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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교사의 공중부양

김성호

 

남편의 이름은 여양금이었다. 국어교사 재직 시절 여 교사, 여 선생으로 자주 불렸다. 그는 처음엔 불쾌해하다가 나중엔 매력적인 별명이라며 본인이 나서서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 여 씨 성은 여간 희귀한 게 아니라 나 역시 그 별명과 농담에 가끔 웃곤 했다. 하지만 가끔 비꼬듯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내로서 여간 견디기 힘든 게 아닐 수 없었다. 의사는 남편이 국어교사로 전에 재직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피식 웃었다. 그도 그런 농담을 생각해내고는 웃은 걸까, 아니면 그냥 냉랭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그런 걸까.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남편의 헛소리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중부양을 하신다는 말씀이군요.”

의사가 키보드를 타닥타닥 빠르게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남편, 여 교사는 그렇다고 했다. 꼭 남들이 없을 때에만 공중부양을 하게 되는데 마치 뭔가에 업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이어 그가 귀신이 아닐까요, 말하는 것을 듣고는 한 손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쓸었다. 의사가 흐음, 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넌지시 정말 귀신일까요, 말을 뱉는 게 전부였다. 의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감정을 가늠키 어려운 얼굴로 그는 여 교사에게 공중부양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주로 언제 그렇게 되는지, 남들 눈엔 왜 보이지 않는지, 증거는 있는지, 마지막으로 귀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여 교사 옆에 선 채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게, 그러니까. 말을 더듬는 그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깨를 꼭 감싸는 것밖에 없었다.

여 교사는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담당 동아리 학생이 자살한 이후, 그는 정직과 감봉 6개월 처분을 받은 뒤 사직했다. 그의 인생을 축약하자면 그러했다. 더 덧붙일 것도, 덜어낼 것도 없었다. 이후 나와 남편의 삶은 급속도로 기울 법 했다. 하지만 다행히 적절한 시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 덕분에 길거리에 나앉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키울 자식도 없고, 부양할 시부모도 없었다(그들은 제 몸을 건사할 정도의 돈을 수중에 갖고 있었으므로). 나는 H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와 글을 끼적이다 무명의 계간지에서 상금도 받지 못하고 등단한 유사소설가였다. 종일 남편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도, 남편의 공중부양 얘기를 온종일 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앞섰다.

남편에게서 처음 공중부양 얘기를 들은 건 세 달 전 일이었다. 그의 말로는, 자신이 미친 거라고 생각할까봐 한 달여간 숨겼다고 했다. 그러니 적어도 네 달 동안은 계속 ‘공중부양’을 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처음 듣자마자 해봐, 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일반적인 초능력 범주의 공중부양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어느 날 어느 순간 몸이 붕 뜬다니까.

여 교사가 참을성 있게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그러면 그건 공중부양이 아니고 뭐 폴터가이스트 현상, 그런 거 아냐?

모르겠어.

그는 체념하듯 대답했다. 인터넷이나 책을 뒤져봐도 의견은 두 가지 뿐이었다. 병원에 가거나, 무당을 부르거나. 후자는 애초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으므로 병원이 적절할 터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병원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꽤 유명한 G교수가 있는 병원은 자그마치 두 달 넘게 예약날짜가 밀려 있었다. 다른 병원에도 가보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의사는 남편의 말 한 마디를 토씨 하나 놓칠세라 타자 속도를 높였다. 언제부터 그랬느냐는 질문에도 남편은 답하기를 주저했다. 이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속이 메슥거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분명했다. 그 애가 죽은 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부터였다. ‘귀신’이라고 추정하는 연유는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모른 척 입을 다물었다. 의사는 근래에 무슨 충격을 받을 일이나 특별히 기억될만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여 교사가 다시 머뭇거렸다.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담당 동아리 학생 한 명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자살이요.”

나는 떠벌리려는 것을 참고 가까스로 숨을 죽였다. 의사는 아, 입을 벌리다 다물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 내 잘못은 아니라잖아.”

남편이 동의를 구하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당연히 그렇다는 뜻으로 머리를 주억거렸다. 의사는 떨떠름한 미소를 내보이며 증세가 심해보이진 않으니 약을 일단 처방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나는 여 교사를 데리고 원무과로 가 다음 예약 날짜를 잡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의 일부로 진료비를 치렀다.

