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가작 유체이탈

2008.09.06 15:2509.06

7월에 어느 뜨거운 오후였다. 김형사는 늦게 먹은 점심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더운 날씨 때문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보통 날씨가 더워지면 불쾌지수가 높아져서 그런지 이런저런 사건 사고도 많은데 그날따라 강력반 형사실은 썰렁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수사 나갔나?’
김형사는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했다. 한참을 하품을 하고 나서 앞을 보니 웬 사내가 앉아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그 사내는 눈이 휑한채 멍하니 김형사를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 제가 살인을 목격했습니다.”
“네? 살인이요?”

김형사는 정신이 번쩍 들며 자기 책상의 pc에 전원을 넣고 한글워드를 켜서 사건경위서를 올렸다.
“살, 살인사건을 목격하셨다고요?”
“네. 살인이었습니다.”
“언제였죠?”
“어젯밤 한 10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깐 한 10시 20분 쯤이었을 겁니다.”
“어제 저녁 밤 10시 20분경이란 말씀이시죠? 참.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민수라고 합니다.”
“나이는?”
“26세 입니다.”
“그래요. 이민수씨. 어젯밤 목격한 것을 상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여기 기록해 놔야 하거든요.”
“한 사내가 한 여자를 죽였습니다. 먼저 사내는 주먹으로 여자의 얼굴을 마구 치더니 쓰러져버린 여자를 깔아 뭉개고 계속 온몸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내는 그녀의 긴 머리를 잡고 책상에 내리쳤습니다. 여자가 실신한 것 같으니깐 남자는 부엌에 가서 칼을 가져와 여자의 몸 이곳 저곳을 마구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드레스 위로 피가 쏟구쳐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그리고, 그리고…”
“네, 네 천천히 숨 한번 들이 쉬시고…”
그 사내는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냥 몸을 숙였다.
“제, 제발…”
“이민수씨 여기는 경찰서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자자 안정을 취하십시오.”
그때 김형사의 파트너이자 선배인 이형사가 들어왔다.
“김형사 뭐해?”
“네. 살인사건입니다. 이분이 사건 목격자이구요.”
“그래? 알았어. 계속해 어차피 나중에 같이 조사해야 하니깐 나한테도 보여주고…”
이형사는 다용도실에 가서 커피를 탔다.
“자. 자 이민수씨. 진정하시고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음….”
“네? 음 뭐요? 잘 안들리는 데요.”

그 사내는 계속 입에서 웅얼 거리기만 했다. 한참을 집중해서 들은 김형사가 말했다.
“아. 음부에 칼을 꽂았다구요.”
“네….”
사내는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구 이런 잔인한 놈이네요. 잠깐만요.”
김형사는 pc에 상황을 쳐 놓고는 또다시 물었다.
“네. 그렇군요.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목격자는 반드시 보호하니깐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 증언해 주십시오. 범인을 잡아야 하니깐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장소가 어디죠?”
“장소라뇨?”
“살인이 벌어진 장소 말입니다. 어디서 목격하셨냐구요?”
“모릅니다.”
“네? 모르시다뇨? 목격을 했으면 어디서 봤는지 알거 아닙니까?”
“전, 전… 모릅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사, 사실은 제가 어제 직접 본게 아니고…”
“직접 본게 아니라뇨?”
‘설마 꿈에서 봤다는건 아니겠지?’
김형사가 혼자 생각하는 동안 그 사내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유체이탈을 자주 하는데 어젯밤 간만에 유체이탈을 해서 보게 된게 그 살인 사건입니다.”
“네? 유체이탈요?”
“네. 그래서 어디서 본거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살인사건은 있었고 그것을 전, 아니 제 영혼은 보았습니다.”
사내의 말에 김형사는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니 이 사람이 더운데 실성을 했나? 이봐요. 여기는 경찰서 내에서도 강력사건만 하는 강력반입니다. 어디 시덥잖은 걸 들고 와서는….”
“뭔데 그래?”
이형사가 커피를 들고 김형사에게로 왔다.
“아니 선배님. 이자가 글쎄…나참.”
“왜? 무슨 일인데?”
“이자가 글쎄. 살인사건을 유체이탈로 봤다는 겁니다.”
“응? 그게 뭔 말이야?”
이형사는 모니터에 쓴 글을 읽고는 사내에게 말했다.
“당신. 이거 진짜 본거 맞아?”
“네. 확실히 봤습니다.”
“근데 그게 직접 본게 아니고 유체이탈로 봐서 어딘지 모르겠다?”
“네. 맞습니다.”
“뭐 이런게 다 있어? 이거 미친놈 아냐? 야 김형사 이 사람 쫒아내.”
“네. 알겠습니다.”
“아닙니다. 진짜로 살인사건은 있었습니다.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야야. 안되면 밖에 순경이라도 데리고 와서 내쫒아. 아이고 더워 죽겠는데 별 미친놈까지 다 나타나 속을 썩이네.”
김형사는 순경을 불러 완강히 저항하는 사내를 들다시피 하여 경찰서 밖으로 쫒아냈다.
“아유 더워. 선배님 그놈 쫒아냈습니다.”
“그래 잘했다. 그나저나 나 좀 나가 볼께.”
“어디 가시게요? 반장님께서 나갈 때 보고하고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더워 죽겠다. 나가서 바람이라도 쐐어야지. 반장이 날 찾으면 적당히 둘러대.”
“네. 알겠습니다.”
이 형사가 나가고 나니 강력반은 다시 휑해졌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나갔다. 관할구역에 이런저런 사건이 연이어 터져서 강력반이 정신없이 굴러갔다. 다들 여름휴가다 바캉스다 해서 들뜰때인데도 강력반은 휴가를 꿈도 못꾸고 있었다. 김형사는 이른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사건일지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 여기 성산지구대의 박지호순경입니다. 거기 영등포 경찰서 강력반이죠?”
“네. 그런데요.”
“저 여기 저희 관할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살인사건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일단 저희쪽 인력이 가서 보니 살인사건이 확실한거 같아 현장보존하고 연락드리는 겁니다.”
“네? 살인사건요? 어딥니까?”
“조산 사거리에 있는 아시아 오피스텔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죠.”
“이봐 김형사 어디가?”
“살인사건입니다. 같이 가시죠. 선배님.”
“어딘데?”
“조산 사거리에 있는 아시아 오피스텔이라고 합니다. 아시는 데예요?’
“아니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데…”
둘은 차에 타고 아시아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 오피스텔은 최근에 세워진 거라 최신 시설에 좋은 입지를 하고 있어 주위에서 시세가 높은 편이었다.
“시설이 좋아 보이네요.”
“그렇네.”
둘은 오피스텔로 들어와 경비의 안내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11층입니다. 1108호에 사는 여자가 죽은 것 같습니다.”
