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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신화

2010.06.26 01:0906.26


진화신화

김보영 지음
2010년 6월 5일 초판 인쇄 / 4*6판 / 336쪽 / 11,000원
ISBN  978-89-89571-66-7
행복한책읽기 http://happysf.net


세계의 수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한국 SF의 탄생!
  
김보영의 첫 작품집『멀리 가는 이야기』작가 김보영의 존재를 외부 세계에 널리 알린 마니페스토였다면, 『진화 신화』는 환상소설에서 하드 SF를 망라하는 폭넓은 장르적 스펙트럼에, 김보영의 SF를 구축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인 특유의 논리적 성실함으로 빚어낸 보석과도 같은 작품들의 진열장이다. 세심하고도 감각적인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이 빛나는 작품들은 SF 팬덤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김보영의 작품은 해외의 SF 잡지에 소개되어도 위화감이 없겠다”는 감탄 섞인 평가가 결코 수사적 표현이라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독특하고 다채로운 시공간을 아우르며 구축한 경이로운 상상력의 세계

인간 사회의 신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며 어떤 사건 혹은 현상에 근거하여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진화신화」는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중 짧은 기록을 근간으로 한 작품으로 신화적 상상력과 진화의 역설이 절묘하게 결합한 수작이다. “지금, 이곳”이 아닌 세계에 존재하는 인격들이 꿈꾸는 상상의 공간인 “지구”를 그리는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와 「땅 밑에」 는 생명체의 존재방식과 공간의 개념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한다.
설계자가 프로그램화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차이와 경계를 묻는 「스크립터」는 독자로 하여금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에 대한 확고한 구분을 가진 독자들에게조차도 설계자 혹은 세계에 대한 혼돈과 회의를 일으킬 만큼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작품이다. 「종의 기원」에서 천착한  ‘누군가의 의해 설계된 세계’와 그 세계에 놓인 ‘존재’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도 통한다. 또한 「노인과 소년」은 인류가 되풀이해오고 있는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우화적 답변이라 하겠다.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누가 되었든 바로 옆 사람의 감정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소녀의 동행을 다룬 「거울애」는 그 소재의 독특함, 두 인물 사이를 팽팽하게 오가는 긴장감과 거듭되는 반전으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뒤집혔지만 한편으로 익숙한 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내는 「마지막 늑대」는 작가의 또 다른 재능인 위트 있는 일러스트와 더해서 작품을 읽는 즐거움과 묘미를 배가시킨다.
  


추천사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의 동시 출간은 한국 창작 SF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 김상훈 (SF 평론가, 기획자)


김보영의 「촉각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길은 그동안 로봇에 의해 추측되는 인간 탄생의 이야기라 할「종의 기원」과 시간여행자를 다룬「미래로 가는 사람들」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을 거쳤다. 그리고 우리 문학계에는 여전히 낯선 과학소설(SF)을 어느새 독자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스타일로 주조해내는 데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있다. 독자들의 뜨거운 화답이 있을 때 작가의 상상력이 우리 시대와 더 큰 공명을 이루리라 믿는다.
― 구광본(소설가)


뒤집고 흔들라. 김보영 단편들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이야기들이 시작되면 먼지 쓴 낡은 스노우 볼처럼 방구석에 박혀 있던 지루한 현실은 작가의 거대한 손에 끌려 뒤집히고 허우적거린다. 그러는 동안 위와 아래,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은 파괴되고 우선순위는 뒤바뀐다. 그 뒤집힘의 혼란 속에서 독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순수한 장르적 경이감이다. 이 시니시즘의 시대에 아직까지 이와 같은 감정이 이렇게 순수한 상태로 남아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그리고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 듀나(소설가)



밤을 새워 책을 읽은 것이 얼마만이던가. 매 페이지마다 인간의 근원, 세계의 근원에 대한 사유가 새로운 소재의 옷감처럼 유려하게 펼쳐져 있다. 여왕의 등극이다. 그녀의 작품들이 결국 언젠가 한국 SF의 ‘종의 기원’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박민규(소설가)




작가 소개

김보영

1975년 생. 아주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1999년부터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다 2004년 과학기술 창작문예에서 「촉각의 경험」으로 중편 부문 수상, 이후 과학소설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 장르 문단의 젊은 작가 중 가장 행보가 주목되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필름 2.0』에서 선정한 ‘탈권위 무경계 신세대 문화전위 13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4, 2006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수상집』, 『누군가를 만났어』(행복한책읽기), 『Happy SF 2호』(행복한책읽기),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 『얼터너티브 드림』(황금가지), 『한국환상문학단편선』(황금가지), 『U,ROBOT』(황금가지),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해토),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황금가지) 등에 작품을 실었고, 2008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초기단편을 모은 작품집 『멀리 가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장편 『7인의 집행관』을 집필 중이다.