그와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가 약국으로 향하는 동안 여 교사는 떠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내 말이 맞지 않느냐며, 의사선생님도 동의하지 않았느냐며, 자신의 공중부양은 ‘실제’라고 주장하기를 거듭했다.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과속방지턱을 넘어 대형 약국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정신건강의학과로 유명한 이 병원에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징글맞았다. 다들 어디가 그렇게 약한 걸까. 나는 처방전을 건넨 뒤 자리에 앉아 남편의 손을 멀찌감치 내버려둔 채 약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옆에서 여 교사는 끊임없이 지껄였다. 자신의 공중부양에 대해서. 그 설명은 매우 자세하여 실제 그것을 체험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말로는, 마치 무언가에 업힌 듯 실제적인 촉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 없고,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다 귀신에 이른 건, 순전히 여 교사가 담당했던 동아리 학생의 죽음 때문이었다.

“약이 꽤 많으시네요. 이게 항히스타민 항우울제고요.”

약사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남편의 질병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남편을 뒤따라 진료실을 나서기 전, 의사가 건넸던 물음이 머릿속에서 맴을 돌았다. 부인께서는 남편 분의 공중부양을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그 물음에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하려던 대답은 삼킨 채.

 

건물 옥상 위에 내려앉은 하늘은 이따금 거무튀튀한 구름들을 흘려보냈다. 맹위를 부리는 찬바람에 재채기가 절로 튀어나왔다. 정렬한 가로수들은 제멋대로 몸을 흔들며 길 가는 이들을 배웅하고 마중했다. 땅은 단단하지 않고 물렀다. 그 때문에 몸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은 아직 남아있었다. 학교의 후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업 시간인지 교정은 조용했다. 남편이 근무하던 학교였다. 나는 중앙현관으로 다가서다 돌연 멈춰 섰다.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벽돌 타일의 색깔이 다른 곳과 달리 무엇에 닦인 듯 지저분했다. 이곳이 남편의 담당 학생이 투신한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을 진득하니 먹어야 했다. 무거운 발을 떼 중앙현관으로 들어선 나는 행정실을 거쳐 제2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답이 없기에 문을 열었다. 몇몇 교사들의 눈길이 나를 더듬었다. 한동안 그렇게 문가에 서서 교무실 안의 누군가를 찾아 눈동자를 굴렸다. 내게 아는 척 해주는 사람이 있길 바라서였다. 뒤에서 기척이 나 돌아보았다. 교무부장이 막 교무실로 들어오려던 참이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는 아, 오셨군요,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제 자리로 갔다 오더니 ‘학부모상담실’로 앞장서 안내했다. 학부모상담실은 교무실 뒤의 여분 공간을 개조해 만든 곳이었다. 특징이라면 창문이 없었다. 원래 창고였던 탓이었다. 그래도 구색은 갖춰서, 무거운 회의실 의자가 여덟 개 정도 놓여 있었다. 나는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교무부장은 곧 죽은 그 애의 아버지가 올 거라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시는 게 좋아요.”

수도 없이 들은 말이었다. 오늘 만나는 건 형식적인 절차였다.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망한 학생은 어머니가 일찍이 이혼했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란 남자는 줄곧 얼굴을 마주하기를 피해왔다.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나 같아도 ‘가해자’인 교사를 쉽게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죽도록 팬다면 모를까.

내가 아는 것은, 다시 말해 죽은 아이의 유서, 그 아이의 아버지, 가해 교사의 진술, 같은 동아리 학생들의 증언, 기타 교사와 학생들의 증언을 참고해 아는 것은, 남편 여 교사가 평가자의 신원 비밀이 절대적으로 지켜지는 교원평가 내용을 가지고 죽은 학생을 추궁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개인평가 기록에 남은 좋지 않은 평가와 욕설을 그 애가 썼다고 넘겨짚은 것이다. 그 애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러자 여 교사는 기록 내역을 뽑아와 보여주겠다며 겁박했다. 그러면서 그 애의 평소 행동 하나하나를 열거하며 악랄할 정도로 비난했다. 착한 앤 줄 알았는데 친한 친구한테 욕을 하는 걸 보니 본성이 글러먹었다, 동아리 활동후기에도 비판만 가득하다, 등등. 평소 글을 좋아하던 그 애는 자주 남편에게 글을 보여주며 친해지려고 했던 모양인데, 여 교사는 그걸 가지고도 꼬투리를 잡았다. 더럽게 동성애를 소재로 내용을 쓰느냐, 너 게이냐, 그런 말들.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후, 3교시에 그 아이는 옥상에서 투신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처음에 나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문가에서 마주 인사한 뒤 맞은편에 앉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익힌 낯으로 깨달았다. 남자가 오래 전 아이를 낳자마자 이혼한 전 남편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사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가, 목소리를 듣고 말투를 듣고 나서야 확신했다. 그에 더해 죽은 그 애의 나이와 내가 아이를 낳고 이혼한 시기를 셈한 뒤에야. 남자도 당황한 낯빛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나와 그는 아무런 말을 주고받지 않고 교무부장의 말을 따라 형식적인 대답만 반복했다. 예와 아니오, 간단한 질문과 의례적인 사과 따위들.