“경비아저씨도 잘 아는 여자인가요?”
“저야 뭐 여기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좀 많아야죠. 그리고 제가 하루 24시간 계속 있는게 아니라서 웬만한 사람은 잘 몰라요.”
“네. 그렇군요. 여자 혼자 사는 곳이었다는데, 어떻게 살인이 난 걸 알았죠?”
“네. 어젠가 그저껜가 그 여자한테 택배가 왔는데 제법 큰 박스가 배달되어 왔었습니다. 보통은 호실로 바로 배달이 되는데 아무리 벨을 누르고 두드려도 안되서 저한테 맡겼거든요. 저도 어떻게든 전달해 줄려고 계속 인터폰도 누르고 해도 안되더라구요. 택배회사 직원이 물건이 상하는 거라 오늘까지는 꼭 전해주어야 한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터키로 들어갔더니…”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도착했다. 세사람은 내려서 1108호로 갔다. 이미 지구대 사람들이 했는지 경찰선까지 다 쳐있었고 문은 열려있었다. 경비는 밖에 세워두고 두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오피스텔 안의 상황은 참혹했다. 일단 시체 썩은 냄새가 사방을 진동하고 있었다. 원룸 형태로 된 방이었는데 침대위에 한여자가 칼로 난도질 당한 채로 누워 있었다.
“우아. 냄새…”
김형사가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야야. 강력반 형사가 이런 거에 그러면 되나.”
이형사는 능숙하게 장갑을 끼고 시체 가까이 갔다.
“감식반은 언제 온데?”
“방금 전에 연락했으니 한 30분안에 올겁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여기를 지키고 있었어?”
이형사는 시체 옆에서 하얗게 질려 있는 순경을 보고 말했다.
“네.”
“이런 사건 처음이야. 왜 떨어.”
“안, 안떱니다.”
“그래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거 없지.”
“네. 업, 없습니다.”
“좋아 이제 우리가 왔으니 돌아가도 좋아.”
“네, 네. 감사합니다.”
순경이 거수경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이형사는 최대한 현장을 훼손시키지 않고 시체 가까이 가서 시체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나 죽은지 꽤 된데다가 한여름이어서인지 시체의 부패가 꽤 진행된 상황이었다.
“후. 이거 일단 치정에 의한 살인같은데…”
“어, 어찌…”
“일단 강도사건이면 이렇게 잔인하게 죽이지 않지. 빨간 드레스 위로 피자국이 수없이 놔 있잖아. 모르긴 해서 수십번을 찌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칼을 여자 거시기에 찔렀잖아. 이건 치정이 확실해.”
“여자 거시기라면…”
“저길봐. 칼이 꽂혀 있는데가 여자 음부야. 에휴. 잔인한놈…”
“응? 그, 근데 선배님. 이 장면….어디선가 본거 같은데요.”
“어디서봐?”
“기억이 나질 않는데요. 웬지 어디서 본거 같아서….”
“뭔소리야. 그럼 사건장소를 그 전에 봤다는 거야?”
“아뇨. 그럴 순 없죠. 전 그냥 웬지 낮이 익어서…이 상황….”
김형사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으나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음날 오후 어제밤 새도록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이형사와 김형사가 반장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사망 추정 시간이 나오나?”
“그, 그게 살해된지 한 한달 정도 된거 같습니다. 오래되어서인지 정확한 사망 날짜나 시간은 알수 없습니다.”
“그래? 그 여자 신분은 확인이 되었어?”
“네. 직업이 술집 호스테스구요. 이름은 김미숙, 나이 25세. 강남에 유명한 텐프로 룸싸롱인 ‘이지스’라는 곳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쪽에서는 언제부터 피해자가 안나왔다는 거야?”
“제가 아침에 술집 마담을 만나보니 6월말까지는 나왔고 7월초까지는 나온거 같은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난다 그러더군요.”
“그럼 7월 초쯤에 사건이 발생한 셈이군. 근데 그 마담은 자기 아가씨가 한달 가까이 연락이 없는데 알아볼 생각을 안했대?”
“그게 그 쪽 업계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해서 신경 안썼답니다. 물론 나름 그 여자가 거기서 에이스라 몇번 연락도 하고 직접 오피스텔도 가보긴 했는데 뭐 아무 반응이 없어 그냥 뒀다더군요.”
“가족사항은?”
“부모님은 일찍 죽었고…여동생 하나 있는데…서로 연락 안하고 산지 오래 됐답니다.”
“여자 핸드폰 확인해 봤어?”
반장이 김형사에게 물었다.
“네. 그녀 핸드폰에 대해서 이통사에 확인해 본 결과 지금은 당연히 밧데리가 없어 연락이 안되구요. 어디있는지는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전화가 온건 최근까지 있었는데 통화를 한적은 없구요. 마지막으로 여자가 전화를 한건 7월 4일 저녁 9시쯤 했습니다.”
“누구랑 통화했는데?”
“그, 그게 알고 보니 대포폰이더군요.”
“뭐야? 대포폰?”
“네. 번호는 있는데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답니다.”
“전화 걸어봤어?”
“네. 하지만 안 받던데요. 아마 자기가 아는 번호 아니면 안 받을 겁니다.”
“뭐야? 혹시 그 대포폰의 주인이 범인 아냐?”
“그건 뭐 모르죠. 그쪽 일하는 사람들이 성매매 특별법이다 뭐다해서 대포폰을 쓰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피해자와 통화를 굉장히 많이 한 또다른 번호가 있는데 이것 또한 다른 번호의 대포폰이었습니다. 이 번호 역시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 대포폰들의 주인을 찾아봐. 그럼 7월 4일 9시 이후에 살인 당했다는 결론이 나오나?”
“뭐 이제까지 그렇습니다만…”
“알았어. 자네 둘 그 여자가 다녔던 술집에 가서 좀더 조사를 해봐. 그 대포폰의 주인도 알아보고.”
“네.”
둘은 사무실을 나와 차에 올라타서 술집으로 향했다.
“선배님. 차가 또 바뀌었네요. 형수님께서 바꿔 주신거겠네요.”
“그렇지 뭐. 형사 월급에 이런 차 못사지.”
“정말 선배님은 좋으시겠어요. 뭐 형수님 이쁘셔. 돈도 많으셔. 그리고 선배님 밖에 모르셔. 참 어머니 위암 수술비와 병원비도 형수님께서 다 내시고, 동생분들 등록금에 용돈까지 다 내신다면서요?”
“자식. 그러면 너도 형수 같은 사람 만나. 그 사람은 가진게 돈 밖에 없어.”
“선배님처럼 키도 크고 인물도 좋으면 가능하죠. 저야 뭐 가진거라곤 그 두쪽 밖에 없고 얼굴도 골룸이 형님할 정도니…”
“이봐 김형사. 돈 많은 마누라 있다고 다 좋은건 아냐.”
