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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수는 부활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는 전설이었다. 들을 귀 있는 자 모두 그의 노래를 들었다. 침몰하고 분열한 한국 음악계의 구세주. 삼십대라는 나이에도 음악성만으로 화제가 된 가수. 러브 앤 피스를 노래하는 사람. 고아에다 무일푼 실력파 락커의 인간승리 드라마는 한 국가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수많은 사회봉헌과 예술에 대한 정열은 그 열기를 더더욱 키웠다. 음악성은 단군 이래 제일. 이 시대 최후이자 최고의 아티스트였다. 지성수는 죽음조차 화려했다. 그는 전국에 생방송 중인 복귀 콘서트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혀 죽었다. 실로 전설이었다. 그리고 지성수는 죽은 지 사흘 뒤 부활하여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내가 지성수를 만나는구나! 여고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눈을 가리는 덥수룩한 머리. 하얀 색 난닝구. 허름한 반바지. 그럼에도 즉각 TV에서 보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내가 지금 지성수 반경 1M 내에 있단 말이지? 진짜지? 화면보다 실물이 더 낫다. 얼굴 진짜 작다. 긴장한 나머지 입이 잘 열리지 않는다. 인디 다큐 찍으신다는 분이죠? 그는 인상 좋게 웃더니 들어오라 권했다.

 집은 좁고 지저분했다. 더할 나위 없는 30대 후반 독신남의 집. 주말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 나왔던 그 궁궐 같던 집은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었다. 널린 빨래더미와 수북한 설거지거리. 청소보다는 처리가 필요한 방. 나는 양말을 적셨다. 바닥에 흘린 김치찌개를 가볍게 밟고만 것이다. 싸구려 나무껍질무늬 바닥에 속았다.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바닥에 뭐 흘렸는지 알기가 어렵더라고요. 어지간한 물웅덩이는 위를 걸어버리거든요. 발을 적시지 않고요. 그런데 쓸모는 없어요. 목욕탕 깊이만 되도 무서워서 곧 자빠지거든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그는 죽음에서 부활했고 사소한 권능을 얻었다.


 
 사건은 클라이막스에서 터졌다.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린 막대한 규모의 콘서트. 언론의 지대한 관심. 전국 생방송. 연일 성황 속에서 지성수의 인기는 새삼 스스로를 증명했다. 이는 분명 한 인간 인생의 클라이막스였다. 콘서트 마지막 날.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 대기실에서 돌아온 그. 이어지는 열창. 장내를 울리는 총성.

 우습게도 소란은 지체되었다. 관객들 모두 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멋있었으니까. TV생중계를 보던 시청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 그 죽음에 감탄했다. 물론 대기실은 아수라장 막장이었다. 4번 카메라, 2번 카메라 외쳐대는 소리와 스텝들의 좌충우돌에 어떤 대처도 없었다. 몇 분 후, 사람들은 반주가 끝나도 일어나지 않는 영웅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관객들은 고질라한테 도망치듯 비명 지르고 넘어지고 부딪치며 객석에서 달려 나왔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단지 중경상을 입은 사람은 백팔십 명이 넘었을 뿐이었다. 그 소란 속에서는 기적과 같은 전과였다. 순간 지성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덕분이다.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영웅의 죽음이라는 전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직접 목격하게 되리라 믿지 못한 것이다. 지성수의 시체는 몇 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무대에서 내려졌다. 구조원들은 부상자들을 이송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총을 쏜 사람은 지성수의 광신적 팬이었다. 치밀한 사전계획을 통해 총을 장내에 반입하고 지성수를 죽이기 가장 좋은 위치의 좌석을 몇 배의 웃돈을 주고 구입한 광신적 팬. 사건 발생 후 범인은 자택에서 목매단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서는 없었다. 음모론은 나오지 않았다. 지성수는 존 레논이 아니었다. 애초에 한국에서 존 레논처럼 사는 것도 힘들지만, 존 레논처럼 죽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이마에서 뒤통수까지 이어지는 작은 구멍이 보였다. 그 구멍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성흔? 탄흔? 어쨌든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보기는 쉽지 않은 구멍이다. 뒤통수의 구멍은 이마의 그것보다 조금 더 컸다. 좀 큰 땜빵 정도의 크기. 실생활에 불편은 없을 것 같았다. 카메라로 그 부분을 클로즈 업하여 촬영했다. 무언가 꿈틀하는 것이 찍혔다. 이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좌절할 상처란 말인가.