잠시 나가줄 수 있겠느냐고 말을 꺼낸 건 남자였다. 교무부장은 괜한 소란이 일어날까 두려운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곁눈질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한동안 지우기 힘든 침묵이 죽음의 더께를 업고 우리 사이에 자리했다. 우리는 상대의 의중을 알기 위한 안간힘으로 서로의 눈을 살폈다. 입을 연 건 나였다. 침묵이 주는 죄책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남편에게도 책임이.......”

“왜 남편 대신 나왔어?”

느닷없는 반말에 나는 한동안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남자는 어느덧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향한 것일까, 나오지 않은 남편 여 교사를 향한 것일까. 나는 어쩌지 못한 채 가만히 그의 차림을 살폈다. 깔끔하게 깃을 세운 셔츠 칼라와 웃자란 수염 없이 깨끗한 턱, 꾸준한 운동으로 쑥 들어간 배와 다부진 전완근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모로 여 교사와는 달랐다. 여 교사는 지금도 공중부양 중일지도 몰랐다.

“정말 맞아? 내가 아는 그 사람 맞아?”

내가 재차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마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런 우연이. 이혼한 가정이야 흔하고, 거기다 홀로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요즘은 흔했다. 더군다나 전남편이란 남자는 이혼하자마자 아들의 이름도 바꿔버렸다.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교무부장이 아까 가져온 보리차를 입에 가져갔다. 식은 지 오래였다. 단숨에 컵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나는 전남편과의 자식이 여 교사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에 적응해야 했다. 받아들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적응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뱉은 말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당신, 공중부양해본 적 있어?”

“뭐라고? 공, 뭐?”

남자가 당황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공중부양 말이야. 우리 남편, 그러니까 지금 남편 말이야, 공중부양 할 줄 안다?”

“무슨 헛소리야?”

“세현이, 당신 아들 죽은 지 일주일쯤 됐나, 남편이 공중부양을 할 줄 알게 됐어.”

그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듯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이었다.

“두둥실 떠오르는 거 말이야. 몸이 저절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알아? 그런 거 비슷한 건데, 꼭 누구한테 업혀 있는 것 같대. 정신과에도 물론 가봤지. 별 말 없어. 그저 우리 남편 잘못 아니라고, 그러니 그런 현상이 줄게 만들어주는 약을 처방해줬지.”

“남편 잘못 아니라고? 지금 뭐라고 했니?”

“오해하지 마. 의사가 한 말이야. 나는 사실 그대로를 전했을 뿐이고.”

“너 정말, 우리 세찬이, 아니 세현이 친엄마 맞니? 친엄마가 어떻게 그래?”

“그냥 세찬이라고 해. 이름 바꾼 거 다 알아. 그때부터 내 아들도 아니었어. 이제 와서 나한테 친엄마 맞느냐, 모성애 강요할 생각 마. 난 지금 남편 사랑하고, 내 남편 안 미쳤어. 아직 사건 정리도, 사후처리도 안 끝났고.”

“미친년.”

그가 낮게 뇌까렸다.

“미친년은 너야. 자식이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니? 듣기로, 보상금 당기려고 애쓴다던데.”

“그런 적 없어. 나는 누구보다 세현이 위해서 애쓸 뿐이야.”

“세현이라고 하지 마, 세찬이라고 해.”

나는 외치듯 말했다. 밖에서 기척이 들렸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남자가 다시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맞바라보았다.

“나는 남편이 죽은 남의 자식 때문에 시달리다가 미쳐서 똑같이 죽는 꼴 보기 싫어.”

“말 함부로 하지 마.”

“내가 왜 이혼했는지 잊었니? 네가 술만 처먹으면 사람 물건 가릴 것 없이 팼잖아. 그 바람에 우리 엄마 유골함도 깨진 거, 잊었니? 노래라도 불러줘?”