“네? 무슨…”
“아니 그냥… 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콩달콩 사는게 더 좋을 수 있다는 거지.”
“뭐 그럴수도 있지만 돈 많으면 좋잖아요. 형수님 덕에 선배님 가족들도 좋구요. 특히 우리 같은 경찰공무원들은 돈에 대한 유혹이 많은데 선배님은 그런 거에 대해서는 확실하잖아요.”
“그런가?”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동안 술집 앞에 도착했다. 아직 초저녁이라 술집 안은 한가했다. 이형사는 아침에 만난 마담을 불렀다. 셋은 한 조용한 룸으로 들어갔다.
“혹시 장부 확인해 보셨습니까?”
“네. 장부를 보니 현정이 걔가…아. 걔가 가명을 김현정이라고 썼어요. 음 그러니깐 걔가 7월 2일까지는 나왔네요. 그날 두탕 뛰고 갔네요. 음 2차도 한건있네.”
“요즘 2차 나가면 불법 아닙니까?”
“호호호. 형사님도 참. 다 아시면서…여기서 2차 안하면 장사가 안되죠.”
“하여간 7월 2일까지는 나온게 확실하군요.”
“네. 그 후로는 걔를 본 애가 없더라구요.”
“전화도 몇번하고 한번 찾아도 갔었다면 서요. 언제 가셨죠?”
“음. 언제 갔었나? 걔가 안나오고 한 이주 지났으니깐 7월 한 15~16일 쯤인데…정확히는 기억이 안나구요. 가서 아무리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길래 그냥 왔죠. 고년이 제가 데리고 있는 애 중에서 에이스라 찾는 분이 더러 있었거든요.”
“그때 뭐 별 다른 것을 발견 못했습니까?”
“아뇨. 뭐 기억도 안나고…”
“저 혹시 이 전화번호 아시겠습니까?”
“음…이 번호가 누구 꺼더라? 음….이 첫번째 번호는 웬지 번호가 눈에 익은데? 잠깐만요.”
마담은 자기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맞네. 박실장 꺼네.”
“박실장요? 그게 누굽니까?”
“저희 가게 돌봐주는 실장이예요. 여기가 험한 곳이라. 애. 거기 가서 박실장 좀 오라구해.”
마담이 룸내 인터폰 전화를 들어 누군가에게 말했다.
“일종의 기도 뭐 그런 겁니까?”
“네 그렇죠. 근데 두번째 꺼는 처음 보는 번호인데요. 어 저기 오네요. 박실장 여기.”
마담이 손짓하자 검은 티셔츠를 입은 거구의 한 사내가 문을 열고 그들에게로 왔다.
“박실장. 박실장도 현정이 걔 죽었다는 이야기 들었지? 그것 땜에 온 형사님들이셔.”
“네. 그런데 절 왜?”
“혹시 이 번호가 실장님 번호 이십니까?”
김형사가 번호를 그에게 내밀었다.
“네. 맞습니다. 제거 맞네요.”
“근데 대포폰이던데요.’
“네 뭐 이런일 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고 제가 신용불량자라 정상적으로 핸드폰을 만들 수 없어서…그런데 그게 왜요?”
“사실은 김미숙씨가 마지막으로 통화하신 분이 실장님이시거든요.”
“네? 제가요? 언제요?”
“에. 그러니깐 7월 4일 저녁 9시경. 김미숙씨가 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 1분여 동안 통화가 이루어졌더군요.”
“그랬나? 7월 4일이면 언제야? 한달전 쯤이네. 아유 그때걸 어떻게 기억합니까? 그리고 9시면 우리 가게에 손님 오기 시작할 시간이라 한가하게 전화받고 그러지는 못할 거 같은데…하여간 기억이 안납니다.”
“잠깐 핸드폰을 보여주실수 있겠습니까?”
“왜요? 꼭 보여줘야 돼요?”
“아니 뭐 반드시는 아니지만 잠시 확인차.”
“이보쇼. 형사양반. 수사하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마구 들이대면 안돼지. 응. 뭐냐? 거 영장 가져와서 보여달라구해. 왜이래 이거…”
“아니 뭐 잠시 확인하려고 한건데…알겠습니다.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김형사가 그냥 그를 보내주었다. 뻘쭘해 하는 김형사를 이형사가 다독거리며 말했다.
“잘했다. 뭐 똥이 무서워 피하냐? 마담언니. 저 친구하고 김미숙씨하고 어땠습니까?”
“뭐 박실장이 몇번 걔한테 껄떡대는건 본거 같은데? 뭐 박실장 저 인간도 이년저년한테 껄떡대는 편이라…”
“네. 김미숙씨와 친했던 아가씨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잠깐만요. 아마 걔하고는 은지가 친할 거예요. 애 은지 좀 오라구해.”
이번에도 역시 전화에 대고 말했다. 잠시후 미모의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응 은지야 이리와 현정이 죽은 것 땜에 형사님들이 너한테 물을게 있다고 하시네.”
여자가 앉자 이형사는 마담에게 나가달라고 해서 마담이 나가고 난후 대화가 시작되었다.
“은지씨라구요. 참 이쁘시네요. 여기서 일한건 얼마나 되셨죠?”
그녀의 미모에 반쯤 눈이 풀린 이형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 일한지는 한 1년 반정도 됐어요. 딴데서는 한 1년 정도…”
이형사가 김형사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는 말했다.
“죽은 김미숙씨와는 친하셨습니까?”
“네. 뭐 걔가 그리 사교적인 애가 아니라서 딴 언니들하고는 잘 안어울렸어요. 저하고 같은날 여기와서 마치 동기 같이 친했어요.”
“김미숙씨가 살해되기전 마지막으로 온 7월 2일을 기억하십니까?”
“글쎄요. 그날이 그날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한 두탕만 뛰고는 몸이 안좋다고 간날인거 같은데요.”
“그날이나 그 근처로 뭔가 특별한게 없었습니까?”
“아뇨. 뭐 특별히 기억나는게 없는데요.”
“그럼 혹시 김미숙씨가 누구를 사귀고 있었습니까?”
“미숙이가요? 음…걔가 누군가를 사귀는 것 같아서 제가 몇번 낌새를 채고 물었지만 자세히 대답해 주지 않더라구요. 다만 남친이 있다는 것만 말해 줬어요. 확실한건 여기 손님은 아닐꺼에요. 여기서 손님과 밖에서 연애하다 걸리면 혼나거든요.”
“네. 그럼 아까 박실장이라고 있던데… 그 박실장이라는 사람과 미숙씨와는 어땠습니까?”
