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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예지 『문예중앙』 2013년 가을 135호에는 '쓰다듬' 코너에서 배명훈 작가님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2013년 8월 10일 진행되었고, 진행자는 오은 시인이었습니다.

긴 내용 중 SF에 관한 언급 일부와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언급된 부분만 인용해 봅니다.^^




문예중앙 135호 - 2013.가을
중앙books 편집부 (엮은이)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09-15



 배명훈 저는 세계 쪽의 비중이 높은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인물을 생략해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세계와 인물의 관계나 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그게 글마다 좀 달라요. 『은닉』 같은 경우는 인물 중심이고, 『신의 궤도』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고……. 저는 여러 가지로 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르소설 웹사이트에 보면 습작 소설을 올려놓는 곳이 있는데, 그 소설들의 접근 방식을 보면 세계관만 있고 인물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뭐 그래서 실패하는 것일 텐데요. 그렇게 소설의 출발점을, 인물이 아닌 세계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 시놉시스를 보면, 단순히 캐릭터 소개만 써놓고 영화 이야기가 그게 전부인 것처럼 하잖아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세계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인물만 쓰고 끝내는 것도, 세계만 쓰고 끝내는 것도, 둘 다 뭔가 부족하죠.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세계를 출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뭐부터 시작하는지 그때마다 좀 달라요. 세계나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도 있고, 인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있고요.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예전에 어떤 방식으로 써봤으면 다음엔 다른 배합으로 써보려고 노력해요. 『은닉』이 약간 그런 의도로 쓴 글이에요. 전에 안 했던 스타일로 쓰는 거죠.

 오은 저는 『은닉』이 더 잘 읽혔어요. 제게 익숙한 독법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신의 궤도』가 더 쉽게 읽힐 수 있는 톤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은닉』이 더 빨리 읽히더라고요. 읽으면서도 좀 신기했어요.(222)


(……중략……)


 배명훈 (테러리스트) 그 글은 SF를 쓴다는 자각이 없이 쓴 건데, SF 쪽에서 먼저 눈길을 끈 거죠. 사실 SF는 아니었고, 지금도 SF 독자들 중에 저를 파문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웃음) ‘얘는 SF가 작가가 아니야’ 하는 식으로……. 사실 전 별로 상관 없어요.

 오은 SF 작가라는 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정체성을 규정해주고 어떤 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좋을 수 있지만, 그런 식의 호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면 작가를 괴롭히면서 세계를 한정하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배명훈 일단 SF 작가라는 호칭은 얻기가 정말 힘든 거여서 영광스럽긴 해요. 그런데 SF 작가라는 호칭이 뭔가 낮춰 불리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고요. 그 호칭은 아무나 불러주는 게 아니에요. SF 팬덤에서 SF 작가에 대한 기준이 엄청 높아요. 70점, 80점 과락의 수준이 아니라, 95점 정도에서 과락을 시키는 수준이어서 SF 작가로 불릴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 건 맞아요. 그런데 이런 문제는 있죠. SF 작가면 SF만 계속 써야 하느냐? 전 그렇진 않아요. 실제로 저는 SF만 쓰진 않고, 판타지도 쓰고, 전혀 장르성이 없는 글도 쓰고……. 『타워』 같은 경우는 SF라고 안 불러도 상관없고, 불러주면 좋고……. SF가 스펙트럼이 넓어서 그 범주에 들어가긴 해요. 저는 다행히 포지션이 잘 잡혀 있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걸 써도 되고, 저걸 써도 되긴 해요. 어떻게 부르시든 그 이름 때문에 얽매이는 건 덜한 거 같아요. 보시기에는 많이 얽매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228~229)

 배명훈 초반에 나온 질문과 연결되는데요. 『총통각하』 같은 경우는 문학평론가들의 리뷰가 꽤 나왔는데, 뭔가 결말이 없다는 의견이 공통적이었어요. 그러니까 뒷부분이 안 읽힌 것 같아요. 결말이란 게 없을 수가 없잖아요. (웃음) 제 나름대로는 결말을 어정쩡하게 하지 않고 세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여기가 안 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도 신기한 것 중에 하나가, 제 생각엔 SF나 판타지가 거의 비슷하거든요. 실제로 독자군이나 작가군이 겹치기도 하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문학계에서는 판타지가 안 읽혀요. 반면에 SF는 좀 읽혀요. 그게 되게 신기해요. (웃음) 『총통각하』도 마찬가지로 SF와 판타지가 섞여 있는데 거의 SF만 읽히는 느낌이에요. SF와 판타지가 뭐가 다르죠? SF만 읽히는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모를 것 같아요. 신기해요.(234)








 오은 하하. 문득 각하와의 궁합뿐만 아니라 시대와의 궁합이란 것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찾아낸 건데요. 환상문학웹진 《거울》이란 곳이 있더라고요. 이 《거울》이라는 플랫폼은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이 자리를 통해 《거울》에 대해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배명훈 웹진인데요. 웹진이라고 하면 원고료가 나오는 곳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진 않고요. 예전에 PC통신 같은 곳에서 SF나 판타지 작가군이 생겼어요. 그 전까지는 학교에서 그냥 혼자 SF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PC통신이 생기고 나서 이 사람들이 다른 곳에도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대요. 저는 거기에 끼진 않았는데, 그 시절에 저는 컴퓨터가 없었어요. (웃음) PC통신이 인터넷으로 전환되면서, 이런저런 사이트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하다가 그것들이 결국 다 모이게 된 곳이 ‘거울’이에요. 창작 능력이 있는 작가군이 모인 곳이어서, 최후의 보루 같은 느낌이었어요. 후퇴하고 후퇴하고 후퇴했을 때, 가장 마지막에 남아 있는 선인데, 이게 지금까지 10년째 유지가 되고 있거든요.

 오은 내부적으로 소통이 많이 이뤄지고 그런 편인가요?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배명훈 거기는 필진들하고 독자들이 이원적으로 따로 운영되는데, 필진들끼리 교류가 많아요. 웬만한 SF 작가들 이름은 다 걸려 있고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는 것과 좀 다르거든요. 거기는 전업작가도 많대요. 시장도 있고. 판타지라고 하지 않고 환상문학이라고 하는 게, 좀 다른 차별점을 주려고 하는 것 같고. 그리고 단편 중심이고, 장르 농도라고 할까 그런 건 문예지에서 보는 정도와 많이 다르지 않아요.

 오은 저도 얼마 전 그 웹사이트에 들어가 봤어요. 저는 ‘거울’이란 말이 참 좋더라고요. 거울은 본디 형상을 비추는 것이잖아요. 제 생각에는 SF라는 장르가 사회가 어둡고 시대가 흉흉할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거울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명훈 제가 처음 이름 지을 때 있찌 않아서‥…. 저는 과학기술 창작문예에 당선되고 나서, 그 당시에는 따로 발표할 지면이 없으니까 거기서 계속 활동을 했는데요. 열심히 활동할 때에는 한 달에 한 편씩 쓰는 작업을 한 2~3년 동안 계속한 것 같아요. 장르 쪽 기획은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기획들이 많아요. 그런 기획들이 생기면 작가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사라지거나 안 생기면 뒤로 물러나야 하잖아요. 최후의 보루라는 말이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거울이 없으면 작가들이 다 흩어질지도 몰라요. 기획이 없어지면 우리끼리 하고, 기획이 생기면 거울 이름으로 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하기도 하고…….(23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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