나는 가까스로 솟치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남자와의 짧은 결혼생활을 기억한다. 처음 2년은 괜찮았다. 문제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였다. 엄마의 유산을 대부분 가져가 사업에 탕진한 뒤 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사위를 어떻게든 갱생시켜보겠다고 직접 알코올중독치료센터에 데려갈 정도였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남자가 입을 채 벌리지 않고 물었다. 발음이 뭉개졌다.

“말했다시피 우리 남편 공중부양 할 줄 알아. 너 뭐 아는 거 있니?”

“내가 그런 정신 나간 짓에 대해 어떻게 알아?”

“넌 술독에 빠졌을 때 개미가 온 몸을 긴다고 한 적도 있었어.”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남편이 술을 마시는 건 아니라고 했다.

“마약이라도 하나? 나 원 참, 교사란 인간이. 태만하게.”

“죽은 네 아들한테 말해.”

“내가 무슨 수로? 세찬이 내 아들이지만, 엄연히 네가 친모고 너한테도 책임 있어. 죽은 애한테 할 말 있으면 무당 불러서 굿이나 지내면서 전해.”

“그런 말은 양육권 강제로 빼앗아가기 전에 했어야지.”

남자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학부모상담실을 나왔다. 바깥엔 아무도 없었다. 뒤에서 남자가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듣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다만 눈가가 조금 뻐근했다. 화장이 지워지지 않게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훔쳐야 했다.

 

48평짜리 신축 아파트는 고즈넉했다. 이따금 집안일을 하다 남편의 부름에 달려가면 그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져 있거나 자빠져 있었다. 방금까지 공중부양을 했다고 주장하는 그였다. 나는 여 교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장하는 그의 눈동자엔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언뜻 광기로 번뜩여서 나는 정말 그가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가 죽은 그 애에 대해 그런 말을 쏟아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여 교사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처음 여 교사를 만난 날을 기억한다. 친구의 소개에 의해서였다. 10년 전 그는 젊었다.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날렵한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로 시선을 끌었다. 한 북카페에서였다. 그는 초임교사로서 자기 소신과 열정을 지닌 남자였고, 나는 전남편의 돈에 관한 갖은 획책과 주사 때문에 지쳐 있었다.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잘생긴 ‘하자 없는’ 남자가 왜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연애를 하던 어느 날, 그녀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리듯 내뱉었고, 여 교사가 그 말을 들었다.

왜긴 왜야. 성실하잖아.

나는 처음에 그 뜻을 그저 자기 삶에 열중한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때만 해도 글에 의욕을 잃지 않고 쓰던 때였으니까. 아니었다. 그는 남편과 집안일에 ‘성실한’ 여자라고 ‘평가’했던 것이고, 나는 그렇게 지금까지 평가의 대상자로서 살아왔다. 그러니 교원평가에서 모욕을 받아 평소 벼렸던 학생을 지목해 근거 없는 추궁으로 죽기까지 내버려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죽음이야 다소 예상에 있어 과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하나 어쨌거나 여 교사의 잘못이었다. 나는 그걸 모르지도, 잊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나서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어디 가? 불안하단 말이야.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

여 교사가 말했다. 영락없는 애 같았다. 아니면 치매 걸린 노인이나.

“잠깐 나갔다 올 거야. TV로 넷플릭스나 봐.”

집을 나서자마자 부동산으로 향했다. 부동산 주인은 재혼할 당시 이 집을 중개해줬던 여자였다. 나는 그녀에게 미리 남자 혼자 살 원룸이나 집을 봐달라고 부탁해둔 상태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았다.

“마침 물건 좋은 게 나왔어요.”

“남자 혼자 살만한가요?”

그녀는 태블릿으로 이곳저곳의 원룸을 보여주며 하자는 최대한 생략하고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조그만 하자를 놓치지 않았다. 캐묻다시피 꼼꼼히 살폈다. 그런 끝에 차를 타고 직접 집을 살피러 나섰다. 신축은 아니었지만 근 10년 이내에 지어진 오피스텔 원룸이었다. 남자 혼자 살기에 알맞았다. 특히 층고가 높은 복층이라 남편 여 교사의 공중부양에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다른 작은 평수의 집도 알아보았지만 부동산 사장은 연신 원룸을 추천했다.

“뭣보다 새 집이잖아요. 지금 작은 평수는 헌집들 밖에 없어요.”