“어유. 그 새끼 아주 저질이예요. 이언니 저언니 다 건드리고. 그 새끼는 특히 콘돔도 안쓸려고 해서 임신까지 한 언니도 있었어요. 그 놈이 언젠가부터 미숙이를 먹겠다고 얼마나 껄덕대는지…”
“박실장이 자주 김미숙씨를 괴롭혔나요?”
“미숙이가 그리 헤픈 애가 아니라서 좀 많이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오죽하면 언니들이 한번 주고 치우라고 할 정도였어요. 한번은 박실장이 술을 먹고 새벽에 퇴근하려는 미숙이를 잡고 강제로 룸에서 할려다 웨이터들이 말리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네. 그렇군요. 아까 말씀하신 사귀는 남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십니까?”
“글쎄요. 저한테는 사귀는 걸 이야기는 했지만 누군지는 이야기 안했어요.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잘 될거 같다고…그러면서 행복해 하는 미숙이가 눈이 선해요.”
그녀는 죽은 그녀의 친구가 애처러운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생각나는게 있으면 여기로 전화 주십시오.”
이형사는 자기의 명함을 그녀에게 주고 김형사를 데리고 술집을 나왔다.
“선배님. 이런데 오면 비싸죠?”
“왜? 아까 그 아가씨가 또 보고 싶냐?”
“아, 아뇨. 그냥…”
“쓸데 없는 생각말고 수사에 집중해. 결국 피살자의 마지막 통화는 아까 박실장인게 확실하구만.”
“피살자가 사귀던 남자를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다른 또다른 대포폰의 주인공이 그 남자친구인 것 같은데…혹 대포폰을 쓰는 것 보니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자가 아닐까요?”
“그럴수도 있지. 감식반이 그녀 오피스텔에서 알아낸거 없대?”
“다 뒤져 봤는데 그녀 물건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랍니다. 별다른 지문도 없고…이상하지 않습니까?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면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쩝. 그렇지. 부검 결과는…”
“결과는 뭐 별게 없습니다. 칼로 찌르기 전에 무차별로 폭행이 가해졌고… 온몸이 약 13번의 자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부에 깊은 자상…”
김형사는 말하다가 잠시 멍하게 있었다.
“야. 김형사 뭐해? 또 아까 그 여자 생각해?”
“선배님. 제가 처음 현장을 봤을 때 한말 기억하세요?”
“뭐? 냄새 난다는 거?”
“그거 말구요. 제가 웬지 낮에 익다는…”
“그래서 뭐…”
“아뇨. 부검 결과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나서요. 도대체… 뭔가가…”
김형사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자 이형사가 그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야. 김형사. 이거 완전히 영혼이 빠져나간 놈 같구만…”
순간 김형사 머리에 번쩍하고 뭔가가 떠올랐다.
“잠, 잠깐만…선배님. 바로 퇴근하실겁니까?”
“뭐 일단 집에는 잠깐 가볼려고. 가서 씻고 옷좀 갈아입고 가던지 할께. 아유. 더운데 며칠 옷을 못갈아 입으니 죽겠다.”
“저 여기서 바로 경찰서 갈게요. 나중에 봐요.”
김형사는 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이런 젠장….제발 아니길…아니길…’
김형사는 가는 내내 속으로 빌고 빌었다.
김형사는 사무실 자기 책상에 앉자 마자 pc를 켰다.
‘그때 내가 저장을 했던가? 제발 저장해 놨어야 하는데…’
파일을 찾아보던 그는 한 파일을 보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 파일을 열어 보았다.
‘젠장…..사실이었어. 그때 살인이 일어났었어.’
그가 써놓은 파일을 보니 모든게 확실했다. 피해자의 상황, 살인상황 모든게 맞아 떨어졌다.한참을 멍하게 있던 김형사는 신고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들었다.
“어, 나 김형산데. 아직 있었네. 야. 하나만 확인해봐. 이름 이민수, 나이 26세. 만인지는 모르겠어. 만나이하고 한국나이 다 찾아봐. 내가 얼굴을 보면 알거 같으니깐 사진도 같이 보내줘.”
전화를 내려놓고 김형사는 눈을 감았다.
‘이젠 어쩌지? 그때 진짜 살인신고를 한건데 내가 무시했으니…’
그의 고민은 새벽녘에 이형사가 올때까지 계속되었다.
“야. 김형사 거기서 뭐하냐?”
“저….선배님…”
“왜? 뭐 귀신이라도 봤냐?”
“비슷합니다.”
“응? 뭔 소리야? 도대체. 이 더운 날에 식은 땀을 흘리고…”
김형사는 pc 모니터를 이형사에게 보였다.
“혹시 한달전 그러니깐 7월 5일에 여기와서 살인사건을 유체이탈로 봤다고 했던거 기억나십니까?”
“응? 유체이탈…”
이형사도 모니터를 보다가 기억이 나는듯 외쳤다.
“아하. 이제 기억난다. 그때 웬 휑한 놈이 와서 유체이탈로 살인사건 봤다고 했었지. 그래서 내가 너보고 쫒아내라고 했는데…그게 왜?”
“그런데 그게 사실인거 같습니다. 자 보십시오. 지금 김미숙씨 사건이랑 완벽하게 동일합니다.여기 기록에 따르면 그 사람이 7월 4일 목격하고 7월 5일 여기에 와서 증언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파일의 저장일자도 7월 5일이 맞습니다.”
이형사는 반신반의하며 모니터를 읽어나가다가 눈이 점점 커졌다.
“이런 젠장. 진짜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그럼 어떻게 된거야? 진짜 그 사람이 유체이탈로 김미숙씨 사건을 본거야?”
“아직 모르죠. 하지만 알아볼 필요는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허 참. 뭐 가끔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건 좀. 만약 그 사람이 진짜 유체이탈로 본 범인을 지목하더라도 법정에선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게 문제다.”
“그렇긴 하죠. 어찌됐건 그를 만나보면 알겠죠.”
“그 사람 주소 알아냈어?”
“네. 목동에 살고 있던데요. 아침에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알았다. 이거 뭐 나도 그때 봤으니 안 믿을 수도 없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나올때까지 이 사실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괜히 딴 사람들이 알면 믿지도 않고 우리 꼴만 우습게 된다.”
“네. 선배님.”
둘은 이민수의 집을 찾아갔다가 그가 지금 병원, 그것도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병원으로 갔다. 정신병원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적한 도로에 위치해 있었다.
“선생님. 이민수씨의 면회는 지금 불가능한 상태입니까?”
김형사가 초조하게 의사에게 물었다.
“네. 환자는 그 전에도 저희 병원에서 치료받던 환자였는데 자아분열과 정신분열증세가 심했습니다. 다행히 6개월 전부터 괜찮아져서 통근치료만 해도 될 정도가 되었는데 얼마전 갑자기 이틀간 사라진 이후로 더욱더 증세가 심해져서 결국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정상적인 면회나 면담이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이민수씨가 그전부터 유체이탈을 했나요?”