 일어나니 차가운 수술대 위였다고 했다. 부검 때문이었을 테지. 콘서트의 마지막 날,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마가 따끔해 정신을 잃었다 일어나고 보니 수술대 위라. 지성수는 당황해서 사람을 찾았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줄줄이 늘어선 시체는 제외하고 말이다. 정신 차려 보니 발가벗은 체 시체들 사이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남자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미치기 직전이었단다.

 그는 이것이 꿈인가 몇 번이고 볼을 꼬집어 봤다. 혹시 유령이 된 건가 하늘을 날려고도 했으나 되지 않았다. 다리는 두 개 모두 있었다. 그러면 뱀파이어가 된 것일까, 물린 자국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기억이 있으므로 클론 역시 아니다. 좀비도 아닌 것 같았다. 구구단을 무리 없이 외울 수 있으니까.

 지성수는 영안실을 나와 세탁실에 있는 환자복을 훔쳐 입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면 의사들 기분이 영 말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 그는 몰래 병원을 빠져나왔다. 밤이었다. 병원 정문에는 눈물 흘리다 잠든 소녀들이 있었다. 몇 명은 본 얼굴이었다. 열성적 팬들. 아는 척하면 큰 일 나겠지?


 나와도 갈 곳이 막막했다. 돌아갈 가족은 없었다. 지성수는 고아에다 미혼이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열쇠가 없었다. 시체 옆에 지갑과 핸드폰, 열쇠를 챙겨다 줄 만큼 상냥한 의사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소속 기획사로 향했다. 이 밤에 찾아갈 수 있는 장소는 그곳 밖에 없으니까. 택시 요금은 떼먹고 도망쳤다.

 기획사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럴 만하다. 야간경비원들은 까다롭다. 환자복에 갓 무덤에서 나온 표정의 사람에게는 특히나. 이봐요, 아저씨. 저 지성수라고요! 락가수 지성수! 앨범 판매 누계 천만 장! 이 기획사 톱 연예인이 저라니까요? 아 내가 TV는 안 봐도 그 사람 죽은 건 알아. 이 양반이 미쳤나, 어딜 와서 행패야? 죽어요? 내가? 너 말고 진짜 지성수는 죽었지. 총 맞고 이마에 구멍 나서. 사흘이나 전에! 지성수는 바로 이마에 손을 댔다. 감촉이 전과 달랐다. 과연. 어쩐지 아까부터 머리가 시원하더라.

 내가 댁 이마 구멍에 손가락이라도 넣어보기 전까지는 댁이 지성수라는 걸 믿지 못해. 그러니까 어서 돌아가.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지성수는 앞머리를 걷어 올려 구멍을 보여 주었다. 넣고 싶으면 넣어보세요. 경비의 놀란 표정을 보면서 담담히 확신했다. 구멍이 뚫려도 크게도 뚫렸나보다라고.



 제가 보기에 아주 크지는 않아요. 나는 나름 그를 위로했다. 그런가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이마를 쓸었다. 입에 상처가 나면 아무리 작아도 크게 느껴지잖아요. 이것도 그런 것 같아요. 그는 담담히 빵을 찢어 주며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깜짝 놀란 사장과 매니저. 이미 준비가 끝난 장례식. 이미 제출한 사망신고서와 사라진 유품들……. 사장은 그에게 기백만 원을 쥐어준 후 근신을 부탁했다. 이런 기적 앞에서는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변명하면서. 그래서 이 방을 얻으셨나요? 아뇨. 다른 곳에 신세를 졌지요. 빵은 도무지 줄어드는 법을 몰랐다.



 그는 군말 없이 잠수를 탔다. 사실을 밝히기도 두려웠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활을 이해할까 의심스러웠다. 아니, 받아들여도 문제였다. 말이라도 꺼냈다가 어디 이상한 연구실에 끌려가지나 않을까도 걱정이었다. 불사의 비밀. 부활의 권능. 탐날만하지 않는가.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랐다. 세상도 몰랐을 것이다. 부활의 권능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련 제도나 법안도 없었다. 부활은 귀찮은 짐덩어리였다.