나는 못내 고개를 저었다.

매매 계약서를 쓰는 카페 안에서 그녀가 느닷없이 물었다.

“그런데 누구 때문에 집 계약하세요? 아드님? 어머, 그러고 보면 사모님 나이 생각하면 대학가고 독립할 나이도 됐죠, 참.”

나는 무람없는 그녀의 태도를 지적하려다 말았다. 그럴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일반적인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남자 혼자 살 집을 찾아다니는 중년의 여성에게 그렇게 물을 법하다. 별다른 대꾸 없이 나는 매매 계약서에 서명을 휘갈겼다.

 

부동산 사장과 헤어진 뒤 나는 차를 마두역으로 몰았다. ‘자비의 집’이라는 승화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엔 아버지가 있었고, 듣기로 죽은 그 애도 그곳에 안치되었다고 들었다. 일산의 제대로 된 승화원은 그곳 한 곳 뿐인 까닭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일산의 죽은 웬만한 이들은 다 그곳에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어쩌면 나도 죽으면 그곳에 들어갈지 몰랐다. 승화원은 유치원 같이 희고 밝은 원색을 적절히 섞어 디자인 된 곳이었는데, 유명 외국 디자이너가 지은 곳으로 상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만 웃음이 났다. 죽은 이들이 묻혀 있는 곳을 알록달록 꾸며서 상을 받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웠다.

승화원으로 향하는 동안 꺼둔 라디오 주변으로 고이는 주변 소음의 활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아는데도, 마치 공중부양을 믿는 여 교사처럼 꺼진 라디오의 볼륨을 키웠다. 나는 과거 읽은 죽은 그 애의 유서를 떠올렸다. 유서에는 자신은 절대 여 교사에게 그런 모독을 한 적이 없다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아우팅 당해 왕따가 되었다는 일 등 여러 사실이 적혀 있었다. 남편은 극구 부인했다. 자신은 이 일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듯이. 그 특유의 짐짓 모르는 체 하는 어조로.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승화원으로 다가섰다. ‘자비의 집’이라고 크게 휘갈겨 적힌 현판이 영 건물과 어울리지 않았다. 동양식과 서양식을 맞지도 않는데 억지로 욱여넣은 듯했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승화원 야간 경비직을 뽑는다는 공고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둔 뒤 문을 열어젖혔다. 주간 경비원이 인사를 건넸다. 방명록에 이름과 날짜를 적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지병인 당뇨와 말기 암으로 죽은 그였다. 엄마는 어렸을 적 이혼하여 어떻게 사는 지 알 길이 없다.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중에 그 애, 공세현, 아니 공, 세, 찬의 유골함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땅으로 투신한 그대로의 그 아이를 떠올려보았다. 사지가 기이하게 뒤틀려있고, 뼈가 살가죽을 찢고 튀어나오고,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 조금만 건드려도 흘러나올 듯한 두 안구(眼球). 발인 전 깨진 머리에서 흐르는 피로 떡이 진 머리는 누가 감겨주었을까. 그 아이가 세현이라 불렸을 때를 기억해낸다. 허리가 약해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떨어진 배꼽까지 소중히 간직했을 정도였다. 산후조리원을 나와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 대신 홀로 아이를 키우다시피 했을 때, 나는 아직 가누지 못하는 아이의 머리에 물을 뿌리고 보드랍게 감겨줄 때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적도 없었다. 그것은 여자에겐 육아가 천직이라거나 모성애의 발현이라는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해주었던 느낌을 그대로 잇는 데서 오는 결속감과 안정감이었다. 양육권 다툼이 있었을 때도 전남편은 고위 친인척 관료를 이용해 아이를 빼앗다시피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라는 데 넘실거리는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복수란 단어를 고안해낸 사람은 어떠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을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문득 그런 게 궁금해졌다. 나는 자판기의 조화를 사서 아버지의 유골함 옆에 둔 다음 승화원을 나왔다. 그리고는 핸드폰 사진첩에서 아까 찍은 사진을 찾았다. 여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허둥거렸다.

“유경아, 유경아, 나 지금 공중부양, 공중부양 했다! 빨리 와서 봐봐!”

“당신, 내 말 들어봐.”

“빨리 와. 어디야? 안 와서 못 보면 또 나 미친놈으로 생각할 거 아냐.”

“일자리 하나 구했는데 거기서 일해 보는 건 어때?”