“뭐. 그게 사실은 실제 유체이탈이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자신의 자아를 분리해서 자기의 실체와 다르게 돌아다닌다고 스스로 인지하는 겁니다. 자기의 영혼이 유체이탈 이후에 봤다고 하는 것은 그저 환상이거나 꿈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저희한테 이야기한 사건의 경위와 실제 사건의 경위가 완전히 일치합니다. 직접 보지 않고는 불가능 합니다.”
“음…. 글쎄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의사는 뭐라 할 얘기가 없는지 짐짓 안경만 만지작 거렸다.
“혹시 진짜 사건을 목격하고는 그것을 유체이탈 이라고 믿을 수도 있는 겁니까?”
이형사가 거들어 물었다.
“음… 그럴수도 있죠. 아마 무서운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나서 자기가 그렇게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유체이탈로 보았다고 인지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정신분열증세 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데 일종의 회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고 실제로 보았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어쩌죠? 지금으로서는 이민수씨가 유일한 단서인데…”
“글쎄요. 제가 법쪽으로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 환자의 증언은 법적으로 무의미합니다. 일단 그가 정상이라고 해도 유체이탈로 보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증언이 될 수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지금 환자의 상태는 완전히 금치산자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네? 다만. 뭐가 있습니까?”
“형사님들께서 직접 환자를 만나지도 않아도 도움이 될거 같아서요. 저도 지금까지는 뭔지 몰랐지만 두분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되서요.”
의사는 서랍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 둘 앞에서 틀었다.
‘큰 아저씨….그러지마…..언니……그러지마…..흰 지렁이 아저씨…..언니 그냥 놔둬…..’
한참을 들었지만 똑 같은 소리만 반복해서 나왔다.
“환자가 가끔 혼자 중얼거리는데 계속 이말만 반복합니다. 아마도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환자의 두뇌에 트라우마를 남겼고 그 트라우마의 결과로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자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아마도 살인사건의 상황을 말하는거 같은데요.”
“네. 저도 두분의 말씀을 들으니 그렇게 유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큰 아저씨라….덩치가 큰걸 말하는 것 같고. 그러지마는 폭행과 살인을 말하는 것 같군요. 언니는 그 피해자를 말하는 것 같은데….흰 지렁이 아저씨는 뭐죠?”
김형사가 의사에게 물었다.
“그건 저도…”
“일단 알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형사 이만 가지.”
이형사가 김형사를 이끌고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김형사는 못내 아쉬운지 계속 뒤를 볼아보았다.
“어차피 직접 만난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아까 의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의 증언은 법정에서 쓰지도 못해. 아마 반장도 믿어주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직접 만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 까요? 더 많은 단서라도…”
“그에게서 더 이상 단서를 찾는건 무리다. 지금까지의 것만 가지고 추적할 수 밖에…”
“에휴. 그런데 흰 지렁이는 뭐죠?”
“흰 지렁이라… 한문으로는 백토룡인데…”
“아이 선배님 농담 마시구요.”
“살인사건 현장에서 본게 아닐까? 음….. 잠깐. 혹시 저번에 술집에서 박실장 팔뚝에 있는 문신 봤냐?”
“문신요? 문신이 있었던가요?”
“응. 오른쪽 팔뚝에 있어서 넌 못 봤을 수도 있겠네. 그 문신이 뱀 문신이었는데…”
“뱀요?”
“응. 그런데 그 뱀이 꾸불꾸불하게 그려지고 흰색이더라구. 난 그때 웬 지렁이인가 했었지. 나중에 알아보니 그게 뱀이더라구. 그래서 박실장이 조직에 있을 때 별명이 백사였대.”
“혹시 그럼 이민수가 본게 그 팔뚝의 백사문신이 아닐까요?”
“글쎄? 내 생각이 맞더라도 그런 증언 가지고는 그를 범인으로 생각할 수 없어.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지.”
“그렇긴 하죠. 그런데 선배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실장 그 놈이 의심스러운데요.”
“참. 방금 전에 병원 들어갈 때 생각난건데… 왜 거기에 CCTV 있었잖아.”
“그런데요.”
“그 오피스텔이 최신식이던데 혹시 거기에도 CCTV가 있지 않을까?”
“아~~그럴 수 있겠네요. 왜 우리가 그 생각을 못했죠? 잠깐만요.”
김형사는 저번에 만났던 경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확인해 보니 CCTV가 있답니다. 그런데 로비것만 녹화를 하고 나머지꺼는 실시간 모니터링만 된다는 군요.”
“거기는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로비외에는 출입이 안되지?”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빙고. 그렇다면 그 녹화한걸 보면 되겠구나. 7월 4일 밤에 그 박실장이 거기에 갔는지 안갔는지를…”
“아까 물어보니 녹화한거는 한달이 지나면 지우는데 7월거는 아직 안 지웠다네요.”
“그럼 내가 가서 가져올께. 내 집이 거기서 가깝잖아. 넌 어쩔거냐?”
“선배님께서 가시게요. 음…. 그럼 간만에 안마나 받으러 갈까나?”
“자식 그런데 돈 좀 그만 써라. 아무리 애인 없다지만 너무 자주 가는거 아냐? 너 혹시 공짜로 받는거 아니지?”
“아이 왜 이러세요. 선배님. 외로운 한 마리 늑대가 안식처를 찾는 건데…”
“난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반장님한테 걸리면 우리다 죽는다.”
“알겠습니다. 선배님.저기 저 건널목 앞에 세워 주세요. 반장님한테는 내일 보고 드리죠.”
“보고 할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형사는 김형사를 내려놓고 저멀리 사라져 갔다.

안마시술소에서 잠을 잔 김형사는 떡진 머리를 하고 하품을 하면서 새벽 일찍 사무실에 들어섰다. 이미 이형사는 출근했는지 그냥 밤을 샜는지 자리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보고있었다.
“뭐좀 나왔습니까?”
“빙고. 이것 좀 봐라.”
“이게 뭔데요?”
“어제 오피스텔에서 가져온 파일이다. 내가 보니 하드에 저장하는 방식이라 하드를 통째로 들고 왔다. 자 이걸 봐라 왼쪽 아래 날짜와 시간이 있지? 자 7월 4일 10시경.”
정학하게 7월 4일 10시 2분에 로비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어 박실장이다.”
“그렇지. 인상착의가 분명 박실장이지. 그리고 시간을 뒤로 돌려 한시간 후…그러니깐 정확히 11시 10분에 나가는 박실장이 보이지.그는 한시간 동안 여기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는 단지 통화만 했지 그녀를 만났다고 안했잖아.”
