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는 거대한 벽면에 무수한 굴을 파고 들어가 세워졌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에는 사람들이 지상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엄청난 빙하기가 닥쳐왔고, 살아남은 이들이 '벽'을 발견해 그 표면에 무수한 길과 계단, 사다리를 놓고 벽을 파들어 가 동굴을 만들어서는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의 지배층과 부유층들은 벽 아래 깊숙한 곳, 즉 살만한 환경을 꾸미기 가장 어려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열을 통해 발전기를 돌리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 그리고 죄인들은 벽 위쪽에 살면서 벽면을 후려치는 강풍을 이용한 풍력발전과 이끼 및 버섯 재배, 매사냥으로 하루 하루를 간신히 이어나갔다.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원한 겨울을 피하기 위해 더욱 깊이 땅을 파고 들어갔고,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은 언제 동굴이 무너져 내려 서로를 해칠지 몰라 서로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벽을 계속 파고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빙하기가 끝났을지도 모른다, 벽면에서의 힘겨운 나날을 끝내고 넓게 트인 평지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속삭임들이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가기 시작했고, 깊은 곳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의 이탈을 막고자 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높은 곳에 사는 이들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사람들은 끝이 없을 것처럼 펼쳐진 평지 위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깊은 곳 사람들은 땅 아래 펼쳐진 영원한 어둠 속에 남아, 밤이 올 때마다 그들이 한 때 다스렸던 반역자들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한 가슴을 끌어안고 지상으로 올라와 지상의 사람들의 피를 두려움으로 얼어붙게 만든다고 한다.
지상인들은 그들을 뱀파이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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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던 장편이 막혀 버리는 바람에... 전에 자다가 꿈에서 본 풍경을 배경으로 기분전환 겸 짧게 쓴 건데 이 설정 마음에 드네요. 차후 확장시켜서 다른 소설 배경으로 재활용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몇 몇 설정을 정당화할 건덕지가 안 떠오르네요. 벽 표면에 동굴을 파고 들어가 도시를 세운 건데, 미칠 듯한 강풍이 불텐데 어떻게 거기 매달려 굴을 팠냐거나.... 파낸 흙더미와 돌들은 동굴 바깥으로 버렸을텐데 옆에서 굴 파고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가 쩔었을 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한거냐거나... 그건 어떻게 해결했다 쳐도 파낸 잔해들이 바람에 좀 날려가다 벽 아래 쪽으로 떨어져 쌓일텐데 지배층과 부유층들이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살 리가 만무하다거나...
실로 유쾌한 발상이십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도입부 장면을 보는 느낌...
문피아의 제 서재에도 한번 들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