“일자리? 무슨 일자리?”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다.

“경비원 일이야. 야간이고. 당신도 이제 일자리 알아봐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잖아. 나, 당신 보모 아니야. 연락은 자주 하자, 우리.”

그가 뭐라 더 떠들기 전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남편을 승화원 경비원으로 취직시켰다. 그것이 내가 남편에게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감정이었다. 헤아리고 헤아려 고른. 남편은 처음엔 싫다고 했다. 그날 끝내 나는 승화원에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서울의 한 펍에서 술을 마시다 밤늦게 들어갔다. 남편은 죽은 사람처럼 방바닥에 엎어진 채 잠들어 있었다. 공중부양을 하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이불을 덮어주었다. 집에서도 나는 이어 와인을 따라 마셨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삶이 망가진 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모든 일엔 인과관계가 있어야 했다. 소설에서도 문학적 논리가 필요한데, 하물며 현실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문예창작과를 다닐 때 교수에게 그토록 수도 없이 지적받았던 ‘인과관계의 성립.’ 내 삶의 인과관계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내 삶을 글로 옮기자면 수도 없는 수정과 허구를 덧대 올바른 인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영상으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장면마다 나타나는 소도구 하나하나 인과관계를 구성해 끝내 등장한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살던 집은 일체 나 홀로 쓰기로 했다.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전남편이 된 여 교사와는 자주 연락했다. 그는 공중부양이 점점 걷잡을 수 없어진다며 이따금 두려움을 호소했다. 그의 목소리엔 호기심이나 놀라움보단 공포의 기색이 역력히 묻어났다. 내가 얻어준 조붓한 잿빛 원룸에서 아침과 낮을 보내다 커다랗고 밝은 승화원으로 가 밤과 새벽을 지새우다 보면 사람이 점차 미쳐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연락을 할 때마다 이제 단순한 공중부양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이리저리 갖고 논다고 했다. 그 누군가가.

“대체 그 ‘누군가’가 뭔데?”

어느 날 나는 따지듯 물었다.

“나도 몰라. 무서워. 유경아, 나 무섭다.”

“혹시 걔가 아닐까?”

나는 술에 반쯤 취해 구부러진 혀를 놀렸다.

“걔라니, 누구?”

“여보 때문에 죽은 그 남자애 있잖아. 자기 교원평가에 욕 썼다던.”

당황해 잠시 말이 없던 그는 화가 나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스피커 저편에 내버려두었다. 와인을 더 기울였다. 자비의 집 승화원에 있는 그 애의 유골함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미로써 마지막은, 이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순전한 호기심에서였다. 그게 더 잔인할 수도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차키를 챙겼다.

승화원으로 어찌어찌 운전을 해 도착했다. 나는 출입구 문을 두드렸다. 굳게 잠겨 있었다. 안에서 불빛이 은근하게 번져 나왔다. 다시 노크를 했다. 안에서 무슨 형체가 움직이는 듯도 했다. 순간 문이 활짝 열려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여 교사였다. 그는 아까까지만 해도 공중부양 중이었다면서 늦게 온 나를 타박했다. 그리곤 술 냄새를 맡았는지 음주운전 했어? 신고해야겠네, 농담을 건네며 낄낄거렸다. 아직 살만하구나 싶었다. 그가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승화원에 불빛이 일제히 퍼져나갔다. 나는 천천히 안을 둘러보았다. 정렬된 유골함들이 영원한 안식을 침묵 속에 고아내고 있었다. 여 교사는 일이 고되다며 내가 돌아다니는 내내 투덜거렸다. 박봉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애새끼들 쫑알대는 건 없어서 좋아. 뭐랄까, 이렇게 고요한 게 내 취향이지.”

“내가 왜 당신하고 재혼한지 알아?”

그가 갑작스런 물음에 눈썹을 실룩이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성실해서야.”

나는 어느 유골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자기 일에 열중하는 사람. 근데 어느 순간부턴 아니더라. 애들이 귀찮다고 했어.”

유골함에는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었다. 윤새헌.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리곤 집에만 오면 애들이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말하고, 옆 반에 전학 온 여자애 다리가 그렇게 예쁘다고 말했지. 기억 나?”

“내가 그랬나? 그렇게 저질스러운 말을 했다고, 내가? 그럴 리가. 당신, 치매야?”

윤새헌이라는 아이의 유골함 앞을 떠났다. 그 애는 다섯 살에 죽었다고 했다. 나는 무언가를 찾듯 주변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이곳저곳을 눈여겨보았다.

