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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2010.08.28 03:4108.28


화성 연대기



지은이 레이 브래드버리 | 옮긴이 김영선
사양 : 신국판 변형 | 408쪽 | 값 13,000원
분야 : 문학 > 장르문학 > SF
발행일 : 2010년 8월 30일
ISBN 978-89-464-1778-6  03840

SF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 레이 브래드버리 대표작
당신이 알고 있는 화성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화성에 대한 인간의 상상과 동경,
그 너머와 이후를 담은 SF문학의 걸작!


전 세계 SF문학은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레이 브래드버리로 나뉜다!
21세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다시 만나는 SF문학 필독서


화성에 간 지구인, 화성을 지구처럼 변화시키려는 지구인,
그리고 화성에 번영과 악덕의 도시를 만들고
지구와 같은 재앙을 불러오는 지구인…
두 개의 별을 오가며 치명적인 종말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화성과 지구의 운명,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예언한 디스토피아 판타지!


SF소설을 즐기던 내게, 브래드버리라는 작가는 하나의 충격이자 세례였다. 단편 하나를 읽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은 느낌이었다.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이라면, 《화성연대기》를 일독해보기를 진지하게 추천한다. 이 장대한 ‘화성의 아라비안나이트’는 우리 지구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면서 진취성과 자부심이 아니라 사색과 반성을 겪어야 한다는 독특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오멜라스 대표)



브래드버리는 진정한 오리지널이다. - 《타임》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의 SF소설을 능가하는, 우주 공간에 낭만을 부여한 작품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캔사스시티스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는 단연코 최고의 작품이자 진정한 모던클래식이다. - 《워싱턴포스트》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났어도 화성연대기는 탁월한 감각과 풍부한 감정을 전한다. 숨 막히는 듯한 섬세한 언어 감각과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다. - 《멤피스커머셜 필》

시적이고 아름다운 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준다. - 《포틀랜드 오레고니언》

붉은 행성 화성은 수세기 동안 인류를 사로잡았다.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화성을 향한 여행을 다루었지만, 《화성 연대기》는 그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작품이다. - 《오마하 월드헤럴드》

독보적인 작가 브래드버리의 작품 중에서도 화성 연대기는 단연 최고이다. 26개의 이야기마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교하게 쓰여진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실제로 화성의 제 1식민지에 착륙한 듯한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 《앵커리지데일리뉴스》



| 책 소개 |

인간이 로켓을 타고 화성을 침공할 때,
화성인은 인간의 영혼과 기억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종말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화성과 지구의 운명,
그리고 기계 문명과 인류의 미래를 예언한 디스토피아 판타지


《화성 연대기》는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반열인 SF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 최고의 걸작이다. 미지의 세계이자 동경의 대상인 화성과의 교류를 최초로 그려낸 이 작품은 국내 SF독자들이 재출간을 손꼽아 기다려온 소설이기도 하다. 1990년 초반부터 2026년까지 지구와 화성을 오가며 펼쳐지는 2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연작단편집은 화성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지구인’의 모습을 묘사하며 지구에서 벌어지는 현실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기계 문명과 미래가 낳을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진풍경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적인 문체와 만나, 그 어떤 SF소설에서보다도 진지한 문학성과 현재성을 성취해냈다.  

《화성 연대기》는 지구에서의 삶이 복잡하고 힘들어질수록 우주를 개척하고 화성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 꿈과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적응하고 또 몰락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화성 원주민과 화성 탐사를 위해 파견된 원정대, 화성으로 이주하여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이 시간 순으로 나열되며 지구 문명에 대한 비판과 우주 개척의 꿈, 화성인과 지구인의 교감과 갈등 등, 지구 인류의 화성 이주사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몇 차례의 화성 탐험이 실패한 뒤 지구에서 온 바이러스는 고유한 문명을 수호해온 화성인을 몰살시킨다. 화성으로 마구 밀려가는 이민의 대열은 화성에 번영과 악덕의 도시를 만들고, 핵전쟁 때문에 모든 주민이 지구를 떠나버려 도시는 모두 폐허가 된다.
이렇듯 과학문명이 동반하는 근원적인 공포와 불안감이 자연과 고향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과학만능주의와 물질문명에 대한 작자의 통렬한 비판 정신 때문에 서방세계 문학작품의 유입이 어려웠던 당시의 소련 등 공산권에서까지 널리 읽혔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사이로 번득이는 깊이 있는 문학성과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정신은 레이 브래드버리를 거장의 반열에 올렸다.


