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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데이워치

2007.11.11 11:4811.11

바빠 죽겠으면서도 데이워치 내려갈까 봐 오전까지 미친 듯이 일을 끝내고 보러 달려갔다. 2시 5분 영화였는데 늦을 것 같아서 마구 달려가 매표소에서 헐떡헐떡하며 "빨리 주삼! 빨리!" 했더니 표 파는 언니가 불쌍해 보였는지 "영화 2시 10분 정각에 상영하니까 천천히 가셔도 돼요" 라고...

그나저나 토요일 2시였는데, 관객은 열 명 남짓. 그나마도 이 영화가 뭔지 알고 보러 온 사람이 나밖에 없거나 한 명 정도 더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정말이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영화를 본 다음 "자아 우리 함께 나이트워치 시리즈에 대해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토론이라도 해보십시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흑흑.

어쨌든 영화 이야기.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러시아 영화의 특수효과도 헐리웃 못지않다. 나는 이 정도면 트랜스포머급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까마귀가 검은 옷의 자객들로 변하는 장면도 꽤 괜찮았고 (후딱후딱 넘겨버려서 오히려 멋져보였달까) 어스름에 들어갔을 때 주위와 분위기가 다른 것도 좋고.

무엇보다도 모스크바가 공 때문에 폭발하는 장면 멋졌다고. 바바박 늘어난 공들이 슈욱 퍼져나가서 도시 전체를 부수는 장면, 꽤 근사했다.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나름 오리지널 스토리이다. 분명 소설에서 어느 정도의 소재를 차용했지만, 상당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특히 예고르는 설정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소설에서 예고르는 여전히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출생부터 달라졌고, 1탄에서 이미 어둠에게 넘어가버렸다. 또한 스베따 역시 소설에서는 "절대자를 낳을 대마법사"였을 뿐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이미 "절대자"로 나와버린다.

그리하여 영화는 대결구도로 흘러가고, 그 핵심이 되는 게 안톤이다. 영화를 좀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생각하지만, 소설에서 안톤이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걸 생각하면 좀 아쉬워진달까. 깊이가 사라지고 볼거리만 늘어버렸다. 게다가 내가 기대하고 있던 2부에서의 로맨스 라인, 즉 어둠의 마녀와 빛의 청년 간에 뒤틀려버린 관계 이야기는 안 나왔어어어어어! 엉엉. (대신 안톤의 옆집 흡혈귀 청년과 붙여줘 버렸던데, 뭐, 음, 용서해주자. 어쨌든 비극의 로맨스 라인이었던 건 맞으니까.)

결국 영화의 마지막도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가버렸다. 영화도 영화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운명의 분필을 나름 제대로 쓰기도 했고. 소설에서는 운명의 분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사실상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마지막 "그 날" 보리스와 자불론이 벤치에 앉아 내기를 하고 있던 장면이 꽤 마음에 들었다. 세월이 몇 년인데! 이 둘은 이미 친구임에 분명하다니까. 흥흥~ (사실은 이런 관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소설을 안 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빠르고, 설명은 불친절하다. 그렇다고 화면을 보고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1탄을 안 봤다? 더더욱 모른다. (이 영화, 국내에서는 차라리 나이트워치 2라고 개봉했어야 했다. 그래야 문외한이 안 들어오지...)

그래서 참으로 아쉽다. 꽤 잘 만든 영화인데. 이대로 묻혀버리기엔 참 아쉬운데 말이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보고 넘어가면 좋겠다. 소설과 겹치는 장면들도 꽤 있다. 안톤과 올가가 몸을 바꾸는 거라든지. (의외로 재밌다.) 하지만 안톤이 소설의 찌질함보다 좀 더 쿨하게 나오는 건 좀... 하, 하. 이 녀석은 찌질한 게 어울려.

아. 성우들의 연기는 여전히 사람 미치고 싶게 별로다. 게다가 번역을(러->영) 누가 했는지 너무나 교과서적인 영어로 말하고 있어서 몸이 막 뒤틀린다. 도대체 영어 더빙을 미국에서 한 건지 러시아에서 한 건진 모르겠지만, 제발 이거 그냥 러시아어판으로 좀 들여오면 안 될까? 보는 동안 그게 제일 거슬려서 괴로웠다.

보러 가실 분은 1탄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시면 될 듯하다. 1탄을 안 보셨다면 스토리 예습은 조금 하시는 게 좋을 듯... 싼 값에 보실 수 있다면 한 번쯤 러시아 블록버스터 영화를 구경할 겸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 호랑이 언니야가 예뻐서 참 좋은데 이번에 한 컷 잠깐 등장하고 말아서 슬펐다.
sandm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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