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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8월 심사평

2023.09.15 00:0009.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3년 8월 1일부터 2023년 8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 15편을 심사하였습니다.

2023년 8월 독자 단편 후보작은 라그린네 님의 <채굴>과 감동란 님의 <수태고지>를 선정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꿈꾸는 작가 <ㅈㅗㄱㅏㄱ난 기억: 호접몽>
토탈리콜 느낌의 심리 스릴러입니다. 뇌과학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사용자가 과거의 기억을 체험하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전반적으로 문장이 딱딱합니다. 또한, 대사 분량에 비해 묘사가 부족합니다. 글의 품질과 고증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듯싶습니다. 거기다 매인 빌런인 본작의 과학자들은 80년대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악한 과학자들처럼 보입니다. 좀 더 현대적인 해석과 묘사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이를 개선한다면 조금 더 풍부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을 거란 아쉬움이 듭니다.

담장 <릴리와 꽈리고추>
리얼돌과 강령술로 인한 헤프닝을 그린 단편입니다. 문장은 덜 다듬어졌습니다. 조금 더 퇴고를 거치면 조금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증과 서서 또한 손을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치명적인 단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작품 자체가 사상에 잡아 먹혀버린 안타까운 작품이란 점입니다. 우선 소재가 너무 일차원적으로 쓰였습니다. 인형의 빙의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쓰일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초반에도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며, 결말 부분의 카타르시스가 부족합니다. 성기를 잘랐다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줬어야 합니다. 첨언하자면, 클라이브 바커가, 영화 헬레이저의 원작인 ‘The Hellbound Heart’를 쓴 것이 86년도 일입니다. 영화 ‘티스(2007)’가 있었고 21년에는 ‘티탄’이란 영화가 개봉을 했습니다. 가끔은 선인들의 발자취를 한 번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hummchi <혜령>
혜령이란 인물의 시점으로 그린 AI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차분하고 문체도 정갈합니다. 하지만 문단 구성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다시 한번 고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 잔잔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단점이 아닙니다. 이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부드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도 약간의 플롯이 굴곡을 지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인물 대사는 큰따옴표로 구분해주시는 편이 가독성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hummchi <은주는 밤마다 별을 바라본다>
은주라는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중간에 불필요한 서술이 너무 많으며, 내용 자체도 평이합니다. 플롯의 굴곡이 부족하여, 결말이나 소재가 제대로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소재의 연결과 주제 의식을 좀 더 복잡한 플롯을 통해 더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단을 나누는 방식도 개선해야 합니다.

임윤재 <스파라그모스>
디오니소스 설화 중 하나를 소설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그리스적인 비극이 잘 드러나 있으며, 문장도 잘 다듬어진 작품입니다. 중반부의 수행원 기록은 거의 대본에 가까운 진행이 이어집니다. 이런 기법은 요 근래 작품들이 가끔 차용하는 기법이 하지만, 전통적인 기법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후반부는 문단 구성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부분이 너무 허무하리만큼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추후, 수정 시에 이 후반부에 힘을 주어 서술하셨으면 합니다.

라그린네 <채굴>
행성 채굴에 나선 팀이 고대 유적을 발견하면서 생긴 일을 다룬 작품입니다. 장르적인 재미와 현실의 씁쓸함을 잘 챙긴 작품입니다. 문체 역시 잘 다듬어져 있으며 대사의 품질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결말 역시 핍진적 허무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 말할 것 없이 좋은 작품입니다.

