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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달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19년 9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 후보작을 추천하였습니다. 비나인 님의 「스토아적 죽음」과 김초코 님의 「부활의 서」는 분량 초과로 심사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돌로레스클레이븐 님의 「컴플레인」최의택 님의 「노인과 노봇」을 선정하였습니다.

진정현 님의 「화성에서 온 노인」은 고전적인 플롯으로 쓰인 단정한 소설입니다. 화자인 '나'는 우연히 만난 기이한 노인에게서 믿기 어려운 환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정신이상에서 비롯된 망상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듭니다. 마지막에는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 노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여운을 남기며 끝나네요. 노인이 들려주는 외계인들의 삶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이 액자 소품 안의 내용으로만 담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세계에 대해 인간이 갖는 열정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결핍을 해소하려는 욕망의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최의택 님의 「밤 하늘의 유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는 한 소년의 바람을 시간여행에 대한 꿈에 빗대어 풀어나갑니다. 인물간의 관계성이나 주고받는 대사가 평면적이라는 결점이 있지만, 자라나는 소년의 미래를 격려하는 따뜻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역사를 도상으로 표현한 것과도 비슷해 보이는 혜성이의 '혜성 달력'을 보면, 한 인간이 태어났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역사란 거대한 우주 전체의 역사에 비해 언뜻 작아 보여도 실은 그 못지 않게 복잡하고 놀라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돌로레스클레이븐 님의 「컴플레인」은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혔습니다. 빠르고 건조하게 전개되면서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릴을 주는 완급 조절력이 훌륭합니다.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한 묘사와 잘 짜여진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식품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 제기와 이를 기업에서 무마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지만, 미래 배경의 광대한 우주에서 같은 사건이 벌어지니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네요. '가게'를 '가계'로 쓰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최의택 님의 「노인과 노봇」은 늙은 인간과 낡은 로봇 사이의 유대감과 동질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육체와 기계 장치의 '노화'에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그렇게 육체의 차원에서 인간성을 탐구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마음', 즉 영혼의 차원으로 나아감으로써 작가는 한 단계 더 도약합니다. 결국 세 인물(혹은 두 인물과 한 로봇) 모두가 죽음이라는 동일한 귀결에 이르는 대목에 이르러 독자는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이 '원점'이 사뭇 철학적이네요. 그러나 노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고방식이나 언어는 이 소설에 필요한 깊이를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달은 3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하는 달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7월 후보작이었던 이준혁 님의 「어떤 만년필 매니아의 소망」, 8월 후보작이었던 천선란 님의 「레시」, 9월 후보작이었던 돌로레스클레이븐 님의 「컴플레인」과 최의택 님의 「노인과 노봇」 중에서 천선란 님의 「레시」돌로레스클레이븐 님의 「컴플레인」 두 작품을 3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시」

A: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외계인이라는 존재는 조우한 적이 없어 생과 죽음이 어떻게 연출되는지 알 수 없으니, 그 점을 활용해서 감동적인 모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네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셔서, 모녀의 역사를 길게 풀어놓다보니 파편화된 서사가 군데군데 벌어져 있다는 점이 조금 걸립니다. 하지만 SF적 상상력을 종교(윤회 등)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려서 하나로 모아놓은 솜씨가 무척 놀랍습니다.

B: 바이러스로 인해 생명을 잃어버린 바다를 살리기 위해 우주로 향한 과학자들이 발견한 미지의 생명체 ‘레시’와의 따뜻한 이야기가 암울한 죽음의 미래에 희망을 줍니다.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는 미래 세계에서도 사람은 희망을 찾지요. 단순히 생명의 이어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아이를 생각하는 어머니가 아이를 사고로 잃고 일에 매달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사고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슬픔에 그대로 빠져 있을 수 없고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만, 미지의 생명체에게 떠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를 사랑하듯이 레시를 관찰하는 주인공의 삶이 숭고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생명 같은 존재를 앗아간 세상이 그대로 멸망해버리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요. 결말의 두 장이 에필로그처럼 예쁩니다. 레시와 함께하는 바다가 생긴 승혜에게 어쩌면 지구의 바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C: 모든 순간적인 것. 운명적인 것. 사라지고 잃고 빼앗길 것이 인생에 남기는 반짝이는 흔적은 갑작스런 조우 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D: 인류가 조우할 첫 번째 외계생명체는 엔셀라두스의 해양생물일 거라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두근거리는 그 조우를 기다리면서 그에 관련한 소설을 보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정보들이 파편화되어 흩어져있는 경향이 있고 비문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보시고 통일성있게 가다듬으시면 훨씬 더 즐거운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E: 주술 호응이 맞지 않거나 수식이 모호한 문장들이 많다는 기본적인 결함 때문에 과연 후보작으로 선정되는 것이 온당할지 고민했던 작품입니다만, 아이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담긴 호소력, SF적 개연성과 탄탄한 서사의 구성을 끝까지 가져가는 성실함, 세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높이 평가합니다. 더 잘 다듬어진 작품들을 앞으로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해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컴플레인」

A: 명랑쾌활한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반전이 선득합니다. 초반부의 만화같고 유쾌한 분위기 때문에 무척 흡인력있게 읽다가 뒤에서 깜짝 놀랐네요. 컴플레인을 건 주인공들이 그야말로 '갈려서' 사용되는 것도 사람들 일반의 기업에 대한 불투명한 공포감을 확장시켜서 좋네요. 다만 뒤쪽에 가서 이야기가 너무 중첩되는 느낌은 있습니다. 익숙한 사이버펑크적 분위기 때문에 그럭저럭 흘러가지기는 하지만, 설명이 불친절한 점도요. 다만 설명을 친절하게 하다가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작가의 선택 영역에서 더 발전시킬 부분으로 사료됩니다.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B: 굿스피드라는 이름이 반어적으로 작용하는 낡은 우주선에서 컴플레인이 직접 접수되기 전에 먼저 컴플레인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상품평과 후기가 판매자의 개입으로 믿을 수 없게 되어가는 현대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거대 기업을 상대로 컴플레인을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미나가 만나는 결말은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만, 작가의 의도가 그 불합리를 이야기하시려는 거라면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다만 우주를 워프 항해하는 시대에도 ‘투덜이 스머프’가 밈으로 기능하고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또한 ‘화면을 띠우자(->띄우자)’ ‘해동된 체로(->채로)’ ‘가계(->가게)’같이 맞춤법 오류가 자주 보여 독서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올리신 작품에서 반복되는 오류들이니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C: 우주이지만 기름냄새가 날 것 같은 전반부부터 중반까지의 분위기가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그 분위기는 후반에 완전히 뒤바뀌는데 이게 너무나 다른 두 작품의 조합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아이디어와 중심은 후반부에서 풀리는데 전반의 인물들이 만든 역사와 깊이와는 연이 옅어서 아쉬움을 주는 듯 해요. 설정이 재미있는데 차라리 장편이면 어떨까 합니다.

D: SF는 현실 사회의 알레고리로 기능할 때가 많습니다. 컴플레인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SF코미디에 실은 작가의 역량을 응원합니다. 단편보다는 장편에 맞는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으로 계속 재미있는 작품을 즐겁게 내시길 바래봅니다.

E: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혔습니다. 빠르고 건조하게 전개되면서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릴을 주는 완급 조절력이 훌륭합니다.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한 묘사와 잘 짜여진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식품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 제기와 이를 기업에서 무마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지만, 미래 배경의 광대한 우주에서 같은 사건이 벌어지니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네요. '가게'를 '가계'로 쓰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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