우주의 음유시인이 그려내는 화성의 ‘아라비안나이트’
기계문명이 남긴 상처와 인간 소외를 진단하는 SF문학의 신기원


미국의 서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브래드버리처럼 쓰는 작가는 브래드버리뿐이다.’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는 쥘 베른이나 H.G.웰스 같은 SF문학의 시조들 중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동시대를 풍미했던 SF의 거장들, 즉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와도 확연히 구별되는 뚜렷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미래나 과학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형식을 도구로 삼아 오늘의 인간 본성과 당면 문제를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저명한 SF작가들이 대부분 영웅모험담이나 과학 지식이 뒷받침된 신기한 발명, 발견 등을 주로 다루었던 배경에는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서구 문명의 팽창주의와 계몽주의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레이 브래드버리는 시종일관 자기성찰의 시각을 놓지 않았다. 그가 그리는 화성은 희망의 장소인 동시에 모든 인류의 꿈이자 은유이다.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기둥과 바다의 화석은 공허하고 커다란 파괴된 문명의 텅 빈 도시 속으로 침잠한다. 화성은 침략자들이 약탈과 상업성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곳이며, 미래가 없는 세계에서 미래가 존재하는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곳이다. 그러나 행성과 행성을 오가는 거대한 미래 세계 속에서도 지구인과 화성인은 모두 현재의 인간관계와 욕망, 가족과 친구,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괴로워한다.
《화성 연대기》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과 상상력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희석되지 않은 채 살아 있는 20C문학의 고전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인간이 지닌 약점과 어리석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인간성을 초월해 보다 크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세상으로 인도한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그리는 공포는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거나 정복당하는 데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과학문명의 발달 뒤에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소외와 고독이다. 물질 만능주의, 인종 차별, 이기적인 정치권력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지구의 문제들이 미래에서도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암울한 전망에서 생성되는 공포이다. 디스토피아로서의 미래는 SF문학이 보편적으로 다루는 테마이기도 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와 견줄 만큼 근본적인 공포감과 음울한 긴장감을 창조하는 브래드버리의 능력은 독보적이다.
《화성 연대기》는 SF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인간의 미묘한 심리, 문명과 문명의 충돌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일반 서양 고전문학 독자마저 끌어들일 힘과 가능성을 지닌 걸작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한 상상과 묘사보다는 인간 본성과 사회적 이슈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진 브래드버리의 관점은 오늘날의 독자에게 더 예리하게 다가올 것이다. 과학 문명이 발전한 뒤에 남는 인간의 고독과 소외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보다 더 깊이 우리 삶을 파고드는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화성연대기》는 1950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한국에서는 30여 년 전 일어판 중역본이 첫선을 보였다. 이후 1990년에 다시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된 뒤, 오랫동안 이 세기의 SF 명작은 본격적인 한국어판을 만날 수 없었다. 이번 출간은 SF독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고전문학 독자들에게도 희소식이 될 것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아이 로봇〉의 제작사인 20세기폭스사에서 《화성연대기》 영화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한다. 개봉 예정은 2013년. 《화성연대기》는 이미 1980년 TV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은 당대의 명배우 록 허드슨이었다.  

