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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필진 아밀 작가님의 단편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가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에 수록되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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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의 애인, 혜원은 오늘부로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었다.”_이유리, 〈보험과 야쿠르트〉

보험 아줌마인 ‘나’와 야쿠르트 아줌마인 ‘혜원’은 여름에는 한강 풀장에 가고, 가을에는 도시락을 싸서 관악산에 오르고, 겨울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골목을 걷고, 봄에는 냉이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년 레즈비언 커플이다. 리얼리티 시트콤처럼 슬프고도 웃긴 이들의 사랑은 끝까지 무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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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야쿠르트 아줌마와 보험 아줌마 커플.
둘 다 마흔이 넘은 이 마당에 아줌마라는 단어에 발끈하고 싶지는 않으나, 우선 직함 앞에 우리가 파는 물건의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러붙은 이 모양새가 멋지지 않다. 대개 이런 일을 당하는 직종은 정해져 있다. 종사하는 이는 많지만 그중 대부분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닌 직업,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으로는 절대 언급되지 않는 그런 직업. 예를 들어 의사는 절대 ‘병원 아줌마’로, 우주 비행사는 절대 ‘우주 아줌마’로 불리지 않는다.

“가끔 기영은 자신에게 미나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_아밀,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미나’는 ‘기영’에게 유일한 레즈비언 친구이자, 유일한 뱀파이어 친구다. 헤테로인 ‘기영’은 가끔 자신에게 ‘미나’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둘은 20년 동안이나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미나’의 집에 놀러온 ‘기영’에게 ‘미나’는 런던으로 이주하기로 했다는 고백을 한다. 둘의 우정(?)은 지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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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친구야?”
미나가 낮게 속삭였다. 기영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니면 내가 왜 여기 내 발로 오겠냐?”
미나가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래? 정말로? 네가 자꾸 여기 오는 이유가 그걸까?”
“무슨…….”
“너는 이상한 데서 둔감해. 그리고 지독하게 이기적이지.”
미나의 입에서 나온 날 선 비난에 기영은 흠칫했다. 미나가 기영의 턱을 젖히더니 목덜미에 입을 가져갔다. 다른 쪽 팔은 기영의 허리를 감았다. 그다지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길인데도 기영은 꼼짝할 수 없었다.
“잘 생각해봐. 너야말로 나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너의 섭이 될게, 너는 내 돔이 되어줘.”_송경아, 〈다가가지 못하는〉

‘나’는 두 엄마와 함께 참석한 퀴어 퍼레이드에서 삼태극과 비슷한 강렬한 빨간색 깃발을 본다. 곧 그것이 BDSM 깃발이라는 것과, 깃발을 든 소녀가 같은 반의 15번 임정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임정인’과 같이 과외 수업을 받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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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에 나한테 와서 그러더라. BDSM은 아무나 할 수 있으니까 성 정체성이 아니래. 난 ‘아무나’에 대해서는 몰라. 나에 대해서만 알아. 그리고 나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냥 여자를 사랑할 수는 없어. 내 사람이 무릎을 꿇고, 내 앞에 항복하고, 내게 힘을 넘겨주고 내가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 이상의 강한 자극을 내게서 바랐으면 좋겠어. 난 내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을 찾을 테야. 너희들 눈에 아무리 내가 이상해 보여도, 이건 양보할 수 없는 거야. 이게 성 정체성이 아니라면 난 성 정체성이 뭔지 몰라.”
바로 그 순간, 나는 목마르게 정인이의 ‘단 하나의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_이주란, 〈여름밤〉

이른 열대야가 계속되던 어느 여름밤, ‘은영 씨’가 조용히 사라진다. ‘나’는 놀라지 않는다. 조만간 좀 떠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은영 씨’가 봄부터 말했기 때문이다. ‘나’가 은영을 기다리며 퀴어 친구들과의 우정 어린 일상을 보내는 사이 해가 바뀐다. 친구 석구 씨 어머니의 백 세 잔치를 다녀오던 길에, ‘나’는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본다. ‘은영 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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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창밖을 바라보며 소시지와 파를 썰었다. 칼질을 하는 실력이 는 후에는 또 너무 빨리 썰지 말라며 손 조심을 하라는 얘길 들었다. 은영 씨, 어쩌라는 거예요. 말하면 은영 씨는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하면서 멋쩍은 표정을 짓곤 했다. 역시 깜찍하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고 귀엽고 깜찍한 것엔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중략) 나는 은영 씨와 둘이 원룸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 방 한 칸에 빨래를 말리는 날에는 텔레비전을 못 봤다. 가려질 수밖에, 없었고 아주 작은 테이블 두 개를 반대로 두고 각자 일을 하곤 했고 식사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바닥에 내려두고 테이블을 붙여 같은 음식을 먹었다. 오랜만에 들으니 좋다, 하면서 설거지를 하고 물을 두 잔 마셨다. 짜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요.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아요. 오래 기다려왔으므로 앞으로는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은영 씨가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전보다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었지만 기다리는 연락은 없었다.

“정원은 구경만 해. 이 정원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_김유진, 〈수리와 안개〉

‘수리’는 ‘나’의 옛 남자 친구의 딸로, 여름방학을 맞아 놀러 왔다가 안개 때문에 도시가 봉쇄되는 바람에 그대로 함께 살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배급 받는 식량과 생필품을 아껴 쓰며 지내던 어느 날, 아파트 정원에 비닐하우스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리’와 ‘나’는 이 재난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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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가 시작된 이후, 어쩌면 아파트가 세워진 이후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정원에 모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같았다. 수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흥분한 듯 보였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이는 수리의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중략) 멀찍이 있던 한 남자가 도시는 정치적인 이유로 봉쇄된 것일 뿐 안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봉쇄는 언젠가는 풀리게 되어 있다고, 역사적으로도 그렇다고 했다. 그럼 강을 뒤덮고 있는 저것은 무엇이지? 매일 조금씩 진군하며 우리를 위협하는 저것이 낯선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가 알던 바로 그 안개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 김에 고사한 나무도 모두 베어버려야 한다는 사람들과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을 닦는 노인들, 이 모든 소란과 무관하게 벤치에 앉아 볕을 쬐며 환담을 나누는 입주민들, 그런 사람들 주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천천히 둘러보던 수리가 조용히 삽을 들고 가장 가까운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수리를 뒤쫓아 가 목장갑을 건네주었다. 정원은 구경만 해. 이 정원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장난을 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이는 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 이렇게 자랐지? 수리가 메마른 땅에 삽을 박아 넣으며 대답했다. 아직 더 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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