차례

진화신화   7
땅 밑에   35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73
몽중몽    91
거울애    121
0과 1 사이    167
마지막 늑대   211
스크립터   241
노인과 소년   305

추천사 | 논리와 고적(孤寂)한 환상의 교점에서 _ 김상훈   321
작가 코멘터리   323
작가의 말   330


본문 중에서


“대체 이 생물이 무엇이냐? 뿔이 달려 있어 사슴인 줄 알았더니 온몸이 시퍼렇구나. 꼬리는 도마뱀 같고 뱀처럼 비늘로 덮여 있는 것이 사람처럼 팔다리가 달려 있고 눈은 노란 것이 꼭 괭이 같구나. 대체 이것이 무슨 징조로 보이느냐?”
옆에 서 있던 신하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등은 말 위에 바짝 붙듯이 굽어 있었고, 목은 떨어질 듯이 땅을 향하고 있었다. 모습은 완전히 변해 버렸지만, 나는 그가 한때 내 친구였던 사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역시 나를 알아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애써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본디 생물이란 환경에 적응하여 변화하는 것이니 신종(新種)을 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통이 지나치게 안정하지 않은 까닭은 백성들이 살기에 안정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자연이 간절한 뜻을 말로 전할 수 없으므로 요괴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알게 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임금이 덕을 닦으면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p.23. 「진화신화」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풍경이다! 지구의 사람들은 어둠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에 들어가 의식을 잃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누구도 이를 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너는 나을 수 있어’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부모님이 의식을 잃은 아이를 깨우며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기면증과 싸우며 자신을 창피해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밤이 찾아오고 하늘에 별이 빛나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잘 기절해’ 하고 인사할 것이다. 아침이 찾아오면 어젯밤은 잘 기절했느냐고 안부를 물을 것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을 하듯 행복하게 잠이 들 것이다. ……잠이라는 말은 내가 쓰는 용어다. 좀 덜 부정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만들어 보았다.
- p.89.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공생(共生)증, 자기 대상 분리장애, 학명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어요. 이곳에서는 별명으로 ‘시만’이라고 불리죠. 시만이라는 뜻은…….”
“마음을 읽는다(심안心眼)는 뜻입니까?”
소희는 유리 너머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조용히 서 있었다.
“누구나 마음을 읽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고 생각을 느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요. 소희는 극단적으로 민감한 것뿐이에요.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지만 마술 같은 건 아니에요.”
“그럼 장애가 아니잖소.”
“장애예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소희는 자신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니까요.”
- p.154. 「거울애」


용족들은 가끔 인간을 두고 지능 테스트를 한다. 그들은 빨간색과 초록색 카드를 한 그룹으로 두고, 보라색과 노란색 카드를 다른 그룹으로 두고는 둘을 구분하는 문제를 내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족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완전히 혼란에 빠진다. 실제로는 두 카드에 인간이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미세한 향의 차이가 있거나,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나는 장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테스트에서는 쥐나 새가 인간보다 훨씬 지능이 높게 나온다.
- p.225 「마지막 늑대」


“넌 누구야?”
“무슨 의미로 묻는 거죠?”
“멍청이.”
“……네?”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나 봐? 어차피 진짜 얼굴도 아니잖아. 돈으로 발랐겠지. VIP고객에게 주는 특별얼굴인가? 외모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아.”
“……전 얼굴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데요.”
“얼굴의 의미가 뭐지?”
여자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당장 이 세계에서 사라져.”
여자는 화가 난 얼굴을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나를 시험하고 있군요.”
“시험의 의미가 뭐지?”
“비논리적인 문장을 나열하여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려는 거겠죠. 호문클루스는 문맥을 읽을 수 없고 논리를 알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시험은 허용하지 않겠어요. 다른 건 몰라도, 나를 인간 취급하지 않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어요.”
- p.261. 「스크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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