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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사소한 사건

2003.09.14 02:0009.14

(생략)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생략)
                                              기형도 시 [안개] 중에서

전에 진아님이 기형도 전집 얘기를 해서인가요, 갑자기 책꽂이에서 기형도 시집을 꺼내 읽었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잘 썼군요. 전혀 사소한 사건이 아닌데도, 여직공의 겁탈과 취객의 죽음을 사소한 사건이라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취객은 쓰레기 더미로 전락했습니다. 기형도의 내공이 놀랍군요.

이런 글을 읽으면 좀더 냉정하게 살아야겠다던 다짐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걸렸군요. 한 며칠 동안은 감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하겠지요. '감상적인 건 싫어합니다.' 음, 정말 끔찍하군요.
아이
댓글 1
  • No Profile
    진아 03.09.14 10:54 댓글 수정 삭제
    잘 썼죠. 소설도 좋더라고요.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읽고 싶은 책이 쌓여있는데... (어쩐지 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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