“그랬죠. 어쩌죠. 이놈…”
“일단 반장님께 보고 드리고 그 놈 잡자. 마지막 통화와 이 녹화 된걸로 취조하다보면 불 수 도 있다.”
“정말. 그 사람이 본게 박실장이 맞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민수도 10시 20분경 살인사건이 났다고 했었습니다. 모든게 확실하잖아요.”
“단정 짓지마라. 알다시피 그게 맞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어쨌든 증거를 찾아야 한다.”

아침에 반장에게 전화통화와 CCTV 결과를 보고하자 반장은 일단 박실장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잡아오라고 했다. 두 형사는 날쌔게 달려 박실장을 잡아 취조실에 넣었다.
“박실장. 당신. 7월 4일 9시경에 김미숙랑 통화했다고 했지요?”
노련한 이형사가 먼저 취조를 시작했다.
“그때 얘기했잖소. 통화한건 맞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고.”
“이 통화 기록을 보면 김미숙씨가 당신에게 걸어서 약 1분간 통화한 기록이 있죠?”
“하여튼 그렇다 치고 그게 뭐요?”
“통화 내용이 뭐였습니까?”
“아니 기억이 안나요. 한달 전꺼를 어떻게 기억하나. 이 양반아.”
“이걸 보면 좀 기억이 나실꺼요.”
김형사가 노트북을 열어 CCTV에 녹화 된 장면을 보여 주었다.
“당신은 7월 4일 밤 10시경 김미숙씨가 사는 오피스텔을 방문했어. 왜지?”
“어,…..젠장, 이제 기억이 나누만. 그래요. 그때 그년이 전화해서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수. 왜요. 간것도 잘못이우?”
“그때 김미숙씨를 만났습니까?”
“아뇨. 가서 아무리 벨을 누르고 두드려도 안나와서 그냥 갔슈. 사실 그년이 나한테 한번 주는 줄 알고 영업시간이라도 간거라 오래 있을 수 없었수. 아마 한 5분정도 있다가 그냥 돌아왔수다.”
“그래요. 당신은 단 5분만 있다가 왔다? 그럼 이때부터 5분 뒤에는 당신이 나가는게 찍혀 있어야 하는 구만.”
이형사는 녹화된 것을 5분뒤, 10분뒤로 돌렸지만 그의 모습은 안보였다. 그러나 1시간 뒤 그의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 이걸 어찌 설명하실런지. 당신은 거기서 5분동안 있었던게 아니라 1시간이나 있었어. 그동안 뭘 한거야? 당신이 김미숙씨 죽였지? 그녀를 겁간하려다 실패하니깐 순간 욱해서 죽인거 아냐?”
“이, 이 무슨 말도 안되는…야 난 안죽였어. 그날 난 그년 보지도 못했어. 야. 변호사 불러. 난 억울해. 난 아냐.”
박실장은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너무나 완강히 거부하자 반장과 이형사, 김형사는 어쩔 수 없었다.
“반장님. 저놈이 확실합니다. CCTV 보셨잖습니까? 그리고 저 놈이 거짓말 하는 것까지.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거기서 1시간이나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음. 김형사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 내 감으로도 저 놈이 범인 같긴한데 말야…뭐 다른거 없어?”
“저. 반장님 사실은…”
김형사가 말하려 하자 이형사가 그를 제지했다.
“아니 뭐 일단 이걸로 어떻게 안될까요?”
“안돼. 증거가 불충분해.”
“그럼 저 놈 집 수색영장이라도 발부받을 수 있을까요?”
“그건 왜?”
“아마도 저 놈이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데 저 놈 집을 수색하면 뭔가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될까? 내가 한번 힘 써보지. 자네 둘은 애들 데리고 그 놈 집에 가있어. 내가 영장 발부 받아서 보낼 테니.”
둘은 힘차게 대답을 하고 경찰서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선배님. 아까 왜 말을 막은 겁니까?”
“야 너가 뭘 애기할려는지 다 아는데 그걸 안막냐? 그거 얘기하면 반장이 참 믿겠다.”
“아니 나만 본게 아니고 선배님도 봤고 선배님도 이 모든 것을 믿고 있잖습니까?”
“알아. 나도 말하고 싶어 죽겠어. 하지만 형사는 법에 근거해서 증거로 말해야 돼. 딴거 이야기해봤자 소용없어. 이건 그냥 끝까지 우리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는게 나을 꺼다.”
“아유. 그자식. 증거만 찾아봐라. 근데 진짜 그 놈 집에 가면 뭔가 있을까요?”
“글쎄. 그냥 해보는 거지 뭐. 내 감에 따려면 말야. 저런 놈은 자기가 한걸 굉장히 무서워하고 덤벙댈거란 말야. 그러면 뭔가가 흘리게 마련이지.”
“쩝. 그렇게 됐으면 좋겠는데요. 참 그런데 선배님. 거기에 없던데요.”
“뭐가? 어디에?”
“CCTV안에 이민수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제가 어제 밤새 다 돌려 봤는데, 없었습니다. 진짜로 영혼이 본거 같아요.”
“쩝. 그럼 진짜 유체이탈이란게 있는 건가?”
둘은 박실장의 집 앞에서 초조하게 영장을 기다렸다. 마침내 두시간 지나서야 영장은 도착했고 영장에 따라 그의 집문을 열고 들어가 수색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봐. 구석구석.”
이형사의 지휘하에 김형사 뿐만 아니라 정복경찰 5명도 수색에 참여했다. 한시간을 넘게 뒤졌지만 별 것은 없었다.
“어유. 이 지저분한놈. 이건 뭘 찾는게 아니라 아예 뒤지게 만드는 구만.”
김형사가 힘이 든지 투덜댔다.
“김형사. 아직 나온게 없어?”
“네. 선배님. 이 방 저방 다 뒤졌는데 아직 없는데요.”
“냉장고도 봤어?”
“네. 그냥…”
“내가 늘 뭐라고 했어. 냉장고 뒤질때는 봉지 하나하나까지 다 까보라고 했잖아.”
이형사의 지시에 따라 김형사는 냉장고에 있는 것을 다 꺼내어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지다가 김형사의 손이 시려갈때쯤 김형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심봤다.”
다들 김형사에게 가 보니 김형사가 피 묻은 여자팬티를 들고 있었다.
“뭐야? 그냥 여자팬티잖아? 그냥 생리한 여자거인지도 모르잖아.”
이형사가 실망한 듯이 말했다.
“제가 여자 팬티는 잘 모르는 데요. 이거 검은색이거든요. 이미숙씨가 검은 색 속옷을 잘 입는 다고 했었거든요. 한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이게 만약 김미숙의 팬티고 이 피가 그녀의 것이라면…”
“그럼 게임 오버지.”