 지성수가 발을 붙인 곳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삐끼의 집이었다. 연예인인 지성수가 부킹하기 쉽게 이모저모 도와준 친구였다. 웨이터 지생수. 그는 연예인 전문 클럽의 고만고만한 삐끼였다. 자신의 데뷔 앨범을 적절히 합성한 지생수의 전단지를 본 지성수는 꼭 그를 통해서만 부킹을 했다. 둘은 형제처럼 닮았다. 분명 다른 사람임이 뻔히 보이지만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느껴지는 그런 형제. 지성수는 지생수가 같이 살기 편하겠다 생각했다. 다른 동료들의 집이나 매니저의 집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으니까. 지생수 역시 군말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팁도 많이 주던 우량고객이었으니까.

 지성수는 외출을 자제하며 지생수와 지냈다. 어쩌다 지생수의 이웃을 만나면 사촌이라 둘러댔다. 머리에 뚫린 구멍에도 익숙해졌다. TV에 나오는 지성수 사망 관련 뉴스를 들으며 한가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는 간만의 휴가를 만끽했다.


 은둔생활은 황당한 소극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소극의 주인공은 지성수가 아니었다. 첫 무대는 바로 그의 장례식이었다. 아쉽게도 지성수는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기획사의 만류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장례식장을 몇 개의 연애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그는 관련 영상을 빠짐 없이 구했다. 식장에는 엄청난 규모의 인파가 몰려왔다. 동료들, 팬들, 유수 언론들 각 계의 인사들로 식장은 가득 찼다. 모 정치인도 보였다.

 지성수는 얼이 빠졌다. 자신의 친구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은사도 없었다. 오로지 연예인, 연예인, 연예인 전문 기자 그리고 연예인 같은 정치인 뿐……. 재밌게도 조문객의 대부분은 말 한 번 붙여보지 않은 후배 가수들이었다. 존경하는 선배님, 친했던 선배님, 우상이었던 선배님 운운하며 자신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후배들은 가증스럽다 못해 불쌍했다. 그래, 자식들아. 먹고 살기 힘들지?

 장례식은 온갖 인사들이 자신을 광고한 후에야 끝났다. 그 소극의 피날레를, 막장을 장식한 주역은 신인 여배우 K였다. 그녀는 미친 듯 오열했다. 지성수의 관을 껴앉았고 영구차를 가로막았다. 장례식은 기절한 그녀를 끌어 낸 다음에야 끝이 났다.

 다음 날 신문에는 그녀의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지성수는 자신이 언제부터 그녀와 밀어를 나누었나 신기했다. 히트곡 중 두, 세곡이 그녀를 위한 노래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죽은 사람도 스캔들이 날 수 있구나 지성수는 놀랐다. K는 비운의 미망인을 연출했다. 엄청난 숫자의 카메라가 그녀를 쫓아다녔다. K의 다음 출연작이 대박을 낸 것은 물론이다.


 놀랄 일은 이어졌다. 지성수는 산보 삼아 들른 서점의 음반매장에서 황당한 광경을 보았다. 이미 죽은 지성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음반매장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지성수의 음악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덕분이었다. 영웅의 노래를 추억하는 것은 아니다. 추억은 과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들은 추억을 날조했다. 만약 그들에게 추억이 있었다면, 왜 이미 들어 보았고 갖고 있을 음반을 다시 구입하려 하겠는가? 어쨌든 지성수의 음악은 잘 팔렸다.

 지성수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렸다. 프레디, 당신도 이런 기분이었나요? 그렇겠죠. 지금은 이미지를 팔아먹는 시대니까요. 사실 여부는 상관없죠. 오로지 이미지를 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나 지지도가 오르잖아요? 음반매장이라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심하면 더 심하지.

 나중에는 아예 매장 한구석 지성수 특선 코너가 생겼다. 이제까지 나온 모든 앨범들과 박스세트, 베스트 앨범에 트리뷰트 앨범. 우습게도 그의 미발표 곡을 모아 발매한 CD도 있었다. 앨범수록을 포기한 곡과 아직 고치지 못한 곡들의 모음집이었다. 물론 잘 팔렸다. 지성수는 고작 이런 수준의 노래가 이렇게 잘 팔려도 될까 걱정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하얀 날개로 날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천박했다.



