 가정의 비밀을 독자에게 폭로하는 것은 가장 전형적이지만 오래 사랑받은 구조입니다. 각 인물의 전사(前史)를 설정하고 이를 인과적으로 엮어내는 것만으로도 이 글은 일반적인 구조의 가정소설부터 어쩌면 스릴러로까지 장르가 확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도입으로 보고 평가했을 때, ‘루틴’은 괜찮은 출발입니다. 단순한 폭력과 방치로서 발생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단편적인 장면으로 소모하기보다는, 무수히 중첩될 가능성이 보이는 서사와 사건을 촉발하는 하나의 요소로 활용해 보세요. 분명히 사회적 메시지와 의미를 강하게 담는 소설이 될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달리, ‘루브 골드버그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생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기계의 발명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꼼꼼히 다루고자 한 소설입니다. 김동화 박사가 “11차원 안쪽의 우주와 그것들의 평행우주에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모든 사건들의 절대적 평균값”을 계산하는 ‘동화 요정의 골드버그 머신’을 출시하며 출발하는 이야기기의 내부에서 다양한 사회적 파장이 발생합니다. 범사회적인 이슈의 중심이 된 이 기계에 자신의 삶을 입력한 김동화 박사가 뜻하지 않은 미래를 마주하며 끝나는 단편입니다.
적절한 분량 안에 담긴 이야기와 오류 없이 이어지는 문장, 그리고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보도자료는 탄탄한 도입부를 형성합니다. 독자들은 인터넷에 루브 골드버그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본인이 살아갈 미래를 예측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가상의 기계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도덕적인 문제로까지 생각을 확장해갑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내 이름 공모전, 엔터테인먼트 비욘드케이 사(社) 이슈, 이나라 연구원의 수상한 행동 등의 에피소드는 그럴듯하게 이야기의 흥미를 고조합니다.
그러나 전반부의 단단했던 힘이 끝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소의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먼저 김동화 박사의 감정선이 조금 다듬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나라 연구원의 의심스러운 행동과 여론의 왜곡 이후 김동화 박사가 가장 처음 취한 행동은 루브 골드버그 머신의 자신의 인생을 입력하고 미래를 예측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나라 연구원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 소설은 이나라 연구원과 김동화 박사 사이의 어떤 감정의 연결점이나 복선 또는 암시가 없이 둘을 연인으로 만듭니다. 이나라 박사가 회사에 큰 물의를 빚을 수 있었던 사건이 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책임자 격인 김동화 박사가 단지 골드버그 머신의 예측 하나만으로 연구원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단번에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김동화 박사의 삶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가늠하는 SF의 고전적 메시지인 ‘새옹지마’를 활용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좋은 줄로만 알았던 사건이 실은 부정적인 일의 계기가 되고, 천하의 악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도 하는 게 인생이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기대했기 때문에 결말이 급작스러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나라 연구원이 훌륭한 작명 센스를 보였다거나, 골드버그 머신 잠입하고자 했던 것이 지금은 수상한 행동으로만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수정을 통해 그럴듯한 사랑의 복선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동화 박사가 아닌 이나라 연구원의 인생 데이터로 그녀가 김동화 박사를 사랑하고 있음이 밝혀지는 쪽은 어땠을까요.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이 소설이 ‘테마파크’라는 가상현실을 차용한 것치고는 사실적인 사건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소재의 적절성을 따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골드버그 머신에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자 가상현실의 캐릭터에게 “전신 스캐너”를 도입한다는 설정이나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직원’이라고 불리는 등의 장면에서 이 소설이 오히려 현실성에 기대고 있음이 포착됩니다. 테마파크의 형태로 꾸며둔 가상현실의 공간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상상의 배경이 될 수 있음에도 이 소설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는 아마도 ‘루브 골드버그 머신’을 둘러싼 사건과 미래 예측이라는 소재에만 작가가 집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상현실 속 오락기에 불과할 수 있는 루브 골드버그 머신의 이용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용했다는 점, 그리고 이 가상현실 공간이 대중에게 얼마나 알려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도 소설의 전반적인 정황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줍니다. 김동화 박사가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연구자거나 잦은 TV 출연으로 인지도가 높다면 어떨까요. 매니아가 즐기는 소수의 유희가 아닌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골드버그 머신이 주목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단편은 좋은 문장과 설정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상세한 질문에도 답을 하는 소설이 되었으면 합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 수 있는 테마파크에 세워진 의문의 미래 예측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소재가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소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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