둘은 그 문제의 팬티를 비닐백에 집어 넣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다. 검사결과는 다음날 아침에 보내 준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그것은 피해자의 혈흔으로 밝혀졌고 박실장은 김미숙의 살인혐의로 체포되어졌다.
“수고했어. 상당히 까다로운 사건으로 생각했는데 잘 해결했어.”
반장의 칭찬이었다.
“아이 뭘요. 이게 다 이형사님께서 잘 지도해 준 덕분인데요.”
“내가 뭘했다고…하여간 너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해결한 사건이지? 이야 축하해 오자마자 큰 사건 해결한거.”
“근데 저 놈은 끝까지 부인하네요.”
“뭐 범죄자가 언제 자기가 범인이라고 순순히 자백하냐? 내가 늘 말하지만….”
“형사는 증거로 말해야 한다.”
“이거 김형사가 이형사한테 단단히 배웠구만…자 오늘은 간만에 회식이다.”
“이야. 반장님. 소고기로 먹으면 안될까요?”
“자. 삼겹살집으로 7시까지 와라. 끝.”



일주일 후. 늦은 아침이었는데도 김형사는 어제의 숙취로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때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김문길형사님?”
“네. 그런데요.”
“저는 양천경찰서 강력반의 박건호형사입니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혹시 이민수라는 사람 아십니까?”
“네? 뭐 알긴 아는데…그 사람이 왜요?”
“사실은 어제 저희 관할에서 살인신고가 있었습니다. 약 한달전 살해된 시체인데… 이사진을 봐 주십시오.”
박형사는 김형사 앞에 몇장의 사진을 보였다. 그런데 그 사진 안에는 죽어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빨간 드레스에 온 몸이 난자당했고 음부에 칼이 꽂힌채로. 김형사는 머리가 모두 곤두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아니 이럴수가…이 여자는 누구죠?”
“네. 24세 건설회사 경리직원인 조한지입니다. 아시는 여자입니까?”
“아, 아뇨. 처음 듣습니다. 그런데 이사건 …”
“네. 맞습니다. 얼마 전 그쪽 관할에서 있었던 사건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방식이나 정황등이…그런데 다만 이번 경우는 살인자가 너무나 명백하다는 겁니다.”
”누가 범인입니까?”
“아까 말한 이민수입니다.”
“네? 그, 그럴리가? 그는 저에게 와서 유체이탈로 살인사건을 봤다고 했는데…”
“네. 저도 의사한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현장에는 그의 지문으로 가득했습니다. 칼에도 있었구요. 또한 그녀의 집에서 뛰쳐나온걸 본 목격자도 있구요. 그전부터 그녀를 스토킹했다는 친구의 증언도 있습니다, 에.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7월 3일 10시경 이민수는 피해자의 집에 몰래 침입해서 반항하는 피해자를 폭행하고 살해한 후 도주했습니다. 의사 말로는 자기가 한 엄청난 일에서 회피하기 위해 목격했다고 했고 거기서 더 달아나서 유체이탈로 봤다고 한것이랍니다. 뭐 그런데 이자를 법정에 세우긴 힘들겠네요.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변호인들도 정신이상에 의한 살인으로 몰 가능성이 큽니다.”
김형사는 머리가 핑하고 도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난 그 사람 말대로 해서 범인을 잡았는데…’
“제가 오늘 온 것은 이 사건은 명백한데, 우연히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하셨다고 해서 혹시 연쇄살인이 아닐까 해서요.”
“아, 아닙니다. 그,그럴리가 없습니다. 여긴 벌써 진범이 잡혀서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확보한 CCTV 자료에 이민수씨는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전혀 별개의 사건인거 같군요. 참. 그런데 신기하게 비슷하죠. 하루 차이로…”
“네? 하루 차이요? 참. 아까 사건발생일자가?”
“네. 7월 3일입니다.”
“그럴리가요? 저한테 온게 7월 5일이고 그 전날 살인을 봤다고 했는데…”
“그자가 착각했나 보죠. 미친 놈이 뭔소리들 못합니까?”
박형사가 가고 나서 김형사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이게 무슨….그럼 난 대체 뭘가지고 조사했단 말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김형사는 뭔가가 생각나서 김미숙이 다니던 술집으로 찾아갔다. 김형사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은지씨. 혹시 김미숙이 만나던 남자친구 이야기 들은거 있습니까?”
“글쎄요. 걔가 그쪽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를 안해요. 그런데 남친이 있었던 것은 확실해요. 남친이 자기 이야기를 남한테 하는걸 싫어한다고 그러더라구요. 뭐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해서 같이 찍은 사진도 없다구…많이 아쉬워 했죠. 미남인데 자랑 할 수도 없다구.”
“그렇군요. 혹시 그 남자친구에 대해서 아는게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김형사는 CCTV를 하염없이 돌려 보았다. 보고 또보고…또 보고…
한참을 보던 그는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하였다. 7월 4일 약 10시 30분경 한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엉쿼서 난리가 아니었다. 대머리인 한 중년 사내가 한 젊은 여자와 함께 아내인듯한 사람과 건장한 젊은 사내들에게 끌려 나가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내가 젊은 여자와 바람피다가 부인에게 들킨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던 김형사는 피식 웃다가 뭔가가 생각이 났다. 그는 화면을 빨리 돌려 박실장이 오피스텔을 나가던 11시 10분경으로 갔다. 박실장이 나가고 동시에 들어오던 한 커플이 보였다. 대머리 중년과 젊은 여자였다. 둘은 환하게 웃으면 팔짱을 끼고 들어왔다.
‘어? 이상하다? 앞에 장면은 분명히 불륜인 커플이 들켜서 나가는 건데 어째서 그 이후에 둘이 팔짱을 끼고 들어올 수가 있지?’
김형사가 으아하게 생각하는 중 한통의 전화가 그에게 왔다.
“여보세요. 김형사님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 누구시죠?”
“저….은지데요. 지금 혼자 계세요?”
“네? 네. 무슨일이십니까?”
“지금 당장 뵐 수있을까요. 단 둘이서만…”
“네? 뭔가 찾아내셨습니까?”
“그건 만나서 말씀 드릴께요. 반드시 혼자 오셔야 합니다. 저희 술집 맞은편에 있는 별카페 아시죠? 지금 당장 거기로 오세요.”
그리고는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김형사는 무슨일인가 싶어 아까 두 장면을 복사해서 USB에 담고 일어섰다.
“김형사 어디가?”
이형사가 밥을 먹고 이 쑤시며 들어왔다.
“아니 뭐. 잠깐 누구 좀 만나러요.”
“여자지? 혹시 그때 뽕간 그 술집 여자 아냐?”
“아이 참 선배님도… 저 잠시만 나갔다 올께요.”