 우리는 인터넷을 검색해 그 포스터를 찾았다. 홈페이지, 뒤로 갈수록 악플이 많군요. 원래 그래요. 연예인들은 출신 학교랑 홈페이지에서는 존경 받는 법이 없거든요. 그래도 죽고 나서는 전혀 달리지 않으니 다행이죠. 포스터 찾았어요. 이거 맞죠? 이 유치한 날개 좀 보세요. 끔찍해. 전 이 포스터 제 방 벽에 붙여 놓았는 걸요. 정말요? 그럼요. 유치한 컨셉이잖아요! 감독님은 영정 사진에 누가 날개 그려 놓으면 기분 좋겠어요? 이건 영정이 아니니까 괜찮죠. 감독님한테 맡기기가 영 불안하네. 그는 히죽 웃으며 이마를 긁적였다.

 그러나 곧 지성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마우스로 어떤 기사를 클릭했다. 감독님. 네. 이 기사에 대해서도 꼭 자세히 촬영해 주세요. 알았습니다. 낄낄대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가 클릭한 기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인기 가수 사망에 잇따른 자살……. 가슴 아픈 사연들' 그렇다. 이 사건이 그의 가수 인생을 완전히 쫑낸 것이다. 네 명의 여고생들의 자살. 가요계에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언론은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떡밥을 누가 먼저 무나 경쟁했다. 음반 판매량은 상승곡선을 달렸다.



 지성수는 침묵했다. 멍하니 TV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들, 난 살았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되살아났죠. 어쨌든 숨은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죽었군요. 그것도 네 분이나. 그건 아니잖아요. 살 사람은 살아야죠. 제가 죽었든 살았든. 더군다나 저는 살았는데. 제가 부활한 것처럼 여러분도 그럴 수 없을까요? 머릿속으로 온갖 문장들이 떠다녔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주어진 권능은 그저 흘린 오렌지 주스를 밟아도 젖지 않는 것 하나 뿐이었다. 아, 빵이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능력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이 권능들은 타인의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자살한 팬들아 일어나라. 너희들의 죄를 사하노라. 그는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어떤 사람의 흉내를 내보았다. 웃기시네. 자살은 죄가 아니야. 부활은 죄지만. 자책감만이 남았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밝혔다면 누구도 죽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부끄러웠다. 소극의 황당함도 익살스러움도 사라졌다. 오렌지 주스가 미워졌다. 빵도 미웠다.

 살릴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야. 열심히 자위했다. 자살한 여고생들이 생각날 때마다 거울을 봤다. 이마에 뚫린 구멍을 응시하는 것. 새로운 일과였다. 상식적으로 보자고.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두개골이 바스러진다고. 낙사는 항상 그렇지. 머리부터 떨어지니까. 중력과 가속도로 그 가냘픈 체중에도 어마어마한 속력이 붙어. 눈알은 뭉개지고 뇌는 흐드러지지. 나는 그나마 총상이니까 가리고 다니는 거야. 그 아이들도 덜렁거리는 코와 조각난 턱을 갖고 살고 싶지는 않겠지.

 언론의 소란은 며칠 후 가라앉았다. 인터넷은 조금 달랐다. 정보의 바다는 다음 타겟을 찾을 때까지 조롱으로 가득 찼다. 멍청한 여자들. 할 일 없는 년들. 미친 새끼들. 지성수는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었다. 미운 것 같기도 했다. 고맙지는 않았다. 슬픈 것 같지도 않았다. 안타깝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아마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감정이리라.

 지성수는 생각했다. 자신이 죽어서 좋은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적어도 기자들에게 거짓부렁이나 지껄일 필요는 없다는 것, 딱 하나. 만약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언론이 알고 있다 치자. 그 경우 지성수는 몇 십 번의 기자회견마다 엄청난 질문공세를 받았을 터이다.

 현재 어떤 심정이신가요? 여러분의 머리털을 한 올 한 올 다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유족들에게 하실 말씀은? 따님들이 되살아나길 빕니다. 저보다는 좀 정상적인 상태로요.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옵니까? 올 하반기에 나올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박수갈채.