니그라토 <최종악마와 의인>
의인과 최종악마간의 논리 싸움을 그린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글쓴이의 지적 능력과 작문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적으로 사고실험을 이야기로 엮어놓은, 혹은 특정한 주장을 위해 만든 우화에 가까운 글이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글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분량이 너무 적습니다. 적어도 인물과 사건을 플롯 위에 구성하여 좀 더 소설 다운 우화로 탈바꿈시킨다면 더 좋은 평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동란 <덩굴>
가문 선산에서 자라는 정체 모를 덩굴과 주인공의 일생이 서로 뒤 엉킨 이야기입니다. 삭월마다 짐승과 사람을 잡아먹는 덩굴이란 소재는 흥미롭습니다. 2006년에 나온 스콧스미스의 작품인 폐허가 떠오르는 설정입니다만 훨씬 한국적인 정서에 가깝게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낸 육종이란 설정이 걸립니다. 당시, 전후의 한국 생명공학 기술이 육종을 만들만큼의 기술력을 갖추었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설정은 그냥 자연발생으로 바꾸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인공 가족의 관계, 화를 억누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점점 더 파국으로 인간을 내몬다는 설정이 분노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문장 자체도 안정되어 있으며,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박낙타 <예언을 따라>
3월에 태어난 아이가 공주를 구할 거란 막연한 예언이 사회를 지배하는 판타지 세계를 그린작품입니다. 주인공은 3월에 태어난 남자로 자신이 예언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크 판타지적인 세계관에 따라 그는 고통받고 꺾입니다. 전체적으로 세계관의 암울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단편은 완결된 단편이 아니라 좀 더 긴 장편의 프롤로그 격으로 보입니다.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주인공의 운명도 좀 더 밀도 있고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리소나 <사라지는 것들>
강박증에 걸린 주인공이 계속해서 사라지는 양말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는 양말을 찾던 도중 시공을 초월한 장막 너머를 엿보게 됩니다. 전개 자체는 러브크래프트 식의 서술이 이어지며, 작품 전반에 깔린 음울하고 우주적인 색깔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관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강박적인 서술이 그가 우주적 현상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집니다. 충분히 유망한 작품입니다만, 조금 더 세련된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대에도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구성은 호불호의 영역이었습니다. 현대의 점점 짧아지는 소설 생태계를 고려하면, 독자들의 피로도를 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밝고 모험적으로 갔다면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격’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도입부는 삭제하여도 무방합니다. 또한 장황해 보이는 문장을 조금 더 다듬는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듯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가 <광인의 계보학>
어린시절 트라우마와 가족 간의 불화로 인해 방황하는 주인공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에 인물들 간의 대사가 끊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몇몇 부분은 지나치게 늘어지는 부분도 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주인공이 내몰린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ÿ역시 그런 장치일까요? 확실한 것은 결말 부분이 주는 여운은 탁월합니다. 주인공이 어느 방향으로 성장하였는가를 골든 리트리버를 통해 보여주는 장면은 상당히 납득가는 결말임과 동시에 안타깝기도 합니다. 몇몇 부분을 다듬고 수정을 거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반신 <마술사 이야기>
이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의 유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평범하다 못해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푸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문단이 정리되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대사와 지문의 구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점은 추후 수정 시에 한 번 더 숙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비스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포스트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파라다이스를 찾아가는 두 인물의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하지만 ‘폴아웃 시리즈’와 ‘소년과 개’같은 포스트 뉴클리어 아포칼립스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문장 역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문단 구성에 조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르적인 재미는 나름 잘 챙겼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결말부의 전개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이야기와 인물간의 갈등서사를 꼬아도 재미있을 듯 보입니다.

감동란 <수태고지>
장애가 있는 미혼모와 주인공이 겪는 며칠간의 이야기입니다. 전반적으로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차별, 그리고 소외된 감정을 잘 담았습니다. 인물의 감정선 역시 절제되었지만, 충분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일부 종교적인 색채 때문인지 욥기와 유사점이 보입니다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플롯 자체도 잔잔하며 무난합니다. 전반적으로 벨런스가 잡힌 소설로서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퀄리티 좋은 단편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달리 <끈벌레>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끈벌레에 감염된 Y란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Y는 결국 H의 감언이설에 놀아나 끈벌레에게 이성을 잠식당하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 모습은 사상과 혐오에 잡아먹힌 인간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인 문장은 안정되어 있으나, 주인공과 기타 인물들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한 것은 호불호가 갈릴 듯 합니다. 또한 아무리 병원 가기 무서웠다고 해도 초반 전개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두려워서 병원을 피하는 일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눈에서 피가 날 정도의 상황이면 대다수 사람은 곧장 응급실을 찾을 듯싶습니다. 아니면 그 또한 끈벌레의 영향이었을까요? 어느 쪽이든 이 부분은 조금 더 선명하게 이유를 제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 3
  • No Profile
    꿈꾸는작가 23.09.15 10:03 댓글

    비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글 써놓고 뭐가 잘못됐는지 혼자서는 알 수 없었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 No Profile
    감동란 23.09.15 19:02 댓글

    감사합니다! 평을 읽고 작품들 다시 읽어보는 재미가 있네요

     

  • hummchi 23.09.15 22:41 댓글

    정말 소중한 비평입니다.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비평을 받아보는 게 처음이라 너무 감사했습니다. 문단 구분을 다시 해서 수정본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심사평을 받아볼 기회가 있다니 마치 교수님께 숙제를 내는 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더 열심히 숙제를 해 볼 결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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