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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l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은이) | 황금가지 | 2013-01-09


 황금가지에서 밀리언셀러클럽 국내편 24번째 책, 최혁곤 작가의 『B파일』이 출간되었습니다. 장르는 스릴러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르의 소설입니다. 일단 여러 주인공을 제시하고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사건을 진행해나가는 전개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한 긴장감을 주고, 수수께끼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한 명의 주인공에게만 집중했다면, 수수께끼가 극대화되기보다 지루해질 테고, 이야기 구조도 지나치게 단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살인 누명을 쓴 채 도주한 은행원과, 신참 기자, 킬러, 고참 기자 등을 주요 화자로 삼아서 번갈아가면서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갑니다.
 여러 개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각각의 인물들은 그 사건에 맞서 의문을 풀어나가다가 결국에는 하나의 커다란 수수께끼에 부딪힙니다. 그게 바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B파일’인 것이죠.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은 ‘B파일’의 정체에 궁금증을 갖게 되고, 각각의 주인공이기도 한 중심인물들이 시점이 번갈아 제시될 때 ‘B파일 397021 은행원’이라는 말에서 더 큰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결국 독자는 각각의 인물들과 함께 ‘B파일’에 대한 정체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이 됩니다.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퍼즐 맞추기, 여러 갈래로 펼쳐진 수수께끼가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 독자는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면에서 초반 전개와 전체적인 구성이 상당히 잘 짜인 소설이었습니다. 부담감도 지루함도 없이 독자는 정신없이 인물들을 따라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을 들여다보고 하나씩 정보를 얻어갑니다. 중심인물들이 나중에 한데 모여서 진실을 꿰맞출 때, 독자는 한 발 앞서 총체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면서 사건의 전체 모습을 그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제시되는 화자는 ‘리영민’이라는 은행원입니다. 한국에 들어온지 12년 째인 조선족 출신으로, 어느 날 일어나보니 모텔에서 한 여자가 옆에 죽어 있습니다. 모텔에서 빠져나온 리영민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해 나가게 됩니다. 살인자로 누명이 씌여지고 쫓기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게 됩니다. 외국인 특채 직원으로 선망의 직장에 취업하고, 착실한 생활을 이어나간 조선족이라는 출생의 희소성으로 오히려 득을 본 인물을 설정해서 배경이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다만, 도망자 신세가 된 리영민의 움직임이 작가의 보호 속에 있는 것처럼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약간의 시선만 의식할 뿐 일반인처럼 돌아다녔고, 현상수배가 되었다는 점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이런 스릴러 소설의 특성상 경찰이 조금은 무능하게 그려지는 게 정석이긴 합니다만.)
 두 번째로 제시되는 화자는 ‘윤순철’이라는 고참 기자입니다. 닳고 닳은 인상을 주는 중년의 고참 기자라는 설정은 전통적인 스릴러 소설의 배역 중 한명이라는 느낌을 주면서도 안정감을 줍니다. 왠지 이런 고참 기자에게 독자들은 신뢰감을 주게 되지요. 편집국장은 윤순철을 불러 의문의 ‘CD’를 한 장 줍니다. 이 CD를 조사해보라는 것입니다. 윤순철은 CD를 가지고 아는 전문가를 찾아가 살펴봅니다. 중년 사내와 젊은 여자가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뒤엉키는 영상이 들어있는 CD. 합성이 아닌 진짜 동영상을 보면서 윤순철은 이 동영상이 어째서 위험한 물건인지 의문을 갖습니다. 이후 편집국장이 죽고, 사건은 심상치 않게 흘러갑니다.
 세 번째로 제시되는 화자는 ‘미호’라는 전업 킬러입니다. 목적이 있어서 돈을 모으고 있는 킬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인물을 없애고 다음 의뢰를 받습니다. 이 의뢰가 바로 윤순철에게 있는 CD의 회수. 쉬운 의뢰인 줄 알았던 CD의 회수는 어렵게 진행되고, 역으로 살해 당할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네 번째로 제시되는 화자는 ‘에스더’라는 신참 기자입니다. 민주일보 사회부 신참 기자인 에스더는 여성이며, 마포 경찰서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특종을 놓친 ‘낙종’을 하는 바람에 사회부장에 깨지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모텔 살인 사건에 따라가면서 사건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후 ‘리영민’이 결백을 주장하는 연락을 받게 되고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나갑니다.