 지성수는 이젠 본인이 됐든 다른 사람이 됐든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가 않았다. 결심했다. 진실을 밝히고 사과를 하겠다고. 자신이 되살아났음을 만천하에 알리겠다고. 귀 있는 자 들으라. 지성수 재림을 고하노라.


"되살아났으니까 더 이상 자살하지 말라니, 그건 조롱이지."

 재림을 고하기는 개뿔. 간부들은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를 정신병자취급했다. 그들은 지성수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계획서와 그 계획서에 들어갈 그래프와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여 당사자에게 주었다. 간부들은 차분하고 조리 있게 그에게 죽으라고 명령했다. 러브 앤 피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공중파 방송국 4사는 지성수라는 상품을 충실히 광고를, 방영을 했지."
"뉴스 프로그램에서 다큐멘터리까지, 네가 출연했던 광고들과 신문, 영화잡지, 여성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매체가 너를 그리워하고 추앙하며 홍보한 다음 팔아먹고 있어."
"이렇게 장사가 잘 되고 있는데 왜 그래?"
"물론 네 덕이 커. 지성수의 죽음은 극적이고 눈물이 쭉쭉 빠지는 하나의 신파였으니까!"
"우리가 소문을 잘 내기도 했지."
"대대적인 홍보가 대박의 왕도거든."
"연예인의 신선도가 가장 잘 보장될 때는 죽음으로 냉동될 때, 단 한순간이야."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그 싱싱함만이 전설처럼 남을 거야. 영원히."
"좋은 지성수는 죽은 지성수 뿐이지."
"참 잘 죽었어."
"잘 죽은 사람은 어떠한 부정적 이미지도 다 사라지고 말지."
"포털 뉴스 덧글란도 자네의 죽음에 대해서만은 숙연했다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아."
"지성수는 하나의 성자이자 한국문화의 구원자로 자리매김했어."
"하나의 아이콘이지."
"물론 한국문화에 구원자가 필요했냐는 중요하지 않아. 전혀."
"구원자가 나왔으니까 그 시대가 구원받아야 할 역경의 공간이 된 것이지."
"자네는 영웅이라서 죽은 것은 더욱 아니야. 잘 죽었으니까 영웅이 된 것이지."
"거기에는 전설이 필요해. 그리고 세상에 살아있는 전설은 없지."
"'나는 전설이다'라고 외치려면 일단 결말이 필요하거든."
"난 네 노래가 좋아. 팔리게 만들었고 또 팔렸지."
"아티스트? 야, 솔직히 너도 알잖아. 니가 정말 실력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해?"
"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니 실력을 이해해서 듣는다고는 믿지 않겠지?"
"너의 그 허접한 미발표 곡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실을 봐."
"사람들은 너의 노래를 사는 것이 아냐. 너의 드라마를 사는 거지."
"어찌됐든, 지성수는 죽는 게 더 좋아."

 주주님들이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지성수를 떠받들던 사원들은 그를 전력으로 부정했다. 세 번은커녕 삼십 번도 넘게. 지성수의 머릿속에는 닭 수십 마리가 울고 있는 듯 했다. 이 닭대가리들의 모가지들을 모조리 비틀어 버려도 새벽은 오겠지.

 그는 미친 듯 항변했다. 인권이라는 것이 있지 않아요? 죽은 사람이라 없다구요? 제 팬들 중에는 자살한 분들도 있을 정도로 저는 인기가 많아요. 걱정 마세요, 저는 다음에 꼭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팔려요. 잘 팔릴 상품이라고요! 지성수는 열성을 다해 자신을 광고했다. 자신의 상품가치와 수요에 대해서. 자신을 팔 전략에 대해서. 경비원들에게 몇 대 얻어맞은 다음 쫓겨났다. 주주들은 그를 내다버렸다.



 카메라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외쳤다. 아니, 그게 정말 정말인가요? 그럼 가짜 정말도 있나요? 제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가짜 정말은 의외로 많은 것 같은데요. 지성수씨 미발표 곡 앨범도 가짜 정말이죠. 그럴 듯하다. 어쨌든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 수 있죠? 인간이 양심이 있어야지! 인간은 인간인데 법인이잖아요. 그것도 그럴 듯하다. 이 이야기도 촬영에 집어넣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우리는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르고 방금 전의 대화를 되풀이했다. 이것도 가짜 정말이다.