“그래 밥은 먹고 다녀라.”

둘이 카페에서 만나자 은지는 김형사에게 한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 이걸 뭘, 뭘로 말씀드려야 할지…형사님께서 가신 후 언니들에게 미숙이 남친에 대해 물었더니 한 언니가 미숙이 한테서 포토 메일을 받았더랍니다. 6월 중순쯤인데 아마 걔가 저한테 보낸다는게 실수로 그 언니한테 간거 같아요. 그 언니는 그때 그냥 무시했었구요. 제가 얘기하니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거기 보시면….”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김형사는 핸드폰을 열어 포토메일 함에 들어가 해당 메일을 열렀다.
‘우리 오빠야. 자는 모습이지만 넘 잘생겼지?’
화면에는 한 남자가 자는 모습이 보였다.
“윽…….”
김형사는 외마디 비명을 나지막히 질렀다.
“아마 남친이 사진을 못 찍게 하니깐 자는 틈에 살짝 찍어서 보냈나 봐요. 이, 이제 어쩌죠. 그 번호 미숙이꺼 맞아요. 미숙이가 보낸거 틀림 없어요. 김형사님 전 이제 어쩌죠?”
김형사는 멍하게 사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이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으…. 일, 일단 이제 전부가 아니니 좀만 더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이건 저하고 둘만의 비밀로 하고 말이죠. 모든게 확실해 질때까지…”
“하지만 전 무서워요. 절, 절 지켜주실 수 있죠?”
“네? 네. 지켜드려야죠. 당연히…그, 그럼 저는 알아볼게 있어서 그만…”
김형사는 일어서다가 휘청하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의자 팔걸이를 잡고 쓰러지지는 않았다.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비밀로 하십시오.”
카페를 나온 김형사는 오피스텔로 갔다. 경비에게 그날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아. 이거 기억납니다. 저 대머리가 저 건넛편에 골프샵하는 이사장인데 애인에게 여기 집 마련해 주고 바람 피다가 마누라한테 딱 걸렸었죠. 그날이 그날이었나? 하여간 돈 많은 놈이 젊은 년끼고 바람 날때부터 알아봤다니깐…”
“혹시 저 이사장이란 사람은 다시 여기 오나요?”
“아이구 마누라 걸리면 이번엔 진짜 죽을라구. 그 이후로 여기에는 언씰도 못하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김형사는 경비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다음날 오후 이형사는 혼자 책상에 앉아 밀린 잡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때 김형사 자리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영등포경찰서 강력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기 거기 김문길형사님 계십니까?”
“어? 지금 자리에 없는데요. 어디시죠?”
“네. 혹시 이형사님이세요? 전 아시아오피스텔 경비입니다. 저번에 뵜던…”
“아. 그 분이시군요. 근데 김형사는 왜요?”
“아네. 어제 김형사님이 저에게 부탁한게 있었거든요.”
“뭘요? 그 사건 종료됐는데…”
“그러게요. 전 뭐 그냥 부탁하신거라.”
“뭘 부탁했는데요?”
“네. 그럼 부탁하셨던 5, 6월 CCTV 녹화분도 찾아냈다고 전해 주세요. 지운 줄 알았는데 늙은이가 깜박했나봐요. 찾아보니 있네요. 그렇게 전해 주세요.”
“아…..그,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형사는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차에 탄 그는 곧장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 경비실에는 마침 아무도 없어서 그는 몰래 경비실로 들어가 CCTV 현황을 조종하는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과연 거기에는 5, 6월달 동영상이 담긴 파일이 있었다. 그는 그 파일을 삭제하고 그 하드를 포맷시켜 버렸다.
“역시 선배님이시군요.”
이형사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 김형사가 서 있었다.
“어….네가 여, 여길 어, 어떻게….”
“왜 그러셨어요? 왜?”
“무,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무슨…”
“그거 아세요. 선배님께서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지만 두가지가 잘못됐다는 거.”
이형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첫째는 그 이민수라는 사람이 헛소리하는 줄 아셨을텐데. 그자가 본 살인사건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유체이탈로 본 목격자가 아니고 살인자라는 점이 다를 뿐이죠. 그리고 둘째. 아마 그 김미숙이라는 여자와는 바람을 피우셨던가 본데, 아주 철저히 감추셨더군요. 그녀의 집에나 어디에도 선배님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전화도 대포폰을 쓰면서, 아마 형수님한테 걸리면 안되었겠죠. 그러면 지금 누리는 모든게 한 순간에 다 날아가니깐요. 그런데 그렇게 철저히 했지만 자기의 멋진 애인을 자랑하고 싶은 여인의 마음까지 통제하지 못했었습니다.”
김형사는 핸드폰을 들어 이형사에게 보였다.
“여기 김미숙이 자기 애인이라면서 찍어서 보낸 포토메일입니다. 아마 선배님이 잘 때 찍은 것 같더라구요. 오늘 이 사진을 보고 모든게 확실해 졌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님이 범인이라는데는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아까 지운 그 파일에는 아무것도 없는 단지 이름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선배님은 그게 공개가 되면 본인이 여기를 수시로 드나들었다는게 들통나게 되고 결국 선배님이 증거들을 조작했다는게 밝혀지니깐 그것들을 없앤거죠.”
“무슨 소리야? 말, 말도 안되는 증거있어? 증거.”
“아까 여기 들어오실 때부터 한 모든 행동이 저기 몰래카메라에 다 찍혔습니다. 나중에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파일을 지운 것을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자. 이제 그만 다 끝났습니다. CCTV 동영상도 조작됐다는게 판명 났습니다.”
이형사는 힘없이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난, 난 진짜 그녀를 사랑했어. 아내에게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어. 나도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같이 살고 싶었어. 그, 그런데 엄마가 위암이라더라구. 아내의 돈이 없다면 내 월급으로 병원치료는 불가능해. 그리고 내 동생들 등록금은 어쩌구… 나한텐 선택의 여지는 없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집착해 갔어. 빨리 아내와 이혼하라고. 안하면 자기가 다 말해 버리겠다고…자기가 임신했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그자가 나타났던 거야.”
“그럼 이민수가 정신병원에서 한말은?”
”내가 가두어 놓고 반복적으로 시킨 말이야. 한 이틀하니 그말밖에 안하더군. 킬킬킬. 난 그 놈이 진짜 살인을 했을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는데. 난 그 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건 기회다 싶었다. 만약 아내를 죽이면 내가 당장 의심을 받을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이민수가 말한대로 미숙이를 죽이고 모든걸 감추었던 거야. 젠장. 모든게 완벽했는데…”
“세상에 완벽한건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번엔 속을 뻔 했었네요.”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한거 같다. 미안하다.”
“자 가시죠. 선배님.”
김형사는 이형사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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