 이 주요 네 명의 화자 말고도 각각 주변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한 권의 장편 소설 안에 나오는 인물 수는 상당히 많습니다. 그만큼 독자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도 많고 관계나 배경 설정의 양이 많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화자를 번갈아가면서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산만한 느낌은 들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습니다. 의원이나 국장이 죽고, 모텔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등 연관성이 없는 듯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지만, 독자는 이미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당연히 하나의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화자들이 사건을 짜맞추기 전에 이미 먼저 추리를 해보는 재미를 가질 수 있고,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맞아 떨어져가는지 파악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이 소설에는 앞에서 말했듯이 신참 기자와 고참 기자가 등장합니다. 민주일보에서 일하는 이 두 기자가 사건의 추적을 맡은 핵심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독자에게 생동감을 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 소설은 다른 소설에서 못 본 기자들의 현장감을 여러 디테일을 통해서 제시하기 때문에 독자가 현실감을 느낍니다. ‘낙종’이라든가, 자정에 기삿감이 생기면 40판, 먼저 나가는 지방판은 놓치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배달판에는 실을 수 있는 시간이라든지 하는 정보들이 기자라는 직업 세계에 대해서 전해주는 정보들이 이 소설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리영민’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에 대한 정보 역시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져 오고 있습니다. 실제 있을 법한 핍진성을 높이는데 이런 디테일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의 생활, 조선족의 생활에 대한 지식을 얻는 듯한 재미를 독자가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개 속도와 기자들의 생활을 그린 디테일 등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인 것입니다.
 네 명의 주요 화자들을 통해 사건을 입체적으로 접근하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스릴러 소설입니다. 1부 홍콩모텔은 사건을 벌이고, 인물 소개에 치중하고 있으며 2부 민주일보는 본격적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3부 원더랜드는 사건의 종착지에 네 명의 인물이 한데 모여서 결전을 벌입니다.
 2부까지는 긴박감 넘치는 전개와 인물들의 추리 과정이 제법 흥미진진했었습니다. 인물들의 매력이 약간씩 부족한 감은 있었지만, 적절히 과거를 소개하면서 인물의 개성을 살려나갔고, 하나씩 주어지는 단서들을 가지고 거침없이 진행해 나가는 지점들이 흥미로웠습니다. 아쉬운 지점은 결말인 3부입니다. 2부를 읽으면서도 기대감이 커질수록 3부에 대한 걱정도 커졌습니다. 이렇게 깔끔한 전개와 네 명의 화자를 내세워서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이 좋은 만큼, 그에 걸맞는 결말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부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결말이었습니다. 네 명이 한데 모이는 것도 너무 갑작스럽게 처리해서 긴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라는 느낌보다는 너무 쉽고 간편하게 처리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것도 없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는 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인공들이 충분히 머리를 맞대고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이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느낌이어서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건의 배후가 너무 단순하고, 헐리우드 영화 속 시시한 악당들과 비슷해서 허탈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금 늘어졌더라도 3, 4부로 분량을 충분히 해서 주인공들이 모여서 맞서는 과정을 세세하게 다루고, 상황에 떠밀려서 우왕좌왕 하는 게 아니라, 각자 비장의 카드들이 있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부까지 재미있게 읽은 것에 반해 3부에서는 너무 압축해서 전개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로 인해 앞에서 탄탄하게 쌓아놓은 현실성이 한 번에 다 날아간 느낌이고, 사건의 진상이 현실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서 몰입감이 깨졌습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장르가 바뀐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모든 음모와 사건의 진상이 돌파로 쉽게 드러나고, 대화를 통해 술술 확인되어지고 마지막에 담보가 없는 단순한 협상으로 결말이 맺어지며, 각 인물 간의 다른 결말을 주어 모호한 정리만 해줘서 허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진상 역시 충격적이거나 놀라운 반전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약간 식상한 소재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CD의 동영상을 이용한 협박은 진부하면서 그 세월이나 현실성을 따질 때 좀 무리한 방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에 대한 공포를 독자에게 제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빠른 전개 때문에 대충 넘어간 느낌입니다.
 이렇듯, 정리하자면 마지막에 이르러서 급전개로 결말을 처리해서 아쉬운 감이 크지만, 초반 전개는 정말 깔끔하며, 기자와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 중심 화자의 사실성을 잘 살렸고, 무엇보다도 초반 구성은 독자의 호기심을 잘 이용한 작품이었습니다. 흡인력이 뛰어났고, 장르소설을 읽는 재미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B파일에 대한 호기심이 드는 분이라면, 속도감 넘치는 한국 스릴러 소설을 읽고 싶은 분이라면 『B파일』은 괜찮은 선택일 것입니다. 뛰어난 흡인력으로 인해 하루 안에 읽어낼 수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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