 답이 없었다. 언론사에 이야기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일단 믿지를 않았으니까.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까. 기획사의 방해도 있었다. 또 한 번 늘씬하게 터졌다. 그 후 그는 무시 받았다. 기획사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언론사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내막을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대로 무시했다. 부활의 기적은 그런 취급을 받았다. 이제는 지성수도 자신이 없었다. 과연 부활을 선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자살한 학생의 유족들은 어떤 기분이 될까 자문했다. 좋은 반응이 나올 일은 없겠지. 소송이나 걸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조문객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학생들 장례식이든 자신의 장례식이든 일단 시끄럽기는 할 것이다. 지성수는 다시 자문했다. 내 죄목은 무엇일까. 부활선포방기죄? 사망신고비철회죄? 탈세? 그는 다시 살기에는 죄목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지성수의 죽음은 커다란 돈벌이였다. 부활은 그 잔치에 뿌려진 재였다. 그가 부활하면 개미 주주들은 목을 맬 것이다. 주가는 떨어지기에는 너무 올라 버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준다면 그것도 그 나름 문제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활은 도무지 긍정적인 일이 아니라 느껴졌다. 지성수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은 무시 당해도 싸다. 아니, 무시 당하는 것이 옳다.



 …그 DVD 보면 재밌는데. 지성수는 부끄럽다는 듯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는 일어나 찬장을 뒤지며 무언가를 찾았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쉬고 싶었다. 내 영웅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듣기 힘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어딘가 어색했다. 어? 지성수씨! 네. 왜 왼쪽 팔을 들지 않으세요? 어깨가 좀 아파서요. 전에 노가다 판에서 일할 때 다친 이후로 어깨가 말을 잘 안 듣네요. 깜짝 놀라 뒷이야기를 캐물었다.

 주민등록증도 호적도 없으니 취직은 힘들었죠. 그래서 노가다 판에 들어갔어요. 몇 달하니 어깨가 고장 나더군요. 일단 사망자라 건강 보험 적용도 안 되니 병원에 가지를 못했어요. 한국은 정말 쯩 없이는 살기 힘든 나라라서, 하하. 이 방 하나 얻는 데도 얼마나 고생을 했나 모릅니다. 유산의 백분의 일이라도 되돌려 받으면 이리 힘들지는 않겠는데. 그나마 밥은 굶지 않을 능력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죠. 그는 빵조각을 찢으며 다시 웃어넘겼다.

 음악으로는 돈을 벌 수 없었나요? 나도 안다. 멍청한 질문이다. 해봤죠. 가게에는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취직을 못했고. 기타 들고 거리로 나가서. 어땠나요? 글쎄, 5시간 정도 했는데요. 네. 제 라이브 콘서트 한 좌석 입장료 십분의 일도 못 벌었어요. 맞아요. 사람들은 내 노래가 아니라 내 드라마를 샀던 거죠. 그리고 거리의 악사는 드라마치고는 재미가 없었고요.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다. 하지만 모르잖아요? 계속해서 입소문이 나고,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아마 예전 기획사에서 저를 납치한 다음 동남아 어디에다 던져 두고 오겠죠. 수긍할 수밖에 없는 예상이다.


 <패션 오브 지성수>. 그가 꺼낸 DVD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지성수 사망 1주기 때 나온 작품이다. 제목이 너무 유치해요. 내용은 더 조잡하지만. 그는 또 투덜댔다. 저 이거 극장에서 봤어요. 세 번이나. 감독님, 진짜 그러시면 안돼요. 세상에 좋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왜 이딴 걸 보세요? 그는 또 히죽 웃었다.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영화를 보았다. 주연이 생수예요. 지생수. 이 영화로 삐끼에서 영화배우로 출세했죠. 저는 방을 새로 구해야 했고요. 그 인기배우가 삐끼 출신이라니, 나는 깜짝 놀랐다. 다큐멘터리에는 코멘터리가 필요 없었다. 옆에 앉은 지성수 본인이 모든 설명을 해 주었으니까. 저 장면은 사실 몰카가 아니었다, 이 공연은 라이브가 아니었다, 저 사람이랑 나랑 전혀 친하지 않다.