“치매일 리가.”

나는 빙글 웃었다. 문득 땅이 푹신하게 꺼지며 몸의 중심이 기우는 걸 느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손을 뻗어 선반 아무 곳이나 잡았다. 하마터면 낯선 이의 유골함을 깨뜨릴 뻔 했다. 막아선 건 여 교사였다. 그는 뭐하는 짓이냐고, 잘리는 꼴 보고 싶으냐고 외쳤다.

“술 좀 작작 마셔. 네가 카드 자르고 통장 다 막은 탓에 난 여기 아니면 돈도 없어.”

“당연한 거 아냐? 내가 왜 당신을 보살펴야 하는데? 당신, 치매야? 금치산자야?”

나는 깔깔거리며 여 교사의 말을 흉내 냈다. 여교사는 뭐라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뭐? 지금 뭐라 했어? 미친년?”

내가 그를 거칠게 돌려세웠다.

“뭔 소리야. 여기 일 힘들다고 했는데.”

유골함을 하나 집어 그의 머리에 그대로 가져가 깨뜨렸다. 재와 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눈앞을 가렸다. 그의 비명소리가 고요한 승화원을 뒤흔들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유골함 조각을 세워 그를 내리 찔렀다. 어느 곳을 찌르는지, 어디에서 피가 나고 어디가 뭉개지고 어디의 살가죽이 찢어지고 흰 뼈가 내보이는지 훤히 내다보였다. 그건 순전히 그가 불을 끄지 않은 때문이었다. 순간 그가 내게로 달려들었다. 두 손에 그의 피로 떡이 된 머리가 닿았다. 머리에 강한 충격이 일며 잠시 눈앞이 흔들렸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있는 힘껏 외쳤다.

죽여 달라고. 제발 죽여 달라고.

그 순간이었다. 몸을 깔고 있던 무게가 옅어지더니 여 교사의 몸이 공중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그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보라며, 이것 보라며 허공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거 봐, 이거 봐! 난 미친 게 아니야, 이거 보라고!”

나는 분명 보았다. 그는 공중부양을 했다. 복층 천장에 닿을 때까지 허공에 떠오른 그는 이내 불안하게 흔들렸다. 여 교사의 움직임이 점차 불안정해지더니 거칠게 휘둘리며 이 벽 저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위 아래로 들썩이기를 반복했다.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시퀀스였다.

세현아.

어디선가 그 애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몸을 추슬러 일어났다. 어느새 그는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외투를 벗어 그의 등에 덮어주었다. 승화원을 나가려는 데 일순 그의 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뒤이어 그의 손은 힘이 빠져나가면서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시동을 걸었다. 순간 펑, 소리가 나더니 불길이 승화원에서 솟아올랐다. 전선 합선인가, 무엇 때문일까, 원인 모를 화재가 이윽고 승화원을 집어삼켰다. 도망치듯 차를 몰고 집으로 내달렸다. 차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뉴스 단신으로 일산의 한 승화원 화재 사건이 알려졌다.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경찰이 오긴 했지만 단순한 알리바이 조사와 전남편 ‘지인’이자 전 부인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들의 말대로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날이 밝자마자 인근 주민센터를 찾았다. 누가 봐도 황망한 모습이었다. 주민센터 보안경찰은 그런 나를 수상쩍은 눈빛으로 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여 교사의 사망신고는 금세 끝났다. 바깥으로 나오니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이 강렬했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결락감이 비로소 해소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집을 향해 허정허정 걷기 시작했다. 한순간 전화벨이 울려 화들짝 놀랐다. 전전남편이었다. 세찬이란 아이를 잃은 남자. 전화를 받으니 그는 울고 있었다. 뉴스를 봤느냐면서. 세찬이, 아니 우리 세현이의 유골함이 화재에 불탔다고. 어떻게 죽은 아이가 또 다시 그 지옥을 맛보아야 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화재 현장에 같이 가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잠시 바싹 마른 침을 그러모으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었다. 집을 향해 재게 걸음을 놀렸다. 현관문에 걸린 차키를 집었다. 그리고는 베란다 바깥으로 멀찍이 던져버렸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차를 몰고 갈 수는 없었다.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택시를 타거나. 누군가 나를 태워갈 순 있어도, 내 발로 직접 그곳에 갈 수는 없었다. 세상에 그런 법은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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