|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

지은이_ 레이 브래드버리 Ray Bradbury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과 함께 SF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독보적인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SF문학에 서정성과 문학성을 부여해 그 입지를 끌어올린 전방위적 작가로 불린다. 1920년 8월 22일 일리노이 주 워키건에서 태어난 그는 로스앤젤레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은 포기했지만, '도서관이 나를 길러냈다.'고 할 정도로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방대한 지식을 쌓았다.
스무 살에 발표한 첫 단편  <홀러보첸의 딜레마>를 시작으로 여러 잡지에 작품을 기고했고, 단편과 장편 소설, 희곡, 시 등 장르를 넘나들며 5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서정적이고 세련된 문체와 섬세한 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SF문학뿐 아니라 기존 문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을 많이 펴냈다. 특히 문명비판서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화씨 451》,  《화성연대기》는 과학기술과 문명이 파괴하는 정신문화와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와 재생의 노력을 담아냈다. 또한 1956년 존 휴스턴이 감독한 영화 〈백경〉의 각본을 썼고, 자신의 작품 가운데 65개가 '레이 브래드버리 시어터'라는 이름으로 TV에 방영되어 7차례 에미 상을 비롯한 미디어 관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세기 동안 미국 문학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SF소설 작가로는 최초로 2000년 전미도서재단으로부터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2004년 '내셔널 메달 오브 아트' 상, 2007년 프랑스문화훈장, 퓰리처 특별 표창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헐리우드에 영예의 족적을 남겼고, 한 소행성 명칭이 그의 이름을 따 '9766 브래드버리'라 명명되었다. 저서로는 장편 《화씨 451》, 《화성연대기》,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오고 있다》, 《문신한 사나이》 등이 있다.

옮긴이_ 김영선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교 언어학과에서 문학석사, 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무자비한 윌러비 가족》으로 2010년 IBBY(국제아동도서위원회) 어너리스트(Hornor List) 번역 부문에 선정되었다.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 《구덩이》 《도박》 《로빈슨 크루소》 《검은 고양이》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특히 영미 클래식을 정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완역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 책 속으로 |

|지구 사람들이 화성으로 몰려왔다.

두려워하며 온 사람 두려워하지 않으며 온 사람, 행복해서 온 사람 불행해서 온 사람,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온 사람들의 기분으로 온 사람 그런 기분 없이 온 사람 등 저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나쁜 아내와 나쁜 일과 나쁜 도시를 떠나온 사람들.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남기기 위해, 얻기 위해, 파내기 위해, 묻기 위해, 그리고 무언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온 사람들. 작은 꿈을 품고 온 사람들, 큰 꿈을 품고 온 사람들, 아무런 꿈도 품지 않고 온 사람들. 그러나 정부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는 장면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린, 네 가지 색깔로 된 포스터가 많은 도시에 내걸렸다. ‘하늘에 당신을 위한 일자리가 있다. 화성을 보라!’ 그러자 사람들이 다리를 질질 끌며 나오기 시작했다. -p.169, 〈이주자〉중에서

흥미로운 답이 나왔다. 텔레파시, 최면술, 기억, 상상력.
만약 여기 있는 집들이 모두 현실이 아니고, 이 침대가 현실이 아니고, 화성인의 텔레파시와 최면술에 의해 현실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내 머리에서 나온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가정하면? 여기에 있는 집들이 사실은 다른 모양, 즉 화성의 집 모양인데, 내가 의심을 품지 않도록 화성인들이 나의 욕망과 바람을 읽고 장난을 쳐서 우리 고향 마을과 내가 살던 옛집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가정하면? 누군가를 속이려고 할 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p.114, 〈 3차 탐험대〉중에서

만약 예전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에 영혼이 있다고 믿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건들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물건마다 모두 쓰임새가 있었습니다. 산들은 또 어떻습니까? 산마다 모두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이름을 쓰면 어색한 느낌이 들 겁니다. 왠지 그 산을 부르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산에 새 이름을 붙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 속 어딘가에 옛 이름도 옛 이름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산은 바로 그 이름 아래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바로 그 이름 아래 그 산을 봤으니까요. 우리가 운하와 산과 도시에 새롭게 붙인 이름들은 물오리 등에 맺힌 물방울 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화성을 아무리 우리 손으로 매만져도 사실은 영원히 못 만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화성에 화를 낼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할지 아십니까? 우리는 화성을 찢어발길 겁니다. 화성의 표면을 갈가리 찢어발겨서 우리에게 맞게 변화시킬 겁니다.”-p.131,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중에서