 영화는 그의 말마따나 조잡했다. 지성수의 삶은 인간극장, 성공신화로 곱게 포장됐다. 어렸을 때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내용은 음악 성적이 수였다는 것을 부풀린 것이고 사장이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지만 사장은 음악에 대해서는 깡통이었다. 애초에 나레이션을 여배우 K가 맡았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성수 성공신화였다. 그는 영화가 말하는 야망을 비웃었고 피 나는 노력도 없었다 자조했다.

 마지막 장면은 그의 죽음이었다. 콘서트 장에서 노래를 부르다 탕,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뉴스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던 그 장면이었다. 스탭롤이 올라왔다. 올라오는 스탭들 이름 옆 작은 사각 상자 안에 지성수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그는 이미 몇 번이고 보았다는 듯, 화면 속 자신의 말을 따라했다. 한마디도 틀림이 없었다.

 왜 음악을 하냐고요? 가장 싸서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예술이라면 뭐든지 상관없어요. 그런데 음악은 싸니까.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도 되고, 영화관이나 도서관 같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아무데서나,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고. 어쩌면 카페에서 제 노래를 우연히 들으실 수도 있겠지요.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까. 바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음악은 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음악을 하는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돌려 지성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었다. 어색하게.


 저 이제 출근하러 갈게요. 어느새 밤이다. 같이 나가실래요? 그러면 저도 좋죠. 어디서 일하세요? 요 역 앞에 나이트요. 삐끼로 일하고 있어요. 지생수가 소개시켜준 나이트라고 한다. 그의 삐끼 이름은 지선수다. 이제 손님들은 그더러 지생수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공장이라도 나갈까 했는데 역시 어깨 때문에 포기했어요. 그리고 삐끼도 잘만하면 돈을 많이 벌거든요. 어깨 고칠 때까지는 이 일만 해야죠. 그는 한 때 호스트바에 나간 적도 있다며 웃었다. 동료 연예인 P가 손님으로 온 이후 관두었지만, 제법 쏠쏠한 벌이였다고 했다.

 혹시 J나 O 알고 계세요? 물론 알죠. 그 사람들도 자살하거나 사고로 죽은 연예인들이잖아요. 걔들도 저 앞 나이트에서 일해요. 정말요? 네. 걔들도 부활했거든요. J는 인기가 없어서 자살로 위장해 이슈를 일으켰고요, O는 댄스그룹인데 춤을 못 춰서 멤버도 교체할 겸 죽였다고 해요. 그게 말이 되나요? 죽음이 상품이 될 수 있다면 유행도 될 수 있겠죠. 늦겠다. 저 그럼 출근할 테니, 나중에 완성본 보내 주세요! 그는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피곤했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은 탓이리라. 눈을 감았다. 지하철의 덜컹거림이 좋다. 야밤 구석진 동네의 지하철이라 좌석 맨 끝에 앉을 수 있었다. 등을 벽에 바싹 붙였다. 즐겁지만은 않았다. 오랜 시간 바랐던 만남이었다. 한 번은 그의 죽음으로 버렸던 꿈이었다. 겨우 이루어낸 꿈이건만 내 영웅과의 만남이 즐겁지가 않았다. 지성수는 영웅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영웅은 불완전고용직이었다. 주민등록증도 없는 무국적자 영웅.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지성수가 들린다. 내 CDP에는 언제나 그의 앨범이 들어있다. 들리는 노래는 그의 노래가 아니다. 그가 콘서트장에서 불렀던, 그가 가장 존경하는 가수의 노래다. 지성수는 이어폰을 통해 말을 건넨다. 나는 대답한다. 맞아요. 빛은 우리 같은 사람들로 만들어지지 않지요.


 나는 기다린다. 지성수의 재림을. 재림과 같이 올 세상을. 행한 대로 받을 러브 앤 피스 천년왕국을 기다린다. 귀가 멍멍해지도록 그의 복음을 듣자. 그렇게 나는 이 세상 끝날까지 지성수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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