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82호 올라왔습니다.

2010.03.27 03:0903.27

이 달에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거울 단신을 통해 이미 소개했습니다만, 배명훈 님께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독자우수단편에서도 우수작 한 편, 가작 두 편이 선정되었습니다. 라퓨탄 님의 "장군은 울지 않는다", 룽게 님의 "그림자 매듭", 아마존 님의 "지이"입니다.

선정되신 분들께 축하드리며, 이 달에는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더라도 다음 달에 다시 좋은 글 만나뵙게 되길 기다리겠습니다. ^^

이 달의 책은 앞으로 업데이트 공지와 함께 올리려고 합니다. 거울 서평 꼭지에 맞춰 분야 별로, 가능하면 신작 위주로 읽어볼만한 책을 한 권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소설에서는 김주영 님의 "이카, 루즈" 3권을 인상깊게 봤습니다. <이카, 루즈>는 정해진 패턴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옴니버스 소설입니다. 매번 동화를 모티브로 사건이 벌어지고, 동화를 재해석합니다. 동화를 재해석하는 건 어렵습니다. 동화는 이야기의 원형, 사람들의 원초적인 욕망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다시 쓴 이야기들은 많은 경우, 지나치게 교훈적인 느낌을 주거나 이야기의 맛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카, 루즈>는 동화 특유의 황당한 이야기 전개나 사람들의 욕망을 현대에 맞게 다시 그리면서도, 사람 냄새가 풍기고,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다음 권 출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해외 소설에서는 더 이상 신작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몹시 안타까운 젤라즈니의 "집행인의 귀환"을 꼽으려 합니다.
처음 젤라즈니의 소설을 봤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1인칭이면서도 화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감추고, 그걸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초이면서도 귀여운 인물과 함께  SF의 진수인 사유의 확장을 느끼게 해주는,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결말을 준 책이었습니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교양과학서적입니다. 자갈과 조개껍질은 어떻게 다르기에 하나는 무생물이고 하나는 생물이 남긴 흔적이 되는 걸까요. 인류가 생물의 정의를 하나씩 깨닫고, 그로 인해 세계관이 넓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양과학서적은 보통 딱딱하고 건조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런 미사여구없이 명료한, 소설과는 다른 문장과 표현들이 교양과학서적을 읽는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단아하면서 절제된 문장과 표현들이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가슴 아픈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호기심에 도룡뇽 알을 열어본 거지요. 어린 마음에 조금 열어보았다가 다시 닫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생명이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몹시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릴 때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애벌레는 제가 넣어준 상추니 배추잎이니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 마침내 작은 상자 벽에 고치를 틀었습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찢고 나오는 광경을 보고 싶었는데 매번 놓치고 빈 껍데기만 마주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반쯤 나온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고치가 상자 벽에 단단히 붙지 못했는지, 그만 떨어졌습니다. 나비는 반만 나온 날개로 어떻게든 나와보려 발버둥을 쳤지만, 단단히 지탱해줄 것이 없어 그저 고치를 끌고 이리저리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제가 고치를 좀 찢어주었습니다.
나중에 어떤 책에서 스스로 고치를 찢고 날개를 피며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나올 수 없다는 설명을 봤습니다. 그런 설명은 필요없었습니다. 고치를 찢어준 순간 알았으니까요. 그래선 안 되었다는 걸. 어떻게든 고치를 잡고 버텨줬으면 모를까, 그래서는 안 되었다는 걸... 나비는 반쪽 날개가 구겨진 휴지처럼 된 상태로 고치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기억은 오래도록 절 괴롭혔습니다. 제가 나중에 어떤 단편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봄이지만 아직 많이 춥습니다. 하지만 언제 이렇게 추웠느냐는 듯 또 여름이 오겠지요.
모두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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