“저 도시들의 모습을 보건대, 그들은 우아하고 아름답고 철학적인 사람들이었을 것 같아.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인 거야. 종족의 종말을 감수한 거지. 거기까지는 우리도 알 수 있는 사실이야. 당황한 나머지 자신들의 도시들을 황폐하게 만들 최후의 전쟁을 일으키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지. 지금까지 우리가 본 도시들은 하나같이 생채기 하나 없었어.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노는 것만큼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지도 몰라. 아이들의 특성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일 테니까.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거라고 나는 믿네.-p.132~133,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중에서

그들은 별 모양으로 된 휘장과 훈장과 규칙과 규정을 가지고 왔으며, 잡초처럼 지구를 누비며 기어 다니던 관료적 형식주의를 가지고 와서 화성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자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생활과 규범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령받고 규제받고 강요받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화성으로 온 사람들을 규제하고 강제하기 시작했다.-p.233, 〈이름 붙이기〉중에서

쫓기는 자와 쫓는 자, 꿈과 꿈꾸는 사람들, 사냥감과 사냥개들. 뜻밖의 만남, 낯익은 눈들의 반짝임, 아주 오래전 잊힌 이름을 부르는 외침, 서로 다른 시간들의 추억. 여기까지 오는 내내 점점 불어나는 사람들. 앞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 수만 개의 거울에, 수만 개의 눈에 비친 영상처럼 부풀었다가 사그라지는 꿈.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각각 다르게 보이는 얼굴.-p.289, 〈화성인〉중에서

예전에 그들이 화성의 존재를 믿으려고 애썼던 것처럼.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어느 모로 보나, 어떻게 해석하나, 지구는 죽었다. 사람들이 지구를 떠난 지 이미 3~4년이 흘렀다. 우주는 마취제였다. 1억 킬로미터의 거리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기억을 잠들게 하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버리고, 과거를 지우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일에 전념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오늘 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지구에 다시 사람들이 살고, 기억이 깨어나고, 수많은 이름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아무개는 오늘 밤 지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p.320~321, 〈지켜보는 사람들〉중에서

도시 맞은편에 로켓 공항이 있었다. 지구로 돌아가는 마지막 로켓이 불을 뿜을 때 생긴 그을음 냄새가 여전히 진동했다. 10센트짜리 동전을 넣고 망원경으로 지구를 보면, 아마도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뉴욕이 폭발하는 장면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종류의 안개로 뒤덮인 런던도 보였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이 작은 화성 도시를 버리고 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철수했는지 보려면, 시험 삼아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금전등록기의 단추를 두드려보라.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들이 짤그락거리며 현금 서랍이 툭 튀어나올 것이다. 이러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얼마나 격렬했을까.-p.324, 〈적막에 휩싸인 도시들〉중에서

밤이 되면 바람이 죽은 바다 밑바닥을 건너고 육각형의 묘지를 지나 네 개의 낡은 십자가와 한 개의 새로운 십자가 위로 불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모래가 소용돌이치고 별들이 차갑게 타오르면, 나지막한 돌오두막집에 불이 켜지고 한 여인과 두 딸과 한 아들이 벽난로 불을 까닭 없이 휘젓고는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해마다, 해마다, 밤이면 밤마다 여인은 아무 까닭 없이 문밖으로 나와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보았다. 왜 보고 있는지 이유도 모른 채 두 손을 높이 들고 녹색으로 타오르는 지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오두막집으로 돌아가 벽난로에 장작을 하나 던져 넣었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불고, 죽은 바다는 언제까지나 죽은 채 누워 있었다.-p.365~366, 〈긴 세월〉중에서

“아빠는 지구인의 논리와 상식, 훌륭한 정치, 평화, 책임 같은 것을 찾고 있어.”
“그런 것들을 다 지구에서 찾아냈어요?”
“아니, 지구에서는 찾지 못했어. 지금은 그런 것들이 아예 없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거야. 예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속아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p.383, 〈백만 년짜리 소풍〉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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